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자봉(鶯子峰·670.2m)은 꾀꼬리가 알을 품고 있는 산세여서 꾀꼬리 앵(鶯)자를 넣어 앵자봉이라 불렀고, 각시봉은 양자산을 신랑산으로 본다면
두 산은 부부이기 때문에 지어진 이름으로 부부가 함께 오르면 금슬이 좋아진다는 전설이 있다.
이 앵자봉으로 도상거리 약 60km의 헌걸찬 산줄기가 지나가니 바로 앵자지맥이다.
앵자지맥은 한남정맥 문수봉에서 북으로 가지를 치고 광주시와 이천시 경계를 따라 천덕봉(635m)으로 이어진다.
이 지맥은 남이고개에서 잠시 가라앉았다가 앵자봉을 빚어놓은 다음 해협산과 보납산으로 이어지다 남한강으로 가라앉는다.
함께 타는 양자산은 이 앵자봉에서 북동으로 가지를 치다 주어재에서 잠시 내려앉은 다음 급한 오름으로 솟아있는 산이다.
또 앵자봉 일원은 우리나라 최초로 천주교가 전파된 곳으로 유명하다.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들어 온 초기에 천주교인들이 숨어 들었을 만큼 산세가 깊었으니 바로 천진암 성지와 주어사지(走魚寺址)를 말한다.
주어사지는 산북면 하품2리 앵자봉 동쪽 기슭 해발 400여m 골짜기에 있는 폐사지.
한 스님이 절터를 찾던 중 ‘한강으로 나가 잉어를 따라가면 좋은 절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꿈을 꾸고 얻은 터라고 해서 '주어사지(走魚寺址)’다.
1779년 조선 정조 3년 학자 권철신의 주도 아래 정약전, 권상학, 이총억 등이 참석해 한역 서학서(西學書)의 강학이 이뤄진 곳이다.
당시 스님들의 도움으로 천진암과 주어사에서 천주교를 공부했던 인사들은 신유박해(辛酉迫害)로 참형을 당했으며, 이들을 숨겨준 스님들 또한
처형당한 뒤 사찰마저 폐사를 당하고 말았다.
주어사지에 있던 ‘해운당 의징대사 비((海雲堂大師 義澄之碑)’는 절두산 성당에, 부도탑은 여주시청에 가있어 주어사터는 허허한 공터로만 남아있다.
양자산(楊子山·710.2m)은 ‘평평한 들판에 버드나무가 즐비하다’는 양평(楊平)과 관련있어 뵌다.
옛날 양평에서 남한강 강변을 뒤덮었던 버드나무 숲과 함께 보였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다.
‘각시산’은 봄이면 정상부의 철쭉나무 군락이 핑크빛으로 물들어 마치 새색시 얼굴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었을 것.
하지만 지금은 무명의 봉우리에 잊혀져 가는 각시봉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고, 양자산은 남한강 남쪽에서 가장 높은 산이어서 예전에 천문대가 있었다고...
주어리 주차장과 편의시설들은 여주시에서 매년 실시하는 등산대회를 위해 조성했다.
마을 이름 주어리(走魚里)는 달릴 주(走)자와 물고기 어(魚)자를 써는데, 주어사의 전설과 관련있어 뵌다.
옛날 이 골짜기에서 물고기들이 빠른 속도로 노니는 모습에서 생긴 지명이라고도 하지만...
코스: 하품교-품실자연관 능선-337.2봉-각시봉-양자산-주어재-앵자지맥갈림길-앵자봉-철탑-주어사지갈림길-산죽-주어사지-임도-주어리마을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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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품교에서 영명사로 올라가다 서영수양관 50m 앞에서 우측 능선으로 붙으며 앱을 시작하였으니 하품교가 기점이면 약 12.5km(6시간) 정도일 것.
고도표
<월간 산>
앵자지맥
영명사로 올라가던 우리 버스가 중간에서 멈춘다. 바지런한 사람이 쪼르르 내려가 "더 올라가면 회차지점이 있느냐?"고 물어보니 없다는 주민의 대답.
일행들은 모두 영명사로 올라갈 계획이지만 나는 '백자리 품실자연관'에서 올라오는 능선으로 붙을 계획. <저 아래 우리 버스가 보인다.>
50여m 앞의 안내판이 보이는 곳에 '서영 수양관'이 있고...
