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김사리
불량 파전 외
아이에게 수학은 토끼 등짝에서 빼내온
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
아이에게 파전은 수학 문제집
파전을 펼치면 눈앞이 팽팽 돌고, 머리가 아프고,
채점을 마친 나는 스푼을 들고 비 내리는 파전 속으로 들어간다
지지직 지지직,
파전이 들썩이고,
파전은 비에서 삼각김밥, 마침내 보름달 빵으로
메뉴는 점점 바뀌고,
극한의 세계를 넘나들던 아이가
단순한 수의 세계에 착지하자
비는 이따금 소강상태
(다행히도 비 내리는 건 좋아하지 않는데 파전 먹는 것은 좋아하는 아이)
맞는 문제를 틀렸다고 착각한 나는 비 내리다 마는 순간의 아이스크림을 그린다
모두가 아는 침대가 과학 공식으로 다가오면 일상이 술술 풀리는 것처럼,
우선 비부터 피하고 보자
레시피를 이해하면 파전은 별거 아니거든
맛은 덤으로 딸려 오는 거야
그리고나서 본격적으로 구멍 쑹쑹 뚫린 불량 파전을 먹자
모든 생각을 쏟아부은 방정식을 굽자
화덕 위에는 파전 냄새가 진동하고
이러다 학원에서 기우제를 지내는 건 아닌지
농담도 해가며,
수업 시간이 끝나자 아이는 말한다
사실 전 비를 정말 혐오했어요 신발이 젖어 발이 퉁퉁 불잖아요
이젠 아이스크림과 동그라미가 많은 파전을 먹고 싶어요
넌 참 긍정적이구나
사실 나는 삼각김밥보다는 아이스크림을 더 좋아해
입안에 달콤함이 먼저 고이잖아
봐 이젠 더 이상 폭우가 쏟아지지 않잖아
가끔 우산을 던지고 맨발로 걸어보는 것도
비에 대한 대책이 될 수 있어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비가 그칠 리 없겠지만,
뒤집힌 파전은 얼마나 많은 동그라미의 교집합일까
비가 그치는지 파전에서 블루문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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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의 입맛
개를 데리고 길을 나선다
덩치 큰 개의 후각이 홍콩반점 앞 대로를 끌어당긴다
수요일은 짜장면
홍콩은 전국 어디에나 있는 반점
대로변은 온통 밀가루 반죽
밀가루를 덮어쓴 나의 개는 콩콩 뛰고
입맛을 잃은 나는
입맛을 돋우는 향신료만 믿고 반점 안으로 들어간다
수요일은 일주일의 징검돌
발을 어디에 디딜까
딛고 일어설 수 있을까
그냥 이대로 주저앉을까
고민이 징검돌처럼 놓여 있다
수요일은 모두의 입맛
주말을 향해 또 한 번 일어서기 위한
요일의 속성이 선택의 귀로에 선다
멈춰 선 곳은 까칠해진 입맛을 살려낼 수 있을까?
수요일은 각자의 입맛
나의 개가 꼬리를 흔든다
아직은 살아있는,
달릴 의지가 남아 있는 나는 식탁을 당긴다
자꾸 말려 들어가는 혀를 밖으로 빼내며
조명등처럼 깜박거리는 허기를 켠다
식탐이 강아지풀처럼 꼬리를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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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리 |2014년 《시와사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파이데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