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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추천] 니체, 하이데거 - 니체의 신은 죽었다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하는 것은 첫째, 기독교적 신적 존재가 소멸하였다는 의미.
그래서 [인간적인 너무 인간적인 삶]의 입장 즉 철저한 현실주의를 옹호했다.
둘째, 허무가 세계를 휩쓸고 있다는 말.
셋째, 단순한 무신론을 설교한 것이 아니라 삶의 풍부한 창조를 누릴 것을 주장한 것.
인간이 참된 창조자가 되기 위해 신이 존재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초인"은 현실성을 위하여 존재하는 인간이며 본질적인 완성을 향하여 나아가는 인간유형의 본질이다. 초인간적인 힘의 소유자가 아니라 시대에 적합한 본질을 갖춘 존재를 의미한다.
"초인"은 인간이 도달하고자 하는 이상적인 인간상이다. 지성보다도 본능, 합리보다도 의리, 이성보다는 정열을 존중하는 의지의 인간이다. 세속화하지 않는 본연의 인간이며, 운명적인 것을 체념하는 인간이며, 항상 현실 속에서 자기 자신을 극복해 가는 용기의 소지자이다.
니체에 의하면 우리들의 세계는 "처음도 알 수 없고 끝도 알 수 없다. 모든 존재의 영원한 법칙은 끝없이 되풀이하는 회전일 뿐이다." 니체의 영원회귀는 네 가지의 기본적 의미를 가진다. 첫째는 동일성이다. 모든 것은 가고 모든 것은 들어온다. 둘째는 영원성이다. 존재가 생성을 계속하고 몇 번이고 다시 일어난다는 의미이다. 현실의 생성소멸을 영원한 것으로 파악함으로써 현실세계에 완정성을 부여한다.
셋째는 비도덕성이다. 세계는 악이 계속 존재할 것이며 또한 악은 필수 불가결한 존재이다.
넷째는 무목적성이다.
PART 1. 고뇌하는 젊은 이여 지성을 깨워라
신은 죽었다.
인간이 위대한 이유는 그가 하나의 목적이 아니라 과정이기 때문이다. 인간을 사랑하는 이유는 그가 '과도'이고, '몰락'이기 때문이다.
나는 몰락하는 자로서 사는 것 외에는 사는 방법을 모르고 있는 자들을 사랑한다. 그는 저쪽(피안)을 향해 건너가는 자이므로.
나는 사랑한다. 주사위 숫자 놀음으로 우연히 행운을 얻었을 때 부끄러워하는 사람을. 그리고 그때, "내가 부정한 도박사인가?"하고 스스로에게 묻는 사람을. 그런 사람은 자신이 파멸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사랑한다. 황금 같은 말을 행위에 앞서 공공연히 말하고, 언제나 자기가 약속한 것보다 많이 행하는 사람을. 그런 사람은 자신의 몰락을 원하기 때문이다.
위대한 예술가
쇼펜하우어- 문제가 되는 것은 최후의 독일 사람 바로 쇼펜하우어라는 심리학자이다. 허무주의를 근거로 삼은 다음 삶의 가치를 낮추기 위하여 삶에의 의지를 높였던 악의에 찬 천재가 바로 그이다. 그는 차례 차례로 예술을, 영웅주의를, 천재를, 미를, 큰 공감을, 인식을, 진리에의 의지를, 비극을 부정의 출발지로 삼았다. 그는 그리스도를 제외하고 역사상 가장 큰 심리학적 위조자이다.
꿈/ 인식과 아름다움
인식하는 사람들의 행복은, 세계의 아름다움을 늘리고, 존재하는 모든 것을 더욱 빛나게 만든다.
누구를 위한 진실인가?
삶에 있어서 실패의 의미
내가 삶에 대해서 아는 것은 더 많다. 그것은 내가 자주 삶을 잃어버릴 뻔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나는 그대들 가운데 그 누구보다도 삶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삶이란 무엇인가?
사물에 있어서의 필연적인 것을, 아름다운 것으로 간주하는 것을 나는 더 배워 나가고 싶다.
PART 2
신에서 인간으로
웃고 있는 저 사람들 /고독한 사람
선이란 무엇인가? 힘의 의지, 힘에의 느낌, 힘 자체를 인간 안에서 강화시키는 모든 것을 말한다.
악이란 무엇인가? 허약에서 비롯되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힘이 증가한다는 느낌, 저항이 극복되었다는 느낌을 의미한다. 만족이 아닌 더 강한 힘을, 평온이 아닌 싸움을, 덕이 아닌 유능을 추구하는...
