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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Observer, Sunday 1 March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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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chester United's Park Ji-Sung celebrates scoring against Bolton at Old Trafford. Photograph: Neal Simpson/EMPICS Sport/PA Photos
박지성이 지난 5월 모스코바의 루츠니키 경기장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드레싱룸에 들어섰을 때
그와 같이 엄청나게 큰 실망감을 느낀 적이 결코 없었을 것이다. 그의 팀동료들은 러시아 수도에서 비가 내리는 밤
처음으로 잉글랜드팀들 끼리 맞붙는 챔스결승에 참가하려던 참이었다.
그리고 박은 여전히 슈트를 입고 있었다.
박은 비록 8강과 4강 모든 경기 출장하였지만 박은 제외되었고 심지어 벤치에도 오르지 못하였다.
알렉스 퍼거슨 경은 그의 커리어 사상 최고로 힘들었던 결정이었다고 밝혔다.
그날 첼시 감독 에브람 그랜트는 이 한국인보다 덜 놀랐다고 말하였다.
" 4강에서 패스를 잘 하는 바르셀로나를 맞아, 알렉스 퍼거슨은 따라붙는 끈질긴 선수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4-4-2를 내 놓은 그 날 밤 첼시전에선, 다른 것을 원했습니다. "
한국 언론은 여전히 그날 일을 '모스코바 악몽'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유나이티드가 세번 째 챔스컵을 들어올린 후 바로, 박이 말했다.
" 팀은 우승했으니까 전 만족합니다.
개인적으론 이러한 빅 경기에 뛰지 못해 실망스럽기는 합니다. 그러나 다른 기회들이 있을 겁니다. "
고귀한 성품 정말로 칭찬할 만 하다.
하지만 그러한 태도가 퍼거슨의 생각에 영향을 미쳤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유나이티드 드레싱 룸엔 많은 자기 중심적 선수들이 있다.
그러나 퍼거슨은 그러한 결정에 박이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수요일 28세가 된 박은 분명히 겸손한 선수이다.
그가 2005년 거스 히딩크의 PSV 아인트호벤으로 부터 유나이티드에 합류한 이래 들린 그에 관한 이야기들을 모아보면
프리미어 리그 2회 우승과 오늘 웸블리에서 스퍼스를 맞아 두 번째 칼링컵 우승을 할 지도 모르는 선수에게서 나온 이야기는 많지 않다.
그는 상당히 영어 능력이 향상되었음에도 거의 말이 없다.
하지만 그는 유약하지 않다. 그의 전 에이전트 - 그의 아비지가 맡으면서 2006년 고소했던 - FS코오퍼레이션과
PSV로 부터 이적하는데 있어 히딩크와의 싸움에서 이겼다.
박은 또한 2003년 1월, 한국 월드컵 4강 지도자였던 히딩크에 합류한 이후 무릎 부상으로 아웃되었을 때
그의 자질에 의심을 품었던 PSV팬들을 납득시켰다.
모스코바에서 유나이트드의 주장 리오 퍼디난드는 박에 대해 추호의 의심도 품지 않았다.
그의 고향에서의 닉네임은 그의 꾸미지 않는 매력으로 미키 마우스나 고구마로 통하지만
그의 팀 동료들 사이에선 ' 세 개의 폐'로 알려져 있다.
" 그는 진짜 선수들의 선수입니다. " 퍼디난드가 말했다.
" 움직임에선 세계 최고로 오를 수 있고 매우 영리하며 볼을 따내기 위해 직접 바삐 움직입니다.
그의 활동량은 가공할 만 합니다. 그는 다른 어떠한 선수도 가져다 줄 수 없는 차원을 팀에 불러 옵니다.
그는 저평가받고 있습니다. 정말 탑플레이어입니다. "
관계가 소원해지기는 했지만 히딩크는 여전히 감탄하고 있다.
" 내가 그를 유럽으로 데려간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놀랬습니다. " 첼시의 새감독이 말했다.
" 그는 더 이름난 스타들을 위해 궂은 일을 합니다.
나는 그러한 친구들을 항상 높이 평가합니다. 그의 기술이요 ? 그는 지칠줄 모릅니다. 90분 동안 내내 뛸 수 있습니다.
영리한 선수입니다. 그리고 매우 결단력이 있습니다.
그랜트의 의견도 일치했다.
" 그는 좀 더 창조적인 선수들에 발란스를 맞춰주는 부지런한 선수입니다.
