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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처| 김상복 목사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무엇이든지 구하라” 하고 기회를 주신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구하겠습니까? 사람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 만약 심청이가 지금 살아있다면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해 주세요” 그랬겠지요. 대학입시생들은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게 해달라고 구할 것이며, 젊은 사람들은 직장과 배우자를 구할 것이며, 질병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은 건강을 구할 것입니다. 저는 우리나라의 통일을 구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여, 우리 민족을 의롭고 정직한 국민이 되게 하시고 자기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며 살 수 있는 나라가 되게 하옵소서. 가정을 행복하게 하시고 우리 한사람 한사람에게 성령 충만을 주옵소서. 내 인격을 예수 그리스도의 성숙한 인격으로 바꿔 주옵소서. 삶의 수많은 풍랑들을 잠잠케 하여 주옵소서.” 태의 열매를 간구하는 자매들도 있습니다. 여행하는 사람들은 안전을 지켜달라고, 학생들은 공부를 잘 하게 해달라고, 사업가들은 사업이 잘 되게 해달라고 구할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엇을 구할까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 보면 ‘무엇이든지 구하라’고 기회를 주었는데 ‘나는 구하지 않겠습니다’ 하는 사람이 나옵니다. 그는 유다의 아하스 왕으로 B.C. 700년대 사람입니다. 그 당시는 나라가 남북으로 갈라져서 북쪽 열 부족은 이스라엘을 형성했고, 남쪽 두 부족은 유다를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그 때 사람이었습니다. 유다의 위쪽에는 북 이스라엘이 있었고, 그 위쪽에는 다메섹(Damascus)을 중심으로 하는 시리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리아의 르신 왕이 이스라엘 왕과 연합하여 유다를 쳐들어오려고 했습니다. 이 상황에서 이사야가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아하스 왕에게 전하였습니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한 징조를 구하되 깊은 데서든지 높은 데서든지 구하라”(10-11절).
이사야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라는 표현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히브리어로 ‘엘로힘’인데, 이는 전능하신 하나님(Almighty God), 즉 우주를 창조하시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뜻합니다. ‘그 하나님이 네 하나님이니 너는 하나님께 어디서든지 무엇이든지 원하는 것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만약에 제가 아하스였다면 이랬을 것입니다. “드디어 살았구나! 이스라엘과 시리아의 연합군이 우리를 치러 왔지만, 이제 하나님께 구하면 하나님이 나의 적들을 물리치시고 나를 그들의 손에서 구해내실 거다. 오, 하나님이여 이스라엘과 시리아를 물리쳐 주옵소서. 겨우 두 부족을 갖고는 이스라엘의 열 부족과 시리아의 연합군을 당해내지 못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다를 구하여 주옵소서.” 보통 사람이라면 모두 이렇게 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하스 왕은 말하였습니다. “나는 구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나는 여호와를 시험치 아니하겠나이다”(12절). 일생일대의 기회가 왔는데도 아하스는 그 기회를 잡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아하스는 하나님께 구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누가 하나님께 구하지 않습니까? 영적으로 잘못된 사람입니다. 영적인 문제가 있는 사람이 하나님께 구하지 않습니다. 아하스 왕은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동북쪽의 앗수르(Assyria) 왕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무시하고 사람에게 도움을 청한 것입니다. 그 결과 아하스 왕은 앗수르의 도움을 받아 시리아와 이스라엘을 물리치고 승리했지만 엄청난 대가를 지불해야 했습니다. 앗수르의 속국이 되어 금은보화를 앗수르에게 바쳐야 했고, 결국 예루살렘 성전에 있던 고운 금은 그릇들도 빼앗겨야 했습니다. 하나님께 구하지 아니하고 사람의 도움을 구한 결과입니다.
여러분, 처녀 마리아의 잉태와 예수의 탄생은 무엇을 말합니까?
전능하신 하나님께 구하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며 기적적인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비천한 인생으로 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구하다가 피해를 입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영광을 받기 위하여 우리 작은 자들에게 하늘의 세계를 열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불가능이 없으며, 따라서 하나님께 구하면 기적적인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 일은 사람에게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전혀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우주와 모든 생명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작은 생명 하나를 창조하여 마리아의 몸속에 넣어주는 것이 뭐 그리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처녀 마리아의 잉태와 출산은 우리에게 기적적인 세계, 무한한 세계, 초월적인 세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에 간섭하시고 위대한 역사를 이루어주실 수 있음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영적으로 잘못된 사람이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습니다. 아하스 왕은 말합니다. “나는 하나님께 구하지 않겠다. 나는 왕이다. 모든 것을 갖고 있는 내가 하나님께 뭘 구하겠나?” 그러면서 그는 사람에게, 심지어 몰렉 우상에게 도움을 구했습니다. 자기 아들까지도 몰렉에게 바치느라 불에 태워 죽였습니다. 종종 예수 믿는 사람들도 점쟁이에게 간다고 하지요. 왜 갔냐고 하니까 재미로 갔다는 것입니다. 궁금해서 간 것이겠지요. 여러분, 모든 것을 아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물어보십시오. 무당과 점쟁이를 찾아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할 일이 아닙니다. 미래를 아시는 하나님께 물어보면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처녀의 몸에서 아들을 낳게 하신 하나님,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무엇이 부족해서 가르쳐주시지 못하겠습니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기적을 믿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무한한 능력을 믿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 것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아하스 왕 같은 영적인 문제가 다 사라지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구하여 하나님의 기적적 능력을 체험하며 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것이 성탄의 메시지입니다.
그리고 교만한 지성인들이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습니다.
