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에 평화님이 여러개 올리신 한국화와 관련해서 예전에 개봉했던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을
인상깊게 본적이 있습니다. 이번에 임권택 감독이 새로이 조선왕조실록을 한지에 담아내는 소재가
있는 <달빛 길어올리기>의 개봉을 앞두고 있는데 이는 임권택 감독이 단순히 한국적인 소재를
만드는 감독이 아니라 그 소재 이상으로 우리 것을 영상예술로 보여주는 그의 영상미학은 많은
감동과 여운을 주고 있습니다. 예전 <서편제>의 흥행 돌풍으로만 끝나지 않고 꾸준히 보여주는
우리 것을 통한 그의 예술작품 활동이 앞으로도 계속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영화 개봉이 101번째이기에 이미 그는 엄청난 양으로도 대단한 업적을 이루었지만 말년으로
갈수록 작품세계가 진가를 더욱 발휘하는 세계 영화계의 진정한 거장이자 한국의 자랑입니다.
아래 글은 2002년 취화선을 보고 쓴 소감입니다.
취화선, 칸느 그리고 영화문법
" 환쟁이에게 반복은 죽음일 뿐이외다! "
- 극중 장승업의 대사중
<취화선>이 칸느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 그동안 우리가 칸느영화제에서 상복이 없었던 것을 생각하면 늦은 감은 없지 않으나 결국 칸느가 가장 한국적인 영화를 만드는 거장 임권택 감독의 역량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자랑스럽고 기쁜 일이다.
<취화선>이 칸느의 장편 경쟁부문에 올랐을 때만해도 난 이 영화가 황금종려상을 받아도 전혀 손색이 없는 걸작이라고 생각했지만 칸느가 과연 이 영화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던 점이 사실이며, 그렇기에 심사위원 대상이나 감독상이라도 받는다면 크게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취화선>은 조선말엽에 활약했던 화가인 오원 장승업의 작품세계와 삶을 영화라는 창에서 다루었다는 점에서 줄리안 슈나벨 감독의 <바스키아>라든가 에드 해리스의 <폴락>이라는 예술가 계보의 영화와 궤를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흔히 예술가를 다룬 영화에서 나타는 예술가의 작품을 위한 정체성의 고민, 예술가 주변부의 사람들, 시대와의 타협과 불화, 매너리즘에서 벗어나려는 끊없는 시도 등의 부분들이 드러남으로써 '예술을 한다는 것'의 보편적인 문제들을 다룬다.
<취화선>은 오원이라는 화가를 통해서 보는 우리의 예술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이 영화는 세 주인공이 있는데 장승업이 있고 그림이라는 예술이 있고 마지막으로 임권택이라는 감독이 있다. 그리고 배경으로 조선말엽의 혼란된 시대가 있고 영화의 기반을 만든 도올 김용옥의 시나리오(감독과 공동작업)가 있다.
이런 모든 부분들이 이루어져 <취화선>은 하나의 느낌을 보여주는데 그것은 마치 선승이 불현듯 깨달을 때의 경험과 같은 감흥을 안겨준다.
영화는 연기, 음악, 연출, 촬영 등 여러 면에서 대부분 나무랄 데가 없다. 오히려 많은 장면에서 관객들은 여러 각도에서 보여주는 영상의 아름다움에 극도의 아찔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과연 저런 장면을 어떻게 담았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영화는 영상미학의 한 정점을 보여준다.
정일성 촬영감독의 카메라는 마치 오원의 그림과 겨루기라도 하듯 영상의 탁월함을 추구함으로써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 냈다. 이는 임권택 감독이 장승업이라는 인물을 다루면서도 같은 한국인으로써 미술과 영화라는 다른 장르에서 보여지는 묘한 긴장감과 동질감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취화선>은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가장 인간적인 장승업을 통해서 가장 한국적인 영상을 만들어 내는데 성공한 작품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매우 지적인 예술가 영화이기도 하다. 이 영화가 일반관객이 보기에 아름다운 영화이긴 하지만 섣부른 해석을 내리는 것을 주저하게 만든다.
