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교리상의 갈등과 동방교회의 분할(565~717)
동방교회의 수도사들은 칼세돈 회의에 의해 성립된 정통 신앙은 이단적인 것이며 이것은 칼세돈 이전의 해석을 통해 올바르게 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티베리우스 2세는 단성론자들을 탄압하기 시작하였다. 이 탄압은 그가 죽자 종결되었다. 네스토리우스주의는 하나의 조직으로 존재하고 있었으므로 동방교회의 문제가 되었다. 이들은 示訝=첸틸【 동․서방 교회로부터 독립을 선언하였다. 단성론보다 발전된 단일의지론은 동방제국이 페르시아와 이슬람을 막아내는 신학적인 시도였다. 제 6차 세계 종교회의에서 이 단일의지론은 정죄되었다. 이 논쟁은 종식된 것이 아니었다. 이 투쟁은 제국과 문명에 커다란 영향을 주고, 또 페르시아의 침략을 막자마자 이슬람의 침략을 받게 되었다. 이슬람은 기독교에 중대한 도전이며, 세계 역사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마호메드는 622년 메카를 떠나 메디나로 갔다. 그의 도피를 뜻하는 헤지라는 그의 생애의 전환점이었다. 메카로 돌아온 그는 아라비아를 통일하였다. 회교도들에 의해 교회는 수많은 피해를 입었다. 제국의 영토느는 축소되었고 교회는ㄴ 이미 쇠약해 졌다. 이 시대에 나타난 사회의 외형적 모습은 매우 종교적 열정이 강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주민들의 도덕은 지나체게 뛰어나지도 않았다. 동방교회는 서방교회의 의식보다 더욱 세련되어 지고 보다 아름다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