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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최고의 마법사’로 불리는 호나우딩유.(사진 김재현) |
1970년 팀의 간판스타 펠레 역시 “1970년 팀의 공격진이 더 잘 짜여 있다. 2006년 팀보다 조직적이고 파괴력도 한 수 위”라고 말했다. 펠레는 2006년 팀이 승리하기 위한 한가지 해법을 제시했다. 그는 “2006년 팀이 우리를 이기려면 모든 선수들이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해야 할 것”이라고 한껏 거드름을 피운 뒤 “특히 호나우딩유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때만큼은 펠레의 발언이 핵심을 짚었다. ‘별 중의 별’을 거느린 2006년 브라질 대표팀은 독일월드컵 8강전에서 티에리 앙리에게 뼈아픈 일격을 당하며 프랑스에 0-1로 져 전세계 축구팬들의 비웃음을 샀다. 기대를 모았던 호나우딩유의 부진이 브라질의 조기 탈락의 원인 가운데 하나로 꼽혔다. 논쟁이 됐던 1970년 팀의 승리 예상을 독일월드컵 우승과 동일선상에 놓고 본다면 펠레의 발언은 적중한 셈이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수많은 스타가 모여 있는 ‘삼바 군단’ 브라질 대표팀에서도 유독 호나우딩유에 대한 높은 기대치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호나우두 데 아시스 모레이라(26,FC바르셀로나).
대표팀 선배 호나우두와 이름이 같아 작은 호나우두, 즉 호나우딩유로 불리는 사나이다. 그의 특별함은 국제축구연맹(FIFA) 창립 100주년이었던 2004년 ‘올해의 선수’로 선정된 데 이어 2005년에 연속 수상의 영예를 안았던 것으로 설명된다. 1988년 ‘올해의 선수상’이 제정된 이후 2년 연속 수상한 주인공은 호나우딩유를 비롯해 마르코 반 바스텐(1988, 1989년) 로타르 마테우스(1990, 1991년) 호나우두(1996, 1997년) 등이다.
호나우딩유는 지난해 <프랑스풋볼>지 선정 유럽 ‘올해의 선수상’(발롱도르)을 받은 데 이어 지난 8월에는 유럽축구연맹(UEFA) ‘올해의 클럽 선수’로 뽑혔다. 2006년 현재 지구촌 ‘최고의 축구 마법사’로 통하는 호나우딩유. 그의 힘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마법의 원천은 화목한 가족
11월 17일(이하 한국시간) 스페인 바르셀로나 시내 한복판에 있는 엑스포 전시회장. 세계적인 스포츠용품업체가 호나우딩유의 이름을 딴 축구용품 컬렉션 ‘10R’ 출시 행사를 열었다. 호나우딩유의 ‘시그네처 라인’을 발표한 이날 행사에는 SPORTS2.0을 비롯한 세계 20개국 200여 명의 기자들이 몰려들어 뜨거운 취재열기를 뿜어냈다.
본격적인 행사 시작에 앞서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호나우딩유의 친형이자 호나우딩유가 축구선수로 클 수 있게 동기를 부여한 호베르투 데 아시스 모레이라였다. 호나우딩유의 에이전트로 일하는 호베르투는 SPORTS2.0과의 인터뷰에서 짧은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내가 프로선수로 뛸 때였는데 동생이 축구를 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 당장 동생을 운동장에 데리고 나가 잠재성을 확인했다. 울퉁불퉁한 풋살 경기장에서 공을 자유롭게 다루는 드리블 실력을 보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호나우딩유의 탄생이었다”라고 말했다.
호나우딩유는 브라질 남부도시 포르투 알레그레 거리에서, 또 해변에서, 그리고 홈팀인 그레미우 경기장에서 풋살에서나 가능한 환상적인 발 기술을 선보여 일찍부터 화제의 대상이 됐다. 호나우딩유는 1997년 이집트에서 열린 17세 이하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서 브라질의 우승과 함께 득점왕을 차지하며 세계적 스타탄생을 예고했다. 소속팀 그레미우에서는 2000년 시즌까지 3년간 리그 36경기에서 13골을 터뜨렸다. 호나우딩유의 높은 상품 가치는 2001년 파리 생제르맹으로 옮길 때 이적료 관련 소송에 휘말리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호베르투는 “동생은 가족의 구성원으로도 한치의 부족함이 없다. 나를 사랑하고 형제들을 사랑하고 어머니를 사랑한다. 축구를 통해서 우리 가족뿐만이 아니라 전세계 축구팬들을 즐겁게 하고 있다”고 칭찬했다. ‘10R’ 출시 행사에 ‘깜짝 인물’로 초청된 호나우딩유의 어머니 미겔리나는 “어린 시절 호나우딩유는 축구와 음악을 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아이였다”며 지난 일을 회상했고 “아들이 경험하고 있는 축구를 전세계인들과 공유하는 자리”라며 행사에 의미를 부여했다.
