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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der Olam Rabbah (세데르 올람 랍바)
우리가 마태복음 1장의 예수님의 족보를 읽어보면 8-9절에서 왕들의 이름이 빠져있는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9절에서 요람이 웃시야를 낳았다고 하는데 역대서와 열왕기를 보면 여호사밧이 여호람(요람)을 낳고, 여호람이 아하시야를 낳고 아하시야가 요아스를, 요아스가 아마샤를 낳고 아마샤가 웃시야를 낳았음을 알수 있습니다. 따라서 여호람(요람)이 웃시야를 곧바로 낳았다고 하고, 이를 근거로 다윗에서 바빌론 이거까지 14세대였다는 신약성경의 기술은 잘못되었다고 쉽게 생각될 수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역대하 22장에서는 아하시야가 즉위할 때 나이가 42세였다고 기술된 반면에 열왕기 8장 26절에서는 그의 나이가 22세로 나옵니다.
이와 같이 성경이 마치 모순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성경의 기술방법에 대해서 검토할 필요가 있음을 느끼는 것입니다.
(1) 세데르 올람 랍바에서 생략의 원칙 – Omission Principle
유대인들에게는 성경외에 수많은 문헌들이 있으며 그 문헌들중에 성경 자체에서 언급된 책들로 야살의 책, 잇도의 책, 갓의 책, 나단의 책등이 있음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또한 그외에도 아람어 탈굼이 있으며 그중 옹켈의 탈굼은 구약성경을 아람어로 번역해놓은 책입니다. 구약성경으로는 가장 중요한 사본이 바로 벤하임 맛소라이며, 다음으로 벤 아셀계열의 맛소라, 그리고 70인역으로 불리우는 셉투아진트(LXX), 사마리아 오경(모세오경만), 알렙포 사본등이 있습니다.
여기서 위에 제기된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줄수 있는 문헌으로는 위에 제목으로 언급한 세데르 올람 랍바(Seder Olam Rabbah) 가 있는데 아마 그 의미를 한글로 옮긴다면 대 연보(大年譜), 혹은 만세보(萬世譜) 라 이름함이 적절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여기서는 편의상 만세보로 부르겠습니다. 이것은 창세부터 주후 135년경의 바코바 반란시까지의 이스라엘인들의 족보를 수록한 것으로, 실제로 창세부터 알렉산더 대왕시대(주전 333경)까지는 매우 소상히 기록하였으나, 그 이후 세대는 대충 선별적으로 기록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국에서도 가문별로 족보들을 갖고 있습니다. 저희 집안도 엄청난 양의 족보를 갖고 있습니다. 또한 족보외에 저희 집안에는 가승을 갖고 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 만세보는 창세부터 노아 홍수까지 몇 년이 걸리고, 누가 몇살까지 살았고, 바빌론에서 바벨탑 붕괴와 민족 분산이 언제 일어났는데 그것이 성경족보와는 어떻게 연결되는가, 등을 설명하고 있는 책입니다. 예를들면 그 바벨탑 분산 사건은 창세기 70민족들 족보상으로 펠렉(창 10:25, 11:17) 시대에 일어났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펠렉의 아우 욕단이 이 사건이후로 동진하여 새벌을 만난 것이 시베리아(새벌)이었으며 그 후손들이 동진하여 한국까지 이동해왔다는 설이 상당한 타당성을 갖는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것입니다.
