담쟁이 / 도종환
물 한 방울 없고,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시래기 / 도종환
저것은 맨 처음 어둔 땅을 뚫고 나온 잎들이다
여백 / 도종환
언덕 위에 줄지어 선 나무들이 아름다운 건 나무 뒤에서 말없이 나무들을 받아 안고 있는 여백 때문이다 나뭇가지들이 살아온 길과 세세한 잔가지 하나하나의 흔들림까지 다 보여주는 넉넉한 허공 때문이다 빽빽한 숲에서는 보이지 않는 나뭇가지들끼리의 균형 가장 자연스럽게 뻗어 있는 생명의 손가락을 일일이 쓰다듬어주고 있는 빈 하늘 때문이다 여백이 없는 풍경은 아름답지 않다 비어 있는 곳이 없는 사람은 아름답지 않다
열쇠 / 도종환
세상의 문이 나를 향해 다 열려 있는 것 같지만
산경 /도종환
가구 / 도종환
흔들리며 피는 꽃 / 도종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어떤 마을 / 도종환
사람들이 착하게 사는지 별들이 많이 떴다. 개울물 맑게 흐르는 곳에 마을을 이루고 물바가지에 떠 담던 접동새 소리 별 그림자 그 물로 쌀을 씻어 밥 짓는 냄새 나면 굴뚝 가까이 내려오던 밥티처럼 따스한 별들이 뜬 마을을 지난다.
귀가 / 도종환
언제부터인가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은 지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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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산실, 회인산방을 찾아서 / 도종환 시인
느린 걸음으로 걷고 싶을 땐 직선보다 구불텅 휘어진 곡선의 길이 좋다. 급하게 달려온 걸음도 에워 안으며 돌아가는 길은 강퍅한 마음마저 여유롭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한 눈에 다 드러내기보다 사이사이 새롭게 내어주는 길은 그리운 이를 기다리는 마음처럼 설렌다. 도종환 시인의 회인산방으로 가는 길 역시, 곡선이다. 도심을 벗어나 굽이굽이 돌아가는 피반령 고개는 조였다 풀었다를 반복하며 발아래 자연 풍광을 펼쳐보이고, 부드러운 곡선의 길은 법주리에 자리잡은 회인산방까지 이어진다. 그렇게 도심에서 외곽으로, 외곽에서 시골 마을로, 마을에서도 깊은 산골짜기로 접어드는 동안, 길의 끝자락에서 만나게 될 사람을 가만히 생각하는 시간도 길이 주는 즐거움이다. 회인산방을 찾은 날, 시인은 겨울나기 준비로 분주했다. 창틀마다 떨어져 나간 황토를 덧바르고, 습기를 잡기 위해 구멍 낸 방바닥에 초배지로 도배하고, 아궁이에 불을 넣어 안으로 난 틈새 를 하나하나 점검했다. 겨울 준비는 이곳에서 다섯 번의 혹독한 시골 겨울을 보내며 얻은 소중한 경험이기도 하다. 시인이 회인산방에 옮겨 앉은 지도 올해로 꼭 5년째다. 갑자기 쓰러져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김이동 화가가 다짜고짜 차에 태워 내려놓은 것이 인연이 되어 산방의 주인으로 눌러 앉았다. "당시는 육체적으로도 힘들었지만 정신적으로도 힘든 시기였어요. 일만 하던 사람이 갑자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몸이 되어 이곳에 왔으니 얼마나 답답했겠어요. 불빛도 보이지 않는 산속에 들어앉아 2년 동안은 내가 뭘 잘못했는가, 왜 이런 곳에서 유배 아닌 유배를 해야하는가, 수없이 반문하며 보냈습니다" 끝 모를 절망으로부터 시인을 일으켜 세운 것은 믿음이었다고 한다. 하늘은 날 버리지 않을 것이란 믿음. 그리고 데려간다 해도 이 또한 하늘의 뜻 일 거라는 믿음이 평정을 되찾게 했다. "고요하게 내 처지를 받아들이게 되었어요. 