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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어느 걸그룹 가수가 아르바이트 소개업체를 홍보하는 TV 광고에서 “저를 뽑아주신다면 밤샘도~ 메뉴개발도~ 인테리어도~ 프랜차이즈확장도~ 해외진출까지도~”라고 말하니까 사장이 등장해 “도~가 지나치시네”라고 말하며 “알바는 알바답게”라고 외치며 광고가 끝나는 내용이었습니다. 또 다른 후속 광고에서도 사장이 알바를 구하며 “조기퇴근도~ 보너스도~ 가족같은 분위기도~ 가게경영권도~ 해줄 수 있다”고 말하니까 아르바이트생이 “도~가 지나치시다”라며 “알바는 알바답게”를 외치며 광고가 끝이 납니다. ‘알바는 알바답게’라는 말은 “아르바이트생은 딱 아르바이트생만큼만 생각하고 아르바이트생만큼만 일하면 된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어느 인터넷 사이트에 ‘주인과 머슴의 차이’라는 제목의 글을 보았습니다.『주인은 미래를 보고 머슴은 오늘 하루를 본다 / 주인은 소신 있게 일을 하지만 머슴은 남의 눈치만 본다 / 주인은 스스로 일하고 머슴은 누가 봐야 일을 한다 / 주인은 힘든 일을 즐겁게 하고, 머슴은 즐거운 일도 힘들게 한다 / 주인은 스스로 움직이고, 머슴은 주인에 의해 움직인다 / 주인은 되는 방법을 찾고 머슴은 안 되는 핑계를 찾는다 / 주인은 일 할 시간을 따지고 머슴은 쉬는 시간을 따진다 / 주인은 알고 행동하고 머슴은 모르고 행동한다 / 주인은 자신이 책임을 지고, 머슴은 주인이 책임을 진다 / 주인은 내일을 위해 오늘의 고통을 참고 머슴은 내일을 위해 오늘의 고통을 피한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주인의 가치관과 종의 가치관은 너무나 다르다’라는 개념을 담고 있는 글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마태복음 25장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달란트 비유’를 보게 됩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과 비슷한 내용으로 누가복음 19장에 ‘열 므나 비유’가 기록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에서는 종들에게 ‘므나’를 나누어 주며 재산을 맡긴 것을 말씀하고 있고 오늘 본문에서는 “‘달란트’를 나눠 주었다”라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 당시 사용되는 돈의 명칭을 ‘유대식’ 혹은 ‘로마식’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므나’ 나 ‘달란트’나 똑같은 의미이며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종에게 나눠주신 능력, 나눠주신 은사 등을 뜻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어떤 부자가 자기 종들에게 재산을 맡겨놓고 타국에 여행 간 내용으로 천국비유 하나를 알려주십니다.
마태복음 25장 14절 말씀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오늘 본문에서 어떤 사람이 다른 나라에 가면서 종들에게 자기 소유를 맡겨 두었습니다. 그리고 돌아와 재산을 어떻게 잘 관리했는 지 결산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어느 주인이 자신의 종들에게 각각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맡겼고 돌아와 결산해 보니 다섯 달란트를 맡은 종은 다섯 달란트에 다섯 달란트를 더 하여 열 달란트를 가져왔고 두 달란트를 맡은 종은 맡은 두 달란트에 두 달란트를 더 하여 네 달란트를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 맡은 종은 그 한 달란트를 고이 잘 보관하였다가 한 달란트를 가지고 왔습니다. 어찌 보면 모든 종이 칭찬받아도 될 것 같습니다. 요즘 우리 경제상황을 보면 사실 원금을 유지하는 것도 힘든 일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느끼며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가지고 있는 재산 그대로를 지키기 힘든 시대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각자 받은 달란트에서 100%의 이익을 얻어 두 배의 달란트를 가져왔다는 것도 대단한 일이지만 맡긴 한 달란트를 그대로 가져온 종도 대단한 사람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원금 그대로 들고 온 종을 주인이 책망하였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원금 그대로 가져온 이 종이 뭐가 잘못되었는 지 돌아보며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능력을 우리가 어떻게 쓰며 우리에게 사명을 맡기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성실하게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원금 그대로 들고 온 종의 잘못, 첫째는 주인에 대한 잘못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두려움과 경외함은 있어야 하지만 주인에 대한 잘못된 편견으로 가진 두려움은 이 종의 큰 잘못이었습니다.