안내판 좌측 임도를 따라 양자산으로 오르는 또다른 등로가 있다. 나는 빨간 화살표가 가리키는 우측으로 꺾어...
사유지인 듯한 나무 울타리를 넘어...
나즈막한 둔덕으로 접근하여...
능선으로 접근하니...
낮은 고개로 붙는 접속구간은 반듯하고, 이후 등로는 널널하고 정비가 잘 된 호젓한 길.
영명사로 올라가는 도로에서 꺾은 후 딱 3분 만에 '백자리 품실자연관'에서 올라오는 능선에 붙는다.
이제 날등으로 올라붙어...
그야말로 호젓한 산길을 걷는 산친구는 오늘 버스에서 짝지가 된 권 선생님. 그는 여든이 훌쩍 넘은 어른으로 노익장을 과시한다.
Peace be to you ! (당신에게 평화가 깃들기를 !)
불치하문(不恥下問): 지위나 나이, 학식 따위가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이장한 듯한 묘지를 지나...
이어지는 명구(名句)들. '화합하되 휩쓸리지는 않는다'는 화이부동(和而不同).
Have undying passion for what you do and you choose to do in this life.
(당신이 하는 일에 대한 끊임없는 열정을 가지고 당신은 이 삶에서 선택하고 있다.)
용기는 대단히 중요하다. 용기는 근육처럼 쓰면 쓸수록 강해진다. -루스 고든 -
(Courage is very import!ant. Like a muscle, it is strengthened by use.)
Peace comes from within, do not seek it without. (평화는 내면으로 부터 오는 것이니 밖에서 찾지 마세요. - 고타마 싯다르타 석가모니 부처 -)
호젓한 산길 내내 영혼을 촉촉히 적시는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명구들을 담아가며 첫 오르막을 오른다.
337.2m봉이다.
한 봉 따 묵었다고 농을 하며 산길을 이어가지만...
좋은 문구들은 쉼없이 산길에 걸려있다.
이정표는 내내 '백자리 품실자연관'으로 안내하고 있다. 우리는 중간에서 이 능선으로 올라 탄 것.
임도가 휘어도는 곡각지점에서...
바로 올랐지만...
금방 다시 내려선다. <그러므로 임도를 30여m 좌측으로 우회하여 능선으로 붙으면 수월할 것.>
그런 다음 다시 임도를 버리고 능선으로 직등하며...
쳐다보는 이정표.
안전시설은 백점 만점에 100점. 그때 전화벨이 울려 받아 보았더니 한덤 님이다.
올라올 때 주어사지를 함께 답사하기로 하였기에 합류를 위하여 천천히 가기로 한다.
나는 앵자산 일대에 천주교 성지가 있어 순례객들이 찾는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한덤 님으로부터 주어사지 동행답사를 권유 받았다.
품실자연관과 양자산의 딱 중간이다.
일흔이 훌쩍 넘은 한덤 님이 따라 붙는다. 한 달에 열 번이 넘게 쫓아다니다 보니 훨씬 몸이 가벼워져 가히 산다람쥐 수준이다.
내내 이정표에 등장하는 품실자연관은 영명사 입구인 98번 도로 하품교에서 약 300m 거리에 있다.
궂이 품실자연관을 기점으로 삼지 않더라도 영명사 진입도로 우측 낮은 산자락으로 적당히 살짝 올라붙으면 된다.
여주시와 양평군을 가르는 군계 능선에 올라선다. 그 새 개금아제도 따라 붙어 동행자는 4명으로 불었다.
다소 급한 오름을 지나 군계(郡界)능선에 올라 붙어 돌아보는 모습.
양자산 1.0km 이정표와 영명사 갈림길이 있는 벤치에서 잠깐 쉼을 한 후...
작은 봉우리인 각시봉에 올라선다. 아무런 표식기가 없어 배낭에서 부시럭부시럭 시그널을 끄집어내어...
각시봉(691m)이라고 적은 뒤 나무에 매달았다.
참나무 숲길을 따라 조금 내려서니...
안부에서 영명사로 올라온 우리 일행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식사하는 이 안부에서도 영명사 갈림길이 있고...
우리는 있따른 헬기장을...
연거푸 지나...
주어리 주차장 갈림길을 지난다.
양자산 고스락은 데크 시설을 갖춘 아주 널따란 공간.
