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둥글이세상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둥글이
4월 23일 대안학교인 [하늘씨앗살이학교]에서 나와 파주시를 향한다.
[김포에서의 동선과 파주로 향하는 길. 통진읍에서 김포시 가는 12km의 길은 단순히 전단지를 찾기 위해 다녀가야 했고, 파주를 향하면서 다시 한 번 거쳐 가야 했다.]
[갈라진 문명의 틈에서 솟아나는 생명. 시멘트 포장도로가 견고했다면 저 푸른 생명들은 결코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영화 ‘지구가 멈추는 순간’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인류를 멸하기 위해서 나타난 외계인에게 한 지구인이 “왜 우리를 헤치려고 하냐”고 묻자, 그는 “인류가 있으면 인류를 비롯한 모든 생물이 멸종한다. 하지만 인류가 없어지면 나머지 모든 생물이 살 수 있다.” 고 말한다. 문명의 번영과 생명의 번성은 공존할 수 없는 것일까?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러하다. 어떻게 인류에게 문명의 번영과 생명의 번성이 함께 할 수 있는 길을 보일 수 있을 것인가? 아마 그것을 보일 수 있는 이가 바로 새로운 시대를 열게 될 것이다. 이는 단순히 환경파괴를 막을 수 있을 만큼의 문명사회를 만들어내는 ‘이론’ ‘원리’ ‘지침’을 말하는 이가 새로운 시대를 연다는 것과는 다른 의미이다. 환경파괴를 막고 생태계와 인류문명을 보존하는 방법은 극히 간단하다. 그것은 ‘지속가능한 세계’가 가능할 수준의 소유와 소비만 하며 사는 것이다. 문제는 ‘환경파괴를 막는 기술적인 방법과 지침’이 아니라, ‘환경파괴를 조장하는 인류의 문명이 변화될 수 있게끔 인류의 생각이 변하게 할 방법’을 마련하는 것이다. 누가 그것을 할 것인가?]
[누워서 쉬고 있는데 개새끼 한 마리가 다가오더니 왈왈거린다]
[이놈은 짐 싸서 떠날 때까지도 계속 짖어댔는데, 그 옆에 놈의 표정이 더 재미있다.]
[그 옆의 놈 / 길가는 행인을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길가는 행인을 보고 짖어대는 앞집 개를 유심히 살피고 있다. 그 진지한 표정을 보니 아마 ‘쓸데없이 사나운 앞집 개’의 정신분석 중 인가보다. / ‘그는 상담자가 찾아오면 두 손을 가지런히 무릎위에 얹고서 마치 영혼까지 빨아들일 듯 한 눈빛으로 상대의 눈을 주시하곤 했다. 하지만 그 눈빛에는 애정이 있었다. - 정신분석학자 프로이드를 회상한 한 동료의 글’]
[길가 한편으로 모래 무더기가 쌓여 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 속에 조개껍질 지붕을 한 모래 아파트들이 세워져 있다.]
[일산대교를 향한 해안 도로를 가기 위해서 논길을 택한다]
[쭉 뻗어 있는 줄 알았는데, 그 끝에서 절망을 대한다.]
[질펀한 논길을 잠시 헤매기는 했지만, 푸른 생명의 발랄함이 함께 하고 있어서인지 기분은 상쾌했다.]
[논길을 빠져 나와 잠시 쉰다.] 다시 걷는 길. 길가 정비소에서 키우는 한 무리의 개들...
[“멍멍~” 까짓것!]
[“왈왈~” 이쯤이야!]
