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엔들 잊힐리야….”
천주교 평양교구, 교구 설정 90주년 맞아
내달 18일, 천주교 평양교구 설정 90주년 기념미사
앞서 1일부터 기념사진전‘일어나 가자’열려
천주교 평양교구가 오는 3월 18일(토) 교구 설정 90주년을 맞는다. 평양교구장 서리 염수정 추기경은 이날 오전 11시 천주교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평양교구 설정 90주년 감사미사’를 주례한다. 이날 미사는 박해의 어려움 속에서도 교회를 지켜나가던 평양교구 성직자와 수도자, 평신도들을 기억하는 한편, 지금도 신앙을 지켜나가고 있을 북녘의 형제, 자매들을 위해 봉헌된다.
미사에는 평양교구 출신 윤공희 대주교(전 광주대교구장)를 비롯해 한국천주교회주교단, 주한교황대사 오스발도파딜랴 대주교, 평양교구장 서리 대리 황인국 몬시뇰, 평양교구장 서리 고문 함제도 신부(메리놀외방선교회 한국지부장)와 사제단, 평양교구 서울?부산 신우회 신자 등이 참석할 예정이다.
또한 교구 설정을 전후해 평안도 지역 가톨릭교회와 함께한 파리외방전교회, 메리놀외방선교회,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도 초청해 뜻 깊은 날을 함께 기념할 예정이다.
기념미사 후에는 같은 장소에서 간단한 축하식이 진행되며, 이후 명동성당 문화관 1층 만남의 방으로 이동해 오찬이 진행될 예정이다.
특히 이날 미사에서는 서울대교구 장긍선 신부가 특별 제작한 순교자 성화(聖?) ‘평양교구 신앙의 증인 24위’가 봉헌되어 제대 앞에 배치된다. 순교자 성화는 평양교구 인물 중 현재 시복준비 과정 중에 있는 ‘홍용호 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주교와 동료 80위’ 중 평양교구의 신앙의 증인 24위를 담았다. 사료와 고증을 철저히 반영하여 각 인물을 섬세하게 묘사한 것이 특징이다. 성화는 미사 당일 공개된다.
△ 천주교 평양교구 설정 90주년을 맞아 다양한 행사가 진행된다. 사진은 3월 1일부터 진행되는 기념사진전 ‘일어나 가자’에 공개되는 사진으로 1948년 10월 10일 평양교구 사제단의 마지막 단체 사진이다. 홍용호 주교 주례 사제서품식 후 평양교구 주교좌 관후리 성당 사제관 앞에 평양 교구 사제단과 성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이 함께 기념 사진을 찍었다. 앞줄 중앙에 십자고상을 걸고 주교 복식을 한 이가 제6대 평양 교구장 홍용호 프란치스코 주교이다. 그 좌우로 이날 서품된 평양교구 최항준 신부, 서운석 신부가 자리하고 있다. 사진 속의 성직자들은 이듬해 1949년부터 체포 구금되었으며, 한 명을 제외한 전원이 순교했다. 현재 이들에 대한 시복준비가 진행되고 있다. |
■ 기념사진전 ‘일어나 가자’
미사에 앞선 3월 1일(수)부터 14일(화)까지 명동 갤러리1898에서 평양교구 설정 90주년 기념 사진전 ‘일어나 가자’도 연다. 제6대 평양교구장 홍용호 주교의 사목표어 ‘일어나 가자’(마태 26,46)를 주제로 열리는 이번 사진전에서는 평양교구가 수집·보관하던 1920~50년대 평양교구 내 본당 및 인물, 풍경사진 70여점과 분단 이전 평양교구 주교좌 관후리 성당 일대, 평양 상수구리 에 있던 성모학교,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의 첫 수녀원 건물’등을 그린 두 점의 펜화가 함께 전시된다.
