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춘분이네요.
따뜻한 봄 기운 가득하소서!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 무엇인가요?
무엇 때문에 당신은 살아가나요?
산다고 하는 것은
생각해보면
쉬운 것만은 아닙니다.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스스로 그 소중한 목숨을 끊었을까요?
죽을 만한 결심으로
살아간다면 세상에 무슨 못할 일이 있겠나? 싶지만
작년 우리나라 자살자수가 1만4천439명이라니,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하루에 40명(39.5명) 가까운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셈입니다.
어렵고 힘든 삶이지만
무엇이 그대를 살아가게 하나요?
택시 운전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가족사진을 앞에 걸고 다닙니다.
그래서 힘들고 어려울 때
한 번씩 쳐다보면서 힘을 얻는 모양입니다.
살아야할 이유들을 그곳에서 발견합니다.
토끼 같은 자식들과 여우같은 색시를 위하여!
여자분들도 힘들고 어려울 때
핸드백에서 남편의 사진을 꺼내어 본답니다.
그리고 이런 말을 되뇌며,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고 합니다.
“이런 것도 내가 사람을 만들었는데,
세상에 하지 못할 일이 뭐가 있겠어!”
당신을 살아가게 하는 힘은 어디서 오나요?
무엇이 그대를 살아가게 하는 동력이 되나요?
톨스토이의 이야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옮겨 봅니다.
성격은 착하지만 가난한 구두 수선공 시몬은 자신과 아내가 입을 겨울 코트를 만들기 위해 양 가죽을 사러 나온다. 구두를 수선해준 농부에게 못 받은 외상값을 수금해야 양 가죽을 살 수 있었던 시몬은 체불된 외상값 5루블을 받지 못하고 1루블의 5분의 1인 20코펙만 받았다. 그 돈으로는 가죽을 살 수 없었던 시몬은 홧김에 보드카를 사서 마시고 취한 채 집으로 향했다.
길모퉁이 교회 앞을 지날 무렵 시몬은 거의 벌거벗은 사람이 교회 담벼락에 힘없이 기대어 서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그냥 지나치려다 불쌍한 사람을 외면한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며 발길을 그에게 다시 돌렸다. 그리고는 자신의 외투를 입혀 집으로 데려왔다. 같이 걸어오면서 왜 그렇게 있었느냐고 묻자 헐벗은 이방인은 “신이 내게 벌을 내렸다는 말 밖에 할 말이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집에 도착하자 시몬의 아내 마트료나는 한바탕 악을 썼다. 사오겠다는 양 가죽은 손에 없고 술에 취해 웬 낯선 사람까지 대동한 남편이 곱게 보일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트료나도 근본은 착한 여성이었다. 내놓은 빵을 허겁지겁 먹어 치우는 나그네를 보면서 가엾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헌 옷을 더 내주면서 잠도 편하게 자게 하였다. 다음날 아침 시몬은 이방인에게 이름을 물었다. 그는 그저 ‘미하일’이라고 답했다. 그리고는 시몬은 미하일에게 구두 만드는 데 조수로 일해주면 그의 집에서 먹고 잘 수 있다고 설득했고 미하일도 조건을 받아들였다.
미하일은 시몬한테 구두 만들고 수선하는 일을 배웠는데도 놀랍게도 시몬보다 훨씬 뛰어난 솜씨를 보였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이었다. 구두 잘 만든다는 소문이 이내 근방에 퍼졌고 시몬은 짧은 기간에 많은 돈을 벌게 되었다. 복 덩어리가 굴러 들어온 거나 다름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돈 많은 귀족 신사 한 사람이 구둣방을 찾았다. 그러고는 고래 고래 고함을 지른다.
“야, 너 내가 누군지 알지, 제대로 된 신발을 만들지 못하면 널 잡아갈거야! 1년을 신어도 10년을 신어도 끄떡없는 튼튼한 구두를 만들어! 알았어! 나는 건강하기도 하고, 돈도 많고, 잘 나가거든, 나는 오래 오래 살거야!”
온갖 거드름을 피우며 주문을 한다. 시몬은 주문을 받을 수도 안 받을 수도 없어 전전긍긍이었지만 미하일은 귀족을 어깨너머로 보면서 잠시 미소를 지었다.
