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사진 편지 제 332 호 (06/5/22/월)
5. 갑사에서 연무까지
5월 6일 일요일 비
우리는 이번 걷기 여행에서 날씨의 혜택을
많이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걷기 시작한지 5일 째인 오늘,
드디어 걱정했던 비를 만나고 말았습니다.
'황금산장'에서 5월 6일, 빗소리에 놀라
오전 5시경에 일어났습니다.
창밖을 내다보니 낙숫물 줄기가 굵은 동아줄 만했고
떨어지는 빗물 소리도 요란한 것을 보니
보통 비가 아니었습니다.
TV 뉴스는 머리 기사로
호우 주의보 소식을 되풀이해서 전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일단 배낭을 비닐로 덮어 씌우고
우산도 챙겨 만반의 대비를 해 놓고서
누릉지와 사과, 오렌지 그리고 어제 갑사 입구에서
산 군밤으로 아침식사를 간단히 해결한 후에
빗줄기가 약해지기만 기다렸습니다.
휴대전화로 연속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비가 많이 내리니 오늘은 걷지 말고
갑사에서 하루 푹 쉬라고 한결 같이
모두들 권고해주셨습니다.
이번 비는 우리들의 건강을 염려하신
하느님의 특별한 선물이라고
좋은 의미로 해석 해주셨습니다.
아내도 이런 빗속에 걷는다는 것은 도저히
무리라고 걷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빗줄기가 약해지기를 기다렸지만
하늘은 제 희망을 들어줄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병원 예약과 다른 몇 가지 일 때문에
5월 9일까지는 꼭 서울에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속으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어떻게든지 연무까지 가고 싶은 조바심
때문에 몹시 초조해하고 있었습니다.
꼭 그렇다면 오늘은 부득이 변칙을 할 수 밖에 없다고
아내가 말했습니다.
연무까지 버스를 이용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이 빗속에 걷는 것은 무척 위험하고
자동차가 튕긴 물을 온몸에 뒤집어 써야 하는데
이것은 너무나 위태롭고 무모한 모험이라고 말렸습니다.
버스를 이용하는 것은 아내나 저나 전연
내키지 않았고 마음이 찝찝했지만 이 빗속에
연무까지 가기위해서는 할 수 없이 아내의 판단에
따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우울한 기분으로 하늘만 쳐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 벨이 울렸습니다.
옛 편수동지이고 절친한 윤 종영 형이었습니다.
오늘 저희를 응원하기위해서
내려오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호우주의보속에 왜 내려오느냐고
제발 내려오지 말도록 적극 만류하면서
매일 전화로 격려해준 것만도
너무나 고맙다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이미 집에서 나와
지금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 중이라면서
절대로 빗속에 걷지 말고 갑사에서
쉬면서 조금만 기다리고 있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정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버스로
논산역으로 나갈것이니 갑사로 오지 말고
논산역 대합실에서 만나자고했습니다.
우리는 갑사에서 버스를 타고
논산역으로 이동했습니다.
논산역과 갑사간은 시내버스 구간으로
운임이 950원이면 되는데
논산시와 공주시 두개의 시를 넘나들기 때문에
부득이 2400원을 받는 것이라면서
갑사에서 조금만 걸어 논산시 땅에서 타면
950원에 갈 수 있다고 버스 운전수가 설명해주었습니다.
버스를 탔더니 정말 오랜만에 자동차를 타보는
색다르고 낯선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자동차의 고마움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논산역에 도착해서 대합실에서 비를 피하며 조금
기다리고 있었더니 이윽고 윤 종영 형이
우산을 받고 성큼성큼 대합실로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저는 윤 형 내외분을 보자 너무나 반갑고 고마와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이 빗속에 부인 홍 종남여사와 같이
우리를 위해 먼길을 달려오신 것을 보고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한편 무척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윤 형은 옛날 편수국에서 20여년간 저와
동고동락한 역사 담당 편수관이셨으며
그뒤 지금까지 계속 돈독한 우의와 끈끈한 정을
이어오면서 매월 한 번씩은 꼭 만나
옛 편수동지 몇 친구들과 더불어 부부동반으로
등산도 같이 하고 있습니다.
