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나고 못난 한국의 잘난 애비 에미들 / 정숭호 2023.04.03
-내 오늘은 여기서 소리나 한바탕 하고 들어가겄소.
-(북소리와 함께) 웬일이래? 글이나 제대로 쓸 요량 않고?
_날이 너무 좋아 방구석에 처박혀 있자니 좀이 쑤셔 못 견디겠소.
-(북소리와 함께) 얼쑤! 글쟁이 춘정을 누가 감히 누를쏘냐, 어디 한번 놀아보소!
-조국은 조민을 낳았고 최서원(순실)은 정유라를 낳았다. 곽상도는 아들을 낳았고 박영수는 딸을 낳았다. 정순신도 아들을 낳았고 정청래도 아들을 낳았다. 전두환은 아들을 낳아서 그 아들이 또 아들을 낳았고 장제원도 아들을 낳았는데, 전두환의 손자와 장제원의 아들은 다른 집 아들 딸과 달리 자기 할아버지, 아버지를 욕하는구나.
-(북소리와 함께) 얼쑤!
_다른 집 아들 딸들은 아버지 어머니 잘 둬 무지하게 잘 나갔거나 잘 나갈 뻔하다가 아버지 어머니가 벌인 일로 인생의 쓴맛을 된통 보거나 보기 일보 직전이로다.
_(북소리와 함께) 글쟁이 소리가 제법이로구나! 조오타!
-조민은 아버지 조국 어머니 정경심, 둘 다 대학교수 부모가 만들어준 가짜 서류로 어찌어찌 의사까지 되었으나 그게 모두 들통나서 의사 자격 취소될 판이라. 박근혜가 이것저것 도움받던 최서원의 딸 정유라는 대통령 박근혜에게 한 짓이 주제 넘은 짓이라고 조사받은 어머니 따라 함께 조사받더니만 대학은 물론 고등학교 졸업까지 취소돼 중졸이 되었도다.
-(북소리와 함께) 아무렴!
-잘 나가던 검사이자 국회의원 노릇도 곧잘 하는 것처럼 행세하던 곽상도는 어찌됐나. 아들이 김만배의 화천대유에 취직해 6년 만에 관두고는 보통 월급쟁이 수십 년 월급으로도 못 만들 50억 원을 일시불 퇴직금 받아 나온 게 동티가 돼 구속까지 되어서는 재판받고 나왔는데 언제 또 붙잡혀 갈지 모르니 그 아들 마음 편할 리 없겠구나.
-(북소리와 함께) 아무렴, 그러제!
-검사로서는 곽상도보다 훨씬 잘 나갔고 퇴임 후에는 특검이 되어 박근혜까지 잡아넣은 박영수가 낳은 딸도 화천대유에 들어갔구나.
-(북소리와 함께) 박영수가 밀어 넣었느냐? 김만배가 댕겨 들였느냐? 아무려나, 김만배가 대단쿠나!
-박영수의 딸은 연봉 6,000만 원에 취직한 회사에서 11억 원이나 빌려 쓰고 6억 원에 특혜 분양받은 대장동 아파트가 15억까지 됐을 시는 그렇게도 자랑스럽고 세상 무섭잖아 보인 아버지가 곽상도처럼 50억 클럽 멤버로 소문나고 이밖에 그런저런 일로 사무실과 집까지 압수수색 당하고 잡혀갈 수도 있게 됐으니 그 멘탈도 온전치는 않을 것이로다.
-(북소리와 함께) 다음에는 뉘집 자제 차례인고?
-역시 검사였던 정순신의 아들은 급우에게 험한 말 퍼부어서 ‘학폭’ 낙인 찍혔다가 다른 학교 전학 간 후 후회막급, 앙앙불락, 각고면려, 밤낮없이 공부해서 최고 명문 국립 S대에 들어갔겠다.
_(북소리와 함께) 그래서?
-이 아들, 큰 주목 안 받고 조용히 학업 이어갈 수 있었건만 학폭 문제 가벼이 생각한 아버지가 무거운 공직 맡으려다 그 문제 다시 들춰져니 갈 길 먼 젊은 인생에 어둡고 두꺼운 굴곡이 한 자락 더 깔리게 되었도다.
-(북소리와 함께) 인자 정청래 아들이 나오겠고만. 그 집 아들은 무슨 연고인고?
-전혀 야당 중진 같지 않은 말뽄새로 여러 사람 입초시에 오르락내리락 정청래의 아들은 오래전에 여학생을 추행한 게 아버지의 사과로 거의 다 잊혔는데, 정순신 아들 학폭이 불거지자 욕설한 정순신 아들이 더 나쁘냐, 성추행한 정청래 아들이 더 나쁘냐 어디 한번 해보자고 여당이 나선 탓에 아마도 이 며칠 전전긍긍하는 처지가 됐을러라.
-(북소리와 함께) 정순신네 문제는 부정부패가 아니라 좌우진영 문제라는 여당 말에 정청래 아들이 불려 나왔고나. 아따 그 아들, 저그 아부지 말뽄새로는 ‘쪽 팔리는 처지’가 됐긋네. 얼쑤! 자, 인자 전두환이 손자하고 장제원이 아들 이야기나 해보소.
