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물 위의 인생
어디까지가 하늘이고 어디서부터가 물인지 알 수 없는 새벽이었다. 안개가 호수를 덮어 세상의 경계가 희미해질 때, 나의 여행은 육지를 등지고 물 위로 나아갔다. 미얀마 동부 샨주(Shan State), 해발 900미터 고지에 자리 잡은 거대한 거울, 인레 호수(Inle Lake)였다. 이곳에서 물은 단순히 자연의 일부가 아니었다. 그것은 대지였고, 길이었으며, 그 자체로 삶의 전부였다.
호수의 새벽을 여는 것은 바람이 아니라 소리였다. 물결을 가르는 모터보트의 둔탁한 소리 너머로, 이윽고 이 호수의 주인이자 상징인 인타족(Intha) 어부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안개 속에서 한 폭의 수묵화처럼 피어오르는 그들의 자태에 나는 숨을 죽였다. 한 다리는 가느다란 목재 배의 머리에 위태롭게 디디고, 다른 한 다리는 노를 단단히 감싸 쥐고서 원을 그리며 물을 젓는, 이른바 '외다리 노젓기(Leg-rowing)'였다.
이것은 기예(技藝)이기 전에 수천 년을 이어온 생존의 지혜였다. 호수의 물총새처럼 두 손이 자유로워야만 원뿔형의 대나무 그물(Caged net)을 던져 수초 사이에 숨은 물고기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 위에서 곧게 세운 그들의 척추는 가녀린 배와 하나가 되어 호수의 균형을 맞추고 있었다. 안개를 뚫고 솟아오르는 아침 햇살이 그들의 굽은 등과 젖은 그물에 닿아 금빛으로 부서질 때, 그것은 인간이 자연과 이룰 수 있는 가장 지극하고 경외로운 조화였다.
배는 어부들을 뒤로하고 거대한 물의 도로를 따라 깊숙이 미끄러져 들어갔다. 양옆으로 펼쳐진 풍경은 경이로웠다. 물 위에 떠 있는 마을(Stilt village)들이었다. 대나무와 목재를 엮어 만든 가옥들이 거대한 말뚝 위에 의지해 물 위로 솟아 있었다. 젖은 빨래가 바람에 날리고, 아이들이 발코니에 매달려 이방인에게 손을 흔드는 모습은 육지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다만 그들의 땅이 흙이 아닌 물일 뿐이었다.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물을 닮아 흐르고 있었다. 상점도, 학교도, 사원도 물 위에 있었다. 배를 타고 등교하는 아이들, 식자재를 가득 실은 배 위에서 흥정하는 여인들, 물 위의 주유소에서 연료를 채우는 모습들. 그들의 하루는 물의 리듬에 맞춰 시작되고 저물었다. 흔들리는 대나무 다리 위를 오가는 발걸음조차 물결의 박자를 타고 있었다.
나의 시선이 멈춘 곳은 '카웅 다잉(Khaung Daing)'이라 불리는 유서 깊은 수상 가옥이었다. 붉고 흰 천막으로 장식된 독특한 삼각돛을 단 거대한 목재 배(Royal barge)가 집 앞에 매여 있어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왔다. 그 배는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마을의 신앙과 전통을 실어 나르는 움직이는 신전처럼 보였다. 내부로 들어서자 거대한 목재 대들보와 기둥들이 집의 연륜을 말해주고 있었다.
중앙의 트인 공간에서는 한 사내가 무쇠 가마솥 앞에서 땔감을 지피고 있었다. 가마솥에서 피어오르는 수증기가 지붕의 틈새로 새어 나가는 빛바랜 햇살과 섞여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것은 집을 지키는 온기이자, 물 위의 고단한 삶을 위로하는 소박한 저녁 식사의 약속이었다. 집의 안쪽에서는 여인들이 베틀에 앉아 전승된 기술로 비단을 짜고 있었다. 베틀의 덜컹거리는 소리는 호수의 숨소리처럼 규칙적이었고, 그들의 거친 손끝에서 피어나는 화려한 문양들은 이 무채색의 물 위를 장식하는 유일한 꽃이었다.
물은 그들에게 삶을 허락했지만, 동시에 끊임없는 인내를 요구했다. 수상 정원(Floating garden, `Yaung')은 그 인내의 결실이었다. 호수 바닥의 진흙과 수초를 모아 만든 이 떠 있는 밭 위에서 그들은 토마토와 오이, 가지를 키워냈다. 대나무 말뚝으로 고정해둔 수상 정원은 물결에 따라 부드럽게 출렁이며 자라났다. 흙을 딛지 않고도 대지를 일궈낸 그들의 생명력 앞에 육지의 인간은 겸허해질 수밖에 없었다.
사방을 둘러싼 산들이 저녁 안개에 젖어들 때, 나는 사원으로 향했다. 파웅도우 사원(Phaung Daw Oo Pagoda). 호수의 신성한 심장이다. 물 위에 세워진 이 거대한 사원은 금빛 지붕을 빛내며 서 있었다. 내부에는 다섯 불상이 안치되어 있는데, 신도들이 붙인 금박이 겹겹이 쌓여 이제는 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금덩어리가 되어 있었다. 그 지독한 믿음의 흔적 앞에서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그들에게 부처는 육지의 고난을 잊게 하는 피안(彼岸)이자, 매일 맞닥뜨리는 물의 유동성을 버티게 하는 유일한 부동(不動)의 존재였다.
저녁노을이 호수를 붉고 보랏빛으로 물들일 무렵, 배는 다시 마을로 향했다. 하루의 소란함이 잦아들고 수상 가옥들 사이로 하나둘 불빛이 켜지기 시작했다. 물 위로 내려앉은 어둠은 육지의 그것보다 깊고 고요했다. 호수는 다시 거대한 거울이 되어 밤하늘의 별과 집들의 불빛을 제 품에 고스란히 담아냈다. 물과 하늘, 문명과 자연의 경계가 완전히 사라진, 지극한 평화의 시간이었다.
인레 호수에서의 며칠은 물의 가변성(可變性)과 인간의 적응성(適應性)에 대한 깊은 사색의 시간이었다. 그들은 땅이 없는 것을 원망하는 대신, 물이 주는 유동성을 받아들여 그 위에 자신들의 세계를 단단히 세웠다. 땅을 딛고 서는 것만이 삶의 전부는 아니었다. 흔들리는 물 위에서 노를 감고 그물을 던지는 어부의 자세처럼, 끊임없이 균형을 잡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생의 태도일지도 모른다.
배가 선착장에 닿아 다시 육지를 딛는 순간, 나는 비로소 내가 물 위에 있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나의 마음은 여전히 그 몽환적인 안개 속, 외다리로 노를 젓던 어부와 물 위에 흐르던 비단, 그리고 밤하늘을 닮은 인레의 거울 속에 머물러 있었다. 물 위의 인생은 육지의 문명보다 헐거워 보였으나, 그 속엔 흔들리지 않는 연대와 투명한 순수가 흐르고 있었다. 그것은 유수(流水)처럼, 부드럽지만 강인하게 이어지는 미얀마의 가장 깊고 아름다운 숨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