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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박종태목사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막 5:21-431(2016년 1월 31일 주일)
설교자:마경훈 목사(비전교회)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만나는 문제들은 주님께 나아가는 징검다리입니다. 본문에 보면 문제를 가진 두 사람이 나옵니다. 회당장 야이로와 12해를 혈루증으로 고통당하던 여인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만난 문제 때문에 주님 앞에 나아오게 되었습니다. 만약 그들에게 문제가 없었다면 그들은 주님을 찾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회당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기간 중 흩어져 있을 때 성전이 없는 곳에서 성전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신앙교육을 하던 곳이었는데 포로 귀환 후에도 회당은 여전히 종교와 교육의 중심 역할을 하였습니다.
야이로는 가버나움에 있는 한 회당의 회당장으로 짐작됩니다. 당시 회당의 조직은 회당장과 서열 2위인 핫잔이라는 직책 그리고 랍비와 평신도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이 중에서 특별히 집회의 우두머리의 역할을 회당장이 했습니다. 회당장은 회당 내의 질서를 감독하고 예배를 주관하며 건물을 관리하는 지도자였습니다. 당시 회당장의 지위는 회중 가운데 탁월한 인물에게 주어졌으며 따라서 회당장은 당시 대중들로부터 상당한 존경을 받았습니다. 야이로도 회당장으로 그러한 사람들 중의 한 사람으로서 그 지방에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귀히 여김을 받는 사람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유대교에 철저히 헌신한 사람이 아니고는 회당장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역을 시작하신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였고, 정통 랍비 출신도 아닌 단지 목수의 아들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거기다가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 유대인들로부터 이단자로 지목이 되었던 상황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유대교의 지도자인 회당장 야이로가 주님의 발아래 엎드려서 간곡히 부탁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회당장 야이로가 주님을 찾아왔던 것은 딸의 죽을 병 때문이었습니다. 야이로는 딸이 곧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23절에 보면 야이로는 자기의 딸이 죽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죽게 되었사오니’라는 말은 헬라어로 ‘에스카토스 에케이’라는 말인데 죽음의 순간에 놓여 있는 사람의 상태를 묘사하는 관용적인 표현입니다. 그러니까 야이로는 자기 딸이 금방 죽을 것처럼 생각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상황이 되었기 때문에 야이로는 예수님 앞에 나오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문제를 부정적으로만 바라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꼭 그렇게 말씀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문제를 긍정적으로 보는 말씀도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3개의 구절만 살펴보겠습니다. 시 119:67입니다.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시 119:71입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시편기자는 고난이 없을 때에는 그릇 행하였었는데 고난을 당하면서 주님의 율례를 배우게 되어 바른 길로 들어서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고난이 유익이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롬 8:28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우리가 원치 않는 문제, 고난, 아픔, 슬픔을 만났을 때 주님을 찾으면 그것들은 주님 앞에 나아가는 징검다리가 될 것입니다. 흔히 말하는 고난이 축복이 될 것입니다.
모든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도요한은 요 20:31에서 자신이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사도요한이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은 두 가지였습니다. 믿게 하고 얻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사도요한은 독자들이 요한복음을 읽고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또 그 이름을 힘입어서 생명을 얻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마가도 사도요한과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마가복음을 기록했습니다. 마가는 막 1:1에서 마가복음을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마가 역시 독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알리므로 독자들이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시며 그분의 복음으로 영생을 얻기를 원하는 목적으로 마가복음을 기록한 것입니다.
본문은 두 가지 사건이 마치 샌드위치처럼 진행되고 있습니다. 먼저 회당장 야이로가 병든 딸을 고치기 위하여 주님을 찾아와서 주의 발아래 엎드려서 도움을 요청합니다.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으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 주님은 야이로의 요청대로 야이로의 집으로 향하셨습니다.
주님이 길을 가실 때 큰 무리가 따라가며 에워싸 밀었습니다. 그 무리 중에는 12해를 혈루증으로 고통당하던 여인이 있었습니다. 혈루증은 피가 멈추지 않고 계속 흘러나오는 병입니다. 고약한 난치병입니다. 이 여인은 이 병을 12년 동안 앓았으니 여인의 몰골이 어떻겠습니까? 상상해보십시오. 창백한 얼굴, 바짝 마른 체구, 항상 빈혈에 시달렸고, 출혈로 인한 영양실조로 하루하루 힘겨운 삶을 살아야 했을 것입니다.
