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12일 목요일
◑ 오늘의 말씀 묵상 ◑
※ Hallelujah!
- 오늘은 다시금 날씨가 차갑고 미세먼지가 사라지는 아침음 맞이하면서, 참으로 복되고 행복한 목요일이 될 것입니다.
- 지금은 어느 때 보다 양분 되어 갈등 속에 막혀 있지만, 하나님의 뜻을 따라 나라와 민족의 앞날을 위해 기도하며 맡은 책임과 의무를 다 해야 하겠습니다.
- 인간이 쉽게 변화되기 어렵지만, 성령님이 일하시면 완전히 새롭게 변화되므로 이런 일을 기도의 사람에게 맡겨두었음 확신하고 모든 환경과 위기 극복에 강한 믿음의 용사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본 문 ◑
{ 욥기 6장 1- 7절 }
1. 욥이 대답하여 이르되
2. 나의 괴로움을 달아 보며 나의 파멸을 저울 위에 모두 놓을 수 있다면
3. 바다의 모래보다도 무거울 것이라 그러므로 나의 말이 경솔하였구나.
4. 전능자의 화살이 내게 박히매 나의 영이 그 독을 마셨나니 하나님의 두려움이 나를 엄습하여 치는구나.
5. 들 나귀가 풀이 있으면 어찌 울겠으며 소가 꼴이 있으면 어찌 울겠느냐
6. 싱거운 것이 소금 없이 먹히겠느냐 닭의 알 흰자위가 맛이 있겠느냐
7. 내 마음이 이런 것을 만지기도 싫어하나니 꺼리는 음식물 같이 여김이니라.
◑◑◑◑ 제 목 ◑◑◑◑
◗◗ 욥이 엘리바스에 대한 답변
◑◑◑본문 이해와 요약 ◑◑◑
◗ 6장에서는 욥은 자기의 고난과 모든 재앙을 저울에 달 수 있다면 바다 모래보다도 더 무거울 것이라고 말 하였습니다.
- 여기서 '바다 모래'는 무수하고 측량할 수 없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며, 따라서 바다 모래보다도 무거운 고난이란 어떠한 아픔과도 비교할 수 없는 고난을 가리킵니다.
- 자신의 고난이 매우 큼을 고백한 욥은 이어서 자신의 말이 경솔했음을 표현합니다.
-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것 중에 하나는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경우를 당하게 될 때이고, 욥이 표현한 소금 없는 싱거운 음식과 닭의 알 흰자위는 모두 이러한 것을 말합니다.
- 욥이 표현한 대로 인간은 항상 입에 단 음식을 즐겨 할 뿐 싱겁고 맛없는 음식 먹기를 싫어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 그러나 욥은 현재 인생 중 가장 쓰고 맛없는 음식을 입에 넣고 있는 중인데, 또한 그 이유가 자신의 병 때문이거나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아무런 연고 없이 맛없는 음식을 먹고 있다는 데 큰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 자신을 변호하고 또 그 과정에서 친구들을 비난했으며, 나아가 자신의 도덕적 의를 절대적인 것으로 주장한 점 등입니다. 이는 신약 시대의 바리새인들이 범한 과오와 비슷합니다.
- 그리스도인들은 생활 속에 나타나는 이러한 교만의 결과로 후에 하나님께 질책을 받게 될 것입니다.
- 인간의 사람됨은 그가 고난을 당할 때 나타 욥은 사면초가의 고난과 친구들의 배반 속에서도 그가 가져야 될 신앙적 자세를 잃지 않았습니다.
- 참 신앙은 고난 속에서도 신앙을 잃지 않고, 자기가 가야 할 길을 잃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 결론적으로 데만 사람 엘리바스의 질책성 변론이 끝나자, 욥은 입을 열어 자신의 순수함을 변호하기 시작하였습니다.
