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예찬 /수필가 정임표
카페(Café)라는 공간의 본래 용도는 '음료를 마시며 정보와 문화를 나누는 ‘사회적 소통의 장'이었습니다.
영국의 커피하우스는 '1페니 대학(Penny Universities)'이라 불렸습니다. 1페니의 입장료만 내면 누구든 당대 최고의 지성인들과 토론하며 지적인 대화에 참여하고 신문을 읽고 지식과 지혜를 쌓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계 최대 보험 시장인 영국의 '로이즈(Lloyd’s)'는 원래 커피하우스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상인과 선주들이 모여 정보를 나누다 자연스럽게 비즈니스로 이어진 것이죠. 프랑스 혁명 당시 카페는 지식인과 혁명가들이 모여 민주주의 사상을 전파하고 작당(?)을 하던 정치적 거점이었습니다. 또 19세기와 20세기 초 파리의 카페들은 예술가들의 작업실이자 토론장이었습니다. 피카소, 헤밍웨이, 사르트르 같은 인물들은 카페에 앉아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동료들과 철학적 논쟁을 벌였습니다. 즉, 창의적인 영감을 주고받는 문화 공간이 카페의 본래의 모습이었습니다.
1920년대 파리에서 활동하던 시절, 헤밍웨이는 매우 가난했습니다. 추운 겨울, 난방이 되지 않는 작고 초라한 아파트 대신 따뜻한 난로가 있는 카페는 그에게 최고의 작업실이었습니다. 카페 드 라 페(Café de la Paix)나 클로즈리 데 리라(Closerie des Lilas) 같은 곳에서 그는 카페 오 레(Café au lait) 한 잔을 시켜놓고 온종일 글을 썼다고 합니다. 그는 "배고픔은 좋은 훈련이다"라고 말하곤 했는데, 카페에서 사람들을 관찰하며 느끼는 공복감이 오히려 감각을 예리하게 만들어 글을 더 생생하게 쓰게 도왔다고 회상합니다.
카페란 이처럼 '낯선 이들이 연결되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탄생하던 민주적이고 개방적인 공간'이었으니 오늘날 우리가 카페에서 공부를 하거나, 친구와 수다를 떨고, 비즈니스 미팅을 하는 모든 행위가 사실 카페의 본래 용도와 맞닿아 있는 셈입니다. 생각이 똑같은 사람들만 모이면 카페가 재미가 없고 얻어 갈 것도 없는 곳이 됩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우리협회 카페를 찾아주시고 글을 남겨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런 귀한 분들이 계셔서 그 분들의 생각이 내 생각의 마중물이 되어 내 속에서는 끝임 없이 새로운 영감이 일어납니다. 새해에는 더 많은 분들이 자신의 생각을 토해 내는 "대구수필가협회 카페"가 되어, 우리들의 카페가 누군가에게는 헤밍웨이의 따뜻한 난로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로이즈의 비즈니스 장이 되길 바랍니다.
카페를 사랑해 주시는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