[“으르렁~” 아구 깜짝이야! 이 개새끼. 갑자기 앞에서 튀어나오는 바람에 하마터면 한판 붙을 뻔 했네. ]
[일산대교로 향하는 강변도로 철책 / 이곳 강변도로는 한강 북단이기에 북한 무장부대 침투와 도발을 막기 위해서 막아놓은 철책이라고들 다들 알고 있다. 하지만 둥글이가 봤을 때는 그보다는 북한 보따리장수 아줌마들이 나룻배 타고 와서 물건을 팔아 원화를 가져감으로 인해서 국가 경제에 큰 타격을 줄 수 있음을 감지한 당국 정책자들 경제봉쇄 조치로 보인다. 기실 남북 분단 이후 우리 군에 가장 큰 인명 살상을 불러일으킨 것은 바로 ‘우리 군’이다. 군 내부의 사고나 구타, 자살로 인해 죽은 장병들은 아마 ‘주적’이라고 일컬어지는 북한군에 의해 죽은 숫자보다 수십 수백 배가 더 많을 것이다. 그것은 북한 역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공포감과 경계심, 불신이 만들어낸 폐해는 언제나 실재 존재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불이익을 만들어 내곤 한다.]
[보따리장수 아줌마들이 철책을 넘어오다가 머리에 부딪쳐 기절하라고 박아 놓은 짱돌들. 이렇게 인심이 흉흉해서야...]
[왼쪽은 철책, 오른쪽은 개발예정지구의 흉흉한 풍경]
[난데없이 대하게되는 서정적 풍경??? 강가나 호수에 백로 한 마리가 노니는 장면??? 사실은...]
[공사장 폐수웅덩이에서 백로 노니는 장면. 주변에 물 먹을 곳이 이곳 밖에 없는 듯. 미국 슬럼가에 가녀린 아이 하나가 내 던져진 모습.]
[저 멀리 일산대교의 모습/일산대교는 한강 최북단의 다리.]
[일산대교에 오르기 직전]
[일산대교 중앙에서 바라보는 한강 중심부]
[일산대교에서 바라보는 고양시 일산구 / 일산대교 건너면 고양시]
[고양 일산구 강변의 철책부대 전경 / 아~ 오렌지 체육복을 생눈으로 본 것이 얼마만인가... ]
[일산대교 넘으면서 내려다보는 ‘자유로’ / 이 길로 10여 km만 더 가면 나그네에게는 그야말로 죽음의 땅인 서울 본진에 당도함.]
[고양 일산에 당도하여 녹초가 되어서 묵을 곳을 찾다가 내려간 다리 밑 / 카메라 화질이 안 좋아서 잘 안보이지만, 그 끝은 작당모의를 하는 중고등학생 녀석들의 아지트였다. ㅠㅜ]
[개천을 지나며 대한 또 하나의 슬럼가 속 어린아이 / 저 구정 물 속에 몸을 담그다니, 오죽 주변에 물이 없었으면 저러고 있을까.] (고양시)일산으로 넘어온 후에 텐트 칠 곳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데, 여기저기 중고생들이 작당을 하고 있어서 어쩔 수 없이 근처 고양한내초등학교로 들어간다. 아직 날이 훤해서 교장실로 직접 찾아 들어간다. 여선생님이 앉아 계신다. 주저리주저리 말씀 올리니, 교장선생님은 사려 깊은 어조로 하루 묵게 하는 것은 자신의 소관이 아니라, 경비를 담당하는 주사님이 결정하실 일이라고 하신다. 그러면서 밖으로 안내해서 주사님을 찾기 위해서 한참을 수고하신다. 결국 주사님이 되돌아 오셨고 의견을 물으셨는데, 주사님 역시 허락하셔서 하루 묵게 되었다. 내 정말 이럴 줄 모르고 그야말로 재수보기로 들어왔던 것인데, 하루 잘 묵다 갈 수 있었다.
