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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되는 방법
전두환이 대통령이던 초등학교 시절 가끔 선생님은 "꿈을 적어 내라"고 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집에 냉장고가 있는지 부모 직업은 뭔지 관심이 많던 시절이라 꿈 정도는 아무 거리낌없이 이야기하곤 했다. 대답하는 꿈은 뻔한 것이었다. 60여명의 반 아이들 가운데 등수로 10등 내외인 아이들이 대답해야 하는 꿈은 "대통령, 장군, 과학자, 교수, 사장" 같은 것이었다. 가끔 드물게 "장정구"같은 대답이 나오기도 했지만 곧장 선생님의 몽둥이가 머리로 날아들며 "공부해서 남 패는 짓이나 할래?"라 핀잔 들어야 했다. 아이들이 드물지 않게 꿈이랍시고 대답하던 직업 중 하나가 "대통령"이었다. 당시 우리 생각에 대통령은 왕과 비슷한 그런 것이었다. 될 수 있다면 그게 제일 좋겠지. 장군이고 과학자고 교수고 사장이고 다 아랫사람으로 부려 먹을 수 있으니까. 근데 대통령이 되려면 뭘 어떻게 해야할까?
선생님은 꿈을 다 물어본 후 대통령이라고 대답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교실을 향해 물었다,
"자, 그럼 대통령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하지?"
모두가 해야 할 대답은 정해져 있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해요!" 그런데 누군가 한 박자 빠르게 대답했다,
"육사에 가야해요."
웅성웅성. 몇몇 아이들은 '세상에 그런 방법이?'라는 표정으로 깨달음을 얻은 듯 고개를 끄덕였고 나머지 아이들은 타이밍을 놓치는 바람에 또 선생님에게 야단 맞을까 겁내고 있었다. 선생님은 침착하게 그 대답을 한 아이를 보며 말했다,
"맞다. 육사 가려면 공부 열심히 해야겠지?"
"네!"
그렇게 수업은 마무리되었다. 나는 아직도 그 시절 대통령되는 방법을 제시한 친구의 명석함에 감탄하곤 한다. 박정희도 전두환도 노태우도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가 장교가 되었고 하나회 같은 사조직을 만들어 쿠데타를 통해 대통령이 되었으니 그 아이가 본질을 뚫어 본 것 아닌가.
세월이 조금 흘러 1988년 한국에서 올림픽이 열렸고 그 해 후반 제 5공화국 비리 청문회가 열렸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큰 벼슬을 했던 사람들이 줄줄이 청문회라는 곳에 끌려 나왔고 하나 같이 "모륻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를 연발했다. 모르면 왜 나와서 욕 먹고 있는건지 애처롭기까지 했다. 또 한 해가 흘러 1989년 12월 전두환 각하는 5.18 광주항쟁과 5공 비리 관련 청문회 출석 요구를 받아들여 국회에 출석했다. 각하는 청문회에서 대답하는 대신 준비해 온 연설문을 낭독했는데 이를 지켜보던 야당 의원들이 고함을 치고 근처에 달려나와 삿대질을 했던 게 기억난다.
이렇게 각하의 수모가 끝나는 듯 했지만 1995년 각하는 후임인 노태우 대통령과 함께 감옥에 끌려 가는 신세가 된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12.12 군사반란과 5.18 민주화운동 때 새로운 사건들을 널리 공개하고 과거사 청산의 작업을 하라고 지시한다. 이 지시에 따라 5공화국과 6공화국의 우두머리인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들이 전격 구속된다. 1심에서 전두환은 법정 최고형인 사형, 노태우는 유기징역 최고형량인 징역 22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나중에 감형되고 사면되기는 했지만 전직 대통령에게 사형을 선고한 것은 헌정에 길이 남을 역사적 사건이었다. 이 일이 있은 후 아이들의 미래 희망 직업에서 대통령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는 게 거의 정설이다.
배우는 자와 거부하는 자
대통령이 되려면 육사를 가야 한다는 상식은 꽤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그 상식이 깨진 것은 1987년 민주화 투쟁을 통해 국민의 직접 투표로 대통령을 뽑는 식으로 바뀐 뒤였다. 사실 그 전에는 대통령을 누가 뽑는지 별 관심이 없었다. 10대가 다 그렇듯 세상 일을 몰랐다. 어쨌든 1987년의 그 거대한 투쟁으로 인해 투표권이 있는 모든 국민이 투표하여 대통령을 뽑는 것으로 바뀌었다.
