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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황씨
으악새* 우는 사연
이 문 구
전 같지 않고 이제는 저녁을 물려도 션하게 나앉을 데가 마땅찮아 여간 갑갑한 게 아니었다. 드나 나나 물것* 풍년이니 한데로 나서도 그렇지만, 밖에 나와 혼자 우두커니 그러고 있기도 청승이라, 천상 일찌감치 벗어 던지고 세상사 베개에 묻는 게 고작이었던 것이다.
오늘도 들어오며 일변 등멱부터 서둘렀지만 질어터진 밥에 집을 게 없어 싱검하게 볼가심한 탓인지 뒷맛이 특특하니 개운치 않았고, 끓는 열무 솎음국에 말아 검비검비* 떠 넣은 바람에 땀만 배어, 옆구리로 오금탱이로 찐덕거리지 않은 데가 없었다.
그래도 김봉모(金鳳模)는 밑이 질겨 줄담배를 태려문 채 툇마루 장귀틀 끝에 쭈그리고 앉아 속을 끓이고 있었다. 해 있어서 다북쑥*이나 한 전* 베어 뉘었더라면 밭마당귀에 모깃불이라도 놓고 나앉아 보련만, 매양 마음만 있고 이 미룩 저 미룩 하다 으레 손이 안 가 저녁마다 뒷동*을 못 보니 뉘더러 지청구*도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복셍아, 다 먹었걸랑 게 붙어 앉어 저기허지 말구, 저기네 오양 옆댕이 가서 보릿꼬생이나 한 삼태미 퍼 오너라. 예 앉어보니께 모기가 상여 메는 소리 헌다. 얼름…….”
김봉모는 누가 세상없는 소리를 해도 잇긋 않고 말 안 타는 아이인 줄 번연히 알면서도 참다못해 에멜무지로* 일러보았다.
“……”
역시 아이는 쳐다도 안 보는데, 바닥난 상을 대강 거듬거려 뒷전으로 접어놓고 선풍기 옆에서 턱 떨어지고 있던 아내가 고뿔 뗀 넛할미* 마냥 쪼르르 말대답을 했다.
“보리까락은 녠장― 무슨 효자 난다구 그 탑세기*를 퍼 오래는 겨.”
“저 만치루 모깃불이나 놔보까 허구.”
“아침에 치울라면 성가시게 내등 않던 짓 헐라네…… 게서 모기 뜯기느니 일루루 와 앉지·…‥ 선풍기 틀면 물컷 안 뎀벼 십상일레.”
아내 말도 그른 건 아니었다. 내남직없이* 집집이 한결같이 삼복을 그렇게 나고 있었으니까.
“좁어터진 디 무데기루 앉으면 답답허니께그려. 진작 밝어서 저기 했으면 시방 저기허니 저기헐 텐디, 공중 저기허느라구 꼴두 못 비구 설랑·…… 복셍아, 싸게 한 삼태미 못 가져오너?”
“어이― 일루 앉으면 모기 웂잖유. 금방 「허 부인전」 시작헐 시간인디.”
복성이도 잔뜩 틀물은 소리로 말대꾸를 했다.
“에미나 새끼나…… 끙一”
김은 지루퉁해가지고 두런거리며 방에 들어가 누웠다. 곧 TV 소리로 집 안이 떠나가면서, TV 화면에 대고 넉살 떨며 신칙하는* 아내 목통이 귀를 거스르기 시작했다.
“저 작것 또 지랄헌다…… 저런 넘으 똥에 주저앉을 년…… 지집이 여수니께 사내도 덩달어 저 지랄 허는 겨. 저런 년은 그젓 작두루 모감뎅이를 바짝 벼 쥑여야 쓰는디…….”
김은 시끄럽다고 소리나 냅다 질러버리면 속이 가라앉을 성불렀으나 참자고 끙ㅡ 하며 돌아누웠다.
돌아누우니 열어패두었던 뙤창* 너머로 초저녁 별이 드문드문 떨어져 있는데 얼핏 귓결에 닿는 것이 새삼스러웠다.
쓴, 쯧― 쓴, 쯧ㅡ.
여겨 들으니 모처럼 있는 여치소리였다.
김은 기특하기도 하고, 여치가 다 기특하게 된 것에 어이없어 민둥하기도⁕ 했다. 여치는 분명 장광 언저리에 복순이가 심은 꽈리나 수수깡 울타리로 타고 올라간 으아리* 덩굴 틈서리에 있는 것 같았는데, 울 너머 산자락 버덩에 씨가 떨어졌기에 근근이 살아남은 놈인 듯했다. 장독 소래기에 이슬이 고일 철에도 여치소리 못 들어본 지가 한두 해 아니던 것이다.
여치만 없어진 것도 아니었다. 이맘때가 되면 제 스스로 철을 찾아와 밤이 이울도록 울타리가 요란하던 베짱이며 반딧불이 드물어진 것도 고릿적 일이던 것이다.
김이 어려서 몇 꿰미고 잡아 꿰거나 되들잇병*이 미어지게 주워 담았던 논두렁의 메뚜기며 밭이랑의 땅개비, 원두막의 사마귀와 콩밭머리마다 지천이던 잠자리들도 씨가 마른 지 오래된 성불렀다. 쓰르라미도 개랑 건너 상수리나무 숲에나 가야 볼 수 있었으니, 소금쟁이와 방개가 무논에서 사라진 동안이 여러 해 된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목화 갈며 재 끼얹듯, 한 해 농사에도 무시로 농약을 들어붓다시피 해 왔으니 무슨 천명 을 타고났다고 배겨내겠는가.
그런데도 물것이 축나지 않는 것은 되게 속상한 일이었다. 모기, 날파리뿐 아니라, 산에 송충이 물에 거머리, 정작 줄어주었으면 싶은 것들은 해를 거듭할수록 극성을 더하던 것이다.
전등이 있으면 더 더운 것 같아 바깥이 훨씬 밝은 방구석에 문지방을 베고 누워 허벅지고 팔뚝이고 닿는 대로 갈겨 모기를 쫓던 김은, 문득 뒷길로 질러 샛문께로 다가오는 발자국소리를 들었다.
발자국소리나 하고, 이장 이주상(李周相) 이가 틀림없겠어 김은 샛문 쪽에 정신을 두어보았다.
“복셍 아버지 지슈? 복셍 아버지―”
때 없이 들러가던 사람이었지만 장터 출입이 잦은 터라 또 무엇인가 싶어 김은
“그려―” 하며 일어났다.
이장은 청바지와 곤색 반소매에 흰 농구화로 민방위 교육 때나 하던 차림 새였다.
“또 워디서 저기가 나온다남?”
김이 그러면서 대문으로 나가자
“쓰레빠 끗지 말구 채리구 나오 , 산업 계장이 온댜.”
“짐신철이? 또 저기, 풀 헐 때 됐나보구먼.”
“오늘은 퇴비가 아니라 송쳉이 나방 잡으래야.”
듣고 보니 솔나방 철이기도 했다.
“접때 송쳉이 번데기 잡던 진모랭이 복셍이네 산으로 갈 거니께, 그 옆댕이 둠벙* 뚝셍이루 먼저 가 지셔.”
“나 혼자 무슨 객물루?”
“산주(山主)가 먼저 안 가면 워칙혀? 나는 이따 우램이 아버지, 응칠 아버지랑 불러갖구 갈 텡께.”
“그려 그럼. 그런디 그냥 가면 못쓰잖여? 허다못해 저기라두 있으야지……”
“왜 아니랴. 봉섹 아버지가 쇠주 서너 병허구 멜치는 돈 백 원어치 가지구 갔으니께, 먹던 짐치허구 꼬치장이나 한 보새기 내가셔. 면에서 와 지달리기 전에 먼저 가 지시야여.”
김은 이장이 응칠이네 쪽으로 가는 것을 보고 들어오며 마루에 대고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늠으 테레비를 도치루 뻐개 내삐리던지 허야지 시끄러 살겄네?”
그러나 그쪽으로 정신이 쏠린 식구들은 누구 하나 돌아도 안 보았다.
“나 봐ㅡ 죄 어매一 저기 좀 내오란 말여.”
한 번 더 목통을 놓아서야 아내가 히끔 돌아보았지만 그냥 내전보살* 하고 있었다.
“나 봐― 진모랭이루 솔나방 저기허러 오란디야. 저기허구 저기나 좀 챙겨.”
“……”
“죄 어매― 싸게 짐치허구 꼬치장 좀 떠 오라먼…….”
“쬐끔 남었응께 마저 보구……”
아내는 그냥 해찰*을 부렸다.
“게 뭔디 그려?”
“허 부인……”
“네밋― 그 속에 뎌진 니미가 살어오네, 늬 할애비가 저기허네? 낮에는 더워 더워 허메 꼼짝 않구, 밤에는 테레비 서방 삼어 저기허구…… 내 이 집안 망헐 늠으 것 당장 저기허구 만다…….”
결김에 뜰방에서 손에 닿는 것을 집어 던지려다 보니 접때 젖 뗀 애고무신짝만 한 강아지였다. 강아지가 금방 올라가는 소리를 더럭더럭 지르는 바람에 엉거주춤하자 아내는 마지못해 질뚱바리*처럼 무릎을 끌며 고시랑거렸다.
“지삿날 과객 든다더니…… 쬐금두 못 앉어 있어…… 그새를 못 참어 성화네그려. 그 잘나터진 짐치는 또 워디다 담어…….”
김은 속 가라앉히느라고 담배 한 대를 다 피우고 나서야 아내가 내준 것을 들고 나왔다.
국물 질름거리지 말라고 주전자에 김치를 담고 그 안에 고추장 보시기를 띄워, 걸음을 옮길 적마다 보시기가 주전자를 징 삼고, 시어꼬부라진 냄새가 진동하며 주전자 주둥이에 꽂힌 젓가락이 장구를 쳤다.
그는 걸으면서 식구들한테 졸리다 못해 봄누에 쳐서 TV부터 산 것을 못내 후회 했다. TV를 들여놓고부터 아이들은 숙제나 간신히 때울 뿐 장난삼아 책자 한 장 들여다보는 법이 없었고, 전 같으면 저녁 숟갈 놓기 바쁘게 쓰러지고 샛별 있어 일어나곤 하던 아내마저 연속극에 팔려, 밤이 이슥토록 전기를 닳리며 앉았다가 한나절은 되어야 꿈지럭거렸다. 그것은 온 동네 집집이 그 모양이어서 하루 품을 식 전에 절반이나 삶던 엊그제가 아득한 옛날 같았다.
이런 두메에서 TV를 갖추는 것은 씀씀이에 여유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살림 사는 건 더러워도 남처럼 볼 것을 보고 알 것은 알며 살자니 부득이하던 것이다. 신문은 배달도 안 되지만 첫째는 들여다보고 앉아 있을 틈이 없었다. TV도 그랬다. 여간해서는 만져도 못 볼 돈을 퍼주고 놓은 터이지만, 그 앞에 턱살을 괴고 앉아 덩달아 수작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만큼 틈도 없었지만, 화면에 담기는 풍물들도 이렇게 사는 사람들하곤 아무런 관계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었다.
남 하고 사는 꼴 들여다보았자 함께 즐거워해주어야 할 건더기가 없었고 배울 게 있던 것도 아니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같잖던 꼴은, 이름자나 알려졌다는 것들이 나와서 탤런트나 가수들과 어울려 시시덕거리는 짓이었다. 미리 꾸며놓은 각본에 맞추어 저희들끼리 지고 이기며 갖은 구색으로 상품을 탄다거나 재롱을 떠는 장난이 시청자들과 무슨 관계가 있기에 프로에 넣어 남이 들여다보도록 마련했는지, TV방송국 담당자가 곁에 있으면 귀때기를 후려갈기고 싶은 심정이던 것이다.
그전 같으면 이 찌는 복중에 무슨 장맛으로 굴속 같은 집구석에서만 옴닥거릴 터인가.
마당에 평상이나 멍석을 펴고 모깃불을 놓으면 절로 땀이 가시고, 끓는 화덕에서 갓 떠낸 수제비를 훌훌 들이마셔도 더운 법이 없었다. 뉘 집 마당을 가보아도 으레 이웃집 마실꾼이 있기 마련이고, 가르마 타고 흐르는 은하수나 가끔 훑어가며 논밭 되어가는 이야기, 나가서 묻어 들인 시국 이야기로 담배가 떨어져도 심심 한 줄을 몰랐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그런 풍속이 되풀이될 성싶지 않았다.