죄보다 벌이 사람을 더럽힌다
디오니소스와 솔방울
나를 슬프게 하는 것은 네가 나를 속인 것 때문이 아니라 이제 내가 더 이상 너를 믿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이다.
고독인가, 빵인가?
좋은 친구가 좋은 여자를 얻는다
결혼 생활로 들어갈 때, 이렇게 자문 자답하여 보아야 한다.
"너는 이 여자와 나이 먹고 늙기까지 좋은 기분으로써 이야기할 수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결혼 생활에 있어서 같이 있는 시간의 대부분은 대화에 속하기 때문이다.
여성의 관능과 순결
사랑을 위하여
사람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은 그 지식과 작품뿐이다. 만일 자기 자신에 대해서 커다란 사랑이 있다면 그 사랑은 잉태의 징조인 것이다.
한 사람만을 사랑한다는 것은 일종의 야만 행위이다. 왜냐하면 그로인해 그 밖의 모든 사람은 무시되기 때문이다. 신에 대한 사랑 역시 마찬가지이다.
힘과 광기
인간은 불쾌감을 느끼거나 재난을 당하면 누군가 다른 사람을 괴롭히지 않으면 안된다. 인간은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에게 아직 힘이 있다는 것을 의식하게 되고 그리하여 결국 그것으로부터 위로를 받는다.
정의와 비양심
법은 울타리에 갇혔다
너희는 높아지기를 갈망할 때에 위를 바라본다. 그러나 나는 높아져 있는 까닭에 내려다본다.
너희 중에 그 누가 웃으면서 동시에 높아질 수 있겠는가? 가장 높은 산에 오른 자는 '장난 비극'이나 '진짜 비극'을 모두 비웃는다.
구름낀 날의 고독
공포심을 가진 자는 고독이 무엇인지 모른다.
강한 자는 파멸 속에서 행복을 찾는다
가장 강한 자로서 가장 정신적인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파멸을 보는 곳에서 행복을 발견한다. 이를테면 미궁에서, 자기와 다른 사람들에 가해지는 혹독함 속에서, 시도 속에서...
신뢰할 만한 모든 것, 일체의 선한 양심, 일체의 명백한 진리는 오로지 감각으로부터만 온다.
참된 자의 의지란 노예의 행복으로부터 해방되고, 신들과 숭배로부터 구원되고, 두려움 없으면서 두려운 존재이며 위대하고 고독한 것을 말한다.
지식의 나무
자신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하는 것은 자신을 감추는 하나의 수단이기도 하다. 사람이 무엇을 쓰는 경우,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 뿐만 아니라, 동시에 확실히 알아주기를 꺼리는 것이다. 무릇 누군가가 어떤 책이 난해하다고 말하여도, 그 뜻하는 바가 있음이 틀림없다. 따라서 그는 어중이떠중이들이 알아주는 것을 꺼렸던 것이다.
영혼도 혹사당하면 땀이 난다
재능은 장미꽃
한 사람의 진면목은 그의 재능이 시들어갈 때, 즉 그가 더이상 능력을 과시하지 못할 때 드러나기 시작한다. 재능을 일종의 장식이며 장식은 일종의 은폐인 것이다.
독창적인 것이란 새로운 것을 처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낡은 것, 옛부터 알려졌던 것, 누구의 눈에나 비치긴 했으나 간과되었던 것을 새로운 것인 양 보는 일이며 직정한 독창적 두뇌의 증과이다.
하나의 사건이 위대성을 지니기 위해서는 두 가지 즉 그것을 성취하는 자의 위대한 감각과 그것을 체험하는 자의 위대한 감각이 화합해야 한다.
힘에의 의지
그대들은 분명 생산에의 의지나 목적에의 충동, 보다 높은 것, 보다 먼 것, 보다 다양한 것에로의 충동을 의지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나 이것들은 모두 동일한 하나의 비밀인 것이다.
이 한가지를 포기해야 할 입장에 처한다면 차라리 몰락하리라. 보라, 몰락이 있는 것과 낙엽이 있는 곳에서 삶은 스스로를 제물로 희생하고 있다. 힘을 위해서!
PART 3
니체 철학의 대표작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고독한 자여, 너는 창조자의 길을 가고 있다. 너는 너의 일곱 악마로부터 식을 창조하고 싶어하는구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자유정신은 자신이 '어떠어떠한 너는 해야 한다'에 복종해 왔는지를, 그리고 이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비로소 자신을 무엇을 해도 좋은지를 알고 있는 것이니, 그만 말하기로 하자...
