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성령의 열매(2)-오래참음,자비,양선(갈 5:22-23)
성령을 따라 행하는 성도에게 나타나는 현상은 바로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 주에 말씀드린 성령의 열매는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서 맺혀지는 열매로 사랑과 희락, 기쁨과 화평의 열매였습니다. 우리는 넘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성령은 이것을 깨우쳐 주시고 그 사랑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다시말하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며 섬기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뿐 만 아닙니다.
사랑의 열매가 가득하면 우리의 영혼속에 기쁨이 충만해집니다. 기쁨은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입니다. 그리고 기쁨이 가득하다는 것은 또 다른 열매를 맺게 합니다. 그것은 바로 화평의 열매입니다. 화평은 관계의 회복을 뜻합니다. 하나님과 나사이에 막혀있던 죄악의 장벽이 무너지고 하나되었습니다. 그러니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화평이 흘러나옵니다.
화평의 열매 역시 환경을 넘어선 성령의 열매입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십니다. 이러한 세 가지 열매는 하나님과 나사이에 관계를 통해서 얻어진 성령의 열매입니다. 오늘은 이웃과의 관계속에서 맺어지는 세 가지 성령의 열매입니다.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의 열매입니다. 이 열매 역시 성령이 우리안에 계심으로 맺어지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1. 오래 참음(인내)
헬라어 신약성경에는 '인내'로 번역될 수 있는 낱말이 두 개가 있습니다. 하나는 고난에 직면해서 낙심하지 않고 굳건하게 잘 참는 것을 의미하는 ‘휘포모네’라는 단어인데, 욥이 보여주었던 인내가 바로 ‘휘포모네’입니다. 욥은 여러가지 환난을 만났으나 끝까지 그의 신앙을 지켰습니다.
또 다른 단어는 ‘마크로두미아’라는 단어인데, “오랜 시간을 견딘다”라는 뜻입니다.
성령의 네 번째 열매가 바로 이 ‘마크로두미아’입니다. 이것은 감정을 상하게 하는 일을 견뎌내는 속성을 가리키는 말로 성도의 생활에 있어서 단순한 기다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불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믿으며 평안한 마음으로 인내하는 것을 뜻한다. 다시말하면 누군가 이유 없이 내 마음을 아프게 하고 마음을 상하게 하고 상처를 주는데 그것에 대해서 분노하고 대항하지 않고 악에 대해서 하나님이 심판하실 것을 믿으며 참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래 참음은 화가 나는데도 막 눌러서 억지로 참는 그런 참는 것이 아니고, 주님께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해주실 것을 믿고 믿음으로 참고 견디는 것을 말씀합니다. 내게 당한 문제에 대해서 분노하거나 흥분하고 요동하지 않고,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주님의 때를 기다리는 인내가 바로 오래 참음입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모든 것을 합력해서 선을 이루실 것을 믿을 때, 믿음으로 하나님의 때를 바라보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사랑장으로 불리는 고린도전서 13장을 보면 사랑의 정의를 열다섯 가지로 말씀하는데 그 중에 네 가지가 오래 참음과 연관이 있습니다. 첫 출발이 ‘사랑은 오래 참고’, 그 다음에 ‘사랑은 성내지 아니하며’,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충만하면 어떤 시련도 잘 참고 견딜 수가 있고 사소한 일에 성내지 아니할 수가 있고 환난과 핍박을 잘 견디고 참고 이겨내는 것입니다.