마태복음 25장 24, 25절입니다.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부자인 주인을 섬기는 종은 항상 자신의 주인의 모습을 보며 두려워하고 걱정하고 염려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종인 우리는 주인인 하나님을 보며 경외하는 마음,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인에 대한 잘못된 편견으로 주인과 함께 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만나기를 꺼려한다는 것은 큰 잘못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이 종은 주인에 대한 두려움이 큰 나머지 ‘이렇게 해도 책망받고 저렇게 해도 책망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그가 주인의 재산을 맡게 되었을 때 그냥 본전만 유지하자라는 생각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도 가족관계, 직장생활, 학교와 여러 사회활동 속에서 상급자, 관리자, 직장동료들을 대하며 걱정부터 앞설 때가 있습니다. 어떤 일을 하면서 두려움을 가지고 뭔가를 시도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괜히 뭔가를 하다가 저들에게 지적을 받지 않을까?’ ‘내가 어떤 일을 해서 결국 내가 비난을 듣지 않을까?’라는 두려움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이런 두려움은 마음을 상하게 만들 뿐 아니라 대인관계를 무너뜨리고 결국 자기 몸을 약하게 만들며 생활 속에서 절망과 파탄에 빠지게 만들 수 있습니다.
스페인의 왕이었던 페르디난도 5세가 있었습니다. 그는 언젠가 어느 점쟁이로부터 “왕께서는 마드리갈이라는 곳에 아예 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마드리갈에서 왕은 장차 죽을 것입니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문제는 그곳에 왕의 별궁이 있었습니다. 휴가를 보낼 수 있는 아름다운 곳이었지만 점쟁이의 말 때문에 왕은 21년 동안 그 곳을 찾아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왕이 여행하다가 스페인 어느 지방의 조그마한 마을에 들러 하룻밤 묵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몸에 병도 생기고 마음도 무겁고 뭔가 기분이 찜찜해 잠을 설치게 되었습니다. 옆에 있던 신하에게 “이 지방의 이름이 뭐냐?”라고 물었습니다. 신하가 대답하기를 “이곳은 마드갈레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름이 듣자 왕은 점쟁이가 말한 ‘마드리갈’과 발음이 비슷해서 자기가 죽을 것이라고 예언했던 지역이라고 착각하고 기운이 쭉 빠졌습니다. 그리고 왕이 생각하기를 “아이쿠, 나는 여기서 죽겠구나!”라고 말하면서 낙담했고 실제로 며칠이 지난 후 죽고 말았습니다. 왕은 질병이 생겨 죽은 것이 아니라 마음에 가지고 있었던 두려움으로 인해 좌절과 낙담에 빠지게 되었고 두려움과 공포의 마음이 육체를 짓눌러 절망에 빠지게 되었을 때 죽음이 찾아온 것입니다.
출애굽기 14장 13절입니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이사야 41장 10절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관계를 좋게 할 수도 없고 우리 몸 건강도 지킬 수 없습니다. 특히 우리 왕이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의 책망을 두려워하고 하나님께 가까이 가기를 꺼린다면 우리는 영적인 죽음으로 다가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무서워도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사람이 복된 사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두려움을 떨쳐 버리고 담대하게 가까이하려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책망마저 두려움이 아니라 기쁨으로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에 대해 두려움과 공포를 이겨내고 복의 근원 하나님을 믿고 담대히 나아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원금 그대로 들고 온 종의 잘못, 둘째는 주인의 성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마태복음 25장 26절입니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종은 주인에 대해 착각하고 있습니다. 종은 ‘자신의 주인이 재산을 모을 수 있었던 것은 원래 재산이 많아서 그런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재산을 빼앗아서 그런 것이다’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 종은 “자신의 주인이 어떤 수고도 하지 않고 종들이나 세상의 상납자들을 통해 재산을 얻었다”라고 착각했습니다. 이런 생각을 가지니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 봤자 어차피 주인만 배부를 것인데 노력해서 뭐하나’라는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을 하나님의 입장, 영적인 부분으로 적용해 보면 이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어떠한 노력을 해도 영적인 것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니 나는 가만히 있어도 되지 않을까?’ ‘어차피 영적인 결실은 하나님께서 정하시는 것이니 하나님께서 다 가져가실 것 나는 무슨 노력을 할 필요가 있어?’라고 생각하는 것과 똑같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이 본문에서 자세히 본문을 살펴보면서 한 번 고민해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만약 한 달란트를 받은 이 종이 정말 열심히 장사했음에도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여 한 달란트만 가져왔다든지 아니면 아예 원금까지 다 날리고 무일푼으로 돌아왔을 때 오늘 본문의 주인이 책망했을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만약 그런 상황이 되어도 주인이 책망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저와 여러분은 이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취지를 잘못 이해한 것입니다. ‘내가 괜히 주인이 준 돈으로 장사를 했다가 돈을 날려버리지 않을까? 두려워했고 돈을 탕진하게 될 때 주인에게 책망받을까?’ 두려워해서 어떤 것도 시도하지 못한 것이 진짜 종의 잘못입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이 자신의 돈을 종의 능력에 고려해서 맡겼는데 그 종이 열심히 노력했음에도 돈을 잃었다면 그 책임은 주인에게 있습니다. 