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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독립운동가이자 한국 불교의 큰 스승이신 용성 진종조사의 오도일 129주년 기념식에 참석하여 기념법문과 즉문즉설 강연을 한 후 유수 스님의 법호 수계식에 참석했습니다.
어젯밤 울산 두북에서 주무신 스님은 새벽 4시에 일어나 예불과 기도를 한 후 5시에 아침 식사를 하고 5시 30분에 두북을 출발하여 전북 장수 죽림정사로 향했습니다. 아직 해가 뜨기 전이라 동쪽 하늘에 눈썹 모양의 그뭄달과 샛별을 선명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스님은 “와, 달 봐라” 하며 환한 웃음을 보였습니다.
▲ 새벽 그뭄달
오늘은 석가여래 부촉법 제68세이시고 석가여래 계대법 제75세이시며 조선불교중흥률 제6조이신 용성진종(龍城 震鐘) 조사님께서 오도(悟道)를 하신 지, 다시 말해 깨달음을 얻으신 지 129년이 지난 129회 오도 기념일입니다. 그리고 기념식이 열린 죽림정사는 용성 진종조사님께서 태어나신 생가 터를 복원하여 용성조사의 유업을 기리고자 불심 도문 큰스님이 지은 사찰입니다. 오늘 기념식에는 700여명의 정토회 경전반 수강생들이 참석해 죽림정사는 오랜만에 북적이며 활기를 띠었습니다.
9시 30분 무렵에 장수 죽림정사에 도착한 스님은 곧바로 역대전등 제대조사님들께 올리는 다례제에 참석했습니다.
▲ 다례제
오도하신 129회 기념일인 오늘, 우리는 용성스님뿐 아니라 과거의 일곱 부처님, 그리고 용성스님 이전과 용성스님 이후의 법을 계승하신 69조사 7대사, 그리고 저 벽화에 들어 있는, 아까 다례 지낼 때 나왔던 수많은 선지식들, 즉 부처님의 10대 제자를 비롯한 그런 분들에게 오늘 이 법이 여기까지 이어지도록 해주신 은공을 생각하며 한 배 한 배 절을 올리고 다례를 지냈습니다.
이어서 10시 30분부터 용성조사 오도일 기념식이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삼귀의, 반야심경 봉독, 국기에 대한 경례, 애국가 제창, 순국선열 및 호국 영령에 대한 묵념이 차례대로 있은 후 다함께 용성 조사님이 작사한 ‘온 겨레의 노래’를 합창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온 겨레의 노래’의 가사 속에는 조사님의 조국과 겨레에 대한 사랑이 그대로 담겨 있는 것 같았습니다.
▲ ‘온 겨레의 노래’를 부르는 대중들
“백두산이 아빠 되어 단군 겨례 이루었고 한라산이 엄마 되어 단일 기백 이루었네
북녘 송화 남녘 낙동 젖줄 되어 흐르러니 자손만대 이어가며 이 강산을 가꿔 가세
만세 만세 만만세는 단군겨레 만만세요 만세 만세 억만세는 우리 겨레 억만세라“
노래를 통해 잠시나마 조사님의 숨결을 잠시 느껴본 후 이어서 죽림정사 사무국장인 김정광님이 조사님의 일생이 담긴 간략 연보를 읽어주었습니다. 탄생, 출가, 득도와 수계, 견도, 비구게와 대승보살계 수지, 독립운동, 유순 10사목을 남기기 까지의 과정을 들으며 조사님의 삶을 다시 한번 꼼꼼히 상기해 볼 수 있었습니다.
