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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소
이 문 구
더 영글 눈발이 소나기 지면서 잠 씻은 밤이 이우는 섣달이라 기댈 건 화로하고 다시없으련만, 또 무슨 추위던가 횃대 밑에선 벌써 닝닝한 화로 냄새가 돈다. 고주배기* 등걸불이* 청솔가지* 쪄다 땐 재보다 쉬 자는 건 알지만 여태껏 부손이 닳창나게* 쑤석거려댄 탓일 터였다. 공식(孔植)이 녀석은 그토록 숟갈 놓고부터 고구마를 구워 먹고도 여직 양에 덜 갔는지 남은 불씨마저 화로 귓전에다 몬다.
“저녀리 자슥은…… 구구매(고구마)두 처먹어 쌓더라, 자그매 구워, 화루 식는개비다. 화루 쥑이먼 콩너물시루 은단 말여.”
“쟘이 안 오니께 입만 굴품허잖유.*”
“업세, 니까징 것이사 뭣 때미 잽이 안 오네? 주먹만 헌 게 싹바가지 웂는 쇠리만 더럭더럭 헌단 말여.”
“아버지넌 그럼 워째서 잠이 안 오유.”
하며 공식이가 벌렁 자빠져 이불에 몸을 묻자 황구만(黃九滿) 씨는 먹다 윗목에 밀어둔 동치미 국물 한 모금에 목을 축이는데, 고랏댁도 말씹단추 호던* 바늘을 낭자*에 찌르고 일어서며 한마디 보탠다.
“좨 공슥이가 똑 슨출이 말허득기 허너먼그려, 쯧쯧쩟.”
그녀는 요강을 타고 앉았다. 공식이 눈치 본다고 지릴 뻔해가며 참아와 급했던 것이다.
“슨출이구 앉은출이구 간에 다 눴거들랑 나가 핑치미나 두어 쪽 쩌개 오너, 멀국*두 좀 마시구 허게…….”
“그러구 보니께 당신두 입은 서운했겄네?” 그녀는 죽 먹은 배임을 상기한 것이다.
“모처럼 새알심이 느가메 쑤웠거들랑 점 냉겨둘 것이지 솥굵겡이까장 싹 웂애버린댜.” 모처럼 쑨 팥죽인데 맛이 괜찮았던 것이다.
“허이구, 그 슨출이 뱃구레가 오죽이나 큽댜? 다섯 투가리(뚝배기)나 처먹 구두 나삐허더먼……”
“그녀리 자슥 때미 골치만 패쌓구, 므흠……” 황구만 씨의 신음 섞인 한숨에 등잔꽃이 바람을 탄다.
황구만 씨는 머리가 절로 내둘러진다. 선출이라면 선 자만 들어도 신물이 나 넌더리가 들어서였고, 또 그 삼 년 동안은 비길 데 없게 불운이 겹친 해였다고 겨울 들며 더욱 기승으로 잦게 회고되곤 하는 것이었다. 황씨로선 그것들이 모두 불가항력에서 나타난 결과들이었지만 그러나 자기의 무능과 무력 했음에도 깎는 듯한 자책과 자멸을 하고 있었다. 그런다고 해서 결론에 이른 사태가 다시 실마리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까지도 물론하고 잘 알곤 있었지만.
황씨 나이는 쉰둘이었다. 주어진 인생을 분수껏 실팍하게 살아온 셈이라게 성실해 보인 농부였고, 믿어볼 만한 가장 같았으며 보고 들은 것만큼이나 아는 것도 모자랐지만 쉼 없는 노력과 근면, 그리고 오늘보다 내일을 더 낫게 살아보자는 모색 등에서, 배운 공부 대용처럼 자기 인생에 발맞추기 위해 타고난 듯한 성실한 인상을 안팎 동네사람들에게 보이며 옮기기도 했다. 그 때문인진 모르지만 종교나 자세한 의속, 범례 따위는 아예 찾질 않았고, 또 자식들에게도 이것이야말로 세상에서 말하는 가정교육이다 싶은 것이면 그대로 실천하도 록 했으며, 스스로 자기에게도 닦달해온 셈이었다. 아내 고랏댁은 고랏뜸 풍헌*을 지낸 서주부 민며느리 몸에서 나온 만물 손녀딸로 귀포서씨(歸浦徐氏)인바, 이쪽 청해 황씨 문중처럼 그랬다 하게는 못 떨었대도 행세란 걸 찾아 해본 조상도 더러 제사 모신 듯한, 과히 부끄럽잖은 귀염둥이였다지만 역시 무식은 죄로 갔을 만큼 천덕스런 데가 없잖아 시방까지 남아 있는 눈치였다. 다시 가문 얘기지만 황씨에겐 촌수 놓고 사는 푸네기*도 드물진 않았으나 당내*는 보매보다* 쓸쓸한 편이었고, 들어서면 과년에 이른 양념딸 양순(良順)이하고 중학에 다니는 막내 공식이에 내외를 합친대도 네 식구뿐인 단출한 가족이었다. 그는 남다르지 않게 처자를 사랑해 아꼈고 이웃과도 즐거웠으며 술에 정겨워하면서 고랏댁의 허리를 환갑이 바라뵈게 굽혀놨을 만큼 오입 아닌 색도 밝힌, 구색이 넉넉한 농부였다. 비록 선대에서 대물림 해 지킨 재산이긴 해도 산 정보*나 하고 무논* 서른 배미*에 천둥지기* 잿밭과 터앝*이 그루갈이*에 아쉽잖은 천여 평을 헤아려 자전거 한 대쯤은 사둘 만한 농가를 이룩하고 있었다. 그 땅들은 그가 물려받고 한 뼘을 늘리진 못했지만 흙 한 줌 축간 일은 더욱 없었다. 그가 누려온 반백 년 동안에 맏과 둘째를 호열자*에 잃어 묻은 것 외로 가슴이 녹슨다 하게 박힌 못이라곤 없었대도 주착이랄 수 없이 평범과 평탄, 요새 말하는 말로 안일한 일생을 살아온 터수였다. 요전번 “나는 법을 모르고 살아온 사람여, 내야말루 벱 없이 살어온 사램 이란 말여.” 윤고시랑네 시제(時祭) 때에도 술 취한 김이라고 선출이를 나무라면서 그렇게 바락바락 악다귀를 떨은 때 안팎 사람들이 입술 한 번 삐죽거렸다거나 손가락질 하나 하지 않던 것을 보아, 앞으론 더욱 자신을 가지리라 한 것도 평소 지녀온 자기 평가의 확인이었다. 헌데 그 윤고시랑네 시제 때만 해도 선출이만은 말끝마다 가시를 꽂고 있었다. 선출이는 그때도 그 말을 했었다.
“여어보슈.” 녀석은 상것답게 ‘여어보슈’ 란 말로 시작했던 것이다. 그 여럿인 노인들과 숱한 애들 앞에서 그런 모욕적인 말로만 일관했었다. ‘여어보슈’가 녀석의 첫마디였을 때 나올 말은 다 나왔고 ‘저놈의 색긔!’로 응수함으로써 말은 다 간 말이니라 여기고 든 거였지만. 그때 선출이는 “거것두 자랑이던가뵈 헤옛 내참, 여어보슈, 여북* 오죽잖었으면 벱이 웂이두 살었겄슈? 짐승덜두 벱 이 보호를 해줘야 살어나가넌디…… 댕신이 무엇 같게 살어 왔으면 법두 소용없었겄너냐 말여 내 말은……” 녀석도 취기가 보통은 지난 듯했다.
“뭣잇, 즘생이 워쪄?”
“흥.” 선출이는 포악을 한술 더 떠 계속했던 것이다. “내 말 점 들어뵤잉? 나두 동네 사람덜이 보구들 아시다시편 몸으루, 아녈 말루 증말 무식허유, 헌디, 대관절 이 땅에 뷴괴(변괴)가 및 번이나 났던 중 알유? 알어? 증말 참 똑똑헌 사람은 다 죽구 웂이 되얏단 말유. 지기랄, 오죽이 오죽했으먼 벱 웂이두 살은 게 자랑여?”
“그런디 저녀리 색긔가 시방 누구를 워치기 보구시럼 저 지랄이랴?”
“시방 나의(나이) 오륙십 먹은 사람치구서 아무 탈고 웂이 뇡촌에서 지 끼니에 지 밥 먹구 자석새끼 질러가메 살어가넌 사람치구 똑똑헌 사람이 멫 사람이나 되겄느냔 그 말유, 내가 군대 가서 보먼 각처에서 뫼여든 애덜두 죄 그런 소리를 허던딧, 증말 참 이것두 저것두 앙껏두 아닌 것덜만 지 집 지키구 살어났겄지……”
“당최 저놈이 워떤 맴 먹구 살어왔글래…….”
“생각해뵤. 패리로(8·15) 해방 전까장 왜정 사십 년허구 육니오사비언 통구리허구……”
“기가리가 맥혀서……”
“도회지는 달러유, 허지만 이런 무고한 촌일수록이 워디 한 군디 다치잖은 사람 웂구, 비영신(병신) 안 된 사람 드문 벱인디 여북했으면 온전했겄냔 말여, 박쥐마냥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했던가 헹편웂는 무지랭이였거나 했을 테지만.”
술 먹은 개랬다고 황씨로선 탓하기커녕 듣고 만 숭했지만 그러나 두고두고 생각수록 부아가 응어리지는 말이었다. 짐승도 법이 있어 산다는 건 옳은 말이었지만 그것도 아는 게 아는 거라고 천방지축 지껄이도록 듣고 만 건 후회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 뒤 황씨는 여러 가지로 거듭 생각해봤었다. 역시 자기로선 옳게 살아온 것이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엔 여러 가지 습속과 방법이 있을 것이었고 길도 여러 갈래로 트여 있었겠지만, 제가 제 분수를 앝고 제 근력껏 살길을 찾아 무덤덤하게나마 살아왔다면 그 또한 현명한 짓이었다는 결론에 이르렀던 것이다. 해서, 자기 눈으로나 자기와 비슷한 환경과 관례를 쫓아 이 나이 차지한 사람이라면 선출이를 건방직고 되바라진 야심쟁이로 볼 게 틀릴 것 없으리라고 단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슨출인가 그 작것은 워디 가서 뇌작거리고 앉았으까나, 들와 자빠져 자지 않구.” 고랏댁이 아직 설은 내가 나는 동치미를 한 보시기 쪼개가지고 들어오며 두런거린다. 이 시렁굴에선 뉘 집이건 삼동*을 양식 아껴가며 나는 농가로, 기나긴 밤에 궁금한 입 달래자고 먹을 거라면 삼삼한 동치미밖엔 없을 거였다. 황씨는 보시기 전두리*에 걸쳐 너덜거리며 늘어진 청각부터 한 지범 입 안에 걷어넣고 나서, 아내가 또 물을 하고 들왔나 싶어 퉁명스럽게,
“이 밤중에 뭣 허구설람 인저 들온댜?”