하지만 주인이 능력을 고려해서 맡긴 돈으로 뭘 해볼 생각을 하지 않고 그냥 묵혀 두었다면 그 잘못은 종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해 본다면 이 종이 일단 어떤 일이라도 시도했다가 맡긴 돈을 탕진하게 되었다면 그 상황은 주인의 분노를 피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의 한 달란트 맡은 종은 ‘주인이 믿고 맡겼는데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이 종은 주인이 자신을 믿고 맡긴 것을 거부하며 주인이 자신의 주인이라는 인정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인의 분노를 일으키는 원인이 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4장 1, 2절입니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주인으로부터 명령을 받아 사명대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은 그냥 충성만 다 해야 합니다. 하물며 하나님 복음의 사명을 받은 사람은 그 말씀 그대로 믿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어느 청년이 목사님과 함께 차를 타고 여행을 갔습니다. 그 청년은 “목사님, 저는 십계명을 싫어합니다. 십계명에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왜 그렇게 많습니까?”라며 십계명에 대한 거부감을 표현하였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어떻게 이 청년을 가르쳐 줄까?’라고 고민하고 있던 차에 바로 앞에서 이정표가 하나 보였습니다. 오른쪽, 왼쪽 두 갈래 길이 나타났습니다. 이 이정표를 보고 목사님은 자기들이 가야 할 목적지와는 반대 방향의 길로 차를 운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그 차에 타고 있던 청년이 깜짝 놀라며 “목사님, 그 쪽이 아니잖아요. 우리가 가는 쪽은 반대쪽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께서 “내가 운전사인데 내 맘대로 가면 되지 뭘 그래”라고 댓구했습니다. 이 말을 통해 청년이 말한 십계명을 거부하는 삶에 대해 암시적인 대답을 해줬던 것입니다.
여러분 도로를 운전하거나 걸어서 횡단보도를 건널 때 신호등의 신호를 귀찮게 여기면 될까요? 도로의 신호등은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도로를 관리하는 것은 국가이니 국가에게 유익한 법일까요? 아니죠. 결국 국민들의 안전, 국민들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이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율법은 누구를 위해 있는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신 성경 말씀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요? 이 모든 것은 바로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실 우리가 오늘 본문의 어떤 사람, 즉 주인을 보면서 생각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주인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주인에 대한 편견을 가지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주인이 어떤 사람이고 주인이 어떤 대접을 해줄까?’라는 생각 이전에 ‘주인이 하라’고 했으면 하는 것이 ‘종의 본분’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주인이 맡긴 달란트가 나에게 있으면 그 달란트로 주인의 재산을 늘리고 주인의 영광을 위해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일을 했다면 ‘장사를 실패할 것인지’, ‘장사를 성공할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나에게 맡긴 일을 알고 그 일을 했다면 성공한 장사, 실패한 장사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돈의 액수를 따지고 사람들은 권력의 크기를 따지지만 우리 하나님은 그것을 따지는 분이 아니십니다. 단지 ‘맡긴 그 일을 해보려고 했느냐’, ‘하지 않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께서 맡기신 소유, 하나님께서 맡기신 달란트의 그 일을 감당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인이 맡기신 일이기에 한 번 해봐야지 시도할 때 은혜가 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원금 그대로 들고 온 종의 잘못, 셋째는 일을 맡긴 주인을 믿으면 주인이 책임지신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마태복음 25장 28, 29절입니다.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우리 하나님께서는 결국 우리의 모든 것을 갚아주시고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다 조절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우리는 하나님께서 정산하시고 하나님께서 모든 삶을 평가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 23절입니다.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우리는 모든 인생의 결산을 하나님께서 하시고 모든 삶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방금 읽은 성경 구절에서도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우리 뜻과 마음을 살피시고 결국 “우리 내면의 모습대로 우리 삶 가운데 우리 행위대로 갚아주시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기준으로 우리는 오늘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본문에 등장한 종이 받은 다섯 달란트 비유를 생각하면서 누가복음 열 므나 비유와 연계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누가복음에서는 므나의 비유를 통해 하나님을 신으로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자기가 주도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죄악을 가르쳐 주십니다. 하나님을 신으로 인정하지 않고 인생의 주권자로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지 않는 사람이 결국 죽게 되는 것을 선포합니다.