오늘 이와같은 은혜가 여러분에게 충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여, 우리에게 성령의 은혜가 충만히 임하여서 어떤 문제와 어떤 어려움이 다가와도 내가 흔들리고 분노하고 미워하고 다투지 않게 하여주시고, 오래 참고 견뎌서 반드시 주님의 은혜로 승리하게 하여주시옵소서! 약 1:19-20,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듣는 것은 빨리 듣지만 말할 때는 한 번 더 생각하여 ‘이 말이 혹시 상대방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는 않는지’, ‘상대방을 분노하게 하지는 않는지’ 늘 염두에 두고 말은 천천히 하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화를 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 이 말씀은 우리가 우리의 감정을 잘 다스리지 못해서 아무 때나 화를 내고 소리 지르고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내가 부족한 사람의 특징은 쉽게 원망하고 분노하는 것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여행하며 걸핏하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지도자 모세를 향해 원망했습니다. 그리고 그 원망은 곧 분노로 바뀌어서 그들의 손에 돌맹이가 쥐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가나안까지의 거리가 대략 400km이니까 하루에 20km씩 걷는다면 20일거리입니다. 그런데 저들은 광야에서 유리방황하며 40년을 헤매었습니다. 원망,불신으로 지은 죄에 대한 댓가입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지 못한 댓가입니다. 잠언 19장 3절은 "사람이 미련하므로 자기 길을 굽게 하고 마음으로 여호와를 원망하느니라" 말씀합니다. 원망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미련한 인간들의 생활태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원망이나 하고 불평이나 하는 것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인생을 망칠 뿐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옛날 어른들이 "중간결산을 하지 말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중간에 잘한다고 교만하거나 못한다고 낙심하지 마라는 교훈입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미리서 점수나 따지고 섵불리 판단하는 것은 자칫 인생 전체를 망칠 수 있습니다. 오늘 직면하는 상황을 너무 조급하게 판단하지 말라는 교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길을 열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순간적인 전투에서는 실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궁극적인 영적 전쟁에서는 승리하게끔 되어있는 것입니다. 아직 경기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많이 남았습니다. 인생이란 아침 안개와 이슬과 같이 순간적이고 짧은 것이지만 또한 하나님께서 일들을 역전시키시고 인생을 역전시킬 만큼 충분한 것이 또한 인생인 것입니다. 히 10:36절에 "인내가 필요함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출애굽한 이후에 바로 애굽군대를 이끌고 이스라엘 백성을 잡으려고 홍해까지 쫓아올 때에 이스라엘백성들은 하나님을 원망하고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그 때 모세가 이렇게 권면합니다.
(출 14:13)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어느 때는 긴급하게 움직일 때도 있지만 이렇게 앞뒤가 꽉 막혀 있을 때는 하나님을 바라볼 때입니다. 그 때는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릴 때인 것입니다. 또 무엇이 마음대로 안될 때에 힘들고 어려울 때 이기는 방법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다림입니다.
(시 62:5)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우리가 우리 힘으로 할 수 없을 때에는 침착하여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이 지혜입니다. 진정한 믿음은 바로 이러한 때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다릴 때입니다. 오래참음입니다. 특히 주의 몸된 교회를 섬길 때 기쁨과 감사함으로 섬겨야지, 주님 몸된 교회를 섬긴다고 하면서도 내 맘에 맞지 않는다고 소리 지르고 다투면 하나님이 탄식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롬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우리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해주시는 사실을 믿고, 참고 견디며 모든 어려움을 극복해나가야 합니다. 또 롬 5:3,4절 말씀에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환난을 당해도, 핍박을 당해도, 억울한 일 당해도, 속상한 일 많아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잘 참고 견디면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결국 우리가 꿈꾸고 소망하는 것을 이루게 되는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때가 오실 때까지 참고 기다려야 됩니다. (시 37:7)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는 말씀은 불평하지 말고, 원망하지 말고, 내 인간의 감정을 드러내지 말고, 꾹 참고 기다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악인들을 그냥 잡초처럼 싹 한순간에 몰아내버리시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여러분에게 부어주실 것입니다. 당장 응답이 없어도 반드시 하나님의 때에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 좋은 일이 다가올 것을 믿고 참고 기다리면 좋은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약 5:10,11)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으로 삼으라 (11)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오래 참고 기다리면 은혜가 임합니다. 아브라함이 25년을 기다렸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었습니다. 요셉이 13년이라는 그 긴긴 연단의 과정을 통한 후에 애굽의 총리가 됩니다.
