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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인물] (10) 세상을 너무 쉽게 생각했던 에사우
“자신의 나이에 맞는 정신을 갖지 못한 자는 자신의 나이에 겪는 온갖 재난을 당한다”는 프랑스 사상가 볼테르(1694-1778)의 말은 많은 시사점을 준다.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서 나이를 먹고, 자신과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과 현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변하고 있다. 며칠 전 한 유명 시인과 이야기를 하는데 “젊은 시절엔 이성(理性)과 싸우지만 나이가 늙고 노쇠해지면 자신의 몸(자신)과 싸운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변화한다. 이 변화를 잘 이해하고 적응하면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 심리학자 카를 구스타프 융(1875~1961)은 가치판단은 주어진 상황에서 적절하고 소중한지, 혹은 꼭 필요한 것인지 등을 감정반응이나 자신이 학습한 원칙적 사고를 기준으로 이루어진다고 했다. 그는 선한 행동의 기준을 누구에게 이득이 되는지, 이기심의 발로인지, 보상을 바라고 하는 행동인지로 구별했다.
사실 사려 깊은 사람은 선악의 경계가 모호하기에 자신을 바르게 볼 줄 알고 남을 쉽게 판단하거나 단죄하지 않는다. 융은 정의(正義)만 외치고 선(善)만을 유독 고집하는 사람은 정작 선악의 경계나 인간의 한계를 진지하게 보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봤다. 융은 자신이 선과 악을 초월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인류 최악의 고문자라고 혹평했다.
그러니 생각 없이 사는 것도 큰 잘못이요, 죄다. 에사우가 허기를 때우는 대가로 생각 없이 장자권을 팔아넘긴 행위는 삶을 진지하게 바라보지 않는 사람의 전형을 보여준다. 에사우는 장자권의 중요성에 대해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중요한 것의 가치를 모르고 행동하면 인생에서 많은 실패와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다.
세상의 그 어느 것도 하찮지 않고 가치가 없지 않다. 다만 사람들이 하찮고 무가치하다고 잘못 판단할 뿐이다. 에사우는 아버지의 넘치는 사랑과 이미 장자의 지위를 갖고 태어난 점, 건강하고 씩씩하고 거침이 없는 자세 등 인생의 달콤한 면만을 맛보며 살았을지 모르겠다. 그는 능력이 있었고 큰 변수가 없는 한 장자권을 누리는 위치에 있었다. 오늘날로 이야기하면 금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것이다. 부족함도 없었고 걸림돌도 없다고 생각했다. 이런 사람들의 경우 너무 자신만만하게 방심하여 쉽게 결정을 내리고, 큰 손해를 볼 수도 있다.
가장 가까운 데에 자신을 노리는 복병이 숨어있었다. 어머니 레베카는 이사악의 장자권 축복을 동생 야곱이 받게 했다. 나중에 모든 사실을 안 에사우는 길길이 뛰고 분통을 터뜨리며 아우를 죽이려 했다. 그러나 이미 계약서(?)에 인감도장이 찍힌 형세였다. 농담처럼 생각했던 에사우의 생각은 그의 삶을 완전히 바꾸었다. 뜻밖의 결과는 에사우의 어리석음에 원인이 있었다. 에사우는 순식간에 자신의 인생이 바뀌고 자신이 누리던 지위를 잃었다. 우리도 쉽게 흥분하여 냉정한 판단이나 신중한 행동을 못 해 실수나 낭패를 본 적은 없는지 곰곰이 살펴볼 일이다.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안식일, 계약의 표징
안식일은 우리 인류에게 정기적으로 휴식을 선사하신 하느님의 큰 선물입니다. 또한 세상 만민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이 창조주의 맏아들로 선택되었음(탈출 4,22)을 드러내 주는 표징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시나이산 아래에서 주님과 계약을 맺을 때, 안식일을 계약의 표징으로 받았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안식일은 나 주님이 너희를 성별하는 이라는 것을 알게 하려고, 나와 너희 사이에 대대로 세운 표징이다”(탈출 31,13). 이스라엘 주변의 민족들은 자기들이 믿는 신을 형상(像)으로 구현하여 섬겼지만, 이스라엘은 그런 신상 없이도 안식일을 통해 하느님의 현존을 떠올리고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안식일 규정이 종종 우상숭배 금령과 나란히 나옵니다(레위 19,3-4; 26,1-2 등).
