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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8:1-13절) 새로운 언약
우리 인간이 이 세상에서는 약속을 바꾸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운동경기 같은 경우에도 비가 너무 많이 오면, 취소하는 경우도 있고, 음악 콘서트 같은 경우에도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심한 감기에 걸려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대신 노래를 부르거나 아니면 아예 콘서트 자체를 취소할 때도 있습니다.
또 연인들이 만나서 데이트를 하기로 했다가 사정이 생기면 약속을 연기하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는 데이트하던 상대를 깨고 다른 사람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에게 물건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가 취소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요즘은 음식점에 예약해 놓고 예약시간에 그 손님이 오지 않는 것을 *노쇼(no-show)*라고 하는데, 이런 경우에는 음식을 준비하기 위해 이미 재료비라든지, 큰 비용을 지불했기 때문에 손해를 보게 됩니다.
그런데 아무리 취소하려고 해도 취소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곧 법원의 결정입니다. 약속은 내가 지킬 수도 있고, 안 지킬 수도 있지만, 법원의 판정은 반드시 지키도록 법으로 강제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일은 큰 죄를 짓고, 어떻게 판결이 날지 모르는 신분으로 감옥에 갇혀 있는 것입니다. 그때 가장 중요한 것이 판사의 결정입니다. 즉 판사가 피고인에게 *당신은 너무나 큰 죄를 지었으므로 사형에 처한다.*고 하면, 그는 언젠가는 사형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반대로 판사가 *피고인은 무죄입니다*라고 선언하면, 그 자리에서 자유의 신분을 얻게 되고,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자유의 몸이 될 것입니다.
우리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모두 죽어야 할 죄인들입니다. 하나님의 판결은 이미 내려져 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
그래서 우리 모든 인간은 언젠가는 반드시 죽게 되어있습니다. 인간이 서로 사랑하고, 결혼을 하고, 성공하는 것도 사형 선고를 받은 상태에서 하는 행위입니다. 물론 우리가 당장 죽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아무리 젊은이라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늙게 되고, 또 병이나 사고로 죽게 됩니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누군가의 도움으로 죽음을 면제받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또 만일 우리가 누군가의 도움으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자유를 얻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약속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몰라서 그렇지, 하나님과 한번 약속을 맺게 되면, 그 효력은 무한정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신다고 약속하시면, 어떤 일이 있어도 지켜주십니다.
반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린다고 하시면, 아무리 내가 잘 살아도 죽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 힘으로는 하나님과 약속을 맺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우리는 땅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을 볼 수 없고, 그 음성을 들을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여 믿으면, 하나님과의 약속을 맺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켜주시고,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며,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이것이 곧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우선적으로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나머지 일은 부수적인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I.하나님의 약속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믿게 하셔서 그와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것은 곧 그가 하나님의 복을 가진 자가 되고, 하나님의 복을 후손에게 상속시킬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어떤 사람이 재벌의 상속자가 된다면, 어마어마한 일일 것입니다. 우리나라 같이 작은 나라의 재벌도 엄청난데, 하나님의 복이라면, 도대체 그 규모가 어느 정도일까?
애플사의 스티브 잡스는 세계적인 부자가 되었는데, 그에게는 대학 다닐 때, 사귀다가 헤어진 여자 친구와의 사이에서 난 딸이 하나 있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자기 딸이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유전자 검사에서 친자판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도 그는 자기 딸을 사랑해주지 않고, 법적으로 부양해야 할 돈만 보냈다고 합니다. 그 딸이 스티브 잡스에게 흠집이 나서 아무도 타지 않는 포르쉐 자동차를 달라고 해도 스티브 잡스는 그 차를 딸에게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정말 인정머리 없는 못된 아빠였습니다. 그래도 그 딸은 하버드를 나와서 글 쓰는 작가가 되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마7:11절)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고 하셨는데, 스티브 잡스는 그 악(惡)한 아빠였던 것입니다. 그래도 그는 그 아이의 등록금은 주었습니다.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하나님의 상속권(相續權)은 어마어마한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 친자(親子)라는 재판이 붙을만한 어마어마한 복(福)입니다.