[고양한내초등학교 한편에서 하루 묵기] - 장돌뱅이의 추억- 텐트를 치고 나서 밥 준비를 하고 있으니 주사님이 다가오신다. 대뜸 ‘주막 같은 곳에도 머무는지’에 대해서 물어 오신다. 웬 주막? 무슨 말씀인지 물었더니, 자신도 50년대 말 60년대 초까지 전국을 다니며 장돌뱅이 생활을 하셨단다. 전국 장날 맞는 곳을 찾아다니며 물건을 팔로 다녔는데, 밥만 사먹으면 주막집에서 하루 묵을 수 있었단다. 장돌뱅이 생활 끝내고 공부를 해서 대학에 들어가고 중앙부처 행정공무원 과장까지 하셨다고 하는데, 삶을 살아오면서 가장 그리운 기억이 바로 그때 장돌뱅이로 떠돌던 때였다는 것이다. 그러며 텐트와 버너의 가격 등을 물어 오시는데, 더 늦기 전에 야영을 좀 다녀야겠다는 것이다. 터 박고 살 작은 땅덩어리를 얻기 위해서 평생을 핏발 세워 일 해야 하고 나머지 인생을 그 땅을 지키기 위해서 핏발을 세워대는 뻑뻑한 인심 가득한 도심. 그 도심을 관통해 오며 절로 마음이 흉흉해지던 나는 문득 그가 회상하는 주막의 추억에 야릇한 기분이 밀려온다. 떠돌이 장돌뱅이나 나그네를 위해 넉넉히 품 벌리고서, 밤마다 호롱불 아래서 저마다의 인생이 너스레 떨어지는 그 광경이 머릿속에 한편의 드라마처럼 떠올려 졌다. 밤이 늦도록 막걸리를 대작하며 이야기를 주고받던 유난히 사연이 많은 마지막 사람들까지 자리를 펴고 누우면, 초저녁에 아궁이에 지핀 뜨끈뜨끈 장작의 열기가 이들의 단잠을 더더욱 깊이 이끌었을 것이다. 이런 저런 장사치들과 여행객이 한데 어우러진 방안의 풍경은 참으로 살가웠을 것이다. 아침까지 충청도를 밟고 있던 박씨의 발이 강원도를 거쳐 지나온 최씨의 배위에 가 있고, 전라도 장돌뱅이 김씨의 머리에는 전라도로 내려갈 준비를 하는 이씨의 허벅지에 눌려 있는 모습. 그 손과 발이 누구 것인지 구분할 수 없게 뒤섞이고 어우러지는 떠돌이들의 회합의 장. 싸늘하지만 신선한 대기가 낮 동안의 어수선함을 모두 걷어갈 새벽녘이 되면, 문지방 앞에 머리를 대고 유난히 시끄럽게 코를 골던 사내의 소리도 점차 작아지고 이를 신호로 횟대 위에서 장닭이 울어댈 것이다. 그리고 창호지 문구멍으로 새날의 여명이 살며시 전해지기 시작하면 하나씩 몸을 일으켜 세우고 여장을 꾸려, 다시 저마다의 사연이 있는 길을 향할 것이다. 자기 재산의 유지-보호를 위한 냉정하고 빡빡한 감성을 가진 ‘정착민’들을 위해 만들어진 세상 속에서 끊임없는 박대를 받으며 그 먼 길을 지나온 나그네로서는 이방인을 차별하지 않고 따사로이 품어주었을 그 ‘주막’이라는 곳이 마치 내가 찾아야할 이상향으로까지 여겨진다. 그러고 보면 현대인들은 이정도의 발전과 문명의 편리를 이루기 위해서 참으로 많은 것을 버린 듯하다.
