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억 지구촌을 감동과 환희의 세계로 끌어들였던 2008 베이징올림픽 성화가 마침내 사그라들었다.
아시아에서 세번째로 개최된 베이징올림픽이 24일 저녁 9시 주경기장인 궈자티위창(國家體育場)에서 화려한 폐막행사를 갖고 16일간의 대축제를 서서히 마무리했다.
'광란과 열정'을 주제로 내세운 폐막식은 올림픽을 평안하게 끝낸 기쁨을 신명나게 만끽하는 뒤풀이 형식으로 진행됐다.
개막식에 이어 폐막식 공연을 총연출한 거장 장이머우 감독은 "개막식이 반만년 중국의 문화를 집약해 보여줘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에서 출발했다면 폐막식은 전 세계인이 축제를 즐기며 기쁨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으로 갈음했다"고 설명했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듯 폐막식 메시지는 아쉬운 이별을 고하고 4년 후 런던에서 재회를 기약하는 것이다.
3막으로 구성된 폐막식에서 장미어우 감독은 세계 3대 테너 중 한 명인 플라시도 도밍고(67)와 중국 민요의 여왕 쑹쭈잉(42)의 합동 공연을 통해 중국과 세계의 소통을 이야기했다.
윈난성 출신 예술단원들의 화려한 춤사위, 소림사 무승 350명의 쿵푸 공연, 전통악기 얼후(중국 아쟁) 연주 등은 아직도 중국에 볼거리가 무궁무진함을 보여줬다.
30년 개혁 개방의 성과를 상징하는 현대 중국의 모습을 담은 작품도 빠지지 않았다.
베이징올림픽은 끝이 아닌 세계로 뻗어가는 중국의 새로운 출발점이라는 강한 메시지였다.
개막식에서 북과 첨단기술을 접목해 시각적인 요소를 극대화시키며 화려한 카운트다운을 연출했던 장이머우는 이번에도 과학과 음악을 화학적으로 결합해 인간의 심금을 울리는 색다른 감동을 안겨줬다.
폐막 행사가 마무리되면서 대회 기간 베이징을 뒤덮었던 올림픽기는 2012년 하계올림픽 개최지인 영국 런던으로 이양됐다.
보리스 존슨 런던 시장은 궈진룽 베이징시장으로부터 올림픽기를 전달 받은 뒤 궈자티위창을 가득 메운 중국민과 전 세계 선수들 앞에서 4년 뒤에 반드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했다.
런던시는 불세출의 축구스타 데이비드 베컴(33.LA)이 출연하는 8분짜리 프리젠테이션 영상을 방영, 런던의 꿈과 희망을 설파했고 또 다른 신화에 대한 기대감을 세계인의 가슴에 심어줬다.
성화 점화 방식이 그러했듯 소화 방식도 끝까지 비밀에 붙여졌다. 장이머우의 깜짝쇼는 베이징올림픽의 최대 화제 중 하나였다.
도쿄(1964년), 서울(1988년)에 이어 아시아에서 세 번째로 열린 베이징올림픽은 중국인이 100년의 꿈을 담아 7년간 정성스레 준비한 중화 사상의 결정판이었다.
후진타오 국가주석 이하 전 국민이 똘똘 뭉쳐 세계 일류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한 도약대로 삼은 올림픽에 전력을 쏟았고 중국은 일단 성적에서 강력한 라이벌 미국을 누르면서 가능성을 보여줬다.
1984년 LA 올림픽부터 본격적으로 올림픽 무대를 밟기 시작한 개최국 중국은 만년 2위에 머물다 13억 중국인의 열화와 같은 응원을 등에 업고 금메달 51개, 은메달 21개, 동메달 28개로 메달수 딱 100개를 채워 초일류국가 미국을 제치고 종합 1위로 우뚝 섰다.
미국은 금메달 36개를 따내는 등 총 메달수에서는 110개로 중국을 앞섰으나 기대를 모았던 남녀 육상 단거리에서 자메이카에 발목이 잡혀 1위 수성에 실패했다.
