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고기 한 점으로 내 앞에 있다. 육즙이 혀를 감치니 새삼 너의 맛을 실감한다. 뼈와 살가죽을 사골과 가죽으로 보시하기도 모자라 속살마저 드러내고 있구나. 그게 서러운지 피가 살점에 한으로 맺혀 있다. 제 수명도 다하지 못하고 박복하게 한 점 고기가 된 너를 식탁에 두고 있다.
예전의 너는 흙에 코를 박고 침을 흠씬 흘리며 땅을 갈았다. 주둥이로 꼴을 뜯고 여물을 씹으며 때로 웃을 줄도 알았다. 겨울 논에서 아이들이 싸움을 붙이면 내키지 않는 뿔을 들이댔다. 외갓집 뒤 산등성이에서 사촌들과 네 등을 타고 놀았고, 고향의 고샅길에서 너는 털 속에 숨은 손톱만한 진드기를 잡아달라며 누런 등을 불쑥 내밀곤 했다. 그랬던 네가 여기 음식으로 내 앞에 있구나. 어쩌면 고기가 돼 버린 네 신세가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얼마 전, 수업을 마치고 차를 타러 골목길로 접어들다 어떤 목소리에 귀가 솔깃했다.
“와, 맛있겠다.”
입에 군침을 돌게 한 여자아이의 말을 따라 내 눈길이 닿은 곳에 네가 있었다. 아빠 손을 잡은 예닐곱 살쯤으로 뵈는 아이의 눈은 실제로 맛난 음식을 본 것처럼 반짝였다. 쇠 파이프로 둘러쳐진 트럭의 짐칸에 꽤 큰 덩치의 네가 서 있었다. 네 미래를 아는지 큰 눈망울에 두려움이 앉아 있더구나.
사람은 경험에 따라 대상을 인식한다. 그 아이는 기껏해야 동화책이나 영상 매체에서 너를 보거나, 고깃집과 레스토랑에서 줄곧 음식으로 너를 대해 왔을 테다. 트럭 위의 너를 두고 나는 추억 속의 친구로 여기는데 아이는 음식으로 보았다. 아이는 조그맣고 하얀 애완견을 품에 안고 있었다. 코뚜레와 쇠 파이프를 연결한 고삐가 짧아 머리조차 제대로 돌리지 못하는 너와 아이 품에서 곤히 잠든 개를 번갈아 보며, 무엇이 어떤 이유로 너를 거기에 가둬 놓았는지 잠시 생각을 했다. 도살장으로 끌려갈 운명을 아는지 네 눈빛은 멀리 친구들과 함께 뛰놀던 초원을 쫒고 있더구나.
나는 다시 식탁 위의 너를 바라본다. 아마도 네가 여기 와 있는 이유는 누군가의 생존 때문일 것이다. 동물은 지상의 생명을 착취하지 않으면 지하에 묻힌다. 남의 생명을 빼앗아 자기 생명을 보존하는 자연의 섭리를 잔인하게 보는 것은 인간의 심성이다. 사자나 하이에나가 예쁜 가젤을 두고 동정과 미의 낭만에 젖는다면 굶어 죽기 십상이다. 생존이 최우선의 가치인 야생에서 자비는 곧 죽음을 의미한다. 야생의 일부인 먼 옛날의 인간에게 오늘날 우리가 갖는 연민과 동정을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는 그런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유전자를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그러나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었던 잔인이 쾌락의 수단이 된 지금, 우리는 혀의 달콤함을 잔인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은 너를 좁은 우리에 가둬 가장 맛있을 나이에 생명을 빼앗아 음식으로 삼는다. 닭과 돼지를 비육의 상자에서 살을 찌워 채 삶의 꽃도 피우기 전에 목숨을 빼앗는다. 기르는 자도 도살하는 자도 그리고 먹는 자도 각자의 일을 그저 무심히 행할 뿐 잔인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잔인에 무심하고 이 잔인을 당연하게 만든 건 무얼까. 대체 어떤 힘이 이 잔인에 사람들을 길들게 한 걸까. 그건 돈이 아닐까. 생명과 삶을 유지하는 유일한 수단이 돈이 된 지금, 우리는 매일 돈을 좇느라 분주하다. 돈을 벌 수만 있다면, 너의 생명을 만들고 빼앗고 먹는 일은 더 이상 잔인하지 않고 돈 앞에 연민은 한가한 사치가 된다.돈이란 생존 앞에 동정의 여유도 가젤의 아름다움도 지고지순의 가치도 때로 무너질 수 있는 이 현실을 너는 이해해야 한단다.
한때 아버지는 한쪽 우시장에서 너를 사서 다른 우시장에서 웃돈을 붙여 파는 소장수였다. 한번은 이득을 남기지 못해서인지 팔려 갔다가 다시 집에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너의 친구가 있었다. 트럭의 짐칸에 놓인 철제 사다리로 그 친구를 밀어 올리던 아버지가 느닷없이 말했다.
“희한하제, 소가 제 죽으러 가는 걸 아는가 봐.”
트럭에 오르지 않으려는 너의 친구의 몸짓과 눈을 보고 한 말이었다. 평소 우시장에 갈 때는 망설임 없이 오르던 그 친구가 도살장에 가는 줄 아는지 뒷걸음치며 버텼다. 나는 그때 네 친구의 눈물을 봤다. 아버지는 트럭에서 나는 피비린내로 자기 죽음을 예감하는 것 같다며 귀띔했다. 그 트럭은 도살장 전용 트럭이었다. 버티는 너의 친구를 아버지와 나는 트럭으로 밀어 넣었다. 아버지는 자식의 등록금을 위해 그렇게 했다. 그날 돈에서 진한 잔인의 냄새가 났다. 가슴 한쪽에 웅크려 있던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잔인이 기지개를 켜는 소리를 들었다.
일주일에 서너 번은 아랫동네 공장 옆의 다리를 승용차로 지나친다. 차창을 스치는 비릿한 냄새에 코를 막곤 한다. 처음엔 공장에서 나는 쉿가루 냄새인 줄 알았다. 트럭 뒤에서 큰 눈망울로 네가 흘리는 눈물을 보고서야 그곳이 도살장이라는 것을 알았다. 너희들은 먼저 간 이들이 남긴 피 냄새를 맡고서 운명을 직감했겠지. “맛있겠다.”라고 여자애가 말한 그 녀석도, 아버지와 내가 밀어 올리던 너의 친구도 너희들 틈에 끼여 있으리라.
도살장 옆 다리를 지나며 너의 비린내를 맡는다. 그럴 때마다 내 안에 웅크린 잔인과 돈의 비정을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