고요한 이곳에서 고라니도 맨발로 다니는데, 책을 많이 읽고, 생각의 시간을 가져야 하는 글 쓰는 사람에겐 좋은 기회일 거 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평화로운 시간과 고요한 시간을 받아들이면서 평온한 마음을 되찾고, 여유로워졌어요" 나를 쓰러뜨린 삶이 생각을 깊게 하고 재충전의 기회가 되었다는 시인은 글이 조용한 시간을 만나 한 편의 시로 씌여지면서 용기를 얻었다고 한다. 긴 터널을 빠져나와 웃음으로 들려주는 이야기 는 추억의 이면에서 빛이 나지만, 당시 시인이 부둥켜안고 보낸 절망의 시간은 "천 권의 책을 읽어도 쓸쓸한 일에서 벗어날 수 없어"라는 '이 세상이 쓸쓸하여'라는 시에서 진하게 읽혀진다. 산방에 가지런히 쌓여있는 책에서 시인의 온기가 느껴지는 것 도 이 때문이리라. 산방의 적막은 시인에게 자연과 마주할 수 있는 시선을 선물 한다. 햇살이 모이는 마당은 다람쥐도, 무당개구리도, 뱀도, 박새도, 고라니도 모두가 주인이란 사실을 깨닫게 한다. "친구들이 산방에 있는 나를 위해 숲 해설가 교육을 함께 신청 해 듣게 되었는데, 지금도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식이 처음에는 방해가 될 때가 있었지만, 숲에 대해 알면 알수록 나와 숲의 관계, 작은 우주로서의 관계를 들여다보게 되었어요" 숲에 대한 관심은 문학적 영역의 확장 뿐만 아니라, 시인의 삶을 자연과 하나가 되게 하고 있다. 시편마다 배경이 되어 주는 자연은 편안하면서도 깊고, 맑은 울림을 주며 독자들 로부터 가장 사랑받는 한국의 시인으로 손꼽히고 있다. 시 담쟁이는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으며 낭송되고 있는 시인의 대표 시 중 하나다.
담쟁이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 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산방에 든 지 5년, 시인은 시집과 동화, 에세이 등 여러 권의 책을 출간하며 문학적 열정을 쏟아왔다. 새벽이 작업 시간이라는 시인은 글을 쓰기 전, 한 시간 정도 명상하며 생각을 모으고 정리한다고 한다. 아픈 몸을 치유하기 위해 찾아든 회인산방이지만, 이젠 글을 쓰기 위한 시인의 문학 산실이 된지 오래다. 그렇다고 시만 쓰지 않는다. 시인은 지역 문학의 뿌리 찾기에도 남다른 열정을 보이고 있다. 오장환문학제와 같은 일련의 작업들은 자기 안에서 거듭나고, 자가발전하고, 자신을 한 단계 끌어 올려야 한다고 주문하는 시인의 말을 실천으로 보여주고 있다. 크고 소리내지 않고 흐르는 강물처럼 시인은 그렇게 정지용, 홍명희, 신경림 등 충북문학의 큰 물줄기를 이으며 문학인 들의 든든한 기둥이 되어주고 있다.
가지끝에 걸린 감이 붉은 등처럼 따스해지는 계절, 산방에서 만난 시인은 고요하다. 투명한 시냇물을 바라보는 것 같다. 이러한 타인의 생각이 시인에겐 창살이, 벽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시인은 도심에 들어앉은 숲 같다.
속리산 자락 산방(山房)에서 느릿느릿 안분지족하는 도종환 시인 “빠른 삶은 병든 삶이요, 느린 삶은 건강한 삶, 조용한 삶은
거룩한 삶이라는 깨달음을 얻었지요”
그에게서 섬세하게 흔들리는 여린 감성을 보았다면 아마 맞을 것이다.
그에게서 굽힐 줄 모르는 지사적
면모를 발견했다면 그 역시 맞을
것이다.
시인 자신이 노래했던 ‘부드러운
직선'은 마치 자화상과도 같은
표현이다. 도종환은 부드럽고도
올곧은 시인. 성품이 그러하고
삶이 그러했다. 볕 좋고 바람
선선한 날, 속리산자락 그림 같은
산방으로 그를 만나러 갔다.
