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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와 야곱의 만남
창 33: 1-12
20대의 아들이 칠순의 노인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북녘에서 온 아들이 몸을 떨고 통곡하며 땅바닥에 엎어지는데, 아흔을 넘긴 아버지는 표정의 변화 없이 빤히 아들을 바라봅니다 . 그리고 조용히 고개를 옆으로 내리면서 자신의 이마를 손으로 짚어 봅니다. 그 순간, 50년의 웅혈이 강물처럼 흘러 지나가고 있었을 것입니다..
화석이 되어 버린 아버지. 멈춰 버린 듯한 눈빛 속으로 지난 50년의 아픔이 흘러 나오 며 속으로 소리 없이 울고 있었을 것입니다.
백순의 어머니는 치매에 걸려 그저 세상의 즐거움은 흘러 지나가는 풍경일 수밖에 없었었습니다. 그러나 눈앞에 불쑥 나타난 아들의 모습을 보는 순간 백순의 어머니는 덥석 아들의 손을 잡았고, 기적처럼 치매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백순의 나이도, 불치의 병 치매도 어머니를 더 이상 망각의 세월 속에 묻어 두지 않았습니다. 치매에서 서서히 깨어나는 어머니의 표정은 환희도 설움도 아닌 감격이었습니다.
아, 저게 핏줄이구나. 50년 분단의 이데올로기도 핏줄만은 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데올로기의 잔재는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남과 북이 만나는 자리에서 거침없이 흘러 나왔습니다.
“남쪽에서 살아 계신 아버지를 보니 돌아가신 수령님 생각이 더 납네다.”이 기막힌 아들의 말에 남쪽 아버지는 기가 찬 듯 한숨을 하아- 쉬며 50년 세월을 원망하듯 촌스런 모습으로 서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 낯설게 서 있는 부자의 모습이 분단의 한국적 모습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10대의 나이로 신방을 꾸몄고, 딸자식 키우며 50년 세월을 수절했던 여인은 북에서 이미 딴 살림을 차린 남편을 만나 용서해 주는 화해의 현장이기도 했습니다..
"여보, 미안하오!…
“살아서 이렇게 만나니 좋은 일이야.” “여보!…우린 이제 어찌합니까?
2000년 8월 15일. 피맺힌 아픔의 한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절규들이었습니다..쌓이고 쌓였던 혈육의 정이 쏟아져 이룬 통곡과 눈물의 바다였습니다. 서울도 울었고 평양도 울었습니다 아니 7000만 겨레의 통곡이었습니다.
이데올로기가 무엇인지, 이데올로기의 갈등과 대결이 빚어놓은 민족의 비극을 모두 몰아내려는 듯한 사랑의 함성들이었습니다. 남북한 대결의 벽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는 소리들이었습니다.이제 우리는 갈라질 수 없다는 민족혼의 결합이었습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의 가사처럼 통일이 민족의 중대한 과업임을 다시 한번 상기 시켜 주는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남측의 이산가족 수는 760 만명 으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이중 60세 이상의 이산 가족 1세대는 69만 명이고 70세 이상은 26만 명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100명의 방문단 규모로는 이들의 한을 풀어줄 수 없습니다. 순서가 오기도 전에 이 세상을 하직할지도 모르는 이들 1세대 이산가족의 피맺힌 소망이 하루 속히 이루어 져야 합니다. 판문점이든 금강산이든, 이산가족 면회소를 빨리 만들어 이산가족들의 숙원을 풀어 주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창세기에서 이산가족이 상봉하는 사건을 보게 됩니다. 야곱은 형 에서를 속이고 탄로 나자 북쪽 하란으로 도망했습니다. 그곳에서 20년 동안 종노릇했습니다. 그리고 2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형제가 서로 만나게 됩니다. 에서와 야곱의 20년만의 상봉하는 감명 깊은 장면을 보게 됩니다.
1. 야곱의 겸손입니다.
3-"자기는 그들 앞에서 나아가되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 그 형에서 에게 가까이 하니.."
야곱은 형 에서를 만나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 형에게 절하였습니다. 최대의 존경심과 겸손을 나타내는 행동입니다.
겸손은 영어로라고 합니다. 이 말은 즉<땅>에서 나온 말입니다. 참으로 일곱 번씩이나 땅에 굽힐 만큼 그는 겸손했습니다. 깨어진 평화를 회복하고 상대방의 진노를 푸는 데는 겸손하고 겸허한 태도가 큰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총알은 고개를 숙인 사람 위에 날아가는 법이다. `토마스 아켐피스는 말하기를 "그대는 항상 겸손만을 지켜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그대보다 높이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요 그대보다 다른 사람을 낮출 때 그대는 다치게 됩니다. 영원한 평화는 겸손에 있지만 교만한 마음 속에는 항상 자만과 질투만 가득 차 있을 뿐입니다."고 했습니다.