▲ 용성조사 오도일 기념식이 열린 용성교육관
이어서 스님이 법상에 올라 용성조사의 업적과 그 의미에 대해 기념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용성조사님은 1864년 음력 5월 8일 이곳 전북 장수군 번안면 죽림리에서 출생하셨습니다. 1864년은 이 땅의 백성들이 가장 곤궁하게 살던 때입니다. 조선왕조와 관리들로부터 가렴주구(苛斂誅求)를 당해 많은 사람들이 굶어죽고, 병들어 죽고, 집을 떠나 유민이 되었던 아주 험난한 시기였어요. 1862년에는 견디다 못한 백성들이 전국적으로 민중봉기(삼도 민란)가 일어나기도 할 정도였어요. 최제우 선생께서 이런 고통에 빠진 백성을 구하고자 1860년에 동학을 창도하고 전파하셨지만 오히려 관헌들로부터 혹세무민(惑世誣民)한다는 모함을 받고 체포되어 1864년에 순교하셨고요.
이러한 국난의 시기에 조사께서 탄생하셨습니다. 77세로 열반하시기까지 용성조사님께서 살아가신 평생이 험난한 시기였습니다. 나라는 점점 기울어져가고 외세는 침공해 들어오고, 그래서 동학혁명이 일어났지만 수십만 명이 학살당하고, 결국은 나라를 빼앗겨서 나라를 되찾고자 많은 사람들이 항쟁하는 그런 시기에 한평생을 사셨습니다.
조사님은 1940년 2월 24일에 열반하셨습니다. 해방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어요. 그분의 활동이 결과적으로 얼마나 큰 성과를 냈느냐만 가지고 평가할 수 없는 것은 그분이 이런 상황에서 사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어려운 가운데서도 이런 일을 하셨다는 게 중요합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제 몸뚱이 하나도 건사하기 어렵고 제 가족 하나도 보호하기 어려운 시기에 조선조 500년 동안 정부로부터 핍박받아 거의 소멸 지경에 이르렀던 불교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불교 중흥의 원을 세우시고 새로운 불교 운동을 전개하셨습니다. 또 빼앗긴 나라를 되찾아서 이 민족을 다시 일으키고자 민족 중흥의 원을 세우시고 평생 동안 독립운동을 하셨습니다.
이게 말이 쉽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요즘 같이 먹고 살 거리가 충분하고 권리가 보장된 민주주의 사회의 독립된 나라에서 살면서도 제 몸뚱이 하나 건사하기에 급급하고 제 가족 먹여 살리기 급급하다고 아우성치는 우리들에 비해 본다면 가히 불가능한 일을 하셨어요.”
제 몸도 건사하기 어려운 험난한 시기에 불교 중흥을 위한 씨앗을 심고, 이와 병행해서 독립운동까지 활발히 전개했다는 것은 가히 불가능한 일을 해낸 것이라는 말씀이 무척 인상 깊게 다가왔습니다. 용성 조사가 살았던 시대적 배경까지 조망해 보니 그 가치가 더욱 빛나 보였습니다.
이어서 스님은 용성 조사가 불교 중흥을 위해 한 일들과 독립 운동을 위해 한 일들을 주욱 설명해 주었습니다. 교화의 3대 지침인 불교의 지성화, 대중화, 생활화, 그리고 맥이 끊어진 정법의 계승, 찬불가를 만들고 어린이 포교를 최초로 시작, 대각교의 창립, 삼귀의 오계 수계 의식의 복원, 최초의 한글 경전 번역, 선농일치를 위한 화과원의 운영,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전국 방방 곡곡을 찾아 다닌 이야기, 기미년 3.1독립운동 선언서 낭독을 주도한 점, 대한제국 부흥 운동을 대한민국 수립 운동으로 인도하신 점, 윤봉길 의사의 상해 파견, 대한의사군 1만명 제창, 유훈 10사목을 남기신 점까지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조사님의 삶에 대해 자세하게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기념법회를 마친 후 곧바로 즉문즉설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즉문즉설 강연에 앞서 스님은 용성조사님이 남기신 유훈 10사목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용성조사는 미래에 불교가 다시 일어나고 우리 민족이 다시 일어나려면 10가지 공덕을 지어야 한다고 해서 10사목을 밀봉해서 유훈으로 남기셨는데, 스님은 “그 유업이 이제 우리들에게 돌아왔다”고 하면서 “무거운 짐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감사히 받아서 기꺼이 짊어지고 유업을 완성해서 불교가 새로워지고 나라가 통일되도록 하자”고 당부하며 유훈 10사목의 의미를 하나 하나 설명해 주었습니다.
