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 31,1-7; 마태 15,21-28
+ 오소서, 성령님
복음 말씀의 진행을 보면, 마태오 복음 13장의 비유 말씀이 끝나고 난 후,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라는 고향 사람들의 배척에 이어, 어제는 예루살렘에서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이 예수님을 검증하기 위해 내려왔습니다.
예수님께 대한 이와 같은 의심과 반대 속에서 진정한 신앙을 고백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바로 가나안 부인입니다. 그는 이방인이면서도 메시아에 대한 유다인들의 표현인 ‘다윗의 자손’이라는 칭호를 사용합니다.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이상하게도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십니다. 제자들이 “저 여자를 돌려보내십시오.”라고 말씀드리자 예수님은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라고 대답하십니다.
그러자 여인은 예수님께 와 엎드려 절합니다. 이는 하느님께 드리는 경배의 몸짓입니다.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여인의 말에 예수님은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자녀는 ‘유다인’을, 강아지는 ‘이방인’을 가리킵니다.
그러자 여인은 대답합니다.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우리는 이 여인의 끈질김을 본받아야 할까요? 예수님은 그것을 칭찬하신 것일까요?
여인은 예수님께 세 마디 말씀을 드리는데, 그때마다 예수님을 ‘주님’이라 부릅니다. 첫 번째 말씀이 놀라운데요,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이 말은 그리스어로 “엘레이손 메 키리에, 휘오스 다위드”입니다. 어딘가 낯익지 않으세요? 바로 “키리에, 엘레이손”, 우리가 미사 시작 때 드리는 자비송,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가 이 안에 들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여인이 드린 세 마디 말씀을 우리도 미사 때 반복하고 있는 셈입니다.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그리스도님, 자비를 베푸소서.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하고 말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라고 칭찬하실까요? 만일 그렇게 생각되지 않는다면, 내가 정말로 이 여인처럼 간절하게 청하고 있는지, 그리고 예수님을 정말로 ‘주님’이라 믿으며 자비송을 바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천 명의 유다인을 먹이신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이어 사천 명의 이방인을 먹이시는 기적을 베푸실 것입니다. 이 두 기적 사이에 이 여인이 등장합니다. 이 여인이 드렸던, “주님,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라는 말씀은, 유다인들에게 먹이셨던 그 양식을 저희 이방인들에게도 먹여 달라는 간청이 된 셈이고, 예수님은 그렇게 하셨습니다.
오늘 제1독서는 예레미야 예언서 가운데 일명 ‘위로의 책’이라 불리는 부분의 한 대목으로서, 바빌론 유배 후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시리라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그때에 나는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다.”라는 말씀으로 시작되는데, 이는 ‘계약 정식’이라 불리는 형태의 문장으로서, 하느님께서 남북으로 갈렸던 이스라엘 모든 지파와 다시 계약을 맺으신다는 의미입니다.
“처녀 이스라엘아, … 네가 다시 손북을 들고 흥겹게 춤을 추며 나오리라.”라는 말씀이 나오는데요, 손북은 축제 때 처녀들이 들고나와 춤추며 연주하던 악기였습니다. 우리도 사용하던 ‘소고’와 비슷합니다.
이어지는 말씀은 이러합니다. “네가 다시 사마리아 산마다 포도밭을 만들리니 포도를 심은 이들이 그 열매를 따 먹으리라.” 레위기에 의하면 새로운 나무의 열매는 5년째가 되어야 먹을 수 있었습니다. (레위 19,23–25) 또한 전쟁 중에는 포도를 심더라도 다른 이들이 그 열매를 먹게 되었습니다. (신명 28,30; cf. 아모 5,11; 신명 20,6) 따라서, 포도를 심은 이들이 그 열매를 따 먹는다는 말씀은 전쟁이 끝나고 나라가 안정된다는 의미입니다.
다음으로, “에프라임 산에서 파수꾼들이 이렇게 외칠 날이 오리라. ‘일어나 시온으로 올라가 주 하느님께 나아가자! ’”라는 말씀이 이어집니다. 에프라임은 북이스라엘을 말하고, 시온은 남유다에 있는 예루살렘 성전을 뜻합니다. 우리나라 상황으로 말하자면, 북한의 경비병들이 “서울 명동 성당으로 올라가 주 하느님께 나아가자!”라고 외친다는 의미인데요, 남북으로 갈라졌던 나라가 하나가 되어 하느님께 경배드린다는 뜻입니다.
마지막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라는 표현이 나오는데요, 앗시리아에 의해 멸망한 북이스라엘과 바빌론에 의해 멸망한 남유다에는 ‘남은 자’들이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이들을 통해 당신의 약속을 계속 이루어나가실 것이기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는 회복과 희망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오늘 1독서에서 가장 유명한 말씀은 “나는 너를 영원한 사랑으로 사랑하였다. 그리하여 너에게 한결같이 자애를 베풀었다.”일텐데요, 여기서 ‘자애’는 자비와 신의를 뜻하는 ‘헤세드’를 번역한 말입니다.
제1독서의 말씀은 바빌론 유배가 끝남으로써 잠깐 이루어졌지만, 결정적 완성은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님에게서 이루어졌습니다. ‘이스라엘의 남은 자’는 이제 이방인들에게로 확대되고, 그 대표적 인물이 오늘 복음의 가나안 여인입니다.
그 가나안 여인은 또한 우리 자신입니다. 미사를 시작하며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라고 자비송을 바치면서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부르짖던 여인의 절박한 마음으로 기도한다면, 또 영성체를 앞두고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 영혼이 곧 나으리이다.”라고 기도하면서, “주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라는 가나안 여인의 겸손한 마음을 내 것으로 삼는다면, 우리는 이 가나안 여인이,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미사를 드리고 있는 나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렘브란트, 그리스도와 가나안 여인, 1650년
출처: Christ and the Canaanite Woman, 1650 - Rembrandt - WikiArt.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