[떠돌이의 향수를 공유하는 주사님께서 밥반찬과 간식까지 가져다주신다. 역시 길을 떠나봤던 사람만이 길을 떠난 이의 노고를 아는 듯하다.] -숙직의 공포- 그런데 주사님은 이날 밤이 오는 것을 몹시 걱정하고 계셨다. 사단이 일어날 것이라고 계속 우려하고 있었다. 사건의 발단은 이랬다. 학교 안 사열대에 어떤 고등학생 놈들 몇몇이 들어와 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가가서 좋은 얘기로 “이런 곳에서 담비 태우면 안돼요”라고 얘기를 했더니, 등치도 큰 놈이 아래위로 꼴아봤단다. 그래서 경찰서에 신원 기록이라도 할 수 있게끔 신고 전화를 했단다. 경찰이 녀석들의 신분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했기에 녀석들이 저녁에 와서 뭔 일 저지를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고양에서 이 학교 저 학교 경비 담당을 했었는데, 저녁에 술 먹고 유리창 깨고 가는 놈들이 한두 놈이 아녔다는 것이다. 그래도 이 학교는 조용했었는데, 낮의 일 때문에 무슨 일이 빚어질 것 같아 다소 불편한 마음을 드러내고 계셨다. 그러한 두려움은 근거 있는 것이었다. 과거 아는 야간경비 하는 분에게 고등학생 7,8명이 ‘손 봐 주겠다’고 저녁에 찾아왔던 적도 있었다고 하고, 다른 어떤 곳에서는 밤에 찾아와서 얼굴에 염산까지 뿌려 얼굴을 망가트려 놨다고 한다. 경기도 고양의 일산 신도시라고 할 것 같으면, 도시화의 상징쯤으로 여겨지는 곳인데, 이 뒷모습이 이리 처절하고 끔찍할 줄이야. 청소년들의 이러한 비행과 폭력을 막는 어떠한 장치도 존재하지 않는 곳. 도시화 덕에 공동체가 무너진지 오래되어 이를 잡아줄 어른도 존재하지 않았고, 경찰은 사건이 끝난 후에야 뒷수습이나 할 분이다. 물론 이러한 청소년들의 만행은 문제의 표면적이고 단편적인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을 그리 방황하게 만들었을 도시생활의 황폐함은 진즉에 어른들의 마음을 싸늘히 만든 터였을 것이고, 그 결과가 2차 3차로 작용한 결과 간접적으로 청소년들의 비행으로 이어진 것이다. 정말 진지하게 마음속으로 물어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를 위해서 과연 이러한 도시화가 권장되어야 할 것인가? 통장을 채울 수단을 빼고는 정녕 도시화는 인간을 위해서 무엇에 득이 되는가...
4월 24일 아침에 일어나서 하늘을 보니 구름이 가득하다.
금방 빗줄기가 쏟아져 내릴 듯하다. 비 떨어지기 전에 부지런히 걸음을 재촉한다. 8차선 도로에 들어서 한참 걷다보니 거대한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한국국제전시장(KINTEX)은 대한민국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대화동에 있는 종합전시장이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경기도, 고양시 등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공동 출자해서 2005년 문을 연 건물이다.] 건물의 규모가 어마어마한데, 항공사진으로 대충 재보니 좁은 쪽이 100m 긴 쪽이 300m 크기이다.
[항공사진에서 볼 수 있는바와 같이 그 크기가 지역 한 블록과 맘먹는다./출처 : 다음지도] 그런데 그 옆에 이보다 더 큰 건물을 하나 더 짖는다고 한다. 건물 크게 지어서 떼돈 벌었는가 보다. 동네 슈퍼 다 망하고 이마트만 살아남는 것처럼, 전시장도 중소 전시관은 다 문 닫고 거대자본을 들인 큰 전시장만 살아남는 형국인 듯하다. 이 번지르르하고 무지막지한 자본의 전횡은 초반에는 '없는 사람‘의 숨통을 죄겠지만, 결국 ’가진 자들‘까지 함께 무너트리리라.