그녀는 많은 의사들을 찾아갔지만 병은 고치지도 못하고 괴로움만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했고 아무 효험도 없었고 도리어 병이 더 중해졌습니다. 여인은 그러던 차에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습니다. 여인은 예수님을 찾아와서 무리 가운데 끼었습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의 뒤로 와서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댔습니다.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댄 이유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과연 그 여인의 믿음대로 몸에서 피가 멈췄고 자신의 몸의 혈류 근원이 마른 것을 곧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여인의 믿음에 대해서 칭찬하고 계시는데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왔습니다. 그들은 회당장 야이로에게 그의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말을 들으시고 야이로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집에 가셔서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자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울며 통곡하는 사람들을 내보내시고 아이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아이의 손을 잡고 “달리다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달리다굼은 ‘소녀야 일어나라’라는 뜻입니다. 주님이 소녀를 향하여 달리다굼이라고 말씀하시자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었고 사람들은 크게 놀랐습니다.
오늘 설교는 앞에서 말씀드린 2개의 사건에 나오는 중요한 2개의 단어를를 통해서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구원(21,23,34절)
주님은 구원자이십니다.
21절에 보면 주님께서 배를 타시고 다시 맞은편으로 가셨다고 말합니다. 막 5:1과 본문을 연결시켜서 살펴보면 주님께서 가버나움에 계시다가 배를 타고 갈리리 바다를 건너서 거라사에 가셨다가 다시 가버나움으로 오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은 왜 거라사에 가셨습니까? 주님이 거기 가셔서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찾아보면 알 수 있습니다. 1-20절에는 주님이 거라사에 다녀오신 내용이 나옵니다. 거기에는 한 귀신 들린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무덤 사이에 거처하였습니다. 그는 여러 번 고랑과 쇠사슬에 매였으나 쇠사슬을 끓었고 고랑을 깨뜨렸습니다. 이제는 아무도 그를 제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소리를 지르고 돌로 제 몸을 해치고 있었습니다. 그는 귀신의 역사로 완전히 미쳐버렸고 사람들은 누구도 그를 제어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 한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풍랑을 뚫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역사하는 군대귀신을 쫓아내시므로 그를 치료하셨습니다. 주님은 그를 구원하신 후에 다시 갈릴리 바다를 건너서 가버나움으로 오신 것입니다.
가버나움으로 오신 예수님은 회당장 야이로의 죽은 딸을 구원하셨습니다. 23절에 보면 야이로가 주님에게 이렇게 간청합니다.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 야이로는 예수님에게 어린 딸의 구원을 호소하였고 예수님은 야이로의 간구대로 딸을 질병과 죽음으로부터 구원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12해를 혈루증으로 앓던 여인도 구원해주셨습니다. 28절에 보면 여인은 주님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하였고, 34절에 보면 주님은 그 여인에게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주님의 옷자락에 손만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고 생각했던 그 여인의 믿음대로 여인을 혈루병으로부터 구원해주셨습니다.
본문에는 구원이라는 말이 3번 나오는데 여기 나온 구원이라는 말의 원형은 모두 헬라어 ‘소조’입니다. 이 말은 ‘구원하다. 해 받지 않게 하다. 보존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신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육체적인 생명의 구원이나 치유의 이적 그리고 예수님의 이름에 대한 설명 등에 나타났습니다. 마 1:21에 보면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고 말씀합니다.
주님이 베푸시는 가장 핵심적인 구원은 죄로부터의 구원입니다만 구원이라는 단어는 모든 부분을 포괄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구원은 전인적인 구원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신 후에 우리를 버려두셨다가 우리가 죽을 때에 우리를 천국으로만 인도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신 것처럼 우리에게 구원이 필요한 모든 부분에 구원을 베푸시는 분입니다.
감사한 것은 구원자이신 주님은 우리가 주님을 간절하게 찾으면 만나주십니다. 잠 8:17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우리가 주님을 부르면 주님은 응답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간절히 주님을 찾으면 주님은 우리를 만나주십니다.
