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권위에 대하여
장성숙/ 극동상담심리연구원, 현실역동상담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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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여러모로 다듬어져야 한다. 다듬는다는 것은 무수한 질타와 비평 속에서 꼴을 갖추어간다는 의미인데, 이것이 현대사회에 이르러서는 여의치 않은 것 같다. 급속한 핵가족화에 이어 양부모 모두 일하느라 바쁜 나머지 자녀를 학원으로나 돌리기 때문이다. 자녀들 처지에서도 공부만 잘하면 모든 게 면제되니까 그저 경쟁력을 갖추기에만 급급하다.
얼마 전 내게 상담을 받는 젊은 여성이 무슨 말끝에 부모와 다투었다고 말했다. 무슨 일 때문이냐고 묻자, 남자친구와 1박 2일로 놀러 갔다 오겠다고 하니까 부모가 허락을 안 해주어 싸웠다고 대꾸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그녀의 태도에 나는 놀라며 어떻게 그런 말을 부모에게 말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친구들과 놀러 간다고 해도 꼬치꼬치 캐물으며 의심할 게 뻔해 그냥 있는 대로 까듯 말했단다. 즉 거짓말을 하느니 차라리 솔직한 게 낫다고 여겼다는 것이다.
나는 순간적으로 뭐라고 말할지 몰라 주춤했다. 이윽고 그녀에게 거짓말을 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위아래를 식별하지 못하는 그녀의 태도가 되바라져 보인다고 일침을 놓았다. 아무리 부모가 못났어도 어른 위치에서 있는 분들에게 어떻게 그런 말을 하느냐고, 또 그런 말을 하는 딸을 수용하는 부모가 어디 있느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그런데도 그녀가 나의 말에 수긍하지 않아 급기야 나는 가정교육의 부재 속에서 자기 멋대로 자란 잡초 같다고 수위를 높여 그녀를 질타했다. 그러자 그녀는 내 질타가 혹독했는지 눈물지었다. 부끄럽기 때문인지 아니면 속상해서인지 상세히 묻지는 않았지만, 자기가 부모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어느 정도 수긍하는 듯했다.
사실, 요즈음 젊은이들은 사귄 지 얼마 되지 않아 스스럼없이 잠자리를 같이하는 편이다. 그러므로 함께 여행 떠나는 것쯤은 일도 아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더라도 부모에게 그런 것을 버젓이 알리는 것은 예의의 문제를 넘어 위아래를 식별하지 못하는 무개념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적어도 어른에 대한 공경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부모의 위신을 위해 뻔한 거짓말이라도 해야 한다고 본다.
나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누군가가 솔직함을 최우선시하며 언제 어디서고 진실하게 말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내게 묻는다면, 나는 그러한 솔직함은 어린애 수준 즉 교과서적이라고 답하고 싶다. 솔직함이 기본을 이루는 것이지만, 때에 따라서는 묵비권도 행사할 줄 알아야 하고 나아가서는 선의의 거짓말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하는 것은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고 자기와 엮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집단주의 문화권에서는 권위나 의리니 하는 가치들이 중시되기 때문에 사안을 평면적으로 바라보기보다는 입체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날 젊은이들이 위계에 대한 개념이나 우리 사회에서 중시되는 가치를 배울 겨를 없이 학업적 경쟁에만 몰두하다 성인이 된다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앞서 말한 그 젊은이처럼 어이없는 일을 벌이기도 한다.
세대 간의 갈등이란 말은 오래전부터 회자하였다. 젊은 세대는 상대가 누구든 대등한 차원에서 관계하려 드는 반면, 나이 든 사람은 위아래를 따지는 서열을 강조하는 편이다. 이렇게 역점을 달리하면서 심심찮게 발생하는 갈등, 과연 어떻게 해야 이러한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을까?
다소 모호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자주 대화를 하면서 친밀감을 키우는 방법이 그래도 가장 낫지 않을까 싶다. 어른에 대한 공경이란 억지로 심는다고 하여 생기는 것이 아니라 좋아해야 비로소 생겨나고 그렇게 하면서 고개를 숙인다고 본다. 다시 말해 가까울수록 속내를 터놓고, 그러면서 서로 상대의 입장을 고려하면서 자연스럽게 존중하는 마음을 키워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많은 부모가 경제적인 부를 이루기 위해 자녀를 세심하게 돌볼 겨를 없이 바쁘게 지낸다. 그 결과 한 지붕 아래 살면서도 부모나 자녀 모두가 뿔뿔이 살아가는 형상이다. 즉 물질적 풍요는 있어도 정서적으로는 삭막하기 그지없다.
결국 나는 앞서 말한 그 여성에게 제발 부모와 대화하며 가깝게 지내라고 당부하였다. 허공에 산산이 흩어질 당부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나로서는 그 외에 다른 묘안이 없었다. 그래서였는지 상담을 마치고 나서도 묵직한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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