“챕쌀 스 되허구 멥쌀 닷 되 가웃 일어 당그구 왔지, 고사두 지내야겄구. 애덜두 하 껄떡 그려쌓구 허니께……”
“고사?” 황씨는 무슨 고사냐고 하려다 고랏댁이 고시랑거릴 게 성가시어 웃통을 벗어 던져주며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고랏댁은 눈치없이 ,
“공슥이두 아직 쟘이 짚이 들던 않었을 텐디 그새 워치기 불을 끈댜.” 음성을 낮춰 핀잔하는 아내의 질척해진 밥풀눈*이 곁눈으로 보이자 황씨는 버럭,
“불은 왜 꺼? 이나 잡어놓라니께, 얼어 죽게 뜰팡에다 내놓던지, 서캐가 실었나 군시러워* 죽겄어.” 지청구*를 해대고 눈을 감았다.
차주백이네 주막을 나와 밟히는 눈길에서 박선출(朴先出) 은, 취중에도 구름 위를 걷는다면 이렇잖을까 싶게 푸근한 느낌의 기분에 흐믓해지고 있었다. 그는 황구만 씨에 대한 욕이 안주로 먹은 두부처럼 엉겨 내려가지 않고 있었지만 눈보라 속에서 눈을 밟는, 어딘가 좀 엄숙하기조차 한 분위기를 느껴선지 진득이 참을 수가 있었다. 그것이 어쩌면 ‘애인’을 만나러 나선 길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날마다 보는 신실(信實) 이건만 볼 때마다 새삼스럽게 조심되는 건 또 무슨 조홧속인지 알 만하면서도 알고 싶진 않은 일이었다. 멀다 해도 내년 이월이면 한 몸이 될 수 있는 그녀이면서 노상 그래지던 것을 어쩌랴 한다. 처음 봤을 땐 밉던 것도 자주 보면 볼수록 무던해 뵈는 법이고, 애초부터 한눈에 혹해가지고 반해버린 건, 그랬다가도 차츰 물려 성가시러워지고 시부정해지는 터수련만, 신실이 한테만은 달리 그녀를 처음 눈에 들여놓던 사 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에겐 조금도 묵어 보이거나 문내*가 나지 않았고, 아니 보면 볼수록 귀여워 안타까우며 온몸이 그닐거려* 견디자니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없을 땐 부리나케 그립고 만나보면 머리 냄새나 땀 냄새라도 맡아보고 싶어 배길 수가 없어질 뿐 아니라 팔목의 뵐 듯 말 듯 한 솜털까지도 소중스럽고 기특해지는 거였다. 그련 그녀와 한 지붕 아래서 한솥밥을 못 먹게 만든 장본인이 황씨라는 걸 생각하면 그동안 환장하지 않았던 게 이상할 지경이었다. 모든 문제는 황씨에게 있다고 선출은 규정짓고 있었다. 황씨는 황씨대로 선출이 무식하고 못 배운 소치로 이해를 못한다고 역습하려 들지만, 이런 경우엔 대학 할애비를 다닌 한림학사라도 어쩔 수 없을 것이라고 선출이는 장담한다. 거듭 밝히지만 선출인 신실이를 사랑하고 있다. 또 그녀도 그를 그만큼 사랑했다. 그런데 그들이 결합할 수 있을 만한 여건은 전혀 구비돼 있지 않은 것이었다. 여기서도 사회에의 첫걸음을 잘못 디뎠음은 선출이 그 자신도 후회하듯 충분히 시인한다. 어차피 이 지경 에 이르렀기로 과거지사를 탄하는* 건 아니지만 중학교 모자도 써보고 까막눈도 면하고, 게다가 철공소 견습공과 트럭 조수로 두 군데나 자리가 말이 됐던 걸 마다하고까지 황씨네 머슴으로 들어갔던 건, 역시 발등을 찍고도 남을 일이던 거다. 그러나 그 무렵만 해도 별수 없었다. 그즈음엔 눈에 보인다는 게 먹을 것, 먹는 것뿐이었으니까. 남의집살이를 하면 배는 곯지 않는다고들 했고, 또 실지 그 욕심뿐이기도 했었다. 그 무렵부턴 이 시렁굴 안팎에도 ‘머슴이 상전’이란 말이 예사로 돌았으므로 솔직히 말해 밥에 환장해서, 주려 곯린 배를 벌충시키려는 데에만 눈이 가려 그렇게 황씨네 머슴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오늘도 차주백이네 주막에서 함께 술을 마셨으니 말이지만 그때, 성모나 수송이 같은 친구들은 펄쩍 뛰었고, 머슴살이보다 철공소나 자동차 조수가 낫기로 말함을 천양지차*라고 겨뤄 적극 말렸지만 그의 아버지 박무생 씨는 모른 체 눈감아 두고 있었다. 성장하는 한창 나이에 계모와 이복동기들 등쌀이며 없는 집구석 에서 헐벗음과 굶주림을 면하길 바랄 어리석은 자식 이기보다 머슴살이일망정 독립해 나가길 원하고 있은 모양이었다. 일이 손에 익은 생일꾼은 아니었지만 아직 무른 뼈에 눈썰미로 배우면 곧 쓸 만한 일꾼이 될 거라는, 꽤나 여유 있는 안목으로 황씨는 받아들였던가 보았다. 선출이의 머슴살이는 그래서 그렇게 시작된 것이었고 그로부터 사 년, 나이가 됐다고 군대에서 데려가기까지 지게와 쟁기질을 계속했던 것이다. 그는 드물게도 술과 담배에 어두웠고 여자란 건 더욱 몰라서 모르고 있은 데 다, 군입정*과 주전부리*를 삼간 덕분에 입대할 때까지 팔만 원이나 되는 현찰을 모으고 있은 거였다. 새청*을 받으면 곧장 찧어 돈 샀고 그 돈을 놓아 불리기도 하며 쌀짝째 장리쌀*로 내주기도 하여 그만한 돈다발을 만질 수 있었던 것이다. 입대하면서 그는 그 돈을 주체하지 못해 주인인 황씨한테 줬었다. 집으로 가져가자니 소리도 없이 녹겠고 종전대로 하자면 관리 소홀로 떼먹힐 우려였다. 누군가는 은행의 정기예금을 권하기도 했다. 그러나 거기는 이자가 이자스럽지 않을 뿐 아니라 은행에 예금한다는 건 어떤 책에서 읽었거나 선생님한테만 들었지 실제로 예금했다던 사람을 본 일이라곤 없으므로 전혀 실감이 나지 않을 일이던 거였다. 그런 판에 황씨가 뛰어들었던 거다. 농한기를 이용해 손톱만 길어가는 일손들을 모아다가 이듬해의 농자금을 만들어 쓸 긍리에 머리가 빠지던 황씨였으니 정처 없어 오도가도 못하는 딱한 돈 팔만 원을 보고 점잔 떨 계제가 아니었음은 이해하고도 남는 일이었다.
제대할 때까지 맡긴다는 전제와 삼 부 이자여서 조건도 괜찮은 셈이었다. 물색없는* 황씨 입에다 장기 고리(長期高利) 라는 비난과 핑계와 구실을 심어준 셈이긴 했지만.
군대에 가 있던 동안엔 휴가만 냈다면 황씨네 집이었고 묵으면 용돈하고 또 노자푼이라도 뜯으니 옹색스럽지 않아 좋았다. 그런데 그것이 차츰 안 될 놈은 잦혀져도 코가 깨진다는 속담대로 돼가던 거였다. 황씨가 실패를 해간다는 소문이 들리기 시작하던 것이다. “비응신이 육갑헌다더니 그 주제에 사업은 무슨 육시럴 놈의 사업여.” 당시에도 선출은 황씨가 꼴 보이는 짓을 하는 것 같아 병영 안에서도 안달을 하며 비난했지만, 여하간 황씨가 잘되기를 바라고 있었음만은 분명 했었다.
신실이네는 시렁굴 매갈잇간* 터로 남은 찔레 덤불 사잇길로 동네를 나가다 최방정이네만 묘를 쓰던, 밭사둔* 이마빡만 한 고막재를 넘어 군둘목 고랑에 자리하고 있었다. 명색이 꽃패집 이라고는 하나 용마루 허리가 휘어지고도 삼 년을 나서 썩은새*가 퇴비로 된 야트막한 옴팡간뚜이었다. 밤눈에 뵈는, 겨릅대* 울타리 뜯어다 밥해 먹은 지 오래인 그 집은, 흡사하기 똑 서리 앉은 푸장나무와 억새 푸데기 속에 따로 내어 지은 사는 집 돼지우리거나, 구새 먹은* 고목나무 삭정이 위에 앉힌 까치 둥우리에 진배없었다.
선출이는 어느새 허이연 눈 그림자뿐인 군둘목 고랑에 다다라 있었다. 눈발은 많이 숙어져 있었고 그 집 엔 불이 없는 것 같았다. 하긴 이런 오밤중이고 보니 잠이 들었다면 업어가도 모르게 죽어 잘 시간이기도 했다. 그래도 선출은 뒤꼍으로 돌며 발돋음을 해갔다. 신실이 잠들었으면 그 참 신발을 벗어 들고 들어갈 작정하고 하는 짓이었다.
그녀는 으레껏 윗방을 독차지하고 혼자 자온 까닭에 선출은 이따금 그녀 어머니인 즘촌댁 신경을 비켜 이슬 맞힌 옷이 마른 뒤에 나오곤 했던 것이다.