기념사진을 찍은 뒤...
주위 조망을 위하여 한 발짝 앞으로 나서니 남한강의 굽이도는 모습이 보이고,
살짝 당겨보니 휘도는 강 중앙에 대하섬이 떠있다. 우측 나즈막한 산은 마명산이고, 강건너엔 한강기맥의 청계산인 듯 우뚝 솟아있다.
우측으로 한강기맥을 따라 눈을 돌리면 위용을 과시하는 듯 용문산이 우뚝하다.
산정에 무언가 시설물이 있는 듯하여...
더 당겨보니 용문산의 희미한 시설물이 확인이 되고, 그 우측에 솟은 봉우리는 문례봉인 듯.
일명 각시산으로도 불리는 양자산. 한강 이남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라 30년 전만해도 천문대가 있었고, 맑은 날이면 남산 타워가 보인다고...
다시 한 번 눈길이 가는 곳에 슬로픈지 활공장인지 하여...
살짝 당겨 확인해보니 유명산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이 있는 곳.
안내판은 마치 난수표를 해독해야하듯 몹시 난해하다.
양자산의 너른 데크전망대에서...
맞은편 앵자봉을 바라보고, 계곡 어디쯤 주어사지를 가늠해본 뒤...
건너 예사롭지 않은 마루금을 살펴보며...
살짝 당겨본다. 좌측 천덕봉에서 우측 정개산으로 이어지는 앵자지맥.
식사시간 포함하여 20여분 주위 산군들을 눈유람한 뒤 앵자봉으로 출발이다.
양자산에서 주어재로 내려서는 길은 다소 가파른 길.
작은 고개를 몇 번 만나지만 B코스로 계획된 주어재 탈출로는 아니고...
조금 더 진행하다...
354.7삼각점을 지나...
양자산 2.4km 멀어진 이정표를 지나야만...
가파른 오르막 직전에서 주어재 탈출로를 만난다.
주어재 탈출로의 이정표엔 능선 좌측 하품2리 방향이 탈출로.
나무가지 사이로 솟은 봉우리가 앵자봉?
이 빨간색 조그만 말뚝은 무언고? '한국국토정보공사 지적경계점'이다. 예전 한국지적공사가 한국국토정보공사로 바뀌었다.
이 말뚝은 공식적으로 경계나 분할점이 되는 것이라지만, 처음 본 물건이다.
<다사 9134 3592> 철탑을 지나자...
헬기장을 만나...
귀퉁이에 있는 이정표를 확인하면 관산과 무갑산은 앵자지맥에서 벗어난 산줄기이고, 뒷쪽으로 난 길은 앵자지맥 해협산 방향.
또다시 헬기장을 만나...
조금 더 진행하면 앵자봉 꼭대기.
앵자봉의 안내판.
앵자봉엔 조망 안내판이 그려져 있지만 나무가지 등으로 주위가 막혀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사지를 벌려 방향을 가리키는 이정표를...
다른 각도에서도 잡아보면 이웃한 산과 지형지물들을 모두 아우르는 것.
기념사진을 찍고...
확인하지 못하는 조망 안내판도 담는다.
위의 조망 안내판과 비교를 해보아도 정확히 알 수 없어.
다만 좌측 멀리 솟은 산은 예봉산(680m)인 듯하지만 자신이 없고, 예봉산 앞 가까이 앵자지맥의 해협산인 듯하나 또한 자신이 없어.
더 당겨보아도 정확히 짚어지지 않아. 좌측 멀리 아까 말한 예봉산(?)과 천마지맥. 그리고 그 우측 삼각형 솟은 봉은 양자산에서도 보았던 청계산(?)
산행을 갔다온 지 5일이나 지났으니 정확히 짚어지지 않는 건 당연지사.
철탑을 지나면서 주어사지로 내려서는 능선에 촉각을 곤두 세운다.
그러다가 멈춰선 이 지점. 한덤 님이 바라보고 선 능선이 주어사지 계곡을 좌측에 거느리고 내려서는 능선길로, 입구엔 아무런 지형지물이 없다.
돌아보니 그런데로 흔적은 있지만...
곧 철탑을 만나...
장애물을 넘어야 한다.
철탑을 세우면서 쌓은 석축을 두 번 타고 내려와...
마지막 세 번째 2중장애물은 우회.