요 13장에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겸손과 봉사의 본으로 제자들의 발을 손수 씻겨 주신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롬12:16-"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 민족은 이념 때문에 남북으로 나뉘었습니다. 이념은 변하지 않는 절대 진리가 아니라 그 시대의 산물일 뿐입니다. 그런데 그 이념을 고집할 때 우리는 영원히 하나되기 어려울 것입니다.
분단 된 나라에서는 민주주의가 발전하기란 어렵습니다. 오히려 공존과 타협이 불가능한 이데올로기적 극한 대결을 불러 이루길 뿐입니다.
남과 북이 겸손한 태도로 서로 양보 할 때 화해의 역사는 더 빨리 이루어지리라 믿습니다.
2. 에서의 관용입니다.
4-"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아서 안고 목을 어긋맞기고 그와 입 맞추고 피차 우니라" 에서는 야곱이 돌아온다는 소식을 들었던지 자기 세력을 과시하기 위하여 400명의 정예 군대를 거느리고 왔습니다. 20년 전 야곱에게 당한 과거를 회상하고 있었습니다., 분노, 오 복수심이 에서의 마음 속에 뒤엉켜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야곱을 보았을 때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에서는 그만 달려와 그를 안고 입을 맞추고 피차 울었습니다. 에서의 가슴속에 도사리고 있던 복수심이 야곱을 만나는 순간 깨끗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혈육의 정은 그런 것입니다.
아무리 이데오롤기의 때문에 남북으로 나뉘어 있었지만은 만나면 모든 것은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에서의 가슴속에는 어린 시절과 동생과 함께 살았던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 순간 미움은 사라지고 관용의 마음이 생겨 달려가 그를 껴안고 말았습니다. 두 형제는 서로간에 껴안고 울었습니다.
이 얼마나 멋지고 인정 어린 인간미가 넘치는 장면입니까? 아름다운 인간 관계는 상대방의 허물을 말하지 않는 관계입니다. 과거의 잘못에 대하여 비난하거나 헐 뜯지 않습니다. 덮어주고 잊어버리는 관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막혀 있는 세계를 하나로 만드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세계를 보게 하시고 듣게 하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대화의 단절로 갈등하는 세계를 화해하여 평화를 누리게 하시려고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 주신 것입니다. 떠났던 창조주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가게 하시려고 하늘의 보좌를 떠나 종의 몸을 입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미국교회가 제정한 1967년 신앙고백에 보면 "그는 아버지의 영원한 아들로 화해의 사업을 성취하시기 위해서 사람이 되셨고, 우리 가운데 사셨다. 그는 화해의 사업을 계속하시고 완성하시기 위해서 성령의 능력으로 교회 안에 임재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기독교는 화해의 종교, 대화의 종교 용서의 종교입니다.
에서의 눈에는 사랑하는 동생만 보였지 20 년전 야곱의 죄와 허물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에서는 야곱을 깨끗이 용서했고 잊어 버렸던 것입니다.
3. 형제간의 양보입니다.
8-9 "에서가 또 가로되 나의 만난바 이 모든 떼는 무슨 까닭이냐, 야곱이 가로되 내 주께 은혜를 입으려 함이 니이다. 에서가 가로되 내 동생아 내게 있는 것이 족하니 네 소유는 네게 두라."
10-"야곱이 가로되 그렇지 아니 하니이다 형님께 은혜를 얻었사오며 청컨대 내 손에서 이 예물을 받으소서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 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형님도 나를 기뻐하심이니이다."
11-12"청컨데 내가 형님께 드리는 예물을 받으소서 하고 그에게 강권하매 받으니라. 에서가 가로되 우리가 떠나가자 내가 너의 앞잡이가 되리라."
형제간에 서로 양보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게 됩니다.
에서는 야곱이 선물로 주는 수많은 짐승을 받기를 사양했습니다. 특히 에서는 그 가축들이 동생 야곱의 피땀어린 노고로 인하여 되어졌음을 알고 더욱 받기를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그 예물을 받지 않을 때 동생 야곱에 대한 자신의 용서나 우정이 표명되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그 예물을 받아 들였습니다. 형제간에 이렇게 예절을 지키며 양보 하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기 그지없는 일입니다. 에서는 또 야곱에게 여행하는 동안 호위해 주겠다고 제의를 했습니다.
12절 하반절에 "내가 너의 앞잡이가 되리라."고 합니다
혈육의 만남은 인륜이요, 천륜입니다.. 그 어떤 인간의 감정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이념과 체제를 이유로 만남을 가로막는 것은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죄악이요 횡포입니다..