그들이 서로 다른 몸을 자기 몸의 일부로 알아 나눠 갖기 시작된 건 제대하고 곧바로였으니 지난 유월이겠는데, 아니 유월 스무사흩 날부터라고 해야 정확한 기억이 된다. 그날 밤도 꼭 이 시간이었을 기였고 오늘처럼 뒤꼍으로 돌아 살창 틈으로 엿보았었으며, 그때에야말로 그녀는 내복 빨아 널은 통치마가 걷혀진 줄 알 턱 없게 곤해하 있었으며, 흩치마가 죄라지만 어쨌든 선출이로선 맨 마지막에나 볼 수 있을 곳부터 제일 먼저 봐버렸고, 또 몽땅 홈쳐도 되게 돼있는 것이었다. 그야 그날 밤에도 신실이 혼자서만 자고 있었다는 건 아니다. 그녀 의붓동생인 춘자가 숙제하다 말고 등잔을 써놓은 채 엎드려 코를 골고 있었음은 숨길 필요도 없는 것. 등잔을 불어 끄고 얼마 안 있어 신실이는 자기를 훔치는 자가 선출이란 걸 냄새로 알고 있었다고 했는데, 그것도 사실일 수밖에 없는 건 선출이가 겨드랑이로 풍기는 냄새는 유독하기로 동네에서 일러온 참이던 것이다.
지난 일을 잊으려며 선출은 추녀 끝으로 들어서다 군침을 얌전히 삼켰는데, 그건 처음 있은 날 밤, 신실이가 몹시 아파하며 아프다 소리가 고대* 입 밖으로 나와 춘자란 애를 깨우겠어서 땀수건을 대충 쓰고 나서 신실이의 벗긴 몸을 고랑 둔덕 모시밭 속까지 안고 나와 남은 일을 마저 끝냈던 기억이 눈앞에 머문 순간의 짓이었다. 윗방 문고리로 가던 손을 주춤하고 고개를 두렷한 건 안방 쪽에서 들리다만 기척 때문이었다. “덮어유 볼기 시려워…….” 하던 건 즘촌댁의 꿈결 같은 목소리임이 분명했지만 “에헤이…….” 소릴 낸 건 사내 숨결이던 거다. 선출이 게걸음질로 다가갈 때,
“이불 들썩대면 저 아이 코가 바람을 먹구 깬단 말여” 하는 두 번째 기회로 우습지만 방개(方哥〕 음성이 저렇더란 미심을 얻었다. 춘자가 옆에서 자는 모양이었다. 문구멍부터 내려 드는 손가락이 입으로 오자 침 바르기 전에 주먹이 드나든 바람구멍을 막고 있은 걸레 뭉치가 발견되자 그 걸레 뭉치를 밀어냈다. 이어 얼굴을 반쯤 들이댔을 때서야 이불도 걷어차고 숨결을 모아가는 게 방개임이 확인되었다. 선출이는 그네들의 몸놀림을 주시하고 있은 동안 자기 목구멍으론 고뿔이 들고 있는 것도 몰랐는데 그네들의 노력이 병영에서 딱 한 번 구경했던 ‘문화영화’로 보아둔 것보다 훨씬 더 구수한 맛을 내는 것 같고, 더욱이 결리고 쑤셔하는 꼴은 너무도 몸을 결단내는 것 같아 인정상 한눈팔 겨를이 없어서였다. 민물새우 튀듯 하는 즘촌댁의 등심*이나 힘껏 당겨 잰 활시위보다 더 팽팽하게 엉버틈한* 방개의 어깨는 사철 가시지 않던 방구석 의 메주 띈 냄새마저 늘러놓고 있었다.
방개가 “나는 나와” 하는 소리를 내자 선출이는 시선을 떼었다. 이윽고 윗방 문고리를 딸 때 안방에선 숭늉 대접 벌컥대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신실이는 이불을 이마까지 뒤집어쓴 채 저세상이었다. 선출은 옷을 벗고 그녀 이불 속으로 끼어들었다. 손이 녹은 듯싶자 그는 신실이의 체온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초저녁에 부엌에서나마 목욕을 한 모양이었다. 내의를 말끔하게 갈아입은 걸 보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그녀 내복에서 새물내를 맡은 제 내복의 이들이 몽땅 옮아가면 망신이다 싶어 꺼림칙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제기랄 것은……” 그는 문득 싱거운 입맛을 다셨다. 하여간 언짢은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꾹 참기로 한다. 그가 그녀에게서 느끼는 불만스러움이라면 늘 그 딱 한 가지, 그녀의 무모증(無毛症)*이었던 것이다. 몸은 무척 노곤하면서도 잠이 오지 않는다. 한심한 노릇이었다. 선출은 신실이의 몸뚱이가 마치 그 암소나 되는 양 쓰다듬고 쓰다듬으며 거듭 한숨만 쉬었다. 아 서울…… 서울…… 그러나 서울의 모습은 냉큼 눈앞에 다가오지 않았다. 그는 아주 어려서부터, 그리고 군대에 있을 때에도 사주쟁이나 관상쟁 이로부터 고향을 떠나야 하며 마관에 나가야만 비로소 성공하고 밥술이나 놓치지 않고 살리라는 말과 그 비슷한 예언 같은 소리를 들어온 터였다. 그래서 그런진 몰라도 그는 오늘 이 시간 지금까지 꼭 그래야만 뭣이 돼도 되긴 되리라는 예감 속에서 살아왔대도 과언 아니게 서울과 서울생활에 대한 소망과 집념은 비길 데 없이 큰 것이었다. 그래 오래전부터 신실이만 아내로 얻으면 대뜸 서울로 뜰 작정을 해오고 있은 것이다. 사실 군에 가서 보고 듣다가 더욱 그러리라는 결심을 하게 된 것이지만, 못 배우고, 땅뙈기마저 없는 농촌의 젊은 청년이 할 수 있을 일이라곤 비록 등짐 방물장수*를 하다 마는 한이 있을 게라더라도 장사밖엔 살길이 없다는 것이 철들자 선출이의 지론이며 주장이던 것이다. 그는 전방이라지만 서울에 등을 붙인 부대에 배치됐던 관계로 서울이 집이던 몇몇 동료의 휴가와 함께 서울 살림하는 모습, 모습이라기보다 실정이었대야 실감이 날 성부른 꼴을 눈여겨볼 기회가 두어 차례 있었던 건데, 그리고 거의 근근이 하층생활을 꾸려나가는 궁색진 생활실태들이었음에도 그는 그게 얼마나 부러웠던지 모른 것이다.
서울은·…‥ 문밖만 나가면 가게들이 거기서 거기였고 싸전*과 탄가게는 돈만 주면 내 집 뒤주나 부엌 아궁이와 다르달 게 없을 것이었다. 이삼십 리씩 혀 빠지게 걷지 않게 돼 있었고 음식은 서울하고도 한복판이 전국에서 가장 싸다는 것이다. 서울은……
그는 토끼똥 누게 남처럼 입치레로 먹거나 입진 못하더라도 신실이와 함께 서울 살림을 해보는 게 첫손가락에 집히는 꿈이었으므로 멀쩡한 육신과 원금이 팔만 원에, 삼 년 밀린 그 삼 부 이자 팔만 육천여 원을 보탠 십오만 원만 가져도 어찌 돼 무얼 하든 두 목구멍은 제구실을 시킬 수 있으리란 계산이었는데, 그건 결코 꿈이나 바람에 그치기 쉽다기보다 오히려 믿음직한 사실이라 할 것이었다. 그토록 틀림없던 사실이 자기도 모른 새 한갓 깨고 난 꿈이 돼버릴 조짐이 더욱 분명해진 현실로 나타났을 때 선출이 실감낸 허무나 허탈을 맞아 분노의 치를 떨어야 했음은 누가 보아도 당연한 노릇이라 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던 것이다. 그것이 비록 황구만 씨가 고의로 저지른, 또는 어떤 야비한 저의가 담긴 배포로 꾸민 짓이 아니라는 걸 알만 하면서도 그러나 선출이로선 이를 갈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진 사태였다. 그래서 그는 이를 갈아 마셨고 동시에 흐려져 버린 소망의 복구와 침전된 의기의 회복을 위한 투쟁에서 게으르지 않아야 했던 것이다. 게으름을 피울 수도 없는 일이지만. 무엇보다도 신실이의 그 새까만 두 눈을 보면 하루 한시를 견딜 수 없고, 황씨와 이 지경이 되지 않을 수 없게 꾸며진 불가항력적 인 사태나 물정에 대해 증오를 더 해가면서 반동으로 환멸에 젖어들지 않을래도 별다른 수라곤 없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황씨는 돈을 물어줄 수 없다는 거였다. 기어코 받아내야겠으면, 때가 됐다거든 관공서에나 가서 알아보라는 투였다. 선출이로선 그런 벼락이 없었는데, 물론 그가 입대하고 두서너 달 만에 군사혁명에 의해 정권이 갈렸다는 걸 모르고 있은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박 장군이 영도하는 혁명정부에서 어려운 고비에 부닥친 나라살림을 맡아 바야흐로 잘돼 간다더라는 것까지도 알고 있던 거였다. 혁명 초기만 해도 그는 정말 명함도 없이 좋아 날친 쫄병들을 가려 둘째가라면 서러워 못 살았을지도 모르게 괜히 군복이면 대견스러워했고 자랑으로 삼았던 것이다. 그랬다고 해서 혼란 그것이던 민주당 정권 시대나 그 전의 자유당 독재정치라고 당시의 정치나 세상 풍조 또는 경제적인 여건에 불만이나 불평을 가지고 있은 건 더욱 아니었다. 다만 그의 앞날로 봐서는 막연한 세상이었으므로 그저 막연히 살아온 것이었다. 청소년 시대 철딱서니 없다는 핀잔이라도 먹어볼 만치, 청소년으로서의 그 시절다운 무슨 꿈이나 이상 따위조차도 없던 처지였으니까.