미하일은 귀족이 주고 간 가죽으로 만들라는 구두는 만들지 않고, 사람이 죽으면 신을 부드러운 가죽 슬리퍼를 만들었다. 시몬이 기가 차하며, 미하일을 꾸중했지만 이미 늦은 일이었다. 그런데 그 꾸중 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귀족 신사의 하인이 황급하게 찾아와 주인이 집에 가던 중 마차에서 죽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고인이 주문한 가죽 구두 대신 수의로 신겨줄 슬리퍼를 만들어달라고 주문을 수정하는 것이었다.
시몬은 깜짝 놀라 미하일을 바라보았다. 미하일은 말없이 미리 만들어 둔 슬리퍼를 하인에게 전했다.
그렇게 미하일 덕분에 시몬은 큰돈을 벌어가며 행복하게 지내고 있었다.
어느 날 방앗간을 운영하는 한 부인이 다정스레 두 아이를 데리고 가게를 찾았다. 아이 둘 중 하나는 장애아였다. 아이에게 신길 가죽신을 한 벌씩 주문했다. 그러면서 한 아이가 한 쪽 발은 신발이 필요 없으니 신발은 세 개만 만들어도 된다고 했다. 신발을 만들면서 미하일은 두 소녀를 면밀하게 살폈다. 시몬은 발의 치수를 재면서 부인에게 두 아이가 친 자녀인지를 물었다. 또 어떻게 하다가 소녀의 발이 불구가 되었는지 물었다.
부인은 자신은 두 소녀와 관계가 없으며 죽어있던 소녀의 엄마가 딸의 발을 짓눌러서 한 쪽 발이 불구가 되었다고 대답해주었다. 6년 전 일이었다고 했다. 당시 두 소녀의 아버지는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죽었고 어머니는 아이를 낳다가 죽었다고 한다.
부인은 그 소녀들의 이웃이었다. 자신은 태어난 지 8개월 된 아들이 있었고 엄마 없는 두 소녀를 자신이 데려와 기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누구에게 입양할 생각도 없진 않았지만 자신의 아들이 일찍 죽는 바람에 두 소녀를 친딸들처럼 사랑하며 소중하게 키우고 있다고 전해주었다.
그 사이 방앗간 사업은 잘 되어서 경제적으로는 어려움이 없었다고 했다. 이런 내막을 들은 시몬의 아내 마트료나는 “부모 없이는 살 수 있어도 하나님의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다.”며 감탄했다. 미하일은 마트료나의 말을 들으며 세 번째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부인과 두 소녀가 행복하게 신발을 들고 떠난 뒤 미하일은 시몬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고백했다. 마침내 하나님이 자신을 용서했다고. 이어 작별을 고했다. 그 순간 방 안이 환하게 밝아지면서 미하일은 천사의 모습으로 변했다.
시몬은 벅찬 마음으로 천사에게 물었다. 왜 자신의 집에 온 이후로 세 번 웃었는지, 하나님은 왜 미하일 천사에게 벌을 주셨는지를 질문했다. 미하일은 하늘의 천사였다. 6년 전 하나님이 한 영혼을 데려오라고 명령해서 세상에 내려왔다고 했다. 그런데 아이들이 죽게 될 거라며 아이 엄마가 애원했고 그걸 들은 미하일은 마음이 약해져서 하나님이 시킨 그 영혼을 데려갈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러자 하나님은 말씀을 어긴 죄로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라고 명령했다고 한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미하일에게 “아기 엄마의 영혼을 데려오면 사람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고,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는 것은 무엇이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지 이 세 가지의 질문의 뜻을 알게 될 것이다. 그걸 알게 될 때까지 사람들에게 가 있으라.”라고 시켰다고 고백한다.
1) 사람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는가?
2)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3)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톨스토이는 대 천사 미하일의 깨달음을 통해 사실은 신의 존재와 인간의 유한함 그리고 사람이 살면서 최우선으로 지켜야 할 덕목을 인류에게 던져준 셈이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는가?”