그는 많은 골을 넣지 못하지만 팀을 위해 싸울 수 있습니다.
알렉스 경은 그와 같은 선수를 필요로 합니다. "
자신의 의견 제시를 두려워 하지 않는 박의 아버지 박성종씨는 박의 자기결정에 확신을 갖고 있다.
" 모두 그의 의지대로 이루어진 겁니다. " 그가 유나이티드 이적에 대해 말하였다.
" 유럽 축구 경기들을 볼 때 제 아들이 말했습니다. ' 그곳에서 뛰고 싶어요 ' "
박성종씨는 어떠한 프리미어 클럽이라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박이 고집한 것은 유나이티드였다. - " 제가 벤치에 머물러야 하게 될 지라도 배우고 싶습니다."
이러한 (자세가) 퍼거슨이 그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그리고 그는 올드 트래포드 이적이래 영국에선 조용한 남자로 남아 있지만
박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도착으로 그의 고향에서 갑부 슈퍼스타로 완전히 바뀌었다.
대기업들과 광고계약을 맺었고 2006년 발간된 그의 자서전 끝없는 도전은 백만 부 이상이 팔렸고
그의 공식 팬클럽에는 87000여명 이상의 유료회원들이 있다.
" 박지성은 지금까지 한국에서 최고의 아이콘 스포츠선수가 되었고 아마 이 곳에서 가장 유명할 겁니다. "
그들의 의뢰인 일로 여전히 전화하고 있는 나이키 아시아 태평양 마켓팅 부회장 데이비드 그라소가 단정적으로 말하였다.
" 아마 크리스티아노 로날도와 웨인 루니가 영국에서 더 많은 명성을 얻고 있을 지 몰라도
박의 한국내 인기는 그들을 뛰어 넘습니다.
그리고 그는 최근에 스포츠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인기인으로 한국인들에게 뽑혔습니다. "
1981년 서울에서 태어나 수도 근처 수원에서 자라난 박은 이미 은퇴를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그는 그의 아버지에 의해 영향을 받은 선택을 계속 따르기 보다는 어린 선수들을 키워보고 싶어한다.
" 돈에 관해 말하자면, 저는 아주 어려운 환경 출신입니다. " 한국 금속 공장에서 일하면서 박의 어머니 명자씨를 만나게
되었던 박성종씨가 말하였다.
" 잘 먹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아마 그가 어린 축구선수들을 지원해 주고 싶어하는 이유가 될 지도 모르겠어요 "
박의 회사 JS 리미티드는 인재 육성을 염두에 두고 그가 또한 부모님들을 위한 집을 지어드렸던 경기도에 위치하는
£13m 복합단지 스타 플라자에 투자하였는데 그곳은 축구 아카데미가 될 것이다.
박은 그의 신장에 대한 걱정으로 -그 당시 5피트8인치밖에 되지 않았다- 한 때 감독의 대학팀 추천 희망이 사그라들기도 했던
수원 공고에 입학했었다. 23세 이하 한국 대표팀을 상대로 인상적인 경기를 펼쳐 감독눈에 띄었고
그는 2000 시드니 올림픽 스쿼드에 들었다.
같은 해 박은 일본 쿄토 퍼플 상가에서 뛰기위해 이적하였고 게르트 엥겔스 팀의 스타가 되었다.
" 나는 그가 특별한 재능을 지녔음을 일찍이 알았습니다. " 독일인 감독이 회상하였다.
" 나는 그가 아주 좋은 선수가 될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가 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
박은 교토가 2002년 일본의 프리미어 대회 황제컵을 들어 올리는데 일조하였고
그 해 그의 명성은 그의 고국에 새로이 드높여 졌다.
" 아 네, 그는 아주 중요한 선수였어요. 그는 월드컵에서 대단했어요 " 히딩크가 말했다.
" 그는 (포르투갈전 결승골) 한 골을 넣었고 또한 어시스크도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제가 그를 PSV로 데려갔죠 "
" 유럽으로 이적한 후 박은 한국 국대 121경기 출장에 55골을 넣었고 프랑크푸르트와 레버쿠젠 소속으로 유에파컵을
들어 올렸던 그의 고국에서 또 한 명의 우상 차범근의 길을 따라 나섰다.
박은 PSV에서 힘든 출발을 보였고 그의 감독과의 관계는 미묘했다.
" 저와 이영표(예전 스퍼스 레프트백)선수를 다루는 방식에 있어 히딩크 감독님은 네달란드에서 매우 어려운 분이셨어요.
