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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산진면목(廬山眞面目)
여산의 참모습이라는 뜻으로, 너무도 깊고 유원하여 그 참모습을 파악하기 어려움을 비유하는 말이다. 중국 송(宋)나라 때 소식(蘇軾)이 지은 제서림벽(題西林壁)이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廬:오두막집 여(广/16)
山:메 산(山/0)
眞:참 진(目/5)
面:얼굴 면(面/0)
目:눈 목(目/0)
여산은 중국 강서성(江西省)에 있는, 기(奇), 수(秀), 험(險), 웅(雄)의 특징을 가진 것으로 유명한 아름답고 신비한 산이자, 불교와 도교의 성지로서 1996년 세계 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여산은 중국 강서성 구강현(九江縣)에 있는 산이다. 이 산은 삼면이 물로 싸여 있고 서쪽만이 만학천암(萬壑千巖)이 항상 안개에 휩싸여 있어 그 진면목을 알 수 없다는 명산이다. 그 산 속에는 백록동(白鹿洞), 묵지(墨池), 옥연(玉淵) 등의 명승지가 있으며, 서북쪽의 산은 피서지로 유명하다.
주(周)나라 무왕(武王) 때, 광유(匡裕)라는 선비가 이 산에 초당을 짓고 살면서 신선술을 닦고 있었다. 무왕이 그의 학식과 덕망이 높음을 듣고 그에게 벼슬을 주어 나라 일을 함께 도모하려 했다. 사신을 보내어 모셔오게 했는데 이를 눈치 챘음인지 광유는 어디론지 사라져 행방이 묘연했다. 무왕은 그가 죽은 것이라 판단하고 그를 추모하기 위하여 이 산을 관리하는 직책을 두고 산 이름도 광산(匡山)이라 부르게 했다.
여산의 아름다움은 수많은 시인(詩人), 묵객(墨客)들이나 나그네들의 감탄의 대상이 되었다. 일찍이 송(宋)나라의 문인 소식(蘇軾, 소동파/蘇東坡)은 이 산을 유람하면서 그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에 매혹되어 제서림벽(題西林壁)이라는 제목의 시 한 수를 남겼다.
橫看成嶺側成峰(횡간성령측성봉)
가로로 보면 고개로 보이더니 옆에서 보면 산봉우리가 되니
遠近高低各不同(원근고저각부동)
원근과 고저에 따라 각기 그 모습 다르구나
不識廬山眞面目(불식여산진면목)
여산의 진면목을 알지 못하는 것은
只緣身在此山中(지연신재차산중)
단지 내 몸만이 이 산중에 있기 때문이다.
이백(李白)도 이 폭포를 보고, 여산폭포시(廬山瀑布詩)를 지었다.
日照香爐生紫煙
해가 향로를 비추니 붉은 빛 아름다운 안개가 일어난다.
遙看瀑布掛長川
멀리 폭포를 바라보니 기나긴 개울이 걸려 있구나.
飛流直下三千尺
나는 듯 곧바로 떨어져 삼천 척이니
疑是銀河落九天
은하수 한구비가 구천에서 떨어지는 듯하여라.
여산이 보는 방향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데다 늘 구름에 가려져 있어, 좀처럼 본모습을 볼 수 없다는 데서 유래하여 무릇 사물의 정체를 알아채기 힘들거나 어떤 사람의 태도가 그다지 명확하지 않은 경우를 가리켜 불식여산진면목(不識廬山眞面目)이라 하는데, 여기에서 여산진면목(廬山眞面目)이 나왔다.
여산진면목(廬山眞面目)
여산의 참모습이라는 뜻으로, 너무도 깊고 유원하여 그 참모습을 파악하기 어려움을 비유하는 말이다. 중국 송(宋)나라 때 소식(蘇軾)이 지은 제서림벽(題西林壁)이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언제부턴가 속담이 시의 일종이라고 여겨왔다. 대개 말뜻에만 그치지 않고 각종 어조(語調)와 비유의 언어로서 우리의 시선과 생각을 촉진하고, 함축된 삶과 세속의 이치나 사리를 각성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모든 속담은 일종의 고전이다.
예를 들어 ‘등잔 밑이 어둡다’는 그 뜻이 사실 그 자체일 뿐만 아니라 ‘가까이 있을수록 대상 사물의 전부나 본체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우리 인식의 한계를 잘 시사한다. 뿐만 아니라 나아가, 진실과 진리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대상 사물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객관 관찰을 하여야 겨우 그럴 수 있다는 각성을 우리에게 일으킨다. 가끔 출현하여 우리의 관심을 끄는 천 년 전 중국의 다음 시 역시 그러하다.
제서림벽(題西林壁) / 소식(蘇軾, 1036-1101)
橫看成嶺側成峰(횡간성령측성봉) 가로 보면 산등성이 세로 보면 봉우리
遠近高低各不同(원근고저각부동) 원근고저 따라 모습 제각각
不識廬山眞面目(불식여산진면목) 여산의 진면목을 알지 못하네
只緣身在此山中(지연신재차산중) 이 내 몸이 여산 속에 있어서
여산은 중국 강서성 구강현에 있는 만학천봉(萬壑千峰)으로 유명하며, 중국문화사의 주요 인물들이 거처하였거나 상찬한 천하명산이다. 중국 불교의 전파자 혜원(慧遠, 334~416)의 동림사(東林寺), 주돈이(周敦頤, 1017-1073)의 염계서당(濂溪書堂), 주희 (朱熹, 1130-1200)의 백록동서원(白鹿洞書院) 등이 있고, 도연명(陶淵明, 365-427) 이백(李白, 701~762) 왕안석(王安石, 1021-1086) 황정견(黃庭堅, 1045~1105) 육유(陸遊, 1125-1210) 등이 그 경치와 심회를 노래한 시가 4000여 편이나 된다.
화자의 토로는 ‘등잔 밑이 어둡다’처럼 평범하다. 좌우로 보면 옆으로 이어지는 산등성이이고 위아래로 보면 솟은 봉우리들이기도 하며, 같은 산등성이 같은 봉우리라도 멀고 가깝고 높고 낮은 조망의 입지에 구애돼 달리 보인다. 나아가 산 속에 있어 시야와 각도가 제한돼 산 전체와 세부 경관을 알 수 없다는 탄식이기도 하다.
