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21일 온고을교회 주일예배 설교 – 황의찬 목사
《 결혼식 _사랑의 알레고리 Allegory 》
시 45:1~17
〈 순수 _ 오염 〉
우리 말에 젊은 처녀를 지칭하는 단어로 ‘아가씨’가 있습니다.
그런데 ‘아가씨’는 부정적인 호칭으로 변질 되었습니다.
‘아가씨’가 요식업소 종업원을 부르는 용어로 범위가 한정되었습니다.
지나가는 젊은 여성에게 “아가씨”라고 부르면 실례가 됩니다.
비슷한 경로로 이미지가 나빠진 호칭으로 ‘아줌마’도 있습니다.
‘아줌마’는 결혼한 성인 여성을 칭하는 용어였습니다.
그러나 요즘 “아줌마!”하고 불렀다가는 자칫 경을 치게 됩니다.
“저 사람이 나보고 ‘아줌마’라고 했어요!”라며 신고할지도 모를 지경이 되었습니다.
요식업소에 가서 종업원을 부를 때, 요즘은 ‘이모’라는 말을 씁니다.
이러다가 ‘이모’도 아가씨나 아줌마처럼 의미가 쇠락할까봐 걱정이 됩니다.
오늘 설교 제목에 ‘알레고리’가 들어있습니다.
‘알레고리’도 원래의 뜻에서 엉뚱한 이미지가 덧씌워져서 사람들이 잘 안 쓰는 용어입니다.
특히 교회에서 기피하는 단어가 된 듯합니다.
설교자들이 성경 본문을 지나치게 영적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렇게 영적으로 해석하는 설교를 하다가, 이단의 교주가 된 사례가 많습니다.
‘영적인 해석’ 이 말을 고상하게 표현해서 ‘알레고리 해석’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교회 안팎에서 ‘알레고리’라는 말을 기피하게 되었습니다.
마치 ‘아가씨’ ‘아줌마’와 비슷한 경로를 따라갔습니다.
‘여호와의 증인’ 때문에 ‘여호와’ ‘증인’이 기피어가 되었습니다.
‘통일교’ 때문에 ‘부모’ ‘가정’이 훼손되었습니다.
‘ㅅㅊㅈ’ 때문에 ‘요한계시록’ 그리고 ‘이긴 자’가 훼손되었습니다.
물론 그들로 인해 본뜻이 변질되지는 않았지만, 그 단어를 꼭 써야할 때 아쉽게되었습니다.
오늘 설교 제목 속 ‘알레고리’ 오염되지 않은 본래의 의미에 충실하면서 설교합니다.
☞ “결혼식은 사랑의 알레고리입니다!”
〈 알레고리 〉
알레고리의 사전적 의미부터 분명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알레고리] 추상적인 내용을 구체적인 대상을 이용하여 표현하는 비유법
이 말을 더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추상적이다. 이 말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구체적이다. 이 말은 눈에 보일 뿐 아니라 손에 잡힌다는 뜻입니다.
“눈으로 볼 수 없는 추상적인 개념을 손에 잡히는 구체적 형상으로 표현하는 일”
이것이 알레고리의 정확한 뜻입니다.
부모는 자식을 사랑합니다. ‘낳으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부모님의 그 마음, 자식 눈에 보입니까, 안 보입니까?
마음은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이눔아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 지 아냐?”
오죽 답답하면 이렇게 말하겠습니까? 그러나 자식은 부모의 마음을 모릅니다.
왜 몰라요? 가장 큰 이유는 마음이 안 보이기 때문입니다.
찢어지는 부모의 마음이 자식 눈에 분명하게 보인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이 세상에 불효할 자식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부모 마음이 안 보입니다.
☞ 부모는 자식에게 자기 마음 전달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할까요? ~ 답을 맞혀 보세요!
“알레고리를 해야 합니다!”
‘추상적인 내용을 구체적인 대상을 이용하여 표현’ 이것이 알레고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대중가요 가사 중에 “겉이 타야 님이 알지, 속만 타면 누가 아나?”
갑돌이와 갑순이가 서로 사랑하면서 따로따로 결혼한 이유가 뭡니까?
두 사람이 ‘알레고리’를 못했어요!
“갑돌이도 화가 나서 장가를 갔드래요, 장가 간 날 첫날 밤에 달을 보고 울었드래요!”
“그때 망설이지 말고, 손목 잡고 물레방앗간으로 들어갔어야 혀~”
이것이 알레고리입니다.
“알레고리 잘하면 인생에 성공하고, 알레고리 못하면 인생이 고달프다!”
알레고리 잘못해서 부부간에, 부자간에, 형제간에, 자매간에 이가 납니다.
☞ 오늘 본문 시편 45장은 결혼식 이야깁니다. 그래서 《 결혼식_사랑의 알레고리 》입니다.
〈 시편 45장 〉
시편 45장은 매우 독특한 시입니다.
시편에서 찬양의 대상은 오직 한 분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은 피조물 인간을 결코 찬양하지 않습니다.
찬양은 오직 창조주 하나님만 받으십니다. 이것이 시편의 정신입니다.