그런데 흥미롭게도 탈출 20,1-17과 신명 5,6-21에서 말하는 안식일의 의미가 서로 다릅니다. 탈출 20,11에서는 천지창조를 기억하기 위해서라고 한 반면, 신명 5,15에서는 이집트 탈출을 기념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합니다. 그렇다면 세상 창조의 기념일인 안식일이 어떻게 이집트 탈출 사건과 연결된 것일까요?
아마도 신명기 저자는 엿새 동안 ‘일하고’ 이렛날 ‘쉬는’ 안식일 제도를 통해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종살이’에서 해방해 주시고 가나안에 ‘안착’하게 하신 일(여호 22,4; 23,1 등)을 떠올려주려고 한 것 같습니다. 더구나 이집트 탈출은 이스라엘을 하느님의 백성으로 ‘탄생’시켜준 사건이고, 천지창조는 세상을 ‘탄생’시킨 사건입니다. 말하자면, 두 탄생이 안식일을 매개로 연결된 셈입니다. 이후 이스라엘 백성은 안식일을 지킴으로써 창조 질서 보전에 참여할 수 있고, 안식일을 깨면 창조 질서에 해를 끼치게 된다고 이해하였습니다. 예레 17,19-27 등에 나오는 안식일 준수에 관한 내용도, 이스라엘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아 창조 질서가 깨지게 되면, 그들 역시 자기 자리인 고향에서 쫓겨나는 재앙을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레 4,23-26에서는 그런 재앙을 ‘땅이 불모로 변하고 하늘에서 빛이 사라지는 것’ 곧 태초의 혼돈(창세 1,2)이 되돌아오는 것으로 묘사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안식일과 계약의 율법을 지키라는 예언자들의 경고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 결국 기원전 6세기에 멸망해 바빌론으로 유배를 가게 됩니다. 하지만 이방 민족의 땅에서도 그들은 하느님을 섬길 수 있었습니다(에제 11,16). 왜냐하면, 나라는 사라지고 성전도 파괴되었을지라도 안식일의 표징은 여전히 건재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빌론 유배가 끝나 시온 귀환이 이루어진 뒤엔 멸망의 원인을 반성하며 안식일을 매우 중요시하게 되었습니다. 다만 그것이 과한 나머지, 형식에 지나치게 치우치는 부작용이 생겨나고 말았던 것입니다. 지금도 이스라엘에서는 까다로운 안식일 규정을 엄격하게 지키는데, 이는 계약 불순종으로 멸망했던 기억을 간직한 그들이 과거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나름의 몸부림인 것입니다.
[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61) 아모스서
권력자들이여, 가난하고 힘없는 이를 보호하라
- 아모스는 첫 번째 저술 예언자로 북 왕국 이스라엘의 부자와 권력자들, 사제들에게 경신례와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의 권리를 밝히는 율법을 상기시키며 이스라엘 멸망을 예언했다. ‘아모스 예언자’.
히브리어 구약 성경 「타낙」은 아모스서를 요엘서 다음에 배치해 놓았습니다. 이유는 두 책이 메뚜기, 재앙, 불, 경신례 탄원, 주님의 날, ‘시온에’라는 표현 등 유사점을 공유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모스서는 요엘서보다 훨씬 이전인 기원전 8세기께 저술된 책입니다. 아모스는 ‘아모스야’를 줄인 말일 것이라고 성경학자들은 추측합니다. 아모스야는 우리말로 ‘야훼께서 (짐을) 들어주신다’, ‘야훼께서 (짐을) 짊어져 주신다’라는 뜻입니다. 헬라어 구약 성경 「칠십인역」과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는 히브리어 ‘아모스’를 음차해 ‘Αμωs’, ‘Amos’로,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펴낸 우리말 「성경」은 ‘아모스서’라 표기합니다.