나중에 이런 사실을 알고 내가 그동안 알고 있었던 "대통령이 되려면 육사에 가라"는 상식을 재검토했다. 육사에 가서 군대를 동원하여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 장악하고 대통령이 되는 건 헌법 1조 1항에서 규정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을 어기는 반역 행위를 의미한다. 국민이 주인인데 군인이 힘으로 주권을 빼앗았으면 그것이야말로 반동 행위 아니겠나.
박정희와 전두환과 노태우는 국가를 위해 혁명을 했다고 주장했고 우리도 그렇게 알았다. 아니 그렇다고 배웠다. 국정교과서에 그렇게 쓰여 있었고 선생님도 어른들도 한결같이 그렇게 말했으니까. 세월이 흘러 한 대통령은 총 맞아 죽고 또 다른 대통령도 자리에서 물러나 권력이 약해지니 비로소 사실이 드러났다. 뒤늦게 내가 알고 있던 상식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고 부끄러움을 느끼며 바른 생각으로 살려고 노력했지만 그동안 살아 온 세월을 되돌리긴 불가능했다. 그래도 사실을 알고 난 이후 다시 잘못된 상식으로 살던 시절로 돌아가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런데 상식이 잘못이라는 게 드러났음에도 고치지 않으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얼마나 그 사람들이 많았는지 알 수 없다. 다만 1988년, 1989년 5공 비리 청문회가 계속되고 있을 때 온 나라가 "저런 처 죽일 놈들!", "저 대머리 놈!", "살인마!"라고 욕하고 분노하여 큰 소리낼 때, 노무현 의원이 모르쇠로 일관하는 청문회 증인들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며 대중에게 알려질 그 시절에도 작은 수군거림이 있었다.
'거 너무하네, 그래도 한 때 대통령을 했던 분인데'
'저 사람들 아니었으면 우리가 지금 이렇게 먹고 살 수 있나?'
'하여튼 빨갱이 새끼들 뭐 조용히 넘어가는 법이 없어'
대놓고 말하진 못했지만 이렇게 소곤거리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렸다. "당신 지금 뭐라 했소?"라고 말 섞을까 두려워 쉬쉬거리며 조용히 말했지만 분명히 그런 소리가 있었다. 쿠데타로 국가 권력을 찬탈하고 헌법을 고쳐 써 국가의 주인을 국민이 아니라 대통령 1인으로 왜곡하고 기업과 결탁하여 편의를 제공하고 금품을 수수하는 등 국가를 사익을 위해 도구화한 범죄 사실이 드러났고 그들을 공개적으로 처단하고 있음에도 구석구석에서 비겁한 수근거림이 들렸다. 그 때는 몰랐다. 그 수근거림이 미래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게 될 것인지.
사회적 변화의 시기를 경험한 후 그것을 통해 기존 상식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배우는 자가 있는 반면 기존 상식을 고수하는 자도 있다. 혹자는 잘 변하지 않는 자들을 가리켜 '보수'라고 하는데 보수주의자들이 들으면 매우 불쾌할 것이다. 잘못된 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저 기존에 알던 것만 진실이라고 믿는 것은 아집 혹은 독선이라고 한다. 지금 태극기를 들고 범죄자 박근혜를 옹호하며 이 모든 게 박근혜 대통령을 음해하는 종북좌파의 술책이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보수가 아닌 이유다. 어쩌면 그들은 너무 철저히 세뇌되었고 더 이상 자신의 상식을 바꿀 의지도 능력도 상실한 것인지 모른다.
우리는 1987년 6월 항쟁을 통해 헌법을 고쳐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했다. 대통령 직선제를 통해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라는 여섯 명의 대통령을 30년 동안 경험했다. 우리는 점점 더 이 사회가 나아지고 있다고 믿었다. 정치적 가치를 중시하는 정권에서 경제적 가치를 중시하는 정권으로 넘어갔고 그 와중에 전임 대통령이 자.살을 했고 여자끼고 양주 마시다 총 맞아 죽은 독재자 대통령을 아버지로 둔 덕분에 대한민국 최초 여성 대통령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꽤 혼란스럽기는 했으나 헌법 질서 속에서 우리 사회는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고 믿었다.
아니었다.
대통령은 국가를 사적으로 소유하려 했고, 대통령의 수하들은 국민을 제멋대로 분할한 후 관리하려 했으며, 고위 관료들은 국가와 국민의 이익이 아니라 대통령과 청와대의 의중에 따라 움직였다. 더 기막힌 사실은 그 모든 행동을 뒤에서 조정하는 최순실이라는 여자가 있었다는 점이다. 더욱 더 울분을 참을 수 없는 것은 이 모든 것을 여당 정치인들이 직간접적으로 알고 있었으며 그들 중 일부는 지금도 대통령의 헌정질서 유린을 옹호하며 탄핵을 결사 반대하고 있다.