“유훈 10사목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역사의식입니다. 조상에게 항상 감사할 줄 알아야 하듯이, 역대 전등 제대 조사, 천하종사, 모든 선지식들이 계셨던 덕분에 우리가 여기까지 온 거예요.
첫째, 이 땅에 불교가 제일 처음 도래한 곳이 가야입니다. 아유다 공주와 장유화상께서 AD 48년에 인도로부터 여기까지 직접 불교를 전래한 거예요. 우리나라 최초의 절이 창원 뒤쪽에 있는 가야정사입니다. 가야불교 초전법륜 성지인 가야정사를 잘 가꾸라는 첫 번째 말씀은 그 은혜를 고마워할 줄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둘째, 고구려에 불교가 처음 전래된 것은 AD 372년, 소수림왕 2년 때 순도화상에 의해서입니다. 초문사, 이불란사가 그 곳입니다. 지금은 중국에 있어서 우리가 가꾸기가 어렵습니다.
셋째, 백제 불교 초전법륜 성지를 잘 가꾸라는 말씀입니다. 백제는 AD 384년에 동진으로부터 마라난타 대사가 법을 처음으로 전했어요. 당시 백제의 수도는 하남 위례성이었습니다. 오늘날 서울 잠실 쪽에 있는 위례토성인데 지금 서울시가 성역화한다고 하고 있죠. 마라난타 대사가 정토회 서초법당 뒤쪽에 있는 우면산 대성사에 머무셨기 때문에 대성사가 백제 불교 초전법륜 성지입니다.
넷째, 신라는 불교를 국법으로 금지했기 때문에 아도화상이 국경 근처에 몰래 숨어서 비밀스레 불교를 전했습니다. 그곳이 지금의 구미시 도개면 모래장자의 샘이 있는 모래장자의 집입니다. 그래서 거기가 신라 불교 초전법륜성지입니다. 당시 나라가 하나가 아니라 넷이었기 때문에 각각의 불법의 첫 번째 전래지를 잘 가꾸라는 유훈이에요. 그 분들이 없이 오늘 우리가 어떻게 있었겠느냐는 뜻입니다.
다섯째,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 불교 중흥이 일어날 때, 신라에서 가장 중요한 성산은 남산과 낭산입니다. 중생사, 문무대왕 능지탑, 사천왕사, 의상조사가 출가한 황복사, 삼국통일을 발원한 선덕여왕릉이 있기에 낭산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남산은 지금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만큼 온 산이 불교성지입니다. 그래서 낭산과 남산을 잘 보호하라고 하셨어요.
여섯째, 남산의 일부이기도 한 고위산에 가면 천룡사라는 절이 있습니다. 천룡사가 흥하면 나라가 흥하고 천룡사가 망하면 나라가 망한다고 전해지는데 지금은 페허가 됐습니다. 그 천룡사를 복원해서 대한민국의 통일과 앞으로의 발전을 이루라는 이야기입니다. 여기까지가 여섯 가지입니다.
여기서 머무르지 않고 더 나아가라고 하셨어요. 이 법이 한국이 아니라 인도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이 법이 시작된 인도의 5대 성지를 가꾸라고 하셨습니다. 부처님이 태어나신 룸비니, 깨달음을 얻으신 보드가야, 처음으로 설법하신 사르나뜨, 열반하신 쿠시나가라, 이 4대 성지에 부처님께서 가장 오랫동안 머무셨다고 하는 쉬라바스티, 다시 말해 사위성을 더했습니다. 사위성, 즉 기원정사는 금강경이 설해졌다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정토회에서 매년 이곳을 성지순례를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불법이 다시 새로워져야 합니다. 그러니 우리 한국 불교 신자들도 불교대학 다니면서 불교와 경전을 제대로 공부하고. 인도를 순례하면서 부처님의 발자취를 경험하고, 이렇게 불자로서의 뭐가 있어야 하는데 그냥 ‘갓바위 가서 기도하면 한 가지 소원은 들어준다더라. 우리 아들 시험에 걸리게 해주세요’ 이런 수준을 못 벗어나고 있다는 이야기예요. 그래서 용성스님께서 이 새로운 불교 운동을 펼치셨어요. ‘불교’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이 얼마나 엉뚱한 짓을 하면 ‘대각교(大覺敎)’라고 이름을 바꾸었겠어요?