- 욥은 비록 신앙의 눈으로 볼 때 하나님의 뜻에 따라 고난받는 자는 하나님의 징계에 순종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엘리바스의 비난은 합당하지 아니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 욥은 죄가 있기 때문에 재난을 당한다는 친구의 말을 수용할 수가 없었고, 자신이 이런 가혹한 재난을 받을 만한 범죄를 하나님께 저지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믿었고, 자신이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음을 믿고 싶었던 것입니다.
- 그래서 그는 자신의 무죄함을 변호하고 친구의 오해를 받아들이지 못 했던 것입니다.
- 게다가 자신을 정죄하고 비방하는 친구들의 냉정함에 대해 책망을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 그러므로 엘리바스에 대한 욥의 1차 답변을 통해 대인 관계에 있어 우리가 취할 태도가 어떠 해야 하는가를 깨달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 비록 자신의 비위를 거스리는 말들을 다른 사람들이 할지라도 쉽게 분을 발하기보다는, 그것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태도를 가져야 할 미덕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 적용한다면 ◖◖◖
♥ 오늘의 핵심 (P.S)
☞ 하나님의 사랑을 믿으면 흔들리지 않는다.(욥기6장 4절)
◈ 본 구절의 핵심(PS) 의미를 돕는다면;
▶ 극한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는 것이 믿음입니다.
➩ 4절을 살펴보면 “ 전능자의 화살이 내게 박히매 나의 영이 그 독을 마셨나니 하나님의 두려움이 나를 엄습하여 치는구나.” 라고 하였습니다.
- 여기서 우리는 엄청난 고난을 당하고 있는 욥이 보다 섬세하지 못한 영적 분별력의 한 단면을 발견합니다.
- 그것은 그가 자기가 당한 고난을 ‘전능자의 화살’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발견됩니다.
- 이 표현은 하나님이 그의 대적자로 돌변했음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 하나님께서 대적자로 돌변하셔서 자신을 죽일 듯이 공격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 확실히 욥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원수가 되셔서 거의 숨 쉴 틈조차 주지 않으시며 몰아붙이신다고 생각을 하고 있나 봅니다.
- 욥기 7장18-19절에서 “ 아침마다 권징하시며 순간마다 단련 하시나이까 주께서 내게서 눈을 돌이키지 아니하시며 내가 침을 삼킬 동안도 나를 놓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리이까?”라고 하였습니다.
- 극심한 고난을 당하여 모든 혐의를 하나님께 두는 생각은 잘 못이며, 하나님만을 유일한 통치자로 인정하는 사람으로서 취할 태도는 아닙니다.
- 사실 우리가 극심한 위기와 고난을 당할 때 이런 생각을 갖기 쉽습니다.
- 마치 전능자의 화살이 내 몸에 박히고, 마셔서는 안 될 독을 마셔버린 듯이,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낫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통이 가중될 때 우리의 생각은 이미 하나님께서는 나를 원수와 대적자로 여기시는데, 나만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과 회의, 원망과 슬픔으로 가득 차게 되는 것입니다.
- 그러나 결론부터 말해서 이것은 옳지 못한 생각이라고 봅니다.
- 우리가 아주 특별하고도 극심한 죄를 짓지 않는 한,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향해 원수로 돌변하실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 물론 그러한 고난을 당하도록 하나님께서 허락하셨다는 점에서 일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나님께서 그의 변치 않는 믿음, 신실한 믿음을 믿고 사단에게 허락하신 것일 뿐입니다.
- 사랑의 하나님은 어떤 경우라도 자녀들을 대적자로 돌리지 않으십니다.
- 결코 사랑하는 자녀들을 원수 대하듯 죽이고 멸망시키도록 획책하지 않으십니다.
- 그런 일을 하는 이는 오직 우리의 영원한 원수인 사단 마귀 밖에 없으며, 대적 자 사단의 하는 일이란 늘 이렇습니다.
- 끝까지 사랑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만을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요, 유일하신 주재라고 믿는 이들에게 이유 없는 고난이나 지나친 환난을 줌으로써 마치 하나님께서 그러한 불의한 일을 하신 것처럼 오해하게 만드는 사단에게 속아서는 안 됩니다.