비로소 우리는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깨닫는다. 같은 배를 타고 험한 바다를 건너왔어도 모두가 똑같은 경험을 하는 건 아니라는 것. 또한 같은 경험을 해도 똑같이 배우고 바뀌는 것은 아니라는 것. 이 두 가지를 사실로 인정해야 비로소 거리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탄핵 기각"을 외치는 저들의 존재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들 중 "일당 받고 동원된 자들"도 있고 관변 단체에서 끌고 나온 자들도 있고 박근혜가 죽으면 나도 죽는다며 앞장 서서 구호 외치는 친박 정치인들도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광신적이며 배타적 종교 집단이 아닌 바에야 다양한 정치, 사회, 종교적 자유를 보장하는 민주공화국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에 찬성하는 사람이 있으면 반대하는 사람도 있는 게 당연하지 않나. 그들의 수가 적고 많음에 의아함을 표할 수 있지만 4100만 명을 모집단으로 수십차례 설문 조사한 결과에서 76~80%가 대통령의 탄핵에 찬성하고 20% 가량이 반대하고 있으니 태극기를 흔들며 모인 십수만명의 인원이 "모두 알바다"라고 애써 부인할 필요는 없다. 전국에서 총동원한 인원인데 그 정도는 모여야 정상이다.
우리가 놀라는 것은 따로 있다. 그렇게 오랜 세월 군부 독재와 정치 탄압과 정경 유착과 노조 탄압, 간첩단 사건, 납치, 암살, 의문사, 대량학살 등등 경험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압제와 탄압을 경험했음에도 여전히 저렇게 많을 사람들이 초헌법적이며 반민주적인 작태를 용인하고 있다는 점이다.
박근혜 탄핵을 통해 배운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표현을 참 좋아한다. 이건 마치 아무리 나쁜 상황이 계속 발생해도 나는 포기하지 않는다는 말을 하기 위한 관용구같다. 구약성서의 하느님이 단호하고 무섭고 벌 주는 하느님이라는 느낌인데 신약성서의 예수님은 원죄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세상에 태어나 진리의 말씀 잘 못알아듣는 대중에게 친히 이적도 행하시지만 결국 동족에게 배신 당하여 십자가에 매달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너희를 사랑한다"며 회개하면 다 천국에 이를 수 있다 약속하신다. 다른 종교에서 보면 예수님은 개종의 아이콘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대개의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예수의 인류에 대한 사랑이야말로 조건없는 절대적인 것이라는데 이의가 없다.
탄핵정국을 통해 우리는 많이 실망하고 분노하고 어처구니없는 감정을 경험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한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이런 배움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30년 쯤 지나서 또 대한민국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태극기 들고 반사회적 데모를 하는 멍청한 짓을 하지 않을 수 있다. 며칠 동안 생각한 끝에 박근혜 탄핵 정국을 통해 배운 것을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었다.
1. 교과서적 민주 정치 시스템의 실제 사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삼권분립을 통해 권력 남용을 막고 권리의 보장을 확보한다.
삼권분립에 대한 그림을 볼 때마다 '국민은 가운데 있지만 아무 것도 못하는구나'라고 생각하곤 했다. 그런데 이번 탄핵 정국은 삼권분립이 실제로 어떻게 동작하며 주권자 국민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줬다. 언론의 고발을 통해 외부로 드러난 대통령과 정부의 문제는 입법부를 통해 견제되었어야 한다. 그러나 대통령과 행정부는 문제를 인정하기는 커녕 면피하는데 급급하였고 정치적 협의나 대화없이 일방적 대안 제시를 하며 정국을 주도하려고 했다.
이를 지켜보던 국민은 입법부인 의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판단하며 거리에서 직접 요구를 시작했다. 광장 정치가 시작된 것이다. 광장 정치는 매우 직접적이며 효과적인 의사전달 방법이지만 굉장한 노력과 집중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수만 명에서 시작된 촛불집회는 한 차례도 빠지지 않고 매주 진행되었고 점점 더 규모가 커졌다. 또한 규모에 관계없이 비폭력 집회가 이어졌다. 전 세계에서 유래를 찾을 수 없는 광장 정치 행태였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정치 시스템에서 '광장 정치'는 존재하지 않았다. 데모나 폭력 시위라고 표현되었고 국가 시스템을 교란하는 위법 행위라고 배웠다. 또한 젊은 시절 거리에서 배운 광장 정치는 대화나 타협이 아니었다. 거리에 나와 시위를 한다는 것은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다는 것이었으며 당장 경찰에 잡혀 갈 수 있다는 의미였다. 잡히지 않기 위해 보도블록을 깨서 짱돌을 만들어야 했고 각목을 들고 자신을 방어해야 했다. 그게 현장에서 배운 광장 정치의 모습이었다.