첩첩 산중에 그림처럼 서 있는 외딴 황토방
시인을 만나기 위해 시골길을 달렸다. 서울 밖으로 고작 두어 시간 나왔을 뿐인데 코끝에 와 닿는 공기의 감촉이 다르다. 순도 높은 바람이 가붓하게
불었다. 기분 좋은 세기로 뺨도 살짝 간질인다. 더 이상 차로 들어가기엔
길이 너무 좁아 보이는 지점에서 차를 내려 걷기로 한다.
마중 나온 도종환(52) 선생이 특유의 착한 미소로 서 있는 것이 보인다.
선생의 집은 굽이굽이 산길을 돌아 들어온 다음에도 또 한 번 산속에 폭 파묻혀 있었다. 첩첩산중에 버섯 모양으로 자리 잡은 외딴 황토방.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오래오래 살라’는 뜻에서 구구산방(龜龜山房)
이란다.
앞마당에는 담요를 덮어놓은 듯 정갈하게 잔디가 깔려 있다. 마당 한 켠엔 멋스럽게 기운 넓적 바위 사이로 어여쁜 연못이
고여있다. 일부러 만들어 꾸민 것이 아니라 어느 날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라니 더욱 어여쁘게 보인다.
집 앞엔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계곡이 흐른다. 하루에도 몇
번씩 고라니가 물을 마시러 오고 오소리, 너구리가 먹을거리
를 찾아 찾아든다고 한다.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청아하게
울려 퍼지는 풍경소리에 마음 뺏기기 십상이다.
“미술교사로 재직 중이던 후배가 암 판정을 받고 요양 차 지은 집이에요. 집 위쪽으로 법룡사라는 절이 있는데
거기 스님이 후배에게 이 집터를 소개했다고 하더군요.
3년 전 후배가 저 세상으로 가 내가 여기 들어와 살게
됐지요.”
시인이 충북 보은의 이곳 산방에 머문 지도 어느새 3년 이다.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됐다 어렵사리 복직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낯선 병이 들어 이곳으로 피신했다.
자율신경실조증. 이름조차 낯선 이 병은 특히 워커홀릭
들을 노리는 병이라 한다.
몸의 균형이 깨져 심신이 무기력에 빠지는 상태로, 이 병에
걸렸을 땐 잔병이 들어도 잘 낫질 않는다. 감기라도 한번
걸리면 주사, 약 다 써봐도 1년 넘게 낫질 않을 정도란다.
발병 당시 그는 전교조, 민예총, 지역 운동에 학교 일, 원고
마감, 방송 일까지 한꺼번에 너무 여러가지 일을, 그것도
너무 잘하려고 애쓰며 살았다.
“심신이 무기력하니 제자들
에게 활기찬 수업을 해주지
못하겠더군요.
몇 번의 휴직 끝에 결국 그만
둘 수밖에 없었지요. 이 집에
있다 보면 온종일 새소리를
들으며 사는데 한번은 새 한
마리가 처마 끝을 빙그르르
날면서 ‘선생님, 선생님’하더라
구요. 영락없이 그 소리예요.
그러면 ‘아 왜 자꾸 불러 임마’
하고 대꾸를 하지요. 아마 제자
들 생각이 나서 그렇게 들리는
건지….”
시인은 자연 치유의 힘을 몸소 체험하고 있었다
건강은 어떠냐고 물었더니 얼마 전 있었다는 에피소드로 답을 대신한다. 하루는 장미농원을 하는 친구가 장미꽃을 갖다가
산방 거실에 꽂아 놓았단다. 한 열흘이 지나도 꽃이 시들지 않아
기특하다 싶었다. 그렇게 20일이 지나고 또 한 달이 지나도
그 모양 그대로 있더란다. 거기서 또 한 달이 지나니까 이번엔
잎이 다 지더니 새잎이 돋더라는 것이다.
해준 것이라곤 물 준 것밖에 없는데 뿌리도 없는 장미꽃대는
그렇게 석 달을 살았다. 그런 걸 보면서 ‘이 집 안에 생명을
살게 하는 무엇인가가 있구나’하고 생각했다 한다.
황토와 숲, 맑은 공기 속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자연치유’의
힘이 내재돼 있음을 느끼면서 정신적으로 큰 위안을 받았단다.
“여긴 TV도 없고 라디오도 없고 신문도 없으니 하루 종일 조용한 가운데 새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가 없어요.
