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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진리를 토론하는 사람들 원문보기 글쓴이: 상승백마맹우중대
제 7 장 영감(靈感)으로 기록된 성경
『그러나 사람 안에는 영(靈)이 있고 전능하신 분의 영감(靈感)이 사람들에게 깨달음을 주시는도다』(욥기 32:8).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靈感)으로 주어진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훈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이 온전하게 되며,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구비되게 하려 함이니라』(디모데후서 3:16,17).
이 땅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어 왔지만, 그 가운데 어떤 사람도 일점일획의 오류나 모순 없이 책을 쓰지는 못했습니다. 오류와 모순을 지니고 있는 그러한 책들은 이후에 출간된 다른 책들에 의해서 잘못이 입증되어 왔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사람들의 손이 닿지 않는 선반 위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러한 책들로는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구원의 길도 찾을 수 없고, 하나님의 뜻을 알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담고 있는 완전한 책을 인간이 쓴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일점일획의 오류나 모순 없이 기록되었으며, 그 누구의 어떤 공격에도 쓰러지지 않고, 책 중의 책으로, 책 중의 황제로 지금 우리의 손에까지 전수된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성경”입니다.
성경은 모든 시대에 걸쳐 세상 사람들이 증오하는 책이면서 동시에 그리스도인들에게 영적인 생명과 능력을 공급해주는 “살아 있는 책”으로서 인류 역사상 최고의 베스트셀러이며 권위 있는 책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무엇인가 어떤 분야에 정통하다는 뜻으로 “○○○의 바이블”이라고 하면 “바이블(bible)”이라는 말 때문에 권위를 인정받는 것으로 생각할 정도입니다.
사람들은 성경을 거부하면서도 성경에 대해 상식 아닌 상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도 성경을 읽어봤는데…”, “구약에는 말이야…”, “신약은 쉽더라구…” 등등 어떤 말을 하지만, 성경이라는 말의 의미나 신구약에 어떤 진리를 담고 있는지 모르며, 왜 신구약이 구분되어야 하는지, 그 말씀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의 저자는 성령님이십니다. 성경은 매 장(章)마다 하나님의 성품과 그분의 뜻을 기록의 형태로 보여주는 권위 있는 계시(啓示)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얻는 원천서이며, 거룩한 진리의 교과서이며, 영생으로 인도하는 안내서입니다.
성경(聖經)을 뜻하는 영어 단어 “바이블”(Bible)은 헬라어 “biblos”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후 비블리아(biblia)라고 불리며, 영어로는 바이블(bible)로 표기된 것입니다. 헬라어 “비블리아”는 책들(books)이라는 뜻이지만, 66권 전부가 완전한 한권이기 때문에 성경을 “책”(The Book)이라고 하는 것은 매우 적합한 용어입니다. 이 책은 성경에서 ‘기록되고 보존된 말씀’(the Scripture) 혹은 ‘하나님의 말씀’(the Words of God)으로 명명되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본장의 “영감으로 기록된 성경”과 8장의 “섭리로 보존된 성경”을 통해, 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어떻게 오류 없이 영감받았고 섭리로 보존되었는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연관해서 중요한 성경 용어 하나를 알아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영감(靈感, inspiration)”이라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성경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것은 성경의 영감과 보존은 분리해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영감”은 하나님께서 백지상태의 종이를 취하셔서 하나님의 말씀들을 기록하는 데 사용하신 것이며, “보존(保存)”은 하나님께서 이미 기록하신 그 말씀들을 오늘날까지 전수하시는 데 사람들을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과정은 하나님께서 주도하시며 하나님께서 보증하시는 것입니다.
1. 영감의 의미
성경에서 가장 심하게 왜곡된 교리중 하나가 바로 “영감의 교리”입니다.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성경의 영감이 하나님의 말씀의 최초로 기록된 원본들에만 한정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전달과 그 방법을 영감과 동일시해 버렸습니다. 즉, “원본 = 영감”이라는 공식을 세워 놓고, 원본은 없으니 영감받은 성경도 없다는 논리를 도출해 낸 것입니다. 한마디로 성경적 영감이 아닌, 나름대로의 신학적 영감의 개념을 먼저 설정해 놓고, 그들에게서 듣고 배우는 모든 사람들로 자신의 이론이 실제 성경의 영감의 교리라고 이해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런 결과로 인하여 오늘날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은 그들 자신의 기준에 따른 최상의 번역본, 더 나은 역본 등을 운운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경의 영감에 대한 인식이 심각하게 결여된 원인은 “영감”이라는 성경용어가 “감동”으로 변개되고 왜곡되어 또 하나의 거짓 신학이론들과 거짓 교리들을 낳았기 때문입니다. 그 거짓 교리들로 이익을 취하고자하는 사탄의 계략이 있는 것임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영감”(靈感, inspiration)이라는 용어는 단 2회만 제시됩니다(욥 32:8, 딤후 3:16). 영감이라는 말의 헬라어는 “쎄오프뉴스토스”인데, 이 말은 성경을 주실 때 나타난 “하나님의(쎄오)와 성령의 역사(프뉴스토스)”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사람 안에는 영이 있고 전능하신 분의 영감이 사람들에게 깨달음을 주시는도다』(욥기 32:8).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진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훈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이 온전하게 되며,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구비되게 하려 함이니라』 (디모데후서 3:16,17).