한국에선 할아버지 같은 분이셨지만, 그는 좀 더 감독님에 가까우셨어요.
네덜란드어를 들었을 때 모두 낯설어서 전 실제로 겁이 났습니다.
제 스스로 적응해야 했습니다. "
이적하고 2달이 지나, 박은 PSV서포터들이 그의 폼에 불만을 품게 만들었던 무릎 수술이 필요했다.
이것은 최악이었다. : 박은 좌절했다.
" 지속적으로 끔직한 고통에 시달렸어요. 제 클럽 경기가 제 고국에 방영되었을 때 제 기량을 보일 수 없어
정말 힘들었습니다.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어떠한 걱정없이 태명하게 볼을 가지고 노는 소년이었을 때라고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
박 가족은 아시아 리턴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 유럽은 정말 다릅니다. " 그의 아버지가 말했다.
" 지성이가 잘 하지 못했을 때 사람들은 그에게 음료수병을 던지며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그 애는 그런 것을 낯설게 생각했습니다. "
그러나 지성은 강인함으로 극복했다.
" 그 애가 저에게 실패했다고 듣고 싶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
그의 아버지가 이와 같이 확인해 주었고 다음 해 회복한 박은 경기에 나설 수 있었다.
챔피언스 리그에서 그 자신을 증명해 보이는 것은 그 자신에게 달려 있었다.
히딩크가 회상했다.
" 나는 그의 발전에 아주 기뻤습니다. "
박은 2005년 PSV 4강 진입으로 유럽 관중들에게 그 자신을 알렸다.
마르크 반 보멜과 필립 코쿠가 포함되었던 팀은 2차전에서 밀란을 3-1로 이겼지만 -박이 선제골을 넣었다-
원정 다득점 원칙으로 탈락하였다.
박은 유나이티드와 사인할 때 영어를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없었지만 영어 레슨을 시작했었다.
" 네덜란드에 있을 때 영어 개인 교사들이 있었습니다. "
그의 가족 생활과 로맨스 이야기를 기탄없이 털어 놓은 그의 아버지가 말하였다.
" 그 애는 한국인 여학생들이 있는 영국에 있길 좋아해요.
나는 그가 곧 결혼하길 바랍니다. 본인이 결정하겠지만 너무 예쁜 여자를 만나지 않았으면 해요.
너무 예쁘면 인생이 고달퍼져요 "
유나이티드 이적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박성종씨가 퍼거슨의 관심의 전화를 받았을 당시 PSV에서 박이 3년 연장 계약 하기를 원했던 히딩크와 충돌이 있었고
그의 계약엔 $10m밑으로는 팔 수 없다는 것이 명시되어 있었다.
히딩크는 또한 박에게 그의 클럽이 로만 아브라모비치와 밀접하다는 것을 상기시켰다.
" 조금 더 PSV에 머물다가 첼시로 이적해라 " 그가 그에게 말햇다.
이것이 아무런 효과를 못 내자 히딩크는 그이 메세지가 박의 에이전트와 통하지 않는다고 불평을 나타냈다.
" 제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하겠다는 마음을 먹었을 때 그 분을 배반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 박이 말하였다.
" 저는 제가 잔류하길 히딩크가 원한 것을 압니다.
그래서 어렵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
그러나 퍼거슨이 처음부터 자신의 사람을 얻은 건 아니었다.
박은 £4m 정도에 계약하였고 메디컬 테스트를 받기 전에 히딩크에게 전화해 감사하다고 말하며 그의 마음을 달랬다.
다시 박은 잉글랜드로 날아가기 전에 다음과 같이 말하며 이적에 대해 불안해 했다.
" 아마도, 제가 기대하는 것보다 훨씬 안 좋을 지도 몰라요.
그러나 달아날 수 없습니다. 제 부모님은 제가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에 합류하게 된 것이 이미 큰 성공이라 말씀하셨어요 "
박의 유나이티드 커리어는 성공이라 할 수 있다.
첫 시즌에 32리그 경기 선발에 4월 아스날전에서 데뷔골을 기록하였고 위건을 4-0으로 이기고
첫 리그컵(칼링컵)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모스코바에서 퍼거슨에게 제외되었으나 그는 현재 스코틀랜드인 구상에 중요 부분 차지하고 있다.
그는 지난 주 유나이티드가 인테르와 골득실없이 비긴 산 시로 경기에 나왔고 오늘 선발이 예상된다.
" 그는 환상적인 폼을 보여줘 왔습니다. " 퍼거슨이 말했다.