또 이 펠렉시대에 지구의 대륙이 하나였었는데 나뉘어서 펠렉의 이름이 나눔이라는 뜻을 갖게된 것도 알려집니다. 이러한 만세보가 바로 세데르 올람 랍바이며, 이것보다 간소하게 쓰여진 작은 책이 세데르 올람 주타 입니다.(Seder Olam Zutta- 소연보) 그런데 이 책은 주후 160년경, 135년의 바코바 반란이 실패로 돌아간 이후, 유대인들의 분산과 소멸을 막기 위해 쓰여진 것으로 보이는데 그것은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늘 존재하였던 기록들을 다시 집대성한 것이었고, 이후 여러 편집자들을 거쳐서 오늘날에 이르렀습니다. 그 상세는 다음에서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jewishencyclopedia.com/view.jsp?artid=428&letter=S
http://en.wikipedia.org/wiki/Seder_%27Olam_Rabbah
http://religion.wikia.com/wiki/Seder_Olam_Rabbah
http://religion.wikia.com/wiki/Seder_Olam_Zutta
이 세데르 올람 랍바는 거대한 족보라 할 수 있으며 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건들을 기록해놓은 책으로서 성경 연대기의 데이터 베이스요 성경 연대기보다 훨씬 상세한 것입니다. 비록 이 책이 오늘날 전해지는 바로는 여러 편집을 거치고 거기에 첨기된 주해들이 자칫 독자들을 오도하게 할 수 있지만 적어도 분명한 것은 성경연대기가 기록될 때까지는 정확한 자료로 존재했었다고 저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연대기는 종종 하나님의 관점에서 연대를 생략하거나 연대계산에 제외시키는 견해들을 포함하였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리하여 불신 국왕들은 하나님의 나라의 왕이 아니며 불신자들로서 제외시켜 별도로 표기하고 별도로 관리한 것으로 유대인 현인들은 해석하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마태복음 1장에서 언급된 예수님의 족보상의 네 왕의 누락입니다. 앞서 언급한 세 왕들 아하시야, 요아스, 아마샤 외에 여호야김(엘리야김)도 마태 1장 11절에서 빠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만일 누가 왕가의 족보를 언급하면서 이 빠진 왕들을 포함하여 언급하였다면 무식을 폭로한 것이라고 비난 받았을 것입니다.
즉 역대상, 역대하, 열왕기 상, 하는 종종 이러한 세데르 올람 랍바를 반영하여 생략의 원칙을 사용하였다는 것이 유대인 현인들, 학자들의 해석입니다. 예컨대 에즈라나 나단 등의 기자들이 성경을 종합 집대성하고 편집하였을 때 어떤 왕들의 세대수나 나이들을 하나님이 보시는 관점을 따라 인간들의 생각과 다르게 기술하였다는 것이 유대인 현인들(Sages)들의 해석인 것입니다.
(2) 역대하 22장 – 아하시야의 나이와 마태 1장의 생략된 왕들
역대하 22장 2절에는 아하시야의 나이가 즉위시에 42세로 나옵니다. 그런데 열왕기 8장 26절에는 그의 즉위시 나이가 22세로 나옵니다.
아하시야의 나이는 실제로 22세였음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왜 역대하에서는 42세로 기술했을까요? 이것은 여호사밧의 결혼을 반영한 것이었다는 것이 만세보의 기록들을 연구한 유대 현인들의 해석입니다. 여호사밧은 수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 자신은 하나님께 충실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오므리의 가문 즉 아합의 가문의 딸을 취하여 결혼하였습니다. 이 사실은 성경에는 언급되지 않습니다만 대하 18장 1절이 그것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 그는 아합의 매제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아합과 연합하였습니다(대하 18:1). 성경에는 그의아들 여호람이 연혼한 것으로 나오지만 만세보에는 오므리의 딸과 결혼한 것으로 나옵니다.
그는 또 그의 아들 여호람을 아합의 딸 아달랴와 결혼하게 하였습니다(왕하 8:18, 대하 21:6). 그는 우상숭배자 아합의 딸 아달랴의 시아버지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가증스러운 것이었으며 하나님은 그 자손들을 징벌하시어 3-4대까지 외면하셨습니다(출 34:7). 다만 그의 아들 여호람은 직접 아버지를 보았고, 아버지의 믿음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아버지의 보호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는 왕의 족보에는 들었습니다. 그는 비록 우상숭배자와 결혼하였지만 그에 지배받지는 않은 것으로 만세보는 분류한 것으로 보입니다. 만세보에서 왕의 족보에서 별도로 분리해낼 때에는 혈연 뿐만 아니라, 우상숭배자의 영향과 양육관계, 믿음의 행적등을 반영하여 분류하였다고 합니다.
