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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아의 차자의 출생(1:8-9) 대민성결교회 이석민 목사
[8] 고멜이 로루하마를 젖뗀 후에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매 [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로암미라 하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지 아니할 것임이니라
선지자와 음란한 여인의 결혼을 통해 하나님께서 드러내려고 하신 것은 이스라엘의 음란함이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이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음란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음란함은 여호와를 떠난 것에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고 난 뒤부터 끊임없이 이방 민족의 신을 동경하였습니다.
이방 민족의 발전된 문화와 군사적 힘이 그들의 신에 의한 것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자신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을 앞에서는 믿는다고 하면서도 늘 한쪽으로는 이방신을 따르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들을 향해 음란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본문의 음란은 ‘자눈’이라는 히브리어로 ‘간통’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간통은 자신의 남편이 있는데, 아내가 있는데 다른 남편, 다른 아내와 관계를 맺는 것을 말합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결혼까지 한 배우자를 배신하는 행위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이 영적으로 그러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구원하신 하나님과 백성의 계약을 맺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신, 이방 신을 향해 눈을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말씀하시려고 호세아에게 특이한 결혼을 명령하신 것입니다.
호세아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음란한 여인 고멜과 결혼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녀와의 사이에서 자녀를 낳게 됩니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호세아의 자녀들의 이름을 통해 당신의 뜻을 전하십니다.
호세아의 자녀들의 이름은 이스라엘에게 내리는 하나님의 징계의 단계적인 깊이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스르엘’은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한 말이요 ‘로루하마’는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거두실 것을 밝히신 것이요, ‘로암미’는 두 자녀의 이름보다 더 강한 징계를 표시하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호세아로 하여금 음란한 여인 고멜과 결혼하게 하시고 그가 낳은 자식들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증거하고자 하십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도 아니고, 긍휼히 여김 받지 못할 족속들이고 심판을 받아 마땅한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그들의 형편인데도 불구하고 정작 이스라엘은 자기 형편에 대해서는 무지한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만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누구도 하나님의 긍휼을 입을 자격이 없고,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인정될 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이스라엘과 다를 바 없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1.젖뗀 후에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음(8)
“ 고멜이 로루하마를 젖뗀 후에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매”
고멜이 로루하마를 낳고 젖을 뗀 후에 다시 잉태하여 아들을 낳았음에 대한 기술입니다.
그런데 이번의 잉태에 대해서는 고멜이 로루하마를 젖 뗀 후에란 시간적 의미를 밝혀 주었습니다.
고대 근동에서는 아기가 젖을 떼기까지는 대략 3년이 걸렸던 것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본문은 로루하마가 3세 정도 될 무렵 다시 임신을 하였고, 아기를 출산하였음을 밝힌 것입니다. 따라서 둘째 딸 로루하마와 셋째 아들 로암미의 나이 차이는 대략 4년가량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러한 시간적 배경을 밝혀 준 것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충분한 회개의 기간을 주었다는 사실을 암시합니다.
물론 첫째 이스르엘을 낳고도 어느 정도의 세월의 간격은 있었을 것입니다. 그때 그 이름을 통해서 하나님은 경고를 발하셨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은 전혀 변화의 조짐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다시 둘째 로루하마의 출생을 통해서 더이상은 긍휼히 여기지 않겠다는 경고를 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4년여가 흘렀음에도 이스라엘은 역시 꿈쩍도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셋째 아들을 통하여 최종 경고의 메시지를 발하신 것입니다.
한편 일반적으로 히브리 어머니들이 자식의 젖을 떼는 시기는 아이가 3살되는 때입니다(The Second Book of the Maccabess 7:27). 그러나 유대 학자들 중 라시(Rashi)는 22개월로, 그리고 킴치(Kimshi)는 24개월로 보기도 합니다(J.P. Lange,Commentary on the Holy Scripture).
또한 유대인들은 우리와는 달리 아이의 젖 떼는 시기를 관대하게 조정하였답니다. 덕분에 남자아이들의 경우에는 서너 살, 심지어는 일곱 살 까지도 젖을 빠는 게 보통이었습니다.
젖뗀다는 말은 젖을 떼므로 곧 다시 잉태한다는 개념과 함께 취합니다.