[도시화의 횡포 속에서도 꿋꿋이 생명을 이어가는 생명 ]
[한참 더 걸어서 드디어 파주.] 파주시 파주는 서울과 개성의 중간 지점에 위치하며, 임진강과 한강 하류를 끼고 있는 지역으로 인구 32만의 도시이다. 과거에는 관서지방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길목이었으나 현재는 군사분계선이 지나며 임진각·판문점 등이 있다. 북측으로 가장 오묘하고도 깊게 위치한 지형에 세워진 ‘통일전망대’가 있어서 그곳에 가서 남북분단의 현실을 직접 눈으로 보고 체험해볼까 가늠해봤지만 생각을 접었다. 전남 해남에 가서도 ‘땅 끝 마을’을 가지 않았던 터이다. 둥글이는 문화체험, 역사체험 온 것이 아니라, 오직 애들한테 전단지 나눠 주기위해 온 것이기에 그냥 지나야 했다.ㅠㅜ 이런 것 저런 것 다 보고 다니려면 환갑이 지나도 활동이 끝나지 않을 것이기에... 흰머리 나기 전에 활동을 끝내야 한다는 역사적 사명의 완수를 위해서~ .
[공장을 만드는지 아파트 단지를 만드는지, 산을 깎고 평지를 다지는 흉흉한 벌판 너머, 공구 소리 시끌뻑짝 한 공사판을 좌우로 끼고 저 멀리 파주시가 눈에 들어온다.]
[길가의 잘려나간 옥수수 대 위의 무당벌레 한 쌍]
[부지런히 걸어 다리 건너면 파주시] 유난히 큰 파주시 도서관에서 자료정리를 하고 나서,
[파주시도서관] 밖으로 나가보니 또 비가 떨어지고 있었다. 잠깐 서성이다가 도시 안에 텐트 칠 곳도 없고 해서 또 인근 금릉중학교로 들어간다. 과거에는 학교에서 좀 머물 것을 허락받으려 했다가 삼진 아웃(몇 번 거절) 당하곤 했는데, 근래는 연타석 홈런이다. 교감선생님은 물론이거니와 정말로 사람 좋으신 주사님 덕분에 건물 안쪽 뒷문 현관 바깥에 텐트를 치고 묵을 수 있었다.
[뒷문 현관에 텐트를 치고/이렇게 건물 안쪽에 텐트를 치면 바람과 습도까지 차단됨]
중학교였기에 9시까지 자율학습이 있는 관계로 그때까지 텐트를 못 치고 서성거리며 대기해야할 상황이 되자, 친절하신 주사님은 책상과 의자까지 갖다 주시며 볼일 보라고 자리를 마련해 주셨다.
[내 떠돌이 인생 중 나만을 위한 맞춤형 학습 공간을 제공받기는 또 처음] 주사님은 나름대로 예순 셋이 되실 때 까지 사업하시다 접으셨다고 한다. 그래서 캐나다로 가서 살려고 갔다가 언어가 안통해서 언어 공부하기 위해서 다시 와있는 중, 그냥 눌러 앉으셨다고 한다. 역시 고향이 좋은 것. 인품이 탁월하셔서 뒷문 쪽에 재우게 해주시는 배려를 비롯한 여러 도움을 주시면서도 “젊은 분 이렇게 추운 곳에 자게하고 쓸모없는 노인은 따뜻한 데서 자는 것이 죄송스럽네요”라는 말까지 하셨는데, 다음날 아침에는 밥까지 차려주셨고, 샤워까지 하도록 배려해 주시는 것이다. 우유를 싸주시기도 했는데, 염치없는 둥글이 “쌀 도 좀 가져가도 되죠.”라고 여쭤 한줌 얻어왔다. 이런 기분을 바로 사람들은 ‘대박’ 났다고 하는 걸까? 단지 나를 도와줘서가 아니라, 이 황량한 세계에서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분 덕에 하루를 버텨낼 용기를 얻는다. 4월 25일 오후부터 다시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내리는 비를 맞고 이곳저곳 잘 곳을 찾아다니다가 근린공원 산 중턱의 야외 공연장 아래 여장을 푼다. 거대한 플라타너스 나무의 하늘거림이 평온함을 더해주고,
[와~~~~ 크다.] 내리 비춰지는 가로등이 적막감을 고조시키는,
[아~~~~ 고요해라.] 비까지 피할 수 있는 최고의 자리였다.