이번 8.15 재 상봉 행사는 우리 모두에게 환희와 감동을 주는 역사적 사건입니다.. 서울과 평양에서 들리는 상봉의 희열과 통곡은 분단의 상처를 치유하고 통일의 소명을 이루라는 우리 민족 전체의 합창이라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남북한 정상 회담 이후 좋은 일들이 몇 가지 있었습니다. 남북한간에 상호 비방 중지, 장관급 회담 개최, 판문점 연락사무소 재개, 그리고 언론인 사장단의 방북 등 정상 회담 때 합의 한 사항들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모든 것은 서로의 양보가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오늘의 이 만남! 이 화해는 평범하게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 만남! 이 화해는 하나의 깊은 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창32장에서 야곱의 하나님과의 화해 위에 기초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야곱의 겸손. 에서의 관용. 서로의 양보로 이루어진 화해요 만남이라는 것입니다.
마지막 한가지 기억합시다.
우리 민족의 죄를 사하시고 우리들에게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한 우리들의 기도를 50여년 만에 들으시고 우리들에게 민족 화해와 통일의 길을 열어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화평케 하는 자
창 33: 1-12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고 합니다. 혼자서가 아니라 어울려 서로 의지하고 집단을 이루어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보니 서로 다른 의견이나 사상이 대립이 되어 서로 분노하고 분쟁하고 욕심에 끌리어 시기 질투를 일삼다가 보니 행복해야 할 삶에 불행이 깃들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람 관계가 막혀있으니 자신의 마음도 불편하고 더욱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막히게 되어 받아 누릴 복을 누리지 못합니다. 이제 하나님과 막혔던 담을 허시고 화목 제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은 성도이기에 화평케 하는 자가 되어지기를 원합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5:9)하셨고,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내 형제에게 원망을 들을만한 일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5:23,24)고 하셨으니 하나님 앞에 예배로 화목한 후에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12:14) 하셨으니 하나님 보려면 화평케 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오늘은 “화평케 하는 자”라 제목 하였습니다. 20년 만에 만나려 오는 동생을 죽이려고 400명의 군사를 대동하고 찾아오는 쌍둥이 형 에서의 마음이 변화여 만나는 순간 얼싸안고 입 맞추며 화목하는 현장은 분명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추격하는 라반의 마음도 변화되게 하신 하나님이 에서의 마음도 되게 하신 것은 야곱의 얍복 강가의 기도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야곱이 형을 대하는 자세에서 “화평케 하는 자”의 면을 볼 수가 있기에 야곱처럼 화평케 하는 자가 되어 하나님의 위로와 사랑을 더욱 받기 원하여 은혜 받고자 합니다.
1. 내가 먼저 회개해야 합니다. (3절)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 형에가 나아갔습니다. 이는 얼굴이 땅에 닿을 정도로 상대방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으로 고대 왕이나 점령자들에게 갖추었던 예의였습니다. 이렇게 행하는 야곱이 위선이나 비굴함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기도함으로 환도뼈가 위골되어 절었더라(32:31) 했으니 옛날의 야곱이 아니라 지난날의 잘못된 것을 완전히 버리고 뉘우치는 심령으로 화해를 청하는 자세로 에서의 마음도 변하여 화목하게 된 것입니다.
화평케 하려면 내가 먼저 회개하여 용서 용남하고 또 비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잘못된 것은 적당히 합리화시키며 상대가 나에게 믿고 화해를 청하기를 원하여서는 화평케 될 수가 없습니다. 내가 먼저 하나님 앞에 회개하므로 하나님과 화목되고 사람에게도 감추거나 변명하려 하지 말고 진심으로 자신의 잘못된 것을 고하여 보십시요. 비굴하거나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화합하고 화평케 하는 자입니다. 부부관계나 친구, 성도 간 모든 사람에 대하여 악감정을 버리고 체면도 버리고 솔직하게 시인하는 용기가 화평케 하는 능력자요, 승리자입니다.
자신을 배반한 제자들을 먼저 찾아가신 주님(요21:1)이요, 3번씩이나 부인한 베드로에게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만 물으신 주님이 “내 양을 먹이라”고 용납해 주셨습니다. 그 주님 본 받아 먼저 용서하고 빌어 화평케 하는 자되어 세상을 보다 아름답게 하시기를 원합니다.
2. 겸손해야 합니다. (1-5절)
형을 높여 주라고 하고 자신을 주의 종이라(32:18,5)고 한 것은 자신의 그 어떤 의도 내세우지 아니하고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고 형을 높이고 자신을 낮추어진 겸손한 자요, 일곱 번 몸을 굽히는 것도 형을 왕이나 점령군처럼 높이는 것이었으니 이것이 위선이나 굴복이 아니라 자신을 깨닫고 용서를 구하는 진실 된 표시의 겸손한 자였습니다. 그 겸손함에 에서의 마음도 감동하게 된 것입니다.