중국과 미국의 치열한 메달 다툼 속에 한국은 금메달 13개, 은메달 10개, 동메달 8개를 획득해 사상 최고 성과를 올리며 국가별 메달 순위에서 종합 7위를 확정지었고 8년 만에 아시아 2위를 탈환했다.
유도의 최민호(한국마사회)가 60㎏급에서 가장 먼저 금맥을 뚫었고 '마린보이' 박태환이 자유형 400m에서 우승, 불모지 수영에서 사상 첫 금메달을 일구며 감동을 줬다.
전통적 메달 박스 양궁과 태권도에서는 각각 2개, 4개로 큰 힘을 보탰다.
'여자 헤라클레스' 장미란은 역도에서 무려 세계신기록을 5개나 수립하며 여유 있게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사재혁(역도) 진종오(사격) 등도 4년간 흘린 구슬땀을 금메달로 보상 받았다.
'살인윙크'로 국민 남동생으로 떠오른 이용대는 이효정(삼성전기)과 호흡을 이룬 배드민턴 혼합복식에서 값진 금을 일궜다.
야구대표팀은 투혼을 발휘해 사상 첫 금메달을 따내며 단체 구기종목에서 16년 만에 금맥을 잇고 해피엔딩을 마무리했다.
그러나 남북관계 경색으로 2000년 시드니올림픽 이후 8년간 지속해 온 남북 공동입장이 무산된 건 옥에 티였다. 활발하게 진행됐던 남북 스포츠교류도 향후 전망이 불투명해졌다.
베이징올림픽은 마이클 펠프스(23.미국)와 우사인 볼트(22.자메이카)라는 물과 땅의 신(神)을 낳았다.
펠프스는 신전 '워터큐브'에서 여러 차례 금빛 물살을 가르며 사상 첫 8관왕의 위업을 수립했다.
번개처럼 느닷없이 나타난 볼트는 남자 육상 단거리 세 종목에서 감전할 정도의 에너지를 폭발시키며 궈자티위창 트랙을 온통 금빛으로 물들였다.
안타까운 소식도 있었다. 남자 육상 110m 허들에서 대회 2연패를 노리던 류샹(25)은 갑작스러운 오른쪽 발목 부상으로 대회를 포기해 13억 중국민의 가슴에 멍을 지웠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4천500회 이상 강력한 도핑을 실시한 결과 북한 사격 선수 김정수(31)의 은메달과 동메달을 박탈당하는 등 여러 선수의 기록과 메달을 빼앗고 경종을 울렸다.
체조 선수 나이 조작과 관련한 미국과 중국의 신경전은 현재 진행형이다.
메달을 내팽개친 레슬링 선수와 판정에 불복해 심판을 때린 태권도 선수 등 갖가지 사연으로 논란을 불러 일으킨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연일 터져 나온 감동스토리는 애꿎은 소식을 수시로 잠재웠다.
나탈리 뒤 투아(24.남아프리카공화국)는 한쪽 다리만으로 여자 마라톤 수영(10㎞)에 출전, 16위에 오르며 무한한 감동을 선사했고 혈액암을 극복하고 역시 같은 종목에서 우승한 네덜란드 수영 마라톤 대표 마르텐 판데르베이덴(27)의 사연은 세계인의 눈시울을 자극했다.
외팔 탁구소녀 나탈리아 파르티카(19.폴란드), 고환암 판정을 받고도 에릭 섄토(25.미국)의 눈물겨운 도전, 여자 핸드볼 대표팀의 근간을 이룬 아줌마 부대가 노래한 '우생순'의 감격 등 베이징올림픽은 오직 스포츠만이 줄 수 있는 감동을 아낌없이 선사했다.
16일간 써내려간 각본없는 드라마를 뒤로 하고 베이징의 성화는 어둠으로 사라졌다. 30번째를 맞는 런던올림픽에서는 보다 극적이고 더 순수한, 열정의 무대를 예고하면서.
