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숏다리
매일 밤 손발 씻는 것은 게으른 어린아이도 하는 짓인데 도치씨는 내가 매일 밤 손발 씻는다니까 무엇이 그리 좋은지 희희덕거렸다. 아니 히히거리는 것이라기보다 시궁창에서 다이아몬드 발견 한 것만큼 신기한 모양이다.
“사모님이 좋아시죠?”
“음, 말하면 잔소리지. 신랑이 손발 깨끗이 씻는데 안 좋아하는 여자 있다면 그런 여자 아프리카 살아야겠지.”
“얼마나 좋아하세요? 가령 아침에 반찬이 달라졌다든지 뭐 그런 거 있잖아요?”
“손발 씻는다고 아침에 달라질게 있겠어요? 똑 같아. 하나도 변하는 건 없어요.”
도치씨가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나를 쳐다보는데 그 눈빛이 아주 야비해 보였다. 거짓말하는 어린아이를 쳐다보는 담임선생의 눈초리였다.
도치씨가 실눈으로 물었다.
“뭐든지 익숙하면 뭐든지 보통으로 여겨지나 봅니다. 그래도 그렇지 사모님이 좀 야박하네요.”
“뭐가?”
“매일 밤 서비스하시는데 보통으로 생각하시니까요. 그 작업이 보통일인가요?”
“내가 내 손발 씻는 게 우리 집사람에게 서비스가 되나?”
갑자기 도치씨 얼굴이 마치 김장철 놓친 썩은 배추 꼴이 됐다. 나의 말에 실망의 빛이 역력했다.
“왜 그러나?”
도치씨가 대들 듯 뻑뻑하게 말했다.
“누가 손발 씻는 거 말했어요?”
“그럼 뭔데?”
“이이고, 두야! 사랑말이에요 사랑! 사모님한테 매일 밤 서비스할 게 사랑 말고 뭐 있어요? 오럴 말구요. 논픽션! 그거요. 그거!”
그제야 도치씨의 말귀를 정확히 알아들었다.
“자네가 손발이라 했잖아? 그러니까 도치씨 말은 그게.”
도치씨는 내 말을 싹둑 잘라버리고 말했다.
“선배님. 진짜 알고 능청 떠시는 겁니까? 진짜 몰라서 멍청하신 겁니까? 흔히 다리를 발이라 하잖아요? 그러니까 가운데 다리도 발이 맞잖아요? 가운데 작은 발, 숏다리shotfoot 요. 제 말 틀렸어요?”
어휴! 아뿔싸! 제길! 누가 멍청한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멍멍한 내게 도치씨가 말했다. 허지만 도치씨의 한마디에 나는 뿅 갔다. 너무 혼란스러워서.
“대충 짐작은 했지만요. 매일 밤 하신다니 신기하고 대견해서 놀랬는데.”
“또 뭐야? 어수선하게 말하지 말고 정확히 말해요. 알아듣기 쉽게.”
“그걸 어떻게 노골적으로 말할 수 있나요? 에에이, 참 선배님도.”
나는 이제 완전히 도치씨가 말한 의미를 깨우쳤지만 내 직업적인 스피치테크닉으로 짐짓 모른 체 그를 유도했다. 도치씨 딱 걸려들었다.
허지만 기는 놈 위에 뛰는 놈 있고,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 도치씨가 그랬다. 아니, 아주 나를 교육시키려고 작정한 모양이다.
“매일 밤 하신다고 해서 의외라고 생각했는데요. 선배님 같은 분들은 좀 거시기 하잖아요?”
“뭐가?”
“인도 영웅의 말처럼 단순 노동자들은 하루에 몇 번도 하지만요. 선배님 같은 분들은 격일제로 건너뛰어도 훌륭한데요. 왜 그러냐면요. 단순한 일하는 사람들은요. 단순하기 때문에 강하구요. 선배님처럼 예민한 분들은요. 민감하기 때문에 예민한 거에요. 예민한 사람은 타임도 숏 하고 운동량도 적잖아요? 그런데 매일 밤 하신다니 제가 안 놀랐겠어요?”
그리고 도치씨는 나의 반응을 확인하려는 듯 나를 빤히 쳐다 봤다. 이럴 경우 누가 얼굴이 더 빨개질까?
나는 도치씨의 당돌하고 자신감 넘치는 표정 앞에서 묘한 굴욕감을 느꼈다. 그래서 신경성반사감정으로 물었다. 쉽게 말해 너는 잘하냐? 그런 감정이었다.
“그런 도치씨는 어때? 내가 보기엔 도치씨도 아주 센시티브sensitiveness해 보이는데? 과민하고?”
“저요?”
내가 고개를 꺼덕이자 도치씨가 가운데 손가락을 쫙 펴 허공에서 까딱까딱 거린 후, 휘이익 별을 그리며 말했다.
“전 현재 로테이션이잖습니까? 그러니까 최소한 선배님의 3배? 아니죠. 삼삼은 구. 9배는 된다고 봐야겠죠? 그러니까 약간의 싸이클은 있지만 큰 차이는 없걸랑요. 헤헤헤.”
“뭐? 9배?”