이제 우리는 법의 테두리 속에서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광장 정치를 하는 사례를 만들어냈다. 머지 않아 교과서를 통해 정치 시스템을 배우는 아이들도 광장 정치를 배우게 될 것이다. 광장 정치라는 것이 갖는 힘에 대해 알게 될 것이다. 광장 정치가 효과적이긴 하지만 반대파의 극렬한 반응을 이끌어 낸다는 것도 토론을 통해 알게 될 것이다. 또한 반대파들이 예전처럼 프로판 가스통에 불을 붙이는 등 폭력적 행동 함부로 못하는 것도 촛불 집회가 이미 거대한 광장 정치의 평화적 사례를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알게 될 것이다. 물론 반대파들은 흥분한 승냥이처럼 같은 편이 많이 모이자 곧장 본성을 드러냈다.
교과서에서 설명하는 헌법과 정치구조, 각 기관들이 작동하는 방식을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이번 박근혜 탄핵정국은 삼권분립과 국민 주권이 작동하는 훌륭한 실제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국민이 직접 정치에 개입하는 대표적 형태인 광장 정치 혹은 데모에 대해 언급할 때 반드시 따라 오던 "불온 세력 침투", "전문 데모꾼", "폭력 시위"와 같은 부정적 현상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지난 세월 수많은 폭정에 항거하며 어떻게 변해왔는지 유추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를 통해 데모하는 자는 종북좌파이며 북한처럼 폭력으로 우리 국가사회를 붕괴시키려고 한다는 소위 좌파 폭력 프레임이 자연스럽게 깨지게 될 것이다.
2. 거대한 기득권층의 부정부패
박근혜 대통령 탄핵정국이 시작된 계기는 최순실이 국정에 개입하여 이익을 취한 일련의 사건들이었다. 그 사건 중 첫번째는 최순실의 딸인 정유라의 이화여대 부정입학이었다. 부정입학 사실이 알려졌을 때 많은 사람들은 놀라움과 함께 수치스러움을 느껴야 했다. 이승만 자유당 시절도 아닌데, 지방에 위치한 이름도 없는 조그만 사학도 아닌데, 어떤 그럴싸한 이유도 없이 이뤄진 대학 부정입학이라니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결론만 따지면 이 사건은 최순실이 대통령을 뒷배로 자신의 딸이 이화여대 입학에 유리한 조건을 청탁했고 이화여대 관계자들이 자발적으로 청탁에 응한 것이다. 대학 입학 후에도 레포트를 대신 써 주거나 출석을 임의 처리하는 등 편의를 봐 주었다. 흥미로운 점은 최순실과 정유라에게 이런 불법 편의를 제공한 교수들이 받은 대가다.
아직까지 그들이 공식적으로 받은 대가는 드러난 게 별로 없다. 어떤 교수는 수억원에 달하는 수행 과제 예산을 받았다는 수사 결과도 있었으나 어떤 교수가 특정하여 금품을 제공 받았다는 정황은 없다. 기득권층의 부정부패가 드러나도 처벌하기 어려운 까닭이 여기에 있다. 현행 법률로 처벌하려면 이권에 대한 청탁을 주고 받은 구체적 증거가 있어야 하는데 이들은 그냥 "물어봤고", 선의로 "해줬다"고 대답하고 있다. 법률로 처벌하더라도 큰 죄를 묻기 힘들고 실제로 처벌하지 못할 수도 있다.
삼성그룹 이재용 부회장의 혐의도 마찬가지다. 국내 최고 재벌이자 정경유착의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삼성그룹 오너의 구속 수감은 역사적 순간이지만 실제 유무죄를 따지는 법정에서 이재용 부회장의 불법 행위를 증명하는 게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재용 부회장 측은 최순실, 청와대의 강제성 요구에 따랐을 뿐이라 주장하고 있고 또한 이재용의 그룹 승계를 위한 삼성물산 제일모직 합병은 그 기간의 차이로 인해 대가성을 증명하기 어렵다고 주장하고 있다. 청와대도 최순실도 이재용도 삼성도 법률이 가진 헛점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보다 강력한 정경유착을 방지하는 법률이 필요하지만 대기업으로부터 물심양면 지원을 받아 성장한 정치인들의 반발로 무산되곤 했다.