4년 계약 연장이 임박해 있고 경기 외적으로 박은 패트리스 에브라에게서 사들인 윔슬로 집에 정착하였다.
이 프랑스인은 박과 친하게 지내고 있는 단짝 유나이티드 팀 동료이다.
한 한국 식당에는 에드윈 반 데 사르 그리고 루드 반 니스텔루이가 나란히 있는 박의 사진이 걸려 있다.
그리고 박성종씨는 행복하게 회상하였다. 그의 아들은 변하였다.
" 네덜란드에서, 그는 정말 필요하지 않다면 일년 동안 그의 동료들과 대화를 나누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맨체스터에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 애가 웨인 루니나 다른 동료들을 저녁식사에 초대했습니다."
식후에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동안 어색한 침묵이 들 것이란 생각은 떨쳐 버리자
수원에서 온 이 친구와 크록스테스 출신 불량아(루니)는 이미 다가올 미래 영광과
함께 한 성공 이야기를 나누었을 것이다.
그리고 박의 전설같은 이야기도 이미 나누었을 것이다.
Park Ji-sung had never felt such crushing disappointment as when he stood in the Manchester United dressing room at Moscow's Luzhniki Stadium last May. His United team-mates were about to play Chelsea in the first all-English European Cup final on a rain-soaked night in the Russian capital. And Park was still in his suit.
Despite having played every minute of the quarter- and semi-finals, Park was dropped, and did not even get on the bench. Sir Alex Ferguson called it the hardest decision of his career.
Avram Grant, Chelsea's manager that night, says he was less surprised than the Korean. "In the semi-final against Barcelona, who pass well, Sir Alex needed a hard worker to chase. But he played 4-4-2 that night against Chelsea, he wanted something different."
The Korean media still refer to it as the "Moscow nightmare". Immediately after United had won a third European Cup, Park said: "The team won so I am happy. Personally it is frustrating not to play in such a big game. But there will be other opportunities."
Admirably dignified. Yet the thought occurs that Park's demeanour might have influenced Ferguson's thinking. There are plenty of big egos in the United dressing room, but Ferguson knew he would get no trouble from Park over the decision.
Park, who turned 28 on Wednesday, is certainly self-effacing. A trawl through the archives for anything said since his arrival at United from Guus Hiddink's PSV Eindhoven in 2005 reveals scant pickings from a man who now has two Premier League titles and might claim a second League Cup winners' medal today against Spurs at Wembley.
He says little, despite having improved his English considerably. Yet he is not soft, having won arguments with his former agents, FS Corporation – they sued in 2006 after his father took control – and Hiddink, over his move from PSV. Park also convinced dubious PSV fans of his quality when a knee injury sidelined him after joining Hiddink, the mastermind of South Korea's 2002 World Cup semi-final team, in January 2003.
Rio Ferdinand, United's captain in Moscow, has no doubts about Park. His nickname in his homeland is Mickey Mouse or Sweet Potato – common for Koreans with rugged good looks – but among his team's followers he is known as Three Lungs. "He's a real players' player," says Ferdinand. "Up there with best in world for movement, and so intelligent and direct with runs off the ball. His work-rate is unreal, he adds a dimension no other player brings to the team. He's underrated, a real top player."
And despite a cooling of their relationship Hiddink still has admiration. "People were surprised I took him to Europe," says Chelsea's new head coach. "He does dirty work for the bigger stars. I appreciate those people, always. His skills? He is tireless, can go for 90 minutes, he's a smart player and is very determined."
Grant concurs. "He is a hard worker who balances out the more creative players. He's not a top scorer but can fight for the team. Sir Alex needs a player like this." Park's father, Sung-jong, a guiding influence and a man not shy of offering his insights, is sure of Park's self-determination. "It was all by his will," he says of the transfer to United. "My son said, 'I want to play there,' when he was watching English football matches."
Sung-jong thought any Premier League club would do. But Park's insistence that it would be United – "even if I have to sit on the bench. I want to learn" – is one of the reasons why Ferguson likes him.
And while he has remained the quiet man, under-promoted in England since his move to Old Trafford, Park's arrival in Manchester completed his transformation into a mega-rich superstar in his homeland.
There are commercial deals with most major corporations, his 2006 autobiography Infinite Challenge sold well and made more millions, while his official fan club has over 87,000 paying members.
"Park Ji-sung is by far the most iconic sportsman in Korea and probably the most celebrated in the whole of the region," confirms Davide Grasso, the Asia-Pacific marketing vice-president of Nike whose tills are ringing because of their client.
