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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대윤리교육과를사랑하는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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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과역사] 발표자료 왜 헤이그특사를 파견하였는가
12 김유경 추천 0 조회 378 12.11.15 22:53 댓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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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2.11.21 19:51

    첫댓글 을사늑약으로 한국의 국권이 점점 빼앗기는 상황에서 고종황제는 끝까지 한국을 포기하지 않았다. 고종황제는 한국을 알려 일제의 침략을 막으려고 했다. 하지만 헤이그 특사 파견으로 고종황제의 퇴위가 결정되게 된다. 일제의 침략을 막기 위해서 타이밍을 노려 헤이그 특사를 파견한 것은 좋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고종이 더 일찍 외교에 관심을 뒀다면 일제의 침략에 대처할 수 있었을 것이다. 헤이그 특사는 국권 침탈의 위기에서 고종황제가 시도한 노력이다. 헤이그 특사를 보면서 빨리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항상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위종을 보고 학습을 하는 것이 모든 준비에 기본적이라고 생각을 했다.

  • 12.11.21 22:15

    이위종의 영어실력을 통해 근본적으로 소통이 가능했기 때문에 국제에 당시 대한제국의 정세를 알릴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를 통해서 소통하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언어가 중요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 영어를 학습했다는 것은 근대화로 가는 시대에 발맞춰 다른 나라와 소통을 위해서 영어가 필요했음을 인식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변화하는 시대에 능동적인 자세를 가졌기 때문에 이위종은 대한제국을 위해 큰일을 해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교수님이 민족과 역사 첫 시간에 하셨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영어, 피하지 마라. 언젠간 그것이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언젠가 외나무다리에서 만나게 되어있다.'라는

  • 12.11.21 22:15

    말씀이 제게 많은 깨달음을 주었는데, 이번 발표를 통해 또다시 윤리 교육인으로서 영어를 피하고 불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야 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 12.11.22 00:49

    준비란 중요한 것입니다. 을사늑약을 체결한 뒤 고종은 헤이그 특사를 파견하여 조약의 부당함을 알리고자 노력했습니다. 헤이그 특사의 파견은 고종이 실행한 최선책이었지만 이미 늦은 준비였기 때문에 실패했습니다. 을사늑약을 체결하기 전에 좀 더 준비했다면 일제강점기의 암흑기가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비록 늦은 준비였지만 헤이그 특사는 일제에 대한 항거 운동의 계기가 되는 중요한 사건입니다. 준비의 중요성을 알고 미리 준비하는 자세를 배워야 합니다.

  • 12.11.22 02:26

    헤이그 특사가 파견된 시대는 약육강식의 원리가 팽배한 제국주의 시대이다. 일본의 제국주의 활동 결과로 조선과 을사늑약으로 맺어 외교권이 박탈했다. 조선은 외교권을 박탈당했기 때문에 일본의 허락이 없는 외교활동을 하면 부정적인 결과를 안게 된다. 하지만 고종은 그에 굴복하지 않고 헤이그 특사라는 외교활동을 통해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알리려 하였다. 비록 실패했지만 우리는 이를 통해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와 결단력을 배울 수 있다.

  • 12.11.22 10:00

    외교권이 박탈당하고 정치적, 경제적 침략을 당하고 있는 시점에서 고종은 헤이그 특사를 파견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도전하고 주권을 찾으려 하는 모습을 배워야 합니다. 지금 시련이 닥쳐와 무릎 꿇고 무기력하게 현실을 받아들이는 일은 없었는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주변 상황을 꿰뚫어 보고 방안을 찾아보고 도전하는 정신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12.11.22 10:32

    고종이 헤이그 특사를 파견한 시기는 우리에게 더 상황이 악화하지 않게 막을 기회의 시기였습니다. 세계 만국 평화 회의에 이준, 이위종, 이상설을 파견한 것은 국제 정세에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호소할 기회였습니다. 그 기회를 이위종이 외국인과 소통할 수 있는 언어실력으로 기회를 잘 살렸기 때문에 국외 언론들을 주목시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기회는 언제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항상 우리는 기회의 시기를 대비하여 기회를 이용할 수 있는 적절한 능력을 배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12.11.22 10:48

    헤이그 특사가 실패한 원인 중 하나는 일본과 영국의 방해 때문입니다. 일본은 이렇듯 일찍부터 외교관계의 중요성을 깨닫고 다른 나라와의 관계를 중요시했습니다. 이렇듯 저희도 일찍 외교관계의 중요성을 깨달아서 더욱 다른 나라와의 관계를 돈독히 했더라면 헤이그만국평화회의 때 다른 나라들이 우리나라의 목소리를 조금이라도 들어줄 수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헤이그 특사는 결국 실패하였지만, 후에 항거운동이 계속 일어났다는 것에 의미가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실패한다 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인 발전을 해야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위종이 외국어에 능통한 것이 화제가 되어