아무리 삶는 날이라도 TV 앞에다 상을 놓았고, 그 바람에 하늘이 덮이기 무섭게 대문부터 걸어 닫지 않는 집이 없었다. 안식구 따라 사내들마저 그 지경 이고 보니 더러 들어볼 말이 있어도 마실 갈 데가 없었다. 내 집 뉘 집 없이 낮에는 죄다 들에 나가 살고 날만 저물면 빗장 걸고 틀어박히기를 다투니, 추녀를 나란히 하고 한 우물을 길어 먹는 이웃 사람도 며칠씩 얼굴 얻어 보기가 어려웠다. 그러니 동네에 무슨 일이 생겨도 일삼아 가보기 전에는 얼굴 한번 내밀지 않던 것이 오히려 당연한 일이었다.
김은 꽃을 한 차례 더 보아야 햅쌀밥을 먹 게 되던, 장병찬(張炳贊)이네 토담머리 배롱나무 곁에 이르자 큰 소리로 장을 불러보았다.
“봉섹 아버지 지셔?”
모두 TV 소리에 묻혔는지 기척이 없어 다시
“봉섹 아버지ㅡ”
하고 고함을 질렀다. 그제서야 알아듣고 봉석이 대답이 나왔다.
“늦들잇들 둠벙께 가신다구 술 갖구 나가셨슈.”
장은 반장일을 맡고 있는 데다 부녀회에서 하는 생필품 가게도 겸하고 있었으므로 있던 술을 챙겨 들고 먼저 나간 모양이었다.
“술은 얼마나?”
“두 병유.”
“제우……그까짓 걸 누구 코빼기에 찍어 바른다데. 내 앞으루 달어놓고 즉은 거 두 병 더 내오너라.”
김은 접때 것도 아직 안 갖다 주었으면서 술값을 더 달아놓았다.
그러고 보니 생전 나올 것 없는 산에다 남의 입빔으로 들이미는 돈만 해도 보릿가마나 됨 직했다.
그는 작년 봄에도 옮기만 하면 허옇게 굳으며 죽어 송충이 전염병이라고 할 수 있는 경화살제(硬化殺劑)가 배급 나와 그것을 솔가지에 매다느라고 품깃이나 들였지만, 달포 전에도 생각잖았던 생돈을 썼었다.
유월 중순께, 송충이가 고치를 틀고 들어앉았을 때도 면에서 사람이 나와 성화대는 바람에 이장이 일요일로 택 일하여 동네 아이들을 몰아 와 한나절 동안 애벌레따기를 했던 것이다. 송충이잡이코 애벌레따기고 치르어보면 고작 군에 보고하려고 면직원이 들고 나온 카메라에 사진이나 찍혀주는 행사로 그칠 뿐이었다. 그러므로 산에서 무슨 굿을 하건 아예 모른 척할 배짱만 있으면 맨입으로도 능히 견딜 수 있는 일이었다.
그날도 이장은 동네 사람들에게 막걸리를 한 말이나 내었고 면에서 면장갑을 두 죽이나 타다가 돌렸다. 그리고 면직원은 면직원대로 아이들이 섭섭지 않게 공책을 오십 권이나 들고 왔었다. 그렇게 되니 김도 모르쇠 할 수가 없었다. 외상을 지고라도 참외 한 접은 내놓아야 아이들 앞에서 얼굴을 이겠던 것이다. 막걸리 한 말이 모자라 소주를 너더댓 병이나 사지 않을 수 없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동네 부역이라는 게 흔히 그렇지만, 그날 따낸 애벌레도 말로 되면 한 말 남짓 될까 했다. 부락별로 경쟁을 붙여 등수를 매기고, 등수에 따라 참외와 공책을 나누었지만, 나중 구덩이를 파서 쏟아 놓고 팻말을 세워 사진 찍는데 보니 은연중 돈 쓴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날은 충삼이네 논에 물도 댈 겸, 양수기로 둠벙을 퍼서 양동이가 칠칠하게 붕어를 잡아 면 사람 대접만은 푸짐하게 했으니, 송충이 구제보다는 천렵*으로 하루를 쉬었다고 해야 옳겠던 것이다.
송충이는 그 후 고치에서 부화되어 큼직한 솔나방이가 되었으므로 이제는 솔나방을 잡아 없앨 차례였다. 한 마리가 오백 개 안팎이나 되는 알을 갈기니 나방 한 마리를 잡으면 송충이 오백 마리를 잡는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늦들잇들을 가로질러 바삐 걷던 김은, 동구 앞 마을회관께에 무슨 기척이 있는 것 같아 얼핏 발걸음을 더듬거렸다. 무싯날* 누가 무슨 일로 읍내에 나갔다가 저물었는지, 거나하여 돌아오는 것은 분명 했으나 사람은 없고 발자국소리만 나다 말다 하는데, 며칠 전 회관 앞마당 옆 진근네 밭고랑에 허수아비 꾸미듯 바지랑대로 말뚝을 박고 걸어둔 황선주(黃善柱) 의 팬티는 아직도 허옇 게 제자리에 살아 있었다.
그것을 게다가 그렇게 해놓은 이장도 어지간한 사람이지만, 그것이 그렇게 된 속내를 대강 어림하면서도 잇긋 않고 내버려두는 황선주의 배포 또한 그 버금가라면 서러울 지경이었다. 김은 그때 일을 게워 생각하면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것을 그렇게 장난하자고 처음 말을 낸 사람은 홍사철(洪思哲)이었지만, 쓰던 바지랑대까지 내다 말뚝하면서 뒵들이를 해준 것은 객 자신이었던 것이다.
우렁딱지만 한 동네서 자고 나면 마주 볼 얼굴끼리 그럴 수는 없을 일이었으나 두고두고 쌓인 감정을 가량하면 그것도 되레 양에 덜 차는 것이었다. 언제고 한번은 되게 훌닦아주리라고 별러온 것은 비단 이장을 비롯한 몇 사람만의 심정이 아니었을 터이다. 팬티를 게다 내걸고 전시한 지 열흘이 넘어도 아직 말뚝을 뽑거나 황의 집에 걷어다 준 이가 없음만 보아도 능히 대중할 일이던 것이다.
황이 그 전날 저녁 마을회관에서 열린 반상회에 참석만 하지 않았더라도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았을 거였다. 황은 반상회에 참석한 것으로 그치지 않고 제 장삿속으로 된 소리 안 된 소리 하여, 남 한 마디 할 사이 열 마디도 넘게 왜장치며* 수선을 떨었던 것이다.
그날 반상회는 안양 시흥 지역의 수재민 의연금 갹출을 위한 토의가 가장 주요한 안건이었다.
서울 물도 먹고 했으니 그만한 눈치쯤은 누구보다도 먼저 어림했을 사람이 황이었다. 그러나 황은 성수기가 되어 값이 채기* 전에 마을 공동으르 황새기젓을 사야 한다느니, 김장에 쓸 소금을 모개흥정해다* 나누자느니, 하며 제 배 불릴 소리만 지껄였던 것이다. 빈말로라도 동네 형편 생각하여 가을에 주기로 하고 값이 솟기 전에 어협에 직접 거간을 넣어 헐직하게 떼어다가 나누자는 소리 한마디만 섞었더라도 그다지 밉살맞게 여기지는 않았을지 몰랐다. 이재민 구호품으로 집집이 쌀 두 되, 돈으로 육백 원 이상, 그리고 입던 옷가지와 간장 된장 고추장 따위를 얹어 내기로 결정을 본 뒤에도 황은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소리만 씨월거렸던 것 이다.
황선주라면 느티울에선 버림치*로 치부하여 진작 젖혀둔 인간이었지만 이재에 밝고 돈푼이나 만지기로는 면내에서도 엄지손가락에 꼽힌다는 작자였다.
그는 내놓고 불려가는 돈만 해도 이천만 원이 넘으리라고 했지만 억대를 윗 도는 농토로 하여 지주로도 으뜸이었다. 그는 느티울 사람에게도 크든 적든 노상 오 부 이자를 놓았고, 그나마도 눈 밖에 난 사람은 아무리 목 타는 소리를 해도 빡빡하게 굴었다.
대개 고리대금업자가 믿음성 한 가지로 돈을 놓기로는 농사꾼만한 상대가 없을 거였다. 땅이 있음으로서이다. 그것을 가장 잘 이용할 줄 아는 이가 황이었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자기를 예사 헐뜯으며 술이 들어가면 으레 싫은 소리를 하던 이장이나, 새마을지도자 최정식(崔正植), 고명근(高明根)이와 홍사철한테는 고대* 죽는다고 해도 눈 하나 까딱할 위인이 아니었다.
김도 황의 돈을 안 쓰는 사람 가운데의 하나였다. 손에 호미 자루 한번 쥐는 법 없이 식전 저녁으로 흰목 젖혀가며, 남 허리 부러지는 논두렁 밭가리로 거드름을 피우며 산보 다니는 게 눈꼴이 시어서도, 죽으나 사나 황에겐 절대 손을 안 내밀기로 작정 했던 것이다.
반상회 이튿날 아침, 어머니회 회장 창근 어매와 부녀회 회장 구충서 아내는 간장 된장 고추장 옷가지 따위를 걷으러 김이 끌어주는 리어카를 앞세워 나가고, 이장과 새마을지도자와 반장은 경운기를 빌려 쌀을 걷으러 나섰는데, TV를 통해 수재민들의 딱한 꼴을 여러 날 본데다가 반상회의 결의도 있고 하여, 어느 집을 가도 군소리 한마디 섞지 않고 웃는 낯으로 반겨주었다. 하지만 리어카를 달고 나섰던 아낙네들은 황선주네 집에 이르러 한바탕 실랑이를 벌이지 않을 수 없었다. 김이 리어카를 끌고 그 집 밭마당에 들어서는데 황은 안마루에서 자두를 한 소쿠리 따다 놓고 한창 술 담을 채비로 바쁜 중이었다. 김은 내외를 하자는 게 아니라 반찬 추렴은 아낙네들 소관이므로 뉘 집에 가도 울안 출입을 삼가고 있었다.
충서 안과 창근 어매가 울안으로 들어간 사이 김은 마당 귀퉁이 대추나무 그늘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런데 들어갔으면 얼른 간장이나 한 양푼하고 입던 옷가지를 얻어 나와야 할 사람들이 담배 한 대를 다 털도록 꿩 구워 먹은 소식이었다. 김은 물꼬를 봐야 하고 손대어야 할 그루밭도 한두 군데 아닌데 웬 늑장인가 싶어 속이 상했다.
참다못해 김이
“아따 챙근 엄니, 메주를 쑤유 장을 대리유? 웨 그리 꿈지럭그리슈?”
하고 소리를 버럭 지르니
“아니 수재민들은 빤쓰두 안 입는단 말유?”
하는 황의 거친 목소리가 불쑥 튀어나왔다. 이윽고
“그럼 이 돈은 이따 쌀 걷는 사람들이 오걸랑 그리 주셔유. 나는 책임질 수 웂으닝께.”
하며 돈으로 낸 것을 창근 어매가 도로 무르는 소리에 이어, 다시 황이 못마땅한 어조로
“메뚜기 마빡만 헌 동네서 이재민 구호물자 한 볼텡이 것 읃으러댕기는디 패를 가를 건 뭐여. 오는 사람 성가시구 주는 사람 구찮으니께 온 짐에 아주 받어가슈.”
하고 내뱉는 소리가 겹쳤다.
“누구는 이랄머리 웂어 이러구 댕긴다남유. 어채피 올 테닝께 그리줘유.”
충서 안에서도 황에게 밀리려 하지 않았다.
“아따, 망건 쓰나 탕건 쓰나 살쩍 밀기는 일반이랍디다. 읃어 가는 사람이 찬밥 더운밥 가릴 져를 있겄수. 이 동네 아줌니들은 워째서 이리 까닭스럽다우?”
황은 비양거리듯이 말했다.
“읃어 가다니 유?”
충서 안사람이 부르튼 소리를 하는데 창근 어매 복장 터져 하는 소리가 곁바대*로 들렸다.
“춘자 아버지두, 우리가 시방 춘자 아버지 입던 빤쓰를 읃으러 왔단 말유? 희치희치허구 낡음낡음헌 흔 빤쓰를…… 빤쓰장수가 보면 불쌍해서 하나 그저 주게 생긴 걸레를 은으러 예까장 펄렁그리구 왔대유? 세상에 원…….”
미루어보건대 이재민 구호물품이랍시고 황이 입던 팬티를 내놓은 모양이었다. 김은 구경만 하고 있잠도 아니요, 그렇다고 남의 집 안에 들어가 사내 여편네가 남남끼리 하필 팬티를 놓고 가가거겨 하는 옆에서 옆들이하잠도 아닌 듯하여 부쩌지 못하고 있었다. 황이 말했다.