그는 또 20여년 넘게 매주 일요일마다
수락산 등산을 계속해서 현재 991회 등산 기록을
가진 등산가이기도 합니다.
또 편수관으로서 사명감과 책임의식이 투철하고
전공 학문에 대한 열정과 연구도 깊어
조선시대의 실학자 박세당 선생의 연구가 깊고
'국사 교과서 파동' '역사의 아웃사이더'등 꾸준히
명저를 펴내시고 문명학회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칠순의 고령에도 대학강단에서 명강의를 계속하고 있는
편수국의 신사로 통하고 있는 분이십니다.
곧 수락산 1000회 등산을 달성하는 날
그와 가까운 우리들은
수락산 정상에서 '윤 편수관 수락산 등산
1000회 기념 축하회'를 성대하게
마련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윤 형은 평소 저를 무척 사랑해주시고 여러가지로
보살펴주시는 친 형같은 분으로서
셋째 딸 혜섭양의 결혼 주례도 저에게 맡겨주셨습니다.
우리는 서로 포옹하며 감격스런 해후를 했습니다.
우리는 윤형의 승용차로 논산역에서
바로 가까운 연무읍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금방 연무에 도착해서 우린 '해운대 갈비'라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술을 좋아하는 우리는 마음놓고 술을 마실 수 없는 것이
몹시 아쉬었지만 갈비와 백세주 한잔으로
축배를 들며 마음을 달랬습니다.
고기로 영양보충을 시켜준 윤형은 오늘은
저녁식사도 사주고 우리와 함께 1박한 후에
내일 귀가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무슨 소리냐며 점심을 이렇게 잘 먹여주었으니
이제 그만 상경하라고 극구 사양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손을 저으며 그럼 저녁식사까지만 같이하고
저녁에 올라가겠다고 완강하게 고집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정말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으로 그의 강한
배려에 결국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점심식사후에 숙박할 여관을 수소문해서 바로 가까운 곳에 위치한 '동원장'에 배낭을 풀어 놓았습니다.
우리는 다시 승용차를 타고 바로 이웃인
강경 구경에 나섰습니다.
빗속의 금강변을 산책한 후에 젓갈 전시관을 관람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젓갈 백화점에서
젓갈 구경도 하면서 입맛에 맞는 젓갈을 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예전부터 유명한 강경의 별미인
'메기 매운탕' 명가를 찾아가서
푸짐하고 맛이 일품인 메기탕으로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하루종일 우리를 위로해주고 힘을 북돋아주며
강경 구경까지 시켜준 윤 형 내외분의
그 고마운 배려와 따뜻한 정은
언제까지나 잊지 못할 것입니다.
윤형 내외분은 우리를 다시 연무의 숙소에 내려주고
오후 7시가 다 되어 돌아갔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자주 만나서 오랜시간 술을 마시거나
같이 지낸 때가 많았지만 오늘 윤형 내외분과
함께 보낸 하루는 왜 그런지 다른 때와 달리
며칠이나 같이 보낸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여관에 돌아와 아내와 같이 윤형 내외분의 안전한
귀가를 기원하며 그에 대한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더욱 깊게 가지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비를 핑게로 걷지도 못하고 윤형의 도움으로
갑사에서 연무까지 아무런 노력도 없이
편하게 진출한 날이었지만
제가 가장 중시하는 아름다운 사람의 아름다운 마음과
진한 사람 냄새를 흠뻑 맡으면서
참으로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
뜻 깊은 하루가 되었습니다.
내일은 충남 땅을 벗어나 낮익은 전북의
익산시 여산과 금마를 경유해서
왕궁 온천까지 걸어갈 계획을 세우고
지도를 살펴보다가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윤 종영 형, 그리고 홍 종남 여사님,
오늘 정말로 감사했습니다.
두 분의 따뜻한 우정과 사랑을 잊지 않고
마음 속 깊이 새겨서 오래 오래 잘 간직하겠습니다.
함 수곤 드림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 이슬처럼
내 마음에 설움이 알알이 맺힐때
아침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르고
한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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