  • 12.11.22 10:48

    서 우리나라의 상황이 신문에 보도되었지만, 이 신문은 비록 열강들의 많은 관심을 받지 못했다 하더라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이렇듯 우리도 어떤 상황이 닥칠지 모르는 상황에서 항상 준비된 자세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12.11.22 14:01

    고종은 일본의 부당한 침탈을 해외에 알리고자 헤이그 특사를 파견하였습니다. 파견된 특사는 회의에 참석하지 못하는 등 결과적으로 구체적 성과를 내는 데에는 실패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국민들의 의식을 향상시켜 곳곳에서 항일 운동이 일어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고종 황제와 헤이그 특사가 이러한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면 우리나라의 상황은 이보다 더 나빠졌을 것입니다.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노력해야만 최악의 상황을 모면할 수 있습니다. 또한, 뛰어난 외국어 실력으로 해외에 우리나라의 상황을 알렸던 이위종을 통해, 기회가 왔을 때 그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항상 준비된 자세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느꼈습니다.

  • 12.11.22 11:09

    헤이그 특사는 고종황제께서 1905년 일본이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하여 강제로 체결한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헤이그에 파견한 사절입니다. 당시 우리는 일제에게 많은 권리를 침탈당하고 있었습니다. 만약 을사늑약으로 인해 외교권까지 넘어가게 된다면, 국권이 침탈당하는 것은 시간문제였습니다. 우리는 상황이 더욱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헤이그 특사를 파견하였습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아무리 힘든 상황에 처해있다고 포기하지 말고, 적어도 상황이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하며, 더 나아가 변화의 발판으로 삼아 개선된 방향으로 전환될 수 있게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12.11.22 12:15

    헤이그 특사는 고종이 직접 제시한 몇 안 되는 제안 중의 하나라고 합니다. 여기서 지도자의 솔선수범을 볼 수 있습니다. 또 근대화로 가면서 민중의 힘이 커지고 그들의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당시 약소국이었던 우리나라도 강대국에 우리의 목소리를 들려주려 노력을 하였습니다. 그 중 하나가 헤이그 특사입니다. 이처럼 우리도 무엇인가를 이루고자 할 때 우리의 목소리를 상대방에게 끊임없이 들려주어야 합니다.

  • 12.11.24 06:41

    개항이 늦었던 조선은 세계의 흐름에 뒤쳐지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다른 나라들과의 교류도 늦었졌습니다. 뿐만아니라 서구와 교류를 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근대의 기술을 수입하지 못하였던 조선은 근대화를 이루고 있던 다른 나라보다 국력은 약해졌고 그러한 대한제국을 일제는 침략을 하기위해 을사늑약을 맺습니다. 하지만 아직 외교권을 박탈당한 것은 아니었으므로 고종은 뒤늦게라도 다른 나라와의 외교를 통해 이를 해결하고자 하였습니다. 고종은 때를 놓쳤다고 포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제일 빠른 법입니다. 제가 살아가면서 뒤쳐졌다고 생각할때 더 노력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하게 해줬던 발표였습니다.

  • 12.11.22 20:58

    * 강두호 : 1) 개항이 늦었던 조선은 세계의 흐름에 뒤쳐지게 되고 국력 또한 약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나라들과의 교류도 늦었을 뿐만아니라 여러가지 불이익을 보면서 일제는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해 을사늑약까지 맺게 됩니다. ->> * 문장이 매끄럽지 않습니다. 2) 아니였으므로 ->> 3) 늦었지만 고종은 노력했습니다. 저 또한 앞으로 살아갈 때 때를 놓쳤다고 포기할 것만이 아니라 남들보다 한 걸음 더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 논리가 서지 않습니다.

  • 12.11.24 06:48

    수정하였습니당

  • 12.12.14 17:19

    헤이그 특사파견, 실패했지만 실패하지 않은 사건입니다. 국가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던 시절, 그 운명을 극복하기 위한 고종의 치열한 몸부림은 부당한 세력에 가로막혀 빛을 보지 못했으나 마지막까지의 시도와 신념, 그 정신은 살아남아 후손인 우리에게 강한 울림을 줍니다. 다만 세계정세를 보다 현명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뒤늦은 대응을 했다는 점은 우리가 개선해 가야 합니다. 역사를 이끄는 능동적인 주인의식을 가지고 사상과 기술의 변화, 외교 원리 등을 통찰하는 눈을 가져야 합니다.

  • 12.11.22 20:53

    * 김치범 : 내용이 빈약합니다. 보완하세요. 1) 이처럼 우리도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줄 알아야 합니다. -> * '주장할줄'을 띄어 써야 하는 [우리말 바루기]에 밝히세요. 2) 저도 앞으로 저의 권리를 지키기위해 적극적인 자세로 임할 것입니다. ->> * 문장을 좀 더 다듬으세요.

  • 12.12.14 17:20

    전체 수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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