여러분, 주님 안에서 큰 은혜를 주실 때 그냥 갑자기 은혜를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연단에 연단을 거쳐서 때가 되어 받을 만한 그릇이 된 다음에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강한 군대가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훈련을 하고 또 훈련하고 훈련해서 강한 군대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훌륭한 스포츠 선수들이 그냥 탄생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또 훈련하고 또 훈련하고 또 훈련해서 그렇게 정상의 위치에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큰 뜻을 이루기 위해서 참고, 견디며, 맡은 일에 묵묵히 순종하며, 헌신할 때, 큰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2. 자비(친절)
이 자비는 친절한 것을 말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향한 우리의 섬김의 자세가 바로 친절입니다. 친절은 사람과의 관계를 화목하게 만들고 폭넓은 대인관계를 이루게 합니다. 자비는 사랑의 마음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어느 날, 마더 테레사가 운영하는 사랑의 집에 설탕이 다 떨어졌습니다. 이 사실이 소문으로 퍼지자, 인근 마을에 사는 어느 소년이 엄마한테 달려갔습니다. 그리고는 자기가 3일간 먹을 양의 설탕을 달라고 했습니다.
엄마가 무엇때문에 그러냐고 물었더니, 그 소년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사랑의 집에서 설탕이 떨어져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고 죽어가고 있다는데, 자기가 3일동안 설탕을 먹지 않고 그 설탕을 사랑의 집에 갖다 주겠다고 얘기했습니다. 엄마는 아이가 너무 기특해서 설탕을 주었고 그 소년은 설탕을 사랑의 집에 기증했습니다. 그후 마더 테레사가 영국에서 기자 회견을 할 때 기자들로부터 "자비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자비의 정의를 내려 주십시오"라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이때 마더 테레사는 인도의 한 소년이 설탕을 자기가 먹지 않고 켈커타에 있는 사랑의 집으로 갖고 오는 것이 바로 자비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이러한 결론을 내렸습니다. "사랑과 자비는 보고, 느끼고, 책임지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비의 속성이 있어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보면 불쌍하다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느낌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진정한 자비는 책임까지 지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누가복음에서 선한 사마리아사람 비유를 통해 자비에 대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어느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길에서 강도를 만나 물건을 다 빼앗기고, 온몸에 매를 맞아 피투성으로 쓰러져 있었습니다. 지나가는 제사장이 와서 그를 보고는 불쌍히 여기지만 그냥 지나갑니다. 보고, 느끼고, 그냥 지나갑니다. 조금 후에 한 레위인이 지나가면서 그 사람을 보지만 그도 불쌍히 여기기만 하고 그냥 지나갑니다.
보고, 느끼고, 그냥 지나갑니다. 그후에 이스라엘 사람들로부터 천대를 받는 사마리아인이 지나가면서 그를 발견합니다. 쓰러진 사람을 보고 불쌍히 여겨 자비를 베풉니다. 그 사람의 상처를 포도주와 기름으로 씻어주고 나귀에 태워서 주막으로 데려가 계속 치료를 받게 합니다. 예수님은 비유를 말씀하시고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눅 10:36,37) “(36)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37)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도 이와 같이 하라."
사랑과 자비는 보고, 느끼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이 사랑과 자비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물질이 없고, 시간이 없어서 자비를 베풀지 못한다고 얘기합니다. 또 자비라는 것은 일정한 사람만 베푸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누구든지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신명기에서도 가난한 사람들에게 우리의 덕을 베풀어야 한다고 명하시고 계십니다.
또 자비는 특별한 사람만 행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목마른 자에게 물 한컵 대접하는 것도 자비이기 때문에 누구든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결코 하늘의 상을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보고, 느끼고, 끝까지 책임지는 것입니다. 끝까지 책임져 많은 열매를 맺기를 바랍니다.
