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군 주내면 유양리 산 40번지 불곡산(佛谷山)에 자리하고 있는 백화암(白華庵)은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의 말사이다. 유양(維陽)은 옛 양주의 관아가 있던 곳으로 동서로 길게 뻗은 해발 361m의 불곡산이 마을 뒤쪽에 있어 진산(鎭山)의 구실을 한다. 이곳의 관아터에는 광릉(光陵)에 다녀오던 정조(正祖)가 백성을 위해 잔치를 베풀고 신하들과 활쏘기 한 것을 기념하여 1792년(정조 16)에 세운 어사대비(御射臺碑)와 양주 향교 등이 남아있으며, 중요무형문화재 제2호인 유명한 양주별산대놀이가 이어져 오는 곳이기도 하다.
사찰측의 기록에 의하면 절은 신라말 고려 초의 선승(禪僧)으로 풍수지리설로 유명한 도선(도선, 827~898)이 898년에 창건했다고 한다. 그런데 1150년(의종 4) 최유청이(崔惟淸)이 지은 도선의 비문인 <백계산옥룡사증시선각국사비명병서(白鷄山玉龍寺贈諡先覺國師碑銘幷書)>에는 도선이 불곡산에 백화암을 창건한 사실이 나와있지 않다. 그리고 고려시대의 다른 문헌에서도 백화암에 과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지금의 백화암에 신라말 고려 초의 것으로 짐작되는 연화대좌와 주초석이 전해 오는데 이것이 원래 이 절에 있었던 것이라면 백화암은 절의 기록대로 신라 말에 창건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절의 기록에는 처음 이름이 불곡사(佛谷寺)였는데 [동국여지승람]이 간행된 이후 어느 시기에 백화암으로 바뀐 것이라고 한다. 즉 백화암의 처음 이름은 불곡사 였으나 조선 중기 이후에 백화암으로 그 이름이 바뀌었다는 것인데 과연 신라 말에 도선이 이 곳까지 와서 불곡사를 창건했는지는 단정할 수 없다. 어쨌든 백화암의 전신이 불곡사라면 불곡사는 조선 초기에 불곡산에 있었음을 [신증동국여지승람]을 통하여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백화암은 조선 초기에는 분명히 양주의 불곡산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조선 초기 이후에 들어와서 절이 어떻게 변모되어 왔는지를 전하는 자료는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어디에 근거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1592년의 임진왜란에 모두 불타버렸는데 1598년(선조 31)에 광종(廣宗)화상(또는 경선화상)이 중건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일제강점기인 1927년 무렵 간행된 [봉선본말사지]에 의하면 1868년(고종 5) 백화암에 축성루(祝聖樓)를 세웠다고 한다.
첫댓글 편히 앉아서 순례 잘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