2.로암미라 하십니다.(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로암미라 하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지 아니할 것임이니라”
여호와께서 그 아들의 이름을 "로암미"라고 부르게 하셨습니다. '로암미'는 '내 백성이 아니다'는 뜻을 가진 이름입니다. 이 아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을 폐지했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이스라엘이 돌아올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끝내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하나님은 더 이상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으로 여기지 않으실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이러한 선언은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을 파기한 것과 같았습니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히브리 민족을 구원하시면서 시내산 계약에 따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지키면 이스라엘 백성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이 바로 그들의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출 6:7, 19:5, 6)
따라서 호세아는 이러한 시내산 계약 전승을 염두에 두고 있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북이스라엘은 개국 초부터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 숭배를 지속하였고 끊임없이 계속된 하나님의 회개 요청을 멸시하였고 도리어 더 큰 죄악을 향해 치달아 갈 뿐이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로암미’ ‘내 백성이 아니다’라는 선언을 하신 것입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알 종교를 섬김으로 그 계약이 깨어졌기에 더 이상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가족적 관계가 깨어진 것입니다.
이러한 관계 단절은 이스라엘에게는 심판이요 최후의 파멸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에 의하여 창조 되어지고 계약을 맺어 생겨난 백성인데 이제 그 관계가 깨어진 것은 더 이상 그들에게는 구원이 없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제는 하나님의 자비가 사라진 것만이 아니라 이제는 관계가 완전히 단절된 남편과 아내가 이혼한 것과 같은 상태입니다.
“로암미”에서 “로”는 “아니라”는 뜻입니다. “암미”는 “백성”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로암미”는 “나의 백성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제 북이스라엘 나라는 더 이상 하나님의 백성이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더 이상 하나님의 백성이 아닙니다.
신실치 못한 가정과 교회는 한 세대가 지나면 더 이상 하나님의 백성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죄악으로 인하여 이제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더 이상 받지 못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한번 정하신 그들의 자녀를 언제나 영원히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그 말이 그로부터 나는 후손까지 그렇게 하신다는 뜻은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죄악을 범할 때 우리의 후손에게서 불신자들이 나기 시작합니다. 이는 우리에게서 하나님의 자비가 떠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불신앙 가운데 완고하여질 때 우리를 통해 거듭남의 역사는 나타나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 어떤 사람이 자식을 낳고 자기 자식이 아니라고 이름을 짓겠습니까? 하지만, 호세아는 그렇게 이름을 지었습니다. 이름을 통해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한 것입니다.
이 백성은 더 이상 내 백성이 아니다. 그러므로 아무런 보호도 해주지 않겠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북 왕국 이스라엘 백성을 흩어버리시고 긍휼도 베풀지 아니하시며 자식으로도 삼지 않으시겠다는 것입니다.
북이스라엘은 너무나 많은 죄악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백성의 자리를 빼앗겼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번 정하신 그들의 자녀를 언제나 영원히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그 말이 그로부터 나는 후손까지 그렇게 하신다는 뜻은 아닙니다. 또한 공동체까지 영원히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는 참 신자들이 깨어 있지 못할 때 그 공동체는 어느새 불신자들로 가득한 “로암미”가 될 것입니다.
둘째 아들 로암미는 아마도 고멜이 다른 남성과 교제하여 얻은 자녀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자녀의 이름을 통하여 호세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도저히 '하나님의 백성'으로 불릴 수 없이 타락했음을 절감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불륜한 아내가 그러하듯 영적으로 남편 되신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게 될 운명에 처했음도 더불어 깨달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상실한 인생에게 더 이상의 희망은 없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수천 년 전 이스라엘과 다름없이 온갖 퇴폐 풍조가 범람하고 있으며, 그 풍요로부터 소외된 계층의 울분이 도처에서 들끓고 있습니다. 시대를 고발하기 위해 창녀와 결혼했던 호세아의 소명 의식이 오늘날 교회에 요구되고 있습니다. 말씀 앞에 바로 서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3.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지 아니할 것임이라 하십니다.(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로암미라 하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지 아니할 것임이니라”
내 백성이 아니다 라 한 것은 하나님의 입장에서 이스라엘을 전적으로 버리는 것이고 온전히 포기하는 것을 암시합니다. 민족적인 언약이 무효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버리셨습니다. 그러기에 저들은 절망적인 상태로 버려졌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아무리 그가 죄를 범해도 아무런 벌도 받지 아니한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 그저 만사형통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사실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아예 내던져 버렸습니다. 될대로 되라 하고 버렸습니다. 버림 받은 존재를 아무리 죄 지어도 거기에 대한 형벌을 할 것이 없습니다.