이곳에서 내 삶의 패턴도 바뀌었지요. 몸의 균형을 되찾은
것 같아요. 그러면서 사고방식에도 변화가 생겼어요.
그전에는 전속력으로 달리는 삶이었다면 이제는 평온한 속도,
‘느림’을 실천한다고 할까요. 이곳에서 지내면서 무엇보다
많이 변한 것은 마음의 속도가 느려졌다는 것입니다.
빠른 속도의 삶은 병든 삶이요, 느린 속도의 삶은 건강한 삶,
조용한 삶은 거룩한 삶이라는 깨달음을 얻었어요.”
산방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찬사일색인 손님에게 시인은 산방에서 겨울을 나는 혹독함을 넌지시 이야기했다.
봄, 여름, 가을은 더없이 아름답고 평온하지만 겨울이 되면
살을 에는 추위를 견뎌야 한다.
밤 10시부터 새벽까지 심야전기만 들어오기 때문에 나머지
시간에는 나무를 직접 해다가 벽난로에 불을 지펴야 한다.
한파가 몰아치면 수도가 꽁꽁 얼기 일쑤지만 산길이 얼어
버리면 수리하는 사람도 들어오질 못하니 꼼짝없이 며칠씩
물도 없이 지내야 할 때도 있다. 그럴 땐 눈을 퍼다가
녹여서 끼니를 끓여 먹곤 한단다. 겨울엔 그 혹독한 추위
에 정신이 다 가팔라지지만 그런 것도 작가에게는 필요한
시간이라 여기고 견딘다.
“식구들도 종종 다녀갑니다. 큰아이는 군대 가 있고 작은 아이는 서울에서 학교 다니고 있어요. 또 한 분(아내)은
직장 다니시고….(웃음) 외롭다는 생각이 안 드는 건 아니지만
외롭게 보내는 시간도 작가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지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초여름 산방의 햇살을 즐기고 있자니 어느덧 점심때가 다 됐다. 시인은 늘상 먹는 대로 텃밭에서 나물
뜯어다가 비빔밥 정도 대접할 수 있다고 일어선다.
연못 위로 난 비탈길을 따라 몇 발자국 올라가니 소담스럽게
가꾼 자그마한 텃밭이 나온다. 쑥갓이며 아욱이며 상추며 고추며
하는 푸성귀들이 옹기종기 자라고 있다.
아직 다 자라지 않아 마냥 여리고 부드러운 푸성귀들을 따다
열무김치며 오이무침 따위와 함께 섞어 커다란 양푼에 참기름을
넣고 쓱쓱 비볐다. 시내에선 맛볼 수 없는 무공해 비빔밥은
소박하지만 한편 호사롭다. 밥값하겠다고 텃밭에 나가 잡풀을
뽑고 설거지도 뚝딱 하고 나니 손님에게도 산방은 내집처럼
친근하다.
마음속의 풍랑이 가라앉아 고요한 상태로 가는 길 시인은 듣던 대로 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하기야 1백만 명의 심금을 울린 ‘접시꽃 당신’의 시인이 아닌가. 결혼 3년 만에
암으로 아내를 떠나보내고 가슴 저릿한 사부곡을 시로 노래한
것이 벌써 20년 전 일이다. 가장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겪은
후 자신마저 병마와 싸우면서 시인은 죽음에 대해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가 아파서 이를 하나 뺀다고 할 때 처음에는 빼기가 싫죠. 빼고 나면 별거 아니에요. 아, 이게 내 것이 아니지 하는 생각이
드는 거지요. 내 몸의 하나하나가 다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걸 주신 분이 달라고 하면 다시 드려야 되는 것….
그것이 다리 한 쪽이 됐든 몸통이 됐든 내놓으라고 하면 그때는
전체라도 다 드려야 하는 것이 우리의 생명이 아닐까 싶습니다.
내 것이라고 하는 그 집착을 풀고 죽음 앞에서 언제든지 ‘네’
하고 대답하려면 수양하고 훈련하는 자세를 가져야 하겠지요.