아모스는 첫 번째 저술 예언자입니다. 저술 예언자는 자신의 이름을 제목으로 한 구약 성경 경전 안에 자신이 활동한 예언 내용이 그대로 보존돼 있는 예언자들을 말합니다. 하지만 저술 예언자들의 경전은 예언자 자신이 아니라, 대부분 그 제자들의 작품입니다.
구약 왕정 시대 예언 운동이 먼저 발전한 곳은 북 왕국 이스라엘입니다. 저술 예언자 시대 이전의 엘리야와 엘리사 예언자도 북 왕국 이스라엘에서 활동했습니다. 하지만 저술 예언자로서 북 왕국에서 활동한 예언자는 아모스와 호세아 둘뿐입니다. 아모스는 호세아보다 약 10년 먼저 예언자로서 활동했습니다. 예언 운동이 먼저 시작됐지만, 예언자들이 적은 이유는 기원전 586년 멸망한 남 왕국 유다보다 136년이나 앞선 기원전 722년에 북 왕국 이스라엘이 멸망했기 때문입니다.
아모스 예언자는 트코아에서 목양업과 돌무화과 나무를 재배하던 사람이었습니다.(1,1; 7,14 참조) 하지만 그는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 역사뿐 아니라 주변 민족사도 잘 알고 있고, 법 지식도 남다른 사람이었습니다.(2,6-8; 8,4-6) 아울러 아모스는 자신이 “예언자도 아니고 예언자의 제자도 아니다”라고 합니다. 다만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여라”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뿐이라고 자기 신원을 밝힙니다.(7,14-15)
트코아는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약 18㎞ 떨어진 유다의 작은 마을입니다. 남 왕국 유다 사람인 그가 북 왕국 이스라엘에서 예언 활동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하느님께서 유다인이든 이스라엘 사람이든 당신 백성 모두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비록 유다와 이스라엘 두 왕국으로 갈라졌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내 백성”(7,15)이라 부르십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유다 사람 아모스를 당신 예언자로 부르시어 이스라엘에 파견하셨습니다.
이렇게 농축산업을 하던 아모스는 고향을 떠나 북 왕국 이스라엘 베텔에서 예언자로 활동합니다. 베텔은 예루살렘 성전과 경쟁해 북 왕국 이스라엘의 성소로 신전이 지어진 곳이죠. 아모스가 활동한 시기는 대략 기원전 760~750년께로 추정합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여호아스의 아들 예로보암 2세 임금(기원전 787~747년 재위)이 통치하고 있을 때입니다. 예로보암 2세는 태평성대를 누렸습니다. 이스라엘 영토는 최대로 확장됐고, 외교적으로 안정과 평화가 지속했습니다. 농업과 수공업이 번창했고, 주변국과의 교역도 활발했습니다. 부정부패도 만연했습니다. 권력자들의 억압과 착취로 백성들은 가난을 면치 못했습니다.(4,1; 5,12) 무엇보다 종교 타락이 극치를 달렸습니다. 베텔에 왕실 신전을, 단과 길갈에 여러 신당을 세워 송아지상을 안치하고 우상을 섬겼습니다.(4,4; 5.5; 8,14)
북 왕국 이스라엘은 예로보암 2세 임금이 죽은 지 25년 만에 아시리아에 패망합니다. 그 사이 임금이 여섯이나 바뀌었습니다. 대부분 폐위되거나 암살되었지요. 이스라엘이 예로보암 2세 사후 파국으로 치달은 까닭은 아시리아 때문이었습니다. 아시리아의 영향력이 미치자 이스라엘 정치권이 친아시리아파와 반아시리아 세력으로 갈라져 끝없는 모반을 일으켜 국력을 소진시키고 말았죠.