“챙근 엄니는…… 말을 귀루 안 듣구 입으루 들유? 수재민이라구 홋것만 입으라는 뱁이 워디 있슈. 그러면 그 사람들이 한 끄니래두 끓이라구 추렴해준 양석 팔어 빤쓰버텀 사 입으야 쓰겄수? 게, 다 나두 생각이 있어 내논 겐디 뎁세 나를 트집헐류? 말에 도장 웂다구 함부루 입방아 찧지 마유. 이게 왜 흔게유. 남대문표는 삼 년을 입어두 새물내만 납디다유. 공중* 넘 우세스럽게시리 이유 삼지 말고 얼릉 딴 디나 가보유.”
“……”
두 여자는 입이 모자라 말밑을 못 대는지 잠잠했으나, 그냥 두면 나중엔 별 못할 소리가 없을 것 같았다.
김이 말했다.
“아따나…… 챙근 엄니두 에지간허슈. 애초 저기헌 사람허구 저기 했으야 말이지…… 야중에 다 저기허는 수 있으니께 그냥 주는 대루 받어 나오슈. 이러다가는 일 품메구 해넘이 허겄슈.”
그 말을 계제 삼아 창근 어매가 말했다.
“남댑문이구 앞댑문이구 간에 수재민 고쟁이 걱정허는 사람은 팔도강산에 느티울 춘자 아버지뿐일 뀨. 확실히 우리게는 꽃동네 새동네여.”
뒤이어 충서 아내가 말가닥을 달리 추려 말했다.
“그런디 심이 틀리네유. 육백 원 이상이라던디 워째 오백육십 원을 주신 대유?”
황이 얼른 대꾸했다.
“지난 장도막* 쌀금두 모르슈? 아끼바레*는 가마당 이만 팔천 원 나갑디다. 그것두 장마 끝에 곡가가 채여 그만헌 거유. 툉일베 찧여돈 사보슈. 이만 팔천 원일랑사리 만 팔천 원 불러두 안 쳐다볼 게유. 내 어련히 알구 거시기했겄슈. 툉일베나 유신베 됫박 쌀금으루 치면 어림두 웂슈. 한산도 한 갑두 안 돼유” 하고 황은 덧붙여 말했다.
“아따 복잡허게 따질 게 뭐 있수. 가마당 이만 팔천 원이면 되루는 월마유. 이백팔십 원 금이지유. 게, 두 됫것이면 오백육십 원…… 되멕이 금으루 쳐서 디리면 맞지 틀리기는 무슨 심이 틀려?”
황이 종주먹 *을 대어가며 다잡으니 충서 안에서는
“그렁께 우리버러 사십 원을 에워 놓으란 말인감유?”
하고 되물었다.
“그게사 낸들 권한 있슈?”
해놓고 황은 다시
“그 돈으루 쌀 팔면 뒤집어쓰구두 남을 텐디 왜 사십 원을 더 낸단 말유. 이 황 아무개 돈 사십 원은 대천장 수청거리 엿장수 가윗밥이 간디?”
김은 더 이상 충그리며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모자라는 사십 원은 누가 채워 넣든 동네 공론에 붙여 황을 닦아세우자면 우선 받고 보아야 옳을 것 같기도 했다.
창근 어매와 충서 안에서도 속셈이 김과 비스름했던지 김이 주는 대로 받으라고 귀띔하자 순순히 따랐다. 원래 있는 집에서 더 죽는소리하기 마련이지만, 황은 아내가 밭에 나가 무엇이 어느 것인지 모른다는 핑계로 간장 한 종지 떠주지 않더라고 했다.
그네들이 느티울을 돌고 갯비네로, 늦들잇들로, 띄엄띄엄 나뉘어 있는 부락을 죄 뒤져 마을회관 마당에 모였을 때는 오후 새참 무렵이었다.
마당에 부려진 물품은 쌀 두 가마에 간장은 너 말이었고 된장이 비닐 비료 푸대로 하나였으며, 황이 내놓은 팬티를 합쳐 옷가지가 스물석 점, 돈은 이천삼백육십 원이었다.
“아니, 앉어두 생기구 누워두 번다는 황선주가 품 팔어먹는 사람 젖혀놓구 돈 사십 원을 깎어 내여? 그런 잡어서 내장으루 창란젓을 담을……”
황의 행티를 옮기자 맨 먼저 이장이 기가 막혀 했다.
“그렇다니께그려. 그런 사람 닮기 다 틀린 것은 내 말대루 수의사헌티 뵈줘야 쓴당께 말들을 안 들어.”
본디 황과 사이도 안 좋았거니와 온종일 쌀 걷는 경운기 운전을 하고 다닌 값 하느라고 홍사철이가 손목에 힘을 주며 나섰다.
“그지같이 사는 것들은 써두 부자가 못 쓰는 게 뭔고 허면 바루 돈이라는 게여.”
함께 쌀을 걷어 온 반장 장병찬이 말했다. 장은 황네 상답을 열 마지기나 고지* 얻어 짓고 사는 형편이라, 그전부터 황을 직접 헐뜯은 적이 없었다.
“있는 사람네 모자른 걸 웂는 사람이 채워준다?”
최정식은 다시 말을 이었다.
“드런 자식. 여러 말 허면 입 버리구, 그 돈 당장 도루 갖다줘. 제깐 늠이 안 보태준다구 수재 의연금 모자를깨미.”
“이 기수 엄니 봐. 혼자된 몸에 핵교 가는 애가 여럿이래두 외려 두 되 가웃 것이나 안 퍼주던감……”
하고 홍은 뒤를 달았다.
“여편네 웂다구 그 잘나터진 지랑* 한 종재기 안 떠주다니…… 대가리 검은 짐승이래두, 그런 새끼 붙어 지집 낳을 늠은 쳐다두 보지말으야 헌당께.”
“이 돈은 도루 돌려줄 것잉께.”
이장은 오백육십 원을 떼어 바지 뒷주머니에 따로 넣으며 말했다.
“그 남댑문폰가 동댑문표두 일루 가려 내놓슈.”
창근 어매는 옷뭉치 속에서 논두렁에 가로걸린 뱀 허물 걷어내듯 그것을 땅바닥에 팽개쳤다.
이장은 구호물품을 경운기에 챙겨 실으며 아낙네들을 돌려보낸 뒤에야 땅바닥에 나뒹굴던 황의 팬티를 발길로 걷어차며 참았던 말을 뱉었다.
“우램 아버지, 황선주헌티 저 남댑문표 들구 가설랑 지 여편네 것허구 바꿔달라구 허여.”
“왜? 황선주 마누라는 무슨 표 입나 볼려구?”
홍이 넘겨짚었다.
“이왕 넘으 앞대문 걱정해줄 바이면 치마 입은 사람버텀 걱정해줘야 웂잖겄냐구 말여.”
“요새 치마 입은 여자가 몇이나 되게?”
장병찬이 말했다. 그러자 홍이 뜻밖의 의견을 내놓았다.
“그럴 것 웂이 저 남댑문표를 제다가 걸어두자구. 우리게두 이런 인물이 산다는 걸 오가는 삼 동네 사람들이 죄 알게 말여.”
홍은 그러면서 회관 마당을 스쳐가는 마을 초입 진근네 밭가리를 턱으로 가리켰다.
“웬일여. 오늘은 우램 아버지 말발이 젤 쎄니, 사개가 척척 맞아 들어가……”
최는 죽을 채우면서 발채*만 하게 벌어진 입을 못 다물며 흐믓해했다. 최도 황을 별러온 사람 중의 하나였다. 땅이나 돈을 빌려주지 않아 감정이 상한 것이 아니라, 마을 공익사업에 협조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제 남댑문표는 왜 수재민 구호에 안 썼느냐구 따지면 뭐라구 대답힐 쳐?”
장은 내키지 않는지 떠름한 기색을 했다.
“왜 말을 못 헌다나? 사내 부랄만 가려주고 여자는 벳길 수 웂어 여자 것이 마저 생길 때까장 짝 채울라구 걸어 놓는디…….”
최가 말했다.
“그런 걸 따질 황간줄 아남. 그게 워떤 늠이간. 제다 걸어 놓으면 제 것이 아니라구, 제 것은 금테 둘렀다구 우기며 필쩍 뛸 작잔디.”
이장 말이 그럼 직하여 다들 입이 들어간 뒤에야 듣기만 했던 김이 말했다.
“이걸 걸어 놓자면 저게 있으야 힐 테니 그건 내라 저기허야겄구먼 그려. 손님 덕에 쌀밥 먹어본다구, 나두 이런 때 동네 좋은 일 한번 해봐야 헐라나뵈.”
김은 남들이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어 느끼해하는 사이, 집에 들어가 밑둥 부러져 쓰다 치웠던 바지랑대를 내갔다. 김은 손수 밭이랑에 바지랑대를 꽂고 남대문표를 바람에 안 탈 만하게 단단히 비끄러매었다. 그러고 나니 그는 모처럼 남의 제사에 생일 차려 먹은 듯한 풍덩한 기분을 주체하기 어려웠다.
그는 남대문표를 내걸자는 홍의 의견이 나왔을 때부터 대뜸 효수(梟首)라고 하던, 언젠가 TV 영화에서 본 적이 있는, 모가지를 끊어 장대에 높직하게 꿰 달던 장면을 떠올렸던 것이다. 그는 남대문표를 황의 모가지로 치부하고 싶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평생 두고 중히 여기므로 그 부분만 감쌈으로써 숨겨져 있던 물건이 널리 공개된다면 그것은 곧 그 당사자의 얼굴이나 다름없이 쳐야 마땅하겠기 때문이었다.
김은 황의 됨됨이와 심보와 체면 따위를 한 가지로 섞어 자기 스스로 효수형을 집행한 마음이었다. 그것은 여간해서는 만나기 어려운 푸짐한 경사를 치른 기분과 다르지 않았다.
이장의 말은 틀림없었다. 황은 장터 나들이로 하루에도 두어 차례씩 그 앞을 지나다니건만, 어떻다는 말 한마디는 고사하고 무슨 내색 한 번 얼핏하지 않았다. 자기 것이 아니라고 우기며 동네방네가 떠나가게 떠들지 않은 것은 다만 그럴 계제가 닿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황의 거탈*을 벗겨내어 창피를 주고자 했던 여럿의 앙심은 당초에 가량했던 대로 어지간히 이룬 셈이었다.
김이 진모랭이 곱은탱이를 돌아서자 이미 요란스럽게 타오르는 모닥불 이쪽으로 사람이 나와 몰려 있는 게 보였다. 그는 손에 든 주전자 무게를 가늠해가며 나온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 모닥불에 얼비치는 틈으로 어림해보려고 했다. 뚝셍이에 앉아 안 보이는 사람까지 쳐도 너더댓으로 알면 별 차이 없으려니 싶었다.
모닥불은 초가라도 한 채 올려 세우는 양 되게 푸지고 요란했다. 불꽃이 용트림을 하며 길길이 치솟고, 불티가 떼를 이루어 하늘을 가리며 먹구름장 같은 연기 속에서 난리를 피웠다. 불기둥과 불똥으로 보아 장작에 석윳되를 끼얹은 게 아니라, 작년처럼 헌 자동차 타이어라도 배급 나와 그것을 태우는 꼴이었다.
작년에는 면에서 한 부락에 두 짝씩 자동차 타이어가 분배됐었다.
솔나방을 꾀어 들이는 데엔 타이어를 태우는 불꽃보다 윗길로 칠 것이 없으리라 싶었다. 불꽃도 화려하지만 장작보다 훨씬 마디게* 탈 뿐 아니라 불길이 두서너 길씩 치솟아 산골짜기에 붙은 나방까지도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불빛이라면 죽고 못 사는 게 솔나방이었다. 시뻘건 불길은 말할 나위도 없고 옥외 전등만 보여도 쏜살같이 날아들었다. 죽음을 무릅쓰고 불더미에 뛰어드는 성질은 하루살이나 풍뎅이 정도가 아니었으니, 솔나방이라기 보다 불나방으로 일컬음이 마땅할 지경 이었다.
모닥불 앞에 이르니 솔나방 쏟아지는 소리가 장마 긋고 소나기 첫물* 하듯 요란스러웠다.
“산주가 맨 꼬바리루 오면 워치기 허는 겨?”
술병 한 가지 바라보고 둠벙 뚝셍이 뒷전 지장풀 더미에 앉아 있던 고명근이가 먼저 알은체를 했다.
