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 오스트레일리아 : 우리는 누구인가?
* 오스트레일리아 방문
1964년엔 영국 보다 더 영국같은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에도 하이드 파크 킹스크로스 전철역 옥스퍼드 스트리트가 있고 국민의 조상은 압도적으로 백인 ,영국의 마마이트를 본딴 베지마이트가 대표적 음식. 지리적으로 호주는 유럽보다 중국 일본 동아시아와 가깝지만 아시아와 인접한 곳이란 흔적은 찾아 볼수 없었다. 44년 후 2008년의 모습은 완전 딴판이었다 아시아인이 많았고 더 이상 호주는 또 다른 영국이 아니었다. 여전히 영국여왕이 명목적인 국가수반이고 국기에 영국 국기가 포함되어있지만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제 2의 영국이란 국가의 정체성은 바뀌었다 .
*최초의 수인 선단과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호주에 원주민의 조상들이 정착한후 5만년 지나 1788년 1월 영국정부는 죄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문제로 이곳에 730명의 죄수 그들을 관리할 간수 행정관 총독인 영국해군장교로 구성된 수인선단을 보낸다 열대의 아프리카보다 열대성 질병도 적을 것 같고 목재와 상선 등을 위한 태평양 기지로 활용할 가능성도 있어 시드니를 선택했다. 그 이후 다른 네곳에도 죄수들이 상륙 . 금세 원주민과 뒤섞인다. 호주의 원주민과의 마찰은 별로 없었다 족장이나 군주도 없는 유목생활을 하고 있었으므로 원주민이 땅의 주인으로 보지도 않았다. 1820년 호주 인구의 84프로가 강제로 이주한 죄수가 되었고 처음엔 영국이 식량을 호주에 보냈지만 1840년 부터는 영국으로 양모 고래 구리 철 등을 수출하게 되었다 . 원주민을 원시인이라 경멸했으며 1930년에 원주민 백인 사이에 태어난 혼혈자녀를 강제로 떼어내 제도적 기관이나 위탁가정에서 키우는 정책을 실시했다. 1990년 일부 백인이 원주민에게 사과하자는 운동을 시작했지만 강력한 반발에 부딫혔다
*초기 이주자
처음 수십년동안은 정착자들이 모두 영국계였다 1836년 비영국계로 구성된 상당한 규모의 유럽인들이 이주했고(갈등없었음), 호주의 첫 골드러시가 시작된 1850년 수만명의 중국인이 들어오게 되자 군중이 중국인을 구타 심지어 머리가죽을 벗기는 폭동이 일어남. 1860년 이후 사탕수수 플렌테이션이 시작되면서 뉴기니 멜라네시아 폴리네시아의 태평양 섬사람들이 이주했다. 이들은 자발적으로 찾아온 일꾼보다 흑인 노예 유괴(블랙버딩)로 끌려온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이들은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다 고용기간이 끝나면 호주에서 쫒겨났다. 백호정책을 유지함으로써 2차세계대전 이후까지 영국계 백인이 압도적 다수였다
*자치를 향하여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과 호주의 독립의 차이 :미국 - 영국과의 7년동안의 독립전쟁후 쟁취 , 매년 7월4일 독립기념일 축하, 영국군대주둔시켜서 군대 운영을 위해 식민지 주민에게 세금 부과(이것이 미국독립의 직접적계기가됨), 거리가 가까움 /호주 - 영국의 큰반대 없이 자치권 얻음 , 군대주둔필요없음(1870년 최종적으로 철수), 식민지주민에게 세금 부과할 필요도 없음 ,거리가 멀다. 외교문제만 통제하고 나머지 사항은 총독에게 위임. 호주에 대한 군사적 보호 서비스 제공
*연방
호주에는 뉴사우스웨일스,테즈메니아,빅토리아,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퀸즐랜드 6개의지역이 있고 지리적 환경 때문에 이들간의 접촉이 거의 없었다 대부분 사막과 비생산적인 땅이었다. 1917년에야 다섯주도가 철도로 이어졌고 테즈메니아는 지금도 철도가 연결되지 않았다. 각각의 식민지들은 독립국처럼 보호관세를 두었다. 1886년 오스트로네시아 연방 평의회 처음 소집되고 1901년에야 하나의 국가로 통합되었다.