아버지 여호사밧의 사후에 그의 아들 여호람은 그의 아내 아달랴에 의해 우상숭배, 여신 숭배의 길로 갔으며 그는 마침내 창자가 빠져 나오는 많은 고통중에 죽었습니다. 그는 다윗 성에 장사되었지만 열조의 묘실에 안장되지 못하였습니다. 여호람은 살아있는 동안 여호사밧의 다른 아들들을 죽였습니다(대하 21:4,13) 여호람은 그 모든 불행의 출발이었습니다. 엘리야는 여호람이 창자가 빠져나오는 중병으로 죽을 것을 예언하였습니다(대하 21:12) 여호람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죽이려 하였으며 그 정신은 아달랴에 의해 계속되었습니다(대하 22:10-12)
그러한 까닭에 아달랴의 아들 아하시야는 유대왕의 족보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아달랴의 아들로서 우상숭배왕조 아합의 족보에 들어가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대하 22:2의 아하시야의 나이 계산은 바로 여호사밧이 오므리의 딸과 결합한 때로부터 기산되었다는 것이 유대 현인들의 해석입니다. 그 시점부터 여호람이 태어났고 그로부터 아하시야가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의 분노의 관찰을 연대기 상에 반영할 수 있는 방법은 그것이었습니다. 그렇지 않고는 인간들은 하나님의 이러한 제외와 외면을 공부할 촉매를 갖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아달랴는 유다왕의 씨를 진멸하려 하였습니다(대하 22:10-12). 그러나 여호야다의 아내 여호사브앗이 요아스를 숨겨서 그의 생명을 6년동안 보전하였고 요아스는 여호야다에 의해 6년후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고 왕이 되었습니다. 그가 선한 일을 한 것은 오직 여호야다의 생존 기간 중 뿐이었으므로 그 자신의 공이었다기 보다는 여호야다의 공헌이었습니다.
요아스는 여호야다의 사후에 사해질수 없는 매우 중대한 범죄를 자행한 사람으로서 예수님에 의해 언급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마태 23:35절에서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죽은 사가랴의 피를 언급하셨습니다. 아벨은 당시 성경의 최초의 순교자였습니다. 스카랴는 당시 성경의 맨 마지막 책인 역대하의 마지막 순교자였습니다. (예수님은 벤하임 맛소라와 같은 편제의 성경을 읽으셨습니다!) 제가 보는 벤하임 맛소라 성경은 이 순서대로 쓰여 있어서 말라키가 중간에 들어있고 역대하가 맨 끝에 나옵니다. 스가랴도 중간에, 룻기가 후반부에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스카랴는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죽었다고 말씀되어졌습니다(대하 24:21) 이것은 참으로 돌이키기 어려운 죄악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죄는 제단에 갖고 가서 고백하고 사함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제단을 넘어선 지점에서 살인이라는 중죄를 범하면 더 이상 죄사함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족보상의 왕으로서 완전 실격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 역시 하나님 앞에 악을 행하였고 그는 살해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만세보에서 유다왕에서 제외된 사람들은 첫째는 우상숭배자 아합의 집안과의 혈연관계이지만 아울러 둘째로 그들의 양육과정과 행적도 감안하여 유다왕에서 제외되었다는 것이 유대인 학자들의 해석입니다
엘리야김 혹은 여호야김으로 불리우는 왕도 예수님의 족보에서 빠진 이유가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불태우며(예레미야 36:23) 하나님 앞에 매우 악독한 행위를 했고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만세보의 내용을 아는 사람들이 마태 1장에서 예수님의 족보에 아하시야, 요아스, 아마샤가 들어있는 것을 보았다면 당시 유대 족보를 아는 사람들은 웃어버렸을 것이라고 유대학자들은 해석합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는 하나님 앞에 가증스러운 역사들은 생략되고 빠졌습니다. 그것들을 쓰는 것은 마치 이방인 불신자들의 역사를 쓰는 것과 같았을 것입니다.
이 기회에 말할 수 있는 것은 유대인들은 성경외에도 많은 문헌들을 갖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미쉬나(구술 율법-암송용)나 미드라쉬(주석서), 탈굼(아람어 번역본) 들이 있고 이와 같은 세데르 올람 랍바, 세데르 올람 주타가 있었습니다. 요세푸스의 역사기록, 아타파누스의 역사기록들도 참고가 될 것입니다.
로마 카톨릭은 요세푸스의 책들을 아주 싫어합니다. 그 이유는 그가 유대인들이 당시에 성경의 정전(캐논)으로 오늘날 우리가 읽는 성경들만을 인정했다고 증언하기 때문입니다. 카톨릭은 외경을 성경으로 인정받기 원합니다. 그러나 요세푸스는 외경은 정경으로 인정되지 않았다고 증언합니다. 카톨릭은 요세푸스가 예수님을 믿지도 않았던 불신자였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카톨릭은 예수믿는 믿음을 강조하지 않다가 갑자기 자기들의 외경을 반증하는 역사가를 비난하는 것입니다. 카톨릭은 성경으로는 존립이 불가능합니다. 그들에게 외경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 외경을 요세푸스가 정경이 아니었다고 증언하는데 결코 카톨릭은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며 이에 따라 요세푸스는 예수 그리스도를 안믿는 사람이었으므로 그는 신뢰할 수 없다고 증언합니다. 그러나 요세푸스의 증언처럼, 사해문서들 또한 외경은 별도로 관리되었음을 알려주고 있으며 예수님과 제자들은 외경을 인용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결론으로 성경은 오류가 없습니다.