일곱째, 경전을 한글로 번역해서 100만권을 유포하라는 것입니다.
여덟째, 사람들에게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100만명 이상에게 설해서 불자가 되도록, 수행자가 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백만이라는 숫자가 나오지요? 백만 권을 유포하라, 백만 명을 교화하라고 한대서 백만에 그쳐야 할까요? 그 당시의 백만은 아무도 없을 때의 백만이기에 어마어마하게 큰 수였습니다. 누구나 다 불법에 인연을 맺을 수 있도록 많은 이들에게 유포하고, 누구나 다 수행자가 될 수 있도록 하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지금 카카오스토리에서는 140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에게 희망편지가 매일 나가고 있습니다. 희망편지 앱이나 유튜브, 팟캐스트 등을 합치면 매일 200만 명 정도가 법문을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불법을 널리 전해야 해요. 여러분들도 다 불교대학 다니고 지금 경전반까지 온 거니까 졸업한다고 끝내지 말고 전법을 해야 되겠죠? (청중 웃음)
아홉째, 이 불법을 백만 명에게 전하는 것에서 머무르지 말고 전 세계로 유포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전 세계로 다니잖아요.
열째, 맨 마지막에는 다시 돌아와서 수행을 은밀히 하라는 것입니다. 수행을 자랑삼아 하지 말고 남이 보든 안 보든 아주 은밀히 수행하라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하면 불교만 새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이 공덕으로 나라가 독립되고, 요즘으로 말하자면 통일이 되고 이 나라가 복된 나라가 된다는 이야기예요. 여러분이 여기 왔으니까 마음을 다시 한 번 새롭게 하십시오. 마음을 다시 내는 것을 발심이라고 해요. 그렇게 발심을 하시기 바랍니다.”
유훈 10사목에 대해 설명을 듣고 나니 지금 스님이 하고 있는 일들도 모두 용성 스님의 유훈과 연관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즉, 지금 시점에서의 민족 중흥은 평화와 통일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고, 지금 시점에서의 불교 중흥은 바른 불교를 대중에게 널리 전파해서 생활과 결합하는 새로운 불교를 만드는 것이 될 것입니다.
곧바로 이어진 즉문즉설 시간에는 총 4명이 스님에게 질문할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20대 청년은 전 세계로 불법을 전하기 위해 그 씨앗이 되는 청소년 포교에 대해 정토회는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 물었고, 40대 여성 분은 친구의 권유로 다단계를 했다가 상처를 받은 이후 대인 관계에 벽이 생겼는데 어떻게 수행을 해야 하는지 물었고, 40대 남성 분은 불교대학을 졸업하고 자신과 똑같은 불명을 받은 사람을 많이 만나서 기분이 좀 나빴는데 불명을 주는 기준이 어떻게 되는지, 집에 불상을 모시는 것이 나쁜 것인지 물었습니다. 스님은 각각에 대해 명쾌한 법문을 들려주었습니다.
그 중에서 통일에 반대하거나 부도덕한 사람들을 보면 과연 평화 통일이 가능한지 의문이 든다는 한 청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얼마전 제가 일했던 회사는 거물 정치인과 연관되어 비리가 많았고, 휴일도 거의 없다시피 일을 시켰으며, 시에서 받는 지원은 다 챙기면서 노동자들은 힘들게 하는 곳이였습니다. 스님은 통일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향해 ‘그 사람들은 그 사람들이고 우리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하셨지만 저는 그런 사람들을 보면 도저히 이해가 안 되고 속에서 불이 나요. 그래서 통일이 된다 하더라도 정말로 모든 국민들이 다 좋은 평화통일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듭니다. 여기서 법문 들을 때는 ‘아, 열심히 하자’ 하다가도 밖에 나가서 그런 걸 보면 ‘아, 이게 될까?’ 그런 마음들이 올라옵니다.”