*그들을 막아라
비백인을 호주에서 배제하자(화이트 오스트레일리아, 백호주의), 1901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호주 연방이 초기에 제정한 법안 중 하나 이민제한법. 호주를 백인의 땅으로 유지하겠다는게 목적.
*제1차세계대전
1914년8월 영국이 독일에 전쟁을 선포할 때 지체없이 영국을 지원했다. 갤리볼루반도에 주둔하고 있는 터키군에 대한 앤잭군단의 공격. 앤잭의 날(4월25일)은 호주에서 가장 중요한 국경일이 되었다. 호주인에게는 영국의 충성스런 신민이라는 국민적 자부심을 상징하게 되었다.
*제2차세계대전
1차세계대전 이후 일본은 호주에 중대한 위협으로 떠올랐다 . 1차세계대전때처럼 자국의 직접적 이해관계가 없었음에도 유럽에 군대를 파견했고 특히 북아프리카와 크레타에서 싸웠다 .일본의 공격가능성이 높아지자 국가방위를 위해 자국군대의 철수를 연합국에 요구했으나 처칠은 영국함대가 싱가포르기지를 활용해 호주를 지켜주겠다고 약속하며 안심시키고 철수를 못하게했다. 일본은 1942년 1월에 영국의 싱가포르 기지를 점령 영국 사령관이 일본군에 항복하게됨. 이후 2월에 일본은 호주를 대대적으로 폭격 공습했다. 싱가포르를 포기한 영국은 호주에겐 용납할수 없는 배신이었고 오히려 미국의 전함과 육군에 국가방위를 크게 의존하게 되었다.
*느슨해지는 유대 관계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의 충성스런 영국인”이란 자기 정체성에 2차세계대전 이후 변화가 생겼다. 아시아의 발전과 무역 상대국의 변화 등의 이유로 백호주의는 사라지고 영국과의 관계도 멀어졌다. 영국 또한 호주와 멀어져갔다. 영국은 영국의 전통적 정체성인 “가장 큰 제국의 주인” 또는 “영국연방의 지도국”이라는 정체성이 변하기 시작했다. 영국은 영국연방국가간의 교역량은 줄어들고 주된 교역은 유럽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아프리카 아시아의 영국 식민지들도 독립했고 호주가 영국과 미국 &아시아 중 선택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꼈듯이 영국도 영국연방과 유럽중 선택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꼈다. 1961년 영국은 유럽경제공동체(EEC)에 가입했다. 영국 포함 서유럽 6개국은 EEC의 비회원국에 대해 공동 관세장벽을 세웠고 여기서 호주도 적용되었다. 호주는 영국을 위해 희생한 호주에 대한 배신이라고 비난을 퍼부었으며 1962년 영국연방이민법(호주인이 영국에 입국해 거주할 권리를 폐지)로 호주인은 졸지에 영국에서 외국인이 되고 말았다!.
*위기의 기준틀
우리는 누구인가? 한때 영국이 최고 무역상대국이었지만 더 이상 아니다. 적이었던 일본이 지금 가장 중요한 무역 상대국이 되었다. 이민을 통해 영국계는 점점 줄어들고 비영국계 유럽인과 아시아인이 증가하고 있다. 호주는 선택적 변화와 울타리 세우기의 좋은예이다. 지난 70년동안의 변화는 급작스러운 위기의 대응이 아니라 점진적 과정이었고 2차세계대전이후 가속화되었다. “국가수반으로서 영국여왕을 포기하고 공화국으로 재탄생할것인가?” 라는 안건에 대한 국민투표가 1999년 있었으며 55대 45로 부결되었지만 머지않아 반대표가 많아질 것이다. 아시아계를 총리로 선택할 날도 올 것으로 예상된다.