아모스서는 머리글(1,1)과 짧은 서론(1,2), 이스라엘 주변의 일곱 국가를 향한 심판 선포(1,3-2,16), 이스라엘을 비난하는 신탁(3-6장), 다섯 환시(7,1-9,10), 맺음말(9,11-15)로 구성돼 있습니다. 이 중 다섯 환시(7-9장)에서 예언자가 자신에 관해서 단수 1인칭으로 말하는 부분들은 아모스가 직접 기록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아모스서는 하느님의 권능과 정의가 모든 민족에게 퍼져나가는 가운데 이스라엘에 대한 주님의 영원한 우선적 사랑을 드러냅니다. 그러면서 아모스서는 부자와 권력자들, 사제들에게 경신례와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을 보호해야 하는 율법을 상기시킵니다. 아모스의 이 신탁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확연하게 선포됩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아모스서는 이스라엘이 하느님께 형식적으로 제사를 바치면서도 마음으로는 하느님을 찾으려 하지 않아 미래가 없고, 남은 것은 멸망뿐이라고 경고합니다. 그러면서 회개하고 하느님께 용서를 구하면 구원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성경학자들은 이스라엘의 회복과 구원에 관한 아모스의 마지막 신탁은 그가 직접 선포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입니다.
[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인물] (9) 사기꾼 아니면 지혜로운 사람, 야곱
몇 년 전 잘 아는 변호사가 나에게 질문한 적이 있다. “신부님, 우리나라에서 제일 많이 일어나는 범죄가 무엇인지 아세요?” “글쎄, 싸움, 폭력 같은 게 아닐까?”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많이 일어나는 범죄는 사기예요. 대부분 친하고 잘 아는 사람에게 사기를 당해 안타깝죠.”
사기는 “사람을 기망(欺罔)하여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같은 방법으로 제3자로 하여금 재물의 교부를 받게 하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게 하는 범죄”(형법 제347조)이다. 기망이란 상대방을 착오에 빠지게 하는 모든 행위이고 착오를 일으키게 하는 방법에는 아무런 제한이 없다.
새로 서품받은 신부님들만 노리는 사기꾼들(?)이 있었다. 나도 첫 임지인 수유동본당에 있을 때 신앙상담을 한다며 한 중년 남자가 찾아왔다. 그의 기구한 삶을 듣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그는 자신의 불우한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손수레라도 사서 일하고 싶다며 5만 원만 보태주면 백골난망이라면서 눈물을 뚝뚝 흘렸다. 나는 선뜻 10만 원을 주었다. 당시 보좌신부였던 나의 수입에 비하면 과한 돈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동창 모임에 갔는데 한 동창 신부의 이야기가 어디서 많이 듣던 레퍼토리였다. 그러자 다른 동창 하나도 그 사람이 찾아와 돈을 주었다고 했다. 나중에 보니 그에게 속은 사람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그 후 난 반포본당 보좌로 발령을 받았는데 며칠 후 초인종 소리에 나가보니 전에 나에게 거짓말로 돈을 가져간 그 사람이었다. “지난번 수유동에서 우리 봤지요? 생각 안 나요?” 그러자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천연덕스럽게 “네, 신부님, 제가 그 돈으로 근근이 먹고살게 되었어요. 그래서 이렇게 인사를 드리러 왔습니다”라며 인사를 한 후 줄행랑을 쳤다. 그 사람 뒤에다 “인사이동이 난 주보 좀 보세요”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가끔 그의 순발력(?)과 연기력에 감탄하곤 한다.
성경에서는 사기꾼, 모사꾼 등의 부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는 이사악의 아들 야곱이 있다. 야곱이 사기꾼인가? 지혜로운 사람인가? 하는 논쟁은 끝장 토론을 해도 쉽게 끝나지 않을 사안이다. 야곱은 양쪽 면을 다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기꾼의 면모도 있지만 야곱에게는 대단한 열정과 끈기가 있었다. 야곱은 탄생부터 운명이 기구했다. 어머니 레베카 뱃속에서 나올 때부터 쌍둥이로 형 에사우의 발목을 잡고 태어났다. 야곱은 결국 이스라엘 민족의 성조가 되었지만, 어떤 면에서는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삶을 살았다.
