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오랜만에 다시 시를 쓰게 되었다. 그것도 그녀 때문이었다. 내겐 너무 아름다운 그녀.. 아마도 내 눈에 콩깍지가 씌운 모양이다. 그 때문에 내 소중한 것을 잃었다. 두 번째 문자를 보내고 나서 결국 현실적인 모든 것을 잃었다. 할 수 있는 것이 시를 쓰는 일 외에는 없었다. 내 지난 사전에 없는 짝사랑에 목숨을 건 바보가 되었다. 그래서 짝사랑의 슬픔도, 짝사랑의 처절한 아름다움도 알게 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베인 상처가 너무 아프다. 알고 보면 실연이라 할 것도 없는 온전한 나만의 짝사랑이었다. 그래서 더욱 아프다. 그렇지만 사랑하지 못할 사람을 사랑한 것도 아니고, 그 덕분에 나에게는 소중한 이 시집이 태어났다. 옛날의 시혼이 분명 다시 살아나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보름 가까이 전국을 떠돌았다. 너무도 그립고 보고 싶어서. 애마와 여행 다니는 내내 그녀가 마음속에 들어 앉아 내 머릿속에 살아남아 집요하게 따라 다녔다. 내가 바라보는 눈앞 어디서건 언제나 그녀가 있었다. 망연히 바라다보았던 동해안의 하저리 푸른 바다로, 깊은 산속으로 밤낮을 떠돌았다.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이랴. 이레 밤낮 마음속에 응어리진 그리움이 내 사랑이 세상에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보면 보름 가까이 괴로워하며 세상 여기저기를 떠돌다 일주일의 고통스런 산고 끝에 태어난 사생아(즉흥시)라고 해야 옳다. 한갓 이름 없는 무명시인의 시일 뿐이다. 나 지신을 숨기고 싶었다. 내 분신이 무사히 이 바닥에서 살아남도록 하기 위해 무엇인가 해주고 싶은데 그럴 수 없는 안타까움만이 남았다. 무명시인은 그냥 말없이 사라질 뿐이다. 밤하늘의 수없이 많은 별들처럼 나도 그렇게 이름 없는 별이 되고 싶다. 그래도 그들 수많은 별들 가운데 내 마음속에는 네가 가장 아름답게 빛난다. 내 마음에 숨겨진 절절한 그리움을 시로 승화시키려고 며칠 동안 몸을 혹사했다. 그래야 다시 찾아온 시혼이 달아나지 않을 테니까.. 끝까지 부여잡고 너를 마침내 세상에 태어나게 했다. 이제 네가 세상에 나가 무사히 살아남는 일만 남았다. 나에게 너무 가슴 아픈 기억으로 태어난 보잘 것 없는 내 시어들이 가슴 아픈 누군가를 어루만져주고 누군가로부터 사랑 받을 수 있다면 그것만이라도 더 바랄 것이 없다 하겠다.
(바람꽃 지음 / 보민출판사 펴냄 / 116쪽 / 46판형(127*188mm) / 값 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