고려대병원 성형외과 박모 교수는 귀성형의 대가인가봅니다. 몇 년 전 누군가가 쓴 글을 읽었는데 대단한 분 같습니다. 환자들이 귀 수술을 받으려고 박모 교수를 찾아가면 두 번 놀라게 된다고 합니다. 일단 의사 얼굴 한번 보는 외래 진료 예약이 두 달 후에나 가능하다는 소리에 놀라고, 간신히 진료를 받고 수술 날짜를 잡으려면 5년 뒤에야 수술 일정이 잡히게 되어 놀란다고 합니다.
고려대 박모 교수에 비하면 우리 주님은 비교할 수 없이 위대하신 분입니다. 주님은 많은 사람들이 제어할 수 없었던 거라사의 광인도 고치셨고, 많은 의사들이 12년 동안 고치지 못했던 혈루증 여인도 고치셨고, 죽었던 회당장 야이로의 딸도 살리셨습니다. 박모 교수가 대단하지만 주님처럼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위대하신 주님은 우리가 주님을 간절히 찾으면 만나주십니다.
주님에게는 문제가 될 문제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의 뜻입니다. 주님의 뜻이 있다면 어떤 문제도 해결해주시고 문제로부터 구원해주십니다. 주님의 뜻이 있다면 문제를 남겨두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들로 만드시는 것입니다.
은혜로운 간증 하나를 들었습니다. 아마존 밀림에서 원시부족들을 상대로 사역하셨던 어느 선교사님의 간증입니다. 선교사님이 강을 건너가고 있었습니다. 가슴까지 물이 차는 곳이었는데, 급한 일이 있어서 부리나케 강을 건너다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강을 건너던 선교사님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창백해지고 말았습니다. 길이가 10미터가 넘는 거대한 뱀 아나콘다가 대가리를 물 위로 내놓고 선교사님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강둑에서는 부족 사람들이 선교사님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부족원들은 하나님께서 강물 속에서 선교사를 아나콘다로부터 어떻게 구원하는지 지켜보자고 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교사는 틀림없이 아나콘다의 먹이 감이 되어 강물 속에서 처참하게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선교사는 강둑 위에 서있는 마을사람들을 보고 더욱 긴장이 되었습니다. 만약 자신이 아나콘다의 입안으로 빨려 들어가 아나콘다의 밥이 되고 만다면, 다른 선교사들이 들어와도 그 마을에 복음을 전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해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선교사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능력의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아나콘다를 멀리 쫓아주시옵소서. 원주민들이 그것을 보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게 하옵소서.” 선교사는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기도를 한 후에, 손가락으로 그 아나콘다를 가리키며 담대하게 명했습니다. “내가 나사렛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아나콘다야, 속히 너희 집으로 돌아가라.”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선교사의 말의 떨어지기가 무섭게 아나콘다는 갑자기 몸을 휙 뒤틀더니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이 광경을 바라보던 원주민들은 놀랐습니다. 그리고 선교사님이 믿는 하나님은 대단한 분이라고 하면서 자발적으로 교회에 나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주님은 선교사님의 기도를 들으시고 아나콘다로부터 구원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기적 같은 일들을 목격한 원주민들은 죄로부터 구원해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은 죽음도 정복하신 분입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주님은 구하는 자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셨습니다. 여인이 옷자락만 만져도 낫겠다고 생각하니 그렇게 해주셨습니다. 야이로가 집으로 가셔서 딸을 살려달라고 하니 주님은 야이로가 원하는 대로 집으로 가셔서 딸을 살려주셨습니다.
눅 7장에 보면 사랑하는 종이 병이 들어서 주님에게 사람들을 보내서 도움을 요청한 백부장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유대인의 장로 몇 사람을 예수께 보냈습니다. 그리고 주님에게 자기 집으로 오셔서 그 종을 구해 주시기를 청했습니다. 주님은 백부장의 청대로 백부장이 보낸 사람들과 함께 가셨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백부장이 자기 벗들을 보내서 수고하시지 마시고 말씀만 해달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말씀만 하셔도 하인이 낫겠다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주님은 그 말을 들으시고 백부장의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원하는 대로 말씀으로 하인을 치료해주셨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이야기입니다. 천지의 주재이신 주님이 일개 백부장이 오시라고 하니 가셨고 오시지 말고 말씀만 하셔도 된다고 하니 주님은 그가 원하는 대로 말씀만 하셔서 하인을 구원해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구원자이십니다. 죄로부터의 우리를 구원해주시고 문제로부터 우리를 구원해주시는 구원자이십니다.