“모든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져 있다”라는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사실 “영감”(靈感, inspiration)이라는 말은 “안에”(In)과 “호흡하다”(Spiration)의 합성어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모든 기록된 말씀들 안에 생명을 주는 호흡을 불어넣으셨다는 의미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호흡은 다음과 같은 특징들이 있습니다.
- 하나님의 호흡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는 그분의 능력입니다(시 33:6).
- 하나님의 호흡은 자연현상을 일으키시고 관장하십니다(욥 37:10).
- 하나님의 호흡은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집행하시는 능력입니다(욥 4:9; 15:30, 삼하 22:16).
- 하나님의 호흡은 이러한 특징을 내포하지만, 가장 큰 특징은 생명을 주는 능력이 있습니다(창 2:7; 6:17; 7:15,22, 욥 33:4; 34:14, 겔 37:5-10).
이와같이 영감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살아 있고 생명을 주는 말씀들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번에 걸쳐서 다양한 방법들로 하나님께서 기록된 말씀들을 주시고, 시간이 흐르고 장소가 바뀌고 말씀들을 담는 재료들이 바뀌어도, 그 영감 곧 하나님의 호흡(Spiration)은 날아가지 않고 기록된 말씀들 안에(In) 현재 주어져 있는 것입니다.
정리를 하자면, 성경이 영감을 받았다는 것은 성경에 기록된 단어 하나하나가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말씀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율법과 은혜에 대한 하나님의 메시지를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직접 기록하시는 대신, 그러한 거룩한 일을 수행하는 데 특별히 적합한 자신의 종들을 중개자들로 사용하셔서 사람들에게 계시하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성경의 기록자들을 통해 적합하게 기록하신 과정을 영감이라고 합니다. 영감에 관한 신학자들의 정의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영감으로’의 의미는 구약과 신약을 기록함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으로 관장하심을 말한다.” - 로버트 리 -
“영감이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불어넣는 강한 의식으로서, 진리를 언어로 나타낼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인간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 윌리함 이반스 -
성령님의 숨결이 성경의 각 단어마다 숨 쉬고 있는데, “영감”이란 말은 성경에 단 두 번(욥 32:8, 딤후 3:16) 나옵니다.
그러나 <개역성경>에서는 한 번도 영감(靈感, inspiration)이란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영감이란 말을 “감동(感動)”이란 말로 대치시킴으로써 성경에 관한 주요한 교리를 알지 못하게 했습니다. 영감과 감동이 같은 뜻이라고 생각한다면 더 이상 성경을 믿는다고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영감”과 “감동”이라는 말을 구분하여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감동”이란 말을 사용해서 영감이란 의미를 설명하곤 하는데, 감동은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 것이나 성령 충만한 상태에 있는 것으로 설명됩니다. 영감 역시 그러한 설명이 가능하지만 성령으로 인도되고 충만한 것이 다 성경의 기록과 동일하지는 않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성경에는 모세의 엄격한 특성과 다윗의 시적인 성품과 요한의 사랑 등이 그들의 개벽적인 기록들에 확실히 드러나 있습니다. 성경 기록자들은 받아 적는 도구로 사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기록자들의 개별적인 개별성(individuality)은 성경을 기록하기 위해 그들에게 영감을 주시면서 성령 하나님께서 확실하게 사용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모든 성품들과 조건들이 드러나게 의도하셨습니다. 이렇게 그들의 개별성을 발휘한 성경 기록자들도 영감에 관해서 그들 스스로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를 살펴본다면 영감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영감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은 특히 성경 기록자들의 증거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1) 모세의 증거
『하나님께서 이 모든 말씀을 일러 말씀하시기를』(출애굽기 20:1).
『모세가 주의 모든 말씀들을 기록하고...』(출애굽기 24:4).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을 모으고, 그들에게 말하기를 “주께서 명령하신 말씀들이 이러하니 너희는 그 말씀들을 행해야 하느니라』(출애굽기 35:1).
2) 다윗의 증거
『주의 영이 나를 통하여 말씀하셨으니, 그의 말씀이 내 혀에 있었도다』(사무엘하 23:2).
3) 이사야의 증거
『오 하늘들이여, 들으라. 오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주께서 말씀하셨도다. 내가 자녀들을 양육하고 육성시켰으나 그들은 나를 거역하였도다』(이사야 1:2).
4) 예레미야의 증거
『그때 주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말씀하시기를 ...그리고 나서 주께서 그의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기를 “보라, 내가 내 말들을 네 입에 두었도다』(예레미야 1:4,9).
5) 에스겔의 증거
『크발 강가 칼데아 땅에서 주의 말씀이 부시의 아들 제사장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고 주의 손이 거기서 그에게 있었더라』(에스겔 1:3).
6) 다니엘의 증거
『바빌론의 벨사살왕 원년에 다니엘이 자기 침상에서 한 꿈을 꾸고 머릿속에 환상들을 받고서 그가 그 꿈을 기록하고 그 일들의 실상을 말하니라』(다니엘 7:1).
