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는 처음이었다. 여행 다니길 좋아하지만, 관심은 항상 해외여행이었다. 국내 여행은 길어야 2~3일 정도 잠시 기분 전환하는 느낌의 나들이로 생각했다. 아내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아마 그 기조가 계속 유지됐을 것이다. 국내 여행에 관심을 두게 된 건 여행 중 만난 아내와 한국으로 돌아와 결혼한 이후부터였다. 외국인인 아내에게 우리나라를 소개해주고 싶은 욕망이랄까?
우선 누구나 쉽게 떠올리는 국내 여행지인 제주, 경주, 전주, 동해.. 등지로 아내를 데리고 다녔다. 나야 다 익숙한 풍경이지만 날 만나기 전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던 아내는 본인에게 충분히 이국적인 우리나라의 풍경을 즐겁게 바라보았다. 나는 일부러 중첩되지 않는 지역으로 여행지를 골랐는데 공교롭게도 충청도 권은 아직 방문할 기회가 없었다. 그러던 차에 운 좋게 대한민국 구석구석에서 진행하는 ‘일주일 살기’ 캠페인에 당첨이 돼서 충주 여행을 떠나게 됐다.
국내 여행의 좋은 점은 역시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내 차를 타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일 거다. 일주일은 긴 기간이기에 펜션 체크인 시간에 신경 쓰지 않고 아이들 생활습관에 맞춰 충분히 낮잠을 재운 후 충주로 출발했다. 이미 장거리 여행 경험이 있는 아이들이라 그런지 한 시간 반 거리의 충주까지 별 불평 없이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해질 녁 목적지인 충주 한 카라반 펜션에 도착했다. 강가 옆에 자리한 펜션에 환상적인 빛깔의 노을이 지고 있었다.
서울만 벗어나도 이런 노을을 볼 수 있구나.. 감탄했지만, 그 뒤론 날씨가 좋지 않아서 다시 그런 노을이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에겐 제공된 숙소는 스파 카라반이었다.
캠핑카 여행에 대한 로망이 있어서 이런 형태의 숙소를 좋아한다. 어린아이들이 있으면 짐이 많아져서 공간이 좁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렇게 부대끼면서 지내는 게 카라반의 매력이라면 매력이다.
더구나 바로 앞에 잘 정돈된 정원과 경치 좋은 강이 흐르고 있으니 캠핑카 여행을 온 듯한 기분을 한껏 느낄 수 있었다. 창을 열고 바라보는 풍경이 이 정도라면 충분히 캠핑카 분위기를 낼 수 있지 않겠는가.
멋진 주변 풍경에 상관없이 8월 초의 무더위는 굉장했다.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돌아다녀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다고 내내 숙소에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우선 가까운 중앙탑 공원에 산책하러 갔다.
공원 중앙에 우뚝 솟아 있는 중앙탑(충주 탑평리 칠층석탑)은 과연 국보 6호에 걸맞은 단아함과 당당함을 보여줬다.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
통일신라 시대의 석탑으로 원성왕 12년에 건립되었다. 국보 제6호로서 당시에 세워진 석탑 중 가장 규모가 크며, 우리나라의 중앙부에 위치한다고 해서 중앙탑이라고도 부른다. 이로 인해 2014년 1월 1일부터 본래의 가금면이 중앙탑면으로 개칭되었다.
이 탑은 2단의 기단 위에 7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이다. 높은 탑신을 받치기 위해 넓게 시작되는 기단은 각 면마다 여러 개의 기둥 모양을 새겨 놓았고, 탑신부의 각 층 몸돌 역시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다. 밑면에는 5단씩의 받침을 새겨 놓았다. 탑 정상의 머리장식은 보통 하나의 받침돌 위에 머리 장식이 얹어지는 신라 석탑의 전형적인 양식에서 벗어나, 이중으로 포개어진 똑같은 모양의 받침돌이 머리 장식을 받쳐주고 있다.
1917년 탑을 보수할 때 6층 몸돌과 기단 밑에서 사리장치와 유물이 발견되었는데, 특히 6층 몸돌에서 발견된 거울이 고려 시대의 것으로 밝혀져 탑 조성 이후 고려 시대에 와서 2차 봉안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제 강점기 당시 보수하면서 일부 변형되었다는 논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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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의 역사 유적지에 방문할 때마다 아내에게 역사 이야기를 해주곤 하는데 날씨가 너무 덥고, 아이들을 돌보느라 정신이 없어서 이번에는 그냥 탑만 감상하고 말았다.
공원 여기저기에 조각도 많고 널찍하니 아이들이 뛰어놀기 좋았다.
하지만 우리는 그늘 있는 정자에 앉아 쉬기를 택했다. 강가라 그런지 바람이 솔솔 불어 더위를 약간 잊을 순 있었다.
무슨 조각 공원처럼 공원 여기저기에 조형물이 설치돼있었지만 그렇게 눈길이 가지는 않았다. 아마도 날씨 탓이리라.
주차장으로 가는 길에 충주 박물관이 있어 들어가 보았다.
관람객이 우리뿐이어서 큰아이가 신나게 뛰어다니며 옛 물건들을 구경했다.
박물관에 엘리베이터가 없어 둘째 아이 유모차 끌고 다니기가 번거로웠다. 딱히 볼만한 건 없었으나 시원한 에어컨 바람으로 잠시 더위를 식힌 것으로 만족하고 충주 시내로 들어갔다.
날씨가 더워 냉면 생각이 간절해 미리 알아놓은 삼정면옥을 찾았다. 원체 평양냉면을 좋아하는지라 큰 기대를 하고 갔는데, 과연 맛집의 포스가 느껴지는 간판이 떡 하니 걸려있었다.
평양냉면을 먹을 때 항상 그렇듯 냉면과 수육을 주문했다. 수도권에 있는 평양냉면집과 다르게 수육에 쌈과 반찬들이 딸려 나오는 것이 특이했다. 냉면의 맛은 글쎄.. 지나치게 담백하다고나 할까? 평양냉면의 매력이 원래 그 헤어나올 수 없는 담백한 맛에 있다곤 하지만 이곳의 냉면은 담백함이 지나쳐 그냥 싱겁게 느껴졌다. 수육에 새우젓, 반찬과 함께 간을 맞춰 먹었다.
숙소로 돌아와 카라반 옆에 마련된 자리에 앉아 쉬며 경치를 즐겼다.
여행지 곳곳을 둘러본다기보다 여유롭게 쉬면서 아이들에게 자연을 느낄 기회를 주자는 기분으로 떠난 여행이기도 했지만, 사실 카라반 문을 열기가 두려울 정도로 날씨가 뜨거워서 그것 말고는 딱히 할 게 없었다. 하기야 여행이 뭐 별것 있나. 이렇게 시간과 싸우지 않고 상황에 맞춰 여유를 만끽하는 것. 그게 여행이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