- 하나님은 지금 내가 어떤 상황에 있는지 무엇이 필요한지를 너무나 잘 알고 계시기에 끝까지 믿고 의뢰하는 자에게 소망과 참 기쁨의 열매와 영광의 면류관을 주시는 것입니다.
- 하박국3장 17-18절에서 “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 여기서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는 믿음이 있으면 행복합니다. 감사하며 찬양 드리게 될 것입니다.
- 그러나 기도의 힘을 잃는다면, 대적 사단 마귀는 언제나 극한 상황을 만들어 놓고 모든 혐의를 하나님께 두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듭니다.
- 말씀과 기도의 자리를 떠나 현실에 집착하다보면, 영적 감각이 섬세하지 못함으로 인하여서 욥이 범한 실수와 비슷한 실수를 범하곤 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 따라서 이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방법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의심을 갖지 않는 것입니다.
- 예수님의 갈보리 십자가에 절규하는 기도의 모습을 생각해 보면, 얼마나 아프고 고통스러울까요? 그러나 예수님은 아버지의 사랑과 뜻을 믿었기에 영혼을 맡긴 것이고, 아버지께서는 사망권세를 이기게 하시고 부활승리하신 것입니다.
-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했던 사도바울이 선교 사역을 감당하면서 당하는 많은 고난과 환난을 참아내면서 권면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믿었고, 확신이 있었기에 고난과 환난을 각오하고 복음과 함께 살아 내는 것을 권면하였습니다.
- 사도행전14장 22절에서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언제나 선하심으로, 악한 마귀가 하는 일을 섬세하고 예리하게 분별하여 앎으로써 하나님께 대한 모든 혐의와 원망을 거두어들이는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을 결코 악한 대적들을 박해하듯이 고난 속으로 밀어 넣지 않으십니다.
- 오히려 사단이 우리를 극한 고난 속으로 몰아넣을 때에 노심초사 하는 마음으로 우리가 잘 이기고 견뎌주길 원하십니다.
- 상황이 이러한데 우리를 고난으로 밀어 넣은 혐의를 하나님께 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것이므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을 가집시다.
- 예수님의 사랑을 알았기에 사도 바울은 어떻게 했습니까? 그는 다른 사도들과 같이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를 포기했습니다.
- 다른 사도와 같이 성도들이 주는 것을 받아먹을 권리를 포기하고 자비량으로 선교하고 다녔습니다.
- 그리고 만일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평생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까지 했습니다.
- 그렇다면 오늘 이 아침에 성령님께서 묻는 것은 “ 지금 내가 당하는 고난과 고통에 집착한 너머지 욥처럼 하나님의 사랑에서 벗어났다고 낙심하는 모습은 아닌지?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이 있기에 지금의 역경 속에 감사하고 찬송할 수 있는지? 또한 나 아닌 다른 형제와 이웃 중에서 위기와 고난 중에 있는 이들에게 어떤 말을 전할 것인지? 묻고 있으니 스스로 자문자답 해 봅시다. 극심한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는 것이 온전한 믿음입니다.
- 무엇을 말해 주는 것인지 아시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위대하게 하는 것입니다.
- 바로 이 사랑을 알았기에 삭개오는 자기 재산의 절반을 내어놓았고, 마리아는 나드 옥합을 깨뜨렸으며, 바나바가 전 재산을 헌납한 것이라고 봅니다.
- 그런즉 하나님의 이 사랑을 바로 알게 되면, 예수님처럼 아버지의 사랑에서 흔들림 없이 자기 권리를 포기하며,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 자기 몸을 아낌없이 버리신 예수님을 기억합시다.
-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신뢰하는 삶에서 사도 바울과 같이, 바나바와 같이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대신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는 참 사랑의 사람들이 되어 인내하며 승리의 확신으로 복음으로 헌신하는 저와 주님의 사랑하는 형제와 자매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