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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태복음 5장 48절 은혜와 진리의 가치 12-온전함
은혜와 진리의 가치 열 두 번째로 여러분들에게 전할 말씀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여러분들에게 주신 은혜와 진리가 여러분들을 온전하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어린 아이를 보고 온전한 사람이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육체만 거인으로 자랐다고 해서 온전해졌다고 하지 않습니다. 또 육체는 별로 안자랐는데 정신이 자란 애 늙은이같은 사람도 역시 온전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보고 온전하다고 합니까? 그것은 원래 창조된 의도대로 만들어진 것을 온전하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인 마태복음 5장 48절 말씀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면 아이들이 어른들을 보면서 자기도 역시 얼른 커서 어른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는 것처럼 하나님 아버지를 보면서 온전하기를 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온전함의 모델은 어떤 특정한 목회자나 신앙의 위인들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의 온전함의 모델은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물론 어린 신앙인은 예수님이나 하나님 아버지를 아는 영적인 지식이 워낙 부족하기 때문에 목회자나 주변에 신앙생활을 잘하는 교회의 직분자들을 보면서 예수님을 배워갑니다. 그들이 바로 신앙의 멘토들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을 보면서 배우려고 하는 이유는 예수님을 알아가기 위한 영적인 몸부림입니다. 온전하신 예수 그리스도만큼 자라고자 하는 영적 갈망이 그를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성장하고 점점 온전해져 가게 합니다.
예수님은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같이 온전하라고 하십니다. 온전하신 하나님 아버지가 여러분들의 완전한 모델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명령입니다. 이 세상에 모든 사람들 가운데 온전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모두가 다 온전해지기 위해서 노력할 뿐입니다. 그렇다면 그 온전해지기 위해서 노력을 하려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 온전해질 수 있는 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바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신 은혜와 진리입니다.
그래서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면 충만할수록 온전해지는 방법을 알고 점차적으로 온전함에 이를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이 땅을 떠나는 순간까지 완벽하게 온전해지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의 온전함과 같이 온전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외에는 없습니다. 사람의 노력만으로는 온전해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사람의 한계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여러분들을 온전하게 하실 능력이 있으십니다. 먼저 예수님은 육체적으로 여러분들을 온전하게 하실 수 있으십니다. 이것은 육체에 임하는 은혜와 진리의 역사입니다. 마태복음 15장 31절을 보면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고 장애인이 온전하게 되고 다리 저는 사람이 걸으며 맹인이 보는 것을 무리가 보고 놀랍게 여겨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서 장애인이 온전하게 되었다는 것은 육체적인 장애를 가졌던 사람이 치료받아 정상인이 되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장애인이 예수님을 만나기까지는 온전해질 수가 없었지만 예수님을 만난 후에는 온전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은혜와 진리를 받았을 때 일어나는 일입니다. 이 사람 뿐만 아니라 말 못하던 사람, 다리를 절던 사람, 맹인들이 치료받아 온전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온전함에 대하여 이러한 병자들이 치료받는 것에만 제한을 두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은 육체와 함께 성도의 거룩함 부분에 대해서도 역시 온전하게 하십니다. 고린도후서 7장 1절입니다.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여기서 말씀하시는 온전함 역시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받은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일임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가진 우리”라고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은 바로 진리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이 성도들에게 은혜로 주어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그 말씀을 받은 사람들은 받지 않은 사람들과 확연한 차이가 드러납니다.
마치 여러분들이 전에는 어두움이었으나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는 말씀처럼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은혜와 진리를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영원한 생명의 약속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거룩한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두려워한다는 것은 경외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게 삽니다. 구약 성경이나 신약 성경이나 이것은 한결같은 강조점입니다.