이는 상당부분 도올의 시나리오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영화의 곳곳에서 나오는 대사와 그 함축은 불현듯 느끼거나 깨닫지 않고는 이해하기 힘든 구절들로 가득차 있다. 심지어는 오원이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듯한 욕지거리조차도 강렬한 느낌을 던져주는 것들이다. <취화선>은 말하자면 일반관객들이 잘 소화할수 있도록 비벼진 비빔밥은 아니다. 오히려 이 영화는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간단하면서도 함축적인 대사와 에피소드식의 구성을 통해서 이 영화를 익숙해진 이전의, 내러티브 중심의 관점을 벗어나서 영화 자체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잘 눈여겨 보지 않으면 엉성해 보이기조차 하다.
<취화선>은 영화라는 것이 서구에서 시작되었지만 문법은 새로와질수도 있다는 것을 모험적이면서도 실험적으로 제시한 작품이다. 그러나 그 시점은 과거 한국 전통미술이라는 창을 통해 나타나지만 역설적인 것은 그것이 과거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그 시대의 인물들이 도무지 과거인물로 보이지 않는다. 마치 현대인들이 과거의 옷을 입고 예술에 있어서 가장 보편적인 문제들을 논하는 것 같다. 이 영화의 시도는 잘 읽어야 알 수 있는 한국화의 단절된 시각에서부터 영화를 통해서 접근하게 되는 연속성의 문제 제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임권택 감독이 누군가. <취화선>은 임 감독의 무려 98번째에 해당하는 영화이다. 익숙해질대로 익숙해진 그의 제작관습으로 본다면 그는 새로움과 실험성이라는 위험을 감수할리 만무하지만 그는 가장 말년에 기록될 작품속에서 가장 새롭고도 실험성으로 가득찬, 그러면서도 가장 성공적인 작품을 만들어 낸 것이다. 전통과 현대, 미술과 영화, 서구영화문법과 우리식의 영화문법, 내러티브와 에피소드 등 여러가지 문제를 수면밑으로 흐르게 하면서 영화는 작품과 삶이라는 가장 절실한 문제를 건드리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에서의 누벨바그(영화물결)은 트뤼포나 고다르와 같은 젊은이들로부터 시작되었지만 공교롭게도 한국에서는 가장 말년에 은퇴할 시점이 된 임권택으로부터 나오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인문학적 토대가 취약한 환경에서 이런 지적이고 혁신적인 영화를 제대로 평가할 평론가들도 극히 드물 것이고 이것을 잇는 계열의 영화는 더더욱 쉽지 않은 상황에서 <취화선>은 한송이 소나무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영화를 조직적이고 문화적으로 수용할 토대가 우리에게는 아직까지는 취약하다. <취화선>은 우리의 전체적인 문화토대가 만들어 낸 성과라기보다는 몇몇 소수 장인들이 의기투합해서 이루어낸 노력의 소산에 더 가깝다.
그러나 모범이 생겼으므로 많은 이들은 그 모범을 배우려 할 것이고 그것을 넘어서려 할 것이다. 그것은 바로 이 땅에서 우리가 우리의 영화를 우리 식으로 만든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에 대한 화두이기도 하지만 결국 영화와 삶은 어떻게 관계를 이루어 가는가에 대한 의문과 해답이기도 할 것이기 때문이다.
- 2002.5.27 율리시즈
첫댓글 저 역시 한지에 먹물이 흠뻑 배는 느낌으로 몰입되어 이 작품에 빠져들었습니다! 이 영화로 칸국제영화제 감독상을 받은 임권택이란 거장의 존재감은 또한명의 거장인 정일성 촬영감독과 함께 빛나는 예술혼의 한계를 알수없게 만들었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말그대로 그림에 취한 신선, 오원 장승업은 영화에서 도자가마로 들어가 화룡정점의 삶을 스스로 마감하는데 이것은 감독이 지향하는 바 삶자체가 송두리째 예술이었던 오원에게 바치는 일종의 오마주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 역시도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를 반증하는게 아닐까요! 취명거사(醉暝居士)였던 오원이시어,흠향(歆饗)하소서!
오원이 도자가마로 들어가는 마지막 장면은 정말 인상적이었죠. 그 장면 하나로도 많은 것을 느끼게 되는데 평화님이 잘 해석해주셨네요~
*^^* 2002년 5월 27일. 난 뭐하고 있었을까?
모르긴해도 옆에 와인이 있었겠죠~ 까베르네소비뇽~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