내어 버려 두셨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포기를 말합니다. 죄로 타락한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손을 쓰실 수 없으셨습니다. 그들에게서 이미 하나님의 형상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런 사람의 구제 불능의 상태에 대하여 일찍이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탄식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용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셨다고 하셨습니다(창6:5,6).
내어 버렸다는 말씀은 사람이 하나님을 떠난 상태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도록 하실만한 아무런 이유도 갖고 계시지 아니하십니다. 사람 스스로 자기 멋대로 하나님을 떠나버렸고 하나님을 저버린 것입니다. 한 번 하나님을 거역하여 타락한 사람은 하나님의 은총의 손길에서 영원히 빠져나가 버릴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크로 솨이데”(F,W. Grosheide)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죄악이 죄악을 낳았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내버리셨기 때문이다. 그것은, 신앙 없는 세계에 나타난 하나님의 공의의 결과이다. 그것이 이교(異敎)의 가져오는 표본이니, 곧 우상주의가 무서운 죄악들을 동반함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심판은 자연 심판으로 시작된다”라고 하였다.
종교를 바로 가지지 못한 것이 모든 죄악의 근원이 된다. 하나님에게 버림 받은 때부터 이렇게 인간은 죄를 범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리델보스(Ridderbos)는 말하기를, “죄악은 세력인데, 그 세력 앞에서 인간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서만 보호를 받는다”라고 하였다. 하나님에게 버림 받은 자들은 음행으로 떨어진다. [호크마 롬1:14]
사무엘상 15장20-26절을 보면 사울왕이 하나님의 버림을 받은 결정적 이유가 나와 있습니다. 그것은 곧 불순종이었습니다. 그는 제멋대로 처신하고 행동하고 거역하다가 버림 받았습니다.
열왕기하 18장11-12절을 보면 북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의 침략을 받아 멸망하고 붙잡혀간 이유가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말씀을 준행치 않고 약속을 배반하고 불순종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 중 최고의 심판은 유기, 즉 내어 버려 두는 것입니다. 잘못이나 죄를 범했을 때 즉각적으로 징계나 시련이 온다는 것은 아직도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고 계시다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잘못을 해도, 죄를 지어도, 뜨뜨 미지근한 신앙 생활을 하여도 아무런 징벌이 없다는 것은 스스로 깨닫기를 기다리시는 것이나 나를 내어버렸다는 것, 둘 중에 하나입니다. 그런데 만일 아무 소식이 없는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내어 버림을 받았기 때문이라면 정말로 두렵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이는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사람이라는 표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알되 의도적으로 우상을 숭배하며 하나님을 거부한 사람들을 하나님이 내어버려 두시자 불의한 사람들은 죄를 끊임없이 짓습니다.
우선 종교적으로 우상을 숭배하며 정욕의 더러움에 몸을 내 맡기게 되고, 여기에서 터득한 육체적인 정욕의 방종이 생활에 까지 일반화되다 못해 음욕으로 점철된 사람들은 동성끼리도 변태적인 부끄러운 욕정을 공공연히 저지르는 추태를 부립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죄악은 여기서 머물지 않고 상실된 양심으로 판단력이 없어져 각종 죄악을 다 짓습니다.
하나님의 분명한 손길을 보고도 그 손길을 대항하는 자들이나 하나님의 말씀임을 알고도 그 말씀을 대적하는 자들은 매우 완악한 자들이요 가망이 없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필경 하나님이 버려두신 자들입니다.
버림 받은 것은 가장 큰 저주의 결과 입니다. 무엇이든 버림받으면 쓰레기통으로 가야 합니다. 목적에서 벗어나면 버림받습니다. 사명 다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우리 모두 영광스러운 성도의 본문을 다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을 분노케 하여 하나님께로부터 버림을 받은 자는 그 누구든 안전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내편이 되시면 그 사람은 출신 신분이나, 배경이나, 지식의 상관없이 풍성한 복을 누리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구약성경 중에서 가장 복된 삶을 살아간 사람은 다윗을 들 수 있습니다. 그는 양치는 목동이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가장 존경받는 대왕이 되었습니다. 그 까닭은 하나님께서 다윗 편에 계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내편이 되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젖뗀 후에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음(8)
2.로암미라 하십니다.(9)
3.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지 아니할 것임이라 하십니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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