[최고야 최고~] 추적 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도시의 번잡함 속에 한참을 헤매다가 비가림막이 있는 야산의 공원에 텐트를 쳐 놓고 자리에 앉으니, 참으로 한가롭고도 한가롭다.
4월 26일 일요일
[그런데... 제길~ 아침에 일어나 보니 역시나 수목이 만들어내는 습한 기운이 텐트를 흠뻑 적셔서 버너로 말려대야 했다. ㅠㅜ 산은 이게 안 좋단 말이야.]
[빗물괴인 웅덩이를 빠져나온 우람한 지렁이가 어기적거리는 것도 눈에 띄고]
[파주도서관 인근 주말농장 풍경/다채로운 작목들이 주인의 사랑과 봄볕의 따스함에 의해서 고개를 들 준비를 하고 있다.]
[포로로 잡혀 포박되어 있는 멍멍이와 그 주인. 주인이 농작물을 다듬는 모습을 면밀히 살피고 있다. 아마 탈출에 성공하면 산골에서 농사 짖고 살아가려는 듯 유심히 농사짖는 기술을 살피고 있었다.]
- 경악 - 이날 저녁에도 전날 텐트를 쳤던 근린공원을 향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텐트와 침낭이 습기로 좀 젖고, 지나는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저거 뭐야? 누가 자는가봐?)가 귀에 거슬리기는 하지만, 이만한 잠자리가 없다. 그런데 그 자리를 다시 찾고 나서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 인간들이 저질러 놓은 만행. 뒤쪽에도 소주병이 또 하나 깨져 있었다.] 이 짓거리는 ‘짱구’를 술안주로 즐기며, 양담배 말보르를 태우고서는 불씨를 끄지도 않고 바닥에 꽁초를 내던진 최소 3인 이상의 인물(종이컵의 숫자로 예상컨대)이 벌여놓은 행패였다. 치우기 싫으면 그냥 갈 것이지 병을 돌 벽에 던져서 깨트린 것이었다.
[담배꽁초가 산책로 나무 바닥 사이에 끼어서 나무 바닥을 살짝 태우다가 꺼진 모습] 안그래도 전날 그 1m 떨어진 곳에서 나무 바닥이 탄 모습을 봤던지라 어떤 놈들이 그랬는지 궁금해 했었다.
[어떤 인물이 나무 바닥을 태운 모습] 그런데 그런 비슷한 수준의 무리들이 다시 한 번 이 짓거리를 부린 것이었다. 그것도 백주 대낮에... 산책로에 사람들 거닐고 있을 시간에... (내가 이날 아침 7시까지 이곳에 있었기에 그 이후에 다녀간 것이다.) 쓸어 담을 수 없는 자잘한 조각은 빼고 대략 주워서 비닐봉지에 집어넣었는데, 계속 입에서 욕지거리가 나오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법도 했다. 상처가 생기면 염증이 나고 곪아 터지듯이, 뭔가 그들 정신의 염증이 저런 현실을 만들어 냈겠지. 불행한 사람들... 사랑받아야 할 사람들... 넘쳐나는 사랑을 주체하지 못해서 교회에서 울고불고 하는 사람들은 그 사랑의 100분의 1이라도 좀 저런 사랑이 모자란 사람들에게 나눠주면 안 될까? 저녁에 혹시나 ‘그 패들이 또 와서 술 먹고 행패를 부리면 어쩔까’ 하는 걱정과 ‘낮 술 즐겨 먹는 이들은 밤까지 처마시지는 않는다’는 경험이 바탕이 된 자위 속에 줄다리기 하다가 잠이 든다. 누워 있는데 중고등학생 쯤의 목소리가 들린다. “누구까?” 그러며 텐트가 잠깐 들썩인다. 지퍼를 열어서 쳐다보니, 슬그머니 달아나면서 멋쩍은 듯이 “죄송합니다”하고 인사를 하고 사라진다. 4월 27일 월요일 역시나 텐트는 흠뻑 젖었지만, 싱그러운 대기가 수목을 촉촉이 적시는 상쾌한 아침을 맞는다.