전시 첫날인 1일 오후 5시에는 개막식이 열리며, 염수정 추기경 및 평양교구장 서리 대리 황인국 몬시뇰 등 관계자가 참석할 예정이다. 18일(토) 기념미사를 전후하여 명동대성당 코스트홀 앞마당에서 기념 사진전 ‘일어나 가자’의 2차 전시도 예정돼 있다. 2차 전시는 우천 시 취소된다. 전시 문의는 갤러리1898 ☎02-727-2336
■ 평양교구 사진집 발행
천주교 평양교구 설정 90주년 기념 사진집 ‘일어나 가자’(비매품, 평양교구 펴냄, 287쪽)도 나온다. 평양교구는 ‘평양교구사’(1981년 발행) 재발행을 위한 기초 작업의 일환으로 이번 사진집을 펴냈다. 사진집은 평양교구 90주년 기념 미사에 기해 발행된다. 평양교구는 교구 출신 사제 및 평신도들을 통해 수집·보관 중이던 각종 사료를 비롯해 파리외방전교회, 메리놀외방선교회, 한국교회사연구소, 서울대교구 홍보국, 가톨릭평화방송·평화신문 등에서 수집한 사진 및 자료를 엮어 평양교구의 활발했던 선교 역사를 정리했다.
염수정 추기경은 사진집 발간사에서 “수많은 신자들의 뜨겁게 타올랐던 신앙심과 대부분 한옥의 형태로 세워졌던 성당들, 각 성당마다 세워졌던 교육시설과 시약소, 양로원 등을 통해 지역 문화의 선구자요 봉사자로 그 중심을 이루었던 평양교구가 이제는 그 모습을 어디서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면서 “세월은 속절없이 흐르고 북에서의 뜨거웠던 신앙의 열기를 기억하는 이들도 점차 유명을 달리하고 있어 평양교구는 이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조차 점차 사라져가고 있기에 이번 평양교구 설정 90주년은 그 의미가 자못 중요하다”고 전했다. 염 추기경은 공산치하에서 교회와 신자를 떠나지 않고 끝까지 함께하다 순교한 제6대 교구장 홍용호 주교와 사제단에 사진집을 헌정했다.
평양교구 출신 윤공희 대주교(전 광주대교구장)도 사진집 추천의 글을 통해 “고향을 떠나온 지 어느덧 68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내 눈앞에는 고향 진남포의 모습이 아련히 떠오르며 그리움이 더욱 절절하다”고 전했다. 이어 윤 대주교는 “세월은 속절없이 흘러 교구 설정 90주년을 맞이하게 되었지만, (기념 행사와 사진집 발간이) 단순히 과거를 추억하기 위한 것이 아니며, 끝나 버린 역사의 한 페이지가 아닌 새로운 도약을 위한 준비이며, 꺼져 가는 신앙의 불씨를 다시금 살리려는 우리의 염원이다”라고 하시며 “홍용호 주교님의 주교 모토 ‘일어나 가자’처럼 더 이상 웅크리고 눈물만 흘리고 있지 말고 우리 모두 함께 일어나 가야 하겠다”고 전했다.
▶ [참고자료1] 평양교구 약사(略史)
▶ [참고자료2] 평양교구 사무국 소개
[참고자료1] 평양교구 약사(略史)
평안남북도를 관할하는 평양교구는 1927년 3월 17일 서울대목구(代牧區)로부터 분리돼 평양지목구(知牧區)로 설정되었으며, 1939년 7월 11일 대목구로 승격, 1962년 3월 10일 한국천주교회에 교계제도가 설립되면서 정식 교구로 승격됐다.
초대 지목구장(知牧區長)에는 메리놀외방선교회 패트릭 번(1888-1950, Patrick J. Byrne, 한국명 方溢恩) 신부가 임명되어 1929년까지 사목했다.(그는 훗날 초대 교황사절로 한국 교회와 깊은 인연을 맺는다.) 이후 교구의 기초를 닦고 교구장으로서도 임명되었던 메리놀외방선교회 선교사들은 1942년 태평양전쟁으로 강제 추방을 당한다. 이후 1943년 홍용호 신부가 교구장에 임명되면서 한국인으로서는 두 번째 주교가 되었으며, 평양교구는 서울에 이어 한국인 교구장을 맞이하게 되었다.
1943년의 기록에 따르면 평양교구는 주교좌 관후리 성당을 비롯한 본당 19곳, 공소(公所, 사제가 상주하지 않는 본당보다 작은 교회 단위) 106곳, 교육기관 22개, 복지기관 17곳을 운영했으며, 당시 신자 수만 해도 2만8400여 명이었다.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본당마다 설치된 교육시설을 통해 문맹 퇴치 운동과 문서 보급, 한글 교육 등 교육사업과 양로원, 고아원, 시약소 등을 운영하며 사회사업을 통한 전교활동에도 헌신을 다했다.