그리곤 가파른 내림길을 조심조심 내려서면...
산죽지대를 만나지만 길은 더욱 뚜렷해지고...
산죽지대를 뚫고 나오면 산죽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방향을 트니 너른 공터가 보여...
확인을 해보니 주어사지로 정확히 착지하는 순간이다.
능선 갈림길에서 딱 30분이 걸려 제일 하단부의 '5호 건물지' 안내판이 있는 곳으로 나왔다.
그 윗쪽으로 이어지는 공터를 따라...
'4호 건물지'와...
연등이 달린 더 위로 오르면...
'3호 건물지'.
다시 더 위로 '2호 건물지'
그 옆엔 주어사 천주교 강학회 장소라는 녹슨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바야흐로 불교와 천주교의 화합을 확인한다.
제일 상단 '1호 건물지'를 확인한 후 내려서다...
아까 우리가 산죽 길에서 내려선 곳을 확인한다.
그리고 내려서는 길은 군데군데 연등이 달린 잘 정비된 길.
조금 내려오니...
안내판이 있는 임도에 닿는다.
조금 물러서서 돌아보는 주어사지 입구.
<클릭하면 원본 크기> 안내판에는 앵자봉에서 주어사지로 내려서는 길이 우리가 내려온 길보다 더 진행하여 그려져 있고, 다시 임도에서 주어사지로 올라가도록 되어있다.
어렵사리 창건한 주어사 스님들이 이교도(異敎徒)인 천주교도들을 돕다 희생당하고 폐사 되었으니 이 무렵만 해도 두 종교가 화합을 했던 것.
현재 앵자봉 북서쪽 천진암은 천주교 발상지로 성역화되어 있고, 주어사지 또한 천주교인들의 성역 순례처로 자리매김되고 있다.
주어사지 허허한 폐사지를 느낄 수 있는 것은 몇개의 때묻은 연등이지만 이마저도 철거하라는 천주교의 목소리가 있다고 한다.
부디 두 거대한 종교문화가 화합하여 중생을 개도하고, 평화와 사랑을 전파하는 종교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기를 염원해 본다.
주어사지 입구 임도에서 보이는 산길은 안내도에 그려진 코스일까?
비포장 임도를 걸어...
50년생 느티나무와 간이화장실이 있는 곳을 지나...
군데군데 이정표가 친절히 가리키는 데로...
맑은 내(川)를 건너면서 웃통을 벗고 세수를 한 뒤 셔츠를 갈아 입었다.
돌아보는 여주 주어사지 안내판.
400년이 넘은 우람한 느티나무를 지나면 2차선 아스팔트를 만나고...
곧 대형주차장이 마련된...
주어리 마을회관에 닿는다.
언제나 우리는 꼴찌.
깊은 산골의 폐사지(廢寺址).
절도 스님도 지나가는 사람도 없는 적막한 빈터.
뿌리째 뽑힌 주춧돌이 모로 누워 하늘을 바라보고, 무성히 자란 잡초들이 그 옛날을 덮어버린 폐사지에 가면 사람의 마음이 절로 스산해진다.
단청 화려한 건물에 금색 빛나는 불상을 모셔놓은 절집에서는 느낄 수 없는 처연한 정서의 환기가 있고, 고요한 절터에는 사색으로 이끄는 침묵이 있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남한강편 '마음이 울적하거든 폐사지로 떠나라' 중에서...>
- 폐사지처럼 산다 -
요즘 어떻게 사느냐고 묻지 마라
폐사지처럼 산다
요즘 뭐 하고 지내느냐고 묻지 마라
폐사지에서 쓰러진 탑을 일으켜 세우며 산다
나 아직 진리의 탑 하나 세운 적 없지만
죽은 친구의 마음 사리 하나 넣어 둘
부도탑 한번 세운 적 없지만
폐사지에 처박혀 나뒹구는 옥개석 한 조각
부둥켜안고 산다
가끔 웃으면서 라면도 끓여먹고
바람과 풀도 뜯어먹고
부서진 석등에 불이나 켜고 산다
부디 어떻게 사느냐고 다정하게 묻지 마라
너를 용서하지 못하면 내가 죽는다고
거짓말도 자꾸 진지하게 하면
진지한 거짓말이 되는 일이 너무 부끄러워
입도 버리고 혀도 파묻고
폐사지처럼 산다
<정 호 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