“죙일 논 훔쳤다메 고단허지두 않은감?”
김이 여럿에게 고루 갈 인사를 하자
“콩노긋* 피기 전에 그루밭* 골고지(김매기)두 허야 허구, 식전 저녁으로 논두렁 거스름(풀베기)두 허야 되구…… 서방 해간 초년 과부 뒷물헐* 새 웂다더니 요새는 개 한 마리 해 먹을 틈두 웂데.”
고와 마주 앉아 이장 처분만 기다리고 있던 홍이 말했다. 이장은 생각잖았다가 제 발로 묻어온 조갑기(趙甲基)와 함께 모닥불에 솔가지와 장작을 더 괴고 돌아서며
“왜 안 온다나. 다이야 다 탄 뒤에 와서 다이야 떼먹구 나무만 태웠다구 지랄허지 말구, 이런 때 죄 눈깔로 봐야 헐 텐디.”
하고 면에서 아직 안 나와보는 게 마뜩찮아 볼문 소리로 구시렁거렸다.
“그 잘나빠진 찌푸 바쿠 두 개 떼어먹을깨미 그걸 감시허러 댕겨?”
동네일에 일쑤 빠져 물정 모르는 조가 여러 사람 들으라고 묻는 말로 중얼거렸다.
“짐 서기 올 때까장 이러구 앉어 있나? 한 병 따서 우리찌리 초배허구, 야중 면에서 오면 그때 또 도배허구 허지.”
고가 김이 가져온 주전자를 열고 고추장 종재기를 꺼내 놓으며 말했다.
“아서. 안주 축내지 말구 쬐끔만 참어. 동넷일 본다구 네미 부녀회에 술빚만 한 삼태기 지구, 나만 버렁 빠지네. 술이구 짐치구 이따 사람들 오면 천신하게 쬐금만 참으슈들.”
하고 이장은 다시 말을 이었다.
“요새 죽겄어. 퇴비 허라, 하곡 허라, 농약 찌얹어라, 허구 하루에도 두어 패씩 면에서 사람이 나오는디 깨묵셍이나 뭐 내놀 게 있으야지. 올 같은 장마 끝이 가뭄에 채미가 열리나 도마도를 따나…… 수박은 쉰 구뎅이나 놨는디 구경두 못 허겄지…… 네미 애매한 쇠주허구 새우깡만 디립다 사 나르니, 이런 보리숭년에 모조받기두 틀렸구…… 천상 땅문서나 잽히야 쇠주빚 갚구 이장 내놓겄는디…….”
이장은 말끝을 흐리며 진모랭이께를 건너다보았다.
“뮐 근너다본다나. 오나 마나 째지면 솔이구 맥히면 공산 껍데기지. 모닥불두 다 사위었는디 가져온 병이나 비우고 가서 코 골지.”
다시 홍이 추근거렸다.
“그려. 나두 일찍 자야 새벅버텀 뽕밭에 매달려.”
장이 말을 보탰다.
“뽕밭에 가봐야 개흘레백이 더 있담.’,
최가 이빨로 병마개를 소리 없이 따놓고 말했다.
“주리틀 늠으 뽕밭을 싸게 갈아엎구 짐장이래두 갈던지 허야지. 바쁜 때 더 바쁘게나 허구, 누에 쳐봤자 왜놈들 변덕에 꼬치값이 있나, 조합에서 단돈 한 푼 보태주는 게 있나, 네미 뽕 따다가 뽕빠지게* 생겼으니…….”
“누가 땅마지기나 좀 내놔보지그려. 구전이나 받어 가옹허게. 요새처럼 패째다가는* 하루두 못 살겄는디…….”
이장의 우스갯말에는 아무도 신칙하지 않았다. 매양 주장해온 이장의 지론을 죄다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장이 늘 하던 노래가 아무고 절대 땅 한 뙈기도 내놓지 말자는 거였으니까. 땅을 내놔 버릇하면 조상 무덤까지 올려 세운다는 게 이장의 지론이었다. 그는 촌에서 땅이 나기만 기다리는 서울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느냐고 물으며, 시골 기관장은 월급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서울것들에게 땅 흥정 붙여주고 구문으로 재미 본다는 귀띔도 했다. 조상이 물려준 땅을 서울것들에게 넘겨주어 그 밑에서 소작하는 마을이 안 되도록 하며, 째다* 못해 더러 땅을 팔더라도 동네 사람들끼리 왔다 갔다 하도록 하는 것이 자기의 소신이며 임무라고 그는 떠들어왔던 것이다.
“실옰는 소리 웬만치 했걸랑 공중살포나 못 허게 막어봐. 누에는 치구 봐야지. 이러다가 농약 공중살포 헌다구 비행기 한번 떴다 허면 우리만 등 터지니께. 누에 잡는 건 두째여. 약을 얼마나 뿌려 얼마나 효과를 보느냐, 문제는 거기에두 있다는 얘기여.”
“공중살표 허면 품이야 상수버덤 혼수겄지. 헌디 약값은 워치기 계산헌다는 겨?”
장이 물었다.
“비행기 뜬 값까장 죄 쳐서 내야 될 판인디, 그 잘난 약 뿌리는 시늉허구 비행기 뜨는 비용할래 물면…… 네미 대전 가느니 서울 가겄네.”
고가 이장과 최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위에서 시키는 일을 무슨 끝발루 말린다나?”
이장은 한숨을 섞으며 뒤를 이었다.
“길수 아버지는 대사리 사람들 얘기두 못 들었나보유.”
“무슨 얘기를 듣는다나. 눈뜨면 논에 가 엎어지구, 별 뜨면 배〔腹〕 위에 엎어져 젖는 늠이― 대사리구 흑싸리구 줄초상에 과부 사태 안 난 담에야 벙어리 사둔 따루 웂이 사는걸…….”
하고 고가 질턱하게 늘어놓았다.
“누구는? 나처럼 밧쁘면 짐일셍이가 오줌 싸구 우리게루 소굼을 읃으러 온대두 뒤돌어다 볼 새가 웂는디.”
조가 젓가락 끝으로 주전자 속의 김치가닥을 낚아 올려 으적거리며 말했다.
“대사리 덥뎅이 새암말 사람이 아까 오너 그러는디.”
이장이 얼른 틈을 내어 하던 말을 이었다.
“어제는 농수산부 무엇이라나 허는 것이 피서허러 지나간다구 새벽버텀 어찌나 볶아대는지, 시 부락 사람들이 죄 분무기를 지구 나와 설랑 해전 내 논배미에 들어가 후덩거렸더랴. 공동방제 허는 시늉을 내라니 벨수 있남. 분무기에 맹물만한 짐씩 지구 나와설랑 신작로 가생이 냄으 논에 들어가 애매헌 베포기만 짓밟었다는 얘기여. 위서 허라는 것은 세상 웂어두 못 배기니께.”
“그러니 그 푸진 늠으 것, 비행기루 뿌려봤자 위서는 바람허구 땡볕이 먹구, 밑에서는 질바닥에 두렁풀허구 반타작허다가 마니, 폼 가지구 농사짓잖는 이상 그게 짝이 무슨 짝이냐 이게여.”
고는 속을 가라앉히고
“추울 적은 낮에두 춥구, 더울 적은 밤에두 더운 게 이치라. 잔이나 비여.”
홍이 판막음을 하는데 회관께에서 두루루루 하고 오토바이 들어오는 소리가 왔다.
“저기가 오는가뵈 .”
김이 술잔 비우던 입으로 말했다.
“그러게 쬐끔만 참으랬잖여. 그새 쇠주 한 병을 갓전허게 치웠으니…… 짐치는 냉겼남?”
이장은 주전자를 들어보았다. 이야기에 팔려 무심히 지범거린* 바람에 주전자엔 김칫국만 한 모금 남은 것 같았다.
“꼬치장허구 멜치 댓 마리만 있으면 넉넉허지 짐치는 뭘 혀?”
장이 말할 때 이장은 담배 한 대를 뽑아 홍의 턱밑에 디밀며
“우램 아버지. 워디 암디나 가서 싸게 애꼬추 좀 따 오뉴. 약 오른 늠으루 골러서…….”
하고 서둘렀다.
“이 밤중에 꼬추가 잘두 뵈겄다.”
홍은 귀찮다는 듯이 돌아앉았다. 이장은 김더러
“복셍 아버지두 얼릉 가서 채마밭 좀 더듬어보시구…… 그러구 웅칠 아버질랑 불더미에 나무 좀 더 얹으셔. 다이야 다 탔으니 나무래두 화룽화룽 태야지.”
그러면서 그는 먹던 짓가락을 바짓가랑이에 문질러 놓고 빈 병은 풀숲에 내던졌다.
사람들이 입을 모아 “끙―’ 소리를 내며 어둠 속으로 들어가자 으악새가 길닿게 울어 서로 칼질하는 둠벙 뚝셍이로 오토바이가 들어섰다. 산업 계장 김신철이가 오토바이를 몰고, 느티울 담당 서기 오근택은 뒷자리에 붙어 있었다.
이장과 악수를 나눈 계장은 최와 눈을 바꾸고 엉거주춤해 있던 고와 조를 훑어보더니
“사람 쇠 뫼여 앉어…… 모깃불 놓구 술타령만 했나뵈.”
하고 이죽거려가며 이내 모닥불 앞으로 다가갔다.
“개를 삶었나, 웬 나무등걸만 처질러 땠다나?”
뒤따라간 오 서기 말에 계장도
“느티울 양반들두 이러시긴가…… 다이야 잽히구 술 받어 자셨나뵈.”
하며 잉걸불이 녹아 흐르는 불더미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네밋― 정월에 보름 쇠며 먹은 것두 갈에 농사지여 갚는 게 술값인디, 무엇이 끕끕해서 흔털뱅이* 다이야 팔어 술 받어 마셔?”
그네들과 왕래가 잦은 최가 웃으며 쏘아붙였다. 그러나 계장은 곧이들리지 않는지 잇대어 넘겨짚고 있었다.
“하여간 한국 사람은…… 그런 머리 돌아가는 것 하나는 아마 세계적일 거라. 솔나방 잡는 디 태워 쓰라구 다이야 줘서, 시키는 대루 허는 걸 여적지 한 번두 못 봤다면 말 다 했으니께.”
계장은 이맛살을 찌푸리고 짬짬하면서 고개를 내둘렀다.
“구루마 바쿠루도 못 쓰는 흔 다이야를 원제 엿 사먹자구 안 태울 거유. 말씀을 워째 그렇게 듣기 그북스럽게만 허신대유.”
뒷전에서 조용하던 고가 고개를 거우듬하게 꼬고 눈을 지릅뜨며 뼛성있게 말했다.
“왜, 내 말이 틀류? 그렇잖어두 듣기 싫으라구 헌 말이유.”
계장이 고를 돌아보며 쏘아붙였다. 고도 말다툼엔 이골 난 사람이라 직수굿하지* 않고 대들었다.
“자세허지 말유. 사는 건 같잖게 살어두 관공리 구박 받을 사람은 여기 안 왔슈.”
“저 냥반이 시방 시비를 허자는 겐가 뭐여?”
오 서기가 눈을 부라렸다. 고도 끝내 소주 두어 잔 들어간 표를 낼 셈인지 거듭 말끝을 반미주룩하게 꼬부렸다.
“네밋― 우리 여편네허구 씨비헐 새두 웂는 판에 넘허구 시비를 허여?”
거탈뿐인 줄 알았던 고가 졸가리* 있게 맞설 낌새를 보이자, 이윽고 말반죽이 질음한 조가 한 다리를 걸고 들어왔다.
“내 말이 그 말이라. 나두 여름내 후미거리 한번 맘먹구 못 해봤으니께……”
“호미거리는 뭐래유?”
오 서기가 물었다.
“들일 끝낸 기념으루 허는 게 호미거리지 뭐유. 장 보구 와서 허는 건 쇠주거리…… 소 사 온 날 허는 건 여물거리……개 먹은 날 허는 건 외발거리……한짝 다리 들고 해야 잘되니께…….”
조가 지껄이는 동안에도 계장은 웃음기를 비치지 않았다.
조는 속에서 웃물이 돌아 덤을 얹었다.
“오형, 촌에서 무슨 재미로 살간디. 가족계획 않는 재미 하나여.”
“오형이구 B형이구 개갈 안 나는 소리 구만 허구…… 다이야 안 떼먹구 잘 태웠다는 증거버텀 뵈여디려.”
이장이 가운데로 들어서며 물을 탔다.
“증거구 자시구 다이야 속에 든 철사만 뵈여디리면 구만 아녀.”
