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뢰즈에 대해 - 4. 인식론(새로운 사유의 이미지)
by 메피스토
4.6. 새로운 사유의 이미지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들뢰즈의 인식론이 체화
된 인지와 원형이론을 축으로 한다면 “새로운 사
유의 이미지”의 창발을 이론적으로 설명할 단서
또한 잡을 수 있습니다. 체화된 인지 이론은 개념
들의 네트워크를 함축하고, 그 네트워크는 창발
이나 자기조직화와 관련이 큰 척도 없는 네트워
크 유형이라고 추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레이코프/존슨의 체화된 인지 이론에 의하면 개
념은 은유적입니다. 즉 비교적 구체적이고 직접
적인 체험으로부터 발생한 원관념의 도식으로부
터 상대적으로 추상적인 보조관념을 향해 확장됩
니다. 이와 같이 은유는 원관념과 보조관념의 관
계이므로, 체화된 인지 이론은 곧 개념들 간의 관
계망을 함축합니다.
그런데 체화된 인지 이론으로부터 추론할 수 있
는 관계망은 어떤 형태일까요? 레이코프/존슨에
의하면, 가장 먼저 형성될 원관념은 신체-환경 상
호작용에서 형성되는 것들입니다. 그들은 신체-
도식이라 부르며, 들뢰즈는 베르그송을 빌려 “감
각-운동 도식”이라 부르는 것들입니다. 레이코
프/존슨은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개념체계들이
몸의 공통성과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의 공통성들
을 주로 이용하는 방식으로 신체화되어 있다(몸
의 철학 p.29)”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점에 기초해서 개념들의 연결
망이 형성되는 과정을 추론해보면, 개념들의 연
결망이 어떤 형태일지에 대한 신빙성 있는 가설
을 수립할 수 있습니다. 원관념이 될 최초의 도식
들은 신체의 상태나 운동과 관련된 것들입니다.
몸에서 나는 열, 보고 듣는 감각, 손으로 물건을
쥐는 등 생애 초기부터 나타나는 운동 등. 그리고
이런 도식들을 원관념으로 모르는 것을 은유적으
로 해석하면서 개념들의 연결망이 조금씩 확대됩니다. 당연히 초기부터 있던 도식이 활용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을 것입니다. 때로는 몇 가지
를 뒤섞기도 하고, 한 가지 정보를 해석하기 위해
여러 가지 은유가 공존하기도 할 겁니다. 그러나
결국 온갖 추상적인 개념들에 대한 이해를 갖추
고 있을 때조차, 그 네트워크의 중심에는 신체와
관련된 몇몇 도식들이 자리하고 있을 겁니다.
이와 같은 발생 과정으로부터 추론해보건대, 개
념들의 연결망은 “척도 없는 네트워크”형태일
가능성이 무척 높습니다. 소위 바라바시-앨버트
척도 없는 네트워크라고들 하는데, 이와 같은 형
태의 네트워크에서는 몇몇 노드가 압도적으로 많
은 링크를 가지는 “허브”가 되며, 새로운 연결들
마저도 “허브”와 연결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와 같이 많은 링크를 가진 노드들이 새로운 노드
에 더 큰 접근성을 가지고 있는 경우, 마태효과,
즉 소위 링크의 부익부 빈익빈(=선호적 연결)이
일어납니다.
체화된 인지 이론이 함축하는 개념들의 연결망이
형성되는 과정을 상기시켜보면, 초기에 형성된
도식을 바탕으로 지속적으로 연결망이 확장되는
방식입니다. 즉 몇 가지 익숙한 신체 도식들을 바
탕으로 추상적 개념들을 정립하고, 신체 도식의
은유를 내포한 추상적 은유들이 재결합하며 뻗어
나가게 되므로, 신체 도식들은 전체 네트워크에
서 압도적으로 많은 링크들을 갖게 됩니다. 즉, 척
도 없는 네트워크라고 추론할 수 있습니다.
척도 없는 네트워크는 노드별 링크 수에서 멱함수
에 따른 분포를 가지는데, 허브에 정보가 전달되
면 급속한 속도로 퍼지면서 네트워크 전체에 영향
을 미치게 되기 때문에, 자기조직화나 창발 현상
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한편 자기조직화 한 네트워크에서는 “자기조직
임계 현상”을 볼 수 있습니다. 자기조직 임계현상
(Self-organized Criticality)란 네트워크=계가
최대한 기존의 질서를 유지하며 외부의 압력/스
트레스를 견디다가 임계상태에 이르면 일순간에
변화하는 현상입니다. 페르 박은 『자연은 어떻
게 움직이는가』에서 모래알을 한 알씩 계속 떨
어뜨리는 실험을 통해, 모래더미가 무너지는 일종의 소형 산사태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사실
산사태를 일으키는 모래알 자체는 특별할 것이 없
습니다. 다만 모래더미는 최대한 원래 상태를 유
지하면서 조금씩 임계상태를 향해 나아가며, 산
사태는 모래 한 알이 아니라 모래더미가 임계상태
에 있는지 여부에 따라 발생합니다. 즉 임계상태
에서는 독립변수의 변화량이 작더라도 종속변수
의 변화량은 현격히 클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작
은 원인들의 누적에 의한 급격한 변화는, 결정적
원인이 된 사건의 크기(모래 한 알)에 비해 결과
(산사태)가 매우 큰 비선형성이 나타나며 이런 의
미에서 “비대칭적 종합”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몇 체화된 인지 이론에서 새로운
사유의 이미지가 창발하는 것을 설명할 수 있는
가설을 제시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체화된 인
지 이론은 개념들의 연결망이 존재함을 함축합니
다. 그리고 그 연결망은 척도 없는 네트워크 형태
일 것임을 추론할 수 있습니다. 척도 없는 네트워
크는 자기조직화와 관련이 깊은데, 자기조직화
한 계는 외부의 압력에 저항하며 스스로의 자율
적 질서를 유지하지만, 변화가 누적될수록 임계점에 가까워지는 자기조직 임계현상을 보입니
다. 그리고 연결망=계가 임계상태에 이르렀을
때, 새로운 충격이 가해지면 기존의 질서가 순식
간에 흐트러지며 혼란한 상황(즉 사유의 이미지
없는 사유)을 겪게 되고, 다시 새로운 연결망이 형
성되며 다른 노드들을 끌어들이면서(끌개) 안정
화되면 “새로운 사유의 이미지"에 이르게 됩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