다산 정약용(1762-1836)은 이미 일곱 살에 “小山蔽大山(소산폐대산)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리네, 遠近地不同(원근지부동) 멀고 가까워 그 지점이 같지 않아서”라고 하였다. 비유이기도 한지는 알 수 없으나 산의 본래 모습이 바라보는 사람의 입지와 주관에 매여 달라지니 경계하여야 한다는 뜻이 내포된 건 분명하다. 하여간 두 시는 ‘등잔 밑이 어둡다’처럼 우리로 하여금 진리와 진실 추구와 실체 파악에서 맹인모상(盲人摸象) 난관을 상기하게 한다.
그런데 우리는 평소에 이 문제를 새카맣게 잊거나 상기하여도 귀찮아하고, 한두 번 경신을 시도하다가 쉽게 포기하며, 무엇보다 이해와 편의에 얽매여 슬그머니 외면한다. 여러 사정으로 혼란한 시국이기도 한 이 연말, 전체와 진실을 위하여 우리 한번 정좌하고 화두로 삼아보면 어떨까. 우리는 남이 나를 기만하면 존재 농락에 창피와 증오로 분노한다. 우리는 남을 기만하지도 말고 불편하고 힘들더라도 남으로부터 기만당하지도 말아야 하겠다. 또 나로부터도 그렇게 되지 말아야 하겠다.
다음 시는 이상 맥락에 이어 읽어볼 시이다. "산에 드니/ 산이 보이지 않았다// 삶이여/ 자네도 혹 이럴 것인가// 사랑/ 그대 역시// 품에 드는 날/ 자취를 감추고 말 것인가// 만유(萬有)가 내 안에 들어 천지(天地) 그윽하던 날/ 산 속에서 산이 걸어나왔다." - 적멸 / 김우영
산을 바라보면서 산에 걸어 들어온 화자, 그러다가 문득 보던 ‘산이 보이지 않’아 당황하고, 화두와 같은 근간의 문제의식에 관련된 각성을 한다. 아, ‘삶’과 ‘사랑’도 그 ‘품에 드는 날/자취를 감추고 말 것인가... 즉 화자는 어떤 사정으로 자신과 자신에 주어진 삶과 사랑을 아마 그 굴곡과 결핍을 반추하면서 ‘산’에 들어 오르다가, 문득 그런 각성을 한 것 같다.
즉 삶과 사랑을 ‘산’의 ‘만유(萬有)’ 처럼 이룬다면, 그 충족된 삶과 사랑, 글쎄 그렇다면 그것으로 다인가. 아니 그 풍요에 겨워 안주하면 그러면 오히려 마치 부재와 같이 그 의의가 무화(無化)되어 버리지 않을까 의아해하는 듯하다. 곧 잠식되는 보름달의 역설이다. 그러니까 언제나 굴곡과 결핍을 용인하고 의식하여야 더 삶과 사랑을 지속할 수 있다는 각성이 아닌가 한다.
그래서 그 날에 화자는 기꺼이 자족하며 ‘만유(萬有)가 내 안에 들어 천지(天地) 그윽하던 날’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굴곡과 결핍, 그 수용과 견인에서야말로 삶과 사랑뿐만 아니라 그렇게 하는 세상과도 화해할 수 있다는 뜻도 점철되어 있으리라. 그리고 다시 말해 이 각성에는 자신의 분수 인식도 포함되어 있다. 화자는 그래서 보게 된다. ‘산 속에서 걸어 나오는 산’을.
이 시는 그러니까 ‘등잔 밑이 어둡다’ 계열이면서도 새 경지가 추가되어 있다. 지속과 변화의 한 사례. 기존처럼 등잔 불빛과 그 아래 어둠을 대조하면서도, 진일보한다. 즉 등잔의 밝은 불빛으로 그 아래 짙은 어둠 속을 조명한다. 외부의 진리와 진실 인식 문제와 온전한 자기성찰 맥락을 이어, 삶과 사랑, 그 곡절과 한계의 연속, 충족 불급(不及)의 견인을 성찰하게 한다.
이 시의 결말에도 여운이 있다. ‘산 속에서’ ‘걸어나’오는 ‘산’. ‘걸어나’오는 ‘산’은 득음하거나 득도한 수도자가 하산하는 모습과 같은 형상인데, 화자 자신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혹 자존이 과람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2연의 ‘삶이여 자네도’나 3연의 ‘사랑 그대 역시’에서 보듯, 과감한 그 의인화와 대구를 이루려는 형식 추구에 기인한 의물화로도 감안하면 어떨까.
여산진면목(廬山眞面目)
여산의 참모습이라는 뜻으로, 너무도 깊고 유원하여 그 참모습을 파악하기 어려움을 비유하는 말이다. 중국 송(宋)나라 때 소식(蘇軾)이 지은 제서림벽(題西林壁)이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중궁의 유명한 시인 소동파의 시다.
橫看成嶺 側成峯(횡간성령 측성봉)
遠近高低 各不同(원근고저 각부동)
不識廬山 眞面目(불식여산 진면목)
只緣身在 此山中(지연신재 차산중)
모로 보면 고개인 듯, 옆에서 보면 봉우리인 듯. 멀리서나 가까이서, 높은 곳에서나 낮은 곳에서 곳곳마다 보는 산이 서로서로 다르구나. 여산의 참모습을 알아볼 수 없는 것은 이 내 몸이 산속에 있음이라
참으로 고단(孤單)한 민족이지 않는가? 5천 년의 배고픔은 이제 옛말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이제는 망국적인 부동산 폭등에 따른 극심한 빈부 차이와 어설픈 정치권이 주도하고 있는 이념과 진영논리에 의한 좌우의 갈등이 서민들의 삶을 한층 더 고달프게 만들고 있다.
대한민국에 태어나 삶의 진정한 가치를 논하는 것은 저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을 잡는 것과 같은 헛된 망상이요, 인생의 즐거움을 논하고자 하나 정작 몸은 콘크리트로 지어진 네모난 차디찬 바닥에 뉘여 있으니 일생에 여산(廬山)이 어디 있고 애기봉이 어디 있으랴.