야곱은 하느님에 대한 믿음처럼 세속적인 삶에도 열정적이고 투쟁하는 인물이었다. 자신의 삶에서 조용히 순서를 기다리는 수동적인 삶이 아니라 스스로 목표를 이루기 위해 죽을힘을 다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사랑에도 열정적이었고 할아버지 아브라함처럼 처세술도 지닌 인물이었다. 야곱은 형 에사우에게서 장자권을 빼앗고 죽을 위험에 처하자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야반도주했다. 그리고 오랫동안 고향을 떠나 고생하며 에사우에 대한 두려움 속에 노동에 시달리는 고단한 삶을 살았다.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판관 입타의 비극
아브라함이 주님의 명령으로 아들 이사악을 바치려 한 일(창세 22,1-19)은 딸을 제물로 바친 판관 11장의 입타를 떠올리게 합니다. 다만 이사악의 번제는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던 의도였지만(1절), 입타의 사건은 인신제(人身祭)가 이스라엘에서 합법이었다는 인상을 줄 수 있어 의문거리입니다. 하지만 이 사건은 행간에 사연이 숨어 있습니다.
판관 11,1에서 입타는 길앗 출신의 “힘센 용사”로 소개됩니다. ‘길앗’은 요르단 강 건너편에 자리한 산지의 옛 이름입니다. 또한 그는 “창녀의 아들”로도 소개되는데, 이는 그가 신분이 천한 자였음을 짐작케 합니다. 그렇다고 그의 어머니가 꼭 몸을 파는 여인이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당시에는 혼외관계에 얽혀 있거나 간음한 여인도 창녀 취급을 받았습니다(창세 34,31). 입타는 판관기의 백성이 그러했듯(판관 10,6 등) 하느님 섬기는 법을 잘 몰랐던 것 같습니다. 판관기를 보면, 이스라엘의 출발은 그리 나쁘지 않았는데 상황이 갈수록 악화되어 끝내 지파들이 서로 싸우기에 이릅니다(20장). 이런 불안정함은 사무엘이 등장하고 나서야 사라지게 됩니다.
입타는 딸을 제물로 바쳤다는 점에서 아들의 번제를 명 받은 아브라함과 닮았지만 차이점을 여럿 보여줍니다. 아브라함은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아버지의 집을 떠나”(창세 12,1) 가나안으로 왔고 주님의 도우심으로 큰 부자가 됩니다(13,2 등). 이사 41,8에서는 ‘주님의 벗’이라 불릴 만큼 하느님과 특별한 관계에 있었으니, 주님께서 아들을 바치라 하셨을 때 그분을 신뢰하는 건 그에게 아주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에 비해, 입타는 천출(賤出)이라 ‘부친의 집에서 쫓겨났고’(판관 11,2) 훗날 공동체에 다시 받아들여지긴 하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이스라엘의 이해타산 때문이었습니다. 암몬과의 전쟁을 앞두고 그의 힘이 필요했던 것입니다(5-8절). 그러니 어릴 때부터 홀로 생존 투쟁을 한 입타가 아브라함처럼 무조건적 신뢰를 갖긴 힘들었을 것입니다.
판관 11,29(“주님의 영이 입타에게 내렸다.”)을 보면, 하느님께서는 입타가 ‘위험한 맹세’(30-31절)를 하기 전부터 그와 함께하고 계셨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확신하지 못한 입타는 끝내 누군가의 목숨을 건 다음, 마치 도박하듯 출전합니다. 만일 승전한다면 자신을 맞으러 맨 처음 나오는 사람을 제물로 바치겠다고 약속한 것입니다. 그런데 결국 자신의 무남독녀가 나오게 되자 절망해버립니다. 하지만 주님께 한 서원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였고, 그 탓을 오히려 딸에게 돌립니다: “아, 내 딸아! (···) 네가 나를 비탄에 빠뜨리다니!”(35절) 생존하느라 힘들었고 그 때문에 남 탓에도 익숙해진 입타는, 충직한 성품 덕에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신실하게 살아간 아브라함과 크게 대조됩니다.