7) 아모스의 증거
『유다의 웃시야왕의 때요, 이스라엘의 요아스왕의 아들 여로보암의 때 지진이 나기 이 년 전에 트코아의 목동들 가운데 있었던 아모스의 말씀들로, 그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본 것이라』(아모스 1:1).
8) 요한의 증거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계시라. 이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의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에게 주신 것이요, 그의 천사를 그의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니라』(요한계시록 1:1).
이와 같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기록한 것이 절대적으로, 그리고 전체적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것, 즉 그들이 영감을 받아서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2. 영감으로 기록된 성경의 권위
성경은 모든 부분이 영감을 받았으며, 영감받지 않는 부분은 단 한 군데도 없습니다. 부분적으로가 아니라 모든 성경이 영감받았다는 딤후 3:16 말씀이 이를 확증합니다. 성경 곳곳에 성경의 다른 부분들을 인용하면서 “기록되기를”, “성경에…”, “율법과 선지자를 통하여”, “성경을 이루려” 등의 표현들이 사용된 것을 보게 되는데, 이는 성경 전체의 영감성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제 성경 자체에서 성경을 어떻게 표현하고 권위를 부여하고 있는지 확인해보기로 하겠습니다.
1)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의 잘못을 책망하여 바로잡으실 때
『너희는 성경에서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도다. 이는 주께서 하신 일이라.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하신 말씀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마태복음 21:42).
2) 예수님께서 사두개인들에게 대답하실 때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므로 오해하고 있도다』(마태복음 22:29).
3)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저녁에
『그러나 그렇게 하면 이같이 되리라고 한 성경을 어떻게 이룰 수 있겠느냐?』 (마태복음 26:54).
4) 주님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살아나셨을 때
『제자들은 주께서 그들에게 하신 이 말씀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더라』(요한복음 2:22).
5)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전파할 때
『바울은 습관대로 그들에게 가서 세 안식일에 걸쳐 성경을 가지고 그들과 변론하며,』 (사도행전 17:2).
6) 아폴로가 유대인들을 강력하게 논박할 때
『이는 그가 성경으로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공개적으로 증거함으로, 유대인들을 강력하게 논박함이더라』 (사도행전 18:28).
7) 바울이 복음을 설명할 때
『(이는 그분께서 자기의 선지자들을 통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로마서 1:2).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들로 인하여 죽으시고 장사되셨다가 성경대로 셋째 날에 다시 살아나셔서』 (고린도전서 15:3,4).
8) 바울이 자신이 전하는 말씀을 확증할 때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느냐?』(로마서 4:3).
『성경이 파라오에게 말하기를』 (로마서 9:17).
『성경이 말씀하시기를』 (로마서 10:11).
9) 바울이 성경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에 대해서
『누구든지 이 편지에 쓴 우리의 말에 순종치 않거든 그를 주목하여 사귀지 말고 그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 (데살로니가후서 3:14).
10) 성경을 사용할 때
『이런 것들을 말하고 권면하며 모든 권위를 가지고 책망하여 아무도 너를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라』(디도서 2:15).
11) 사람들을 잘못 인도하는 철학과 과학의 전통을 경고할 때
『아무도 너희를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노략질하지 못하도록 주의하라. 그것들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유치한 원리를 따른 것이며 그리스도를 따른 것이 아니니라』 (골로새서 2:8).
『오 디모데야, 네게 맡겨진 것을 지키고, 비속하고 허황된 말장난과 거짓되이 일컬어지는 과학의 반론을 피하라』(디모데전서 6:20).
12) 바울이 영적 생활에 대한 교훈을 말할 때
『이는 성경이 주는 인내와 위로로써 소망을 지니게 하려 함이니라』 (로마서 15:4).
13) 베드로가 성경을 설명할 때
『예언은 예전에 사람의 뜻에서 나온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이 성령으로 감동을 받아 말한 것이니라』 (베드로후서 1:21).
14) 성경 말씀을 삭제하거나 첨가하는 것에 대한 경고
『이는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들을 듣는 각 사람에게 증거함이니 누구든지 이것들에 더하면 하나님께서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또 누구든지 이 예언의 책의 말씀들에서 삭제하면 하나님께서 생명의 책과 거룩한 도성과 이 책에 기록된 것들에서 그의 부분을 제하여 버리시리라』(요한계시록 22:18,19).
『너는 그분의 말씀들에 더하지 말라. 그분이 너를 책망하실까 함이며, 네가 거짓말쟁이가 될까 함이라』 (잠언 30:6).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그 말씀에 더하지도 말고, 거기에서 빼지도 말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주 너희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킬지니라』 (신명기 4:2).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뿐만 아니라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뜻과 생각이 아닌, 오직 기록된 성경 자체에 권위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3. 성경의 영감성
성경은 하나님께서 손으로 직접 기록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니엘 5장의 벨사살왕에게 벽에 쓴 기록을 제외하면, 두 가지 경우에서는 하나님께서 직접 기록하신 것이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율법”(the law)을 주신 것과 연관되는데, 이는 모세에게 십계명을 돌판에 기록하셔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손가락으로 쓰신(Written with the finger of God)』이라는 말씀은 출애굽기 32:16, 34:1 등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신약에서는 “은혜”(grace)와 연관되는데, 이는 간음하다가 잡혀온 여인과 서기관과 바리새인들 앞에서 땅에다 쓰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8:6은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다 쓰시니(with his finger wrote on the ground)』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기록하신 이 말씀들은 얼마 뒤에 사라졌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이 두 기록을 포함한 하나님의 말씀) 역사를 통해, 세대를 거쳐 하나님의 특별하신 섭리와 계획으로 우리에게까지 전수되어 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율법과 은혜에 대한 메시지를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직접 기록하시는 대신에, 그러한 거룩한 일을 수행하는 데 특별히 적합한 자신의 종들을 중개자로 사용하셔서 사람들에게 계시하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성경의 기록자들을 통해서 적합하게 기록하신 과정을 영감이라고 합니다.