-(부채를 한 번 촤르르 펼치고는) 전두환 아들의 아들이 조부모를 비롯해 일가친척 모두 욕하고 ‘가족 대표’로 광주까지 내려가 조부가 한 짓에 용서는 빌었으나 마약하고 온몸을 부르르 떨며 실신하는 그 모습을 온 국민이 다 본지라 괴이쩍기 한이 없다. 그러나 조부가 한 짓 때문에 마약하게 된 것이니 이해 못할 바 아니라 생각하는 사람도 없지 않을 것이로다.
장제원의 아들은 돈도 제법 권세도 제법 있을 만큼 있으나, 경우는 부족한 집안 아이들이 대개 그런 것처럼 크고 작은 사고 치며 스스로 유명인이 되었더니 아버지 사진 보고는 “체할 것 같네”라고 적어 놓아 아버지와 아버지까지 욕보이고 있는데, 아버지가 저보다 나이 많은 선관위 사무총장에게 막말로 호통치는 경우 없음을 보인 탓일러라.
-(북소리와 함께) 여기서 ‘경우’는 사리나 도리가 없다는 말이제? 그런데, 오늘 왜 글쟁이가 글은 안 쓰고 장마당에서 소리를 하려는가?
-(부채를 다시 한 번 펼치면서) 이 여덟 집안(조국, 최서원, 곽상도, 박영수, 정순신, 정청래, 전두환, 장제원) 부모들이 아들과 딸들에게 한 짓과 그 아들과 딸들이 부모 그늘에서 한 짓을 하나하나 살펴보니 이 아들과 딸들이 성혼해 제 아이 낳고 그 아이들이 다 자랐을 때가 걱정되어 한소리 안 할 수가 없었도다.
-(고수의 북소리 커지면서 템포도 빨라진다.) 둥둥둥!!! (글쟁이도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라 큰소리로 내지른다.)
-어떤 아이는 제 부모 말만 믿고 제 조부모와 제 부모를 괴롭히고 파멸시킨 자들에게 받은 만큼 반드시 갚겠노라 이를 갈 것이며, 어떤 아이는 전두환, 장제원네 아이처럼 제 조부와 제 부모가 남 괴롭히고 짓밟은 죗값을 내가 갚게 된 거라며 자책 끝에 스스로를 어둠 속으로 끌고 들어가리라.
거창하게 말하자면, 어떤 아이 부모는 제 부모가 물려받은 증오와 저주를 또 물려받고 물려주며 이 사회의 분열과 진영 싸움을 더 가열시킬 것이며, 어떤 아이는 물려받은 증오와 저주의 무게에 짓눌려 정신적 루저가 되어서는 사회의 주변을 맴돌다가 어쩌면 경제적 루저까지 될지도 모를러라.
-(북소리 점점 잦아든다. 글쟁이 소리꾼, 목소리 엄숙해진다.)
-핏줄 속 증오와 저주의 농도는 점점 짙어가고, 정신은 황폐하니 물질인들 제대로 누릴 것이냐. 이 지점에서 위대한 스승 애덤 스미스의 말씀 하나 듣고 가리로다.
“존경은 거의 모든 인간이 갈망하는 위대한 목적이다. 이 목적으로 우리를 이끌어주는 길은 두 개가 있다. 하나는 지혜를 배우고 도덕을 실천하는 길이며, 다른 하나는 부와 권세를 획득하는 길이다. (물려받은 재산이나 지위가 없는) 사람들이 합리적으로 기대되는 정도의 미덕과 재부를 획득할 수 있는 길은 다행히도 거의 동일하다. 자신의 직업에서 진실하고 견실한 직업적 능력을 갖춘 사람이 신중하고 정직하며 꿋꿋하고 절제하는 경우,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가 없다.”
-스미스 선생 말 들었으니 괴테 선생 말도 들어보리로다.
“우리는 자기 위에 있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함으로써 자유를 얻는 것이 아니라, 자기 위에 있는 것을 존중함으로써만 자유로워지는 거네. 왜냐하면 우리는 자기 위에 있는 것을 존경함으로써 자기를 거기까지 높이고, 위에 있는 것의 가치를 인정함으로써 우리 자신도 고귀한 것을 몸에 지니면서, 아울러 그것과 동등하게 될 가치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글쟁이, 잠시 멈추고, 구경꾼들 천천히 둘러본 연후에) 스미스 선생이나 괴테 선생, 같은 말씀 하시는도다. 아이들에게는 존경받으려는 마음을 심어주고, 존경받으려면 남을 먼저 존경하라는 말씀이로다. 알아들었느뇨? 못나고 못난 한국의 잘난 애비 에미들아.
-(글쟁이 퇴장하면서) 글쟁이는 글이나 써야지, 소리는 힘들어서 못하긋다!
*스미스 선생 말씀은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에서, 괴테의 말씀은 에커만의 '괴테와의 대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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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 정숭호
1978년 한국일보 입사, 사회부 경제부 기자와 여러 부서의 부장, 부국장을 지냈다. 코스카저널 논설주간, 뉴시스 논설고문, 신문윤리위원회 전문위원 등 역임. 매주 목요일 이투데이에 '금주의 키워드' 집필 중. 저서: '목사가 미웠다'(2003년), '트루먼, 진실한 대통령 진정한 리더십'(201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