[2007년] 그리스 사상최대 산불
강풍으로 불길 번져, EU 지원 속 국가비상사태 선포
그리스에서 10년 내 최악의 산불이 반도 전역을 휩쓸며 최소 44명이 사망했다고 현지 언론들이 25일 전했다.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이 긴급 지원에 나선 가운데 코스타스 카라만리스 그리스 총리는 이날 전국에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그러나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중심으로 그리스 전역에서 불길이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아 피해는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카라만리스 총리는 TV 연설을 통해 "오늘은 국가적인 비극의 날"이라며 "가능한 한 빨리 이 악마(산불)를 저지하고 파괴된 것을 복구하기 위해 전국에 비상사태를 선포한다"고 말했다.
그리스 야당은 정쟁 중지를 선언했으며, 주말 프로 축구 경기 일정도 모두 취소됐다.
현재 가장 피해가 극심한 곳은 그리스 남부의 펠로폰네소스 지역으로 반도 서쪽의 자카로 지역에서는 다수의 어린이를 포함해 모두 37명이 숨졌다.
특히 이 곳에서는 전날 밤 실종됐던 어머니와 자녀 4명의 시신이 발견돼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으며, 소방수 3명의 사망도 확인됐다.
전날 타이게토스산에서 발화, 북서 방향으로 급격히 번진 이날 산불로 10개 지역 마을 주민들에 대피령이 내려졌으며, 스파르타와 칼라마타를 잇는 고속도로도 전면 폐쇄됐다.
미처 대피하지 못해 마을 주민 13명이 숨진 아르테미다 인근에는 불에 완전히 타버린 자동차와 하수구에 처박힌 트럭, 오토바이 잔해들이 도로에 흩어져 있는 등 참혹한 풍경이 그대로 남아있다고 소방 대원들이 전했다.
여름철 관광객이 모여드는 마니 반도에서도 주말 행락객과 소방대원 등 6명이 희생됐다.
소방 당국과 군은 비행기 11대와 헬기 7대, 소방대원 800명, 군인 400명 등을 동원해 진화에 나서고 있으나 불기둥에 휩싸인 마을은 진입하기가 쉽지 않은 상태다.
더욱이 강한 바람이 계속돼 헬기 운행도 쉽지 않은 실정이다.
그리스 정부가 전날 EU에 도움을 요청한 가운데 프랑스, 독일, 노르웨이, 스페인 등이 화재 진압용 항공기 및 헬기 등을 긴급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스티라의 소피아 모트소 시장은 "우리가 지금 재난을 멈추지 않는다면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라며 에비아 등 섬 지역의 화재 진압을 위해 페리에 소방차를 싣고 섬까지 가는 방안을 제안했다.
"최소 3개 마을에서 주민들이 집을 버리고 떠나야했다"고 밝힌 소방 당국의 니코스 디아만디스 대변인은 지난 밤 새로 화재가 일어난 몇몇 지역의 경우 방화가 의심된다고 말했다.
그리스는 지난 6-7월 40도를 훌쩍 넘는 폭염에 이어 발생한 대형 산불로 수천 ㏊의 숲이 불타는 등 큰 피해를 입었으며, 소방 당국의 늑장 대처가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참고 : 2009년 8월 21일 밤 마라톤시 인근 마을에서 발생한 산불 강풍을 타고 아테네 교외 방향으로 점차 내려오며 도시와 마을을 위협하는 양상으로 전개되며 오늘(8월 24일) 현재 불타고 있습니다.
[1992년] 한국-중국, 국교 수립
한국과 중국이 1992년 8월 24일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 항구적인 선린 우호 협력관계를 발전시켜 나가기로 합의했다. 이상옥 외무장관과 전기침 외교부장은 이날 북경의 영빈관인 조어대에서 수교협정 서명식을 갖고 상호 국가승인, 외교관계 수립 등 6개항을 담은 대한민국 정부와 중화인민공화국간의 외교관계 수립에 관한 공동성명에 서명했다.