일반적으로 성경은 최대한 말을 아끼고 중요한 것만 언급하곤 하는데, 입타의 비극은 매우 자세히 기술되어 있습니다. 이는 아마도 당시 유행하던 인신공양을 비판하려던 것으로 보입니다. 곧 입타의 사연을 통해 인신제가 백성이 바란 행복이나 성공이 아니라 도리어 비극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려는 목적이 아니었을까요?
[마르코와 함께 떠나는 복음 여행]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마르 2,5)
‘도대체 이 고통에서 난 언제쯤 벗어날 수 있을까?’ 질병에 짓눌려 살아가야 하는 이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되뇝니다. 여기 중풍이라는 병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느끼는 고통은 단지 육신의 아픔만이 아니었습니다.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그래서 쓸모없는 인간이 되었다는 자괴감. 나아가 당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자신이 지은 죄로 인해 하느님에게 질병이라는 벌을 받았다는 통념. 병으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이미 받고 있는데, 중풍 병자는 사회적으로 죄인이라 낙인이 찍힌 고통 속에 살아가야 했습니다. 그 고통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요? 매일 아침 눈을 뜨는 삶 자체가 고통이요, 숨 쉬는 순간 모두가 아픔이었을 것입니다. 해결할 수 없는 육체적인 고통은 점점 그를 지치게 만들고, 나아가 사랑하는 가족, 친구, 그리고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버림을 받는 현실은 그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갔을지도 모릅니다.
오랜만에 찾아온 친구들이 그에게 소리칩니다. 너무나도 밝게 웃는 친구들의 미소가 그를 더욱 어리둥절하게 만듭니다. 친구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어떤 병이든 치유하는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는 예수라는 사람이 마을에 왔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집안 구석에 처박아 놓았던 들것에 그를 눕히고 발걸음을 재촉하여 예수님에게 달려갑니다. 친구들의 간절함에 중풍 병자는 그동안 잊고 지냈던 희망이라는 단어를 떠올립니다. ‘아, 정말 다시 걸을 수 있단 말인가? 다시 사람답게 살 수 있을까?’ 하지만, 너무나 많은 사람이 몰려들어 그분 곁으로 갈 수가 없었습니다. 고함을 치는 사람, 조용히 하라고 핀잔을 주는 사람, 눈물을 흘리는 사람. ‘나도, 나도 만나고 싶다. 단 한 번만이라도 그분을 만나고 싶다. 다시 일어설 수만 있다면….’ 그 순간 친구들이 병자를 들것에 단단히 묶고 사다리를 타고 지붕 위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지붕을 벗겨내고 끈으로 들것에 묶었던 친구를 천천히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시끄러운 소리 속에서 지금껏 만나보지 못한 따뜻한 시선이 그를 사로잡았습니다. 예수님이었습니다. 기적을 행한다는 그분, 바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분께서 들것에 실린 채 눈물을 흘리는 중풍 병자와 그의 친구들을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시며 말씀하십니다.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조금은 투박한 문체로 전하는 마르코의 기적 사화이지만, 장면을 마음속에 그려보면 중풍 병자와 예수님의 만남은 너무나도 드라마틱합니다. 쓸모없고, 버림받았으며, 심지어 죄인이라는 주홍 글씨까지 새겨진 채 살아야 했던 저주받은 사람. 하지만 그를 사랑해 준 친구들. 그리고 그를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예수님의 시선.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는 말씀에 가슴이 요동을 치며 하느님이 자신을 버리지 않으셨고, 오히려 자신도 그분께 사랑을 받는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느끼지 않았을까요? 이처럼 예수님의 용서는 단순히 병의 치유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에게 삶 전체를 되돌려주는 전인적인 치유요 구원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