하며 최가 나뭇짐 속에서 작대깃감 하나를 뽑아 불더미를 뒤적대는 사이, 계장은 슬며시 상대를 오 서기로 갈고 들으란 듯이 떠들었다.
“다이야 노나 주면 워치기 허는 중 알어? 그늠을 반반씩 짝 쩌개설랑 돼지새끼 구유로 쓰는디, 돼지새끼 열 마리는 충분히 멕이겄데. 둥그렇게 돌아가며 쪼란히 서서 사료 먹는 걸 봉께, 머리 하나는 기맥히게 썼다는 생각이 안 들을 수 웂더 랑께.”
오 서기가 말씨를 넣기 전에 계장이 다시 말했다.
“또 워떤 동네를 가보면 말여, 경운기나 니야까루 무거운 걸 운반헐 때 짐받이루두 쓰는디, 그것도 보통 꾀가 아니더라구. 다이야를 놓고 그 위루 짐을 푸니께 깨지지두 않구 마당두 안 패이구, 똑 안성맞춤이데.”
말다툼이 되살아날 것을 저어하는 풍신인지, 오 서기는 둠벙 저쪽으로, 여뀌 바랭이 쇠뜨기 뺑쑥* 투배기인 논두렁에 서서 소변으로 딴전을 보고 있었다.
“웂는 백성이 그런 지질헌 꾀래두 비벼내니께 보리만 먹구두 자식들 질러 냈지유.”
고가 말막음을 하는데 불더미 속을 뒤지던 최가 나뭇가지에 강철로 된 철사 두 타래를 꿰어 들고 왔다. 보나마나 타이어 속에 들어 있던 게 분명하자 계장이 돌아앉으며 말했다.
“자시다 냉긴 것 있걸랑 나두 구경이나 헙시다.”
“그렁께 내 뭐랬간유. 션헌 디 앉어 목이나 축이구 가시 랑께.”
잔을 돌릴 틈이 있었느냐는 투로 고가 말할 때, 이장은 재빨리 술병을 물어 떼었다. 그들이 이마를 맞대고 앉아 멸치 새끼로 간을 치며 한 잔씩 돌리는데 회관 마당으로 오토바이 들어오는 소리가 났다.
“에 이― 저늠으 소리…….”
이장은 고개를 외로 빼고
“아닌 밤중에 무엇이 나오는 겨?”
오 서기는 눈심지를 돋우었다.
“덥뎅이 윤가 아들늠 아녀? 서울서 야경꾼 허다 도둑늠 물건 도둑질허구 들어갔다 나온 애…… 저늠은 지집을 꿰두 꼭 오토바이에 달구 나가 콩밭이나 뽕밭에서 저지르는 취미라데.”
최가 아는 소리를 했다. 그러나 계장은 귓전을 털며
“일루루 오는디, 저게 거시기여. 소리가 황선주 오도바이여.”
하고는 입맛을 다시다가
“날 보러 오는 모냥인디, 저거 성가시러 큰일이여.”
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제서야 느티울 사람들도 느낀 게 있는 시늉으로 고개를 이렇게도 하고 저렇게도 했다.
“공것이라면 있는 늠이 더 껄떡거리는 겨. 누가 왔다니께 볼가심헐*거나 웂나 허구 뒤질러 오는 거지 뭐겄어. 지집년 빤스 입히구 시염 뽑을 자식―’
이장이 남은 술을 가늠하며 두런거렸다. 술은 사 홉들이가 두 병이나 그저 있었다.
“이장, 나 아쉰 소리 좀 헐라니 들어줄라?”
계장이 금방 횟배* 있는 얼굴을 하며 고쳐 말했다.
“저 황선주가 와서 내게 따리 붙걸랑 이장도 한마디 거들었으면 해서그려. 공연히 남춘옥에 가 저녁 읃어먹구 성가셔 못 견디겄당께.”
“뭐 땜이 진디(진드기) 옮었슈?”
“뭔고 허니, 단위조합 참사가 나허구 이종 아닌감. 이창셉이가 내 이종아우거든. 그런디 나버러 대이구 이종헌티 말 좀 놓으달라는 겨. 즤 형제상회 새우젓허구 호렴(胡鹽)을 팔어먹자는 수작이지.”
“황가가 또?”
이장이 묻는 동안에 계장은
“즉기나 헌감. 새우젓 쉬운 도라무, 호렴이 이백 가만디, 사실 그것 땜이 작년에두 좀 말이 많었었간. 작년 일 년 그런 학질이 웂었거던. 그런디 저게 접 때버텀 날 찾아댕기메 보챈단 말여. 즤 물건만 치워주면 내년 슨거에 표를 도리해주겼다, 이거라.”
“슨거? 아직두 슨거라는 게 남었간디?”
“단위 조합 슨거 말여.”
“내년에는 그런 게 다 있다…….”
“조합 슨거면 대가리를 뽑는개비구먼그려 .”
하며 최도 끼어들었다.
“조합장을 뽑는다?” 이장이 물었다. 계장은
“내년 총회서 시방 허구 있는 사람들을 밀어주겄다는 겨. 헌디 이 말 들으면 조합장은 펄쩍 뛸 게거든. 이 남면 (南面)이 워딘디 황선주가 미는 늠이 당선을 허여. 황이 뛰면 아마 총대(總代) 표 떨어져나가는 소리가 우술우술 헐걸.”
하고 나서, 황선주 형제가 합자하는 형제상회에서 금년에도 응천 독쟁이와 광천 독배로 들어오는 새우젓을 몽땅 매점 매석했다더라고 덧거리*를 했다. 이장은 듣다 말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 진저리를 쳤다. 그 물건은 단위조합을 끼고 이장들에게 억지로 떠넘겨 부락 사람들에게 강매시킬 속셈으로 모아놓은 게 분명 한 까닭이었다. 그것은 지난 몇 해 동안 봄가을로 한 해에 두 차례씩 해먹은 형제상회의 상투적인 수법이었다. 생필품이나 농기구를 이장들에게 떠맡겨 팔아먹으려면 단위조합을 거쳐야만 제대로 되던 것이 관례였다. 그래야만 이장들도 단위조합에 투자하는 셈 치고 이왕이면 조합 것을 팔아주자는 명분으로 주민들에게 먹 일 수 있었던 것이다.
형제상회의 제의대로 하면 조합에 떨어지는 것도 상당한 거였다. 이 장단을 구워삶는 비용도 형제상회에서 따로 내놓기 마련이므로 조합에서는 중개료만 받아도 적지 않던 것이다.
그러나 조합에서는 형 제상회의 물건을 꺼리고 있었다. 형제상회의 장사 방법에는 으레 말썽이 뒤따르는 까닭이었다. 자금과 기동력이 우세한 그들이므로 한번 눈독 들인 물건이면 남은 천신*도 해보기 전에 매점을 하던 것이다. 매점매석을 할 경우 필경 납품 경쟁자가 없어지니 수의계약*이라도 이점이 뒤따르고, 아울러 값도 자연 좋아지기 마련이었다. 장 담을 때가 되면 소금을 그렇게 하고, 육젓이 나올 무렵 이면 김장용 황새기젓과 멸치젓을 독점 했다. 그런데 그렇게 비축된 물건을 조합에서 사들여 팔거나 중개 또는 위탁판매를 할 경우 조합장과 참사는 반드시 비장한 각오라는 것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형제상회의 위력에 밀려 맨주먹 만 쥐게 된 다른 장사꾼들의 항의가 몹시 거세기 때문이었다. 모개흥정 에 바가지를 쓴 소비자들은 질이 낮은 것을 따지러 꾸역꾸역 몰려와 속을 풀고 가고 동네 아낙네들의 험구에 몸살 난 이장들은, 잔 소주에 비곗점으로 입맛만 다시다 온 술기운으로 찾아와 조합 간부들의 책임을 물으려 들었다. 전 같잖아서 이제는 잔뜩 주눅 들어 지르숙은* 농민들도 속기만 하지는 않던 것이다. 그들도 대들고 덤비며 대거리하려 드는 데에 주저하지 않게 된 거였다. 국말이밥집 주인이 국민회의 대의원으로 나간 바닥이지만, 그런 일로 뒷전이 시끄럽기로는 군내에서도 남면이 으뜸이라는 것이 공론이었다. 술기운 탓인지 계장은 어느 때보다도 입이 쌌다.
“또 그런 것들이 연임허구 못 허구가 나랑 무슨 상관이라나. 내 배 부르구 새끼들 등 따스면 구만인 겨.”
“……”
“이종아우가 참사를 허건 급사를 허건 내 알 바간디. 그런디두 저것(황선주)은 제우 맥주 돈 만 원어치 사면서 그런 수작을 허더랑께. 아니 맥주 여남은 병 은어먹구 그런 일에 찡길 나여? 당최 괘씸해서 말여.”
“맥주 가지고는 안 되지유.”
이장이 맘에 없으면서 해보는 소리로 말했다.
“맥주 먹으면 살쪄? 철웂는 것 같으니라구.”
“양복이나 한 벌 해달래보시지 그랬슈?”
최도 허텅지거리*를 넣었다.
“면서기에 양복이 무슨 소용이라나. 냉장고나 하나 사주면 모르겄다구 했더니 금방 뎌지는 시늉 허잖여. 자식이 싸가지가 웂더랑께.”
이장은 횡재수가 뻗친 것 같아 뱃속이 거늑했다.*
계장과 황을 한자리에서 붙여놓고 두 곤마*를 몰되 패가 나면 삼삼*에 뛰어들어 귀살이*도 할 수 있겠던 것이다.
“계장님은 뒷전으루 물러앉으슈. 닦어세우는 건 우리게에서 도리헐 텡께 맡겨두시구.”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이장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
먹기는 고사하고 코끝에 붙이기도 션찮을 그 월급에, 파 한 뿌래기 묻을 터 한 자락 없이, 여러 아이 학교는 무엇으로 보내며, TV는 우물에서 솟고 오토바이는 구름이 실어 왔단 말인가. 여태껏 형제상회 막내 노릇 해가며 먹을 것 다 챙겨 먹었다는 것은 알 만한 이면 다들 알고 있던 것이다. 방금 농담 비스름히 슬쩍 비쳤던, 냉장고를 사달라고 했다던 말도 사실일 터이었다. 그랬다가 황의 대답이 시원치 않으니 이장을 핑계하여, 더 좀 버티면서 홍정이 쉽도록 도모하고자 몇 마디 거들어달라는 게 분명했다.
우리게 사람 등쳐서 냉장고를 벌 테니 나는 이웃 사람이나 알겨먹으라?* 끙― 이장은 다시 이를 갈았다. 그는 속이 울렁거려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이장이 말했다.
“슨거라― 그늠으 것, 이별헌 지가 하 오래되어 인저는 낯짝두 잊어뻐렸지만…… 워치게 허는 게 슨건지 몰라두 내년에는 싹 갈어쳐야 되여. 위 옛늠이구 밑잇늠이구 내년에는 몽땅 내쫓고 말 텡께―”
“……”
“눈꼽재기만 헌 단위조합에서 느티울 팔어 테레비 산 늠, 대사리 팔어 자전거 산 늠, 덥뎅이 새암말 팔구 오도바이 산 늠, 보루목 핑계대구 양수기 해먹은 늠, 조합장이구 참사구 올까장만 잘 해 처먹으라구 허여.”
뒤를 최가 이었다.
“이전버텀 중복 넴긴 개는 백중에 끄실러 호미씻이 허는 벱여. 그것두 총회는 총회니께 나두 농사는 실농해두 뛰여댕기야겄어. 총대는 아니지만…… 못 살겄다 갈어보자― 이게여.”
“그 단위조합 연쇄점 미쓰 뭣인가 허는, 그 꼬랑지 너부죽헌 년두 내쫓으야 되여. 시숫비누 한 장에 사삿집* 가게버덤 십 원씩이나 더 얹어 받더라니께. 끙―”
고는 당장 어떻게 해볼 듯이 팔뚝을 코앞으로 치켜올려가며 눈을 희번득거 렸다.
“시방까장은 잘들 해 처먹었지만 인저는 안 되여. 새우젓이구 황새기젓이구 장터 가면 월매든지 쌓였어. 단위조합? 우리가 외면해뻐리면 니열 당장 추석 쇤 개장국집이여.”
조도 그동안 별러온 것이 적잖았던 듯 그칠 줄을 몰랐다.
“나두 표 있어. 처가 푸네기만 쓸어 뫼두 총대 하나는 나와.”