하여간 새 정부의 방침에 따라 황씨는 농어촌 고리채* 정리 기간 동안 열 번 생각한 나머지로 한 번 신고를 해버린 것이었고, 따라서 선출이는 유일한, 아니 인생의 전부이다 싶던 머슴살이 사 년 새경을 공중에다 띄운 꼴이 돼버린 거였다. 농어촌 고리채 정 리란 것도 그렇다. ‘농민이나 어부들이 진 빚을 정부가 책임지고 기한 내에 갚아준다더라.’ 그것은 두 번 생각할 이유도 없이 정말 훌륭한 일일 것 같았다. 때문에 그는 정부를 원망하거나 비난하진 않았다. 물론 자기와는 하등의 상관도 없는, 늘 그저 그래 온 것 같은 일일 것이라 싶어 그랬다.
“쥑일 놈은 황가뿐인딧……”
그래 그에게 새로 생긴 입버릇은 오직 황씨에 대한 원망 한 가지뿐이었는데 그야말로 아무짝에도 쓰잘 데 없게 더럽혀진, 한갓 주둥이 탓을 지나지 않는 것이었지만, 그러나 그나마두 그러지 않곤 도대체 밥 한 술 목구멍에 넘어갈 일이 아니던 것이다. 몇 냥 안 된, 새경 받아 모은 돈이 정부로선 누적된 두통거리였고 보증하며 나설 만한 빚이 될 수가 있겠느냐는 의문에서 빚어진 욕설이었다. 그렇게 빚으로 만든 건 황씨의 농간일 뿐이었다.
머슴살이 사 년. 착실했고 알뜰했다. 쓸 데나 쓰고 예축했다. 축내지 않고 길러 황소 한 마리 값으로 굳어졌다. 곧 장가들 밑천이었다. 입대 영장이 나온다. 가지 않을 수 없는 것. 돈 관리가 어렵게 됐다. 돈도 불리고 빽이 없어 영농자금 한 푼 못 얻어 쓰던 주인의 처지도 돕고, 겸사겸사 주인한테 저리*로 대부했다. 세상이 간단히 바뀌었다. 그랬다. 그런데 그 돈이 어느새 농민을 수탈하고, 그들의 간에다 쓸개를 소* 넣어 버무려 먹는·고리채로 된다? 그렇게 됐다는 것이다. 물론 황씨의 말이었다. 그렇다고 신고를 한다. 그동안의 밀린 이자를 백지화시켜라. 백지화―없는 것으로 한단 말이렷다. 그러고는 몇 차례로 쪼개어 푼돈으로, 그것도 해를 바꿔가며 갚아준다구? 허허.
선출이 제대하고 나왔을 때 안팎 동네는 나간 집 헛간 그늘마냥 썰렁했고 뒷공론 설거지통이던 우물가에서도 찬바람이 도는 것 같았다. 동네 사람들은 가급적 자기나 상대방이 웃을 말을 하지 않기로 한 눈치였고 인사를 피하려는 발걸음이었으며 예사 지껄일 말도 소리 죽여 쑥덕거리는 것으로 들리곤 했다.
귀향한 첫날 황씨 입에서 나온 소리는 하도 하라고 해서 생각다 못해 했다는 거였다. 신고를 했다는 것이었다. 어이가 없었다.
“아니 그러먼 황씨 아저씨는 내 그 및 푼 안 되는 둔이 꼭 고리채루만 생각킵던가유? 그러시먼 못쮸. 그래서는 쓰겄슈? 글쎄 그게 워칙해서 뫼인 둔인딧 그 둔을 고리채루 예기시너난 말유, 안 그류?” 어리배기*처럼 처음엔 그런 맥살 없는* 소리로 넉살 좋은 황씨를 휘어보려고 했었다. 그렇게 며칠을 두고 거듭 되풀이 말할 때만 해도 가끔은 목젖이 느껴지는* 소리로 돼 나왔고 아닌 게 아니라 눈시울까지 밍근하게* 지짐지짐 * 젖어들곤 했던 것이다.
“느꼈다 느꼈어…….” 그는 청말 뭔가를 느낀 것 같았으며, 자기가 마치 한 이십 년을 하루아침에 커버린 것같이 착각됐고, 고사이 어른 다 된 게 아닌가 싶어 장차 어깨에 올 부담을 생각하곤 했었다.
동지를 지낸 지도 서너 파수*는 되건만 밤은 여전히 길기만 하다. 요 겨울 들며 황구만 씨는 잠을 태반이나 잃고서 애꽃게 밤 긴 것만 원망해왔다. 잠이 달게 올 리 없고 먹으니 살로 갈 이치도 없었다.
그가 군대 가는 돈 팔만 원으로 시작한 건 소창직 (小氅織)* 직조틀을 서너 대 장만하여, 광천까지 가서 기술자를 한 사람 데려다놓고, 먹고 자는 동네 계집애들을 끌어들여 실을 감는다 물을 들인다 하며 소창직을 짜는 일이었다. 큰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고 기술자가 따로 있어야만 될 일도 아니었다. 계집애들은 부지런히 바닥일을 했으며 그중에서도 손끝 있던 두 계집애는 한 주일 만에 잉아*에 맞춰 바디질*과 북*을 주는 데에 손속*을 내어 기술자가 돼버리기도 했다. 황씨는 바빴다. 필목* 잇맺음이 나는 대로 손수 둘러메고 장돌뱅이
로 나섰다. 대전, 광천, 홍성, 화성, 청라, 남포, 응천…… 인근에 장이 서는 대로 매장치기*를 했다. 그 무렵 한철은 그럭저럭 나가고도 남은 돈이 있게 되기도 했었다.
“그 조시*로만 나갔더래면 시방은 흰목 젖혀가메 살어볼 텐디…… 그 방정맞은 놈으 까시미룡!” 방금 한 소리지만 소창직 직조공장은 잘돼 나갔었다. 봉당*에 들인 공장이 초협해* 헛간마저 털어 늘여가며 쏠락쏠락 재미가 들랑거렸다. 오래잖아 선출이한테 빚으로 쓴 돈도 이자부터 본전까지 깨끗이 밑 닦을 수 있으리라 싶은 판세로 돼 있던 거였다. 그리 돼가는 판에다 대고 누가 그 사업 이 기울어지리라고 생각이나 해봤겠느냐 말이다. 가만히 앉아 있는데 인근 읍내에 공업단지라는 것이 생긴다더란 소문이 왔다. 측략을 끝냈다더라더니
벌써 탱크같이 생긴 것들이 내를 메워가고 있었다. 공장이 두어 채 서고 이어 사람이 달린다는 기별이 잇달았다. 직공으로 부리던 열다섯 명의 계집애들이 들고일어났다. 공임을 배로 올려주든가 새로 선 공장으로 가게 놓아주든가 하라는 것이었다. 노임을 배로 인상해가며까지 버틸 만한 사업은 아니었다. 또 노임을 배로 올린대도 직공들은 ‘장래성’ ‘희망성’ 따위가 전혀 없다면서 무슨 핑계로든 빠져나갈 눈치를 보이고 있었다. 이틀 동안 쟁의두 벌어졌었으나 속수무책이었다. 그 계집애들 입에서 그만두겠다는 말이 나왔을 때는 이미 들어갈 자리를 미리 마련해놓은 뒤였던 것이다. 새로 생긴 제과공장과 전기기구 조립공장은 첫 달 임금부터가 황씨네 소창직 공장의 두 달치 품삯에 맞먹고 있었다. 인건비의 앙등으로 치명상을 입을 줄은 더구나 예측할 수도 없던 일이었다. 직공들이 장래의 희망성이 없다는 말에만,
“흐이망성? 칫 미쳐두 곱게들 못 미치구…… 지집년덜이 알 실을 때가 돼야서 시집이나 갓버리면 구만인디, 시집가서두 블어다 서방 공대*헐라간디? 그러구 무에던지 배워두면 지술(기술)이지 지술이 워디 따루 있을깨미…….” 해가며 그렇게 무심 했던 것이 탈이라면 탈이 랄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치명적인 상처가 미처 아물기도 전이었다. 황씨로서 정말 뜻하지 않은 팔매가 또 한 번 날아와 그의 뒤통수를 갈겨버린 것이다. 결정타였다. 그건 자기네가 앉아서 손으로 일하고 있던 사이 세상은 기계로 기계를 만들며 일하고 있는 걸 모른 체한 결과였다.
카시미론*의 물결이 쥐구멍 같은 벽촌에도 회오리쳐 대기 시작했던 것이다. 무엇이든 새로운 물건이 나왔을 때 그 물자의 효용에 현혹되는 촌사람들의 안목은 무서운 것이었다. 카시미론의 위력도 날로 그랬다. 어느덧 황씨네 기계들도 거미줄을 쓰는 날이 잦아졌다. 젖먹이 어린애의 기저귀감으로밖엔 쓰임새가 없는 백소창이나 한 장토막*에 두서너 필 내는 정도의 어처구니없는 사태로 급전된 것 이었다. 황씨는 문을 닫지 않으려고 발버둥쳐 보기도 했지만 도리 없었다.
“쬐끔 늦었던 겨, 다 시절 돌아가는 결 보아가메 눈치로 허야는 것을.” 황씨는 비로소 유행이란 것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크게 밑진 것도 없고 번 것도 없이, 그러나 들인 시설비는 한 푼 못 건진 채 세상 물정에 어두웠음이나 한탄하며 조용히 문을 닫게 되었다.
정부 시책이라면서 고리채를 신고해야 하느니 못 하느니 하고 산동네 벌집 흔들리듯 할 때에도 황씨는 모른 체하려 했었다. 심사숙고한 결론은 못 갚는 수가 있기도 하겠고 또 논마지기나 올려세워 가면서라도 갚을 땐 갚더라도, 인정으로나 선출이 얼굴을 보아서나 그럴 용기가 나지 않던 것이다. 그러다가 얼핏 쳐들린 생각은 ‘세상 돌아가는 대로 시절에 맞춰 눈치껏 살아가야 한다’는 것과 선출이 당장 군복 벗고 나와 손을 내밀면 변명하기가 난처할 것 같아진 것이었다. 우선 신고라도 해놓으면 숨 돌려가며 천천히 갚아나갈 핑계는 될 성
한 일이었다. 선출은 ‘교활하고’ ‘꾀로 살려고’ ‘약게 놀려 한다’고 분개했지만 그건 아니었다는 배짱으로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는 시대가 가르치는 대로, 좀 뒤처진 채 앙감질*로나마 뒤따라온 셈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어서, 자기의 삶을 의지와 노력으로 밀고 나가더라도 결국 우연에 말려들어 보람 없이 돼버리곤 해온 경험에서 막판엔 그 어떤 일이라도 그 우연의 울을 뛰어넘어 설 수 없고, 있다더라도 어떤 일에건 장래의 결과를 미리 예측하지 않으리란 결심을 단단히 하고 있었다. 체념, 각오, 고집 따위로 남들은 몇 갈래의 해석을 하고 있겠지만 몇 차례의 대판거리*를 벌인 끝에 선출이가 해결책이란 것을 제시했을 때 그가 별 트집 없이 받아들인 것도 타산에 대한 집착을 버린 때문이었다. 그 해결책이란 건 계약서로 이미 문서화됐고 또 각기 한 통씩 나누어 보관해오고 있다. 선출이가 기초한 계약서를 펴보자.