대한민국에서 사람으로서의 가치를 말할 때, 기름진 음식에 배부르고, 좋은 차 타고, 명품 옷 걸치고, 고가의 푹신한 외제 소파에 앉아 부귀영화를 논하노니 청빈낙도(淸貧樂道)를 말하는 죽림칠현(竹林七賢)의 말은 어디 펴놓을 한뙤기의 땅도 없음을 한탄하노라.
우리는 어려서부터 선생님이 가르쳐 준 밑줄 쫙! 이라는 말에 아무런 의문을 달지 않고 무작정 외워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좋은 성적표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요, 좋은 대학을 가는 지름길을 버리고 형극(荊棘)의 길을 걷는 것이니 그야말로 인생이 쫑나는 것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무조건적 복종(服從)과 암기의 권능에 길들여져 살아왔다. 가끔 의문을 가지고 질문과 비판을 가할라 치면 돌아오는 것은 따돌림과 모진 시련뿐이었다.
독일의 경우 교육의 가장 큰 근간을 비판과 분석이라고 한다. 심지어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가르칠 때에도 자신의 말을 전적으로 믿지 말라고도 한다. 이것은 과연 교육자로서의 책무를 포기한 무책임한 태도일까? 절대로 그렇지 않다. 이는 학생들에게 어떠한 지식이나 사회현상을 무작정 믿지 않고 스스로 냉철한 비판과 분석을 통해 자아를 완성하는 지성(智性)의 길로 나아가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우리의 교육과 너무나도 다르지 않는가? 우리가 어떤 대상을 평가함에 있어서 어느 한 부분만을 고집해서 강조해서는 그 대상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될 수 없음은 삼척동자도 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자동차에 대한 토론을 준비해 오라는 숙제에 자동차의 어느 한 부분만을 그려 갈 수는 없는 법이며 전체적인 모양을 숙지하고 나서야 비로소 기능에 대한 이해도 더욱 증가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어떤가? 모두 특정한 한 부분만을 그리기를 강조하고 어떠한 비판과 분석도 용납하지 하지 않는 전체주의적 집단적 사고를 요구하는 사회가 아닌가? 입으로는 자유민주주의를 부르짖지만 독선과 아집으로 정작 상대는 구속하고자 하는 이율배반적 사고가 넘치는 사회, 바로 현재 우리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현수막이 넘치고 온갖 군상들이 나대는 걸 보니 곧 총선이 다가오는 것 같다. 출사표를 던진 후보군들과 이들을 추종하는 무리들에서 자유민주주의의 냄새는 사라진 지 오래다. 이렇데 조그만 시골 도시에서도 이렇듯 위선과 반목, 권모술수가 만연(漫然)하고 있으니 어찌 사람 냄새가 나는 살기 좋은 도시가 만들어 질 수 있겠는가? 늦었지만 이제라도 우리는 냉철한 비판과 분석을 통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또한 후보자들의 소속 정당도 중요하지만 그 소속 정당의 위장막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후보자의 면면을 보는 것이 전체를 올바르게 판단한다는 점에서 더 중요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되며 사리사욕에 가득찬 함량 미달의 정치인을 무대에 올려 보내는 실수는 이제 멈춰져야 한다. 선거란 어찌보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물건을 사는 것과 같다.
이렇게 우리의 모든 삶을 통제하는 가장 중요한 물건을 보지도 않고 덜컥 사는 것처럼 어리석은 소비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산을 벗어나 멀리서 두루 바라 보아야 산의 모습을 온전히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집단에 묻혀있는 피아(被我)를 벗어나 자아(自我)를 실현하는 사람 진면목을 되뇌이며 살아야 하는 것은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시민으로서의 의무이자 권리고 책임이다. 바로 이것이 깨어 있는 것이다. 항상 깨어 있으라.
여산의 진면목을 보려면 여산을 벗어나라
不識廬山眞面目, 只緣身在此山中.
불식여산진면목, 지연신재차산중.
여산의 참모습을 알지 못하는 것은, 단지 몸이 산속에 있기 때문이다.
당송(唐宋) 8대가의 한 사람인 북송시대 시인 동파(東坡) 소식(蘇軾)이 지은 '제서림벽(題西林壁)'이란 시의 한 구절이다. 시진핑이 파탈빈곤(擺脫貧困) 민동지광(閩東之光) 등의 글에서 이 명구를 인용했다. 소동파의 ‘여산 진면목’ 운운의 시는 중국뿐 아니라 우리나라 등지에서도 널리 인구에 회자膾炙되고 있다. 질박한 시지만 깊고 심오한 뜻을 담고 있다.
우리가 흔히 어떤 대상을 바라볼 때 보는 사람의 눈이 다르고, 서로 다른 장소와 각도에 따라 여러 형태로 보인다. 소동파는 이 시를 통해 자신의 눈높이에 따라 달리 보이는 여산의 모습에서 사람들의 서로 다른 인식의 차이를 일깨우고 있다. 동파는 이런 인식의 격차를 ‘앞에서 보면 마루 같고, 옆에서 보면 봉우리로다. 멀고 가까운 데서 높고 낮은 데서 보는 모습이 서로 다르구나(橫看成嶺側成峰, 遠近高低各不同)’라는 철학적 물음을 제기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인식의 차이를 극복할 수 있을까? 동파는 여산의 본모습을 보려면 여산을 벗어날 것을 권유한다. 여산을 보는 ‘자신의 몸’이 산속에 있기 때문에(只緣身在此山中) 여산의 참모습을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여산을 벗어나 더 많은 감성으로 관찰하고, 더 냉철한 이성으로 파악할 때 비로소 여산의 진면목을 알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이 시는 현실세계의 어떤 현상을 파악할 때 자신의 주관적 잣대에 따라 자신이 본 일면만을 전체인양 주장해서는 복잡한 사물의 본질적 속성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을 암시한다.
시진핑은 1990년 ‘푸젠성 동부지역 문화(민동문화閩東文化)’ 건설을 언급하며 이 시를 인용했다. 그는 “푸젠성 동부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그 지역에 거주한다고 해서 꼭 해당 지역을 잘 알고, 고향의 자랑할 만한 곳을 두루 알고 있다고 말할 수만은 없다”면서 “사람들이 (자신의 장점을 모르고)다른 사람을 부러워할 줄만 안다면 자신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라고 역설적으로 말했다.