참된 성도는 하나님을 경외하기에 항상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거룩한 삶을 온전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여러분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이 거룩함에 있어서 온전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거룩함에서 온전하여진다는 것이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그 말씀과 더불어 뒤에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이렇게 연결이 됩니다.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는 사람은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이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육과 영을 더럽히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육과 영을 더럽힌다는 말씀은 고린도교회를 통해 여러 가지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개인적으로 육신을 더럽히는 일에서 떠나야 한다는 말씀을 의미하기도 하면서 또한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거룩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육체를 더럽히는 부분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마태복음 15장 11절을 보면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고 하시면서 사람의 더러움은 외적인 것으로부터 영향을 받기도 하지만 이미 가지고 있는 죄를 통해 드러난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내려와서 예수님께 “당신의 제자들은 더럽게 손을 씾지 않고 음식을 먹습니다.”하고 말했을 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 뜻을 알고 싶어 했던 제자들이 그 말씀의 의미를 묻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5장 17-20절입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내버려지는 줄 알지 못하느냐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육체와 영혼의 더러운 것에서 깨끗하게 하려면 우선은 예수님이 여러분들을 깨끗하게 하셔야 하고, 다음으로는 여러분 자신이 그 깨끗함을 지켜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온전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악한 생각을 하지 않으십니까? 사람을 마음으로 미워함으로 살인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마음으로 미워하는 것이 살인이라고 하셨습니다. 살인자가 감옥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 나라 사회는 극우파와 극좌파로 나뉘어서 서로 미워하는 것을 당연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잘 아는 목사 한 사람은 그러한 사람들의 마음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미워하는 마음을 공략하여 자신의 뜻을 이루고자 하고 있습니다. 정치가들은 정치가대로, 그 목사는 그 목사대로,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은 또 다른 사람대로 다른 사람들을 미워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앞에 서서 누군가를 비방하고 욕하면 속이 시원스럽게 생각하면서 거기에 동조합니다. 여러분들은 그렇지 않습니까?
미움은 개인과 개인의 영역에서도 갖게 되지만 나라 안에서 이렇게 두 개의 파벌로 나뉘어서 서로를 미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나라와 나라 사이에도 미움을 만들어 냅니다. 그들은 국민들이 누군가를 미워할 때 자신이 정치를 하기 쉽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반미 감정, 반일 감정, 반중 감정, 반소 감정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여러분 누군가를 미워하게 만드는 그 모략의 배후에 사탄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셔야 합니다. 사탄은 자기의 모습을 감춘채 자기의 사람들을 통해 미움을 사람들의 마음 속에 넘치도록 채워나가고 있습니다. 미움은 온전함을 막는 적입니다. 그런데 자칭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그 사탄이 쓰는 사람들에 의해 휘둘려 서로 미워함으로 인해 교회까지도 갈라지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좌우파가 갈라지고 서로 미워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예수님께서 머리로써 하시는 진리의 말씀을 버리고 미워할 때 거룩함의 온전함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의 방향이 언제나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로부터 시작되어 사람들을 사랑하는 데로 나아가는 하나님 나라에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또한 마음의 더러움을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간음도 더러운 마음에서 시작되고, 음란도 역시 더러운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도둑질도 역시 마음의 탐심에서 시작됩니다.. 거짓 증언과 비방 역시 말할 것도 없습니다. 육체의 더러움은 마음의 더러움에서 시작되며, 마음의 더러움은 영혼의 더러움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은혜와 진리로써 치료를 받고 새사람이 되어 은혜와 진리를 따르는 온전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은혜와 진리를 떠나서 자기 임의로 생각하고 행동하면서 자기를 온전하다고 생각한다면 그를 아는 많은 사람들이 그로부터 혼란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마치 사사시대처럼 말입니다, 사사시대를 한 마디로 정의한 문장이 있습니다. “그때에 그들이 왕이 없음으로 각자의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였더라” 사사시대처럼 사람들은 하나님을 마음의 왕으로, 그리고 공동체의 왕으로 영접하지를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모른채 자기 자신의 생각이 기준이 되어 일어나는 일과 사람들에 대하여 판단하고 칭찬하기도 하고 벌하기도 하며 멸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성도들이 성경을 통 보지 않습니다. 성경을 봐도 자기 필요에 의해서만 봅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자 하는 순수하고 뜨거운 마음에서 보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의 성공과 부귀영화를 위해서 보거나 아니면 담임 목사님이 성경 읽기를 강조하니까 봅니다. 성경을 많이 읽었다는 것을 자랑하기 위해 보는 사람도 역시 적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성경을 읽고 계십니까?