8장 : 장래에 일본이 해결해야 할 과제는 ?
*경제적 이점
일본의 경제규모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크다. 외환보유고가 두 번째로 많고 중국에 필적할 정도로 미국 국채를 많이 보유한 국가이다. 세계 최고의 철도를 비롯한 교통망과 탁월한 기반시설 ,건강하고 교육수준이 높은 노동력, 높은 특허 신청률, 미국과 중국은 국방비에 상당한 예산을 들이지만 일본은 1947년 헌법 중 한 조항 일본은 군대를 최소한의 수준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조항으로 군비를 절약하고 있는셈이다.
*다른 이점들
인적자원 즉 인구의 강점이다 현재 인구는 1억2000만명이 넘고 건강하고 교육수준도 높다. 기대수명은 남자는 80세 여자는 86세이다. 소득분배가 덴마크 스웨덴 다음으로 평등한 나라이다. 이것은 정부의 교육정책 때문이다(시골 지역도 좋은수준의 학습이 가능) . 일본에서 사회적 지위는 상속과 가족관계보다는 교육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미국은 정반대).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도시중 하나. 낮은 범죄율 . 열대 지역의 농해충 없는 온대성 기후. 비옥한 화산토.
*정부부채
현재 정부부채는 국내총생산의 약 2.5배이다. 계속 증가하는 추세이다. 미국의 정부부채는 국내총생산의 1.0배. 그리스보다 두배 스페인보다 네배 더 높다.
일본정부가 채무불이행 상태에 빠지지 않는 이유는 ? 1. 대부분의 국채를 외국채권자가 아니라 일본국민 일본 기업 및 공기업 일본은행이 보유: 대부분의 채권자가 일본정부에 압력을 가하지 않는 경제주체이다. 2.일본의 이자율은 늘 1%이하유지 이자부담이 크지 않다.
부채가 늘어나는 이유 : 노령층 은퇴자 증가하여 이자부담과 의료비 사회보장비가 세수 중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 이것은 교육 연구개방 기반시설등에 투자할 정부의 여력이 떨어진다는 뜻. 선진국에 비해 일본의 세율이 낮은편이라 정부수입도 적으므로 이런 문제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여성
가사 노동의 비효률적인 분담이 만연하다 ( 남성은 가장 여성은 집안일) . 여성의 사회참여도와 임금은 낮은편 고위직으로 갈수록 여성이 비율이 떨어진다(대학교수 경영이사진 고급관리직등) , 정직원에 대한 남녀의 임금차이가 심하다 , 양육은 여자가 맡기 때문에 70프로 직장 여성이 첫아이를 출산하면 일을 그만둔다 일본에서는 아기를 돌봐줄 이민자 여성도 거의 없어 민간 정부 차원에서 윤영하는 놀이방도 극소수이다.
*추락하는 출산율
합계출산율 (여성이 평생 출산할수 있는 아기의 총 수)이 일본은 1.27명 한국과 폴란드를 제외하면 가장 낮은 편에 속한다. 안정적인 인구유지하기 위해선 , 즉 안정적인 치환율은 2.0이 약간 넘어야 한다. 출산률 낮아진 이유 : 1 초혼연령높아졌다 그만큼 여성의 임신 가능기간이 줄어들었다는 뜻 2.혼인률 감소 ( 이유는 경제문제때문 결혼해서 독립해 양육비 집세부담하는 것보다 홀몸으로 부모집에서 사는게 더 편하고 돈이 덜든다 특히 여성의 경우 결혼해서 아기를 낳으면 일자리 유지 어렵다 ,홀몸의 자유로움이 좋다, 가사 남편과 양육 시부모봉양이란 책임을지지 않으려는 여성이 많다 ) .그럼에도 70프로의 미혼 남녀는 결혼하고 싶다고 한다 적절한 배우자를 만나는데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는? 과거에는 중매인이 주선해줬으나 연애결혼이란 서구 문화가 유입되면서 중매인의 수가 줄어들었다. 많은 젊은이가 일에 바쁘고 연애에 미숙해서 원만하게 낭만적인 관계를 맺지 못한다. (특히 전자메일과 휴대폰등을 이용한 비대면 커뮤니케이션이 등장)
*고령화와 인구감소 이민
매년 500곳의 학교가 폐교 농촌인구의 감소로 마을과 소도시가 버려지고 있다. 그러나 인구감소로 인구가 줄더라도 가난해지는커녕 더 풍요뤄워질 것이다 국내자원과 수입해야 하는 자원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것이기 때문에. 인구 감소보다 인구 고령화가 더 큰문제이다.