“나는? 나는 워떤디? 이 남면 바닥서 칠 대 이백오십 년을 살아온 나는 멫 표나 되는디? 그런디 조합 총회는 총대만 결읫권이 있단 말여……”
“출자헌 농민은 고무신 한 켤리를 살래두 밤낮 아쉰 소리를 허구…… 대접 못 받어, 돈 더 내여……빽으루 들어가 펜대 잡은 늠은 월급 타구 뽀나스 받구, 와이로* 먹구 코미숀 뜯구…… 즘심에 맥주 처먹구 저녁에 지집질허구, 출장 가서 장사허구 강습 가서 관광허구…… 이것들 내년 총회에 두구 봐.”
하는 이장의 말끝을 가르며 오토바이가 멈췄다.
“계장님은 연태 저녁두 못 자셨을 텐디 시장판에 술버텀 자시면 속 훑으려 위칙 헌디야.”
황은 고개를 굽벅거리며 오토바이를 끄고 나서 생각해주는 말부터 했다.
“여름 손님은 맏사위두 들 반가운 벱인디, 건건이도 옰구, 깨묵셍이나 있는 게 있으야 가시자구 허지유.”
조의 말에 계장은
“아까 울게 갔다가 봐놓은 상 먹구 왔슈. 가구 보니 이장네 옆구리 천상준이 자당으른 진갑 잔칠레. 게 비곗점이나 먹었더니 든든허유.”
하며 자기가 비운 잔을 황한테 내밀었다.
“그이가 벌써 그렇게 됐던가뵈. 접때 장에서 보니 빠마를 새루 했길래 아직 쉬운댓 이짝저짝인 줄 알았더니. 그런디 여게, 손님 대접이 워째 이렇다나. 이왕 술을 받을라면 병아리라두 한 마리 볶던지 허잖구는…….”
제 나름으로는 계장이 듣기 고소름한 말로만 골라 한다는 풍신이었으나 계장 옆에 앉았던 오 서기가
“들쇠주는 꼬치장에 멜치 새끼 쥑여 말린 것 댓 개만 있어두 술이 모자르지 뭘 그류” 하자 황은 얼른
“암만― 안주가 무슨 필요 있간디. 별똥 하나에 한 잔, 구름 한 뎅이에 한 잔, 그게 풍류지.”
하며 얼레발*을 쳤다.
“네미― 어둬서 뵈야 따지. 디리 훑었어두 먹구 자시구 헐 게 웂겄는디……”
홍이 모자에 수복하게 잎새째로 마구 훑어 온 고추를 쏟아 놓으며 중얼거렸다. 뒤따라온 김도 허리가 휘게 져 온 쌀자루를 그 옆에 쏟으며
“나는 어떻구? 원체 저기허니께 채민지 호박인지 뵈야 말이지. 아예 저기할래 걷어 왔는디 호박이나 안 섞였나 모르겄네.”
하고 이마의 땀을 훔쳤다.
“숫제 호박을 따 올 걸 그랬네야. 워쩌면 반 접이나 되는디두 단내 나는 건 서너 개뿐이라나.”
뒤엉킨 덩굴 더미를 뒤적거려 참외를 고르던 이장이 말했다. 김은 짐짓 못 들은 척했다.
“아따, 누군가 꼬추 농사 한번 인물 나게 지었다…… 밥 먹구 뭘 했간디 꼬추를 이 지경으로 맹글어. 이 풍신 나는 걸 뭣 허러 따 온다나. 차라리 쬐금 더 걷더래두 우리 밭에 가서 따 올 게지…… 잘기는 이 잡어먹 게두 잘다. 끙, 이거 워디 지려서 입에 넣겄다나.”
황이 부질없이 지껄이자 홍은 계젯김에 잘됐다는 듯이
“지리기야 왜 꼬추가 지린가유. 빤스가 지리지.”
하고 심심하게 웃으며 다른 술병을 이빨로 땄다.
“입어본 사람 얘기가, 저기표 빤스는 이틀만 지나두 썩는 내가 진동허더라데. 그것도 사람이 짜면 짤수록 더 독헐 테지만.”
김도 황의 입질이 잦으리라 기대하며 슬며시 밑밥을 던져보았다. 그러나 남대문표를 저기표라고 하는 바람에 아무도 새겨들은 이가 없었다.
이장은 과도가 없으므로 참외를 주먹으로 쳐서 쪼개 놓았다. 황도 누구 못잖게 술이며 참외를 허발하고* 걸터듬었다.* 김은 공것이라면 으레 눈이 뒤집히던 황과 섞여 앉은 게 마뜩찮아, 단단하게 약 오른 고추를 통째로 죽여도 혀끝이 얼얼하긴커녕 비릿비릿하여 비위가 상했다. 게다가 황은 개평꾼 주제임에도 되잖게 씨 안 든 안주 투정을 그치지 않았다.
“이건 뉘 집 꼬치장인디 이 모냥다리여. 쏘내기에 장독을 안 덮었나, 꼬치장이 워째 찰기도 웂구, 묵은 된장 푸레미에 들 익은 보리개떡 갈어 놓은 것처럼 묽으주룩허니, 똑 입맛 버리기 십상일세그려.”
하고 황이 고추장 나무람을 할 때는 속에서 이만한 것이 넘어오려고 하여 견딜 수가 없었다. 홍도 속에서 아래웃물 지는 게 있는지 참외 조각만 되새기더니 황이
“계장님허구 오 형은 내 집에 가 한잔 더 허게 얼른 들구 일어납시다. 적이나하벋* 새우젓이래두 두어 저붐뚜 무쳐 내올 게지…… 들뜬 꼬치장에 지리비리헌 희아리* 꼬추허구 깡술 허느니, 숫제 목구녕을 차압허는 게 났겄어.”
하자 대뜸
“이 꼬추가 뉘 집 겐지 짐작두 못 허슈? 이게 바투 춘자네 밭이서 딴 게라구유.”
하고는 그게 그리 고소한지 계장이 내놓고 피우던 거북선을 뽑아 물었다.
“그려? 워떤 밭? 우램이네 우물 옆댕이? 그건 안 되여. 큰일 나는겨. 약 찌얹구 물(비) 한번 안 갔는디 그걸 따 오너?”
황은 베어 먹고 남은 고추 반 도막을 들고 있다가 얼른 저리 내던지며 펄쩍 뛰었다.
김은 소리 없이 웃었다. 자기도 황네 원두밭을 덩굴째 함부로 걷어담아 왔던 것이다.
황이 자기네가 먹을 것 두어 이랑 빼놓고, 고추밭을 온통 농약으로 뒤발시켰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고추밭에 약을 뒤집어씌우면 막 열린 애고추마저 억지로 붉으니, 시퍼렇던 고추말이 한 파수만에 가을걷이를 가능케 하던 것이다. 밭에 세워놓고 순식간에 약으로 익혀 붉은 물고추를 만들어 서울로 올려 보내면, 값이 좋아 제물에 붉어 말린 김장 고춧값과 맞먹는 시세로 치울 뿐 아니라, 잇대어 밭을 떠 엎고 추석 배추를 갈면 이내 씨가 서서 훌륭한 이모작이 되므로 그만큼 남는 게 있는 까닭이었다.
“네미…… 허구 많은 꼬추 중에 해필이면 극약 씌운 암(癌)꼬추를 따 오셨슈?”
농약 하면 곧 발암 물질이 연상되는 터라, 오 서기가 들은 입을 뱉으며 가시 걸려 안 넘어가는 소리로 말했다.
“아뉴. 이건 식구 먹을라구 약헐 때 빼놓은 이랑에서 따 온 게유. 약 찌얹을 때 내가 봤걸랑유.”
홍은 믿으란 듯이 고추 하나를 새로 물고 어적거렸다.
“암은 도시 사람들이나 걸리는 거니께 그냥 드셔.”
했지만 김도 찔리는 구석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김도 요즘은 매일같이 농약에 헹구다시피 한 물건을 서울 장사꾼들에게 넘겨왔던 것이다. 물론 풋고추를 밭에 세워놓고 붉히는 약만큼 독성이 강한 건 아니었다. 다만 물을 팔백 배가량 타서 써야 할 마릭스유제를 사백 배 정도로 섞어 썼을 따름이었다.
김은 에멜무지로 갈았던 김칫거리가 때를 잘 타 이달은 벌이가 괜찮았다. 열무 갈아 한목에 십여만 원 다발을 만져보기는 처음이던 것이다. 그러나 요새처럼 김칫거리 푸성귀가 고기값보다 셀 땍 그만한 재미도 못 본다면, 어느 왕조에 밥상에서 도막반찬 구경을 해볼 터인가.
그는 매일 아침 이슬이 자면 열무와 배추밭에 농약을 짙게 끼얹고 진딧물이 깨끗이 쏟아진 저녁나절마다 삼백 단씩 뽑아 밭에 놨다가, 새벽에 들이닿는 경동시장 상인들에게 맞돈을 받으며 넘겨주곤 했다.
겉보매가 깨끗하다는 이유로 두어 번 헹구어 거의 날로 먹다시피 해온 김칫거리에 농약을 퍼붓는 것을 김도 싸가지 있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하지만 구태여 없어진 지 오래인 양심이란 것을 뒤져낼 건더기는 없다더 라도, 어쩌다가 TV에서 농약 공해가 어떻다고 떠드는 소리가 귓결에 닿으면 한참씩이나 뒷맛이 개운찮던 게 사실이었다. 그러면서도 김은 공연히 자기만 주눅 들어 할 까닭이 없다고 여겼다.
김은 농약 우린 물을 김칫국이랍시고 먹는 도시 사람들에게도 책임의 절반을 물어야 한다고 믿었다. 배추 잎새에 벌레 지나간 자국이 뚫려 있거나 진딧물이 붙은 건 너무도 당연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먹는 사람들은 벌레 기미가 있을 듯한 채소라면 진저리를 쳐가며 젖혀놓고 매끈한 것만 첫째로 여긴다. 장사꾼들도 양잿물로 씻었건, 농약에서 건졌건, 아랑곳없이 물건이 깨끗한 것만 찾는다. 한 푼이라도 더 벌자면 농사꾼도 장사꾼 눈에 드는, 아니 직접 먹는 실수요자의 취향과 선호도에 맞추어주지 않으면 안 된다. 어수룩하게 안 보이는 사람들의 먼 장래 건강까지 걱정하며 농약 극약을 피해 영농한다면, 결국 이쪽으로 돌아오는 것은 다만 실농이 있을 따름이었다.
“내남적웂이 농약 안 쓰구 농사지을 수는 옰는 거니께…….”
계장이 물러 앉았다.
“게, 나두 워쩌다가 서울 즉은집 이나 당질네를 가면 앉자마자 으레 허느니 그 소리라. 벌레나 진디 웂는 푸성가리는 사 먹지 마라― 이게 노래라구. 그러면 벌레 먹은 푸성가리는 농약이 있어두 순박헌 농민이라 양심상 암 뿌린 게냐구 묻더먼…… 게, 이 한심헌 세상에 두 심 쓸 져를이 워디 있느냐구, 농약이 있어두 딴 일에 치어 바뻐서 못 찌얹은 게니 그런 늠만 골라서 사 먹으라구 이르는디, 그래두 말 안 듣데. 송장도 먹구 죽은 송장은 빛깔이 좋다나 워떻다나 허면서, 뵈기 좋은 게 먹기두 좋다는 디는 못 말리겄더라구…….”
고의 말을 받아 뒤는 김이이었다.
“우리나 서울것들이나 서루 저기허기는 매일반인 겨. 서루 다다 쇡여먹잖으면 못 살게 마련된 세상인디, 촌사람만 독약 쓰지 말라는 법이 있담? 시방은 사람사람이 먹구 쓰는 게 죄 약이 아니면 독으루 알구 살어두 저기헌 세상인디, 새꼼 빠지게 가로왈 세로왈 헐 게 뭐라나?”
“허기는 그려. 뭐 한 가지 맘 놓구 쓸 게 웂으니께. 근래 근대화 바람에 일어난 공장에서 맨든 것이면 싸구려루 내던지는 수출품은 안 그래두, 내국인헌티 팔어먹는 건 공해 아닌 게 웂거든. 특히 농촌으루 흘러오는 게면 열에 일고여덟이 불량 제품이구 가짜란 말여.”
황의 말을 덮으면서 김이 한마디 보탰다.