[봄부터 힘겹게 보도 불록 사이를 삐집고 나와 꽃대를 최대한 하늘 향해 들어 올려 화사하게 꽃을 피워야 했던 임무를 모두 마친 민들레. 꽃씨를 날려 보낸 너. 과연 너의 지금의 존재 이유는 무엇이니. 다만 사라져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니?] [파주새금초등학교 활동]
걸어서 10여분 거리에 있는 새금초등학교로 향한다. 그간 거언 1주일 동안 배낭 속에서 묵혀지던 전단지를 아이들에게 나눠준다. 교감선생님쯤 되시는 선생님이 지나면서 ‘뭐하시냐’고 묻지만 취지를 말씀 드리자, 고생하라고 독려하고 가신다. ‘모르는 사람이 나눠주는 것을 받으면 안 된다’는 교육이 미리 된 때문인지, 몇몇 아이들은 피해서 막 달아나고, 전단지를 받은 아이에게 손가락질 하면서 그 한심함을 토로한다. ㅠㅜ 나눠주는 중에 가끔 뒤를 돌아보면 열심히 읽고 가는 아이들이 드믄 드믄 눈에 띄었고, 못 받고 지나쳤다가 친구의 것을 보고 다시 와서 달라고 하는 아이도 있었다. “인간과 자연을 사랑해 주세요”라며 전단지를 건네자 한 아이는 답변한다. “저 원래 인간과 자연을 잘 사랑하고 있어요.” “더 잘 사랑해 줘야해^^” “네~” 과연 내가 여기까지 걸어와서 이걸 나눠주는 만큼의 어떤 기대하는 (자잘한)‘작용’이 그들의 마음속에서 빚어질 것인가.
[품이 넒은 느티나무가 그 정문 안쪽에 넉넉히 버티고 있는 새금초등학교]
[캠페인을 마치고 주변 공터에 텐트와 배낭을 널어놓고 햇볕에 말린다. 오랜만에 따사롭게 비춰져서 꿉꿉한 냄새를 증발시킨다. 수목이 많은 습기 가득한 곳에서 하루 잠을 청하고 나면 이렇게 한 두 시간씩 볕에 말리는 것이 일과가 된다. 내 결단코 다시는 산속 공원 위에서 잠을 청함으로 이런 번거로운 일을 벌이지 않으리라~~~ 맹세! 다짐! 결의!]
[조만간 퇴역해야할 처지의 둥글이 손수건 겸, 목욕타올 겸, 마스크 겸, 눈 가리게. 2004년 해창 갯벌의 새만금 반대 집회 현장에서 받은 수건인데, 그간 2년 반의 기간 동안 둥글이와 같이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 천도 쉽게 꿰매지지가 않는 것이고 삭아서 찢어지고 있는 이유로 조만간 큰 결단을 내려야 할 듯. ] 참고로 새만금 사업은 계속 추진되고 있고, 만경강, 동진강 하구의 그 거대한 생명의 보고인 갯벌은 죽어가고 있다. ‘자본의 힘’은 올바른 명분과 순수한 이들의 용기와 희생을 간척지 매립하듯이 아무런 죄책감 없이 죄다 파묻고 있다. 결국 그 지칠 줄 모르는 ‘자본의 욕망’으로 그들 스스로도 파묻힐 것이다. 왜 ‘자본의 눈’으로는 그게 안 보일까?
[저녁에 마땅히 텐트 칠 곳에 없어 산속 공원으로 다시 올라간다.ㅠㅡ 비온 다음이라 개구리 우는 소리가 대기를 진동한다.] --- 2009년 4월 28일 경기도
|
첫댓글 용기 있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경험인것 같습니다.
다 좋은데, ---- "개새끼"라 일컬은 것은 좀--- ' 새끼개 ' 라 하면 다소 낫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