2. 믿음(34,36절).
주님은 믿음을 보시고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막 3:9-10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작은 배를 대기하도록 제자들에게 명하셨으니 10 이는 많은 사람을 고치셨으므로 병으로 고생하는 자들이 예수를 만지고자 하여 몰려왔음이더라” 주님의 소문을 듣고 많은 무리들이 주님에게로 몰려들었습니다. 몰려드는 사람들 중에 주님을 만지려는 사람들 때문에 주님은 배에 타시고 육지에서 조금 떨어지셔서 설교를 하셔야 할 정도였습니다. 사람들이 주님을 만지려고 했던 이유는 주님이 많은 병자들을 고치셨기 때문입니다.
제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가하면 주님을 만진 사람들은 많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다른 사람들은 주님을 만지고도 병이 치료 되지 않았는데 왜 12해를 혈루증으로 앓던 여인만 주님을 만짐으로 병에서 구원을 받았느냐는 것입니다. 답은 믿음입니다.
34절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주님께서 그 여인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주님은 그 여인의 믿음을 보시고 치료해주신 것입니다.
36절에 보면 주님이 회당장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오는데 회당장이 자기 집에서 딸의 죽음에 관한 소식을 가지고 온 사람들의 말을 듣고 믿음을 잃어버릴까봐 주님이 회당장의 믿음이 무너지지 않도록 그의 믿음을 붙들어주신 것입니다.
제가 지난 주간에 3일간 거마지역 연합회 임원수련회로 일본에 다녀왔습니다. 좀 고생했습니다. 저희가 간 지역은 규슈지방인데 34년 만에 큰 눈이 내려서 고속도로가 통제되었습니다. 출발하는 날은 비행기가 4시간 연착 되어서 한 밤 중에 숙소에 도착했고 나머지 이틀 동안은 차 안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덕분에 저는 눈을 감고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버스 안에서만 8시간 30분이나 기도하고 돌아왔습니다. 요즘 제가 작정기도를 하기 때문에 기도시간을 체크를 하거든요. 사람들과 함께 있는 상황에서 그만큼 기도하기는 쉬운 일이 아닌데 워낙 차 안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서 그만큼 기도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기도시키신 것이라고 믿습니다. 일본을 위한 기도가 필요합니다. 3일간 차를 타고 다니면서 교회를 딱 하나 봤습니다. 그만큼 복음화 율이 낮다는 말이죠. 일본을 위한 기도가 필요합니다.
제가 일본에 갔을 때 둘째 날 긴린호수를 갔습니다. 우리말로 하면 금린호수입니다. 쇠금(金) 자에 비늘린(鱗)자를 사용합니다. 이 호수에는 잉어가 많이 있습니다. 석양빛이 잉어들의 비늘에 반사되면서 금빛이 난다고 해서 금린호수입니다.
일본인들이 많이 기르는 코이(koi)라는 잉어가 있습니다. 이 잉어를 작은 어항에 넣어두면 5-8Cm 밖에 자라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주 커다란 수족관이나 연못에 넣어두면 15-25Cm까지 자란다고 합니다. 또 강물에 방류하면 무려 90-120Cm까지 자란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코이를 어디에 기르냐에 따라 크기가 달라집니다. 마찬가지 원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의 그릇에 따라 역사를 해주십니다.
마 9:29을 보겠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이르시되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시니” 이 말씀은 주님이 여러 명의 맹인들을 만나시고 그들의 눈을 치료하실 때 하신 말씀입니다. 주님은 눈을 치료 받기 원하는 맹인들의 눈을 만지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믿음대로 되라”
우리는 자기 신념으로 살면 안 됩니다.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자기 신념과 믿음의 차이는 그 바탕이 무엇인가의 차이입니다. 말씀이 바탕이 된 확신은 믿음입니다. 자기 판단이 바탕이 된 확신은 신념입니다. 롬 10:17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믿음은 말씀이라는 태두리 안에서 갖는 확신입니다.