"While Cristiano Ronaldo and Wayne Rooney may be seen as higher profile in the UK, Park's popularity in Korea dwarfs theirs. And he was recently voted the most powerful and popular individual in sport by Koreans."
Park, born in Seoul in 1981 and brought up in Suwon, near the capital, is already preparing for retirement. He hopes to coach young players rather than tread the touchline, a choice affected by his father's own childhood. "Financially speaking I'm from a very difficult background," says Sung-jong, who met Park's mother Myung-ja while working in a Korea Metals factory. "I couldn't eat very well. That's probably why he wants to support young footballers."
Park's company JS Limited looks after developing talent and has invested in Star Plaza, a £13m complex in his home province of Gyeonggi – where he has also built a home for his parents – that will house a football academy.
Park attended Suwon Engineering school where concern over his stature – he is only 5ft 8in – faded once a coach recommended him for a university team. An impressive performance against South Korea under-23s caught the eye of a senior coach and he was in the squad for the 2000 Sydney Olympics.
In that same year Park moved to play for Kyoto Purple Sanga in Japan and became the star of Gert Engels' team. "I already knew that he had special talent," the German coach recalls. "I knew he was going to be a very good player. But I didn't realise he'd play for Manchester United."
Park helped Kyoto win their only Emperor's Cup, Japan's premier competition, in 2002 – the year his fame reached new heights in his homeland. "Oh yeah, he was very important, he had a tremendous World Cup," says Hiddink. "He scored a goal [the winner against Portugal] and also made some assists. Then, I took him to PSV."
In moving to Europe, Park was following Cha Bum-kun, his country's only other iconic footballer who scored 55 goals in 121 games for South Korea and won the Uefa Cup with Eintracht Frankfurt and Bayer Leverkusen.
Park had a difficult start at PSV, and a complex relationship with his manager. "Hiddink was very different in Holland, the way he treated me and Lee Young-pyo [former Spurs left-back]," he once said. "Having been like a grandfather in Korea, he was more boss. When I'd heard of Holland, I was actually frightened because it's not at all familiar. I had to adjust myself."
Two months after signing, Park needed a knee operation, which angered PSV supporters unhappy about his form. This was a low point: Park despaired. "I had horrible pain constantly. It was really hard that I couldn't show myself when my club's matches were being broadcast to my own homeland. You know, the happiest moment was when I just played with a ball as a boy, carefree, without worrying about anything."
The Park family began to wonder about a return to Asia. "It's really different in Europe," his father says. "When Ji-sung couldn't do well people threw their drinks at him, insulted him. He thought that was strange."
But Ji-sung's toughness prevailed. "He said that he didn't want to hear that he'd failed," his father confirms and by the following season a fit Park was performing. It was up to him to prove himself in the Champions League, Hiddink recalls, and he did. "I was very pleased with his development."
Park announced himself to a wider European audience in PSV's run to the semi-finals in 2005. A team including Marc van Bommel and Phillip Cocu defeated Milan 3-1 in the second leg – Park scored the opener – only to be eliminated on away goals.
Park had also begun English lessons, though he was not confident enough to speak the language when he signed for United. "He's had English tutors since Holland," says his chatty father, who goes on to talk of romance and family life for his son. "He likes being in England because there are Korean female students. I want him to get married soon. I told him, 'Decide as you wish but don't meet a too pretty girl because she will be your lifetime hardship'."
The move to United might never have happened. When Sung-jong received a call regarding Ferguson's interest there was a clash with Hiddink, who wanted Park to sign for three more years at PSV, with the contract stipulating that he could not be sold for less than $10m. Hiddink also reminded Park of his and the club's close ties to Roman Abramovich. "Stay at PSV a little bit longer then move to Chelsea," he told him.
And, when this had no effect, Hiddink grumbled his message was not being communicated by Park's agents. "When I made my mind up for Manchester I felt that I had betrayed him," Park said. "I knew that Hiddink wanted me to stay, so I found it difficult."
Yet not for the first time Ferguson got his man. Park signed for around £4m and called Hiddink before the medical to thank him and assuage his conscience.
Again Park was nervous about the move, saying before he flew to England: "Maybe it will be a lot worse than I expect. But I cannot run away can I? My parents said it is already a big success that I could take part in the English Premier League."
Park's United career can be judged a success. In his first season there were 33 league starts, a debut league goal against Arsenal in April, and the first League Cup medal thanks to the 4-0 rout of Wigan.