삼성 이재용의 구속이나 이화여대 입시부정 사건을 통해 우리 법률이 기득권층에게 매우 유리하고 헛점이 많다는 게 다시 확인되고 있다. 징벌적 배상 규정도 없어서 설령 불법이 적발되어도 형량만 조정하면 되는 한계도 있다. 현행 법률이 과거에 비해 많이 개선되었다지만 권력과 돈을 가진 자들에게 매우 유리하게 구성되어 있어서 이것이 기득권층의 노골적인 이익 교환을 막지 못한다는 게 밝혀졌다. 향후 국회는 청탁과 뇌물에 관한 법률을 개선하여 징벌적 조항의 추가와 사회적 통념에 준하는 방식으로 청탁과 뇌물을 규정해야 할 것이다. 최근 김영란법이 시작될 때 많은 우려가 있었지만 정작 대부분 서민들은 별다른 변화를 느끼지 못했다. 고위 관료와 정치인, 교수, 언론인, 재벌 총수 및 그 일가들을 겨냥한 청탁과 뇌물에 관한 법률 제정은 분명 큰 반발에 부딪치겠지만 정작 국민 대다수의 생활에 아무런 불편을 주지 못할 것이다.
3. 대한민국을 멸망에 이르게 하는 3대 악
국가와 사회를 망하게 만드는 요소는 무엇일까? 가장 부강한 국가는 아니라도 사람이 살만한 국가가 되려면 일단 망하지 말아야할텐데 그러려면 무엇이 있어야 하고 무엇이 없어야 할까? 있어야 할 것은 금방 떠오른다. 풍부한 자원, 유능한 인재, 강력한 군사력, 다양한 외교 채널, 도덕적 지도자, 민주적 법률제도 등등. 그런데 이런 것만 있으면 살만한 국가가 되나? 이런 게 없어도 살만한 국가가 될 수 없나? 그래서 생각을 달리 했다. 국가와 사회를 망하게 만드는 어떤 것이 없다면 그래서 오래도록 국가와 사회가 유지될 수 있으면 결국 어떤 동일한 결론을 향해 나아가지 않을까.
대통령 탄핵정국을 통해 드러난 대한민국을 망하게 만드는 3대 악은 그런 관점에서 바라본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지금 당장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일 수 있다.
1) 군부 통치
모든 국가와 사회는 발전의 씨앗과 멸망의 운명을 동시에 안고 태어난다. 스스로 개선하고 발전하며 최대한 오래 생존하기 위해 최선의 방법을 찾으려 노력한다. 덜 복잡하고 낮은 수준의 국가 시스템은 뛰어난 소수의 지도를 의미하는 빅맨(big man)의 지도 시스템이 생존에 유리하다. 그러나 국가와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보다 복잡한 정치 사회 구조를 갖게 되고 제어할 수 없는 다양한 변수가 생김에 따라 독점된 권력을 분산시키며 다수의 의견과 토론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민주주의가 생존에 유리해진다. 역사적으로 중세를 거쳐 현대 국가가 대부분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이유다.
도덕적 의미에서 민주주의가 더 낫다는 게 아니라 역사적 분석과 현대 국가 사회 시스템의 문제 해결 능력을 볼 때 국가 사회의 생존 전략으로 훨씬 뛰어난 시스템이라는 의미다. 대한민국은 해방 후 민주공화정을 지향했으나 박정희 군부 쿠데타에 의해 좌절되며 오랜 기간 1인 독재 시스템과 유사 민주주의에 지배되었다. 형식적 민주주의가 있었으나 전형적인 빅맨 지도 시스템이었다. 이런 경험을 오랫동안 한 국민들은 빅맨에 대한 환상과 전설을 공유하게 된다. 특히 박정희는 1972년 영구집권을 위해 헌법을 개정한 후 대내적 반발을 억누르며 신적 존재로 자신을 홍보하는데 몰입했다. 최근 밝혀진 최태민과 박정희가 구국봉사단 등을 통해 관계를 맺은 것도 이 시점이다. 사이비 종교에 능통한 최태민은 박정희와 박근혜를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교주로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한 듯 하다.
박정희 사망 후 또 한번 신군부에 의해 권력을 찬탈 당한 대한민국 국민은 경제 성장 기간 동안 그에 걸맞는 정치 시스템을 갖지 못하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대표되는 지속적이며 치열한 정치 투쟁으로 군사 통치를 종결시킨다. 이 과정을 통해 한국이라는 국가 시스템을 멸망에 이르게 할 첫번째 문제는 해결된다. 바로 군부 통치다. 만약 전두환의 1987년 4월 호헌조치에 국민이 속아 새로운 군부 출신 정치인이 대통령이 되었다면 현재 대한민국은 러시아와 같이 푸틴이 장기 집권하는 모습이 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다행히 전국적 항쟁을 통해 국민이 대통령을 직접 뽑게 헌법을 개정하여 비로소 현재에 이를 수 있었다. 물론 대통령 직선제가 민주주의의 완결은 아니었다. 1987년 6월 항쟁에도 불구하고 신군부 하나회 출신인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었고, 박정희의 딸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었으니까.