이로써 한국과 중국은 지난 1910년 한일합방 이래 사실상 82년 만에 국교를 정상화하게 됐다. 공동성명에서 한국은 중국을 유일 합법정부로 승인하고 대만은 중국의 일부라는 중국 입장을 존중하며, 중국은 한반도의 한민족에 의한 평화통일 지지와 빠른 시간내 대사교환 등을 명시했다. 이에따라 주중 한국무역대표부는 이날 오전 대사관 현판식을 갖고 정식 외교업무를 시작했다. /조선
[1991년] 우크라이나 독립
구소비에트연방 속의 우크라이나사회주의공화국도 1990년대 초반 자유화의 물결을 거부하기 어려웠다. 이에 우크라이나 최고 소비에트가 1990년 7월 16일 주권 선언문을 채택할 무렵, 공산당의 페레스트로이카의 진행과정에 불만을 가진 학생·재야인사·정치인들이 우크라이나 당국과 갈등이 깊어졌다. 1991년 8월 24일 우크라이나의 최고 소비에트는 구소련으로부터 독립선언하였다. 1991년 12월 1일 크라프추크가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국민투표를 통하여 우크라이나는 독립국이 되었는데, 유권자의 84%가 참여한 투표에서 투표자의 90%가 독립을 지지하였다. 1993년에 들어와 경제사정이 악화되자 국내 경제정책의 선택을 둘러싼 논란이 격렬하게 일어났으며, 생활 수준의 저하와 상품 가격의 급등으로 국민들의 정부에 대한 불신은 깊어졌다. 이에 1996년 6월 28일 공화국 헌법을 채택하였다. /naver
[1990년] 국무회의, 공휴일 변경 의결-국군의 날과 한글날을 제외, 공휴일익일휴무제 폐지
노 태우 정권 시절 공휴일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한글날, 국군의 날을 공휴일에서 제외하였다. 그 당시 기업경영에 지장이 많다는 일부 재벌들의 엄살과 국한문 혼용파 등의 목소리에 호응하여, 노 태우 정권이 국군의 날과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제외시킨 것이다. 그러나 공휴일이 너무 많다고 해명한 노 태우 정권은 구정, 석가탄신일 등 새 공휴일을 지정했으며 추석에도 공휴일을 하루 더 늘렸다.
[1903년] 수필가·독문학자 김진섭(金晋燮) 출생
1903. 8. 24 전남 목포~?
호는 청천(聽川). 지적이고 사회적인 생활인의 철학을 발견하고 추구하는 수필을 썼다. 나주에서 보통학교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와 1920년 양정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이듬해 일본으로 건너가 1927년 호세대학[法政大學] 독문과를 졸업했으며, 재학시절인 1926년 〈동아일보〉에 평론 〈독일 문호 토마스 만의 예술〉을 발표했다. 유학시절 손우성·이하윤·정인섭 등과 '해외문학연구회'를 만들고, 1927년 1월 기관지 〈해외문학〉을 펴냈다. 여기에 표현주의 예술이 인간의지를 표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주장하는 평론 〈표현주의 문학론〉과 번역소설 〈문전의 일보〉, 번역시 〈모든 것은 유희였다〉 등 10여 편을 발표했다. 귀국 후 1928년 경성제국대학 도서관 촉탁으로 있으면서, 1931년 윤백남·홍해성·유치진 등과 '극예술연구회'를 조직하여 근대희곡을 번역, 공연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1945년 경성방송국에서 근무했고,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장, 서울대학교·성균관대학교 교수를 역임했다. 6·25전쟁 때 서울 청운동 자택에서 납북된 뒤 생사를 알 수 없다.