하나님은 오직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의롭다* 하시고, 그에게 하늘의 복(福)을 약속(約束)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나이가 들었지만, 유감스럽게도 아들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늘에 별처럼 많은 자식을 주시겠다.*고 하면서 *밤하늘의 별을 헤아려 보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밤하늘의 수많은 별을 보고, 하나님을 무(無)에서 유(有)를 만드시고, 죽은 자도 살리시는 분이심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이 믿음을 보시고, *의롭다*고 인정하시고, 하늘의 복(福)을 약속하셨습니다(창15:6).
그러나 현실(現實)은 하나님의 약속과 정반대였습니다. 즉 아브라함은 흉년(凶年)을 만나서 애굽에 내려갔다가 바로 왕(王)에게 아내 사라를 빼앗기기도 했습니다.
또 아브라함은 전쟁(戰爭)을 만났는데, 그 후에 조카 롯은 아브라함을 떠나기도 했습니다. 만약 조카 롯이 그의 옆에 남았더라면, 아브라함에게 아들이 생기지 않을 경우 조카를 아들로 삼을 수도 있었습니다.
또 아브라함은 부인(婦人) 사라의 여종 하갈을 첩(妾)으로 맞이해서 아들을 낳았지만, 하나님은 *약속의 아들이 아니라*고 해서 내보냅니다.
아브라함의 가장 큰 위기(危機)는 백 살에 낳은 아들(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 바치라*는 시험(試驗)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山)에 가서 실제로 칼을 빼들고 죽여 번제로 바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사람이라는 칭호*를 얻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인간으로서 최초로 하나님의 복(福)을 약속받은 사람이었습니다. 믿음의 조상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에게 신 개발지 역세권 금싸레기 땅이나 강남이나 대장동 땅이 생긴 것도 아니고, 자식(子息)들이 하늘의 별처럼 많이 생긴 것도 아니었습니다. 단지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았고, 하나님의 복(福)을 약속받았을 뿐입니다.
Ⅱ.시내 산의 언약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출애굽 후에 정말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늘의 별처럼 자손들이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의 자손은 전부 다 하나님의 복(福)의 상속자(相續者)들이었을까? 아마 그랬더라면 문제는 간단했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의 복(福)의 상속자(相續者)는 아브라함의 육체적(肉體的)인 자손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은 아브라함과 똑같은 *믿음*의 사람들이어야만 했습니다.
즉 하나님은 무(無)에서 유(有)를 만드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것을 믿고, 또 백 살에 낳은 자식(이삭)도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시면, 바칠 수 있는 *믿음*을 가진 자라야만 했습니다. 주여! 나에게 믿음을 주옵소서 찬송가 542장 *구주 예수 의지함이*
이렇게 아브라함의 *믿음*은 하나님만 유일(唯一)하신 분으로 믿는 신앙이었고, 하나님이 *아들이라도 바치라고 하면, 군말 없이 순종하는 신앙*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자손들은 애굽을 출애굽해서 별처럼 많아지면서 *믿음*의 경계가 모호해지게 되었습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부 애굽 사람들과 비슷비슷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강한 손과 편 팔로 애굽에서 이끌어 내신 후, 시내 산에서 *믿음*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확인하는 언약(言約)을 맺으셨습니다. 그것이 곧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이 맺으신 시내 산 언약이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복(福)을 받기 위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불순종하고 대적한 죄(罪)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震怒)를 푸는 것이었습니다. 그 방법은 목숨을 걸고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에 순종(純宗)하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의 신실(信實)한 종 모세를 세워서 이 언약(言約)을 맺으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언약의 돌비(십계명)를 받을 때, 시내 산의 불 가운데로 들어갔습니다. 그것은 죽을 각오를 하고 들어간 것이었습니다.
모세는 시내 산 꼭대기에서 40일을 먹지도 않고, 물도 마시지 않고, 결사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돌비(십계명)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내 산 밑에서 금(金)송아지 우상(偶像)을 만들어놓고, 술을 마시고, 춤을 추고, 뛰면서 놀았습니다.