가까운 사람의 죽음은 큰 고통입니다. 하지만 의미없이 오는
고통은 없지요. ‘죽음’에서 뭔가를 깨닫지 못한다면 그 무엇에
서도 깨닫지 못할 겁니다. 내 몸이 아플 때도 이것을 통해
내가 또 무엇인가를 깨달아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럼 무엇을 깨달아야 하나… 그 고민들이 이번 시집으로
묶여진 거구요.”
그의 신작 시집 「해인으로 가는 길」은 그가 산방에서 머물며 텃밭을 가꾸고
장작을 패고 책을 읽고 시를 쓰며 완성
했다. 지난해 2월부터 올 1월까지
‘아름다운 가게’ 홈페이지에 매주 한 편
꼴로 기증했던 60여 편의 시를 묶은
것이다. 시인은 시집 인세를 ‘아름다운
가게’에 기증하기로 했다.
수익금은 충북민예총을 통해 베트남
평화학교 짓기 사업에 쓰일 예정이다.
시집의 제목인 ‘해인으로 가는 길’은 곧 그의 산방 생활을 의미한다.
‘해인’은 풍랑이 가라앉아 고요한 상태를
말하는 불교 용어다. 말하자면 번뇌의 물결,
탐욕의 물결이 가라앉은 상태에 대한 시적 비유인 셈이다.
한편 ‘화엄’이라는 것은 조화, 어울림, 나눔, 평등의 추구를
말한다. 화엄을 추구하면 참여적인 삶으로 발현되기 쉽다.
“여기 오기 전에는 화엄의 삶을 지향하면서 살았다고 할 수 있어요. 그렇다면 해인과 화엄, 이 두 개의 삶은 별개
의 것인가, 하나가 될 수 없는 건가 하는 고민을 하다가
불경을 보니 ‘화엄으로 휘몰아치기 직전이 해인이다’라고
써 있더군요. 두 개가 하나 되는 삶을 지향하는 것이
맞겠구나 생각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성찰이 부족한
채 행동이 앞선 삶을 산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이 들더군요.”
시인은 최근 시를 배달하는 집배원으로 나섰다. 문학나눔사업추진위원회에서 문화사업의 일환으로 시작한
‘도종환의 시 배달’을 시작한 것이다. 매주 월요일 그가 직접
고른 시 한 편을 메일로 받을 수 있다. 일주일에 한 번 좋은
시 한 편 읽으며 한 주를 아름다운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기
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시를 배달 받고 싶은 독자는 홈페이지
에서 신청하면 된다.
“우리 동네에 착한 집배원이 한 명 있어요. 오토바이를 타고 시골마을 집집마다 우편물을 배달하는데 우편물만 던져놓고
가는 것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 집안 사정, 건강 상태까지
관심을 가지고 살핍니다. 바쁘게 오가는 길에 산이나 언덕에
올라 몸에 좋다는 산도라지, 칡꽃 등을 뜯어서 연로하신 어르신
들 드시라고 갖다 드리기도 하구요.
산삼 뿌리 캐다가 마을 어르신 갖다 드린 것만 해도 70뿌리가
넘어요. 그걸 갖다 팔면 돈도 꽤 될 텐데 그렇게 하질 않더군요.
누군가를 향해 가는 길에 잠시 멈춰 서서 그 사람을 위해 나물
을 뜯고 산삼을 캐는 모습을 생각해보세요. 얼마나 아름다운
삶입니까.”
시인은 자신도 그 집배원 같은 삶을 살고 싶다고 말했다. 그런 마음으로 한 편 한 편 시를 골라 사람들의 마음속에 선물
하고 싶다는 것이리라. 바쁜 세상에 내 갈 길 가기도 바쁜데
나물 뜯을 시간, 산삼 캘 시간이 어디 있냐고 혀를 차고 살아
오지는 않았는지…. 구구산방의 느린 기운 속에서 마음 안으로
작은 깨달음이 조용히 스며들어왔다. 글 / 박연정 사진 / 김준수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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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詩의 향기 / 무명시인을 찾아서 원문보기 글쓴이: 동산
첫댓글 감동 깊게 가슴으로 읽었습니다. 죽음 앞에서 집착을 풀고 그 분이 달라고 하시면' 네 몸 전체라도 드려야 하는 삶' 시인의 삶을 애절한 마음으로 본받고 싶은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