이럴 때는 ‘당사자가 알지 못하는’ 심리상태를 타파해야 하는 것이 급선무다. 자신의 눈높이로만 보아서는 안 되고, 더욱 넓은 시야로 푸젠 동부지역의 문화적 특성을 살릴 수 있는 특색과 우수한 점이 무엇인지 등을 파악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나의 과학적 인식론으로, 단지 푸젠성 동부지역 사람들의 예를 들었을 뿐 모두에게 해당하는 인식적 차이를 지적한 것이다.
소식은 원풍(元豊) 7년(1084년)에 좌천당해 황저우(黃州)에서 루저우(汝州)로 가는 길에 장시성(江西省)의 주장(九江)을 지날 때 루산(廬山; 여산)을 유람했다. 여산의 매우 아름다운 산수가 시인의 시흥을 불러 일으켰다. 소식은 이때 여산에 관한 시를 여러 편 지었는데 '제서림벽'은 그중 한 편이다. 원전은 다음과 같다.
橫看成岺側成峰(횡간성령측성봉)
遠近高低各不同(원근고저각부동)
不識廬山眞面目(불식여산진면목)
只緣神在此山中(지연신재차산중)
앞에서 보면 마루 같고, 옆에서 보면 봉우리로다. 멀고 가까운 데서 높고 낮은 데서 보는 모습이 서로 다르구나. 여산의 참모습을 알지 못하는 것은, 단지 몸이 산속에 있기 때문일세.
이 시는 여산의 모습을 질박하게 묘사하면서도 뜻이 깊고 심오한 철학적 의미를 담았다. 동파는 여산을 유람한 체험을 추상적으로 논하지 않고 정확하게 파악해 철리哲理적 내용을 명쾌하게 설명해준다. 시의 첫머리 두 구절인 ‘횡간성령측성봉(橫看成岭側成峰), 원근고저각부동(遠近高低各不同)’ 부분은 유산(遊山) 소견을 사실적으로 그렸다.
해발 1500~1600미터에 이르는 여산은 종횡으로 교차하며 기복이 심한 산이 겹겹이 이어지는 큰 산이다. 크고 작은 산봉우리가 운무에 휩싸여 천태만상의 모습을 보여준다. 동파는 자신이 바라보는 곳에 따라 모양이 다른 천변만화(千變萬化)의 여산을 그렸다.
뒤의 두 구절 ‘불식여산진면목不識廬山眞面目), 지연신재차산중(只緣神在此山中)’은 여산 풍광을 철리적으로 해석하는 유산체험을 설명한다. 여산의 진면목을 볼 수 없었던 까닭은 몸이 산봉우리가 연면히 이어지는 산속에 있어 시야가 기복이 심한 봉우리에 가로막혔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경치는 필연적으로 여산의 일부분 일 수밖에 없다.
세상일의 관찰도 유산과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서로 같은 사물에 대한 인식과 문제풀이를 할 때 접근하는 이해나 견해는 항용 주관적 한계의 원인을 피할 수 없어 편면성을 벗어날 수 없다. 나무만 보면 숲을 볼 수 없고, 숲만 보면 나무를 볼 수 없는 이치다. 따라서 사물에 대한 전면적이고 객관적인 인식을 갖고 반드시 전체적 사유와 의식, 그리고 대국적 관점으로 살펴야 하는 이유다.
서림사 벽에 쓰다(題西林壁)
橫看成嶺側成峰
가로로 보면 고갯마루 옆에서 보면 봉우리
遠近高低各不同
멀고 가깝고 높고 낮음이 제각기 다르구나
不識廬山眞面目
여산의 참모습 알 수 없는 것은
只緣身在此山中
이 몸이 산 속에 있기 때문이라네.
소동파(蘇東坡, 1037~1101)는 중국 북송 때의 시인이다. 소동파가 이 시를 쓰게 된 사연이 좀 특이합니다. 1079년 호주(湖州) 지사로 부임한 그는 풍요로운 고장을 다스리게 해줘서 감사하다고 황제에게 글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반대파가 글의 내용을 교묘하게 비틀어서 그에게 누명을 씌웠습니다.
뜻하지 않은 필화에 휘말린 그는 100일간의 옥살이 끝에 가까스로 사형을 면하고 황주(黃州)로 유배됐다가 곧 여주(汝州)로 쫓겨가게 됐습니다. 그는 여주로 가는 길에 열흘 동안 여산(廬山)을 돌아보며 여러 편의 시를 썼습니다. 그중 한 편이 '서림사 벽에 쓰다(題西林壁)'입니다. 서림사(西林寺)는 양쯔강 중류의 여산 북서쪽에 있는 고찰이지요.
이 시에서 그는 열흘이나 여산을 돌아봤지만 본모습을 다 알지 못했다고 고백합니다. 가로로 볼 때와 세로로 볼 때의 모습이 다르고, 멀리서 볼 때와 가까이서 볼 때가 다르며, 낮은 곳에서와 높은 곳에서 볼 때가 모두 달랐기 때문이지요. 어느 쪽에서든 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 제한된 면만 볼 수 있으니 어찌 대상을 완전하게 파악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여산진면목'이라는 고사성어의 원전
저는 '여산의 참모습 알 수 없는 것은, 이 몸이 산 속에 있기 때문'이라는 구절에서 무릎을 쳤습니다. 14자의 짧은 절구로 우주와 삶의 이치를 이토록 간명하게 설파하다니! 반대 파벌에 의해 고초를 당하고 귀양지를 옮겨 다니는 기구한 운명이 이 두 줄에 응축돼 있습니다.
이 시에서 '여산진면목(廬山眞面目)'이라는 고사성어가 나왔습니다. 근본이 너무도 깊고 유원해 참모습을 다 알기 어렵다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지요. '그 사람의 진면목을 보려면 고난에 어떻게 대처하는가를 보라'고 할 때의 그 진면목입니다. '숲 안에서는 숲을 제대로 볼 수 없고 그 속에서 걸어 나와야 전체를 볼 수 있다'는 말과 서로 통하지요.