일본은 이민자를 환영하지 않는다 . 주로 이민 집단은 2차세계대전 이전과 그 기간 한국이 일본식민지이던 때 이주한 수백만명의 한국인이다 일본인 63프로가 이민에 반대한다.
*중국과 한국
2차세계대전과 그 이전에 일본은 특히 한국 중국국민에게 끔찍한 짓을 저질렀다. 수백만명의 중국인을 죽였고 일본병사의 정신을 강하게 키우겠다며 중국인 죄수를 기둥에 묶어두고 총검 훈련용으로 사용 ,난징에서의 중국 민간인 학살 , 이후 많은 목격자뿐 아니라 사진등의 증거가 있지만 이런 사실을 부정하고 있다. 그결과 중국 한국에는 반일 감정이 팽배하다. 일본은 학교의 역사시간에 2차세계대전을 거의 다루지 않는다 .두발의 원자폭탄으로 수백만이 죽었다며 일본을 피해자로 묘사하는데 급급.
*자연 자원의 관리
일본인구는 1853년 이후 폭발적으로 증가 생활수준 소비율도 증가했다. 일본은 세계 최대의 자연 자원 수입국중 하나가 되었다. 농산물 수입이 수출의 20배로 많다. 일본인은 일본을 자원 빈곤국이라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자연 자원의 수입에 극단적으로 의존하는 한편 자연 자원을 지속가능하게 활용하려고 하지는 않고 있다. 일본은 지속가능한 정책을 가장 강력하게 반대하는 선진국이다(참다랑어 고래)
*위기의 기준틀
일본은 1868년 메이지유신때 선택적 변화를 추구하는 긴급계획으로 서구 열강의 압력을 견뎌냈다. 쇄국정책 버리고 사무라이 계급과 봉건제도 포기 대신 헌법 내각제 산업화 유럽식 금융제도 새로운 교육 제도 체택 동시에 천황제와 언어 표기법등 대부분의 문화를 유지했다, 그럼으로써 독립을 지켰고 비유럽권으로서는 최초로 국부와 군사력에서 서구열강과 경쟁할 만한 국가가 되었다. 일본의 미래를 낙관하는 또다른 이유는 인내심과 역량이다. 예기치 못한 자연재앙 지진 태풍 쓰나미가 있을 때마다 재앙을 딛고 일어나 새로운 일상을 영위해갔다. 강력한 국가 정체성 ,국민적 자부심과 결속력, 한국 중국 제외하면 우호적이거 나 중립적인 무역상대국이 많다 .하지만 넘어야할 장애물이 있다 1. 점점 줄어드는 자연자원을 지속가능하게 수확하려는 자세 2. 전쟁당시 잔혹 행위에 대한 책임 회피 및 진정한 반성 3. 인구감소의 예방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잘못된 믿음 (인구가 지금보다 줄어들어 8000만이 되더라도 불리한 것은 없고 이점이 훨씬 더 많다 수입자원에 대한 수요가 줄어든다 일본이 강한 이유는 질적인 부분에 있는 것이지 인구 자체 때문이 아니다 ) 4. 이민정책(자국에 적절한 이민정책을 수립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