“네. 일회 쓰리타임이니까. 삼삼은 구 맞잖아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아니. 이 놈이? 부아가 치밀었다. 도치씨의 말대로 하루 햇빛이 무섭다는, 겨우 일 년 터울의 후배가 얄미웠지만 솔직히 부러웠다. 허지만 기분은 완전히 피멍이 들었다. 이토록 남자의 힘에 대한 굴욕감을 느껴보긴 처음이다. 세상에서 제일 허약한남자의 굴욕감이었다. 만약 내가 유승민 정도의 성깔만 있었더라면.
“이노무자썩, 다리몽생이를 뿐지삐릴끼다!” 라고 말했을 것이다. 허지만 참는 자는 지혜가 있는 법이라 그렇게 말할 수 없었다. 무식한 놈에겐 지혜로 대해야 하는 거니까.
그러나 내 지혜가 작동하기 전에 뭐가 뛰면 뭐가 뛴다고 도치씨가 듣고 싶지도 않는 말을 계속했다.
“저는 인도영웅에 비하면 개코딱지죠. 그렇지만요. 시간과 질에서 우위를 찾으려고 엄청 노력하거든요. 인도영웅처럼 닥치는 대로 잘 먹고 잘 싸고, 체력단련 겸 일주일에 한 두 번은 장거리낚시 뛰고요. 단순하게 살려고 발버둥치고 있어요.”
나는 내 지혜마저 까뭉개지는 것을 느끼고 헛소리만 내 질렀다.
“허, 그것 참!”
“덕분에 갈수록 강해지는 거 있죠? 시간과 질량이 엄청 향상됐거든요. 그러니까 알피엠RPM이 빨간 선까지 도달하는데 두 배 이상 느려지데요.”
“알피엠?”
“네, 알피엠 모르세요? 자동차계기판에 달렸잖아요? 바늘이 빨간 선까지 가면 운행 중단해야 하는 거요.”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네.”
“아, 진짜 선배님 공부 좀 하셔야겠습니다. 시동 걸어서 곧장 온도 올라가면 차 세우잖아요? 그래도 모르시겠어요? 빵! 선배님 빵! 빵빵빵!”
도치씨는 나를 향해 손가락권총을 연발로 발사했다.
“허, 그것참! 허 허허허!”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겨우 이 정도였다. 감탄 같기도 하고 탄식 같기도 한 이 말의 의미를 본인인 나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도치씨는 시카이닥터psychiatry인 나보다 인간의 기초본능에 더 충실하며 인생을 복잡하게 하지 않기 위해 무던히 노력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해박한 감성심리학문을 가지고 있는 나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았고, 소울카운셀러인 내가 도치씨 앞에서는 완벽하게 생리적 굴욕을 받는, 참기 어려운 시간이었다. 그런데 나의 이런 굴욕감에 도치씨는 도장을 찍어버리는 말을 했다.
“선배님, 비밀스럽게 사랑을 해보니까요. 인생이란 게 별거 아니란 생각이 들대요. 연애하는 시간은 오래지만 사랑하는 시간은 불과 한두 시간이거든요. 역설하면요. 삶은 길지만 인생은 짧다 이거 아니겠어요? 먹고살아야 하는 삶은 복잡하고 힘든데 태어나고, 살고 죽는 인생까지 복잡해지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래서 생각했는데요. 삶이나 인생을 행복하게 하려면요. 복잡해져서는 안 된다. 간단명료하게 살자. 이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전 후레시하고 심플하게 살려고 노력해요. 그게 단순하게 사는 거거든요. 그러면 삶도 인생도 즐거워지는 거 있죠? 인생이 즐거워지면 선배님처럼 골골할 틈이 없거든요.”
“뭐야? 내가 골골하다고?”
나는 어이가 없어 입을 크게 벌리고 하품하듯 노여운 마음을 바들바들 떨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었다.
첫댓글 손발 씻는다고 해서 저도 한참을 몰라 어리둥절 했슴니다.
인도의 영웅은 못되어도 3X3이라니 놀라 자빠지겠슴니다.
깊은밤 편한 잠자리 되세요..
너무 고민하지 마세요...삼삼은 구 맞습니다...ㅎ
고운 밤되세요
숏다리가 무슨 말이가 했슴니다.ㅎㅎㅎ
ㅋㅋㅋㅋㅋㅋ
롱다리도 싯고 쑛다리도 씯어야 하지요..
유머가 섞인 술자리 즐감 했슴니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술좌석의 힘자랑즐감 해 봅니다.
이왕 이면 롱다리가 좋겠지요~~ㅎㅎㅎ
롱다리? 부담됩니다...긴것이 얼마나 부담스러운 건지 당하지 않는 사람은 그 고충 모릅니다...ㅋㅋㅋ
발도 씻고 손도 씻고 남자들은 말을 아낄줄 모르네요..
말좀 아꼇으면 제미아 없었을까요..
잘 읽것슴니다.
ㅎ
죄송합니다. 남자들을 대표해서 제가 사과드립니다....ㅎ
고운 밤되세요
내일 아침까지는 입 봉합니다....ㅋㅋㅋ
술을 거하게 드셨군요..
ㅋㅋㅋ
술이 아직 절반도 안취했는데...벌써 거나하게 보이나요?
큰일이네요...ㅎㅎㅎ..고운 밤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