누가복음 열 므나 비유의 앞 부분 누가복음 19장 14절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19장 14절을 같이 보시겠습니다.
“그런데 그 백성이 그를 미워하여 사자를 뒤로 보내어 이르되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나이다 하였더라”
대부분의 이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이 오실 것을 기대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을 심판하실 주님, 세상의 구원자 되실 예수님이 우리의 왕으로 임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반대하며 예수님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9장 14절에서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세상의 왕이 되시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씀합니다. 예수님 당시에 유대지역 총독으로 임명받은 아켈라오가 자신의 통치권을 인정받기 위해 로마를 다녀오는 사이 유대인들 사이에서 아켈라오를 반대하는 사절단을 로마로 보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아켈라오가 이 일을 주동한 사람들과 동조자들 8,000명을 살해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예수님을 거부하고 반대하고 예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으면 죽게 될 것을 역사적 사실을 비유로 들며 말씀하신 것입니다.
누가복음 19장 27절을 보십시오.
“그리고 내가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 하였느니라”
오늘 본문에서 주인을 따르는 종은 결과물을 내지 못하였더라도 잃어버린 것은 재산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주인을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고 왕이신 분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은 사람들은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은사와 능력도 빼앗기게 될 것을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25장 29, 30절입니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모든 것을 주인이신 예수님께 맡기고 인생의 모든 결과는 예수님께서 책임지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단지 예수님께서 시킨 일을 잘 감당하면 되는 것입니다. 내가 많은 것을 채우려고 할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나의 모든 삶을 책임져 주심을 믿고 결과를 위해 노력할 것이 아니라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라고 하시는 지 시키신 일에 집중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로지 말씀대로 그 길을 걸어가기만 하면 결과는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말씀을 맺을까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서 “나에게 맡긴 달란트를 가지고 어떻게 하면 큰 이익을 남기고 더 많은 결과물로 만들어낼 수 있을까?”라고 적용한다면 정말 성경 본문의 뜻과는 맞지 않은 적용을 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오늘 본문 ‘달란트 비유’ 누가복음에 동일하게 말씀하시는 ‘므나 비유’를 읽거나 설교 들으면서 그래 ‘내가 더 많은 소득을 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 지’라고 해석하고 결단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곡해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 주님이신 예수님께서는 결과를 책망하신 것이 아니고 명령을 순종하지 않은 것, 왕이신 주님의 뜻을 온전히 믿지 못하고 자신의 능력에 집중해서 두려워하며 걱정하며 가만히 있었던 것을 책망하신 것입니다. 결국 오늘 본문은 이 세상의 사람들이 주인이신 예수님의 존재를 부정하며 잠시 떠나 있는 예수님이 진정한 주인이신 것을 망각한 세상에 대해 책망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큰 결실을 맺기 위한 우리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순종, 예수님의 주인되심을 인정하는 것을 발견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오늘 말씀을 통해 삶에서 결과를 얻지 못한 것에 대한 회개보다 전적인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인정하지 않았던 것,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것, 무엇보다 모든 맡기신 일에 예수님의 절대주권으로 역사하실 것을 믿지 못했던 것을 회개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가 예수님께서 맡기신 사명 속에 예수님의 주인되심을 거부하며 살아간다면 결국 지옥불에 떨어지고 영원한 지옥형벌에 놓이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 말씀을 통해 우리 인생에서 정말 우리 주 예수님이 내 삶의 주인되시며 주권자되시고 모든 삶을 심판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제는 우리 주님 주신 달란트를 활용해서 풍성한 삶을 살아가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 다 하신다는 믿음으로 맡기신 그 일에 충성을 다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