1947년 첫번째 수필집 〈인생예찬〉과 1948년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린 2번째 수필집 〈생활인의 철학〉을 펴냈다. 그의 수필의 특징은 "숨김없이 자기를 말한다는 것과 생활에 대한 사색과 관찰"로 요약된다. 주관적이고 직관적인 이양하의 수필과 함께 근대수필문학의 쌍봉으로 평가되고 있다. 주로 만연체 문장을 썼다. 평론집으로 〈교양의 문학〉(1950)·〈청천수필평론집〉(1958) 등이 있다./브리태니커
[1903년] 초현실주의 풍경화로 잘 알려진 영국의 화가 서덜런드(Graham (Vivian) Sutherland) 출생 ← 서덜런드
1903년 8월 24일 태어남 / 1980년 2월 17일 죽음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의 이중적 의미가 항상 나를 사로잡는다. 그것은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온 모든 주제들 중에 가장 비극적인 주제이면서, 다른 한편으로 구원의 약속을 의미한다. " - 그레이엄 서덜런드
서덜런드는 초현실주의 풍경화로 유명한 영국의 화가이다. 1921~25년 엡섬 칼리지에서 교육을 받고 런던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초기에는 판화 제작에 전념해 낭만파 화가 새뮤얼 팔머에게 에칭과 인그레이빙에 대해 배웠다. 그의 초기 작품들은 엄격한 재현적 구상주의였으며, 차츰 초현실주의로 발전해나갔다. 1935년 회화로 관심을 돌려 1941~44년에는 공식적인 전쟁화가로 일했다.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종교화의 하나로 꼽히는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 Crucifixion>(1946, 노샘프턴의 세인트매튜스 교회)를 그림으로써 그의 '가시나무 시대'가 시작되었다. 그는 후기 작품들에서 사람 모양의 벌레와 식물 형상, 특히 가시나무 형상을 결합해 강력하고 무시무시한 토템과 같은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표현주의적이고 심층적인 초상화 연작을 발표했으며, 1962년에는 새로 지은 커벤트리 대성당의 거대한 태피스트리를 디자인했다. 1960년 메리트 훈장을 받았으며, 1972년에는 미국 문학예술 아카데미 회원이 되었다./브리태니커
[1899년] 작가 보르헤스 출생 ← 아르헨티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남아메리카에서 극단주의적 모더니즘 운동을 일으킨 작가로 평가되고 있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가 1899년 8월 24일 태어났다. 그는 모국어인 스페인어 외에도 영국계 할머니로부터 배운 영어를 6살 때부터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유럽에 가서는 라틴어와 프랑스어, 독일어로 된 책을 읽었다. 너무 많은 책을 읽은 나머지 30대 후반부터 서서히 시력을 상실해 생의 후반부는 암흑 속에서 지내야 했다.
시인으로 출발한 그는 1935년 단편집 ‘불한당들의 세계사’를 내놓으면서 소설가로 활동했다. 그의 단편 ‘픽션들’과 ‘알레프’는 유럽과 미국의 문학과 비평계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픽션들’ 속에 삽입된 ‘바벨의 도서관’ ‘바빌로니아의 복권’은 소설의 죽음을 외치는 금세기 말의 문학세계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공한 대표적 작품들로 손꼽힌다.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허물고, 이 우주를 거대한 도서관으로 보아 모든 것을 텍스트로 삼는 그의 소설이야말로 포스트모더니즘, 해체주의, 기호학, 후기구조주의 등의 근원적 요소를 품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조선
[1618년] 조선시대 중기 문신, 소설가 허균(許筠) 사형 집행 ← 허균 생가(강릉)
허균 [許筠, 1569~1618]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단보(端甫), 호는 교산(蛟山)·성소(惺所)·백월거사(白月居士)이다. 1589년(선조 22) 생원이 되고, 1594년 정시문과에 급제, 검열(檢閱)·세자시강원 설서(世子侍講院說書)를 지냈다. 1597년 문과중시에 장원급제, 이듬해 황해도도사가 되었다가 서울 기생을 끌어들였다는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다. 뒤에 춘추관기주관(春秋館記注官)·형조정랑(刑曹正郞)을 지내고 1602년 사예(司藝)·사복시정(司僕寺正)을 거쳐 전적(典籍)·수안군수(遂安郡守)를 역임하였다.