자,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직접 개입하셔서 영감으로 기록하신 성경은 어느 정도까지 영감을 받았는지 영감의 성격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1) 문자 하나하나가 영감받은 것입니다.
영감에 대한 설명에서 일차적으로 설명되는 것은 “verbal”이라는 말입니다. “verbal”은 ‘말의, 언어의, 말에 의한, 한 마디의, 문자 그대로의(literal), 축어적(逐語的)’인 등의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즉 문자 하나하나가 영감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도 할 수 없는 가장 세부적인 것을 기록하십니다. 신명기 32:4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분은 반석이시며 그분의 역사는 완벽하나니, 이는 그분의 모든 길이 공의이심이라. 그분은 진실하시고 악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며, 의로우시고 정직하시도다』 (신명기 32:4).
이렇게 완벽하시고, 동물을 하나 지으셔도 어느 누구도 따를 수 없게 정교하고 세밀하게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성경의 세밀한 부분까지 영감을 주시지 않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균형 있는 성품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의 한 자 한 자에 영감을 주셨다는 것은 우리의 믿음의 기초를 놓으신 것과 같습니다.
『기초들이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할 수 있으랴?』 (시편 11:3).
만일 성경이 한 자 한 자에 영감을 받았다면 성경에는 오류가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실수하실 리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전체적으로 한 자 한 자에 영감이 없다면 성경의 어떤 부분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고, 다른 어떤 부분은 순전히 사람들로부터 나온 것이라는 가정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 사람들은 성경에서 오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답해야 할 몇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첫째, 성경의 많은 부분이 영감을 받고 동시에 많은 부분이 어떻게 영감받지 못할 수 있습니까? 완전하신 하나님의 성품에 어긋나는 일을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습니까?
둘째, 누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과 사람으로부터 온 것을 정확히 구분할 수 있습니까? 어디까지가 영감으로 기록되었고, 어디까지가 영감으로 기록되지 않았는가를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만일 알 수 있다면 그 사람이 하나님이 될 것입니다. 이것을 할 수 있다고 하는 학자들과 비평가들은 그들의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성경의 단어나 절을 임의로 삭제하면서 하나님의 일을 돕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도움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보존해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고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은 글로써 기록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확실한 전달을 위해 단지 단어 하나하나뿐만 아니라 “시제”와 “철자” 하나하나까지 강조하시고 분명히 함으로써 오류 없이 기록하신 것입니다.
2) 단어(the words) 하나하나에 있어서의 영감
『이 “또 한 번”이라는 말의 의미는...』이라고 기록된 히브리서 12:27 말씀은 학개 2:6의 인용인데, 단순한 단어들을 사용함으로써 미래의 심판들이 있다는 사실에 대한 중요한 교리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러나 지금은 나의 왕국이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고 기록된 요한복음 18:36의 말씀은 “지금은”이라는 부사를 정확히 사용함으로써, 즉 이 하나의 표현이 올바르게 기록됨으로써 현재가 아니라 미래에 천년왕국이 땅에서 이룩될 것임을 확실히 밝히고 있습니다.
3) 시제(the tense)에 있어서의 영감
『죽은 자들이 일으켜지는 고로 모세도 그가 주를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 부를 때 가시덤불에서 이를 밝힌 것이라』(누가복음 20:37).
누가복음 20:37에서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실 때 사용하셨던 “시제”를 상기시키시면서 부활에 관한 교리를 사두개인들에게 증명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마태복음 22:32에서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었고 이삭의 하나님이었으며 야곱의 하나님이었느니라』(I was …)로 기록(말씀)하지 않으시고,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I am …)고 정확한 시제를 사용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나는 있느니라.”고 하시니라』(요한복음 8:58).
요한복음 8:58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나타내시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이 구절에서 예수님은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나는 있느니라.』(before Abraham was, I am)고 말씀하심으로써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밝히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시제 하나까지 영감받아서 오류 없이 기록되지 않았다면 성경에 근거한 우리의 믿음은 파괴될 것입니다.
『이새는 다윗왕을 낳으니라. 다윗왕은 우리아의 아내였던 여인에게서 솔로몬을 낳고,』(마태복음 1:6).
시제에 관한 다른 예로 마태복음 1:6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성경은 『우리아의 아내였던』(had been the wife of Urias)이라고 정확한 시제로 기록함으로써 밧세바가 우리아가 죽고 나서 다윗의 아내가 되어 솔로몬을 낳았다는 것을 분명히 제시합니다. “우리아의 아내에게서”라고 기록된다면 다윗은 다른 사람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은 것이 됩니다. 성령님은 간과하지 않으시고 정확하게 기록하셨습니다.