그런데 시편 45장이 유일하게 하나님이 아닌 인간 왕을 찬양합니다.
(17절) “내가 왕의 이름을 만세에 기억하게 하리니 그러므로 만민이 왕을 영원히 찬송하리로다”
시편 45장에서 왕은 결혼하는 새신랑입니다.
새신랑으로 결혼식 하는 왕, 그 왕의 이름을 만세에 기억하게 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만민이 왕을 영원히 찬송하리로다”
꼭 기억하십시오! 시편에서 유일하게 찬양 받는 피조물 인간, 시편 45장의 왕이지요!
왕은 왕인데, 어떤 왕이지요? ~ 결혼식을 올리는 왕입니다.
시편에서 하나님이 아닌 인간을 찬양하는데, 찬양 받는 자가 ‘결혼식 올리는 왕’입니다.
시편은 오직 창조주 하나님, 성부-성자-성령 하나님만을 찬양합니다.
그런데 딱 하나 예외가 있습니다. ‘결혼식 올리는 왕’을 찬양합니다.
_ 왕위에 등극하는 왕이 아닙니다.
_ 전쟁에서 대승하고 개선하는 왕이 아닙니다.
_ 위대한 업적을 세운 왕이 아닙니다.
성경 시편에서 찬양받는 유일한 사람은 ‘결혼식 올리는 왕’입니다.
왜 ‘결혼식 올리는 왕’을 찬양할까요?
그가 왕이라서 찬양할까요? 아닙니다. 그가 결혼식을 하기 때문입니다.
결혼식 올리는 왕을 왜 하나님이 찬양하십니까?
_17절 “내가 왕의 이름을 만세에~” 여기서 ‘나’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결혼식 올리는 왕을 “~영원히 찬송하리로다”
45장에서 결혼식하는 왕이 어떤 왕인지 나와있지 않습니다. 그냥 ‘왕’입니다.
하나님이 결혼식하는 왕을 찬양토록 하는 이유는 무얼까요?
왕이기 때문이 아니라, 결혼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찬양합니다.
☞ 결혼은 무엇입니까? 설교 제목을 보십시오! 《 결혼식_사랑의 알레고리 》입니다.
〈 결혼식은 사랑의 알레고리입니다 〉
엊그제 결혼식에 다녀왔습니다.
마침 개그맨 김준호가 사회를 보고 있었습니다.
당일 결혼하는 신부가 개그맨 김준호 씨의 외사촌 동생이랍니다.
덕택에 개그맨 얼굴을 가까이서 보았습니다.
그날 결혼한 신랑은 교회 옆에 사는 청년입니다.
제가 18년 전 개척할 때, 초등학교 4학년이었습니다.
그 코흘리개가 어느새 커서 장가를 갑니다.
그날 결혼식장에서 가장 멋진 남자였습니다. 신부는 가장 아름다운 여자였습니다.
식장에 입장하는 신랑, 얼마나 늠름한지, 흠과 티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시편 45장에 나오는 왕, 바로 그 청년이었습니다.
시편 45장에 나오는 신부, 그날의 신부였습니다.
두 선남선녀, 그날 그 예식장에서만큼은 흠과 티도 없고 찬양받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하나님도 신랑 신부를 찬송하게 하셨습니다. “영원히 찬송하리로다”(17절)
결혼예식, 왜 그렇게 뻑적지근(?)하게 거행합니까? 왜 그렇게 요란하게 해야합니까?
정답은 “그렇게 해야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옳습니다!”
왜 옳습니까? 답이 설교 제목에 이미 들어있습니다. 《 결혼식_사랑의 알레고리 》
결혼하는 남녀간의 사랑, 눈에 보입니까, 안 보입니까? ~ 아무 눈에도 안 보입니다.
두 사람이 마주보고 두 눈에서 꿀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사랑은 육안에 보이지 않습니다.
안 보이는 사랑, 그 깊고, 오묘하고, 자비롭고, 순수한 사랑, 그걸 어떻게 드러내야 합니까?
제가 “어떻게 드러내야 합니까?”라고 레토릭 질문을 드렸습니다.
“어떻게 드러내느냐?” 이것이 뭐라고요? ~ ‘알레고리’
☞ 신랑 신부 두 사람 사이, 보이지 않는 사랑!
그 사랑을 눈에 보이는 구체적 형상으로 드러내는 일, 그것이 결혼식입니다!
신랑 신부는 최고의 옷을 입고, 최고의 치장을 합니다. 알레고리입니다.
아주 멋진 장소에서 명망있는 사회자와 주례가 결혼식을 집례합니다.
두 사람이 사랑으로 가정을 이룬다는 것을 선포합니다.
결혼식장 하객들은 두 사람을 “영원히 찬송하리로다”(17절)
☞ 하나님도 아까워하지 않으시고 ‘찬송한다’ ‘찬양한다’ 선포하십니다! 할렐루야~
〈 하나님은 결혼식에 올인하십니다 〉
결혼이 얼마나 거룩하고, 얼마나 소중하고, 얼마나 귀하면, 하나님이 찬송하라 하실까?