사실 수많은 교인들이 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하기 위해 성경을 듣거나 읽기 보다는 텔레비전에 자기 마음을 쏟는 경우가 훨씬더 많습니다. 텔레비전은 하루 종일 틀어놓고 보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은 주일 날이나 예배있는 날에 만 보고 다른 날을 전혀 보지 않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가끔보기는 하지만 충동적으로 성경을 봅니다. 다시 말해서 보고 싶을 때만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진리의 말씀을 주실 때의 관심은 여러분들이 성경을 통해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영적인 은혜와 진리로 충만한 온전한 삶을 살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온전한 삶을 사시고자 한다면 성경을 읽는 관점부터 바꾸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하나님을 기뻐하시는 일을 하고자 해서 성경을 읽고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기를 원하시는 지에 대하여 묵상해야 합니다. 묵상한다는 것은 여러분들이 읽을 때 마음에 들어온 말씀에 대해서 성령의 가르치심을 받는 것을 묵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매일 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하시기 위하여 성경을 읽는다면 성령의 가르치심을 받게 되실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을 그냥 읽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의 지식만으로는 온전함에 이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의 주도권을 여러분들이 잡은 상태에서 성경을 읽는다면 성령의 가르침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일평생 성경은 많이 읽어도 진리에 이를 수가 없으며 또한 온전한 믿음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온전함으로 이룰 수가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나는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하고 기도하시면서 고백하고 계십니다.
여러분들도 역시 여러분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아십니까?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면 서로를 아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이론적으로 아는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예를 들어 김치에 대하여 어떤 과학자가 일평생 연구를 했는데 한번도 김치를 먹어본 적이 없다면 그가 진정으로 김치에 대하여 안다고 할 수 있을까요? 물론 지식은 김치를 먹어본 사람들보다 많이 가지고 있을 수는 있지만 그가 진정으로 김치를 안다고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김치에 대하여 이론적으로는 알아도 진짜로 맛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김치를 담근 사람들의 손맛에 의해 얼마나 다양한 맛을 내고 있는지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가 실제적인 것은 살아 역사하시는 성령께서 여러분들 안에서 그 은혜와 진리를 통해 하나님과 살아역사하는 교제의 자리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열두 번의 은혜와 진리에 대한 구체적인 적용의 범위에 대하여 들으셨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이 육의 사람이 되고 영의 사람이 되어 있지 않다면 그것은 여러분들과 전혀 상관없는 말씀으로 들렸을 것입니다. 당연합니다. 여러분은 성령의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영의 사람이라면 영적인 것을 구하기에 영적인 말씀이 들려지면 기쁨이 충만하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들이 그토록 사랑하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에 대한 말씀이 들려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은혜와 진리로써 인도하셨고 앞으로도 역시 은혜와 진리로 인도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과 진정한 사랑의 교제를 가지신다면 하나님은 계속해서 여러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시는 은혜와 진리로 충만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로인해 여러분들은 은혜와 진리로 인해 갖게 되는 확실한 믿음의 확신 가운데 성령이 주시는 평안과 기쁨의 하나님 나라를 누리게 될 것이며 이것은 세상 어느 것으로도 바꿀 수 없는 가치를 지닌 것임을 깨달아 알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유월절 전에 마가의 다락방에 제자들과 모인 자리에서 하나님 아버지께 온전하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십니다. 요한복음 17장 23절입니다.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마음에 더러움을 버리고 온전히 하나가 되는 교회의 복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마음에 더러움으로 채우는 것과 더불어 다음으로 온전함을 방해하는 것이 또 있습니다. 바로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매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6장 14-18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편지에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믿지 않는 자와 함께 멍에를 메지 말라는 말씀은 단순히 결혼문제만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사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장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이 세상의 삶을 살다보면 불신자와 같이 일을 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가정에도, 직장에도, 사업장에서도, 가게나 더 큰 규모의 매장에서도, 사회생활을 하는 모든 삶의 영역에서 불신자들과 함께 일해야 하는 곳은 얼마든지 많습니다.