4) 단어 하나의 글자(a mere letter)에 있어서의 영감
『태초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느니라』 (창세기 1:1).
창세기 1:1에서는 하늘(heaven)이라고 기록하고, 2:1에서는 하늘들(heavens)이라고 다르게 기록함으로써 창조에 있어서 중요한 교리를 설명하고 있는데, 변개된 성경에서처럼 하늘과 하늘들이 구분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깊은 것들을 알 수 없게 됩니다.
또한 창세기 3:5에서 성경은 신들(gods)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이 변개된 성경들에서처럼 하나님(God)이라고 기록된다면 이 역시 교리적으로 큰 오류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경은 일점일획의 글자에까지 영감을 받아 기록되었기에 하나님께서는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미 제시한 여러 증거들에서도 이러한 사실이 입증되지만, 학자들의 주장이 명백한 거짓임을 판단할 수 있는 중요한 또 하나의 증거가 있습니다.
『이 구원에 관해서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에 관하여 예언한 선지자들이 열심히 조사하고 살펴보던 것이며, 그들 안에 계셨던 그리스도의 영이 그리스도의 고난과 다가올 영광을 미리 증거하실 때, 그 영이 무엇을, 또 어떤 시기를 지시하시는지 탐구하던 것이니라』 (베드로전서 1:10,11).
베드로전서 1:10,11에 따르면, 선지자들은 그들 스스로가 기록한 예언들을 연구해야만 했습니다. 그들이 단어 하나하나에 영감받지 않고 단지 내용과 개념과 사상에 있어서 영감을 받았다면 그들이 기록한 것을 모르고 기록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전서 1:10,11 말씀은 그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성경을 기록했음을 보여주는데, 이는 글자 하나하나에 영감이 있음을 증거해주는 것입니다.
『내가 들었으나 깨닫지는 못하였더라. 그때에 내가 말하기를 “오 내 주여, 이러한 일들의 마지막에는 어떻게 되겠나이까?” 하였더니, 그가 말씀하시기를 “다니엘아, 네 길을 가라. 이는 그 말씀들이 마지막 때까지 닫혀 있고 봉해져 있을 것임이라』(다니엘 12:8,9).
다니엘 12:8,9은 다니엘 자신이 이해하지 못한 것을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지자 기록했다고 쓰고 있습니다. 이 구절 역시 내용과 개념과 사상이 영감된 것이 아니라, 단어들이 영감되었음을 입증합니다.
5) 성경 전체가 영감받은 것입니다.
이 말은 성경의 어떤 특정한 부분만 영감을 받은 것이 아니라, 창세기 1:1부터 계시록 22:21까지 전체가 다 영감받았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뜻하는 헬라어 “그라페”는 신약성경에서 성경을 기록하기 위해 사용된 말입니다. 그라페가 단수일 때는 성경 한 절 한 절을 뜻하거나 성경 전체를 뜻하며, 복수일 때는 성경 각 부분을 집합적으로 지칭합니다. 그러므로 디모데후서 3:16의 “성경”은 성경의 한 절 한 절과 성경 전체를 뜻하는 것입니다. 즉 영감을 받은 것은 모세오경이나 선지서만이 아니라 성경 전체입니다(그러나 헬라어의 단수와 복수를 구분하지 않더라도 성경이라는 말이 성경 전체를 뜻한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5:18의 『성경이 말씀하시기를...』에서 바울은 “성경”이라는 말을 사용하며 신명기 25:4과 누가복음 10:7을 동시에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감받은 성경은 어떤 부분만이 아니라 신구약 전체를 말합니다. 또한 베드로후서 3:16에서 베드로가 바울서신을 가리킬 때도 “성경”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어, 서신서들도 역시 영감받은 성경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영감으로 성경을 기록하셨다는 것은 그 기록에 오류가 없다는 의미이며, 완전하다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약 80만 단어를 기록하는 일이 너무 어려워서 오류를 허락하시겠습니까? 그것을 보존하는 것도 어려워서 못하시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영감으로 기록하신 그 성경을 우리들 손에 가지고 있습니다.
4. 성경에 대한 잘못된 견해들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성경에 대한 잘못된 견해들은 다음 세 가지로 정리될 수 있습니다.
1) 자유주의(liberalism)
자유주의에 속하는 사람들은, 성경이 ‘하나님에 관해 사람들이 쓴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에게는 성경에 기록된 창조와 이적들은 믿을 수 없는 것이며, 동정녀 탄생과 피의 속죄, 부활 등의 근본적인 믿음 자체도 수용할 수 없다고 합니다. 일례로,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 아닌 인류의 4대성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생각한 슈바이쳐 같은 사람은 성경에 대해서도 잘못된 견해를 갖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성경의 가치를 말함에 있어서 단지 세상의 고대문서와 같은, 또는 조금은 다른 가치를 부여하는 정도의 책으로 판단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들의 견해는 불신자들의 잘못된 생각일 뿐입니다.
2) 신정통주의(Neo Orthodoxy)와 신복음주의(Neo Evangelism)
이들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을 포함하고 있다’(contain)고 생각하며, 또 그 말씀을 대하는 사람들에게는 성경이 ‘부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becomes)고 생각합니다.
