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세 명이서 술파티를 하고 잤고 7시경에 도둑고양이처럼 슬그머니 아파트를
빠져 나왔어요. 민소매에서 반팔로 바꿔 입었는데 추위가 느껴졌어요. 연휴 3일
째, 앞으로도 이틀을 더 떼울 일이 가깝합니다. 어제 영화 '밀 수'로 개봉 영화
첫 데이프를 끊은 셈입니다. 살기 팍팍할 때 복고가 뜬다는 공식은 아직도 유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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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것 같아요. 믿어도 되나요 당신의 마음을(최헌), 밤차(이은하), 내마음에 주단을
깔고(산울림), 김추자(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송대관(해뜰날)같은 가수들의
노래가 내 의기소침을 한방에 날려 버렸어요. 1970년대 중반 가상의 어촌 마을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해녀들의 워맨스는 류승환 감독의 작품입니다. 제가 기억하는
놈의 작품은 ''군함도', '배테랑', '모가디슈' 등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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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만큼 시대를 순간적으로 소환하는 힘을 가진 게 없다고 하던가. ‘믿어도 되나요
당신의 마음을...’로 시작되는 최헌의 ‘앵두’ 같은 음악이나, ‘멀리 기적이 우네’로
당대를 들썩이게 만들었던 이은하의 ‘밤차’ 같은 음악은 70년대를 재연한 군천의
배경은 물론이고 배우들의 스타일을 레트로풍으로 연출해낸 영상과 기막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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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우러지며 관객들을 그 시대의 매력 속으로 끌어들입니다. 이러한 레트로풍 음악에
얹어진 액션은 마치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재키 브라운'처럼 옛 음악들을 힙하고
스타일리시하게 끄집어냅니다. 음악이 깔리며 인물들이 걸어가는 장면만 봐도 액션
처럼 느껴질 정도이고, 심지어 산울림의 ‘내 마음의 주단을 깔고’ 같은 곡이 흘러나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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펼쳐지는 1대 다수의 난장 액션 신은 한 마디로 압권입니다. 반복되는 베이스는 마치
액션신의 심장박동을 그대로 재연한 듯한 느낌으로 다가와 귀와 눈을 때리고 급기야
피를 끓게 만들 정도의 에너지를 만들어내니 말입니다. 장샘(큰 매형)의 영화 씹기가
다소 거스리긴 했어도 누워서 보는 대형스크린과 음향이 영화 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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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의 삶을 살아온 춘자(김혜수)와 힘겨워도 물질로 입에 풀칠하며 살던 진숙(염정아)
이 마을에 화학공장이 들어서면서 먹고 살기 힘들어지자 해녀 동료들과 함께 바다에
던진 물건을 줍는 밀수업에 손을 대면서 벌어지는 사건입니다. 처음에는 돈 맛을 보던
그들이 결국 세관에 걸려 비극을 맞게 되는데, 진숙은 그 일로 아버지와 동생을 잃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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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고 감옥에까지 가게 됩니다. 가까스로 도망친 춘자가 저만 살기 위해 자신들을 배신
한거라 의심하고 복수하려 합니다. 끈끈했던 해녀들의 삶이 밀수라는 범죄에 손을 대면서
의심하고 갈등하는 사이로 변모하게 되고, 서울에서 전국구 밀수왕 권상사(조인성)에게
죽을 위기에 처한 춘자는 그에게 임기웅변으로 막힌 밀수길을 뚫어줄 묘안으로서 군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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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합니다. 군천으로 다시 돌아온 춘자는 그 사건 이후 이곳을 접수한 장도리(박정민)
와 그곳에서 새로이 밀수 사업을 펼치려는 밀수왕 권상사, 그리고 그들의 밀수를 적발
하려는 세관들 사이에서 진숙과 해녀들과의 마음의 앙금까지 풀어내야 하는 복잡한 상황
속으로 빠져 들어갑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에 걸맞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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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의 진실을 마주하게 되는 것은 스토리가 복잡하거나 새롭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또 일종의 예열이 필요한 초반부 서사의 감정 쌓기는 류승완 감독의 논스톱 액션을 기대
했던 관객들에게는 조금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렇게 쌓아나간 감정으로 춘자와
진숙 그리고 그들을 돕는 해녀들이 보여주는 끈끈한 워맨스는 중반을 넘어가면서 엄청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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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로 폭발력을 갖게 됩니다. "나팔바지 당고 바지 유행 트위스트 뒤폼 재고 걸어가는
제 새끼 맘에 들어" 일곱 살때 뭣모르고 따라 불렀다가 싸가지 없다고 울 아부지 한테
디지게 쳐 맞았던 기억이 납니다. 호텔에서 벌어지는 칼이 난무하는 1대 다수의 핏빛
액션이 남성들이 펼치는 마초적 느낌을 전한다면, 바닷 속에서 해녀들이 펼치는 액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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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속의 환경과 어우러져 마치 체조를 하는 듯 부드럽지만 그 안에서 느껴지는 연대의
힘을 전해줍니다. 특히 춘자와 진숙이 한 사람은 물 밑으로 내려가고 다른 한 사람은 물
위로 올라올 때 서로의 손을 확 잡아당겨 서로 추진력을 내는 장면은 물질 노동의 지혜
면서, 액션이면서, 워맨스로도 다가 오는 명장면입니다. 바다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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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완 감독표 액션이 해양으로까지 펼쳐져 일단 눈이 시원해요. 인물 관계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유머가 주는 웃음도 적지 않고, 끈끈한 관계의 변화가 보여주는 감동도 있습니다.
또 장기하가 음악감독으로 투입되어 선곡한 70년대 음악들이 류 감독의 액션과 버무려지는
데서 오는 카타르시스도 있고, 무엇보다 70년대 레트로풍의 스타일에 아낌없이 자신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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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겨 넣은 듯한 김혜수, 박정민(1987)같은 배우들의 혼신의 열연은 처음에는 웃음이
터졌다가 차츰 멋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모두가 극찬하고 있는 것처럼 김혜수의
연기는 압권입니다. 여기에 그와 워맨스의 합을 보여주는 염정아 역시 만만찮고, 질깃질깃한
악역의 끝판을 보여주는 박정민의 연기 변신도 하나의 캐릭터를 제대로 세웠다고 느껴질
정도로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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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방 마담 옥분역의 배우(고민시,1987)가 누군지 아시나요? 똑소리 납니다. 여기에 살벌한
칼날 같은 존재감을 세운 조인성의 연기까지 더해져 70년대 해녀들이 펼치는 워맨스 활극의
다채로운 묘미들이 살아났어요. 아, 옛날이여! '던지고 건지고 속여라' 물길을 아는 자가
돈길의 주인이 된다'
2023.9.30.sat.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