“너희 허리를 겸손으로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느니라”(벧전5:5, 약4:6)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낮추어 돌아보며 말씀에 순종하고 살아가는 것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하는 길이요 하나님과 통하게 되니 기도가 상달되고 높여주실 줄 믿습니다. 사람에게도 겸손하게 나보다 남을 낮게 여기고 자신을 지켜갈 때에 진정한 용서를 받을 수 있고 화목한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나 같은 죄인 구원하시려 낮고 천한 이 땅에 종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낮아지심 본 받아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자가 되어질 때 하나님이 역사하시어 화평케 하는 자가 되어질 줄 믿습니다.
3. 사랑해야 합니다. (8-12절)
받지 않으려는 형에게 예물을 받은 시기를 강권하니 받았다고(10) 했습니다. 보내는 예물로 형의 마음을 풀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것을 잘못 생각하면 야곱이 또 인간의 수단, 방법으로 했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그 예물은 20년 세월에 눈 붙일 겨를도 없이 멸시천대 받으며 받은 것이기에 자기의 생명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것을 형에게 드린다는 것은 희생적인 사랑을 나타낸 것이요, “내가 형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 얼굴을 본 것 같아오며”(10)라는 말은 고향과 형이 얼마나 보고 싶고 그리웠다는 것이니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까?
사랑이 무엇입니까? 상대를 이해하는 것이요, 용납 용서하는 것이요, 관심을 갖고 책임 다하는 것이요, 주워도 아깝지 아니한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 이미 받은 성도들이기에 그 사랑으로 사람들을 대하면 용서 못해 줄 것이 없습니다. 회개하고 겸손한 것이 화평케 하는데 소극적인 요소였다면 사랑은 적극적인 요소로 화평케 하는 일에 꼭 있어야 합니다. 자기를 돌로 쳐 죽이고 있는 자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는 스데반 집사의 소리를 들어보시고(행7:60) 진정한 주의 사랑 나눔으로 화평케 하는 자되고 예물까지 드려 징표삼아 세상 더욱 기쁨으로 살아가시기 원합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복잡한 사회 현실 속에서 환경과 조건이 다른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살다가 보니 서로 다른 의견으로 반목하고 질투하며 미워하며 살아갑니다. 유산 상속과 말 몇 마디에 원수가 되는 형제들도 있습니다. 작은 생각의 차이가 순식간에 가정을 깨뜨리는 일도 있습니다. 화평케 합시다.
동생을 죽이려는 마음이 변하여 “내가 너의 앞잡이가 되리라”(12)고 길 안내를 자청하였고 얼싸안고 화목하는 가슴 뭉클한 것에서 성도여! 우리도 가는 곳마다 하나님과 늘 화목하며 인간관계가 화평하도록 하나님 앞에나 사람 앞에 내가 먼저 회개하고 겸손하게 상대를 높여주며 진정한 사랑으로 최선의 예물도 드림으로 화평케 하는 자되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 받고 천국의 기쁨을 맛보며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자가 받은 복을 다 받아 누리는 성도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인간관계가 불편한 것을 나름대로 말해보라.
- 욕심, 이해하지 못해, 악한 감정, 더 사랑 받기 위함 등이 있다. 서로 말함으로 오늘 공과의 주된 화평케 되어야 한다.
2. 에서의 마음이 변한 것에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 하나님이 하신 것으로 얍복 강가의 야곱의 기도가 근본적인 힘이다.
3. 인간관계가 불편할 때 내가 먼저 화해를 청해본 일이 있는가?
- 부부, 자녀, 이웃, 성도간에 내가 먼저 깨닫고 빌어보았던 결과를 말하게 함으로 진정 화평케 하는 자가 되게 해보자.
4. 어떤 사람이 겸손한 자인가?
- 자신을 낮추고 남을 자기보다 높여주는 자로 자기 의견보다 상대방을 인정하고 자신의 할 일을 다하는 사람이다.
5. 야곱이 형을 사랑하는 것을 어떻게 나타냈는가?
- 많은 재물(짐승떼)을 드렸다. 그것은 자기 생명과도 같은 것을 아낌없이 드린 것이다.
6. 화평케 한 자가 받을 복을 말해보라.
- 화목하니 기뻤고 형이 길 앞잡이도 되었고 마음에 평강이 왔고 위협이 사라지게 되었다.
7. 오늘 말씀에서 깨닫고 결심한 것 말해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