마침내 호나우딩유가 무대에 올랐다. 거칠 것 없는 그라운드에서와는 달리 수줍음을 잔뜩 머금은 얼굴로 등장했다. 그는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3가지 가운데 하나로 망설임 없이 가족을 꼽았다. 호나우딩유는 “나의 힘은 가족 간의 화목에서 비롯된다”고 말한 뒤 “가족은 나의 모든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또 내가 가진 전부는 가족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11월 18일 누 캄프 보조 경기장에서 훈련 중인 호나우딩유.(사진 김재현) |
삼바의 리듬으로 축구를 한다
브라질은 11월 16일 스위스 바젤에서 열린 스위스와의 평가전에서 루이장과 카카의 연속골에 힘입어 2-1로 이겼다. 지난 8월 브라질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은 둥가 감독은 5경기 연속 무패(4승1무)와 함께 최근 4연승의 상승세를 탔다. 그러나 둥가 감독은 이날 경기가 유럽에서 열린 평가전이었음에도 호나우두(레알 마드리드), 아드리아누(인테르 밀란) 등을 대표팀 명단에서 뺐다. 호나우딩유 역시 후반 17분 교체 투입돼 29분의 출전시간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이튿날 스페인 언론의 반응이 눈길을 끌었다. 브라질의 승리 소식을 전하는 한편 등번호 20번을 단 일그러진 표정의 호나우딩유 사진을 올렸다. 2006년 독일월드컵 이후 세대교체의 의지를 분명히 한 둥가 체제의 브라질 대표팀에서 어떤 수퍼스타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상징적인 표현이었다.
그러나 11월 17일 만난 호나우딩유는 대표팀의 이러한 흐름에 개의치 않았다. 아니 여전히 ‘삼바’에 대한 애정을 한없이 표현했다. 호나우딩유는 “난 삼바의 나라에서 태어났고 삼바와 축구는 한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늘 삼바를 떠올리며 삼바의 리듬으로 축구를 한다”고 말했다. 스위스와의 경기가 친선전이었기 때문에 등번호 20번에도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고 했다. 호나우딩유는 “등번호 10번이 어릴 때부터 내 번호였다. 10번은 축구에서 플레이를 가장 잘하는 선수를 상징하며 내 얼굴과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호나우딩유는 부침이 있었던 생제르맹 시절에도 ‘삼바 군단’ 유니폼만 입으면 맹위를 떨쳤다. 2001년 컨페더레이션스컵(6득점)과 2000년 시드니올림픽 예선(9득점) 득점왕에 올랐고 당시 활약을 인정받아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 감독이 이끌던 2002년 한일월드컵 브라질 대표팀에 승선했다. 스콜라리 감독은 경험이 풍부한 호마리우 대신 호나우딩유를 최종 선발했는데 당시만 해도 브라질 팬들은 스콜라리 감독의 선택에 신뢰를 보내지 않았다.
그러나 호나우딩유는 2002년 월드컵에서 호나우두, 히바우두의 뒤에 포진해 막강한 공격 편대를 구축했고 ‘3R’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킬 정도로 맹활약했다. 호나우딩유는 어느덧 A매치 71경기(27골)에 출전할 만큼 풍부한 국제 경험을 쌓은 브라질의 대표 스타로 자리 잡았다.
전세계 언론으로부터 ‘제2의 호나우딩유’로 불리는 사나이도 등장했다. 바르셀로나 유소년팀에서 활약하고 있는 17살의 신예 지오바니 도스 산토스가 주인공이다. 도스 산토스는 2005년 페루에서 열린 17세 이하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서 잠재력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당사자인 호나우딩유는 도스 산토스와의 거리를 분명히 했다. 그는 “팀 플레이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에서 도스 산토스는 나와 비슷하다. 그러나 도스 산토스가 ‘제2의 호나우딩유’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는 그냥 팀 동료일 뿐”이라고 말했다.