미국의 유명한 성공 철학의 대가이자 루즈벨트 대통령 고문관을 지낸 나폴레온 힐의 ‘성공의 열쇠’라는 책에 나오는 예화입니다. 어느 비가 많이 오던 오후 필라델피아 한 백화점 앞에 할머니 한 분이 서 있다 들어왔습니다. 대부분 직원들이 할머니가 들어온 것을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검소한 옷차림의 나이많은 할머니가 들어와서 문 앞에 서 있을 때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데 한 젊은 직원이 달려가서 할머니에게 말했습니다. “할머니, 뭐가 필요하세요?”,
“아니야, 아니야. 난 지금 비가 와서 잠깐 비를 피해 들어왔는데 차가 오면 갈 거야.”, “할머니, 언제 올지도 모르는데 여기 앉아서 기다리세요.”하고 의자를 내다놓고 의자에 앉아서 차를 기다리게 합니다. 한참 기다린 후에 차가 왔습니다. “고마워, 젊은 양반. 명함이나 하나 줘.” 그래서 명함을 줬어요. 그 할머니는 가셨습니다. 그리고 이 젊은 직원은 다 잊어버리고 열심히 그곳에서 또 일을 하고 있는데 어느 날 백화점 사장에게 편지가 왔습니다.
이 백화점 사장에게 편지가 왔는데, 아무 아무개 직원을 나의 고향 스코틀랜드에 보내서, 큰 성의 가구 전체를 그 청년이 주문해서 다 채우게 하라고. 알고 보니 그 편지를 쓴 사람은 그 직원이 의자를 가져다 드린 할머니였고, 그 할머니는 당시 미국 최대의 재벌인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의 어머니, 마가렛 모리슨 카네기였습니다.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그 어머니가 이 한 젊은 직원의 친절에 감동되어서 본인 고향에 있는 큰 성에 있는 모든 가구를,
이 백화점에서 납품하도록 해가지고, 이 젊은 청년이 고속승진해서 그 회사의 중역으로 모든 물건을 납품하게 했습니다. 그 한번의 친절이 이 청년의 운명을 바꿔놓은 것입니다. 여러분,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아니하고 그냥 할머니 한 분에게 친절을 베풀었는데 이런 큰 축복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 사람이면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대가를 바라지 않고 친절을 베풀어야 될 것입니다. 사랑을 베풀어야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하늘나라의 큰 상급으로 우리 모두에게 채워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최상의 자비의 열매는 바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물질로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영혼들이 믿지 않으면 지옥으로 떨어져 고통을 받게 됩니다. 최상의 자비는 그들의 영혼을 위해 복음을 제시하고, 예수님을 믿게 만들고, 천국에 소망을 갖게 만드는 것입니다.
복음을 그들에게 제시해서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최상의 자비를 베풀어야 하겠습니다. 영혼에 대한 부담감을 느껴야 합니다. 이처럼 영혼을 구원하는데 까지 자비를 베푸는 성도, 성령충만으로 이웃에게 진정한 친절을 베푸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양선(착함)
이 양선이라는 말을 표준성경에서는 착함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착한 성품, 착한 행동을 말합니다. 성령이 임하면,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착한 마음을 넣어주십니다. 예수믿는 순간 우리가 그동안 악한 마음을 먹고 살았던 어둠의 자녀였는데, 성령이 오셔서 심령을 새롭게 변화시켜서 착한 마음을 심어주시고 빛의 자녀로 살게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를 만나면, 예수님의 은혜로 그 운명이 바꿔집니다. 당시, 예수님 당시, 세리장이었던 삭개오가 그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예수님 만난 후에 그의 운명이 바꿔졌습니다. 누가복음 19장 8절에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는 로마정부의 앞잡이가 되어서 많은 세금을 거둬가지고 일부는 로마정부에 바치고 일부는 본인이 축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거부가 되었는데 예수님 만난 다음, 그 악한 마음이 바뀌어서 착한 마음이 되었습니다. “내가 가진 재산의 절반을 가난하고 불쌍한 자에게 다 나누어주겠습니다. 그리고 강제로 착취한 일이 있으면 네 배로 갚겠습니다.” 그는 그 후에 가이사랴의 첫 주교가 되었다는 기록이 남겨져 있습니다.