해방 이후 메리놀회가 돌아왔으나 북녘 땅에는 공산정권이 들어섰기에 옛 선교지로 돌아가 활동할 수 없었다. 결국 평양교구는 성 베네딕도회와 연길교구등의 도음을 받으며 어려움 속에서도 자립적으로 교회를 운영해 나갔지만 홍용호 주교가 1949년 공산 당국에 피랍된 것을 시작으로 모든 성직자들의 체포와 처형, 교회 재산의 몰수로 북한의 모든 교회는 침묵의 교회가 되고 말았다. 이어 벌어진 한국 전쟁기간에 공산주의자들은 남한에 내려와서도 똑같이 교회를 탄압하고 성직자들을 체포, 학살하여 이들이 끌려간 여정을 ‘죽음의 행진’이라 부르고 있다.
이 혼란의 시기에 평양교구를 비롯한 북한 교회의 많은 신학생, 수녀, 평신도들이 남한으로 내려왔는데 이들 신학생 중 윤공희 대주교(전 광주 대교구장), 지학순 주교(전 원주교구장, 1993년 선종), 박정일 주교(전 마산교구장), 이기헌 주교(의정부교구장), 황인국 몬시뇰(평양교구장서리 대리), 정의채 몬시뇰(서울대교구 원로사목자), 최창화 몬시뇰(서울대교구 원로사목자) 등이 남하하여 남한에서 신학교를 마치고 서품을 받은 이들이다. 이밖에도 20여명의 신학생이 남한에서 서품되어 서울과 부산교구에 입적하여 활동 했으며, 이들 중 현재 14명의 사제가 서울대교구에 생존해있다. 현재 북한에는 사제와 수도자가 단 한 명도 남아있지 않다.
평양을 떠나 월남한 신자들은 1949년 11월 평양교구 신우회를 발족한 이래 현재까지도 서울과 부산에서 매월 정기미사를 봉헌하며 한반도의 평화와 평양교구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또한 위에 언급한 평양교구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사제들과 부모님의 고향이 평안도인 많은 수의 성직자들이 여러 교구에서 활동하며 평양교구에 대한 연대의 마음으로 함께 기도하고 있다.
1975년 제8대 김수환 추기경, 1998년 제9대 정진석 추기경이 교구장 서리로 임명됐으며, 2012년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이 제10대 평양교구장 서리에 임명되어 그 계보를 잇고 있다.
[참고자료2] 평양교구 사무국
70여년의 세월이 지나도 관할 지역에 사무국을 두지 못하는 교구가 있다. 바로 평양교구와 함흥교구, 덕원 면속구가 바로 그러하다. 그 중 현재 평양교구 사무국은 서울 중구 명동 서울대교구청 8층에 위치하고 있다. 2004년 6월, 당시 평양교구장 서리 정진석 추기경이 평양교구 사제회의에서 황인국 몬시뇰을 평양교구장 대리로 임명하여 정식으로 교구의 틀을 갖춘 결과이다.
이곳에서는 교구장 서리 대리 황인국 몬시뇰과 실무책임자 장긍선 신부가 평양교구 관련 사료 수집과 증언 채록 등 교구와 관련한 자료 정리를 진행한다. 또한 한국 전쟁 전후로 희생된 평양교구 순교자에 대한 시복 준비 작업을 위해서 주교회의 시복시성 주교 특별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다.
또한 매월 넷째 주 수요일 오전 11시에 명동대성당 문화관 소성당에서 평양교구 신우회 월례 미사를 봉헌하며 북에 두고 온 가족과 교구의 재건, 한반도의 통일을 위해 기도한다.
평양교구 사무국은 2009년 정진석 추기경의 발의에 따라 신학대학 지원자 중 북방선교를 희망하는 이들을 선발하여 통일 이후 북방 선교에 앞장설 선교사들을 양성하기 위해 교육하고 있으며, 서울대교구 성소국 · 가톨릭대 신학대학 · 옹기장학회 등과 협력하며 선교사제 교육을 돕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