하나님은 피조물 중 사람과 인격적으로 교제를 하십니다.
사람을 자기 사랑의 파트너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수명은 1백년입니다.
자칫 하나님과 사람 간의 사랑, 1백년으로 끝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창 1:28) 하셨습니다.
사람이 생육하고 번성해야 하나님과 사람 사이 사랑, 오래 갈 수 있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남녀 간의 ‘사랑’입니다.
서로 사랑하여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어야 생육하고 번성하게 됩니다.
지금 한국의 결혼과 출산율이 바닥을 치는데, 가장 아파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이 한 평생 사는 중에 가장 중요한 일이 결혼입니다.
그 결혼에 하나님이 어떻게 하신다고요? ~ “영원히 찬송하리로다!”(시 45:17)
사람들이 결혼할 때 하나님이 찬송하라 하셨습니다.
그 결혼식이 무어라고요? “사랑의 알레고리!”
남녀간의 사랑을 눈에 보이도록 드러내는 것이 결혼식입니다.
그 결혼식장에는 왕과 왕비가 있습니다. 신랑과 신부입니다.
결혼식장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은 신랑과 신부보다 더 훌륭할 수 없습니다.
신랑과 신부보다 더 잘 나서는 안 됩니다.
신랑 신부보다 키가 더 커도 안 되고, 더 잘 생겨도 안 됩니다.
이러면 ‘민폐 하객’이 되고 맙니다. ☻
결혼식장은 오직 신랑과 신부, 두 사람 사이 사랑만이 드러나야합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 제목이 탄생했습니다. 《 결혼식_사랑의 알레고리 》
결혼식장의 신랑 신부가 얼마나 위대하면, 하나님이 찬양하라 하실까요?
신약성경 히브리서는 시편 45장 7~8절을 예수님의 속성으로 인용합니다.
히 1:8~9 “아들에 관하여는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는 영영하며 주의 나라의 규는 공평한 규이니이다 9 주께서 의를 사랑하시고 불법을 미워하셨으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주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을 주께 부어 주를 동류들보다 뛰어나게 하셨도다 하였고”
☞ 찬양은 오직 하나님만 받아야 하기에 시편 45장의 왕은 그리스도이시라고 해석했습니다.
〈 알레고리에 담긴 하나님의 뜻 〉
결혼하는 신랑과 신부, 이는 더 나아가 신랑은 예수님으로, 신부는 성도로 ‘알레고리’됩니다.
‘알레고리 된다’ 이 말을 생각해 봅니다.
보이지 않는 추상적 가치를 보이는 구체적 가치로 드러내는 것이 알레고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성도인 우리와의 사랑,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어떻게 드러내어 우리가 깨닫고, 후대에 전하여 그 사랑이 이어지게 하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신랑, 주님의 제자인 우리는 신부입니다.
결혼식의 신랑 신부 모습으로 ‘알레고리’되었습니다.
결혼으로 드러난 신랑과 신부와의 사랑, 예수님과 우리와의 사랑을 알레고리하고 있습니다.
☞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한 평생 살아가는 중에 꼭 알아야 할 것이 알레고리입니다.
가장 먼저 부모님의 사랑이 나에게 어떻게 알레고리 되는지 알아야 합니다.
부모님의 희생과 헌신의 동작을 자식은 알레고리로 해석할 수 있어야합니다.
다음으로 자신의 열정과 사랑을 자식과 이웃에게 알레고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못하면, 알레고리하지 못하면, 아무도 자신을 알아주지 않습니다.
물론 알레고리가 지나치면 자랑이 되고, 간혹 교만으로 흐를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참된 알레고리를 읽어내야하고, 자기 속내를 알맞게 알레고리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도록 하나님은 창조하셨습니다.
_ 왜 하나님은 우리가 알레고리를 읽어낼 줄 알아야 하는 존재로 지으셨을까요?
_ 왜 하나님은 우리가 알레고리를 해야 하는 사람으로 지으셨을까요?
하나님의 깊은 속내가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안다는 것,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것, 하나님의 사랑을 안다는 것!
이 모두가 ‘알레고리’라는 수단을 통하지 않으면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영으로 계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육신으로 존재합니다.
하나님은 영으로 계시면서 육신으로 사는 우리에게 ‘알레고리’하십니다.
자연현상을 통하여 알레고리 하시고, 성경책을 통하여 우리에게 알레고리 하십니다.
“알레고리를 모르는 자, 하나님을 알 수 없다!”
보이지 않는 사랑, 우정, 헌신과 희생, 이 모든 것, 읽어낼 수 있어야 사람입니다.
본능으로 사는 짐승들은 보이지 않으니 없다고 단정합니다. 사람은 달라야 합니다.
부모님의 사랑이 안 보인다고 ‘나는 부모가 없어’ 하면 후레자식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안 보인다고 ‘하나님은 없어’ 하면 지옥의 자식입니다.
☞ 남녀의 사랑이 결혼식으로 알레고리 됨을 아는 자, 그 부부가 진짜 부부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