탄핵 정국 초기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계엄 가능성"을 언급하여 큰 파장을 일으킨 바 있다. 당시 추미애 대표는 "유력한 정보통으로부터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에 대비해 계엄령을 내릴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추미애 대표는 계엄령 가능성의 정보 출처는 밝히지 않았고 이에 청와대와 여당은 강력하게 비난했다. 근거없는 비난을 통해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분명 추미애 대표의 계엄령 발언은 농도 짙은 정치적 선동이었지만 국민 대중 속에 숨어 있던 공포감을 불러 일으키는 효과를 냈다. 박근혜의 아버지가 누구이며 그 집안은 권력을 지키기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표면화한 것이다. 박정희가 영구집권을 위해 헌법을 제멋대로 뜯어고치고 정치적 반대파를 납치, 암살했으며 계엄령과 위수령을 선포하여 군사력으로 국민을 통제했던 과거가 비로소 현실로 느껴진 것이다.
결과적으로 계엄령은 비현실적 두려움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는데 이를 검증하는 과정에서 대한민국 군부는 더 이상 정치에 직접 개입할 조건과 환경이 되지 않음이 밝혀졌다. 군부 통치가 정치 격동기의 변수가 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국민들이 원치 않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망국에 이르는 하나의 근본 악이 사라진 것을 확인한 것은 매우 큰 의미가 있다.
2) 민주주의 의사결정 시스템
민주주의 의사결정 시스템의 특징을 "투명성", "공정성", "합리성"으로 정의할 때 탄핵정국을 통해 밝혀진 박근혜 정부의 의사결정 시스템은 윗물이 아랫물을 썩게 만드는 모습을 보였다. 김영삼 대통령부터 노무현 대통령에 이르도록 추진한 국가 기관 및 공공기관의 민주주의 의사결정 시스템은 마치 1979년 박정희가 사망하기 전 시절로 돌아간 듯 철저히 상명하복식으로 바뀌어 있음이 밝혀졌다. 이런 일이 언제부터 벌어졌는지 앞으로 밝혀야겠지만 지난 15년간 3번의 대통령이 바뀌며 노력한 것이 허사가 된 것처럼 어디에서도 민주주의에 근거한 의사결정 시스템을 발견할 수 없었다.
다만 다행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그러한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의사결정을 강요한 자들이 대부분 대통령과 비서실, 각 장차관 등 고위직에 한정되었다는 점이다. 블랙리스트 작성으로 국가적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문체부의 경우 장관인 조윤선이 구속 수감되는 등 고위 관료들의 부정부패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그러나 현장에서 근무하는 공무원들은 승마협회를 조사하다 좌천되기도 하고 합리적이지 않은 미술전 지시를 거부했다 경질 당하기도 했다.
민주주의 의사결정 시스템이 동작하지 않은 것은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든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여당도 마찬가지였다. 대통령 당선 직후 여당은 박근혜와 공식, 비공식 대화가 매우 어렵다고 토로했고 결과적으로 박근혜가 최순실과 국가를 농락하는 것을 파악하지 못하여 탄핵에 이르도록 한 일차적 책임이 있다 할 것이다. 국정농단과 부정부패 사실이 계속 밝혀지자 여당은 뒤늦게 대통령 탄핵에 동참하는 부류와 그렇지 않은 부류로 갈라졌지만 그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김무성 의원은 "최순실 존재를 몰랐던 사람이 어디 있나"며 "박근혜 후보 시절 주변에 최순실이 있다는 건 다 알았다. 다만 이 정도인 줄 몰랐다"고 말했다. 이는 정치적 지도자를 선출했으나 민주주의 의사결정 시스템과 완벽히 배치되는 대화를 했음을 간접적으로 시인한 셈이다. 박근혜와 최순실이 국가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지난 4년 간 여당이 그 사실을 몰랐다는 건 그들의 의사 소통 방식이 전혀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지키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만약 그들이 투명성, 공정성, 합리성을 기반으로 박근혜 및 청와대 등과 대화했다면 이미 큰 문제가 생기고 있음을 발견했을 것이다.