“그런 마음 때문에 이 나라가 사분오열되는 거예요. 질문자는 ‘저런 사람은 안 되겠다’고 하지만 그 사람은 질문자를 보고 ‘저런 꼴통은 안 되겠다’고 하니 사분오열이 되는 겁니다. 독립운동할 때도 그랬어요. 나라를 빼앗겼으니 누구나 다같이 힘을 모아야 할 텐데, 유생들이 승려들더러 ‘중들하고는 같이 못 하겠다, 상놈들과 어떻게 같이 밥을 먹느냐’ 이러다가 내부 분열이 나서 깨지곤 했단 말이에요. 나라의 독립을 위하는데 상놈이면 어떻고 양반이면 어떻고 스님이면 어떻고 유생이면 어떻습니까? 이걸 다 포용해야 해요. 과거 친일배의 자식이라 하더라도 ‘계속 친일하겠다’ 하면 문제지만 ‘과거에는 그랬지만 지금은 나라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일하겠다’ 한다면 같이 참여시켜야 합니다. 전두환 대통령도 ‘평화통일을 위해 함께 하겠다’ 하면 우리가 어깨동무하고 함께 가야 합니까? 빼야 합니까?”
“함께 가야죠. 그런데 그 사람들이 안 하잖아요.”
“그쪽에서 안 하는 건 놓아두고요. 안 하는 건 놓아두고 ‘하겠다’ 하면 같이 해야지, 다 없애 버리면 나중에 하겠다는 사람이 없잖아요. 놓아둬야 나중에 ‘하겠다’고 하면 데리고 가죠.” (청중 웃음)
“네, 그런데 안 하려고 하잖아요, 국가 최고 통수권자가 안 하려 하니 그게 최고 문제가 아닌가 싶어요.”
“왜 안 하자고 그래요? 통일은 대박이라면서 얼마나 열심히 이야기하는데요.” (청중 웃음)
“그런데 옆에서 보면 진짜 안 하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볼게요. 바람을 피우고 들어온 배우자에게 ‘너 바람 피웠지!’ 하니까 ‘아니야’ 해요.
‘피웠잖아!’
‘아냐, 난 너만 사랑해.’
‘이게 어디서 거짓말이냐?’
‘아니야, 나는 정말로 너만 사랑해.’
바람피우고 왔을지언정 말이라도 듣기 좋게 해주는 게 나아요? ‘그래, 피웠다. 어쩔래?’ 이렇게 나오는 게 나아요? (청중 웃음)
‘통일하지 말자’ 이러면 통일하자는 사람과 통일하지 말자는 사람이 싸워야 하잖아요. 통일 세력과 반통일 세력이 서로 맞서야 해요. 그런데 저쪽에서도 ‘통일하자’ 하고 우리도 ‘통일하자’고 하니까, 내용은 조금 다르긴 해도 통일하자는 사람은 상호 어떤 통일을 할 거냐를 두고 싸워야 할까요? 경쟁해야 할까요? 경쟁해야 돼요. ‘하자’와 ‘하지 말자’는 적대관계가 되지만, ‘하자’는 데 뜻을 같이 한다면 ‘어떻게 할 거냐’, ‘무엇을 위해 할 거냐’를 갖고 서로 경쟁을 해야 되는 문제입니다. 경쟁이 좋아요? 적대가 좋아요?”
“경쟁이 좋습니다.”