믿음이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기준이 믿음이고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역사하실 수 있게 하는 발판이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히 11:6을 보겠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께 인정받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제가 요즘 설교를 하면서 성경 말씀을 ppt로 보고 함께 읽는 것은 여러분의 믿음 성장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해서입니다. 성경읽기도 스티커를 붙여가면서 하고 상품까지 주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매주 성경 구절을 하나씩 외우게 하는 이유도 여러분의 믿음 성장을 돕기 위함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말씀 안에서 자라고 믿음을 가져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설교하면서 행위를 강조하지 않고 믿음을 강조합니다. 그 이유는 믿음은 우리를 행동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27,28절을 보십시오. 여인이 왜 예수님을 찾아왔습니까? 그녀는 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는 행동을 한 것입니까? 옷자락만 만져도 낫겠다는 그녀의 믿음이 그렇게 행동하게 만든 것입니다.
구약 성경 레위기를 보면, 몸 밖으로 피가 흐르는 혈루증은 부정한 병으로 혈루증을 앓은 여인이 만지는 모든 것을 부정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니 이 여인은 사람들 가까이 갈 수가 없습니다. 가까이 간다면 사람들이 피하거나 아니면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위협을 가했을 것입니다. 때문에 이 여인이 무리 중에 낀다는 것은 아주 위험한 행동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인은 무리 중에 들어갔으며 주님의 옷을 만졌습니다. 그녀의 믿음이 그녀를 행동하게 만든 것입니다.
야고보서의 주제는 살아있는 믿음입니다. 죽은 믿음을 가진 사람은 믿음대로 살지 못하지만 살아있는 믿음을 가진 사람은 믿음대로 살게 됩니다. 야고보서 말씀 두 곳을 보겠습니다. 약 2:22입니다.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약 2:26입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살아있는 믿음을 가지면 믿음대로 살게 됩니다. 그래서 믿음이 중요합니다.
믿음은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의 모든 부분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만듭니다. 전인적 구원을 줍니다.
세계 2차 대전 때에 독일의 나치는 유대인 6백만 명을 죽였습니다. 수용소에 있는 유대인들을 짐승처럼 한 줄로 묶어서 샤워시켜준다고 어느 한 건물로 들어 보내고 물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가스를 집어넣어서 죽이기도 했고, 그들의 시체에서 기름을 빼내어서 비누를 만들었습니다. 그런 환경의 수용소에 갇혀 있는 유대인들은 하루가 천년처럼 괴로웠습니다. 어떤 사람은 견디지 못하고 혀를 깨물어 자살을 하기도 했고 6개월이 못되어 죽어나가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3년 동안 건강을 유지하고 얼굴이 환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조사를 해 보니 그들은 유대교 ‘랍비’들이었습니다. 랍비는 성경을 가르치는 선생을 말합니다.
빅터 프랭클(Victor Frankl)이란 사람이 그 사람들에 대해서 연구를 했습니다. 이 랍비들은 그런 환경 속에서도 어떻게 평안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그들에게는 다른 사람에게는 없는 것이 있었습니다. ‘내세에 대한 소망,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되지 않는다는 하나님의 주권의 인정, 그리고 어차피 한 세상 떠나면 주님이 예비한 천국이 있다는 확신, 즉 우리와 좀 다르긴 하지만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죽는다는 의식보다는 우리는 천국 간다는 의식을 더 갖게 되었을 때 그들은 어두운 감옥 속에서도 밝은 표정을 짓고 살 수 있었고, 3년 동안 건강이 무너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 어두운 세상, 험한 세상, 환난이 많은 세상, 슬픔이 가득한 세상을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주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낫는다는 믿음으로 날마다 주님을 만져야 합니다. 날마다 예배하며 날마다 기도하며 날마다 주님을 부르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을 무너뜨릴만한 사건과 사고들이 때대로 일어나고, 사단의 공격이 끊임없이 찾아오고 또 우리 자신의 연약함을 보고 절망할 수밖에 없을 때 회당장 야이로에게 주님이 하셨던 말씀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라는 말씀을 기억하며 오직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주님의 구원이 여러분의 영혼을 구원한 것처럼 여러분의 삶 전반에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