‘편의상 황구만을 갑이라 칭하고 박선출을 을이라 칭한다’로 시작된 계약 내용은 이런 것이었다.
1. 을이 대여한 원금 8만 원은 일단 고리채 신고를 했으므로 법률상의 효력 이 발생한다.
2. 을은 원금의 이자의 절반에 해당하는 금액에 대해서만 채권을 주장한다. 단 이자의 절반에 해당하는 금액은 4만 5천 원으로 하며 갑은 그 금액에 해당하는 유우*(幼牛, 이하 사육물이라 칭한다)를 구입 사육한다. 동시에 갑은 사육물이 성숙할 때까지 사육비의 부담 및 유고*시에 책임을 진다.
3. 사육물이 성장할 때까지는 갑과 을의 공동 소유로 하되 적기*에 매매하 여야 하며 그 수익금은 일절 을의 채권으로 계산한다.
4. 3의 경우 수익금에서 을이 주장한 이자의 채권 4만 3천 원을 계산한 잔 액은 을의 원금 8만 원 중에서 공제하여야 한다. 고로 원금 중 잔금에 대하여서만 갑과 을은 채권과 채무의 법률적인 보호를 받는다.
5. 본 계약의 시행 도중 사육물(소)에 대한 사고의 책임은 일절 갑에게 있으 며 유고 시엔 본 계약을 무효로 한다.
6. 사육물을 사육하는 동안 갑은 필요한 때에는 농사 및 기타의 작업에 사 역시킬* 수 있다.
7. 본 계약서는 작성한 날로부터 유효하며 두 통을 작성하여 갑과 을이 한 통씩 보관한다.
어지간히 복잡한 내용 같지만 나중 알고 보니 계약을 위반하였을 경우에 대처한 가장 중요한 벌칙 항목이 누락됐을 만큼 허술하기 짝이 없는 거였다. 선출은 받아야 할 이자의 절반을 포기하되 황씨는 나머지 절반에 해당되는 사만 삼천 원짜리 송아지를 사서 책임지고 기르며 황소가 된 다음엔 적당한 시기에 팔고 그 돈에서 사만 삼천 원을 제하여 선출이가 갖고 남은 돈도 역시 원금 팔만 원에서 깐다는 것이다. 무슨 소리냐 하면 소를 길러 팔아서 이자의 절반과 원금의 일부를 받자는 것이며 그 나머지만을 고리채 정리라는 법적인 보호 하에 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러는 동안 소가 죽거나 도둑을 맞게 되면 그 계약은 무효가 되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기로 한 거였다. 황씨도 괜찮은 조건 같았다. 정부의 시행령대로 한다면야 거들떠볼 필요도 없는 거였지만, 이해 상관이야 어찌 되든 그Ξ}한 조건도 못 들어준달 수 없을 것 같았던 거였다. 또 놀리는 외양간에 소를 들임으로 해서 부족한 거름과 노동력을 보충할 수 있다는 점에 맘이 간 것도 사실이었다. 계약은 상호간 양보와 양해가 있어서 까탈이랄 게 별반 없이 잘 지켜진 셈이었다. 다행히도 소전* 시세가 혈해 사만 원짜리 소가 거의 중소였고 게다가 집에 몰고 와서 보고서야 암소였으므로 불만을 가져볼 건더기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새 닭이 홰를 친다. 벌써 네 홰째인가 싶자 황씨는 답답한 가슴으로 살문을 밀었다. 먼동이 휘여이 터오고 있다. 비로소 그는 뜬눈으로 밤을 새웠음에서 온 약간의 미열과 두통을 느낀다. 여물 솥에 불을 한 부삽 넣어야 되겠어서 아내가 이 잡느라고 뒤집어 놓은 옷들을 이불 속으로 끌어들여 녹히노라니 다시 입맛이 스스다. 아까워서, 소가 아까운 것이었다. 그는 자기가 뼈품을 팔아 사 기른 소나 되는 것처럼 정말 정성으로 선출이의 소를 가꿔온 거였다. 아름이 넘는 등심이나 하고 안반짝*만 하게 퍼진 엉덩판이며, 아무리 계약서라지만 있어서 돈으로나 주면 줬지 고삐를 풀어 넘겨줘야 될 일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노릇이었고 또 절대로 그럴 수 없다고 다짐해온 거였다. 그는 암소를 사랑하고 있은 것이다. 속절없는 짓이란대도 농부다운 애정이다. 집 안에서는 아내와 아들 공식이, 그리고 하나 낳아본 딸, 양순이 순서로 신경을 담은 눈이 가지만 일단 소를 몰고 울타리를 벗어나면 거짓말 갇게도 가족이나 농토에 대한 애착보다 소에게로만 그의 건강하고도 평화스런 마음이 쏠리던 것이다. 내력이 있는 소라서 더욱 그럴 수도 있긴 하겠지만. 황씨가 성냥을 챙겨 들고 쪽마루에 나섰을 때 외양간에선 워낭*이 풍경* 소리를 냈고 말짱하게 든 하늘 한 자락이 점 점 수줍어해가는 중이었다.
“술 먹고 온 날은 되게두 오래 끌데?” 하는 신실이 이마는 땀에 촉초근히 젖어 있었다. 그녀는 반년 가까이 익혀온 몸이라서 방안일에 관해선 뉘 집 새댁 못잖게 알 걸 알고 있었다. 선출은 그 점만으로도 그녀가 매우 영리하며 깨인 여자로 보여 무척 대견해하고 있었다. 선출이는 질펀하게 젖어 있는 한쪽 손을 그녀가 벗으면 가장 후텁지근하던 곳에서 거둬들이며 녹자근함에서 우러난 한숨을 들키지 않게 내쉬었다.
“벌써버텀 뵘이 어려우면 야중이는 워척헐라구 이런댜?” 그녀는 역시 영악했다. 그야말로 벌써부터 양기를 염려하는 데에 선출은 찔끔하면서 엉뚱하게 “자나 깨나 그 횅가 놈 때미 꾈치 아퍼 죽겄구먼…….” 하고 중얼거리다가 정말 황구만 씨의 처사에 대해서 다시 울화통을 끓였다. 요즘엔 더욱 괘씸하게 여겨지는 것이 있는데, 하긴 황씨 말대로 암소를 산 게 불찰이었는지도 몰랐다. 황씨는 소가 실하고 정이 깊어 내놓기 아깝다던 것이었지만 선출이 보기엔 야짓잖은* 핑계에 지나지 않던 것이다. 황씨만 소를 거루고 길들였더냔 말이다. 선출이 자신도 다른 집에 대어 훨씬 더 아니꼽고 비위 상하는 걸 참느라고
참아가며, 머슴을 살아도 도로 그 집 머슴살이를 하게 된 것 또한 소, 오직 저 암소를 가꾸고 다루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황씨가 자기 공치사도 할 만큼 마치 자기 소인 양 공을 들였음을 부인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그랬대도 진짜 임자인 이 박선출보다야 더했겠느냐를 묻고 싶은 것이다.
