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모 방송국의 역사 드라마 “근초고왕”이 끝났다. 이 드라마에 대한 역사논쟁이 뜨거웠다. 드라마에서는 중국의 사서(史書)에서 산견되는 문구를 근거로 백제 근초고왕(4세기)을 동아시아의 정복왕으로 묘사되고 있다. 일본에서 발견된 칠지도(七支刀)는 백제를 줄기로 하고 그 줄기에서 뻗어 나간 중국과 일본의 일부가 포함된 동아시아의 7개지역을 말한다고 해석하고 있다. 작가의 상상력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이 드라마에 대한 진실 공방은 역사가의 몫이기도 하다.
지금은 일실된 “백제서기“에는 이러한 기록이 있다고 한다. 하백의 딸 유화는 천제의 아들인 해모수와 관계하여 알을 낳았는데 주몽은 그 알에서 태어났다. 주몽은 활을 잘 쏘고 용맹이 넘쳐 동부여 금와왕의 아들들로부터 시기를 받아 졸본부여로 몸을 피한다. 졸본부여의 연타발은 자신의 딸 소서노로 하여금 주몽과와 정략결혼을 시켜 고구려를 건국케 하였다. 서소노는 이미 결혼하여 비류와 온조 두 아들을 두고 있었다. 그녀는 주몽의 후계자로 자신의 장남 비류를 생각하고 있었으나 주몽은 동부여에서 데리고 온 유리를 태자로 삼았다.
고구려 건국을 도우고 실제 킹 메이커였던 서소노는 크게 실망 두아들과 함께 무리를 이끌고 압록강을 빠져나와 연안 해로로 한강 하구로 내려 왔다. 지금의 인천지역인 미추흘에서 나라를 세웠다. 10개의 부족이 바다를 건너 연합해 세웠다는 의미에서 “10濟(제)”라고 불렀다. 그러나 차남 온조는 습지와 염분이 많아 농사가 잘 안되는 미추홀보다는 비옥한 한강 상류가 국가의 기반이 된다고 보았다. 그가 도착한 곳이 지금의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이 있는 서울 송파구와 하남시 일대였다.
그러나 어머니와 형 비류는 온조가 못마땅하였다. 형제의 불화는 부족간 전쟁으로 이어지고 동생 온조가 승리하자 비류는 자살하고 어머니 서소노도 살해되었다. 비류에게 충성하던 10개 부족은 온조가 자리잡은 하남쪽으로 귀순하고 일부는 다시 배를 띄워 일본으로 건너 갔다. 이들이 일본에 건너갈 때 가지고 간 고구려의 삼족도(三足烏 야타가라스)신앙이 지금도 일본의 신사에 모셔져 민간신앙이 되고 있다.
온조는 자신을 찾아온 비류의 유민들을 크게 환영하여 “백성제해낙후(百姓濟海樂從)”라 하였다. 온조를 시조로 하는 “백제”라는 국명이 탄생하게 되었다. 근초고왕은 그로부터 13대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