아하시야는 여호사밧의 우상숭배자들과의 결합으로부터 42년 지난 시점에 왕위에 올랐습니다. 이스라엘의 왕들 중에 아하시야, 요아스, 아마샤, 여호야김은 하나님의 족보에서 제외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마태 1장의 족보는 정확한 것이며, 역대하 22장 2절의 아하시야 나이는 그러한 하나님의 관점에서 정당한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인생들에게 상기시켜 주시기 원하셨던 바였습니다.
성경은 틀리지 않고 정확합니다 다만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 뿐입니다.
이에 관한 공부를 하는 동안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결혼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는 점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마치 남왕국 유다 백성과 같습니다. 그들에게는 북왕국 이스라엘의 아합의 가문과 결혼할 수 있는 기회들이 많이 있습니다. 서양의 대표적인 우상교로서의 로마 카톨릭, 동양의 대표적 우상교인 불교, 로마 카톨릭의 잡종과 사생아들인 성공회, 정교회등이 바로 북왕국 이스라엘과 같습니다. 이것에 영향을 많이 받은 기독교 분파들이 바로 루터파, 장로교 등인 것입니다. 성경에 충실하여 우상숭배의 요소들을 우리 삶에서 배제 시켜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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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 글은 난이도가 최상급이네요 소화시키기가 버겁습니다. 일부 동의가 안 되는 부분도 있고요. 하지만 좋은 정보가 많이 포함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수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쉽게는 수긍이 안가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제가 실물을 보고 충분히 읽고나면 이해가 완전할 수 있겠습니다. 다만 저와 교제하는 유대인들이 설명하는 부분이고 제가 그들과 교제할 때는 우리가 통상 이해가 안가던 부분들이 이해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의 사고세계는 다른점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사기 19-21장에 보면 어느 노인이 첩과 같이 기브아에 갔다가 첩이 강간당하고 죽임을 당하자 그 시체를 도막내어 이스라엘 전역에 보내고 베냐민 지파에 대하여 전쟁을 벌이는 과정이 설명됩니다. 이 사건이 일어난 때가 옷니엘 사사시대라는 것이 이 만세보에는 언급됩니다. 오늘날 존재하는 만세보는 연대 계산을 후대에 걸쳐서 주관적으로 했기때문에 상당한 오류를 갖고 있다고 믿어집니다. 그 옛날 원래의 만세보는 여러 사람들이 대대로 조금씩 자기 시대의 연보를 작성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유대인들은 외경에 들어있는 책들을 한번도 하나님의 영에 의해 영감된 책으로 인정하지 않았다지요..
짤막하게 알고 있는 저는 그래서 요세푸스는 구약의 정경을 결정할때 이 책들을 정경에서 제외시킨걸로 알고 있습니다..
로마 교회는 16세기가 될때 까지는 외경을 인정하지 않았다가 오늘날에 와서는 그것을 정경으로 인정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로마교회는 이젠 요세푸스를 다시 비난해야만 하는 입장이 된거 같습니다..
그래도 그리스 정교회나 개신교회들은 외경을 정경으로는 인정하진 않는다고 합니다..
이 세데로 올람 랍바는 그 책을 직접보고 이해하기 전에는 쉽게 인정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제가 아는 일본인은 이 문제를 좀 달리 해석했습니다. 산위에 올라가서 봉우리들을 보면 웬만큼 높은 산봉우리들만 봉우리로 인정되고, 낮아서 꺼져 있는 봉우리는 비록 봉우리 일지라도 계산에 안들어간다고 해석하였습니다. 과거 유다 왕국의 연대 기록들을 직접 보기전에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유대인들과 대화하면 그들의 사고방식에 우리의 것과 차이가 있음을 느끼게 하는 대목입니다.
이 세데르 올람 랍바를 공부하면서 깨달은 것중의 하나는 이사야 서의 기자인 이사야가 바로 요아스의 아들 아모스의 아들이었다는 것, 아마샤 왕의 조카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이사야 또한 다비드왕의 자손임을 알게되었습니다. 또한 웃시야 왕과는 사촌간이었다는 사실이지요.