1000년 전에 쓴 시이지만 요즘 인용해도 신선합니다. '우물 안 개구리' 소리를 여러 번 들먹이는 것보다 이 시를 활용하는 게 훨씬 더 효과적이죠. 직장에서도 그렇고 사회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99%를 좌우하는 1%의 차이 '디테일'
이 시 덕분에 귀한 인연을 많이 만났습니다. 그중 '디테일 경영'의 대가인 왕중추(汪中求) 중국 칭화대 명예교수를 잊을 수 없습니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몇 년 전 서울에서였습니다. 당시 그의 책 '디테일의 힘' 판매 부수는 국내외에서 1000만 부를 넘었습니다. 강연하러 한국에 온 그와 인터뷰 후 저녁을 함께 먹는 자리였죠. 그는 말수가 적고 술도 즐기지 않았습니다. 고만고만한 대화가 밍밍하게 이어졌지요.
그러다 아주 작은 대목에서 그가 반색을 하며 자세를 고쳐 앉았습니다. 무슨 말끝에 '여산의 참모습 알 수 없는 것은/이 몸이 산 속에 있기 때문이라네'라는 소동파 시 구절을 인용했더니 자기 고향이 바로 여산이라는 겁니다. 한번 말이 트이니 일사천리였죠. 동갑내기인 우린 그날 밤 친구가 됐습니다.
이듬해에는 중국에서 만났습니다. 상하이교통대(上海交通大)에서 릴레이 강연을 마치고 식당에 갔을 때, 앉자마자 그가 '원샷'을 권했습니다. 빈속이라 손사래를 쳤더니 "첫 잔은 우리 인연이 잘 풀리도록, 마지막 잔은 아주 만족스러웠다는 뜻으로!"라며 먼저 잔을 죽 들이켜더군요.
그날 마지막 잔까지 좍 비운 그가 "사실은 내가 담낭을 절제해서 술을 한잔도 못 마신다. 오늘 우리 특별한 만남을 위해서 그동안 조금씩 몸을 만들었다"고 털어놨습니다. 그가 온몸으로 보여준 디테일의 배려에 뜨거운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이런 게 1000만 부 저자의 힘인가 싶었지요. 그는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섬세해야 큰일도 대담하게 이룰 수 있다"며 환하게 웃었습니다. 그가 경영난에 빠진 한 회사를 맡아 1년여 만에 연매출을 23%나 늘린 비결도 큰 것보다 작고 섬세한 요소들을 먼저 챙긴 덕분이었지요.
쌀가게 점원에서 최고 갑부가 된 비결
작은 것이 큰 것을 좌우하는 사례를 우리 주변에서 많이 봅니다. 어떤 사람은 입사시험 성적이 뛰어난데도 구겨진 이력서 때문에 낙방했습니다. 아주 사소한 것 같지만, 이력서 하나도 잘못 관리하는 사람에게 일을 맡길 순 없다는 게 낙방 이유였지요.
쌀집 점원에서 대만 제일의 갑부로 성공한 사람 이야기도 흥미롭습니다. 남의 쌀집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자란 왕융칭(王永慶)은 16세 때 자기 가게를 열었습니다. 그곳에는 이미 30여 개의 쌀가게가 있어서 살아남기가 버거웠습니다. 고전하던 그는 쌀의 품질과 서비스를 높이는 방법을 연구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추수한 벼를 길에서 말렸기 때문에 잔돌이 섞여 밥할 때마다 쌀을 일어 돌을 골라야 했죠. 그는 동생들을 동원해 돌을 꼼꼼히 골라낸 뒤에 팔았습니다. 이 차별화 전략은 멋지게 성공했습니다.
곧이어 배달 서비스를 시작한 그는 집집마다 쌀독 크기와 식구 수를 파악해 뒀다가 쌀이 떨어질 때쯤 미리 가져다줬습니다. 또 쌀독에 남은 쌀을 다 퍼낸 뒤 새 쌀을 붓고 그 위에 남은 쌀을 부어 줬습니다. 묵은쌀의 변질을 막기 위한 것이었죠. 이처럼 작고 섬세한 배려 덕분에 그는 당대 최고의 쌀장수가 됐습니다.
왕중추 교수는 '디테일의 힘'에서 이런 사례와 함께 '100-1=0, 100+1=200 공식'을 일러줍니다. 1%의 부족으로 '0'이 될 수도 있고, 1%의 정성으로 '200'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죠. 쌀장수 왕융칭은 '100+1=200'의 경우입니다.
반면 '100-1=0'의 예도 많습니다. 중국의 한 냉동새우 판매 회사는 유럽에 1000t을 수출했다가 항생물질 0.2g이 발견돼 손해배상까지 했습니다. 50억분의 1 때문에 치명타를 맞은 겁니다.
왕 교수는 "사랑받는 사람이나 상품은 다른 사람이나 경쟁상품이 갖지 못한 1%의 차이를 갖고 있는데 이 1%의 차이가 곧 디테일의 힘"이라고 말합니다.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물고기를 요리하듯 해야 한다는 노자의 말처럼 디테일을 중시하고 디테일에서 이기는 기업만이 생존과 성장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지요.
먼 산보다 신발 속의 모래 한 알이…
말단 영업사원 출신으로 기업 대표이사가 되고 경영학자로도 이름을 떨친 그는 중국인들의 대충주의를 바꿔놓은 디테일의 거장으로 꼽힙니다. 그의 얘기는 '빨리빨리' 문화 속에서 우리가 소홀히 해왔던 디테일의 위력을 체감케 하고, 디테일에 강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돌아보게 하지요.
처음 98%는 잘하는데 마지막 2%를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톰 피터스) 0.01초의 차이가 한 사람을 영웅으로 만들고 한 사람은 기억조차 나지 않게 만든다.(이건희) 등의 명언도 이와 같습니다.