머슴과 주인, 임자와 사육사인 그들은 지극한 애정으로, 지성으로, 소를 위한 여름과 가을이었대도 과언 아닐 일 년을 함께 보낸 거였다. 그들은 소를 부린 날이면 서로 마시다 남긴 막걸리를 한 사발씩 먹여서 재워 피로를 풀어주는 것까지도 잊지 않았었다. 온종일 일을 시킨 날은 소도 막걸리를 먹어야 쉬 피로를 풀곤 했던 것이다. 소도 막걸리에 맛 들여 곧잘 넙죽거리며 받아 마시곤 했다. 일을 아주 세게 부린 날은 막걸리도 한 되쯤은 먹여야 알맞다고들 했다. 어쨌든 선출이는 암소를, 말 못하는 짐승으로 여겨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돈, 그것은 소이기보다 현금이었다. 사 년 동안의 사경(私耕)과 삼 년 못 받은 이자를 합친 누런 돈뭉치였던 것이다. 한마디로도 할 수 있는 말이라면 길게 늘어놓을 필요가 없다. 누가 뭐라건 황씨와 선출이 두 사람에게 있어서의 암소의 존재는, 가난에서의 구제와 다가오는 날들에의 밑천으로 걸어볼 수 있던 유일한 희망이었으며 가족과 마을 사람들에게, 아니 자기 자신에게 충고를 해주는 명예와 양심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서로 양보를 하자면 동네 아이들 말마따나 ‘황씨네 선출이 암소’라면 되는 것이다. 선출이의 고민은 황씨의 변심이 그 암소가 새끼를 밴 때문이라고 지레짐작한 데서 왔다. 소가 새끼를 밴 지도 어언 서너 달째 나고 있는 것이다. 한 달포나 됐나, 추수도 끝나고 김장도 묻었길래 소를 팔자고 제의했었다. 팔자는 말에 황씨는 대뜸 황소 눈을 해가지고 펄쩍 뛰었다. 황씨로선 소를 놓치지 않으려고 선출이의 금년 새경 줄 것까지도 미룩미룩 끌어오는 판이었으니 뛸 만도 했을 거였다. 원래 머슴 새경은 시렁굴의 경우 매년 동짓달 동짓날로 일 년을 쳐 셈하고 있었지만 선출에겐 섣달 그믐이 두어 장 파수밖에 안 남은 지금까지도 해결해주지 않은 것이다. 소가 아직 덜 성숙했고 좀 더 길게 먹여 몸이 퍼진 다음에 팔더라도 늦지 않을뿐더러 요샌 팔아봤자 별 시세 못 받게 되리란 거였다. 그러면서 내년 한 해만 더 고생해달라고 붙잡는 거였다. 그 속을 가늠해보면 대충 세 가지의 꿍꿍이속이 있나보았다. 하나는 내년 농사에 필요한 두엄을 한 지게라도 더 받아 쓰며, 반면 봄갈이(춘경) 철에 부려먹으면서 남의 논밭까지 쟁기질을 해주어 대가로 농번기면 귀해지는 일품을 미리 잡아두거나 사놓으려는 투였다. 그러나 보다 짙은 눈독을 올렸다면 머잖아 낳을 새끼가 자기 몫이라 착각하고 그걸 놓치지 않기 위한 그 행패가 아니냐 싶은 점이었다. 그 외론 농번기에 팔아야 몇 푼이나마 더 받을 터이고 따라서 진 빚을 한 푼이라도 더 꺼보고 싶은, 아마 그런 점도 있을지 모르겠다. 돈을 더 받아준다는 데에야 누가 뭐라 하랴만 선출의 경우는 달랐다. 하루라도 빨리 돈을 뽑아야 하는 것이다. 어물저물하다 과세해버리면* 마른 봄판에 누가 돈 보따리 들고 소전 보러 나오며 그러다가 보릿고개나 맞아놓으면 어영부영 다시 또 황씨네 일 년 농사에 머슴 되어 시달리기 십상이겠던 것이다. 선출이로선 뼈마디마다 맺힌 설움의 목도리 머슴, 생일꾼, 우선 그런 누더기부터 벗어던지고 서울로 올라가 서울 살림을, 그것도 저 신실이와 단둘이서 서울 살림을 차려야 했던 것이다. 비록 남의 집 문간지기 셋방으로 드난살이*를 하게 될망정 신실이 두부찌개를 끓이고 청포묵 오른 밥상을 보리라 상상하면 그냥 오금이 저리며 멀쩡하다가도 웬 오줌은 또 그리 급해지던지, 어쨌든 기다릴 수만은 없는 것이었다. 더구나 그는 간밤 즘촌댁이 홀아비 보는 장면까지 목격했다. 팔자를 고쳐가려도 우선은 마땅한 자리가 없다던 게 그녀나 신실이의 푸념이었던 것이다. 즘촌댁도 길래* 과부로 수절하긴 어려울 한고등*이었다. 마흔둘인 그녀 나이가 그랬고 나이가 가리키는 그녀 몸을 봐도 그랬다. 소문도 진작부터 한두 가지로 맴돈 건 아니었다. 했지만 방개가 됐건 누가 됐건 하여간 배꼽을 맞비빈 사내를 발견한 점이 중요했다. 종다리 콧구멍만 한 동네서 그런 일을 벌일 수 있었다면 이미 떨어질 수도 없겠다는 것과 같은 사실이 된다. 방개는 공업 단지에 와 붙은 목수였다. 못질이 정확하더라는 평판을 지니고 있기도 하며 수입도 괜찮을 홀아비였고 딸린 떨거지가 없나본 눈치였다. 즘촌댁과의 소문도 근거가 충분해졌다. 그녀가 자기 의사를 밝힌 지도 오래된다. 새우젓 장사도 지겨워져 춘자나 눈의 밖으로 보지 않으며 밥만 먹여주겠단 사내만 나서면 신실이가 치워지는 대로 남의 집 귀신이 되겠다던 거였다. 그녀는 벌써 칠팔 년째 새우젓 장수로 간국에 찔어가는 중이었다. 이십 리 저쪽 웅천 독쟁이 배 밑에 나가 추젓*이나 자하젓*을 받아 임고리장수*로 도부* 치며 돈으로 갈되 쌀 보리로 바꿔다 먹기도 하곤 했다. 그녀가 새우젓 조쟁이를 이고 선출이가 있는 차주백이네 주막 앞을 지날 때면 술잔이나 걸친 성모와 수송이 으레 ‘쌀 보리 주구 새우젓 사유’ 하던 소릴 흉내 내며 션찮은 발음으로 ‘딸 보× 주구 사위 × 사유― 하며 낄낄대곤 하지만 그녀 또한 과부만 안다는 설움으로 십 년은 지샌 터라 뒤도 안 돌아보고 ‘간간허구 새곰헌 새우젓 들여놔유― 소리로 응대하면서 걸음더러 살리라고 내닫곤 했다. 그녀로선 선출이를 어렵게 알아 그러는 모양이었는데, 어디서였더라나 맘에 있어 한 말인진 몰라도 선출이라면 딸 하나는 맘 놓고 부르겠다고 하더라는 말도 없잖아 들어온 터였다.
“싸게 대답 점 해봐, 워친헐 작젱인가…‥”
신실이 몸 달아 하는 꼴 앞에선 정말로 참기 어렵다. 선출이는 자고 나서부터 계속 묵답한다. 허나 그녀에게 가는 묵답은 그의 애간장이 토막나며 재티로 변하는 듯한 아픔에 견디던 비명이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오늘 중엔 기어코 탁방을 내고* 말리란 오기가 주체스러운 부피로 응어리지는 참이었다. 정말 황씨의 어리숙한 체하면서도 잔 재간임을 드러내는 능청부터 성토하고 서로 본심을 내걸어 담판하고 말리란 결심이었다.
“다 구만듀, 이 기박헌* 년이 쇠울을 가, 흥 쇠울 살림…… 누가 주제값 허는 사람이라구 쇠울여, 촌년이 촌구석이서 보리방애나 찧구 살다 죽겄지, 에이그 씨발.”
“쬐끔만 더 참구 지달려보너, 내 오늘 중에는 볼 장을 내겄으니께.”
“내가 왜 참지름 종지간디 참구 참게 흥.”
“증 그냥 급허거던 자긔가 가 소래두 끄서 내오던지.”
“업세, 뎁세 나버러 소를 끄서 오라네…… 쇠울살이 못허니께 가막살이* 갔다더라게? 남덜은 군대 갔다 오면 똑똑해진다더먼, 워디가 비럭질하구* 온 사람두 저 당신버덤은 낫을 겨.”
선출이는 밸이 틀려 더 이상 누워 있을 수가 없었다. 게다 방도둑질한 꼴 장모 될 과부한테 들키는 것도 그저 상서로운 일은 못 되겠고 해서 나설 채비를 차렸다. 간밤의 술은 알맞았는데도 속이 아리고 골치가 흔들렸다. 이불깃에 모가지만 내놓고 잦혀져 있는 신실이한테 “이따 봐” 하며 문을 들듯 여는데 얼핏 눈이 말해 다시 보니 구레나룻으로 텁수룩한 방개가 안방에서 들고 나왔나본 농구화 끈을 매느라고 엉거주춤한 채 눈인사를 보내는 중이었다. 시금털털해하는 낯이었다. 선출이도 낡아 희치희치한* 비닐잠바 깃을 세워 여미며 쉰 웃음을 버렸다. 그리고 둘은 각기 자기 방면대로 돌아서며 눈길을 어지럽 히기 시작했다.
두어 함박이나 데운 여물을 퍼다 주자 소는 제법 몸이 무거운 듯 굼벵이처럼 일어나며 허발해서* 구유통을 걸터듬어* 먹 어간다. 고구마 넌출*과 콩깍지가 반반이라 구유에선 구수한 냄새와 김을 피워 올렸고, 황씨는 시린 볼에 김이 서린다 싶어 외양간으로 들어서며 소 잔등을 쓰다듬어 내리기 시작했다. 선출이 충혈된 눈으로 비슥비슥 들어선 것도 그와 함께였다.
“워디서 자구 인저 들온다나?” 황씨는 그저 으레 하던 소리대로 한 마디 보였을 뿐이었다.
“냄 이사 워디서 잤거나, 알어 뭐 헌대유?”
선출은 볼 질린 소리로 툽상스레* 대꾸하며 외양간으로 다가왔다. 알고자 한 소리는 아니었지만 말투가 거슬렸기에 황씨도 자기 얼굴이 꾸겨짐은 어쩌지 못해했다.
“돌아온 장에 내다 금 부를 걸 웬 여물만 멕여쌓는데유? 짜구나라구.”
선출의 말은 누가 듣는대도 공연한 트집 이었다. 황씨는 웃어버려야 옳으리 라 싶으면서도,
“벌써 늑 달이나 되았으니께 잘 멕여야 효도 보지.” 어른 된 체면이란 걸 생각해 타이르듯 말한 것이다.
“고년시리* 넘이 소이다가 접은 붙여놓구 극성여…… 새끼 밴 소라구 둔을 더 받나.” 선출은 거듭 심경을 건드렸다.
못 들은 체하고 말기론 거북한 말이었다. 그러나 다시 눅인 어조로,
“이 소 앞에서 니 소 내 소 찾으면 못쓰느니, 팔 때넌 팔더라두 이 소 앞이서 임자를 가려서는 못쓴단 말여” 했다.
“탐두 많기두 휴.”
“암만.”
욕심이란 말엔 황씨도 승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분명 욕심이 있으니까. 돈 가치로 친 욕심에서가 아니라 농사꾼이 듬직한 일꾼을 본 데서 난 당연한 탐이었다. 그러나 그건 황씨나 할 수 있는 변명이고 선출에겐 마침 잘한 말이라 싶었다. 닦아세우고* 낯박살을 내기 좋은 구실이 된 것이다. “뭣이요? 그러구 보니께 그래서 그러는구먼요, 소를 팔재두 싫다 달라구 해도 싫다 하여 왜 저러나 했더니만…… 탐을 낼 게 따루 있쥬, 좋시다, 해볼 대루 허슈, 나두 결심 이 있으니께.”
황씨는 더욱 귀살머리스럽고* 불쾌했다. 선출인 정말 당장 장으로 몰아가기라도 할 듯이 코뚜레로 손을 가져갔다. “왜 이려? 새끼 밴 소럴…….” 황씨가 막아서자 선출은 부앗김에 오금을 박아주마고,* “아니 그러먼 새끼를 낳면 송아지가 아저씨 껏이라두 된단 말유?”