1606년 원접사(遠接使) 종사관(從事官)이 되어 명나라 사신 주지번(朱之蕃)을 영접하여 명문장으로 명성을 떨쳤다. 1610년(광해군 2) 진주부사(陳??副使)로 명나라에 가서 한국 최초의 천주교 신도가 되었고, 천주교 12단(端)을 얻어왔다. 같은 해 시관(試官)이 되었으나 친척을 참방(參榜)했다는 탄핵을 받고 파직 후 태인(泰仁)에서 창작에 전념하다가 1613년 계축옥사(癸丑獄事) 때 평소 친교가 있던 박응서(朴應犀) 등이 처형되자 신변의 안전을 위해 권신 이이첨(李爾瞻)에게 아부하여 예조참의·호조참의·승문원부제조(承文院副提調)를 지냈다. 1617년 폐모론(廢母論)을 주장하는 등 대북파의 일원으로 왕의 신임을 얻었다.
같은 해 좌참찬(左參贊)으로 승진하고, 광해군 폭정에 항거하여 이듬해 하인준(河仁俊)·김개(金?) ·김우성(金宇成) 등과 반란을 계획하다가 탄로되어 1618년 가산이 적몰(籍沒)되고 참형되었다. 시문(詩文)에 뛰어난 천재로 여류시인 난설헌(蘭雪軒)의 동생이며 소설 《홍길동전(洪吉童傳)》은 사회모순을 비판한 조선시대 대표적 걸작이다. 작품으로 《교산시화(蛟山詩話)》 《성소부부고(惺所覆?藁)》 《성수시화(惺叟詩話)》 《학산초담(鶴山樵談)》 《도문대작(屠門大爵)》 《한년참기(旱年讖記)》 《한정록(閑情錄)》 등이 있다. /naver
[1572년]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 학살사건 발생 ← 앙리 4세, Frans Pourbus the Younger가 그린 그림(부분)
1572년 8월 24일 프랑스 파리에서 가톨릭교도들이 위그노(프로테스탄트)들을 학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당시 프랑스 국왕 샤를 9세의 어머니인 카트린 드 메디시스가 꾸민 음모에 파리의 가톨릭교도들이 동조하면서 일어났다. 카트린 드 메디시스는 위그노의 지도자인 가스파르 2세 드 콜리니 장군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우려해 가톨릭교도인 기즈 가문이 계획한 콜리니 장군 암살계획을 승인했다. 1572년 8월 18일 많은 위그노 귀족들이 프랑스의 마르그리트 공주와 위그노였던 나바라의 엔리케(후의 앙리 4세)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파리로 모여들었다. 기즈가는 이를 기회로 삼아 콜리니 장군 암살을 기도했으나 실패로 돌아갔다. 한편, 분노한 위그노들을 달래기 위해 정부는 암살음모를 조사하기로 했다. 그러나 카트린 드 메디시스는 자신이 연루된 사실이 탄로날 것을 우려해 귀족들과 은밀히 만나 파리에 머물고 있던 위그노 지도자들을 제거하려는 음모를 꾸몄다. 마침내 8월 24일 새벽 학살극이 시작되었고 콜리니 장군을 비롯한 수많은 위그노 귀족들이 살해당했다. 학살극은 점차 지방으로 확대되어 그해 10월까지 계속되었다. 이 학살사건을 계기로 가톨릭교도와 위그노 사이에 증오가 되살아났으며, 위그노들은 왕권에 복종하라는 장 칼뱅의 원칙을 버리고, 특정한 상황에서는 반란세력과 폭군을 살해하는 행위가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견해를 지니게 되었다. /브리태니커
[79년] 이탈리아 베수비오 화산 폭발-폼페이 최후의 날 ← 폼페이에 있는 아폴론 신전, 뒤에 보이는 것이 베수비오 산
79년 8월 24일 이탈리아 베수비오산에서 폭발한 대규모 화산으로 인근의 폼페이 주민 수천명이 희생되는 참사가 일어났다. 높이가 1,281m인 베수비오 산이 분화하리라고는 당시 사람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유럽대륙에서 유일한 활화산이었지만 900년이 넘도록 한번도 분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베수비오산은 화산지역에서 보이는 거친 바위나 흙은 커녕, 산꼭대기까지 무성한 숲으로 이루어져 기원전 1세기에 스파르타쿠스의 난을 일으킨 검투사들과 노예들이 이 곳으로 도망쳐 숨을 정도였다. 이것이 사망자 수를 늘리는 결과를 낳았다.