“그래요. 정부도 ‘통일하자’ 하니까 질문자가 ‘통일하자’고 해도 적어도 반정부 운동은 안 되잖아요. 북한이 지금 통일하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지만 그래도 이번에 카드섹션 보면 ‘조기통일’이라고 붙여놨잖아요. 그걸 보고 ‘말만 저러지’ 하지만 그게 아니에요. 하자고 하니까 대화하기가 얼마나 쉬워요? 꿍꿍이는 좀 다르더라도 하자고 하는 편이 낫잖아요. 배우자가 바람피우고 왔지만 말이라도 ‘안 피웠다’고 이야기해주고, ‘그래도 너만 사랑한다’라고 해주는 편이 좋지 않아요? (청중 웃음)
살고 안 살고는 내가 결정할 수 있잖아요. 상대가 무슨 말을 하든 안 살겠다고 결정했으면 ‘안녕히 계세요’ 하고 그만두면 돼요. 어차피 살 바에야 ‘바람 안 피웠다. 너만 사랑한다’라고 말해주는 인간하고 사는 것이 낫지요. ‘그래, 바람피웠다. 어쩔래?’하는 인간하고 어떻게 살겠어요? 안 살려면 상대가 뭐라고 말하든 상관없지만 살려면 그렇게라도 말해주는 게 나한테 유리해요. 통일을 하려면 통일을 반대하는 사람과도 통일 국가 안에서 같이 살아야 합니다.
질문자처럼 생각해서 ‘통일에 방해되는 것을 죽여버리자’든지 ‘통일이 되고 나면 반대하던 놈들을 색출해 죽여 버리자’ 그러면 공산국가처럼 되는 거예요. 공산국가는 반대하는 사람들을 다 골라내어 죽여 버렸잖아요. 보복을 하면 속은 시원하죠. 그런데 우리는 불교신자잖아요. 부처님은 보복하지 말라고 하셨단 말이에요. 세상에는 그런 사람도 있는 거예요. 다 우리 뜻처럼 되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데 이 세상에는 아마 질문자의 뜻과 반대되는 사람이 더 많을 거예요. 그러니 그런 사람들이 있으면 우리가 자꾸 노력해서 세를 하나하나 더 모아가야 해요. 모아갈 생각을 해야지 그걸 미워하면 자기만 손해예요. 잘 안 되는 건 질문자가 아직 중생심이라서 그런 겁니다.”
“예,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청중 웃음과 박수)
“저도 이해가 됩니다. 진짜 꼴 보기 싫어요. (청중 웃음) 그런데 감정대로 하면 아무것도 안 돼요. 부부며 부모자식이며 형제 간에도 다 감정대로 하다가 싸우고 원수 되잖아요. 우리는 다 그런 감정을 갖고 있지만, 수행이라는 것은 그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감정을 넘어서야 합니다. 그런 감정이 이해는 됩니다. 그러나 그것을 넘어서야 앞으로 한 사람이라도 더 이 대열에 동참시킬 수 있다는 이야기예요.”
통일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껴안을 수 있어야 통일을 향해 한발자욱이라도 더 나아갈 수 있다는 말씀이였습니다. 나로부터 시작하는 포용이 통일의 첫걸음임을 되새겨 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1시간 동안의 즉문즉설 시간을 마치고 모두 야외로 나와 기념사진 촬영을 했습니다. 매주 영상으로만 스님의 얼굴을 보다가 직접 가까이에서 스님을 만나니 모두들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죽림정사 앞 쪽에 조성된 물빛 공원에 흩어져서 점심 식사를 한 후 오후 2시 20분부터는 불심 도문 큰스님을 모시고 유수 스님의 법호 수계식이 열렸습니다. 유수 스님은 법륜 스님의 제자로서 대학생 시절부터 스님과 인연을 맺어 정토회를 함께 일구어 왔습니다.
출가하여 계를 받게 되면 법명을 받게 되고, 법명을 받고 스님 생활을 오래 하여 도가 깊어져 큰스님의 인가를 받게 되면 법호를 받게 됩니다. 법호는 당호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오늘은 유수 스님이 불심 도문 큰스님으로부터 법호를 받는 날입니다.
법상에 오른 불심 도문 큰스님은 부처님으로부터 마하가섭 존자에게로, 그 뒤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면면히 이어온 조사들의 법맥을 이야기해주면서 오늘은 불심 도문 큰스님에게서 법륜 스님에게, 법륜 스님에게서 다시 유수 스님에게 그 법이 이어져 가게 되었다고 오늘 법호 수계식의 취지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 유수 스님 법호 수계식
그리고 큰스님이 법륜 스님에게 25년 전인 1991년 1월 2일 백제불교초전법륜성지 우면산 대성사에서 전해준 전법게를 읊어 주었습니다.