첨단 경쟁 시대에는 사소한 것이 더 큰 차이를 낳지요. 상품에서도 ‘1%의 편리함’이 승패를 가릅니다. 살림살이가 어렵고 나라 경제가 출렁거린다고 난리를 칠수록 '1%의 차이'는 더 중요해지지요. 그래서 옛사람들도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것은 먼 곳에 있는 산이 아니라 신발 안에 있는 작은 모래 한 알'이라고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 廬(농막집 려/여, 창 자루 로/노)는 형성문자로 庐(려)의 본자(本字), 庐(려)는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엄 호(广; 집)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盧(로)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廬(려, 로)는 ①농막집(논밭 가운데 간단히 지은 집) ②주막 ③여인숙 ④숙직실 ⑤오두막집 그리고 ⓐ창(槍) 자루(끝에 달린 손잡이)(로) 따위의 뜻이 있다.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암자 암(庵)이다. 용례로는 민가가 모여 있음을 여락(廬落), 무덤 가에 지은 초가로 상제가 상이 끝날 때까지 거처하는 곳을 여막(廬幕), 오두막집이나 움막집을 여사(廬舍), 상제에게 편지를 할 때 겉봉에 공경하는 뜻으로 받는 이의 이름 아래에 쓰는 말을 여사(廬史), 상중에 있는 사람에게 하는 편지에서 상주가 거처하는 집을 이르는 말을 여소(廬所), 생각 밖을 여외(廬外), 지붕을 짚이나 풀로 인 작은 집을 초려(草廬), 살림집을 옥려(屋廬), 승려가 사는 암자를 승려(僧廬), 달팽이의 껍질처럼 작다는 뜻으로 작게 지은 누추한 집의 비유로 자기 집을 겸손하게 이르는 말을 와려(蝸廬), 임금이 국상을 당하였을 때 거처하는 여막을 엄려(嚴廬), 대자리로 둘러 쳐서 지은 집을 거려(籧廬), 상제가 거처하는 여막을 점려(苫廬), 여막을 지음 또는 집을 지음을 결려(結廬), 선조 대대로 살아 오는 집을 선려(先廬), 밭으로 에워싸여 있는 집을 전려(田廬), 상제가 거처하는 곳을 효려(孝廬), 상제 된 사람이 여막에서 거처함을 거려(居廬), 허술하게 지은 집이나 가난한 집을 궁려(窮廬), 유비가 제갈공명을 세 번이나 찾아가 군사로 초빙한 데서 유래한 말로 인재를 맞기 위해 참을성 있게 힘씀을 이르는 말을 삼고초려(三顧草廬), 인재를 맞아들이기 위해 참을성 있게 마음 씀을 이르는 말로 삼고초려라고도 함을 초려삼고(草廬三顧), 너무도 깊고 그윽하여 그 진면목을 알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여산진면목(廬山眞面目) 등에 쓰인다.
▶️ 山(메 산)은 ❶상형문자로 산의 봉우리가 뾰족뾰족하게 이어지는 모양을 본떴다. 옛 자형(字形)은 火(화; 불)와 닮아 옛 사람은 산과 불이 관계가 깊다고 생각한 듯하다. ❷상형문자로 山자는 ‘뫼’나 ‘산’, ‘무덤’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山자는 육지에 우뚝 솟은 3개의 봉우리를 그린 것으로 ‘산’을 형상화한 상형문자이다. 갑골문에 나온 山자를 보면 가파른 능선이 그려져 있어서 한눈에도 이것이 산을 그린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山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산의 이름’이나 ‘산의 기세’나 ‘높다’와 같이 ‘산’에서 연상되는 여러 의미로 활용된다. 그래서 山(산)은 (1)둘레의 평평(平平)한 땅보다 우뚝하게 높이 솟아 있는 땅의 부분(部分). 메 (2)산소(山所) (3)사물이 많이 쌓여 겹치거나, 아주 크거나, 매우 많은 것에 비유한 말, 또는 그것 (4)산이나 들에 절로 나는 것을 뜻하는 말 (5)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메(산을 예스럽게 이르는 말), 뫼 ②산신(山神: 산신령), 산의 신(神) ③무덤, 분묘(墳墓) ④절, 사찰(寺刹) ⑤임금의 상(象) ⑥산처럼 움직이지 아니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큰 산 악(岳),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내 천(川), 강 강(江), 물 하(河), 바다 해(海), 물 수(水)이다. 용례로는 여러 산악이 잇달아 길게 뻗치어 줄기를 이룬 지대를 산맥(山脈), 들이 적고 산이 많은 지대를 산지(山地), 산과 물으로 자연의 산천을 일컫는 말을 산수(山水), 물건이나 일이 산더미처럼 많이 쌓임을 산적(山積), 산과 숲 또는 산에 있는 수풀을 산림(山林), 크고 작은 모든 산을 산악(山岳), 산 꼭대기를 산정(山頂), 산 위에 쌓은 성을 산성(山城), 무덤을 높이어 이르는 말을 산소(山所), 산 속에 있는 절을 산사(山寺), 산과 산 사이로 골짜기가 많은 산으로 된 땅을 산간(山間), 산의 생긴 형세나 모양을 산세(山勢), 산 속에 있는 마을을 산촌(山村), 산에 오름을 등산(登山), 강과 산으로 자연이나 나라의 영토를 강산(江山), 높고 큰 산으로 크고 많음을 가리키는 말을 태산(泰山), 높은 산을 고산(高山), 산에서 내려옴을 하산(下山), 신령스러운 산을 영산(靈山), 연달아 잇닿은 많은 산을 군산(群山), 조상의 무덤이나 조상의 무덤이 있는 곳을 선산(先山), 산에 들어감을 입산(入山), 나무가 무성하여 푸른 산을 청산(靑山), 돌이나 바위가 없이 흙으로만 이루어진 산을 토산(土山), 유용한 광물을 캐어 내는 산을 광산(鑛山), 눈이 쌓인 산을 설산(雪山), 들 가까이에 있는 나지막한 산을 야산(野山), 산을 좋아함을 요산(樂山), 산에서 흐르는 물이 바위를 뚫는다 뜻으로 작은 노력이라도 끈기 있게 계속하면 큰 일을 이룰 수 있음을 산류천석(山溜穿石), 산에서의 싸움과 물에서의 싸움이라는 뜻으로 세상의 온갖 고난을 다 겪어 세상일에 경험이 많음을 산전수전(山戰水戰), 산빛이 곱고 강물이 맑다는 뜻으로 산수가 아름다움을 이르는 말을 산자수명(山紫水明), 산과 바다의 산물을 다 갖추어 아주 잘 차린 진귀한 음식을 산해진미(山海珍味), 경치가 옛 모습 그대로 변하지 않음을 산천의구(山川依舊) 등에 쓰인다.