오후 1시부터 시작된 분화로 인한 피해보다 소리없이 덮쳐온 화산재가 피해를 더 확대시켰다. 화산재를 잔뜩 머금은 안개구름이 낮게 깔리면서 질식된 사람들이 쓰러져갔다. 비극은 이튿날인 25일 아침까지 이어졌다.
폼페이는 돌멩이와 화산재 밑에 매몰되었고 높이는 4m에 이를 정도였다. 게다가 막판에는 화산재가 섞인 비까지 내려, 이 돌멩이와 화산재 더미는 시멘트처럼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희생자수가 2천명이라는 사람도 있고 5천명이라는 사람도 있다. 당시의 폼페이 인구는 1만5천 내지 2만명 정도였다.
매몰된 폼페이의 존재는 15세기까지 잊혀져 있었다. 16세기 말부터 소규모의 발굴이 시작되고 1748년부터 발굴이 본격화해 지금까지 옛 시가의 절반 정도만이 발굴된 상태다. 전성기에 갑자기 파묻힌 폼페이는 오늘날의 우리들이 로마인들의 당시 생활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조선
그밖에
2005년 자이툰 3진 1차 교대병력 1천800여명 파병
2005년 6차 남북적십자회담 대표접촉(금강산호텔)
2003년 반북 시민단체들과 2003대구 유니버시아드 북한 취재기자들 간에 충돌
2002년 음악공유사이트 ‘소리바다’ 서비스 재개
2001년 대법원, 사상초유의 '항명파동'을 일으켜 면직된 심재륜 전 대구고검장에 대해 복직 판결
1994년 성신양회 그룹 김상수 명예회장 사망
1992년 한국-대만 단교
1991년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 사임
1985년 중국 경폭격기 일류신28 이리(裡里)에 불시착
1984년 마두라 유전개발 성공 발표
1976년 문교부, 중학교과서 전면 국정화
1973년 한국-핀란드, 국교수립
1973년 정부, 일본 요미우리신문 서울지국 폐쇄
1969년 미국 과학자 월석 표본분석 결과 45억년 된 것으로 추정
1968년 프랑스 수소폭탄 실험 성공
1968년 중앙정보부, 통일혁명당 지하간첩단 수사 발표
1964년 민정당 사꾸라 내분으로 숙당
1956년 미조구치 겐지 일본 영화감독 사망
1954년 미국 공산주의자 단속법 제정
1954년 브라질 대통령(1930-45, 1951-54) 바르가스 사망
1945년 소련군 평양점령. 사령부 설치
1945년 우키시마마루(浮島丸)호 침몰사건
1942년 미국-일본, 제2차 솔로몬해전
1940년 텔레비전의 주사원리를 발견한 독일의 니프코브 사망
1931년 프랑스 소련 중립불가침조약 체결
1921년 미국 오스트리아 강화조약
1920년 미국 의원단 입경(入京).각지에서 만세시위
1914년 독일 신학자 요하네스 바이스 사망
1908년 중요무형문화재 제68호 밀양백중놀이의 기·예능보유자 하보경 출생
1902년 프랑스의 역사학자 페르낭 브로델 출생
1888년 독일의 수리물리학자 클라우지우스 사망
410년 서고트족의 알라리크 족장, 로마 함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