나는 아직도 철학적인 의사를 기다리고 있다. 아주 예리한 의사를, 사람과 시간과 인종과 인류의 총체적인 건강을 진단할 수 있는 의사, 다음과 같은 제안을 두려워하지 않고 나의 의혹을 끝까지 파헤치기 위하여 용기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의사를 기다리고 있다. 나의 제안이란, 지금까지 행해진 모든 철학의 목표는 진리가 아닌 다른 것 '건강, 미라, 성장, 힘, 생명이라고 할까'이었다.
나는 나의 변덕스러운 건강이 나를 건강한 사각형들 보다 유리하게 만든다는 것에 대하여 잘 알고 있다. 여러 종류의 건강상태 속을 횡단하고 또 계속 횡단하는 철학자는 똑같은 숫자의 철학을 지나갈 수 밖에 없다. 건강상태가 바뀔 때마다 철학자는 자기자신의 위치를 가장 영적인 형태와 거리고 바꾸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 변모의 예술이 철학인 것이다.
우리 철학자들은 일반 사람들처럼 몸을 혼으로부터 갈라놓을 수 있는 자유가 없을 뿐만 아니라 혼(soul)을, 영혼(spirit)으로 부터 갈라놓을 자유는 더욱 없다.
조롱할 줄 알고, 가볍고, 지나치듯 머물지 않고, 신성하게 어지럽혀져 있지 않고, 신성하게 모조적인, 순수한 불꽃처럼, 구름없는 하늘을 핥아 올라가는 예술이어야 한다.
암울하고 막중한 일에 관여하고 있을 때조차 명랑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결코 대수로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명랑성보다 더 필요한 것이 있을까? 호기로운 정신이 뒤따르지 않고서는 아무 일도 해내지 못한다. 힘은 넘침으로써만 힘의 증거를 보일 수 있다.
상처에 의해 정신이 성장하고 힘이 회복된다.
PART 4
신은 죽었다
마르틴 하이데거는 니체의 철학강의를 전공으로 하였으며 '신은 죽었다'라는 주제로 대학에서 강의한 내용을 논문 형식으로 발표하여 출판했다. 하이데거는 독일의 유명한 철학교수이자 사상가이며, 니체 철학의 최고 권위자다.
쇼펜하우어에 의하면 염세주의란 이 세계들 중에서 가장 나쁜 세계안에서는 인생이 삶의 긍정을 할 보람이 없다는 신조다. 니체에 의하면 무력의 염세주의이다. 어디서나 어두운 면만을 보며, 모드 일에 있어 실패의 근거를 찾아 내며, 모든 것이 앞으로 전면적 불행화라는 방향으로 전개될 것을 알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하여 강력의 혹은 강력으로서의 염세주의는 눈을 밝히고 위험을 직시하며 어떠한 은폐나 가식도 바라지 않는다.
니체는 가치를 무엇으로 이해하는가? 가치의 본질은 무엇에 밑받침되어 있는가? 왜 니체의 형이상학은 가치의 형이삭학인가? 니체의 어떤 노트에서 그가 가치를 무엇으로 이해하는가를 말하고 있다. '가치'의 시점은 생성하는 과정 속에서 상대적으로 지속하는 삶의 복합적형성체를 염두에 두고 있는, 유지 향상조건들의 시점이다.
가치의 본질은 시점이라는 데 있다. 가치는 주목되어 있는 것, 바로 그것을 말한다.
삶의 본질에는 생장의지, 즉 향상이 속하여 있다. 삶의 모든 유지는 삶의 향상에 이바지하고 있다. 오직 단순한 유지에만 몰두하고 있는 삶은 모두가 이미 쇠퇴다.
[차라투스트라]의 2부에서, 니체는 비로소 [권력에의 의지]를 그것이 이해될 수 있는 발판을 주는 관련 속에서 제시한다. '내가 살아있는 생명체를 발견한 곳에서는 어디서나 나는 <권력에의 의지>를 발견하였다. 그리고 나는 봉사하는 사람의 의지 속에서도 지배자가 되려는 의지를 발견하였다."
의욕한다는 것은 '지배자가 되려고 하는 것'이다. 의지는 무엇을 바라거나 단순히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의욕하는 것'은 본래 '명령하는 것'이다. 명령자는 자기 자신까지도 걸고 감해하므로 자기 자신을 넘어선다. 단순히 남을 이것 저것 지휘하는 것과는 아주 구별하여야 할 명령하는 것이란 자기 극복이며 '복종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
의지는 자기에게 맡겨진 일에 '자기를 집중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 복종할 수 없는 사람에게만 새삼스럽게 명령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의지는 그가 바라는 것이다. 의지는 자기 자신을 바란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초월한다.