우리는 빛의 자녀로서 의로움과 착함과 진실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에베소서 5장 8,9절에 설명합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여러분, 우리는 어두움의 자녀가 아니라 빛의 자녀들입니다. 우리가 가는 곳마다 사랑의 빛을 비춰야 됩니다. 용서의 빛을 비춰야 됩니다. 여러분, 마음이 착한 사람은 자기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할 수 있습니다.
대단히 죄송하게도, 마음이 착하지 못하면 절대로, 용서하지 않고 마음에 아픔과 원한을 부여잡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마음에 미움과 아픔과 상처가 있는 한 그는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늘 그 상처에 눌린 바 되고, 그 상처 때문에 분노하고, 더 미워하고, 더 사람과 갈등이 생기는 그러한 삶의 모습을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과 문제많은 사람은 다른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문제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원인이 나한테 있습니다.
“주여, 오늘부터 내 마음이 착한 마음으로 바꿔지게 하여주옵소서. 사랑하고 용서하며 살게 하옵소서. 다투고 미워하고 분노하며 살지 않게 하여주시고, 용서하고 또 용서하고 또 용서하며 살게 하여주옵소서.” 우리가 빛이 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빛의 자녀답게 빛을 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마 5:15,16절에 예수님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빛은 어두움을 밝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빛이 되었기 때문에 이제 어두움을 밝혀야 됩니다. 신앙은 말이 아니라 행함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말로 “사랑한다.” “사랑한다.” 하면서도 행함이 뒤따르지 못하면 그것은 거짓 사랑인 것입니다. 진짜로 사랑하면, 그 사람을 위해서 무얼 쏟아 붙고 다 주어도 아깝지가 않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2장 15절에서 17절에는 말씀합니다.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지금 옆집이 직장을 구하지 못한 채 몇 달이 되어서 쌀독에 쌀이 떨어지고 먹을 게 없어서 굶주리는데 “먹을 것이 없으면 음식점에서 사 잡수세요.” 말하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지금 그럴 수 있는 형편이 아닌데 그때는 아무 말 하지 아니하고 집에 있는 쌀독에 쌀을 한 포대 담고, 집에 냉장고에서 밑반찬 가져다가, “아이고, 이거 우리 함께 나눠먹어요. 우리 집에 좀 넉넉하게 있어요.” 나눠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랑은 행하는 것입니다. 히 13:16절은 말씀합니다.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
고후 9:8절.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여러분, 이렇게 은혜를 받았으므로 이제부터는 선을 행하며 착한 일을 행하며 살아가는 복된 인생으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선행이 바로 하나님나라에 보물을 쌓아두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마 10:42)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주여, 우리에게 성령으로 충만케 하여주셔서, 성령의 은혜를 물 붓 듯이 부어주셔서, 모든 일에 참고 견디며,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풀고 선한 일을 행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온 천하에 드러내는 주님의 일꾼들이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성령충만하며 이웃과의 관계속에서 이 세 가지 열매를 맺습니다. 1)오래참음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기다리며 인내하는 것입니다. 2)자비입니다. 자비는 친절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마음을 가지면 누구에게나 친절할 수 있습니다. 친절을 베품으로 하나님 사랑을 전하는 것입니다. 3)양선입니다. 양선은 선행이라고 했습니다. 선행은 하나님의 말씀을 삶으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신앙이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이렇게 이웃에게 진정으로 사랑을 실천할 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우리안에 진정한 기쁨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의 열매를 풍성히 맺으셔서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이웃에게는 사랑을 실천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나눔이야기-------------------------------------------------------
1. 요즘 내 삶에서 가장 인내하기 어려운 문제는 무엇이며, 하나님께 어떻게 맡기고 있는가?
2. 최근에 내가 자비와 친절을 행동으로 실천했던 경험은 무엇이었는가?
3.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더 착하고 선하게 살기 위해 이번 주에 어떤 일을 실천했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