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석 코치님 말씀
주제 말씀 : 마태복음 7장 13절~27절
지난 주일날 목사님께서 ‘누가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가?’라는 제목의 설교를 하셨습니다. 마태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해서 찾는 이도 많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교회에 다니는 크리스천들 대부분이 자기들이 구원받았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구원받는 자가 적다는 취지에서 이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면서 거짓 선지자들에 대해서 주님께서 경고하십니다. 예언 노트 말씀에서 보면 목회자들 대부분의 머리 위에 미혹의 영이 앉아 조종하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본인은 자신이 하나님의 일꾼이 되었다고 신학교를 나오고 사명을 받아서 목회자가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 상당수가 거짓 선지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스스로 종 된 자들이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스스로 종이 된 자들은 자기의 일을 할 뿐입니다. 하나님이 시키신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야망과 자기의 종교적인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 이 기독교라고 하는 터를 활용하고 있는 사람들일 뿐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진짜 선지자와 가짜 선지자를 구분할 수 있는 비결로 열매에 대해서 20절까지 말씀하십니다.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세상에서 좋은 나무는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유일하게 좋은 나무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5장에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라는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이 좋은 포도나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좋은 포도나무 되신 예수님께 붙어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는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는 오직 참된 포도나무 되신 예수님께 잘 붙어 있느냐 아니냐에 따라서 결정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이 기도 훈련을 하는 까닭도 바로 예수님께 접붙임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좋은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딱 붙어서 예수님께로부터 모든 생수를 공급받아, 성령을 공급받아 살아가는 자들이 되려고, 그런 자들만이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아니면 어떤 선지자도 다 거짓 선지자입니다.
그가 아무리 신학교를 나왔고, 또 아무리 성경 지식이 많다 하더라도 그의 삶이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붙어 있지 않다면, 그래서 예수님께로부터 성령의 생수를 날마다 풍성하게 공급받아 열매 맺고 있지 않다면, 그러면 그는 그냥 종교인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은 그런 종교인을 거짓 선지자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천국에 들어가는 자격에 대해서 다시 한번 22절에서 말씀하십니다.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마 7:22)
이들이 다 거짓 선지자라는 취지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심판 날에 많은 주의 종이 와서 주님 저희는 다 영접했던 사람들이며, 예수님 잘 믿은 사람들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특별히 22절에는 사역자들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선지자 노릇을 했습니다. 예언을 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도 행했고,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했으며, 병도 고치고 기적을 행하는 그런 능력을 한때는 행했던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이 다 가짜라는 게 아닙니다. 한때는 이러했다는 것입니다. 한때는 분명히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이런 능력들이 그들에게 있었는데, 예수님은 이들이 다 탈락이라고 23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이것이 마지막 심판 자리에서 일어나는 무서운 일입니다.
그러면 목회자나 교회 지도자들만 이런 평가를 받게 될까요? 아닙니다. 크리스천들 대부분이 동일한 잣대로 예수님께 평가를 받게 됩니다. 자기가 구원을 받았다고 이 땅에서 확신하며 살았던 많은 사람이 정작 심판 자리에서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라는 청천벽력 같은 말씀을 듣게 됩니다. 너무나 두려운 일이죠. 이 땅에서는 우리가 잘못한 것이 있으면 회개하면 됩니다. 이 땅에서 뭔가 문제가 생기면 지금 회개하고 하나님께 무릎 꿇고 눈물로 통회하고, 자복하고 용서받고, 돌아서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됩니다. 그러면 회복될 수 있고 생명의 길로 다시 나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날의 심판 자리에 섰는데 예수님이 나보고 모른다고 하시면 이것만큼 절망적인 일은 없습니다. 이것은 회복될 수 없는 영원한 절망입니다. 기도 훈련한 우리가 모두 왜 하나님의 이름을 부릅니까? 왜 재림에 성령님이 우리에게 오셔야 합니까? 성령님이 오시지 않으면 우리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성령님이 오시지 않으면 우리는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접붙임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과 관계없이 끊어진 존재들이며, 말라비틀어져서 나중에는 불쏘시개로 버림받게 되는 존재들입니다. 오직 성령이 오셔서 나를 예수 그리스도께 접붙임을 받도록 해주시고, 오직 성령께서 내 안에 역사하셔서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24절 이후로 예수님께서는 구원받는 믿음은 예수님의 말씀을 행하는 믿음이라고 다시 한번 강조해서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마 7:24)
24절,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여기 예수님께서 구원받는 비결로써 ‘믿는 자는’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고 ‘행하는 자’가 구원받는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행하는 자만이 무너지지 않고 견고하게 서서 끝까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 24절부터 27절까지는 구원과 직접 연관된 말씀입니다. 전체 문맥 안에서 무너진다는 것은 영적인 모든 삶의 열매가 하나도 없이 파괴되고 버림받아 지옥에 던져진다는 취지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너지지 않는 심판을 견뎌야 하나님 앞에 기쁘게 서는 자들이 된다는 취지의 말씀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행할 수 있습니까?