민주주의 의사결정 시스템이 제대로 동작하지 않은 것은 정부 여당 뿐 아니라 야당도 비슷한 상황이다. 오래된 빅맨 중심의 정당 운영 방식은 지금도 적용되고 각 정당을 대표하는 대선주자가 정당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모습을 자주 보이고 있다. 이는 박근혜가 대통령직에서 해고된 후 새롭게 구성되는 정부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3) 고위직 관료의 부도덕성
대통령 탄핵정국에서 많은 비리가 드러나고 있는데 30년 전 5공화국 비리 청문회와 비교하면 정경유착 및 부정축재는 보다 고도화되고 은밀하며 합법적인 영역에서 더욱 더 크고 과감하게 진행되는 경향이 있다. 과거 군부독재 정권이 다소 투박하게 정치자금을 수금하고 재단에 직접 투자하도록 기업들을 닥달했다면 지금은 보다 간접적 방법을 지향한다. 때문에 정경유착에서 기업의 비리 규모가 적어지고 적극적이지 않은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전경련 상위 대기업에 대한 본격적인 검찰 조사가 이루어지면 그들이 정부와 권력에 투자한 금액이 속속 밝혀질 것이다.
반면 고위직 관료의 부도덕성은 측정 불가라 할 정도다. 특검이 구속 수사 중인 고위직 관료는 대통령 주변에서 정책을 입안, 검토했던 비서와 수석, 문체부 장관이었던 조윤선 정도다. 숫자만 보면 이것으로 어떻게 고위직 관료의 부도덕성을 거론할 수 있냐 싶다. 일반 민형사 범죄와 달리 국가 시스템을 이용한 범죄는 소수의 범죄자와 다수의 방관자가 존재하는 특성이 있다. 조윤선은 청문회와 특검에서 블랙 리스트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나중에 알게 되었으나 직접 작성한 바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특검은 조윤선의 이런 주장이 모두 거짓말이라며 공소장에서 밝히고 있다. 또한 체포조사중인 김기춘도 비서실장 시절 블랙리스트와 관련한 어떠한 지시도 한 적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검은 김기춘의 지시에 의해 조윤선이 블랙리스트를 작성했다고 공소장에 적시했다. 그리고 이들이 직권남용을 한 배경에 박근혜 대통령이 있음을 적시했다.
대통령이 몇몇 고위직 관료에게 직접 지시를 하고 난 뒤 일이 어떻게 진행되었을까? 상상을 할 필요없이 상식적 수준에서 생각해보자. 부서간 업무협조가 필요한 경우 장관간 협조 요청을 했을 것이고 혹은 실무를 차장이나 국장 수준에서 해결했을 것이다. 몇 단계를 건너오는 동안 해당 업무의 본질이 무엇인지 희미해지고 현장에서 실무를 하는 공무원들이 그 의도를 파악하는 것은 대단히 힘들었을 것이다. 예산 결산을 분석해 블랙리스트가 존재한다고 추론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집행되는 불법 행위는 고위층 관료들만 그 의도를 이해할 수 있을 뿐 아래로 내려갈수록 희석된다. 고위층 관료의 강력한 도덕성이 요구되는 이유다.
헌정사상 유래가 없는 국정농단 사태에 대해 특검과 검찰, 언론이 밝힌 관련자를 제외한 나머지 장관들 특히 박근혜 정부에서 법무부 장관과 총리직을 수행하고 있는 황교안은 아무런 관련이 없을까? 한 나무에서 나온 가지에서 다른 꽃이 피면 그게 더욱 이상한 노릇 아닐까. 고위직 관료들이 법률적으로 책임이 없더라도 도덕적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향후 대한민국 행정부의 민주적 운영을 위해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물론 지금 장관들은 책임을 지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대통령의 탄핵안이 인용되면 그들도 남은 60일 간 현직을 유지한 후 퇴임해야 한다.
고위직 관료가 유능하고 외국어 잘하고 경제 해석 뛰어나고 미래 전략까지 잘 세우면 정말 좋다. 그러나 만약 고위직 관료를 위한 오직 하나의 조건을 선택해야 한다면 그것은 "도덕성"이 되어야 한다. 왜냐면 고위직 관료가 거짓말을 하고 숨기기 시작하면 그 누구도 이유를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최선의 선택을 할 것이라 믿어 의침치 않는 고위직 관료가 대통령 개인이나 대통령의 측근을 위한 결정을 한다면 누가 그것을 알 수 있을까.
대통령 탄핵 인용은 국가 정상화
몇 시간 후 헌법재판소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대한 심의결과를 발표한다. 그런데 참 공평하지 못하다. 대통령 탄핵 인용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헌재의 탄핵 인용은 단지 국가가 정상화되는 것일 뿐이다. 행복한 일도 아니고 기쁜 일도 아니다. 그동안 대통령이 개인적 목적으로 국가 시스템을 운용하고 최순실이라는 개인에게 국정을 맡기고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국민을 사분오열시키며 감시하는 비정상적 상황을 정상화시키는 것일 뿐이다.