뉴욕에 살았던 폴 틸리히라는 독일계 신학자는 “나는 기도하지 않는다. 혼자 명상할 따름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신학자가 되더니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잊고 그것을 자랑이라고 책에 써 놓았습니다.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기도는 미신적인 환상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철학자가 기도에 대해서 무엇을 알겠습니까?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기도에 대해서 알겠습니까?
기도를 해보지도 않고 기도가 응답 되는지 안 되는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기도하면 응답될 줄을 믿고 하나님께 구해 본 사람만이 기도의 능력을 압니다. 어린아이도, 노인도, 무식자도 하나님을 믿고 직접 하나님께 구해보고 찾아보고 두드려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전능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기도의 응답을 체험하며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속에 직접 들어오셔서 그 능력을 체험케 하시는 것이 성탄의 메시지입니다.
처녀가 혼자 아기를 낳을 수는 없습니다. 남자의 도움 없이는 낳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쟝자끄 루소는 “나는 선물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그러나 그에게 기도하지는 않는다”라고 했습니다. 폴 틸리히, 임마누엘 칸트, 쟝자끄 루소 같은 사람들은 지성인이라고, 학자라고, 기도가 필요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겸손한 사람들, 자기의 연약함을 아는 사람들, 위대한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열릴 때까지 문을 두드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속에 위대한 기적적인 역사를 이루어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믿는 사람을 통해 이 땅에서 위대한 역사들을 많이 일으키셨습니다. 여러분의 삶에도 일어났습니다. 제 삶에도 일어났습니다. 여러분, 구하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과 저에게 기도의 특권을 주시면서 구하라고 하십니다.
또 어리석은 무신론자들은 아하스처럼 기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니까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좋은 일이 일어나도 감사할 대상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고 믿는 사람들은 감사할 일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때문에 감사하면 할수록 감사할 일들이 많아집니다. 다윗은 하나님 때문에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거인 골리앗 앞에서 믿음 없는 모든 이들은 벌벌 떨었습니다. 그러나 17살 소년 다윗에게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믿고 물맷돌을 던지자 그것이 유도탄처럼 골리앗의 이마에 가서 박혔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17살 소년 다윗에게 승리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성탄의 메시지입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이것이 성탄의 메시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마리아에게 나신 예수를 통해서 우리에게 기적의 가능성을 보여주셨습니다. 인간은 유한하고 작은 존재입니다. 지성인들이 조금 안다고 하나님을 무시하는 모습을 하나님이 보시고 웃으신다고 했습니다. 인간은 미세한 먼지만도 못합니다. 저 우주를 보십시오. 태양계도 너무 작아서 제대로 보이지 않습니다. 우주 속에 지구, 그 속에 대한민국, 대한민국 속에 성남, 성남 속에 분당, 분당 속에 야탑, 야탑 속에 할렐루야교회 수천 명 중에 나... 이렇게 작은 인간이 무엇을 다 안다고 감히 하나님을 없다고 합니까? 지구 끝에도 가보지 못한 인간이 우주의 창조자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것은 교만이며, 일종의 신앙고백입니다. 무신론도 신앙입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증명할 도리는 없지만 그저 그렇게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하지 않는 인간을 책망하십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아하스 왕을 책망했습니다. “다윗의 집이여, 청컨대 들을지어다. 너희가 사람을 괴롭게 하고 그것을 작은 일로 여겨서 또 나의 하나님을 괴로우시게 하려느냐?”(13절). 사람은 자주 도와달라고 하면 귀찮아합니다. 두 번까지는 선심 써서 도와줄 수 있지만 그 이상 요구하면 괴로워하고 싫어합니다. 그러나 우주를 창조하신 능력의 하나님, 자비와 긍휼이 풍성하신 사랑의 하나님,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을 소유하신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을 구해도 응답하실 수 있습니다.
처녀의 몸을 통해 메시아를 탄생시키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실 수 있습니다. 구했기 때문에, 원했기 때문에, 꿈꾸었기 때문에, 결국 위대한 일들이 우리의 삶속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는 사람, 구하지 않는 사람을 통해서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설령 불가능해보여도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가능하다고 믿고 하나님의 도움을 계속 구할 때 하나님께서는 얼마든지 하실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하스를 책망하신 후에 친히 기적의 가능성을 주셨습니다.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14절).
교만하고 영적으로 잘못된 아하스 앞에서 하나님께서 친히 기적을 보여주시겠다고 선포하신 것입니다. ‘약 700년 후에 마리아라는 처녀를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잉태되고 탄생할 것이다. 그가 인류의 죄를 사할 것이며, 믿는 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영원히 그들과 함께 하실 것이다.’ 성탄의 메시지입니다.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눅1:37) 하였습니다.
문제는 여러분과 저입니다. 아하스처럼 믿음이 없어서, 영적으로 게을러서, 영적으로 교만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내가 제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성탄의 계절에 여러분의 신앙과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을 점검해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의 삶속에서 나타내기를 원하시는 그 위대한 능력을 늘 체험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90세 할머니 사라와 100세 할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천사들을 보내셔서 “내년 이맘때 사라가 아들을 낳을 것이다” 하셨습니다. 그랬더니 아브라함이 엎드리면서 피식 웃었습니다. 사라도 웃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삭’이란 ‘웃긴다. 웃기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고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심으로 우리를 웃게 하십니다. 이것이 처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예수님의 메시지입니다.
여러분, 성탄의 계절을 보내면서 성탄의 기적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일평생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하나님의 기적을 구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아하스에게 주셨던 그 기회를 여러분과 저에게도 주십니다.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
여러분에게는 불가능해도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기적을 믿고 구하십시오. 초월적인 삶을 구하십시오. 새해를 맞이하면서 하나님의 초월적 세계를 반드시 구하시기 바랍니다. 크신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을 체험하며 살아갈 때 여러분에게도 많은 성취가 나타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