이들은 신앙의 문제를 제외한 역사적, 과학적 진술은 오류를 지니고 있으며, 각각의 구체적인 사실 진술에 있어서도 오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로 성경은 모든 문제에 있어서 판단의 절대기준이 되지 못하고 권위 또한 지니지 못합니다. 성경의 권위를 믿는다고 말은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생각일 뿐, 결코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성경적 믿음은 아닙니다.
3) 정통주의(Orthodoxy)
정통주의에 속하는 대부분의 보수적인 사람들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역사적, 과학적 사실뿐만 아니라 초자연적인 기록에 있어서도 절대 오류가 없다고 믿습니다. 그 이유는 성경의 글자 하나하나가 영감을 받아서 기록되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믿음은 성경적으로 옳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한 가지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즉 많은 사람들이 표면적으로는 올바른 성경관을 갖고 있지만, 최초에 기록된 원본만이 온전한 성경이고 필사본이나 번역본은 온전한 성경이 될 수 없다는 잘못된 견해를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주장은, 성경은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최초의 원본이 없어진 오늘날에는 처음과 같은 권위를 지닌 성경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영원토록 보존하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시 12:6,7)을 믿지 못하는 데서 나오는 불신의 표현일 따름입니다.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라. 흙 도가니에서 단련되어 일곱 번 정화된 은 같도다. 오 주여, 주께서 이 말씀들을 간수하시리니 주께서 이 세대로부터 영원토록 그것들을 보존하시리이다』(시편 12:6,7).
이들은 또한 원본이 없어진 상황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성경들을 수용해도 좋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얼핏 옳게 보이지만, 유일하고 최종적이며 절대적인 권위로서의 하나님의 말씀을 제거하려는 어리석은 생각일 뿐입니다. 이들은 ‘현재는 완전한 성경이 없기 때문에 여러 성경들을 비교해서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과 태도를 지니면서, 서로 다른 여러 성경들을 동시에 수용하고 추천함으로써 성경의 최종권위를 불신하게 만들고, 나아가 자신이 믿는다고 말하는 바와 다르게 행동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이들의 이러한 이중적인 태도는 이들의 태도가 옳지 않다는 것과 자신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성경을 가지고 있지 않음을 스스로 입증하는 셈입니다. 스스로 정통주의자임을 자처하는 많은 사람들이 성경에 대해 이러한 오해와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안타깝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경건한 삶과 사랑의 실천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그리고 겸손과 온유를 실천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정확히 제시한 성경이 어떤 성경인가를 분별하는 것이며, 그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알고 실천하는 자세일 것입니다.
5. 당신의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진 성경”입니까?
그렇다면 영감으로 기록된 성경의 유익함은 무엇입니까?
지금까지 우리는 영감에 대한 바른 의미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지금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진 성경”을 가지고 있습니까?
이 질문에 대답을 하려면 디모데후서 3:16에서 말씀하고 있는 “모든 성경”은 필사본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디모데가 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케로부터(딤후 1:5) 배웠던 성경, 곧 디모데가 어려서부터 배웠던 성경(딤후 3:14-15)이 영감으로 주어진 모든 성경에 포함된다고 말합니다(딤후 3:16, 마 11:25 비교). 디모데는 성경 원본이 아니라 필사본들이 말씀하시는 것만을 들었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원본들 이후 약 400-1700년이 지난 필사본들이 디모데후서 3:16의 『모든 성경』이 지칭하는 성경인 것입니다.
성경에서 “성경”(scripture)라는 말이 총 57회 나오는데, 단 한 번도 최초의 원본을 지칭하지 않습니다(눅 4:17-21, 행 17:11, 행 8:32, 마 21:16,42...).
필사본성경은 원본과 동일한 권위를 지닌 성경인 것입니다(신 17:18-19, 수 8:32, 잠 25:1). 그리고 다음 장에서 배울 내용이지만, 모든 성경은 또한 번역본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민족들에게 그들의 언어로 주어진 성경을 통하여 그분의 말씀들을 듣고 알게 하십니다. 이는 디모데후서 3:16의 『모든 성경』이 결코 원본이 아니라 번역본들도 함께 지칭함을 알려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롬 16:25-26).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다른 방언들(언어들)』로 말씀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사 28:1, 고전 14:2 → 행 2:5-12). 언어들을 만드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히브리어와 헬라어로 말씀하신 것같이 다른 언어들로, 즉 다른 언어들의 번역본들을 통해서도 말씀하십니다. 즉 다른 언어들로 된 번역본들도 하나님께서 원본들에 주신 것과 같이 권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사도행전 2:5-12과 고린도전서 14:21은 여러 방언들(언어들)로 즉 다양한 언어들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겠다고 기록함으로써, 다양한 언어들의 번역본들이 영감받은 말씀들을 기록하고 있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예, 구라틴역본, 고토어역본, 아르메니아역본, 그루지아역본, 슬라브어역본, 구시리아역본, 곱트어역본, 아라비아역본, 페르시아역본 등)
그리고 한가지 더 주의깊게 살펴볼 것은 디모데후서 3:16에서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진(is given)것으로』라는 말씀에서 “주어진”(is given)것이라는 말씀은 최초의 원본만 한 번 “주어졌다”는 뜻의 “과거시제”가 아니라 반복적으로 주어진다는 뜻의 “현재시제” 수동태라는 사실이다(롬 12:6, 빌 1:29, 욥 37:10 참조). “주어진”이라는 말씀의 뜻은 현재 성경이 주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전 12:10-11). 진리의 말씀들, 곧 성경은 진리의 영을 통해 우리를 모든 진리로 인도하신다고 약속하신(요 16:12-14)우리의 선한 목자에게서 받은 것, 곧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과거에 한 번 주어졌던 것이 아니라 현재 당신에게까지 주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단지 두 번 “영감”이라는 말이 나오는 욥 32:8과 딤후 3:16 두 구절 모두 “주어진”과 “주시는도다”라고 현재시제로 기록된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복적으로 그 영감받은 말씀들을 사람들에게 주시며, 또 깨닫음을 주시고 계십니다.
