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 매창(梅窓) 이야기
매창(梅窓, 1573~1610)은 조선 중기 전북 부안의 기생이었다.
시를 잘 짓는다 하여 시기(詩妓)라고 불렸다.
매창이 그의 정인(情人)촌은(村隱) 유희경(劉希慶, 1545~1636)과
주고받은 연시(戀詩)는 오늘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1590년경 부안에 내려왔다가 매창을 처음 만난 유희경.
유희경은 그러나 2년 뒤 다시 한양으로 올라가면서 매창과 이별하게 되었다.
그 때 매창의 나이는 방년 21세. 유희경은 매창의 가슴에 깊은 정을 남겼다.
그 정은 매창의 시심으로 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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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우(梨花雨)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秋風落葉)에 저도 나를 생각는 가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매라
부안읍내 성황산 서림공원 입구에 있는 매창의 '이화우' 시비
흔히 ‘이화우’라는 제목으로 널리 알려진 이 시는 매창의 여러 시 가운데 유일한 한글시조다.
매창은 봄날 흩날리는 배꽃을 보고 이를 ‘이화우(梨花雨)’라고 표현했다.
하늘이 준 재주가 아니고서야 나올 수 없는 표현이 아닐까.
아마 비슷한 시기에 씌어진 듯한 한시 한 편이 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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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風一夜雨(동풍일야우) 하룻밤 봄바람에 비가 오더니
柳與梅爭春(유여매쟁춘) 버들과 매화가 봄을 다투네
對此最難堪(대차최난감) 이 좋은 시절에 차마 못할 건
樽前惜別人(준전석별인) 잔 잡고 정든 님과 이별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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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창이 이러할 진대 그립기는 유희경도 마찬가지였다.
몸은 한양에 머물고 있었지만 그의 마음은 늘 매창이 살고 있는부안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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娘家在浪州(낭가재낭주) 그대의 집은 부안에 있고
我家住京口(아가주경구) 나의 집은 서울에 있어
相思不相見(상사불상견) 그리움 사무쳐도 서로 못 보니
腸斷梧桐雨(장단오동우) 오동잎에 비 뿌릴 제 애가 탄다오
유희경의 '매창을 생각하며' 시비
매창이 ‘이화우(梨花雨)’라니 유희경은 ‘오동우(梧桐雨)’란다.
두 사람이 이별할 때 계절은 봄이었는데, 그 새 계절은 여름을 지나 가을로 바뀌었다.
두 사람은 두 계절 동안을 보지 못하고 지낸 셈이다.
그럭저럭 세월은 다시 수 년이 흘렀다.
유희경은 유희경대로, 매창은 매창대로 몸과 마음이 피폐해지게 되었다.
이런 경우 씻기 어려운 정한(情恨)을 안게 되는 쪽은 대개 여성이다.
특히 당시 매창은 ‘노류장화(路柳墻花)’랄 수 있는 기생 신분이었다.
마음에 이어 몸마저 상한 매창이 남긴 단장시 한 편을 소개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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相思都在不言裡(상사도재불언리) 말은 못했어도 너무나 그리워
一夜心懷鬢半絲(일야심회빈반사) 하룻밤 맘고생에 귀밑머리 희었어요
欲知是妾相思苦(욕지시첩상사고) 소첩의 맘고생 알고 싶으시다면
須試金環減舊圍(수시금환감구위) 헐거워진 이 금가락지 좀 보시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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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서울)과 부안. 서해안고속도로 개통으로 이젠 두어 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다.
이 거리를 놓고 마치 서로가 지구 반대편에라도 있는 듯하다.
핸폰과 인터넷이 발달한 요즘, 두 사람의 사랑얘기는 마치 수 천년 전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얘기로 들린다.
문명의 발달로 편리는 해졌지만, 깊은 情, 가슴에 품은 恨은 이제 그 어디서 만날 꺼나....
哀桂娘 애계낭 (매창의 죽음을 슬퍼하며 )/ 허균
妙句甚擒錦 (묘구심금금) 아름다운 글귀는 비단을 펴는 듯하고
淸歌解駐雲 (청가해주운) 맑은 노래는 머문 구름도 풀어 헤치네
兪桃來下界 (유도래하계) 복숭아를 훔쳐서 인간세계로 내려오더니
竊藥去人群 (절약거인군) 불사약을 훔쳐서 인간무리를 두고 떠났네
燈暗芙蓉帳 (등암부용장) 부용꽃 수놓은 휘장엔 등불이 어둡기만 하고
香殘翡翠裙 (향잔비취군) 비취색 치마엔 향내 아직 남아있는데
明年小挑發 (명년소도발) 이듬해 작은 복사꽃 필 때쯤이면
誰過薛濤墳 (수과설도분) 누가 설도의 무덤을 찾으리
凄絶班姬扇 (처절반희선) 처량타 반희가 부치던 부채
悲凉卓女琴 (비량탁녀금) 구슬퍼라 탁문군이 타던 거문고.
飄花空積恨 (표화공적한) 날리는 꽃 공연히 한만 쌓이고
衰蕙只傷心 (쇠혜지상심) 시든 향초 다만 마음 상하네.
蓬島雲無迹 (봉도운무적) 봉래도라 구름은 자취도 없고
溟滄月已沈 (명창월이침) 푸른 바다 달빛은 하마 잠겼네.
他年蘇小宅 (타년소소댁) 훗날 소소(蘇小)의 집을 찾으면
殘柳不成陰 (잔류부성음) 시든 버들 그늘도 못 드리우리.
오래 사귀었으나 몸을 나누지는 않았다. 그녀는 음란함을 즐기지 않았고,
나는 난잡함에 미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오래오래 우정을 지속할 수 있었다.
이제 그대가 나를 버리고 떠나니 나는 슬픈 눈물로 그대를 전송한다.
꽃다운 넋은 고이 잠들라.
[출처] 기생 매창(梅窓)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