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감시원
정군수
일흔두 살에
9대 1의 관문을 뚫고 산불감시원이 되었다
부끄러울 것도 창피할 것도 없다
자동차 꽁무니 ‘산불조심’ 깃발이 자랑스럽다
며느리가 싸주는 보온도시락을 메고
멧돼지길 따라 매봉 감시초소에 올라
솔개의 눈으로 모악산을 올려다 보고
노루 눈으로 경각산을 내려다 본다
산바람 냉기에 허리 무릎이 시려도
아내의 따뜻했던 얼굴 생각하면
마루바닥 담요 한 장으로도 행복하다
봄아지랑이 가물가물 계곡에서 피어나면
저게 산불연기 바람 타고 오는 거 아니야
진달래 흐드러지게 산마루 붉으면
저게 능선 따라 산불 쳐들어오는 거 아니야
쿵광거리는 심장이 불처럼 달아올라
초점 낮은 망원경으로
눈떨어지게 바라보지 않았던가
오목눈이 둥지에 뻐꾸기가 알을 낳고
먼 산 능선마다 찔레꽃 하얗게 피면
일흔두 살 할어버지는 산을 내려가야 한다
‘봄날은 간다’ 아내의 애창곡 흥얼거리며
매봉감시초소를 내려오는 날
칡덩굴이 마음대로 몟돼지길 덮는다
+ 주제 접근 : 어떤 사람은 있는 행복을 가져오고
어떤 사람은 없는 행복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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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감시원 할아버지 [퇴고시]
정군수
일흔세 살에
9대 1의 관문을 뚫고 산불감시원이 되었다
부끄러울 것도 창피할 것도 없다
자동차 꽁무니 ‘산불조심’ 깃발이 자랑스럽다
며느리가 싸주는 보온도시락 메고
멧돼지길 따라 매봉 감시초소에 올라
솔개의 눈으로 모악산을 올려다 보고
노루 눈으로 경각산을 내려다 본다
산바람 냉기에 무릎이 시려도
아내의 따뜻했던 얼굴 생각하면
마루바닥 담요 한 장으로도 행복하다
봄아지랑이 가물가물 계곡에서 피어나면
저게 산불연기 바람 타고 오는 거 아니야
진달래 흐드러지게 산마루 붉으면
저게 능선 따라 산불 쳐들어오는 거 아니야
쿵광거리는 심장이 불처럼 달아올라
초점 낮은 망원경으로
눈떨어지게 바라보지 않았던가
오목눈이 둥지에 뻐꾸기가 알을 낳으면
일흔세 살 할어버지 산불감시는 끝난다
며느리 웃음과 월급봉투 얼른 바꾸고 싶다
‘봄날은 간다’ 아내의 애창곡 흥얼거리며
매봉감시초소를 내려오는 날
계곡마다 상여꽃 같은 찔레 하얗게 피었더
카페 게시글
교수님 글
산불감시원
정군수
추천 0
조회 151
23.02.18 09:44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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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슬픔은 시인의 자양분이 되듯~
긴장은 삶의 이유가 되기도 하고
하마트면 내려놓을뻔한 나를 다잡는 채찍이기도
하겠지요.
놓지않는 교수님의 열정이 아름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