아마 이때 이스라엘 백성들도 모두 금식하고 죽을 각오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다면, 그들은 모두 그 놀라운 복(福)의 상속자(相續者)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에 불순종했기 때문에 사망의 상속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출애굽한 남자 모두가 두 명(여호수아와 갈렙)을 빼놓고는 광야에서 모두 다 죽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모든 사람은 축복(祝福)의 상속자(相續者)가 아니면, 사망(死亡)의 상속자(相續者)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 안에 머물러 있기만 해도 축복(祝福)의 상속자(相續者)로 인정해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8:9절)또 주께서 이르시기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그들과 맺은 언약과 같지 아니하도다. 그들은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 하므로 내가 그들을 돌보지 아니하였노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손을 잡고 인도하여 내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이들이 너무 어릴 때는 엄마나 아빠가 항상 손을 잡고 데리고 다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마음대로 아무데나 가려고 해서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안전하도록 율법(律法)을 주셨습니다.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 잡아매는 끈이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제사제도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번제(燔祭)나 화목제(和睦祭)같은 제사 제도를 지키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양(羊)이나 소(牛)를 죽여서 피를 흘리고, 그 기름이나, 고기를 불로 태우는 의식이었습니다. 이것은 우리 자신의 고집(固執)이나, 욕심(慾心)이나, 생명(生命)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즉 내 자신의 목숨을 걸고,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럴 순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양(羊)이나, 소(牛)를 하나님 앞에서 태우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안식일(安息日)을 지키라고 하셨는데, 안식일은 하나님과의 비밀 약속이었습니다. 즉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비밀 표시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성적(性的)인 죄나, 재산(財産)적인 죄나, 살인(殺人)을 하지 말라. 고 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는 표시였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브라함과 달랐고, 모세와도 달랐습니다. 그들은 목숨 걸고,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에 순종(純宗)하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윗이나, 모세같이 하나님의 율법(律法)을 사랑한다면, 율법은 하나님의 축복의 표시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율법을 사랑하지 않을 때는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 붙들어 맬 힘이 없었습니다.
다윗은 이것을 알고는 하나님의 율법을 사랑했습니다. 즉 다윗이 하나님의 율법을 억지로 지키려고 하지 않고, 그것을 사랑해서 노래로 만들고, 그 내용을 묵상(默想)했을 때, 그 율법 안에 있는 메시야(Messiah)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을 알았고, 또 다른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律法)은 하나님의 *잔소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억지로 지키거나, 형식적으로 지키는 체하다가 모두 망(亡)하고 말았습니다.
율법(律法)은 어린아이들이 서로 사랑을 고백하는 것처럼, 약점(弱點)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어린아이들은 사랑의 고백을 지킬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Ⅲ.예수님의 새 언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복(福)의 상속자(相續者)가 되는데, 실패했던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정신적(精神的)으로 너무나 미숙(未熟)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님은 하늘에 계신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땅에 있는 미천(微賤)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준이 너무나 맞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예수 그리스도)이 이 세상에 내려오시게 되었습니다. 그는 율법을 지키러 오신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으로 아브라함 같은 *믿음*을 가지게 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8:1절)지금 우리가 하는 말의 요점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다 는 것이라. 그는 하늘에서 지극히 크신 이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지금 우리가 읽고 듣고 생명의 양식은 엄청나게 중요한 말씀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사느냐? 죽느냐? 하는 것을 결정하는 것이고, 우리에게 엄청난 축복(祝福)이 주어지느냐? 저주(咀呪)가 주어지느냐? 를 결정하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에게 대제사장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震怒)를 완전히 해결하고, 우리를 하나님의 복(福)의 상속자(相續者)가 되게 하려는 대제사장이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히브리서는 *진짜 성전(聖殿)은 하늘에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8:2절)성소와 참 장막에서 섬기는 이시라. 이 장막은 주께서 세우신 것이요.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니니라.”
히브리서는 예수님이 이 세상에 계속 계셨더라면, 제사장이 되지 못하셨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는 레위족의 제사장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모세가 처음 성막(聖幕)을 지을 때는 시내 산(山)에서 하나님이 보여주는 모형(模型)을 보고 지었습니다.
우리가 그냥 출애굽기의 성막(聖幕)을 짓는 부분을 보면, 도무지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모형(模型)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시내 산에서 성막(聖幕)이나, 언약(言約)궤의 모형(模型)을 보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말씀하신 숫자와 그 모형(模型)이 맞아떨어지면서 정확한 성막(聖幕)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만든 성막(聖幕)은 하늘에 있는 성전(聖殿)의 모형(模型)이고, 그림자였습니다.
8:5절)그들이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이요,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이르시되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따라 지으라. 하셨느니라.”