일을 못하여 해고하는 것이 아니다. 말을 잘 안 들어 해고하는 것도 아니다. 종교가 맞지 않아 해고하는 것도 아니다. 다른 사람을 채용하고 싶어 해고하는 것도 아니다. 불법적 행위를 했기 때문에 해고하는 것이다. 헌법에서 정의한 대통령의 임무를 내팽개치고 국민의 안위를 돌보지 않아서 해고하는 것이다. 돈 받고 편의 봐주면 안되는데 했기 때문에 해고하는 것이다. 죄 지은 게 있어서 해고한다는데 대체 그게 무슨 기뻐할 일인가? 범죄자가 국가 원수라며, 행정부 수반이라며 국민을 지도하려는데 그게 정상인가?
길고 긴 글을 썼지만 결론은 이렇다. 대통령이 정상이었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 일어났다. 대통령이 상식적이었으면 없었을 일이 벌어졌다. 대통령이 민주주의를 지향했으면 당연히 막았어야 하는 일을 대통령 자신이 나서서 했다. 그런 대통령을 해고하기 위해 탄핵하는 것은 국가의 주인이자 주권의 원천인 국민이 해야 할 당연한 일이다.
거리에 나와 촛불을 들고 박근혜 탄핵을 외쳤던 우리가 그저 그것만 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후세에 물려줄만한 민주적 국가 운영에서 국민이, 시민이 해야 할 일을 했다. 아마 이건 기록으로 남겨도 결코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국가에 문제가 생기면 가만 있지 말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라고 말할 때 우리는 2016년 초겨울부터 2017년 봄까지 일어났던 일을 말할 것이다. 누구도 죽지 않았고 누구도 체포되거나 다치지 않았고 어떤 건물도 불타지 않았던 위대한 시민 혁명을 이야기할 것이다. 우리는 그저 법률의 한 구절이라 생각했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를 온 몸으로 보여줬다. 우리는 국가를 위해 일하는 공무원인 대통령이 국민 위에서 군림하려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훌륭한 역사적 예를 만들었다. 우리는 그런 대통령을 거리로 끌어내 타도하는 대신 법률에 기초하여 탄핵하였다. 대한민국 정경유착의 가장 큰 공범인 재벌 삼성그룹의 부회장을 감옥에 넣도록 했고 은연 중에 존재하는 학사 부정을 만방에 공개했다.
이것이 우리가 그동안 한 일이다. 위대한 민주시민으로서 대한민국에 밥값 좀 했다.
오늘 오전 11시 이후. 그래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저 조금 바뀌었을 뿐이다. 세상이 한꺼번에 바뀔 것 같은 시절도 있었지만 결국 조금씩 아주 느리게 바뀌었다. "민주화"라 불리는 그 긴 세월을 지났지만 우리는 스스로 탄핵 당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사람을 대통령이라고 뽑았고 결국 탄핵 심판장에 세우고 말았다. 그런 자를 대통령으로 뽑은 사람들을 비난해야 할까? 아니다. 그냥 실수를 했을 뿐이다. 세월이 조금 지나면 이런 실수를 관대하게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게 민주주의다. 민주주의의 마지막 조건은 실수 할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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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겁나기네요 한줄로 헌법대로 합시다 ㅎㅎ
퍼온거라., 패스하세요
공감하는 글입니다.
민주주의란 어떤것인지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란걸 잘 알았고 실천하겠습니다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리는 출발점...탄핵
군사쿠테타로 군부독재...사회 각 분야에 깊이 뿌리 내린 군사문화의 해악...회사 학교 방송 심지어 교회까지 신입들에게 군기잡는다는 말....지성인이어야 할 대학교에서도 선배가 후배 군기잡는다고 새벽에 집합시키고 얼차례, 체육대의 당연시하는 구타....
군부개발독재로 관행처럼 유지되어 온 정경유착 ...그로 인한 부패한 기득권층의 형성...이 기득권층에 유리하게 받쳐주는 법체계...소위 유전무죄 무전유죄
이젠 독재와 폭력, 정경유착으로 얼룩진 이 나라의 적폐청산을 위한 출발점에 우리가 서있습니다.
국민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고 부패한 정권에 충성하여 어용나팔수가 된 언론에 대한 국민적 감시와 견제....박사모가 탄생하는데 지대한 역할을 한 어용언론의 해체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