그렇다면 불신자와 같이 멍에를 메지 말라는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이것은 여러분들의 선택영역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에게 사업하지 말라, 장사하지 말라, 사회 생활을 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삶의 모든 중요한 영역에서 불신자들과 같이 하나의 일을 할 때 갖게 되는 본질적인 문제를 다루시는 것입니다. 불신자와 같이 멍에를 멜 때 일어나는 현상은 같은 일을 두고도 서로 다른 방향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일이 잘못됩니다. 결국 불신자와 멍에를 같이 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기도하셨던 온전히 하나가 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멍에를 메지 말라고 경고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마치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에 들여보내시면서 가나안 사람들의 아들과 딸들을 사위로 삼지고 말고, 며느리로 삼지도 말라는 말씀과 비슷한 맥락입니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물질을 우상으로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것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육체의 사람들입니다. 그런 그들은 항상 모든 부분에서 세상적이고 육체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면서 이익을 얻고자 합니다. 그런 그들과 멍에를 멜 때 하나님 나라 안에서 생각하고 영적인 세계를 생각하는 여러분들과 안맞는 것은 나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의와 불법이 함께 할 수는 없듯이,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같이 조화될 수 없듯이, 빛과 어둠이 같이 사귈 수 없듯이, 성전과 우상이 하나가 될 수 없듯이 믿는 자와 불신자가 함께 같은 일을 할 수는 없습니다. 처음에는 좋을 것처럼 보여도 후에는 그로인해 계속해서 부딪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가다보면 다투지 않기 위해 타협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옵니다. 그렇게 되면 사람과의 관계를 깨뜨리지 않게 하기 위해 하나님을 밖으로 내모는 일들이 일어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바로 고린도후서 6장 14-18절의 말씀 가운데 그렇게 불신자와 멍에를 갖이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무엇 때문에 불신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고 합니까? 여러분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불신자와 멍에를 같이하면 깨끗한 하나님의 성전인 여러분들의 마음이 더럽혀지게 되고 하나님의 온전한 모습이 성전으로부터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성전에 언제나 머무시면서 자신의 거룩함을 성전인 여러분들 안에서 세상에 보여주기를 원하십니다. “내가 그들 가운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는 말씀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너무 사랑하셔서 여러분들과 언제나 함께 하길 원하십니다. 그러나 그들과 함께 있어 부정한 것을 만지게 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의 거룩함에 거하여 온전하게 될 때 나는 너희를 영접하여 나는 너희의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나의 자녀가 되리라”고 약속하십니다. 온전함이 왜 중요한지 아시겠습니까?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타협의 여지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시는 은혜와 진리는 여러분들을 온전한 하나님의 자녀로써의 충만한 삶을 살도록 인도하십니다. 그뿐 아니라 여러분들이 은혜와 진리 안에서 온전하여 질 때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으로 충만함에 이르게 하십니다. 에베소서 4장 13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여러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진리로써 온전하기를 구하십시오. 그럴 때 성령은 여러분 안에서 은혜와 진리로 충만하게 하심으로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이 극대화되기 때문입니다. 이때 여러분들은 솟구치는 듯한 기쁨을 맛보며 누리시게 될 것입니다. 그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이 여러분들을 얼마나 놀랍도록 온전한 사람으로 빗어가시는 지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바로 이 축복이 여러분들에게 넘치게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