추위에 떨던 헐벗은 천사를 집으로 데려온 시몬과 그런 남편의 행동을 결국엔 따뜻하게 받아들여준 아내 마트료나의 마음을 보면서 사람의 마음 안에는 하나님의 형상, 사랑이 있다는 것을 미하일은 깨달은 것이다. 바로 첫 번째 미소를 짓게 한 시몬 부부의 모습이었다.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는 건 무엇인가?”
사람에겐 삶의 시간을 정할 결정권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부유한 인간은 마치 무한하게 살 것처럼 탐욕에 빠져 오만하게 언행을 하지만 삶과 죽음은 그가 선택할 수 없는, 그에게 결코 주어지지 않는 영역의 일임을 톨스토이는 강조한다.
사람은 아무도 자신의 미래를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은 죽지 않을 것이라 착각하며 매일을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또 하나는 사람은 결코 자신에게 정말 필요한 게 무엇인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사람에게 진정 무엇이 필요한지를 자각할 수 있는 능력이 주어졌다면 인간 세상의 거짓말, 탐욕, 시기, 도둑질, 사기, 살상 등의 범죄는 애초부터 생기지도 않았을 거라는 사실을 톨스토이는 이 질문을 통해 강조한 셈이다. 바로 그가 곧 죽을지도 모르면서 작은 결점도 없는 완벽한 구두를 주문하는 그 오만한 귀족 신사의 모습을 통해 인간이 스스로 무엇이 필요한지, 그 자신의 삶의 시간표가 어떻게 굴러가는지를 결코 알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톨스토이는 보여주는 것이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하나님의 세 번째 질문에 톨스토이의 단편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심장 같은 메시지가 숨 쉬고 있다. 엄마 잃은 아이를 사랑으로 키우는 방앗간 집 부인의 모습을 통해 톨스토이는 책의 제목이기도 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What men live by?)>라는 질문의 답으로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 (Men live by love.)”라는 답을 제시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이유?
그것은 사랑이다.
안병욱 교수는 이렇게 답한다.
남이 내 인생을 살아 줄 수 없고, 내가 남의 인생을 살아줄 수 없다.
사명을 위해서 살고 사명을 위해서 죽는 사람이 큰 일을 한다. 사명감이 우리를 성실하게 만들고, 부지런하게 만들고, 용감하게 만든다.
사람에게는 눈길, 손길, 발길, 말길, 마음길이 있다.
나는 나의 길을 가고 너는 너의 길을 가야 한다.
도에 도통하는 것이 도통이요, 도에서 생기는 큰 힘이 도력이요, 도를 닦고 갈구하는 마음이 도심이요,
도를 수련하는 사람이 도사요, 도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이 도인이요, 도를 담는 그릇이 도기이다.
사람 노릇을 바로 하고 사람 구실을 제대로 하는 것이 인생의 도요 진리다. 도란 무엇이냐, 인간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배우고 배우면서 살아야 한다. 우리는 살기 위해서 배우고 배우기 위해서 산다.
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는 것은 도덕적 태만이다.
알면 행해야 한다. 행해야만 바로 알 수 있다.
알면서 행하지 않는 것은 정말 아는 것이 아니다.
행의 목적이 무엇이냐. 성이다. 성은 이루어 놓는 것이요.
성취하는 것이요, 완성하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배우는 것이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산다는 것은 선택하는 것이다.
직업은 생활의 방편이 아니다. 생활의 목적이다.
일 한다고 하는 것은 인생의 가치요, 인생의 환희요, 인생의 행복이다.
축복송 (때로는 너의 앞에) The blessing song https://youtube.com/watch?v=Tkb5pHUfHJI&si=JuYhG6C8R8c4qMAN
우리는 살면서 사랑하고, 사랑하며 산다.
사랑의 마지막 속성은 아낌없이 주는 것이다.
사랑은 인생의 종합 비타민이다.
사랑은 인생의 힘찬 창조적 활동적 원리이다.
https://youtu.be/G1hKzCkywM8
https://youtu.be/PjGnHyFccgQ
https://youtu.be/oPUTlFnMHJY?list=PLIiS6SHbut0ppahuwWHYEWIpazZLl0ZS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