And, despite being dropped by Ferguson in Moscow, he is now an integral part of the Scot's thinking. He played last week at the San Siro in United's goalless draw with Inter and is expected to start today. "He has been in fantastic form," Ferguson says. A new four-year deal is imminent, and away from the game Park has settled in Wilmslow, having bought his home from Patrice Evra.
The Frenchman is just one of the United team-mates Park is friendly with. In a local Korean restaurant there is a photograph of Park alongside Edwin van der Sar and Ruud van Nistelrooy. And, as Sung-jong happily recalls, his son has changed. "In Holland, he couldn't talk to his colleagues unless it was absolutely necessary for a year. But he's doing well in Manchester. He invited Wayne Rooney and other colleagues for dinner as well."
Thoughts of embarrassing pauses over post-prandial espressos can be banished. The boy from Suwon and the scally from Croxteth can talk about successes already shared, future glories to come.
And about Park's already storied life.
http://www.guardian.co.uk/football/2009/mar/01/park-ji-sung-manchester-united
최고!!!!!!
정말 자랑스럽다^^
아... 지성아~ 얼마나 뛰고 싶었던 꿈에 그리던 챔스 결승전이였니... 그 드레싱룸에 수트 차림으로 있으면서 표정 관리를 해야함에 얼마나 힘들었고 상심했을꼬.... ㅠㅠㅠㅠㅠ
퍼디난드는 항상 옳아..ㅠㅠ
정말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레전드가 한국말로 전설인디............
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정말 이글읽으면서 나는 왜자꾸 눈물이나지 그동안 박지성선수의 전경기를 다본나로썬 눈물이 날수바께업다
.................눈물까지야;;; 흑흑 박지성너무잘해 ㅠㅠ 흠....좀상상하기뭐하넹 ㅎㅎ
어린선수를 키우는것도 좋지만.. 맨유에 오래 뛰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그리고 얼른 박지성선수의 명성을 이을 선수가 빅클럽에서 뛰어서 성공해주길 바라는 마음 뿐!!
역시 성공하는사람은 다르다.괜히 그가 축구 세계의 피라미드의 최정점에 위치하고 있는게 아니다.
박지성의 글중에 최고의 기사다!!!
말로 표현할수가 없는...
이제껏 보것중 지성선수에 대한 최고의 찬사와 코멘트 ㄷㄷ
...은퇴준비하세요?
아 뿌듯해라 ....
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닭살이 글 한줄마다 올라온다
내남자ㅠ아 좋아라,ㅋㅋㅋㅋㅋㅋㅋㅋ
루니와 저녁초대를 ㅋㅋㅋㅋ
지성선수가 루니를 엄청 좋아라 하긴 하나봐요 자서전에서 느꼈지만 정말 동생으로서 귀여워 하는듯 ㄷㄷ
박지성 진짜 멋지다...
흐뭇한 기사네요 ㅎㅎ. 참고로 가디언지는 영국 최고 권위의 일간지 입니다. 영어 한참공부할때 읽곤 했는데, 어렵습니다 ㅎㅎ
눈물난다.ㅠㅠㅠㅠㅠㅠ 해석 ㄳㄳ
아...얼마만인가...이렇게 멋진 기사를 읽어본적이ㅡㅜ 정말 한글자한글자 곱씹으며 읽었습니다. 장문기사 번역 감사해요!
마지막 구절 죽이네.. 박의 전설같은 이야기도 이미 나누었을 것이다..캬 역시 가디언
세계4대기사 성지순례완료.
블로그로 퍼갑니다^^ 아 좋아요~~ㅎㅎ
진짜 세계4대기사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ㅠㅠ
최고다 최고 ㅠㅠ
읽고 있는데 괜히 흐뭇한글ㅎ
자랑스럽다!!! 그저 이말한마디뿐!!
박지성이 골을 못 넣는다고 욕하는 악플러들 보면 할 말이 없네요. 골을 못 넣는것은 솔직히 사실이지만 골은 루니나 호날두가 넣으면 됩니다. 허나 박지성에게는 골을 넣는 것 만큼이나 중요한 임무를 가지고 있고 잘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키마우스나 고구마..?
좋은 기사.ㅎ
정말 감동하며 읽었습니다. 스크랩 해갈게요! 감사감사 ^^
아이러브지성
소름돋네 ㄷㄷ 진짜 멋있다... 최고다.
리오퍼디난드 선수들의 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