“?” 황씨는 듣던 중 느닷없는 소리였지만 솔깃했다. 따라서 낳게 될 송아지의 소유권에 대해선 전혀 무심했음을 깨달았고 처음으로 관심을 사게 된 동기가 되어준 말이기도 했다. 이어 송아지를 놓고 왈가왈부하다 보면 어미 소를 잡아두는 데에 혹 도움도 되지 않을까 하는 데까지 순간적인 발전을 보았다.
“허다 못허는께 그것두 말이라고 허나?” 황씨는 갑자기 배짱과 뚝심이 솟아 자신이 서는 것 같았다. 아무리 선의로 대하려도 안 먹혀들면 도리 없는 것이었다. 선출이도 단박 삿대질을 해댔다. “그게 워째 그류? 에미 있구 새끼 있지, 더군다나 뱃속에 들어 한 몸인디 워째 이 집 물건이냔 말유?”
“계약서에두 아직 잉끼*가 시퍼렇게 살어 있지만 나넌 이 암소, 응 암소만 질러서 팔어 갚기루 되어 있어, 말을 허야 알아듣겠다먼, 거기에 새끼까장 자네 게라구 써 있지 않구, 또 이 소헌티 사고가 나먼 내가 책임지기루 되어 있단 말여, 그런 연고여, 왜?” 황씨는 언성을 높여 떠들었다. “허지만 소헌티 사구가 난 것 아니 잖유?”
“소가 암창내 난 게 사고가 아니면 무에라나?”
“그럼 그건 그렇다구 허구, 그래서 책임을 졌단 말인감유?”
“암만, 암내 난 짐승헌티 해웃값* 들여가며 접붙인 게 책음진 것이지.”
“그러니께……” 이 정도나 자기 소견과 주장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이날까지 밥 먹은 걸 속 편해했고 손바닥만 한 하늘을 믿고 삼 대 묵은 초가를 지키며 살아왔더냐고 선출은 묻고 싶었다. 그리고 자기는 하루바삐 고향을 등지고 타관*에, 가급적이면 서울바닥으로 전출을 해야 성공하게 되며 그러자면 이 금전 관계가 얼른 해결돼야 한다는 사정도 덧붙이고 싶었다. 황씨는 염치 불고하고 계속 지껄였다. “그러니께 말여 일테면 자네는 감자를 쪄 먹다 감자 속에 벌러지가 들었으먼 그 벌러지두 감자 파먹구 굵어졌으니께 감자나 매한가지라구 먹을 텐가, 먹겠어?”
선출이 늙어가는 사람 말하는 것이 저렇게 흉물스러율 수가 없다고 여겨 비위 상해 도저히 상대할 수가 없고, 또 성질 같게 주먹으로 한 번 갈겼으면 시원할 속인데도 “그 새끼는 그럼 말젖이래두 먹구 큰다담유? 다 내 소 골 빨어먹구 크는 중이지, 보슈 가령 저 감나무는 내 집 것인디 열리는 족족 감은 남의 것이 된다구 해보슈, 울안에 감나무 심을 필요가 있겄나, 그 쇠양웂는 소리 우연만침 했거들랑 고삐나 풀어봅시다.” 황씨는 당황한 빛을 감추지 못하고 “이 사람이 해장까라버텀 웨 이 야단이냔 말여 증 다퉈볼려?” 했지만 최소한 송아지 한 마리는 차지할 수 있겠단 희망더러 언성을 높여가도 안 되겠는 데다 일단 져주는 게 상책이겠어서 “들어가 아침이나 먹세. 그러구 피차 조용히 생각해보세.” 이 말엔 선출이도 날뛰진 않았다. 그는 조반 후에 차주백이네 마을방으로 내려가 성모 같은 친구들의 조언도 듣고 말밑천도 보충해둘 심산이었다. 처음부터 고랏댁과 공식이와 양순이가 곁에서 지켜보고 있는 탓도 있었다. 특히 양순이 앞에선 기를 못 펴온 선출이었다. 신실이와 가깝기 때문에 예사로 동네 어느 계집애가 엉덩이 크더란 말만 해도 고자질을 하곤 해선 선출이 자신이 신실이와 다툰 적도 한두 번 아니던 거였다. “아버지 진지상 다 식겄슈” 하는 양순이 말 한마디를 핑계로 아귀다툼을 일단 멈추고 주객은 각기 밥상 따라 들어갔다.
“벌써 고였담?” 황씨는 상에 다가앉으며 물었다. 해바라진 대접에 서리 앉은 탱자 우려낸 듯한 동동주가 남실하게 상에 오른 것이다. 설도 머지않고 세안*에 고사도 지내고 해야겠어 추석 무렵에 디뎌퉜던* 누룩으로 담은 술이었다. 술독은 세무서 밀주 단속반 눈을 피해 바깥 짚누리* 속에 묻어두고 있었다. “멈(머슴)방이두 한 종발* 내갔남?”
황씨 물음에 고랏댁은 눈시울을 말아 올리며,
“용수백인디 저 작것까장 멕여?” “그럼 이놈을 여퉈(나눠)서래두 맛뵈기는 시켜야지.” 황씨는 빈 대접을 들여오라 해 반반으로 나눠 마누라 손으로 내보냈다. 황씨가 평소 일꾼 아끼는 마음은 자기 집 재산 보살피듯 하는 정에 진배없었다. 그런 때의 생색은 고랏댁이 내온 셈이지만.
“맛이나 보구 이따, 아니 저녁 해거름이나 되거들랑 짚누리 술바탱이*나 내다주겨, 광에 갖다 놓면 저녁 먹구 걸러볼 테니께.”
고랏댁은 공연히 눈을 꿈적 여가며 말했다.
“그럭 휴.”
술이란 게 좋은 음식 이라 선출이 대답도 선선했다. 그녀는 며칠 전부터 오늘 밤에 고사 지낼 준비를 해온 거였다. 농사도 평년작은 됐지만 이 달 들며 소를 둔 남편 고민이 더해가는 데다 머슴도 거세어져 집안이 늘 불화스럽기 때문에, 해마다 있은 고사였어도 닷새 전에 이미 장을 봐온 거였다. 고랏댁은 방에 들어오다 명태 두 마리와 소지(燒紙)* 종이첩이 시렁* 위에 얹힌 걸 다시 보며 공식이더러 밥 먹고 황토를 파 오도록 지시했다. 황토를 파 오면 대문 앞에 양쪽에다 세 무더기씩 갈라놓으라고 양순이한테 일렀다. “오늘 고산감?” 황씨가 묻자,
“어젯밤 쌀 일어 당겄단 소린 벌써 잊었나뵈. 고사니께 오늘만이래두 지발 언성 좀 뇝히지 말유, 누구 나무랠 일 있어두 니열까장 참구.”
선출이도 들으라고 한 말이라 그녀 음성은 으름장이었다. 역시 효과는 선출이 쪽에서부터 났다. 선출이도 이 나이 되도록 보고 듣던 바라 무슨 날이면 제풀로 엄숙해졌고 몸을 단속할 줄 알았으며 지킬 건 지켜왔다. 그것이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범절이니라 싶어 부러 그런 적은 한 번도 없지만. 그래 그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오늘만은 구김살 없는 기분으로 지내리라 한다.
신실이와의 약속도 하루만 연기할 셈이었다. 또 신실이도 농갓집의 고사는 머슴이 주인이란 걸 이해하리라 싶었던 것이다.
선출이 마을방에서 점심시간에 대어 들어왔을 때, 언제 넘어왔는지 신실이와 양순이가 맞절구질로 떡쌀을 빻고 있었다. 선출은 독메를 들어 기운껏 떡방아를 찧어대었다. 양순이가 절구에 붙어 서서 쌀가루를 저어주자 신실이는 질투가 나는지, “인 줘봐, 니 식으로 짓다가는 독메공이헌티 꺽그매 뿐질르구 말겄다. 넌 가서 팥솥이나 봐”
하고 젓대를 빼앗아 양순일 부엌으로 몰고 그녀가 대신 들어서기도 했다. 신실이가 떡가루를 체질하는 동안 선출이 땀을 닦기 서너 차례만에 떡가루는 시룻번* 붙이기 알맞은 무거리*로 몇 옴큼만 남게 되었다. 떡방아가 끝나자 선출이는 짚누리를 헐어 술독을 외양간 곁에 붙은 광으로 옮겨다 놓았다.
아무리 악착스럽기로 소문난 세무서 밀주 단속이라지만 밤도 없이 가택 수색을 나올 성싶진 않았던 거였다.
양순이에게 개수통을 주어 설거지를 시키고 시루 앉혀 신실이한테 아궁이를 맡긴 고랏댁은 광으로 물 한 동이를 들고 들어가 술독 소래기*를 열었다.
광 속은 곁에 이어낸 외양간에서 두엄내가 배어들어 고약한 냄새로 찔어 있었지만, 그녀는 술내에 취하며 팔뚝을 걷어붙였다.
동네 안식구들에겐 고사떡을 돌리고 여으내 가으내 품앗이를 해 준 마을 일꾼들은 머슴방에 모아 막걸리로 사례하려는 심산이었다. 동네 일꾼들한테 인심을 사고 공론이 좋아야 내년 농사도 어렵잖은 것이다. 용수*에서 뜬 진국 동동주는 호리단지로 하나 가득했다. 그녀는 거른 막걸리가 넘실거리는 말가웃*들이 동이와 호리단지를 마개 해서 들어내 놓고 광 문짝을 밀어두었다.
광 속의 술독엔 아직도 거르면 너 말은 실하게 남아 있었지만 그건 설과 정월 대보름을 쇨 때까지, 날이 밝는 대로 짚누리에 다시 묻게 할 참이었다.
그녀는 거르고 남은 술지게미* 한 양푼을 소 구유에 쏟아주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소도 출출한 판이라 얼씨구나 할 것이었다.
밤콩에 동부*를 섞은 찰무리*와 조선무 채쳐 호박고지*에 버무린 시루라는 건 냄새로도 이내 알 수 있었다. 시루는 김이 잘 올랐고 솥바닥에 엎어둔 간장 종지가 딸딸거리며 끓는 소리가 옹솥 골고래*까지 울리고 있었다. 자정이 가까워지자 고랏댁은 양순이와 신실이 시켜 시루를 떼었다.