▶️ 眞(참 진)은 ❶회의문자로 真(진)의 본자(本字)이다. 사방팔방(八) 어느 곳에서 보더라도(目) 올바른 것으로 참을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眞자는 ‘참’이나 ‘진실’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眞자는 目(눈 목)자가 부수로 지정되어 있지만, 눈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眞자는 본래 鼎(솥 정)자와 匕(비수 비)자가 결합한 글자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鼎자는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던 큰 솥을 뜻하고 匕자는 ‘수저’를 표현한 것이다. 신에게 바치는 음식은 참되면서도 정성이 담겨야 할 것이다. 그래서 眞자는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음식을 바친다는 의미에서 ‘참되다’나 ‘진실되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眞(진)은 (1)참 거짓이나 허식이 아님 (2)진실(眞實)의 도리(道理). 진리(眞理) (3)일시적이 아님 변하지 아니함. 상주 불변(常住不變) (4)섞임이 없음. 순수(純粹)함 (5)자연(自然). 천연(天然) (6)해서(楷書). 진서(眞書) (7)일부 명사(名詞) 앞에 쓰이어 참된 거짓이 아닌의 뜻을 나타내는 말 (8)중국의 국호(國號)로 춘추시대(春秋時代)의 12열국(列國)의 하나 (9)삼국(三國)의 위(魏)를 이러서 그 권신(權臣) 사마염(司馬炎)이 세운 왕조(王朝) (10)후진(後晉) (11)진괘(晉卦) (12)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참 ②진리(眞理) ③진실(眞實) ④본성(本性) ⑤본질(本質) ⑥참으로 ⑦정말로 ⑧진실(眞實)하다 ⑨사실이다 ⑩참되다 ⑪명료(明瞭)하다 ⑫또렷하다 ⑬뚜렷하다 ⑭똑똑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참 심(諶),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거짓 가(仮), 거짓 가(假), 거짓 위(僞)이다. 용례로는 말이나 태도가 참답고 착실함을 진지(眞摯), 거짓이 아닌 사실을 진실(眞實), 진실하여 애틋한 마음을 진정(眞情), 잘 알려지지 않거나 잘못 알려지거나 감추어진 사물의 참된 내용이나 사실을 진상(眞相), 정말과 거짓말 또는 진짜와 가짜를 진위(眞僞), 참된 마음을 진심(眞心), 참된 도리를 진리(眞理), 거짓이 없이 참으로를 진정(眞正), 진짜 물건을 진품(眞品), 진실하고 솔직함으로 참되어 꾸밈이 없음을 진솔(眞率), 실지 그대로의 경계를 진경(眞境), 인위적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성질을 진성(眞性), 진실하여 잘못이 없음을 진제(眞諦), 진짜와 가짜 또는 참과 거짓을 진가(眞假), 참된 값어치를 진가(眞價), 참뜻으로 참된 의사나 진실한 의의를 진의(眞意), 주로 얼굴을 그린 화상 또는 사진을 진영(眞影), 진정에서 우러나온 거짓이 없는 참된 이야기를 진담(眞談), 실물의 모양을 있는 그대로 그려 냄을 사진(寫眞), 마음이 꾸밈이 없고 참됨을 순진(純眞), 임금의 화상이나 사진을 어진(御眞), 공리를 관찰하는 지혜로써 진제의 이치를 꿰뚫어 보는 일을 견진(見眞), 사물의 진상을 알게 됨을 득진(得眞), 가짜가 진짜를 어지럽히고 거짓이 진실을 뒤흔든다는 이가난진(以假亂眞), 천진함이 넘친다는 뜻으로 조금도 꾸밈없이 아주 순진하고 참됨을 천진난만(天眞爛漫),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지경임을 여진여몽(如眞如夢), 마음과 몸이 아주 깨끗하여 조금도 더러운 때가 없음을 순진무구(純眞無垢), 농담이나 실없이 한일이 나중에 진실로 한 것처럼 됨을 가롱성진(假弄成眞) 등에 쓰인다.
