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스쿠터를 타고 마을 어귀를 드나들다 보면...
도롯가 쪽으로 흰색 스프레이 페인트를 사용해 사람이 널부러져 있는 모양을
땅바닥에 그려 둔 것 같은 형상의 그림이 보이곤 했었다.
처음엔 그냥 무심히...
'아... 교통사고가 났었나 보다!'하고 지나쳤었다.
별로 좋은 일도 아닌 것 같고 해서 억지로 눈여겨 볼 생각도...
관심을 가지고 자세히 들여다 볼 마음도 갇지를 않았었고......
그런데 문득 그 그림에서...
자동차 같은 것이 쓰러진 사람의 머리부분을 치고 지나간 것을 알 수가 있었다.
다른 곳은 다 멀쩡한데 하필이면 그림의 머리모양 부분에 핏자욱이 보이고
모래가 듬뿍 뿌려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 정도라면 그자리에서 즉사했겠어... 쩝!'
아마도 우리 마을 사람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여태 마을이 조용한 걸로 봐서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오늘에야 비로소 그 사고 난 자리 바로 앞을 가로질러...
(내가 전에 다니던 회사를 출근 할 때면 읍내를 통하지 않고
곧바로 통영방향으로 오르곤 했던 군외곽지 우회도로 아랫쪽)
우리 마을로 들어오는 도로변 왼 쪽에 커다란 현수막이 걸렸다.
'목격자를 찾습니다...'
뺑소니 사고였다.
'지난 17일 새벽 2시 50분 경(사망 추정시간으로 봤을 때)
피해자의 머리부분을 격과하고 도주한 사건임'
-고성군 경찰서 교통사고 조사과 뺑소니 전담반-
이런 시골에서 그 시간이라면...
목격자를 찾기는 쉬운 일이 아닐 것이었다.
게다가 목격자가 없으니 사고를 내고 달아난 차종(車種)조차도 알 수가 없을 터이고......
사고를 당한 사람의 가족들은 얼마나 참담하고 비통하며 답답한 마음일까...???
더더구나 정말 나쁘고 황당한 것은...
그 사고현장의 앞 뒤 어느 곳에도 전혀 '스키드마크'(자동차가 사고를 감지하고 급브레이크를 밟은 흔적)
비슷한 자국도 보이지를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사고 직 전 사람을 발견하고도...
그리고 사고 직 후 사람을 치인 줄 알면서도...
아에 브레이크에 발을 올린 적이 없이 그냥 달려왔다가 그대로 달려가 버렸다는 말인가...???
사고현장의 상황을 보면 그랬다는 말이 분명했다.
아니면 타이어 자욱으로도 어떤 종류의 타이어인지 조금 더 나아가서는...
어떤 차종인지... 그리고 어느 쪽 방향에서 달려 왔다가 어느 방향으로 달아난 건지...
그 정도라도 추정할 수는 있었을 텐데... 말이다.
얼마 전에 '사건 사고'를 낸 범인들에 관해서 '공개수배'를 하는 TV프로에서...
비슷한 사고를 낸 사람을 지명수배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그 사람은 마침 음주를 했고 다른 사건으로 수배 중인 사람이었다.
나는 그 사고를 재현하는 장면을 보면서도...
'어떻게 사람이 저런 상황에서 브레이크를 전혀 밟지 않을 수가 있을까...???'
두 눈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나 같으면 엉겹결에 당황해서라도 브레이크에 발을 올렸을 것이다.
사고 위치로 봤을 때 사람을 치인 뒤 곧바로 우회전해서 진주'사천 방향의 우회도로로 올라 갔거나
아니면 보건소 쪽으로 하천을 가로지르는 짧은 다리를 건너 와 윗 마을로 들어 갔거나...
다리를 건너자 말자 좌회전해서 아랫마을로 향했을 것이었지만...
극히 미세한 정도의 '스키드마크'조차도 없으니 뺑소니 차량이 간 곳을 추정하기란
아주 어렵게 되어 버린 것 같았다.
만약 부근의 마을에 사는 사람의 자동차라면 여러 수백 대가 되는 것도 아니니...
모두들 모아서 바퀴만 조사해 보아도 금방 발견을 할 수 있을 것이었다.
가령 사고를 낸 사람이 알리바이를 조작해서 거짓으로 사건을 은폐하려고 하더라도......
(그런 경우 세차를 했다손 치더라도 아주 정밀한 검사를 거치면 미세한 흔적이라도
발견할 수 있을 테고 충분히 사고 차량을 밝혀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참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사람이... 사람의 탈을 쓰고... 사람의 마음으로... 그럴 수가 있다는 말인가...???
무슨 짐승이나 가축도 아니고 하물며 사람을 치고는 모른 척 달아나다니...???
허긴 여기는 시골이라 이른 아침에 도로를 살펴보면 심심찮게 크고 작은 짐승이나 가축들이
차에 치어 죽어있는 것을 볼 수는 있었다.
작게는 개구리나 뱀에서부터 크게는 고양이나 개 또는 족제비나 오소리...
심지어는 고라니까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사람이 아니던가...???
정말 나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술을 마셨거나 아니면 무면허거나 또는 다른 사건 사고로 인한 지명수배자였는지도 모르겠지만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다는 말인가...???
사람이 운전을 하고 다니다 보면 실수를 하거나 혹은 예기치 않은 돌발적인 상황으로 인해
충분히 사고를 낼 수는 있는 법이다.
그러나 아무렇지도 않게 브레이크에 발 한 번 올린 흔적없이...
그렇게 사람을 치어놓고 달아나 버린다는 건 정상적인 사람의 정신으로는
도저히 있을 수가 없을 일이었다.
너무나도 막연하게 씌어진 현수막이...
바람에 펄럭이는 것을 잠시동안 바라보면서 마음이 몹시 착잡해져옴을 느꼈다.
'피해자의 머리부분을 격과하고......'
차마 사람의 머리통을 박살내고 달아났다는 식으로 표현 할 수는 없었으리라...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