겸상말이 소반에 시루가 올려졌다. 명태 두 마리가 동쪽으로 대가리를 두며 누웠고 서 근을 사다 삶은 돼지고기도 김을 내고 있었다. 동동주 한 대접과 부엌칼이 자리를 잡자 상은 안방으로 모셔졌다. 고랏댁은 우물로 나가 세수를 마치곤 얼레빗*에 물을 세 번 찍어 마지막 채비로 머리를 빗었다.
고사 지낸 밤엔 부부 동침이 덜 좋은 법이라고 황씨는 안 쓰던 사랑에 군불 넣고 들어와 재삼* 스를 탐하는 공상에 젖어가고 있었다. 선출이는 제 방에 누워 오늘 밤도 즘촌댁은 방개를 불러들이려나, 그러다가 늦게 돌아간 신실이에게 들키면 앞으로 신실이 교육하기가 수월찮겠다고 그 나롬대로 끌탕*을 했고, 그러느라고 재 넘어서 와 기다리던 성모가 잠든 것하고 수송이와 영필이가 포개어져 남색하던* 시늉을 내며 히히덕거리는 옆에서 덕재, 춘범이, 삼식 이, 철호, 곽 서방, 김영식 씨 등이 섰다판을 벌여놓은 것조차도 모르고 있었다. 양순이와 신실이는 머슴방에 내어갈 상 차리기에 부산히 돌아갔고, 공식이는 더운 방에서 땀으로 미역 감으며 잠결에 또 몽정을 하는 중이었다. 고랏댁은 네 번 절하고 조아린 다음 여러 가지를 빌어대고 있었다. 남편과 자식과 딸년이 내내 무병무탈하도록 일 년 신수를 빌었으며 그다음엔 산과 논밭에 대한 감사를 드렸다. 그렇게 한창 차례로 빌어가는 판인데 갑자기 오줌이 마려워지기 시작인 건 웬 셈인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진작 부정한 걸 미리 처리하지 못했음을 후회하며 다시 치성을 계속했지만 일단 오줌이 마렵다는 느낌이 들고부터는 정신이 한곳으로 모아지지 않았다. 입으로는 간절하게 중얼거리곤 있었지만 부엌에서 도마질하는 소리며 외양간에서 소 뒤척거리는 소리에다 광 속을 뒤지는 쥐소리가 요란할 뿐 아니라 선출이 방에서 숭늉 양푼 내놓는 기척이며 사랑방 황씨가 방귀를 두 번이나 뀐 것에까지두 귀가 바빠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짜증이 났다.
술동이를 들고 나올 때 광문을 채우지 않고 지쳐두어 쥐 들어가 굿하는 소리엔 정말 참을 수가 없었다. 부엌에 대고 광문 좀 내다보라는 소리가 곧 입 안으로 고이는 것이었지만 그래도 그녀는 고사건 제사건 정성이 제일이라며 꾹 눌러 참은 거였다. 고사를 끝내니 그처럼 주착이게 기승이던 소변도 별일이다 싶게 쏙 들어가 있었다. 그녀는 땀을 닦았다. 고랏댁 손에 떡 이 썰어지면서 장독대를 비롯하여 양순이 신실이 두 처녀는 떡 그릇을 들고 돌아다니기가 바빠졌는데 떡 그릇은 윗방, 사랑방에서 골방에, 그리고 벽장과 툇마루 끝에도 놓여졌고 변소, 우물, 부엌마루, 부뚜막, 헛간, 외양간 순서로 놓여나갔으며 광은 맨 나중 차례로 돌아갔다.
광으로 떡 그릇을 들고 갔던 건 양순이었다. 그녀는 코를 막은 술내에 우선 두 눈을 휘둥거렸는데 다시 살펴보니 광 한복판엔 술독이 나자빠져 있고 바닥은 지게미와 찌꺼기로 뒤발하고* 있어 미끄러워 발도 못 붙일 지경이었다.
“엄니, 술바탱이가 왜 나둥글어졌데유.” 양순이의 고함에 고랏댁은 뛰어나와 봤지만 하도 터무니없고 뜻밖이어서 영문조차 가늠할 길 없이 된 일이었다.
“이게 웬일이랴 잉 원쩐 일여……”
고랏댁이 두 눈을 뒤집어쓰며 소란 떠는 바람에 황씨가 뛰어나왔고 이어 선출이와 수송이, 곽서방, 철호가 머슴방에서 뛰쳐나왔다. 외양간이 비워져 있는 걸 발견한 것도 양순이였다. “얼라, 엄니 소 워디 갔댜?” “소?” 사람들은 광을 버리고 외양간 앞으로 몰려 법석거리기 시작했다. “소가?” “소여…….” “큰일 났네.” “소 쥑이겄는디.” 그들은 같은 순간에 각기 한마디씩 내뱉으며 대문 밖으로 내달았다. 그들은 한결같이 도둑이 들었다기보다 술지게미로 목을 축인 소가 거나 해지자 계속 술내가 풍기는 광을 곁에 두고 더 참질 못해 고삐 줄을 끊었는지 풀었는지 하고 나와 대가리와 뿔로 비벼 광으로 들어가곤 술 한 독을 다 먹어치운 것으로 추측한 것이다. 고랏댁 가늠으론 쌀 한 말을 담아 거르면 보통 막걸리 엿 말이 났다. 그러니까 소는 줄잡아 막걸리 너 말가웃치를 단숨에 먹어치운 셈이었다.
선출이와 황씨는 눈이 뒤집혀 있었다. 아니 간이 뒤집혔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소는 황씨네 밭마당 가 우물 도랑 건너 타작마당에서 주정하는 중이었다. 주정이 아니라 속에서 난 불을 끄는 꼴이었다. 펄ᅟᅥᆯㅍ 뛰다 나뒹굴고 비칠거려 일어났다 대가리를 처박고 엉덩춤이 한창인가 하면 무릎을 꿇다 모로 나자빠져 버둥대곤 했는데 사람들은 그저 한갓 장승이 달리 없었다. 선출이와 황씨가 뛰어들며 고삐를 잡으려 했을 때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 두 사람을 붙잡고 늘어졌다. 위험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얼마나 그랬나 소가 탈진해버리자 황씨는 내 소 살리라고 울부짖기에도 지쳐 두 다리를 뻗고 주저앉았고, 선출이는 푸닥거리 끝난 뒤 떡 못 얻어먹은 사람마냥 싱거운 얼굴에 허수아비 옷 벗겨 입힌 등신이 돼 있었다. 속으로 황씨가 생시 아니 몽유 중이기를 바랄 즈음 선출은 차라리 사람 죽는 꼴을 봄이 낫겠단 생각을 하고 난 뒤의 일이지만. 모두들 넋 나가 하는 사이 누군가가 소리 질렀다.
“짚토매(짚단) 점 가져와, 소 얼어 죽겠다.”
누군가가 짚누리를 헐고 짚 몇 단을 가져왔다. 이윽고 마당 한복판엔 때 아닌 모닥불이 화룽화룽 타올랐다. 또 누군가는 먹은 걸 토악질시켜 게워내도록 해야 산다고 양순이에게 맷돌에 녹두를 타 오도록 재촉했다. 부랴부랴 맷돌에 녹쌀* 낸 녹두가루를 밍근한 물에 타서 소 주둥이에 한 대야나 들어갔지만 워낙 의식불명인 판이라 시간이 가도 별 효과가 없었다. 이런 경우엔 수의가 박사래도 소용없겠단 소리만이 잦아질 무렵 소는 잠이 들어버렸다. 깊은 잠이었다. 아주 실신한 게라고 사람들은 말했다.
날씨는 섣달 날씨였고 얼어 달아나는 바람은 삼경을 넘었는데 소가 어른인 마당 한가운데선 불티만이 하늘 높이로 치솟고 치솟곤 했다.
그리고 거기서 그만이었다. 아무런 보람이 없었다. 암소는 제 한 몸만 믿고 걸었던 기대와 희망을 헌 멍에 벗어던지듯 하고 결국 가죽만 남기게 된 것이었다.
“배신을 해도 유만부동*이다. 이 괘씸한 놈아, 이 괘씸한 놈…….”
황씨가 소에게 달려들어 덜미를 꼬집어 뜯으며 혀를 깨무는 뒤에서, 고랏댁은 어서 날이 새어 소 배를 가르고 태중의 새끼를 꺼내면 푹신 고아 남편 몸보신이나 시키리란 생각과 함께 모닥불에 짚단을 더 얹었다.
밤이 깊어가면서 마을 사람들은 모두 속으로 죽은 고기는 반값이니 몇 근 사두면 그믐 대목까지 곰국을 내먹겠다고 치부하면서도* 겉으론 하눌 아래 이 동네 서고 소가 술 취해 죽었다는 건 듣고 보기 처음이라고 탄식이 거듭이었다.
계속 모닥불은 터지게 얼어붙은 하늘을 태웠고, 타는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슬픔처럼 곡성이 멀리로 퍼지며 산과 들도 울먹이기 시작하게 했다. 겨우 제정신이 온 선출이가 사 년간 모아온 아픔으로 몸부림인 곁에서 신실 이마저 신세타령 삼아 목놓아 울어대고부터는.
『월간중앙』 (1970. 10); 『이문구 전집』 2권 (랜덤하우스중앙 2004)
이 문 구
이문구(李文求) 1941년 충남 보령에서 태어나 6·25 와중에 집안이 풍비박산 나는 비운을 맞으며 문학의 길로 들어섰다.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뒤 1965년 『현대문학』에 단편 「다갈라 불망비」 가 추천되어 등단했다. 급속한 근대화·도시화에 따른 농촌의 피폐와 그로 인해 파괴된 전통적 삶에 대한 그리움 등을 그려왔으며, 작품마다 충청도 특유의 사투리와 넉넉한 해학이 넘쳐난다. 주요 작품으로 ‘관촌수필’과 ‘우리 동네’ 연작, 「해벽(海壁)」 「유자소전」 『장한몽』 등이 있다. 『월간문학』 편집장, 자유실천문인협의회 간사,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 등을 역임하고 2003년 2월 25일 타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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