“물건뿐이담유. 내 말이 저기헌 것이, 요새 테레비 한 가지만 여겨보라구. 활동사진이구 굿이구 간에 여편네들이 저기헐 게 있다? 자식들이 한 가지나 배울 게 있다? 공해가 벨것 아닌 겨. 사람 사는 디 이롭잖은 건 죄 공해거든. 일 년 열두 달 테레비 모셔봤자 눈깔에 생혈이나 오르지 소용 있담? 여편네 밤마다 마실 댕기메 넘으 텔레비전 앞에 턱살 쳐들구 사는 꼴 안 보자구, 숭년 곡석 돈 사가며 들여놓구 인저는 후회가 막급일세. 신문을 보자면 열통이 터지구, 무슨 들어볼 만한 소식이나 웂으까 허구 워쩌다가 틀어보면 네미― 사람이 얼마가 죽구 얼마를 도적질했다는 얘기뿐이지, 연속극인지 급살인지는 늙은이구 밤슁이구 몽땅 한자리에 넋 놓구 앉은 디서 허구헌 날 놉* 아니면 품앗이구, 홀앗이* 아니면 생멕이 천지니, 경향 간에 공해버텀 평준화돼 가지구설랑……”
“생멕이라니?” 계장이 물었다.
“놉은 서방질…… 품앗이는 지집질, 홀앗이는 오입질, 강간은 생멕이……그런디 그런 것두 모르구 산업계장으루 기시니 어지간허슈.”
하고 홍이 대답했다. 모두 맛없이 웃는 가운데 황 혼자만 얼굴을 다지더니 어디서 흔히 들어본 듯한 말투로 나왔다.
“모르는 소리두 되게 해쌓네. 있으면 옰는 것버덤 낫지 무슨 초상에 개 잡는 소리라나? 테레비가 하루만 웂어보게, 지미 카터가 원제 쯤 미군 철수를 해가며, 밴스가 천안문에 들어가 화국묑이허구 무슨 호이담을 혔는지, 이런 촌간에서 워치기 알겄나.”
“빤스가 남댑문에 들어가 좆뵝이허구 모슨 회담을 허는지, 짐치 한 가지루 건건이 하는 우리네가, 모른다구 세금 물리지 않는 담에야 안다구 젓 담을 거여?”
하고 홍이 뾰루지마냥 불거져 나왔다. 그러자 장병찬이가 나섰다.
“좌상(座上) 말두 좀 들으슈. 좌중에 민방위 끝낸 사람은 황 좌상 혼잔 모양인디…… 황 좌상 말씀두 뭐가 있긴 있는 게, 테레비 안 보면 상식 은을 디가 워디 있슈? 그나마 테레비 덕이지.”
이젠 오 서기가 뛰어들었다.
“사실이지 뭐유. 나랏덕 보며 살거든 고마운 중이나 아시야지. 네미 서울처럼 수돗세 청소비 오물수거비 방범비……·승〔姓〕 따루 이름 따루 아호 따루, 한 달에 열두 가지씩 내는 세금만 안 물어두 워디유. 게다가 테레비루 팔도강산 헌다 허는 관광지 앉어서 구경허며 살거든, 윗사람네 덕 보구 아랫사람에 빚지는 중두 알구 살으야지유…… 때에 따라서는 젓가락으로 죽 먹는 수도 있지, 워치기 그렇게 따져 가메 산대유?”
오 서기 말에 황은 연방 “암만― 물런―” 소리로 간을 치고, 다른 사람들은 눈만 끄먹거리고* 있는데, 홍은 고개로 부라질*을 하며 속이 올라오는 것을 애써 삭이는 눈치였다.
말이 더 이상 엇갈리면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이 속을 꿇이다 못해 큰일 낼 소리까지 내뱉을 것 같아, 김은 얼른 다른 말을 끌어대어 틈서리를 막았다.
“우리는 지금 세금 안 내는 중 아시는디, 부가가칫센지 뭔지, 우리두 넘들 내는 건 구색 갖취 내구 사는 규. 수재 의연금은 도시것들버덤 외려 더 낸 심이지……”
“그런 소리 말유. 내기루 말 된 디서 사십 원을 깎구 낸 사람두 있슈. 남면 십오 개 리에서 사십 원을 깎구 낸 사람은 아마 우리게뿐일겨.”
이장이 한마디 하고는 구개를 둠벙께로 틀었다.
“그것뿐인감― 수재민이 남댑문 열어놓구 댕길깨미 남댑문표 빤스를 부주헌 디두 우리게 하날 텐디.”
겨끔내기*로 홍이 웃기를 얹으므로 김은 비로소 계제가 됐다고 여겨 마침내 입이 간지럽던 말을 꺼내었다.
“여보, 이장 말여. 그 저기헌 돈, 구 사십 원 모자라던 쌀 두 됫박값은 그 뒤루 물러줬던감?”
하며 김은 이장을 바로 쳐다보았다. 황선주가 저번 장도막의 쌀금 금으로 쳐서 내놓은 오백육십 원의 행방에 대한 물음이었다. 홍과 조와 고도 이장을 쳐다보았다. 이장은 황을 여러 사람 앞에서 공글리기로 다짐한 터라 서슴없이 말했다.
“아따 복셍이 아버지두 돌려주기는…… 동네에서 기중 못사는 사람이 사십 원이 웂어서 못 채워낸 가슴 아픈 사정두 봐줘야지, 이웃에서 워치기 박절허게 되무른단 말유. 그 사람인들 동네 사람 폐롭히려구* 역부러* 그런 짓 했겄수. 워디 가서 그런 소리 해보슈, 느티울에 사람 산다는 소리 듣겄나. 내가 새마을 한 갑 덜 사 피면 되는 늠의 것을…… 헹편 어려운 집이 이웃에 살면 내 것을 보태서라두 넘으 축에 안 빠지게 해주는 게 도리 아녀……”
황은 잇긋 않고 술잔만 잘금거렸다. 안 들은 것으로 치부하겠다는 배짱이 분명했다.
“허기사…… 저렇게 헐 말두 그렇게 헝께 그 말두 옳웨.”
하며 김은 그만두려 했다. 이장이 그만큼 했으면 황도 생각하는 바가ㅍ없지 않겠던 것이다. 그러나 홍은 달랐다. 양이 덜 간 눈치였고, 도리게 조져 잡도리하자는 눈짓을 거듭 좌중에 돌렸다. 아무도 말리는 기색이 없자 홍이 말했다.
“네미― 그럼 저 회관 앞에 빤쓰는 느티울 깃발이라구 게다 걸어놨던감. 여북 째구 쪼달리면 안식구는 그 흔헌 삼각빤쓰 한 장 못 걸치구 살었겄어. 잉? 오죽했으면 사내 빤쓰 하나만 짝재기루 내놨을 거여. 집에두 반성헐 점이 많다구. 명색이 이장이면 적이나마 누가 입던 게던, 여자 빤쓰 한 장은 마련허구 짝을 채워서 수재민 구호를 허던지, 그 집 안식구 입히라구 되돌려주던지 할 게지…… 저냥 줄창 내걸어 놓구 낮 소내기 밤 이술 죄 맞혀 쌕히니, 그래두 동네일 본다는 이장여?”
“……”
아무도 응수를 않으니 홍은 더욱 신명이 나서 떠들었다.
“이왕 동네일 본다구 흰소리혈* 작시면 뭐 한 가지래두 제대루 시늉해보라구. 그렇게 참나무 전댓구녕마냥 꼭 맥히구, 밴댕 이 창새기*만 헌 소갈머리두 웂어가지구, 보리 때 지났다구 보리쌀 한 말 모조 받으러 댕길 텨?”
“속 쌕이는구먼. 우람 아버지는 왜 또 나헌티 소가지 부려?”
이장이 반주를 넣어주었다.
“아따 그렇게 갑갑허걸랑 우람 엄니 입던 게라두 갖다 한 쌍 맹글어.”
“우리 여편네 것은 남댑문표가 아녀. 남댑문표허구 하냥 놓면 또 짝재기가 된단 말여.”
“그럼 무슨 표여? 왕십리표여?”
“안방문표다, 왜?”
“……”
아무도 뒷받침을 못하는 틈에 김이 말했다.
“이녘은 회관 앞에다 남댑문표를 걸어 놓니께 누가 짝 채워주기 바래구 걸어 논 중 아는디, 그건 아녀.”
김은 홍을 눈으로 집적거리며 말했다.
“그게 아니면 뭐이냐, 뭣 땜이 회관 앞에다 창대미 세워 걸어 놨느냐, 그건 냄새 때미 그런 겨.”
“짠내가 나담?”
홍은 쉬고 대신 고가 번차례로 나섰다.
“암― 새우젓장수가 입던 게라 그런지 그 근처만 가두 코가 썩는다구 야단들이여.”
“그래 바람에 바래면 냄새가 좀 가실까 허구 걸어둔 겨. 아직 안 가본 분은 가보셔.”
이장이 부축했다. 영문을 몰라 맨숭맨숭하게 앉아 있던 계장과 오 서기도 마침내 지저분한 말만 찧고 까부르는 얼거리*를 대중하고,* 서로 담배를 물리며 불을 댕겨가곤 했다. 그들은 슬몃슬몃 뭉기적거려 뒷전으로 물러앉고 있었다. 그러자 내동 잇긋 않고 천연스럽기만 하던 황도 더는 못 참겠는지
“집은 대관절 무슨 억하심정으루 나를 요로크롬 봉변시키는 겨?”
소리를 냅다 지르고 나서
“이 사람들이…… 원제 뭘 본 게 있으야 생각허는 바두 있지. 네미…… 구찮어두 내가 얘기를 헐라니 들어들 보라구. 이재민이라는 것은 말여, 당장 솥단지 끄실리구 몸뚱이 눈가림헐 것만 급헌 게 아니라 이거여, 먹구 자는 것두 급허지만 때로는 양말 한 짝이 급허기두 허구, 다 젖혀놓구 뒷간 갈 종잇조각이 더 급헌 경우두 있는 겨. 안 그렇겄나?”
“허긴 그류.”
장이 잔뜩 숙이고 있던 이마를 두어 번 건져 올렸다. 논 여남은 마지기 반타작으로 고지 얻어 짓는 게 그토록 무서웠다. 그렇다고 그러는 장을 대놓고 구박하기도 야박스러워 모두 입을 다무는데 홍은 성질을 못 이기고 말했다.
“집은 뭣이가 그렇다구 허긴 그류여? 유언(遺言)에두 하루치가 있구 십 년치가 있어…… 자구 먹으면 입을 것 걱정하는 게 으레 있는 보통 사건인디, 그중에두 급불급이 따루 있다?”
“좌상 말씀두 들 끝났는디 중간에서 웬 지방방송이여?”
성질이 눅진한 장은 고개를 딴전으로 돌리며 숫기 없이 말했다. 그러자 홍은 장의 그러는 꼴이 더 얄밉다는 듯이
“그럼 집이서 좌상 특집 방송을 허라구. 나두 얼른 벌어 땅 사서 넘 내주구 들어 앉어서 먹으야지, 끙―”
“자네들두 나이 사십이 니열모리면 즉은 나이가 아녀. 말힐 것 같으면 인저는 생각허며 살 나이라 이게여. 생각들 해보게.”
하고 황은 좌중을 한 바퀴 쓸어 본 다음
“내가 아닌 말루 꼭 한 번백이 안 입은 빤쓴디두 눈 딱 감구 내논 건 다 그만헌 생각이 있어 헌 게라 이 말여. 그런디두 자네들은 그게 무슨 노리개나 된다구 씩뚝깍뚝허메 마른 확*에 가물태 쭉젱이 빻는 소리나 농헌다나. 아서, 아무리 으른 아이 따루 웂이 막가는 동네지만 그러는 게 아녀. 나두 들을 말 있구 안 들을 말 있는디. 잔나비들마냥 으른 앉혀놓구 반 토막짜리 농담이나 예서 찔끔 제서 찔끔…… 꽤소금 단지 엎지른 시앗*마냥, 사내들이 워째 그리 자디잘다나? 함부로 그러다간 동네 버리기 십상이니.”
하고 나무람하던 말끝을 한 모태*로 뭉쳐 아퀴 지으려 했다. 김은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누구보다도 먼저 입을 열려고 했다. 그런데 그보다도 더 성미가 급한 사람이 홍이었다.
“으른은 네미― 이 자리에 으른은 뉘구 애는 뉘여. 댓진 바를 디다 곤지 찍구 있네. ㅆ…… 그래 우리가 동네 버릴라구 회관 앞에다 코가 쏘는 빤쓰쪼가리를 내 널었다 그게유?”
“아니면? 그만두소, 그만들 둬. 대이구 객적은 소리나 이 입 저 입으로 찍어 바르며 장난질허면, 우리게는 장차 워치기 되는 겨. 오늘은 내가 참을 것이니 거기들두 달리 생각해보라구.”