참 성전(聖殿)은 하늘에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늘에 올라갈 수 없었기 때문에 목숨 걸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純宗)할 때, 하나님께서 그 제사(祭祀)를 받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의 성전(聖殿)에도 제물(祭物)이 있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아들도 대제사장이었기 때문입니다.
8:3절)대제사장마다 예물과 제사 드림을 위하여 세운 자니. 그러므로 그도 무엇인가 드릴 것이 있어야 할지니라.”
하나님의 아들은 인간이 되신 자신을 목숨 걸고, 하나님께 제물(祭物)로 드리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목숨 걸고,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신앙이지만, 하나님의 아들은 실제로 죽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피 흘림이 없으면. 죄 사함도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가장 숭고(崇高)하고, 완전한 제사(祭祀)를 드리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늘에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직접 가셔서 하나님의 허락을 받아오셨습니다. 그것은 예수 믿는 우리가 모두 죄 용서함을 받는 것입니다.
8:12절)내가 그들의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용서는 죄가 있지만, 죄를 덮어서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기억도 아니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미워하시는 것이 아니라, 긍휼(矜恤)히 여기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軟弱)함을 깊이 이해하시고, 동정(同情)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당당한 하나님 복(福)의 상속자(相續者)의 자격(資格)을 얻게 됩니다.
8:10절)또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것이니. 내 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게 백성이 되리라”
예수를 영접하여 믿는 우리는 하나님의 법적(法敵)인 자녀(子女)의 자격(資格)을 받았습니다. 즉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이시고. 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즉 양자(養子)도 친자(親子)와 똑같은 법적(法敵)인 권리(權利)를 받습니다.
우리는 모형(模型)이 아니라, 하나님의 완전한 법(法)에 의하여 친자(親子)의 자격(資格)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돈 걱정 같은 것은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걱정해야 할 것은 어떻게 하면 *노 블리스 오블리제* 즉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이 세상에서 얼마나 낮은 곳까지 가서 수고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자녀답게 당당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자격을 가지고, 남을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우리가 봉사해야 할 곳이지, 왕노릇 할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위대한 꿈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8:11절)또 각각 자기 나라 사람과 각각 자기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주를 알라 하지 아니할 것은 그들이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라.”
하나님의 백성들은 모두 주(主)를 압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안 계셨으면, 우리는 모두 영원한 멸망(滅亡)의 자식이요, 저주(咀呪)의 자식이 되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큰 자나 작은 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각자 자기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자격은 어마어마하고, 우리가 받을 복도 어마어마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복을 시시하게 생각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복의 전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단지 하나님의 사랑의 표시일 뿐입니다. 이 우주에 예수님보다 더 위대한 분은 없고, 예수님보다 더 아름다운 분도 없습니다.
그는 대제사장이 되시므로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고, 우리에게 더 아름다운 약속을 성취시켜주셨습니다.
8:6절)그러나 이제 그는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그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시라”
예수님은 *스타 중의 스타*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모두의 꿈이요, 소망(所望)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예수님의 그 귀한 이름으로 또 위대하게 살게 됩니다. 즉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리고 예수님을 위하여 사는 것이 더 위대한 것은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족같은 교회, 교회같은 가족* 각 셀(cell)공동체의 하루하루의 삶을 모두 예수님께 넘겨드리고, 생명의 말씀 순종하는 믿음으로 아름다운 인생을 사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아-멘 찬송가 545장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알림(연속10)
▣ 교갱원 소속 *가족같은 교회, 교회같은 가족* 금년 ☞ 정착의 해
◈12월 대심방(세례겸)과 셀(cell)현장 점검을 위해 장소, 날짜, 시간을 스마트폰으로 소통해야 소속이 될 수 있으며, 만약 정착하지 않고*특권과 의무*를 실천하지 않는 셀(cell)의 무관심이 *생명의 양식*촛대를 옮기지 않도록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리더(leader)1명을 뽑아 *필수과목*을 필하고,예배 인도 등 본원과 계속 소통해야 안전할 수 있습니다(직분자 임명도 동일).
※ 매일 새벽 기도로 시작하고, 저녁 기도로 하루를 마치는 습관을 가집시다.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 교회갱신 성경연구원
정 의 영 목사 ☎ 010-8772-0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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