▶️ 面(낯 면/밀가루 면)은 ❶상형문자로 麵(면)과 麪(면)의 간자(簡字)이고, 靣(면)은 속자(俗字)이다. 面(면)은 사람의 얼굴과 그 윤곽을 나타낸다. 나중에 물건의 거죽이나, 얼굴을 그 쪽으로 돌리다 따위의 뜻으로도 쓰인다. ❷상형문자로 面자는 사람의 ‘얼굴’이나 ‘평면’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面자는 사람의 머리둘레와 눈을 특징지어서 그린 것이다. 面자의 갑골문을 보면 길쭉한 타원형 안에 하나의 눈만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사람의 얼굴을 표현한 것이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面자가 단순히 ‘얼굴’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사람의 얼굴에서 비롯되는 ‘표정’이나 ‘겉모습’이라는 뜻으로도 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面(면)은 (1)겉으로 드러난 쪽의 바닥 (2)입체(立體)의 평면(平面), 또는 겉면 (3)검도(劍道)나 야구(野球)에서 다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얼굴에 쓰는 제구(諸具) (4)향하고 있는 어떤 쪽 (5)신문 따위의 페이지 (6)낯이나 체면(體面) (7)인쇄한 책장이나 종이장의 한 쪽, 또는 이것을 세는 단위(불완전 명사). 쪽. 페이지 (8)몇 개의 이(里)로 구성된, 군(郡)의 관할에 딸린 지방 행정 구역 단위의 하나. 종래 하급 보통 지방자치단체의 하나이었으나, 하급 보통 지방자치단체인 군의 단순한 행정 구역으로 되었음. 등의 뜻으로 ①낯, 얼굴 ②표정(表情), 얼굴빛 ③모양, 모습 ④겉, 표면 ⑤겉치레 ⑥탈, 가면(假面) ⑦앞, 면전 ⑧방면(方面), 쪽 ⑨평면 ⑩면(행정 구역 단위) ⑪면(물건의 세는 단위) ⑫밀가루 ⑬보릿가루 ⑭국수 ⑮만나다 ⑯대면하다 ⑰등지다, 외면하다 ⑱향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한 면의 관할 구역 안을 면내(面內), 얼굴에 있는 잔털이나 수염을 깎는 일을 면도(面刀), 대하여 보고 있는 앞을 면전(面前), 얼굴을 마주 대함을 면접(面接), 얼굴을 대하여 만나봄을 면회(面會), 면에 사는 주민을 면민(面民), 일정한 평면이나 구면의 크기를 면적(面積), 면담(面談)서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눔을 얼굴을 서로 알고 있음을 면식(面識), 바로 그 사람앞에서 잘못을 책망함을 면책(面責), 얼굴을 마주하여 꾸짖거나 논박함을 면박(面駁), 물체의 상하나 전후 이외의 좌우의 면을 측면(側面), 물체의 뒤쪽에 있는 면을 이면(裏面), 어떠한 사실과 반대되거나 다른 방면을 반면(反面), 일이 되어 나가는 상태 또는 그 장면을 국면(局面), 밖으로 나타난 모양 또는 대면하기를 꺼려 얼굴을 다른 쪽으로 돌려 버림을 외면(外面), 어떤 범위의 전체를 전면(全面), 바깥 면이나 겉모양을 표면(表面), 어떤 지역이 있는 방향 또는 그 일대를 방면(方面), 얼굴을 씻음을 세면(洗面), 눈 코 입 등이 있는 머리의 앞쪽 또는 사람끼리 서로 아는 것을 안면(顔面), 일이 바로 눈앞에 닥침을 당면(當面), 얼굴 생김새가 밉살스러움을 이르는 말을 면목가증(面目可憎), 서로 얼굴을 통 모른다는 말을 면목부지(面目不知), 얼굴이 아주 새로워졌다는 말을 면목일신(面目一新), 벽을 향하고 아홉 해라는 말을 면벽구년(面壁九年), 얼굴빛이 흙빛과 같다는 말을 면여토색(面如土色), 겉으로는 순종하는 체하고 속으로는 딴 마음을 먹는다는 말을 면종복배(面從腹背) 등에 쓰인다.
▶️ 目(눈 목)은 ❶상형문자로 사람의 눈의 모양이다. 처음엔 보통 눈과 같이 가로로 길게 썼는데 나중에 세로의 긴 자형(字形)으로 변한 것은 글이 세로 쓰기인 데 맞춘 것이다. ❷상형문자로 目자는 ‘눈’이나 ‘시력’, ‘안목’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目자는 사람 눈을 그린 것으로 갑골문에 나온 目자를 보면 사람의 눈과 눈동자가 잘 표현되어 있었다. 본래 目자는 가로로 쓰였었지만, 한자를 세워 쓰이는 방식이 적용되면서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目자는 눈을 그린 것이기 때문에 부수로 쓰일 때는 대부분이 ‘보다’나 ‘눈의 상태’, ‘눈’과 관련된 뜻을 전달하게 된다. 그러나 眞(참 진)자나 鼎(솥 정)자처럼 솥을 생략할 때 目자가 쓰이는 예도 있으니 해석에 주의가 필요하다. 그래서 目(목)은 (1)예산(豫算) 편제 상의 단위의 하나. 항(項)의 아래 절(節)의 위 (2)생물 분류학(分類學) 상의 단위의 하나. 강(綱)과 과(科)의 가운데임 등의 뜻으로 ①눈(감각 기관) ②눈빛, 시력(視力) ③견해(見解), 안목(眼目) ④요점(要點) ⑤옹이, 그루터기(풀이나 나무 따위의 아랫동아리) ⑥제목(題目), 표제(標題) ⑦목록(目錄) ⑧조목(條目), 중요 항목 ⑨이름, 명칭(名稱) ⑩그물의 구멍, 눈 ⑪우두머리, 두목(頭目) ⑫품평(品評), 평정(評定) ⑬보다, 주시(注視)하다 ⑭일컫다, 지칭(指稱)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눈 안(眼)이다. 용례로는 직접 자기의 눈으로 봄을 목격(目擊), 안경낀 사람의 변한 말을 목사(目四),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실제적 대상으로 삼는 것을 목표(目標), 책 따위의 기사의 순서를 목차(目次), 눈 인사를 목례(目禮), 눈으로 셈함을 목산(目算), 눈으로만 가만히 웃는 웃음을 목소(目笑), 눈병을 고치는 데 쓰는 약을 목약(目藥), 오는 사람을 바라보고 맞음을 목영(目迎), 어떤 사물을 주의해서 봄을 주목(注目), 전에 비하여 딴판으로 학식 등이 부쩍 늘어서 눈을 비비고 다시 봄을 괄목(刮目), 공부할 지식 분야를 갈라놓은 것을 과목(科目), 낱낱의 조나 항을 항목(項目), 사물을 분별하는 견식을 안목(眼目), 서로 미워함을 반목(反目), 형식 상 표면에 내세우는 이름이나 구실을 명목(名目), 사람이나 사물이 어떠하다고 가리키어 정함을 지목(指目), 물품의 명목을 품목(品目), 좋지 못한 집단의 우두머리를 두목(頭目), 눈은 물건을 잘 보지만 자기의 눈 속은 보지 못한다는 말을 목단어자견(目短於自見), 고무래를 보고도 그것이 고무래 丁자인 줄 모른다는 말을 목불식정(目不識丁), 차마 눈으로 볼 수 없을 정도로 딱하거나 참혹한 상황을 이르는 말을 목불인견(目不忍見), 눈으로 책을 알지 못한다는 말을 목불지서(目不之書), 눈으로 부리고 기세로 부린다는 말을 목사기사(目使氣使), 눈으로 먹고 귀로 본다는 말을 목식이시(目食耳視), 눈초리가 다 찢어진다는 말을 목자진열(目眥盡裂), 앞날을 내다보지 못하고 눈앞의 일만 생각하는 계책이라는 말을 목전지계(目前之計)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