어떤 인간도 죄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한 명도 없고, 우리는 다 마귀의 자녀였기 때문에 일생을 살아오면서 말하고, 듣고, 행하고, 생각하는 것들이 다 마귀의 것을 쏟아냈던 우리인데, 아름다운 열매라고는 조금도 없었던 우리인데, 어떻게 우리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으며 주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성령의 도우심과 역사 없이는 아무도 이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주님이 나한테 와 주시지 않으면, 성령님이 내게 오시지 않으면, 구원의 소원이 전혀 없는 자들입니다.
‘하나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심지어 내가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일으키는 일을 행했다 하더라도, 한때 그런 일을 했던 자들이라도 성령이 떠나가면, 예수 그리스도께 접붙임을 받은 상태에서 떨어지게 되면, 잘려나간 나뭇가지 같은 상태가 되어서 말라비틀어지게 되고, 버림받아 불에 던져지게 된다는 것이 요한복음 말씀의 포도나무 비유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 대전 크리스천 영성학교 모든 식구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이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 성령님을 내게 보내어 주시옵소서. 열매 맺는 나무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뜻을 담대하게, 용기 있게, 결단력 있게 행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오니 성령님을 내게 보내어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마지막 날 심판자 앞에 섰을 때 주님께서 ‘내가 너를 안다, 너는 평생에 걸쳐서 몸부림치며 나와 동행하려고, 나와 함께하려고 애썼다. 나는 너의 그 기도하는 모습을 다 지켜보았고 네가 기도할 때마다 너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너와 함께하였다’라는 말씀을 듣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이 심판의 자리 앞에서 누구도 절망의 심판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심지어 크리스천 영성학교에 와서 오랫동안 함께했던 분 중에도 떠나가는 분들이 많습니다. 기도 훈련하다가 ‘좀 좋은 걸 경험했지만, 이 길은 내 길이 아닌 것 같아요.’라고 하며 떠나시는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크리스천 영성학교에 안 온다고 다 심판받느냐? 그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누구라도 크리스천 영성학교에 있든지 떠나든지 어느 위치에 있든지 간에 하나님의 이름을 간절히 부르며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에서 떨어지게 되면 심판을 면할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한번 구원은 결단코 영원한 구원이 아닙니다. 오직 우리의 구원은 지금 현재 내가 성령께 붙어있느냐는 그 사실만이 관건이 됩니다. 현재 내가 성령과 연합하여 주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순종하는 자로 살고 있느냐 아니면 나의 믿음이 과거의 추억을 이야기하는 사람이냐에 따라서 현재 내가 구원받은 상태이냐 아니냐가 결정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구원은 심판 자리 앞에 서는 날까지 최종 확정이 아닙니다. 항상 잠정적인 상태일 뿐입니다. 구원받은 사람도 잠정적으로 구원받은 상태이고 심지어 지금 죄인이라 하더라도 그는 돌이켜 구원받을 잠정적인 가능성이 있는 사람입니다. 기도 훈련하는 우리는 얼마나 좋은 자리에 하나님께서 불러주셨습니까? 성령님과 동행할 수 있는 자리로, 순종할 수 있는 자리로 불러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이 말씀을 기억하면서 ‘우리 남은 생애를 주님 열매 맺는 나무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춧돌 위에, 반석 위에 지은 집과 같이 주의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될 수 있도록 성령님을 나에게 풍성히 부어 주시옵소서’ 그것을 갈망하는 우리가 되시기를 원합니다.
첫댓글 조태범 권사님~~새로 오셔서 이렇게 정리해 주시는 수고를 아끼지 않으시니 감사드립니다~~~~~~~~감솨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조권사님 왜 이제 오셨남요?
아멘! 감사합니다!
아멘 아멘
아멘
아멘 감사합니다ㆍ좋은 열매 맺을거라 기대하며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