상식선에서 조금 벗어난 냉정한 반응이었다. 어쩌면 ‘삼바’에 대한 충성도를 표현하고 싶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도스 산토스는 브라질에서 태어났지만 멕시코 국적을 얻었고 지난해 17세 이하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서 멕시코의 우승을 이끌었다. 도스 산토스와 ‘삼바’의 인연은 멀어졌다.
찬란한 태양 아래 공만 있으면 행복하다
SPORTS2.0은 11월 18일 바르셀로나 홈구장 누 캄프를 찾았다. 20일 마요르카와 프리메라리가 11차전을 앞둔 바르셀로나의 훈련이 누 캄프에서 약 50m 거리에 있는 보조 경기장에서 진행됐다. 훈련 내용은 국내와 비교해 별반 차이가 없었다. 2개 그룹으로 나눠 공을 주고받으면서 딱딱해진 몸을 풀었고 가볍게 달리기를 한 뒤 실전을 방불케 하는 9-9 미니게임으로 조직력을 확인했다. 약 2시간 동안 진행된 팀 훈련에 30여 명의 취재진이 몰렸다. 장난스런 움직임과 독특한 몸짓으로 취재진의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은 선수가 있으니 바로 호나우딩유였다.
훈련 도중 갑자기 공을 하늘 위로 높이 차올려 외계인과 교신하는 듯한 몸짓을 선보이는가 하면 20m 왕복 달리기를 하다가 멈칫하며 순간적으로 왼발과 오른발을 교차시켰다. 호나우딩유의 장난이 재미있었는지 티아고 모따, 아이두르 구드욘센 등이 그의 동작을 흉내 낸다. 이어 호나우딩유는 그들의 동작이 잘못됐다는 듯 재차 우스꽝스런 시범을 보인다. 어디선가 불호령이라도 떨어질 만했지만 프랑크 레이카르트 감독은 이런 상황에 익숙한 모양이다. 물끄러미 바라볼 뿐 어떤 제재도 하지 않는다. 호나우딩유 주위의 선수들은 마냥 즐겁기만 하다. 훈련, 실전에 상관없이 분위기를 잡는 역할을 톡톡히 하는 호나우딩유의 또 다른 힘이다.
바르셀로나는 11월 20일 열린 마요르카와 경기에서 구드욘센(2골), 안드레아스 이니에스타, 산티아고 에즈케로의 연속골을 묶어 4-1로 승리했다. 바르셀로나는 11월 25일 현재 8승2무1패(승점26)로 세비야(25점)와 레알 마드리드(23점)를 제치고 리그 단독 1위를 달리고 있다. 바르셀로나는 리그 11경기에서 27골을 터뜨렸다. 호나우딩유가 8골로 팀내 득점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루드 반 니스텔루이(레알 마드리드), 프레데릭 카누테(세비야), 디에고 밀리토(레알 사라고사)와 리그 득점 공동 1위이기도 하다.
호나우딩유의 훈련은 즐겁다. 그의 장난기로 훈련장 분위기는 언제나 화기애애하다.(사진 김재현) |
챔피언스리그에서 드러난 바르셀로나의 불안 요소를 독일월드컵에서 다소 부진했던 호나우딩유와 연결해 확대해석하는 일부의 견해는 그래서 적합하지 않다. 사무엘 에투, 리오넬 메시, 사비올라 등 공격수들이 부상으로 전열에서 빠진 바르셀로나는 호나우딩유의 역할이 더욱 더 커질 수밖에 없고 그는 적어도 현재까지는 레이카르트 감독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고 했다. 호나우딩유가 강한 세 번째 비밀은 천성이 낙천적인 그의 여유로움이다. 호나우딩유는 11월 17일 행사장에서 “찬란한 태양 아래 공만 있다면 행복하다”며 익살스럽게 웃었다.