“부처님과 부처님이 서로 보지 아니하고, 조사님과 조사님이 서로 전하지 아니하도다. 부처님과 조사님의 혜명법은 그 정한 법이 있음이 없음이로다.”
그리고 이어서 도문 큰스님은 오늘 유수 스님이 받는 법호는 ‘대능’ 이라고 하면서, 석가여래부촉계대법 78세 지광 법륜 스님을 이어 오늘 석가여래부촉계대법 79세가 되는 유수 스님에게 전하는 전법게를 읊어주었습니다.
▲ 전법게를 읽는 불심 도문 큰스님
“불타 조사의 정법 안장을 전하여 이후 5대를 경과하면 세계화가 되리라.”
대중들도 모두 전법게를 함께 따라 했습니다. 큰스님은 중국에서 달마 대사 이후에 5대가 경과하여 6조 혜능 대사에 이르러 불법이 널리 전해졌듯이 유수 스님으로부터 5대가 경과한 이후에 불법이 전 세계로 전해지도록 하라는 뜻이라며 전법게의 뜻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전법게를 설한 후 큰스님은 법륜 스님을 통해 전법문, 발우, 주장자, 죽비를 유수 스님에게 전했습니다.
▲ 불심 도문 큰스님에게서 받은 전법문을 유수 스님에게 전하는 법륜 스님
▲ 불심 도문 큰스님으로부터 법호를 수계 받은 유수 스님
법호 수계식에 참석한 700여명의 경전반 수강생들은 법호를 수계 받은 유수 스님에게 축하의 박수를 뜨겁게 보내주었습니다. 그리고 법륜 스님과 유수 스님은 전법게를 설해준 불심 도문 큰스님에게 삼배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법륜 스님은 법호 수계식을 마친 후 대중들을 향해 “유수 스님이 전법게를 받았듯이 여러분들도 오늘 모두 똑같이 부처님의 정법을 받은 것”이라고 하면서 “이 법을 이웃에 전해서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다 성불할 수 있도록 마음을 내어주시기 바랍니다”고 당부했습니다.
법호 수계식을 마친 후에는 경전반 수강생들을 위한 사찰 순례가 시작되었습니다. 묘수 법사님, 선주 법사님, 덕생 법사님, 세 분의 법사님이 각각 한 팀씩 맡아서 죽림정사 곳곳을 자세히 안내해 주었습니다.
▲ 대웅전 외벽에 그려진 십우도에 대해 설명하는 선주 법사님
▲ 용성교육관 외벽에 그려진 용성조사 일대기를 설명하는 덕생 법사님
용성교육관 안쪽 벽면에는 과거 7여래불, 69조사와 7대사의 영정, 역대 선지식들의 상호가 그려져 있었고, 바깥쪽 벽면에는 용성조사님의 일생이 벽화로 그려져 있었고, 대웅전 주위에는 부처님의 일생과 십우도가 벽화로 그려져 있었고, 용성기념관에는 용성조사님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었고, 대웅전 뒤에는 용성조사의 생가가 복원되어 있었습니다.
스님은 오늘 법호 수계식을 해주신 불심 도문 큰스님께 감사 인사를 한 후 오후 5시에 죽림정사를 출발하여 서울로 향했습니다.
저녁 8시에 서울에 도착하여 곧바로 평화재단에서 실무자들과 밤 12시까지 기획 회의를 한 후 오늘 일정을 마쳤습니다.
내일은 오전 10시30분에 은평문화예술회관에서 은평구민들을 위해, 저녁 7시에 경기대 텔레컨벤션센터에서 수원 시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
※ 정토회에서 진행하는 '인도 성지순례' 참가자 접수가 시작되었습니다.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인도의 10대 성지를 내 발로 직접 밟아보고 그 감흥을 느껴보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아래 배너에서 직접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