이 족보에서 중요한 사실은 여호사밧이 오므리의 딸과 결혼한 사실과 아합이 여호사밧의 처남이었고, 아달랴는 아합의 딸이었으며, 여호람은 다비드의 씨로 인정되었음에도 아달랴에 지배당했다는 것입니다. 사실 아달랴와 여호람은 내외종 사촌간이었습니다. 아달랴와 아하시야, 요아스, 아마샤는 오므리의 자손들로 인정되었습니다.
저는 세데르 올람 랍바의 의미를 그다지 충분히 깨닫지는 못했습니다만 마지막으로 쓴 글에서 이사야가 웃시야 왕과 4촌간이었고,
아마샤 왕은 3촌이요, 요아스 왕이 바로 이사야의 할아버지 였다는 말이네요..흥미있는 사연들입니다..
예를들면 바벨탑의 분산사건으로 펠렉의 아우 욕단이 이 사건이후로 동진하여 새벌을 만난 것이 시베리아(새벌)이었으며 그 후손들이 동진하여 한국까지 이동해왔다는 설이 상당한 타당성을 갖는다는 설들도 참으로 재밋습니다..
창 10:30 욕단의 거하는 곳은 메사에서부터 스발로 가는 동편산이었더라- 파미르, 알마아타, 시베리아 지역으로 분별됩니다.
그들이 동진해올 때는 알이랑(엘이랑)을 불렀습니다. 알이랑(하나님이랑) 가지 않으면 발병난다고 믿었지요.
이들이 붉은 흙을 매장지로 선호한 것은 붉은 흙이 시체를 잘 썩게 하고 뼈만 잘 보존한다고 믿었던 까닭으로 보입니다. 오클라호마는 붉은 흙의 땅이라고 하지요.
점점 더흥미로운 설명이 나오는군요..알이랑...의뜻이 그렇기도 햇군요..그렇다면 예수님이 구약인용 구절중에
제가 듣기로는 37개 정도라고 들었는데...이모든 구절들이 벤하임 맛소라 편제를 읽으셨다고 봐야 하는지요?
정확히 벤하임 맛소라를 읽으셨는지는 모릅니다. 약간의 차이들이 발견되기 때문입니다. 그 경우에는 벤하임 맛소라의 Vorlage (선행사본)을 읽으셨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일반인들의 눈에는 그 성경이 그 성경처럼 보이고 비슷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눈에는 판이하게 다른 것이 70인역과 헬라어 신약성경입니다. 루카 24:44과 마태 23:35은 예수님이 벤하임 맛소라와 동일한 편제의 성경을 읽으셨음을 알게해줍니다.
제질문에 하토브님은 이렇게 답하셨습니다..<정확히 벤하임 맛소라를 읽으셨는지는 모릅니다. 약간의 차이들이 발견되기 때문입니다.> 일반사람들에 대해 말씀하셨다시피 저는 다른편제의 성경에 관심도 없던 사람이었습니다..
근데 이해가 안가서요? 벤하임 맛소라경우 선행사본이 또 있나 봅니다? 암튼 제궁금증은.....
이70인경이 히브리어 성경의 정확한 번역이 아니란거 자기들도 알더군요..그럼 이문제에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까요?
예수님이 인용한 구약의 구절중에 33개 정도는 본래의 히브리어 성경이 아닌 70인경에 나오는 구절과 같다는 말을 들어서요?
그것도 글자하나 틀리지 않다고 해서 의아스럽기까지 하네요?
그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당신이 직접 대조해보았느냐고 물어보셔요. 저는 직접 대조해보았습니다. 모두 일치하는 구절은 하나도 없습니다! 대조해보지도 않고 대충 짐작으로 하는 거여요!
글고 제가 알고 싶은것은 눅4:18절이 70인경에서 인용되어졌다고 하던데 아닌걸 증명할수 있는지요?
제 블로그에 대조 해놓았습니다. 루카 4장 18절이 70인경을 번역한 것이라고 하는 자들이 대개 신학 박사들이지요. 그들은 눈이 썩어 있어요! 그래서 대조해보면 금방 차이가 있는 것을 대조해보지도 않으면서 똑같다고 주장합니다!
그럼 제가 갖고 있는 책내용이 잘못되었단 말이네요? 잘알겠습니다..
한번읽어서는 내용이 쏙들어오지 않아 읽고 또읽고 인쇄해서 읽었습니다
여호사밧왕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였는데 왜 그리허망하게 죽었을까 궁금했는데 궁금증이 풀렸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우상숭배자와 연합하지 않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마음이 였군요^^
이사야가 웃시야 왕과 사촌이었다는 사실도 흥미롭지요. 그런데 이 만세보는 알렉산더 무렵부터 끊어지고 없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