카탈루냐를 매료시킨 이방인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자리 잡은 지 30년이 넘었다는 교민 박종수 씨는 호나우딩유와 카탈루냐 팬들의 애정을 알 만한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호나우딩유의 요구르트 TV 광고 내용이 현실이 돼 이곳 사람들이 감동을 받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호나우딩유가 축구공을 주면 어린 소녀 팬이 요구르트로 화답한다는 광고였는데 실제로 경기 도중 비슷한 장면이 벌어졌다는 것. 박씨는 “지난 시즌으로 기억되는데 소녀 팬이 ‘광고에 나왔던 요구르트를 줄 테니 호나우딩유의 유니폼을 달라’는 문구가 적힌 종이를 들고 누 캄프를 찾았다. 호나우딩유는 경기 도중 이 문구를 발견했고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마자 그 소녀에게 유니폼을 벗어주고 요구르트를 받았다. 신문 1면에 이 사연이 보도되는 등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고 설명했다.
바르셀로나에서 호나우딩유의 인기는 카탈루냐 출신 선수들인 카를로스 푸욜, 사비 에르난데스, 안드레아스 이니에스타 등을 뛰어 넘는다. 누 캄프에서 만난 소녀 팬들은 “바르셀로나 선수 가운데 어느 선수를 좋아하느냐”는 질문에 카탈루냐 출신인 빅토르 발데스와 이방인 호나우딩유를 연호했다. “둘 가운데 어느 선수가 더 좋으냐”는 질문에는 망설임 없이 호나우딩유를 외친다.
박씨는 “두말할 것도 없다. 호나우딩유가 스페인 선수가 아니고 바르셀로나 유소년 출신이 아니라고 해서 그를 이방인으로 보는 팬은 아무도 없다”며 “호나우딩유의 인기는 선수와 감독으로 바르셀로나에 공헌한 요한 크루이프를 뛰어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팬들을 껴안는 호나우딩유의 인간성이 크게 한몫을 한 결과”라며 레알 소시에다드에서 뛴 이천수가 바르셀로나 원정에서 400여 명의 교민들을 외면했던 기억을 끄집어냈다.
바르셀로나 구단의 홍보담당관 체미 테리스는 11월 17일 SPORTS2.0과의 인터뷰에서 “바르셀로나 유소년 선수들의 경우 과거에는 카탈루냐 출신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최근에는 꼭 이곳 출신만을 고집하지는 않는다. 세계화의 흐름에 따라 프리메라리가 규정이 완화됐고 세계적인 클럽으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또 “그렇다고 레알 마드리드와 경쟁하는 민족적 자긍심을 저버린 것은 결코 아니다. 바르셀로나는 여전히 결속력이 강하고 세계 최고의 축구팀으로서 긍지를 잃지 않고 있다. 호나우딩유는 그 정점에 서 있는 인물”이라고 강조했다.
11월 19일자 바르셀로나 지역지 < 엘 문도 데포르티보>는 축구 전문가 4명에게 의뢰해 바르셀로나의 역대 베스트11을 뽑아 보도했다. 4명의 전문가에 의해 각각 선정된 베스트11에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요한 크루이프, 디에고 마라도나, 미하엘 라우드럽, 호셉 과르디올라, 히바우두, 로날드 코에만 등부터 현재 선수생활을 하는 사비, 푸욜 등이 이름을 올렸다. 4명의 전문가가 선정한 베스트11에 빠지지 않고 이름을 올린 유일한 선수가 있다. 가족과 삼바를 사랑하고, 공만 있다면 행복하다고 외치는 사나이. 바로 호나우딩유다.
호나우딩유
생년월일 : 1980년 3월 21일
출생지 : 브라질
신체조건 : 180cm/76kg
소속팀 : FC 바르셀로나(스페인)
포지션 : FW/MF
주요 기록 : 그레미우(1998~2000년, 36경기 13골)
파리 생제르망(2001~2003년, 55경기 17골)
FC 바르셀로나(2003년~현재, 106경기 51골)
SPORTS2.0 제 27호(발행일 11월 27일) 기사
바르셀로나=김덕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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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ㅋㅋㅋ 너무길어서 패스 ~ 답글이나 ^^
저도 한참읽다가 너무길어서.....ㅎㅎ 암튼 좋은 정보 감사 ~!!
ㅋㅋ 스크롤의 압박 ... 입술개간지 ㅋ
다 읽게 되었네요 .. 정말이지 축구라는 운동이 대단하다는 생각이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