이와 같이 의지는 의지로서 자기를 넘어서 의욕한다. 이리하여 그것은 동시에 자기를 앞지르며 자기를 넘어서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니체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의욕하는것'은 '더욱 강하게 되려는 것', '생장하려는 것'과 같은 뜻이다.
의지는 자기 자신을 압도하는 것을 의욕하므로 그는 삶의 어떠한 풍부에도 만족하지 않는다. 그는 넘쳐흐르는 풍성 속에서, 즉 그 자신의 의지의 넘쳐 흐르는 풍성 속에서 힘을 발휘한다.
인간은 존재자의 주체성 안에서 자기 본질의 주관성을 분기한다. 주체는 자기 자신에 있어서 주체다. 의식이 본질은 자아의식이다. 그러한 까닭으로 모든 존재자는 주체의 객체이거나 혹은 주체의 주체이거나 어느 한쪽이다.
니힐리즘은 모든 것이 각자의 관계에 있어서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존재재는 그것이 존재자로서 경험될 때에 반드시 각자의 관계속에 있게 된다. 그러므로 니힐리즘은 전체로서의 존재자 자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존재자는 존재로부터 비로소, 있는 그대로의 것으로서 또 있는 그대로의 양식으로 있게 된다.
니체의 명언
강한 신앙을 동경하는 것은 강한 신앙의 증거가 아니라 그 반대이다. 사람이 강한 신앙을 지닌다면 그 사람은 회의론의 사치에 빠질 수 있다.
겉모습이란 진실인 척하는 것이다.
그 여자는 아름답고 영리하다. 그러나 유감스럽도다! 그 여자가 아름답지 않았더라면 훨씬더 영리할 수 있었을 텐데.
창조는 괴로움의 구원인 동시에 삶의 위로인 것이다. 그러나 창조하기 위해서는 그 자신의 괴로움이 따르면서 많은 변화가 요구되는 것이다.
초인이란 필요한 일을 견디어 나아갈 뿐 아니라 그 고난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는 운명이다.
훌륭한 친구를 가진 사람은 반드시 훌륭한 아내를 얻을 것이다. 훌륭한 결혼이라는 것은 우의의 재능에 달린 것이기 때문이다.
너는 안이하게 살고자 하는가? 그렇다면 항상 군중 속에 머물러 있으라. 그리고 군중에 섞여 너 자신을 잃어버리라.
너의 양심은 무엇을 알리고 있는가. 본래의 너 자신이 되라.
더 이상 자신있게 사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차라리 당당하게 죽음을 택하라.
동정은 최고의 모욕이다.
등산의 기쁨은 정상에 올랐을 때 가장 크다. 그러나 나의 최상의 기쁨은 험악한 산을 기어올라가는 순간에 있다. 길이 험하면 험할수록 가슴이 뛴다. 인생에 있어서 모든 고난이 자취를 감췄을 때를 생각해 보라! 그 이상 삭막한 것이 없으리라.
사람은 잠자코 있어서는 안 될 경우에만 말해야 한다. 그리고 자기가 극복해 온 일들만을 말해야 한다. 다른 것은 모두 쓸데 없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 것도 버릴 수 없는 자는 아무 것도 느낄 수 없다.
아침에 눈을 뜨면 무엇보다도 먼저 '오늘은 한 사람에게 만이라도 기쁨을 주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루를 시작하라.
어느 정도 깊이 괴로워 하느냐 하는 것이 거의 인간의 위치를 결정한다.
언젠가 날기를 배우려는 사람은 우선 서고, 걷고, 달리고, 오르고, 춤추는 것을 배워야 한다. 사람은 곧바로 날 수는 없다.
위대함은 과연 어디서 오는가. 어떤 사람이 위대한가. 사람들이 어째서 그를 위대하다고 하는가. 무엇이 그를 위대하게 보이게 하는가. 그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성실함을 그가 일생동안 변함없이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그를 위대하게 만들었으며, 위대하게 보이게 하는 것이다.
자랑스럽게 사는 것이 그 이상 가능하지 않을 때, 사람은 자랑 스럽게 죽어야 한다.
자유란 자기 책임에 대한 의지를 갖는 것이다.
절망에 빠져 있는 사람을 보게 되면 어느 누구라도 용기가 치솟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