당신에게도 그 “영감”받은 말씀이 “주어져” 있습니까?
예,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영감으로 기록하신 성경이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어떤 유익을 가져다주는지 알아보겠습니다.
1) 성경은 당신을 구원으로 이끄는 일을 합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라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영원히 거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베드로전서 1:23).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난다고 하였습니다.
『주의 율법은 완전하여 혼을 회심시키며, 주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매한 자를 현명하게 만들고 주의 규례는 정당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며, 주의 계명은 순수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시편 19:7,8).
하나님의 말씀의 첫 번째 유익은 바로 우리의 혼을 회심시켜 구원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며, 복된 복음입니다(롬 1:16).
하나님의 말씀은 당신의 구원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복음의 진리를 믿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2) 성경은 당신에게 구원의 확신을 갖게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런 것들을 씀은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며, 또한 너희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도록 하려 함이라』(요한일서 5:13).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구원의 확신뿐만 아니라 영원한 보장까지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주는 확신을 통해 당신은 구원받은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구원을 번복하시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을 의지하십시오, 그것은 성경의 약속입니다.
3) 성경은 당신에게 믿음을 갖게 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오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니라』(로마서 10:17).
성경은 당신에게 믿음을 갖도록 도와줍니다.
4) 성경은 당신의 기도가 응답되기를 원합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들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나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이루어지리라』(요한복음 15:7).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한다면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나 하나님께 구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계시며, 당신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응답받을 수 있는 조건은 잠언 28:9에 나와 있는 대로 복된 말씀을 사랑하고, 그 말씀을 묵상하고, 배우고, 따르는 것입니다.
『율법을 듣는 데서 귀를 돌이키는 자는 그의 기도마저도 가증한 것이 되리라』(잠언 28:9).
5) 성경은 당신을 은혜 가운데 자라게 하십니다.
『갓난 아기들로서 순수한 말씀의 젖을 사모하라. 이는 너희가 그것으로 인하여 자라게 하려 함이니라』(베드로전서 2:2).
육신적으로도 갓난아기는 어머니의 젖을 먹어야 살고 자랄 수 있듯이, 성령으로 갓 태어난 그리스도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의 젖을 먹고 자랍니다. 갓난아기가 자라서 아이가 되고, 아이가 음식을 고루 잘 섭취하여 청년이 되고, 마침내 어엿한 어른으로 성장하듯이 그리스도인도 젖(우유), 꿀, 사과, 빵, 고기(단단한 음식) 등으로 불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먹음으로써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성경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묵상하며 읽어야 하며, 진리의 지식으로 인해 자라고 성숙해야 하비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며, 그리스도인의 의무입니다(딤후 2:15). 당신이 은혜 가운데서 자라게 되면 당신도 성경을 통해 구원받지 못한 다른 죄인을 주님께 인도해 올 수 있는 그리스도의 군사가 될 수 있습니다.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디모데후서 2:15).
♧ 맺는 말 ♧
시편 1편은 ‘복있는 사람’과 악인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간계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조롱하는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는도다. 그의 즐거움이 주의 법에 있으니, 그가 주의 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강가에 심겨진 나무 같아서 계절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의 잎사귀도 마르지 아니하리니, 그가 무엇을 하든지 번성하리로다』(시편 1:1-3).
복있는 사람의 즐거움은 하나님 말씀에 있고, 그는 주야로 말씀을 읽고 묵상한다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영감으로 기록하신 성경이 없다면 우리는 한시도 살 수 없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고 하셨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느니라.’고 하였느니라.” 하시더라』(마태복음 4:4).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정녕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지키는 사람들이 오히려 복이 있느니라.”고 하시더라』(누가복음 11:28).
하나님의 말씀은 그리스도인에게 칼이요, 불이며, 큰 망치요, 씨와 같고, 유리 같으며, 등불이며, 젖과 꿀, 빵, 고기 등으로 비유되기도 합니다.
1) 칼 - 성경은 읽고 순종하는 사람에게 확신을 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양날이 있는 어떤 칼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 그리고 관절과 골수를 찔러 가르고 마음의 생각들과 의도들을 판별하느니라』(히브리서 4:12).
2) 큰 망치 - 성경은 능력이 있어서 듣는 사람의 저항심을 부서뜨립니다.