황도 그 참 내뻗을 기세였다. 김은 그 뻔뻔스러움에 놀라 할 말을 잊었다가 간신히 되찾아 말했다.
“그러구 보니께 춘자 아버지는 동네 젊은이들이 본뜨게 모범스럴라구 그런 야짓잖은 짓만 퉁퉁 했던가뵈. 삼십 년 사십 년 저기허구 사는 이웃 간에두 이자 웂이는 단돈 천 원 한 장 안 빌려주구, 고리대금해서 해포에 논 댓 마지기씩 늘리는 이가 이재민 돕기 쌀 두 됫박이 저기해설랑 벌벌 떨구, 장끔으루 쳐서 사십 원 모자르게 저기허구 했던 겨. 원체 그렇게 해야 으른 노릇두 허게 되겄지만…….”
“왜? 그게 워디가 워때서 불만헌다나? 생각해보게.”
황은 다시 나무라는 투로 말했다.
“쌀 두 됫박 평미레*루 싹 갈겨 야리게* 내주느니버덤, 곡가 챘을 때 챈 금으루 환전헌 게 얼마나 아쌀헌디? 됫박두 되기 나름여. 고봉* 아니면 두 홉이 빠지는디 워떤 늠이 고봉으루 내놓다?”
황의 변명도 한 귀로 들으면 그럼 직했다.
“돈 있다구 늠짜 헐직이 쓰지 마슈. 내늠두 고봉으루 냈지만 모개루 싸잡아서 늠, 늠, 허면 워떤 늠이 늠름허구 있을 겨. 네미一”
홍이 도끼눈을 지릅뜨고* 힘을 모아가며 대들었다.
“작것이 아까버텀……그래 늠름허잖으면 워쩔 티여. 인저는 으른 아이두 못 가리구 패 돌리누만.”
황은 어이없다는 듯 턱을 초들며 허리를 거우듬하게* 뒤로 젖혔다.
“아까버텀 으른은…… 나이 몇 살 저기허다구 나머지는 죄다 애루 뵈여?”
하며 김도 두 팔을 뒤로 짚고 허리를 공중에 기대었다.
“암만ㅡ 순댓국을 먹었어두 늬것들버덤은 얼마를 더 먹어두 더 먹었지. 따져보랴? 기역 니은만 시늉허면 다 말인중 알구…….”
“그려, 따져. 산술 션찮여 돈은 못 벌었지만, 먹은 그릇 심은 빠드름허니께.* 자 봐들……”
홍도 얼며서 말을 놓으며 두 손을 쳐들고 주먹구구로 들어갔다.
“그러니께 월마를 먹은고 허니, 춘자 아버지가 시방 쉬운이니께, 한 달 육 장에 오륙은 삼십허구…… 일 년 열두 달이 삼백예순다섯 날이라, 하루 시 끄니에, 있는 집이라 밤참허구 곁두리*를 사철 먹을 테니 하루 다섯 끄니, 그러면 에또, 오 삼 십오에 가설라니, 한 달이면 백오십 그릇…… 백오십이 열두 번이면 이 공은 공, 이 오 십에, 하나가 올러가서 이 일은 이, 허면 삼백, 그지? 맞어, 아니…… 그렁게 아니구 백오십이 열이면 천오백에 가설라니, 두 번을 더허면 그려, 천팔백― 천팔백에 오십을 곱해봐. 공 공은 공, 오 팔 사십 허면, 구, 그려, 구만 그릇―”
“아따 도지게 심심헌가뵈, 넨장 ”
장이 황 보기 민망한지 가운데다 초를 치려했다. 그러나 홍도 이미 작정한 게 있은 터라 들은 대꾸도 않고
“구만 그릇인디, 황새기젓 새우젓 천일염두 웂는 집보다 더 먹을 테니…… 네미 처먹어두 육시러게 짜게 처먹었네.”
“뭣이 워쪄? 이런 배냇적에 간수 먹을 늠으 자식―”
하며 황이 박차고 일어서는 것을 계장이 잽싸게 끌어 앉혔다.
“황 주사두 좀 참으슈. 서루 내외 않는 남냄인디 농담으루 화내실튜?”
오 서기가 달래는 동안 홍은 그저 있기가 멍둥하여 얼른 남의 술잔으로 제 입을 틀어막았다. 말꼬랑지에 파리가 붙었던 것은 부러 할래서 그런 게 아니라 말버릇 따라 무심중에 입 밖에서 묻어온 거였다.
다른 사람들도 그래 그랬거니 하고 있었다.
그러나 김은 홍이 그대로 숙어 들면 안 될 것 같았다. 이왕 멍석 펴놓은 김에 푸닥거리를 마무리해야 개운하겠던 것이다. 그래서 김은 이내 하려던 말을 꺼냈다.
“그렇구먼그려. 워떤 것은 짜게만 먹었어두 아무 탈 웂는디, 옆댕이 있는 늠은 공중 맹물만 켜구두 편찮당께. 춘자 아버지 들으슈. 앞으루는 단위조합 끼구 우리네헌티 장사헐 생각일랑 아예 마슈. 우리가 한두 늠 배지 불리자구 출자헌 게 아녀. 앞으루는 단위조합 것들버덤 더 높은 웃대가리가 와서 벨소리루 저기해두 속지 않겄다, 이게여. 춘자 아버지 잘 생각해보슈. 비 때 비 주구 눈 때 눈을 주는 하늘두 우리를 안 쇡이구, 쌀 때 쌀을 주구 보리 때 보리를 주는 땅두 우리를 안 쇡여유. 그런디 하물며 사람 것들이 우리를 쉭여? 항차 우리에게 뭔가를 보태주려구 뛰어댕긴다는 것들이 우리를 쇡여? 저늠으 것, 저 오도바이― 저늠으 것은 인저 소리만 들어두 넌더리가 나우, 넌더 리 가……”
김이 말끝을 내기도 전에 황은 삿대질을 하며 나무라는 말투로 떠들었다.
“도대체 늬 것들헌티 뭘 쇡였단 말여? 내가 쇡인 건 뭐구 늬가 속은 건 뭐여? 내 새우젓 황새기젓 처먹은 게 배 아프면 그 입으루 더 지껄여봐.”
황은 일어서보려고 몸부림을 했으나 계장과 오 서기의 완력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그러자 홍이 둠벙 을 손가락질하며 무디고 모가 나게 다듬은 음성을 황에게 건넸다.
“알어들을 만큼 타일렀는디두 아직 정황을 모르는 모냥인디, 정신 좀 들어야 되겄어. 암만 해두 저기 좀 댕겨와야 정신이 들랑개벼…… 자 뭣이 들어갈려? 당신을 처놓으까, 오도바이를 던져버리까?”
“……”
황은 눈이 뒤집힌 채 대꾸를 못했다.
듬벙은 무시로 자고 이는 마파람* 결에도 물너울은 번쩍 거리고, 그때마다 갈대와 함께 둠벙을 에워싸고 있던 으악새 숲은, 칼을 뽑아 별빛에 휘두르며 서로 뒤엉켜 울었다. 으악새 울음이 꺼끔해지면 틈틈이 여치가 울고 곁들여 베짱이도 울었다. 김은 그것을 밤이 우는 소리로 여겼다. 하늘은 본디 조용한데 으레 땅에서 시끄러웠었다는 것도 더불어 깨우치면서,
“세상이 아무리 뭣같이 되었더맥두 헐 말은 허구 살아야겄더라구.”
이장은 계속했다.
“촌늠은 나이가 명함이지만 나두 막말을 안 혈 수 웂어 허는디, 당신이 계장님 만나러 예까장 온 속심을 우리가 모르지 않어. 물간 새우젓, 곯은 황새기젓 좀 농민들헌티 멕여보까 허구 시방 지켜앉어 있는디, 아스슈, 아스라구. 나두 작년 같잖여. 나두 정신 채렸다구. 작년만 해두 동네서 쥑일 늠 소리를 들었구, 또 그래야 쌌어. 허지만 나두 싫어. 왜냐. 나두 당신 말마따나 젊어. 넘으 잔치에 설거지해주다 내 배 곯구, 동네서 소리 들어가며 살구 싶지는 않디라 이게여. 그러구 이건 내 개인 문제가 아녀. 그럼 뭐냐. 하늘과 땅과, 비바람두 눈보라두 우리를 보호해줘. 심지어 개돼지두 우리를 위해 살어. 그러나 사람은 틀리더라 이게여. 그러니 인저는 세상웂이 거시기헌 늠이 무슨 소리를 해두 못 믿겄더라 이게여.”
이장은 말허리를 끊고 좌중을 한 차례 둘러본 다음 나머지를 이었다.
“그러니께 결과적으루 우리 스스로 우리를 보호허지 아니허면 아니되겄더라― 이게 결론여. 내 맘만 같으면 당신이구 오도바이구 죄 남댑문표 빤쓰에 싸서 둠벙 속에 처놓겼어. 또 그래야 옳어. 그러나 워쨌든 간에 당신은 우리게 사람여. 우리는 아직두 이웃을 보살피구 동네 사람을 애끼구 싶다 이게여. 그리고 당신 빤쓰 아니더래두 수재민들이 홑바지는 안 입는답디다. 부디 니열 새벽 빤스버텀 걷어가슈. 당신 손으로. 동트기 전에.”
“……”
황은 응수하지 않았다. 틈을 여투어* 김이 말했다.
“그만 일어들 납시다. 니열 일헐라면 눈 좀 붙여야 허니께. 그런디 일어스기 전에 나두 한마디 이를 게 있어. 면에서 나오신 분들헌티는 미안허지만 이왕 대화를 저기허는 짐에 저기허야겄어.”
“복셍 아버지는 말 속에 그 저기 소리 좀 저기허슈.”
홍이 앉은 자리를 당겨오며 계속하기를 재촉했다.
“말씀허셔유. 우리가 딴 동네 안 가구 일루 온 게 몇 번 잘했는지 몰라유. 역시 느티울다위유. 가만히 봉께 우리두 배울 게 한두 가지 아녀유. 이래야 돼유. 우리 생각 마시구 계속 대화를 가지셔유.”
계장이 말했다.
“그러믄유. 되는 동네는 이렇다구유. 워떤 사람은 말 많은 걸 질색허구, 가급적이면 쉬쉬허려구 허는디, 그것은 워디까지나 독째…… 하여간 다시 말허면, 말이 많은 동넬수록이 일을 끝내면 죄용허더라 이거유. 이거 미안헙니다. 여기 사람두 아닌디 말이 많어서……”
오 서기는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그건 그류.”
최는 면 사람들에게 담배를 한 대씩 돌렸다.
“그려, 츤츤히 얘기 좀 더 허다가 가세. 네미 손바닥에 털이 나나 모래가 싹트나…….”
홍은 여전히 신바람이 나서 부쩌지 못하고 있었다.
“새우짓 구경 다 헐라닝께 그런가 오늘은 소주 맛두 소주구, 선 채미두 들치근헌 게 괜찮네그려.”
조는 탱자만 한 참외봉텡이를 입으로 깎고 있었다.
“얘기 대충 끝났으면 일어나지 뭘 그려. 우리 여편네 눈 빠지겄구먼. 이왕 해줄 거 저녁에 해줘야지, 새벽에 해보니께 아침이 늦어 못 쓰겄어.”
고는 여기저기를 긁적대다가 하품을 길게 했다.
김이 말했다.
“내가 헐라는 말은 저기여. 벨것이 아니라, 하늘을 쳐다보구 땅만 믿구 사는 우리찌리는 여전히 경우가 있구, 이웃두 있구, 우정두 있구, 이런 것 저런 것 다 분별이 있는디, 직업이 사람을 상대루 허는 직업은 우리가 마소나 들풀이나 돌멩이 같은 다른 저기들과 다름웂이 뵈는 모양여. 우리가 있음으루 해서 각기 직업두 생긴 겐디, 그 직업을 한번 붙잡았다 허면 우선 인심부터 내버리구 저기허더란 말여. 직업을 권세루 알기루 말헐 것 같으면 하늘을 입구 흙을 먹는 우리네 위에 올러슬 것이 웂을 텐디두…… 그러나 우리를 업신여긴 것치구 오래 안 가데. 나는 배움이 웂어서 지난 역사를 저기헐 수는 웂지만 아마 사람 위에 올러스려구 버둥댄 것치구 저거헌 적이 웂을 겨. 그랬으니께 오늘날에 우리가 있는 게구, 우리는 또 자식들이 사는 걸 저기허면서 저기허는 게구……”
김은 하던 말을 남기고 일어설 채비를 했다.
『문예중앙』 (1977년 겨울); 『이문구 전집』 12권 (랜덤하우스중앙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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