『주가 말하노라. 내 말이 불 같지 아니하냐? 바위를 부수어 조각내는 큰 망치 같지 아니하냐?』(예레미야 23:29).
3) 씨 - 성경은 듣고 수종하는 사람을 회심시키는 살아 있는 말씀입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라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영원히 거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베드로전서 1:23).
4) 거울 - 성경은 각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을 보게 합니다.
『누구든지 말씀을 듣기만 하는 자가 되고 행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타고난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이는 그가 자기를 보고는 가서 즉시 자기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잊어버림이라. 그러나 자유의 온전한 법을 주시하고 그 안에 계속 머물러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라 오히려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의 행실로 복을 받으리라』 (야고보서 1:23-25).
5) 불 - 성경은 타오르는 불길 같은 말씀입니다.
『... 그의 말씀이 내 마음속에서 내 뼈들 속에 사무치는 타는 불 같아서 내가 참기에 지쳤고 견딜 수 없었나이다』(예레미야 20:9).
『주가 말하노라. 내 말이 불 같지 아니하냐? 바위를 부수어 조각내는 큰 망치 같지 아니하냐?』 (예레미야 23:29).
6) 등불 - 성경은 날마다 성도를 인도해주고 비춰주는 말씀입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불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편 119:105).
7) 젖과 고기(단단한 음식) - 성경은 그리스도인을 양육하는 음식입니다.
『갓난 아기들로서 순수한 말씀의 젖을 사모하라. 이는 너희가 그것으로 인하여 자라게 하려 함이니라』(베드로전서 2:2).
『젖을 사용하는 자는 누구나 의의 말씀에 능숙하지 못하나니, 이는 그가 아기이기 때문이요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사람들의 것이니, 그들은 그 말씀을 사용함으로 감각들을 단련하여 선악을 분별하는 사람들이라』(히브리서 5:13,14).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고기로 먹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너희가 지금까지 소화시킬 수 없었음이요, 아직도 그러하니라』(고린도전서 3:2).
8) 꿀과 사과 - 성경의 말씀은 꿀과 사과로 비유되기도 합니다.
『주를 두려워함은 순결하여 영원히 지속되고 주의 명령들은 모두 참되고 의로우니, 그것들은 금보다, 정녕 많은 정금보다 더 바랄 만하며, 꿀과 벌집보다 더 달도다』(시편 19:9,10).
『주의 말씀들이 내 입맛에 어찌 그리 단지요! 정녕,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시편 119:103).
『적합하게 한 말은 은(銀) 그림들에 있는 금(金)사과들 같으니라』(잠언 25:11).
자, 이제까지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성경을 영감으로 기록하셨는가를 배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글자 하나하나, 단어 하나하나, 문장 한 절 한 절에 이르기까지 전체적으로 영감을 주셔서 완벽하고 오류 없는 성경 말씀으로 기록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성경 말씀은 우리에게 지금까지 전수되어 왔습니다.
그러면 과연 현존하는 수많은 성경 중 어떤 성경이 하나님께서 영감으로 기록하셔서 우리가 읽을 수 있도록 하신 성경일까요? 다음 장인 “섭리로 보존하신 성경”에서 우리는 이 문제에 관해 더 자세히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우리가 지금 손에 들고 있는 이 성경이 바로 하나님께서 영감으로 기록하시고 섭리로 보존하신 성경입니다.
이 성경은 너무도 귀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여, 지키고, 전파하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하고 아름답고 복있는 사람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거기에 기록된 것들을 지키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이는 그 때가 가까움이라』(요한계시록 1:3).
『또 그가 나에게 말하기를 “이 말씀들은 신실하고 참되도다. 거룩한 선지자들의 주 하나님께서 반드시 속히 되어질 일들을 그의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느니라. 보라, 내가 속히 오리라. 이 책의 예언의 말씀들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하더라』(요한계시록 22:6,7).
『... 기록된 바와 같으니 “화평의 복음을 전하며 좋은 일들의 기쁜 소식을 가져오는 자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라고 하였느니라』(로마서 10:15).
성경은
나 지칠 때 성경은 안식이요,
어두움 가운데서 비쳐오는 등불이라.
나 주릴 때 성경은 생명의 양식이요,
두려움에서 지켜주는 갑옷이라.
외로울 때 함께하는 친구임이라.
내가 일할 때 성경은 연장이 되고,
기도할 때 청아한 소리 내는 하프 같도다.
내가 무지할 때 성경은 스승님이 되시며
쇠약할 때 견고한 반석이 되심이라.
내가 냉랭할 때 성경은 불이 되고,
나의 날개 되시니 담대하고 높이 오르리라.
길을 잃었을 때 성경은 안내자시며,
헐벗었을 때 의복이요 풍요로움이며 부유함이니
내가 갇혀 있을지라도 성경은 광대히 전파되리라.
폭풍이 닥칠 때 성경은 안전한 피난처요,
내가 모험하는 광활한 바다며
쉴 수 있는 꽃 피는 초원이 됨이라.
♧ 생각해 봅시다 ♧
§ 본장을 살펴봄으로써 성경에 대한 나의 인식은 어떻게 변화되었습니까?
§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성경은 하나님께서 영감으로 기록하신 성경이라고 확신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